역사적 사회과학: 사회성격논쟁과 마르크스주의

Four Tet – Planet

사회성격논쟁 ‘속’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성격논쟁 혹은 사회구성체논쟁으로 알려진 논쟁은 한국의 사회과학의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논쟁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학이라는 사회학, 정치학, 지리학 등의 사회과학 분야의 분과학문을 넘어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 분야에 역시 큰 영향이 반향 되었던 ‘학술적인’ 사건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회상되곤 한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분단 이후 남한에서 거의 전례 없는 마르크스주의의 부활 또는 재기를 가리키는 사태로 기억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논쟁이 촉발된 시점의 일종의 시대착오성(anachronism)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한국의 민주항쟁 이후 도래한 잇단 세계적 사태들, 중국 천안문사태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리고 ‘현실사회주의’란 이름으로 지칭되던 동구권의 잇단 몰락 혹은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이나 쇠퇴를 예고하였다. 물론 197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형태로의 서구 자본주의의 전환은 사회주의적 이상을 폄훼하고 나아가 악마시하는 과정을 통해 성사되었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와 그것에 관련된 사회주의 정치는 전례 없는 쇠퇴를 겪고 있던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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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경험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자오량의 <고소>에 관하여


赵亮-上訪 Petition

踏遍靑山, 問計人民
청산을 다니며 인민에게 계책을 묻는다.

계시와도 같은 영화들

얼마 전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조망하는 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199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사회참여적 독립 다큐멘터리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이 책의 저자인 댄 에드워즈(Dan Edwards)는, 서두에서 자신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예기치 않은 계기를 술회한다. 그는 홍콩국제영화제의 프레스룸에서 작은 TV 화면으로 자오량(赵亮, Zhao Liang)의 다큐멘터리 작품 <고소(上访 Petition)>을 보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뇌리에서 떨치지 못했을 한 고통스러운 장면을, 그 역시 마주했던 순간을 전한다. 그가 보았던 장면은 어느 노구의 고소인들이 자신을 쫓는 이들을 피해 달아나다 기차에 치여 온 몸이 산산조각 난 후의 모습이다. 그의 사체를 수습하기 위해 주변의 고소인들은 철로를 누비고, 철로에 끈적하게 붙어있는 그의 살점, 머리 조각을 찾아내다 결국 바닥에 뒹굴고 있던 손가락 하나를 주워든다. 몇 년간 중국 정부가 소유했던 월간 잡지에서 일하던 댄 에드워즈는 자신이 매일 북경의 거리를 오가며 감지했던 불편하고 음산한 느낌의 정체를 설명해주는 한 영화와 마주쳤다. 개혁과 개방 이후 무서운 기세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그것도 수도인 북경의 거리를 거닐 때마다 곧잘 맞닥뜨려야 했던 남루한 행색의 겉도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소>는 번영하고 있는 표면의 현상 뒤앙에 놓인 중국 동시대적 상황의 숨겨진 구석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의 중국 다큐멘터리 세계에 대한 열광과 몰두는 그 첫 상영을 통해 굳어졌다.” Dan Edwards, Independent Chinese Documentary: Alternative Visions, Alternative Publics,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5, p.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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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어느 노래에 대한 역사적 기억 연습


Billy Bragg – The Internationale

“사회적 긴장관계들의 저 건너편에서 존재론적인 즉자존재로서 자신을 주장하는 한,
음악은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절규한다. 혁명은 죽었다! 혁명 만세!”

노래하지 않는 역사

1980년대 후반, 종로나 영등포의 거리로 뛰쳐나온 대학생들은 시위에 참여할 이들을 부르는 구호를 외치고 곧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근처에서 딴전 피우듯 눈길을 던지던 이들은 노래를 이어 부르며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로 시작되는 <흔들리지 않게>이기 일쑤였다. 그 노래는 어쩌면 연행될지 모를 불안, 미리 누설된 정보로 들이닥칠 경찰에 대한 염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그 순간에도 계속되어야 할 투쟁에 대한 다짐을 전송하였다. 그것은 여기에 모인 그들의 노래였으며, 함께 할 미래의 누구와 함께 되는 하나를 예언하는 노래였으며, 놀라운 눈길로 그들을 쳐다보는 이들에게 투쟁을 간청하는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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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와 사회”, 어게인


James Brown – It’s a Man’s World(Paris 1967)

“그의 노동은 경험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밀봉 처리되어 있다.
즉 그의 노동에서 연습은 그 권리를 상실했다.
놀이공원에서 다양한 놀이기구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비숙련공이 공장에서 받게 되는 기계적 훈련을 시험해 보는 것에 불과했다.
… 포의 텍스트는 야만성과 규율 사이의 진정한 상관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가 묘사하는 행인들은 마치 기계장치에 적응되어 단지 자동적으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의 행동은 충격에 대한 일종의 반응 양식이다. ‘서로 부딪힐 경우 사람들은 자기를 밀친 상대방에게 깊숙이 머리 숙여 인사했다.” W. 벤야민,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김영옥, 황현산 옮김, 길, 2010, 218쪽.(강조는 인용자)

1

심상찮은 일일까? 잘은 모르겠다. 2017년이라는 한 해는 한국에서 문학 저널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숨 가쁘게 바뀐 해이다. 어떤 역사적인 풍파에도 끄떡없던, 아니 아랑곳하지 않던 문학잡지들이 거듭나거나 변신을 꾀하는 시늉을 했다. 세계의 문학은 릿토르 Littor라는 격월간지로 변신하였고, 문학과사회는 재 창간에 가까운 혁신을 꾀하였고, 문학동네는 새로운 편집진을 꾸림으로써 이전과 다른 문학 저널로 변신하고자 했음을 기별하였으며, 창작과비평은 제3문학이라는 자매지를 창간함으로써 어쨌든 새로운 문학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부응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문학잡지를 챙겨보는 일이 시들해진 내게도 이런 동정이 알려질 정도라면 문학 저널리즘에 가까이 있는 이들에겐 큰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신의 풍경은 대중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진 일이라 그것을 달리 복기하는 짓은 불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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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상한 유물론들: ‘기분의 사회학’을 읽는다 (2)


In The Mood For Love. Song Yumeji’s theme

 

기분의 사회학 – 세계는 존재인가 아니면 객체인가

“여기서 내의 의도는 철학에서 인정받지 못한 유물론적 전통 하나가 존재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마키아벨리, 홉스, (두 번째 <논고 Discours>인간불평등기원론의) 루소, 마르크스, 하이데거의 전통입니다. 그들이 주장해 온 공백(vide), 한계, 주변(marge: 여백), 중심의 부재, 중심의 주변으로의 전위(傳位)(또 그 반대), 그리고 자유라는 범주들과 함께 말입니다. 그것은 통상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것으로 돌려지던 유물론, 즉 합리주의 전통의 모든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목적론의 유물론, 다시 말해 관념론의 위장된 형태인 저 유물론을 포함하여 유물론으로 인정받던 유물론들에까지 대립하는 마주침의 유물론, 우연성의 유물론, 요컨대 우발성의 유물론(matérialisme de l’aléatoire)입니다.” (L. 알튀세르)

나는 하이데거에게 먀르크스주의와 매우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소위 실용주의적 하이데거, 즉 도구, 그리고 작업과 생산의 하이데거지요.이것이 일상 삶의 현상학인데, 갖가지 역사적․철학적 이유로 인해 마르크스주의의 일부는 아니었어요.일상 삶의 현상은 마르크스주의의 문제틀 전체 그 어디에서도 개발된 적이 없는 텅 빈 영역입니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실용주의적 측면은 마르크스주의의 실천 개념을 위한 토대로서 매우 매력적인 것이 됩니다. 그와 같은 것이 다른 형태로 싸르트르에게도 존재했어요.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여기저기에 보이는 처음에는 행동적이며 나중에야 명상적이거나 인식론적이 되는 현존재(Dasein)에 대한 전체 분석은 마르크스주의의 틀에서도 매우 쓸모가 있어 보입니다.”(F. 제임슨)

오늘날 우리가 현실을 경험, 인식하고 드러내는 일들이 심리학적이거나 혹은 감정 혹은 정동이란 렌즈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은 것이 그리 새삼스런 일은 아닐 것이다. 감정적, 정동적 전환이라고 으스대며 자신들의 주장이 그간의 ‘이론’을 대단히 혁신하는 듯 강변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현실을 경험하는 지배적 방식을 꽁무니에서 졸졸 쫓아다니는 것에 불과한 짓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동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정색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를 빌려 대꾸하기로 하고, 일단 심리학적 개념이나 용어로 현실을 묘사하거나 밝히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심리적인 언어로 제시하고 병리화하며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에 사는 우리들이 겪어야 하는 저속한 관습 가운데 하나라는 것 역시 강조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마 이를 따로 상세히 소개하는 일 자체가 불필요하리만치 우리는 이런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단지 지난 수십 년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온 책들이나 유행했던 어휘들이나 언어적 표현들을 되짚어보기만 해도 사정은 뻔히 짐작된다. 불안, 우울, 과잉행동장애, 정동장애 같은 말들이 우리 주변에서 개인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적시하며 버티고 있게 된 꼴은 신자유주의라는 체제가 갖는 특징을 요약한다. 그것은 스스로 사회적 불행을 개별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을 서술하고 표현하는 언어를 개인을 위해 마련된 언어인 심리적 언어를 채택하도로 몰아부친다. ‘긍정의 심리학’이나 다중지성, 감성지능, 자기주도성, 자존감 같은 악취를 풍기는 심리적 개념은 과학인 듯 생색을 낸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학적이면 과학적이고 그것이 제시한 처방이 효험을 발휘하면 발휘할수록 이는 현실에 달라붙어 그것에 상응하고 타협하는 것이란 점을 입증해준다. 그리고 이 모두는 한 가지를 겨냥한다. 그것은 고립된 개인들에게 스스로 세상을 살피고 겪는 방식을 헤아리도록, 스스로를 더 현명하게 주조하도록 윽박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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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폭력의 세계 그리고 비판의 유령- 반지성주의적 지성을 거슬러 사유하기

Patti Smith – Gloria (1979)

사이코패스의 증오

오늘날 무엇을 겨냥한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는 폭력이 주변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인상이 점점 짙어지는 듯 싶다. 그리고 그 폭력을 향한 신경질적인 눈길은 잔인하고 터무니없는 광적인 인물들 쪽으로 향한다. 지금 가장 강렬한 폭력적 범죄자의 형상은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싸이코패스’라는 인물의 모습으로 간단히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 악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미친 자 혹은 싸이코패스. 그리고 지난 해 모두를 경악하게 한 강남역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직후 경찰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키는 이른바 행정입원 조치를 실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잇달아 정신질환자를 단속하거나 제약하는 입법조치를 예고했다. 명분인즉슨 여성들의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날부터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면서 곳곳에서 항의와 비판이 쏟아졌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이라는 우려에서부터 가뜩이나 불행한 처지에 놓인 정신질환자들을 보다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의견들은 분분했다. 그리하여 “정신질환자의 광기에서 비롯된 묻지 마 범죄”라는 도식은 흉포한 살인을 설명하기 위한 거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태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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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상한 유물론들: ‘기분의 사회학’을 읽는다 (1)

Men At Work – Down Under

“전래의 철학적 문제틀은 물론 그것의 문제들과 연결된 상태에서, 규정적으로 부정되어야 한다.객관적으로 총체성에 얽힌 세계는 의식을 해방시켜 주지 않는다.그런 세계는 의식이 떠나고 싶어 하는 자리에 부단히 의식을 고착시켜 놓는다.그러나 자신의 문제들의 역사적 형태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처음부터 상쾌하고 즐겁게 시작하는 사유야말로 그런 세계의 희생물이 될 것이다.”(아도르노, 부정변증법, 72)

원한사회? : 분위기(atmosphere)로서의 사회

두어해 전 대통령에 소속된 국민대통합위원회란 기관에서 연구용영을 발주하였다.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 프로젝트는 “한국형 사회 갈등 실태 진단 연구”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먼저 그 연구 과제를 수행한 곳은 서울대학교였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과 한국정치연구소는 2014년 10월 첫 번째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이 연구가 미진했거나 보완적 연구가 필요했는지, 아니면 명문대끼리 고루 기회를 나눠주려는 이유였는지 사정은 모르겠지만, 뒤이어 2차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연구를 맡은 곳은 고려대학교의 산학협력단이었다.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진단 2차 연구”란 이름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2015년 10월 완료되었고, 그 연구 결과의 내용은 일부 언론매체를 통해 대서특필되었다.

이 보고서의 결과를 열심히 보도하고 또 사설에서 다루기조차한 「매일경제」는 어느 기사에서 이렇게 보고서의 내용을 소개한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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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팔이 혹은 물화된 정동: 감정과 체험의 유물론을 위하여 (2)


10 CC – I’m not in love

정동의 유물론을 위하여

정신분석학의 출발을 알린 히스테리 연구에서 안나 O는 결정적인 인물이다. 프로이트의 프로이트의 환자는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히스테리 연구를 집필했던 브로이어는 그녀를 몇 년간 진료한 적이 있었다. J. 브로이어, S. 프로이트, 히스테리 연구, 김미리혜 옮김, 열린책들, 2003.
그리고 그는 브로이어의 환자였던 그녀의 치료 사례를 통해 정신분석학의 결정적인 이론적 요소들을 구상할 수 있었다. 다양한 히스테리 증상에 시달리던 그녀는 브로이어와 대화를 나누며 증상이 멎는 체험을 겪게 되고 훗날 대화 치료(talking cure)라로 알려지게 될 개념을 선물해 주었다. 발작적인 기침, 손발의 마비, 격심한 두통. 그에 더해 환각을 경험하고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등 그녀는 히스테리 증세로 오랜 동안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브로이어가 그녀를 찾아 대화를 나누면 그녀의 증상은 호전되었다. 그녀는 그런 경험이 마치 꽉 막힌 굴뚝이 청소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이를 ‘굴뚝 청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다. 하지현, 정신의학의 탄생: 광기를 합리로 바꾼 정신의학사의 결정적 순간, 해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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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팔이 혹은 물화된 정동: 감정과 체험의 유물론을 위하여 (1)

“사회주의 확립의 가장 큰 이점을 꼽으라면 말할 것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하는 고통스러운 필요성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다는 점일 것이다.”
(O. 와일드, “사회주의에서 인간의 영혼” 중에서)
”, 거짓의 쇠락, 은행나무, 2015, 223쪽.

정동적 전환?

언제부터인가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의 관심사는 재현이라는 물음으로부터 슬금슬금 벗어나기 시작했다. 재현 혹은 표상이라는 문제설정은 ‘언어학적 전환(linguistic turn)’이라고 칭해지기도 하는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기한 물음은 이제는 제법 상식이 되다시피 되었다. 그것의 핵심적인 전략은 객관적이고 보편적 진실이라는 것이 어떻게 재현의 체계에 의해 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구조주의적 언어학의 흔한 정의를 빌자면 어떤 기표의 개념적 의미로서의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며 우연적이다. 그것은 랑그(F. de. 소쉬르), 야생적 사고(L. 스트로스), 신화(R. 바르트), 에피스테메와 담론(M. 푸코), 상징계(J. 라캉) 등에 의해 구조화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적 실천이든 아니면 비언어적 실천이든 그것과 결부된 의미는 적극적으로 유예되어야 하며 그러한 표상의 체계를 생산한 권력, 제도, 사회관계를 드러내야 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비판 혹은 물신주의 비판과 공명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표상 비판은 지배적인 지식, 문화, 태도 등에 우리가 어떻게 예속되며 그를 통해 어떻게 주체성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규멍하는 유력한 이론적 정치적 접근이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하게 요약한 것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접근은 지난 수십 년간 인문사회과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접근으로 자리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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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물론과 문화연구 (1) – ‘시대구분’이라는 방법


AIR – LE SOLEIL EST PRES DE MOI (1999)

유물론의 약점은 지배 상황의 반성되지 않은 약점이다.
– Th.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홍승용 옮김, 한길사, 1999, 288쪽.

문화연구-마르크스주의 혹은 문화연구-역사유물론

어지간한 문화연구 입문서치고 마르크스주의자의 이론적 성과를 문화연구의 주요한 이론적, 정치적 원천으로 기념하지 않는 글이 없다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 번역된 주요한 문화연구 입문서들 역시 예외 없이 이러한 접근을 취한다. 이를테면 앤드류 밀너, 존 스토리와 존 피스크의 대표적 입문서들이 이에 해당된다. 반면 그래엄 터너 같은 경우엔 영국과 호주의 문화연구의 역사를 회고하며 문화연구의 이론적 궤적이 이데올로기 개념의 수정 및 재가공 그리고 그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과정으로 서술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앤드류 밀너, ‘우리시대 문화이론’, 이승렬 옮김, 한뜻, 1996.; 존 스토리 편, ‘문화 연구란 무엇인가’, 백선기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0; 존 스토리, ‘대중문화와 문화이론’, 박만준 옮김, 경문사, 2012, 스튜어트 홀, ‘문화, 이데올로기, 정체성’, 임영호 옮김, 컬처룩, 2015. 그래엄 터너, ‘문화 연구 입문’, 김연종 옮김, 한나래, 1995.
그람시, 알튀세르, 르페브르, 윌리엄스 등은 그렇다 치고 본격적인 문화연구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나 딕 헵디지(Dick Hebdige) 역시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이력과 떼어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문화연구의 기원적인 출발점을 마르크스주의에 귀속시키는 것은, 제법 그럴 듯한 가설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물론 문화연구에 관한 계보학적 분석을 실행한다면 짐짓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문화연구에서 항용 거론되고 참조되는 방법과 범주, 인식론적 접근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유산과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계급(계급투쟁),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재생산, 상부구조, 물신주의, 상품화 같은 개념을 마주할 때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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