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적이라기엔 한참 모자란 음모 다큐멘터리

사회진보연대라는 이름의 진보적 사회운동 단체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오늘보다>가 있다. 나는 그 잡지의 정기구독자이다. 배달된 지난 5월호를 보다 적잖이 놀랐다. 그 달치에 이례적이라 할 “여는 글”이 실렸던 탓이다. 편집자 노트쯤에 해당될 글에서 편집실장은 마침 개봉해 관심을 모은 어느 한 다큐멘터리를 상대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한 불편한 심사를 털어놓으며 그 작품이 의지하고 있는 음모론에 대한 이의를 적는다. 글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고의침몰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또 있다. 아직도 이 사건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침몰과 구조 실패, 이후의 국가 탄압까지. 2014년 4월 16일 하루가 아니라 전후(前後) 몇 년에 걸친 이 참사의 과정을 우리는 무엇이라 설명할 것인가? 침몰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그 의도를 감추기 위해 진상규명 요구를 탄압했다는 답은 너무나 쉬운 답이다.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면 그 배경에는 답을 쉽게 찾으려는 우리의 게으름과 무능도 있다. 이를 잊어서도 안 된다.” 박상은, 세월호에 대한 어떤 쉬운 답 <그날, 바다>, 오늘보다, 2018년 5월호, 1쪽.
어느 다큐멘터리 작품이 음모론적 다큐멘터리로 분류된다. 이는 흥미로운 사태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다큐멘터리가 처한 형세를 생각해보자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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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8.

Sufjan Stevens – Visions of Gideon

계속된 몸살로 옴짝달싹 못한 채 누워있다, 바람이라도 쐴 겸 영화를 보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멜로라면 가장 거리가 멀 듯 뵈는 제자가 강추한 멜로란 것도 이 영화를 볼 의지를 북돋웠다. 오프닝 크레딧에 각본 제임스 아이보리를 확인했을 때, 나는 얼추 무엇을 볼지 예상할 듯한 확신이 들었다.(확인해보니 그는 이 영화의 각본으로 오스카 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보리 형제의 <모리스 Maurice>를 이미 보았던 이라면 이 영화에서 그것의 흔적을 뻑뻑하게 느꼈을 것이다. 어쨌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의 윤리에 천착하는 근년의 멜로 영화 가운데 제법 좋은 작품으로 기억될 장점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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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의 계곡을 넘을 수 있을까

 

위로공단 (Factory Complex, 2015) 

1.
임흥순의 <위로공단>은 한국 현대사의 눈물겨운 흔적, 그 가운데서도 여공애사(女工哀史)를 추적한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애틋하고 치열한 것은 아마 무엇보다 감독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역사적 곡절을 통해 쓰다듬고 위안하는 몸짓 때문일 것이다. 여성 의류 노동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은 또한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공경심 가득한 기억으로 확장된다. 또한 그것은 한국의 70년대의 구로공단과 같은 의류 산업 공단을 대신하는 베트남과 다른 아시아지역의 의류 노동자들의 세계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가해진 착취와 폭력을 응시하려는 의지가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빼어난 기억의 유사(類似)-다큐멘터리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다큐멘터리가 처한 위기의 어떤 면모와 함께 하기도 하면서 또 그를 추월할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인 계기를 확보하고자 애쓴다. 무엇보다 그것은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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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경험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자오량의 <고소>에 관하여


赵亮-上訪 Petition

踏遍靑山, 問計人民
청산을 다니며 인민에게 계책을 묻는다.

계시와도 같은 영화들

얼마 전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조망하는 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199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사회참여적 독립 다큐멘터리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이 책의 저자인 댄 에드워즈(Dan Edwards)는, 서두에서 자신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예기치 않은 계기를 술회한다. 그는 홍콩국제영화제의 프레스룸에서 작은 TV 화면으로 자오량(赵亮, Zhao Liang)의 다큐멘터리 작품 <고소(上访 Petition)>을 보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뇌리에서 떨치지 못했을 한 고통스러운 장면을, 그 역시 마주했던 순간을 전한다. 그가 보았던 장면은 어느 노구의 고소인들이 자신을 쫓는 이들을 피해 달아나다 기차에 치여 온 몸이 산산조각 난 후의 모습이다. 그의 사체를 수습하기 위해 주변의 고소인들은 철로를 누비고, 철로에 끈적하게 붙어있는 그의 살점, 머리 조각을 찾아내다 결국 바닥에 뒹굴고 있던 손가락 하나를 주워든다. 몇 년간 중국 정부가 소유했던 월간 잡지에서 일하던 댄 에드워즈는 자신이 매일 북경의 거리를 오가며 감지했던 불편하고 음산한 느낌의 정체를 설명해주는 한 영화와 마주쳤다. 개혁과 개방 이후 무서운 기세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그것도 수도인 북경의 거리를 거닐 때마다 곧잘 맞닥뜨려야 했던 남루한 행색의 겉도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소>는 번영하고 있는 표면의 현상 뒤앙에 놓인 중국 동시대적 상황의 숨겨진 구석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의 중국 다큐멘터리 세계에 대한 열광과 몰두는 그 첫 상영을 통해 굳어졌다.” Dan Edwards, Independent Chinese Documentary: Alternative Visions, Alternative Publics,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5, p.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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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존재론적 전환이란 게 가능할까

RAT FILM (Theo Anthony dir.)

지난 십여 년간 동시대 철학을 급습하여 성가를 높이고 있는 존재론적 전환(ontological turn)은, 다큐멘터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물음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 혹은 비평이나 이론에 눈독을 들인 이들이나 즐겁게 곱씹을 주변적인 질문일까. 그것을 너무 뜬금없는 물음이라 치부하기엔 이미 주요 미술 전시를 석권한 작업들, 무엇보다 영상 작품들은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말해준다. 몇 해 전부터 영상 전시를 찾을 때면, 혹시 알아보지 못할 관람자들에게 충고라도 하듯이 자신이 존재론적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음을 밝히는 작품과 마주칠 일이 잦아졌다. 이를테면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마주하게 된 영상작품 가운데 하나는 작품설명에서 작가 자신이 객체지향적 존재론(OOO: Object-Orietned Ontology)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버젓이 역설한다. 마리에 쾰백 이워슨(Marie Kølbæk Iversen)의 거울 치료(Mirror Therapy)란 작품이 바로 그런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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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다도해를 떠다니는 여객선의 승객들 – 퀴어 영화에 대한 어떤 생각


James Blake – Radio Silence

얼마 전 세상에 나온 소설가 임성순의 신작 자기 개발의 정석은 제법 허를 찌른다. 이 소설은 우연히 비뇨기과엘 들러 전립선치료를 받던 중 전립선 오르가즘의 신세계에 입문한 중년 남자 주인공의 삶을 비춘다. 주인공은 나이 마흔 여섯으로, “그곳이 대한민국 평균보다 조금 작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조금 나은, 중산층의 대체로 무난했던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만성전립선염을 치료받으러 간 그는 인생 최고의 굴욕을 겪는다. 버젓이 엉덩이를 깐 채 항문을 남의 손에 내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가 전립선마사지를 위해 처방받은 아네로스라는 신기한 도구에 눈을 뜬다. 그의 말을 빌자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기러기아빠인 그는 이제 변태와 게이라는 욕설이 주렁주렁 달린 게시판을 눈으로 밟으면서 “드라이 오르가즘”을 즐기는 신세계의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멀쩡한 아니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순종 이성애자 중년 남성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 남자라는 페르소나를 압축하는 ‘아재’ 혹은 ‘개저씨’의 화신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그는 뜻밖의 인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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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 어느 어둑한 골목 끝 환한 불빛, 퀴어 극장


My own private idaho trailer

벌써 20여년 가까이 되어버린 오랜 시절의 일이었다. 지금은 문을 닫고 사라지고 만 시네코드선재가 자리하고 있던 곳,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인적 드문 극장이 있었다. 프로시니엄 무대 뒤편으로 흰 색의 스크린이 놓여있고 그 맞은편엔 아마 붉은 색이었으리라 짐작하는 푹신한 팔걸이의자들이 느긋한 부채꼴로 펼쳐져 있었다. 그 때 인사동을 지나 종로경찰서 앞 건널목을 건너 다시 풍문여고를 거쳐 극장에 이르는 길은 소란스러운 지금과 달리 제법 한적했다. 그러나 한 번도 스산했던 적은 없다. 외려 그곳은 알 수 없는 어느 곳에서 몰려든 이들로 갑자기 부산한 세계로 둔갑하기도 했다. 1998년 10월 16일, 1년 전 무산되었던 서울퀴어영화제가 아트선재센터에서 마침내 개최되었던 날도 그랬을 것이다. 그 날 어떤 이들이 영화제를 찾아주었는지 낱낱이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화제를 찾는 일 자체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일일 밖에 없던 시절, 영화제를 찾은 이들은 불안하고 근심어린 낯빛으로 혹은 적잖이 상기된 표정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극장을 서성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 가운데 누군가는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를 난생 처음 조우하기도 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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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8.

Brody-Son-of-Saul-1200

<사울의 아들>은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안티고네적 윤리의 삽화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이 영화의 모든 성패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라는 집단적이면서 정치적인 악을 고발하기보다 끝까지 자신의 아들을 온전히 유대식으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사울의 집요한 고집을 과연 옹호해도 좋을 것인가. 감독은 이를 말하는 데 영화의 모든 것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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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The Field – A Paw in My Face

뒤척이며 고백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 쾌적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모래>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모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성장한 여성 감독의 자술서이다. 감독은 반목하거나 아니면 무심했던 아버지의 세계를 헤쳐 보는 딸이다.
그녀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고, 꾀죄죄하게 영락한 아파트에서 얼마라도 더 건지겠다고 버티는 부모님을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그녀는 진보적인 당파를 지지하고 아버지는 열성 여당 지지자이다. 그러나 그 여당은 정치적 신의를 바치는 정당이라서 지지하는 당이 아니다. 악착같이 살아 마련한 유일한 삶의 자산인 아파트의 값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인 탓에 여당은 아버지의 당파이다. 물론 지배 당파는 항상 그렇게 지지를 동원하지만 말이다. 반면 맏딸인 감독은 배우겠다는 것이라면 두 말 없이 밀어줘 대학원까지 보내놓았더니 취미 생활로나 삼았을 영화를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는 나쁜 딸이다.
그렇게 살았던 한 가족이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가족이란 인연으로 흩어지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가족 말이다. 그리고 그 가족은 대치동을 떠난다.
누구는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혀를 차며 개탄하고, 누구는 토건 국가라며 진저리를 치는 이 나라에서, 치부의 가장 안전한 수단은 뭐니 뭐니 해도 강남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서글프게도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플레이션과 상관없이 안전하게 제 값을 지켜주기에 은행에 맡겨두는 돈보다 안전하고 사업을 하는 것보다 믿음직스럽다. 펀드니 주식이니 설쳐도 그것은 언제나 생각하기도 싫은 리스크란 이름의 유령을 동반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강남의 아파트는 아직은 리스크 제로이다. 강남 아파트는 사회적인 쓸모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가치를 유지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완벽한 물신이다.
<모래>의 주인공일 아버지는 퇴직 후 옷 공장을 운영하고 어머니는 남대문에서 그 옷을 판다. 아마 사업 수완이 있거나 했다면 덤볐을 리 만무한 사양 산업에, 부모는 뛰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것은 매 달 꼬박 갚아야 하는 빚만 안겨준다. 따라서 다시 아파트이다. 어쩌다 목돈이 생겨 욕심을 부려 빚을 좀 더 얹어 장만한 유일한 미래의 보증일 그 아파트 말이다. 해결책은 안전한 생존의 모든 약속인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어렵다.
어쩌다 목돈을 쥐게 되어 강남으로 건너 간 이들이 모여 사는 곳, 아마 그런 곳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일 것이다. 중동에서 공사장에서 일을 하였고, 다시 서울에서 답십리에서 아파트를 짓고, 집 장사를 한다는 게 무슨 짓인지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을 위해 부모님은 강남의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국 퇴장한다.
<모래>는 그렇게 은마아파트에 살게 된 그러나 그곳을 떠나게 되어버린 한 가족에 관한 초상을 그린다. 아파트 한 채가 좀 더 나은 형편으로 상승할 수 있는 모든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기만일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고 팔 수 있는 자산에 불과한 아파트를 소유한 자들과 모든 부는 아파트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은 채 아파트 한 채에 인생을 걸게 된 이들 사이에는 닮은 점이라곤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강남에 입성하였지만 결국 실패를 한 채, 아니 그 물신의 유혹에서 마침내 풀려난 채 강북으로 떠나게 된 가족의 초상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말이다.
그런데 <모래>를 자전(自傳) 다큐멘터리로 읽는 것은 아무래도 빗나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모래>는 아무런 자술도 하지 않는다. 아니 자술을 피하려 애쓴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외려 자술하는 것은 은마아파트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길지 않은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시정이 넘치는 부분을 찾는다면, 혹은 감독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느낌을 온전히 드러내는 주관적인 장면을 찾는다면, 내 생각엔 그것은 쓸쓸하게 부식하고 있는 아파트의 모습을 담은 롱 테이크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 얼굴 없는 장면들은 다큐멘터리에서이든 혹은 아니면 극영화에서이든 낯선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는 클리셰(cliché)라고 불러도 좋을 장면들일 것이다. 그런 장면들은 전개되는 이야기를 쪼개고 나눠주는 삽입구일 수도 있고 영화에서 지속되는 정조를 상기하기 위해 수사적인 반복 어구처럼 사용될 수도 있다.
<모래>에서도 그런 관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창을 통해서 바라본 아파트 바깥의 풍경이거나 달리는 차창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 혹은 미국 뉴욕의 마천루 혹은 차창에서 바라본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투여된 분주하고 화려한 욕망과는 아무런 상관을 찾을 수 없는 낡을 대로 낡은 아파트의 풍경, 이런 것이 이 영화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래>라는 영화 속에 어쩌면 과하다 싶으리만치 자주 등장하는 이 삽입어구에 대하여 마땅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의 흐름을 중재하기 위해 등장하는 어떤 서사적인 매듭일까. 나는 그것이 마치 문장 속의 말줄임표처럼 카메라가 어떤 생략을 표시하는 몸짓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객관적인 이미지를 찾지 못한 채 거기에 시야 속으로 들어온 화면일 것이다.
감독은 차마 말을 다 못하거나 아니면 말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화면은 감독에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래>가 아름답다. 그것은 은마아파트에 살았다 떠나게 된 어느 가족의 사회사를 그려내는데 급급하지 않으려 하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화해하고자 다가서는 윤리적인 대상이 가족일 때, 과연 누가 그것에 완벽한 말을 가지고 있을까. 감독은 범람하는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와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너스레를 떠는 TV 속의 감상적 휴먼 다큐들과 거리를 둔다. 거기에서 우리가 듣고 보는 것은 황폐하고 불임일 뿐인 수다일 뿐이다.
그러나 <모래>는 ‘차마’ 혹은 ‘미처’ 같은 수사적인 말들을 화면으로 옮긴다. 어떤 이야기에서 진실이란 이런 세부의 수사법에 있기 마련이다.

쾌락의 횡포를 넘어

Wu Meng Chen
쾌락의 횡포를 넘어 : 오종의 초기 영화를 읽는 한 가지 방식
<사랑의 추억>, 그 이전과 이후
오종의 영화 이력은 매우 복잡하고 더불어 균질적이지도 않다. 언제나 그의 뒤를 쫓아다닌 도발꾼, 악동, 패덕자 등의 꼬리표는 적어도 <사랑의 추억> 이후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키치-캠프적인 감수성을 화려하게 내보인 <8명의 여인들>을 뺀다면, <사랑의 추억> 이후 <타임 투 리브>에 이르기까지 그가 발표한 신작들은 전작들과 매우 먼 거리에 놓여 있는 듯이 보인다. 부르주아적인 성도덕을 무책임하게 위반하고 조롱했던 인습파괴자로 오인 받았던 그의 행적은, 이제 그런 이유로 그를 숭배했던 팬들을 당황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는 도발과 논쟁을 위한 감독으로부터 은퇴하여 마치 관조적인 현자(賢者)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 “뉴 퀴어 시네마”의 그 어떤 과격한 작품 못잖은 도발을 일삼던 감독이, 그 스스로의 표현을 빌자면 “백퍼센트 헤테로섹슈얼” 영화로 갔으며, 스타일 역시 매우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사랑의 추억>과 이후의 작품들은 마치 누벨 바그 이후 프랑스 영화의 주요한 흐름들에 근접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를 조롱하거나 거부했던 평론가들마저 일제히 그를 환영하며 그를 향한 반감을 뉘우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프랑스 영화에 관한 많은 텍스트들은 그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오종은 90년대 이후의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꼽히게 될 것이다. 어쨌든 오종이 몇 년 사이에 건너뛴 거리는 컬트 무비의 악당인 존 워터스의 영화와 유럽의 가장 탁월한 작가인 샹탈 애커만의 영화 사이에 놓인 거리에 가까울 정도이다. 존 워터스의 세계는 온갖 도착자들이 등장하는 세계이고, 그 세계는 그 인물들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직접적으로 의인화되는 선명한 패덕의 세계일 것이다. 반면 샹탈 애커만의 세계는 인물에게 부여된 어떤 정체성(주부, 여학생 따위)으로부터도 물러나, 탈인격화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민감하고 미묘한 감정의 세계이다. 오종은 그와 흡사한 두 세계를 건너뛰며 자신의 영화적 이력을 전개하였다. 그 거리는 너무나 멀고 그 거리를 종주한 것은 매우 큰 단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모인 오종의 작품들은 그의 영화의 한 단계를 집약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아버지의 영화
그렇다면 그토록 서로 다른 세계로 나아가며 오종은 무엇을 하였던 것일까. 조금 도식적인 논리를 들이밀자면, 어쩌면 오종의 지금까지의 행적은, 마치 그의 초기 단편 중의 하나인 <작은 죽음>에서 언급한 어느 사진작가의 초상을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아버지의 눈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발버둥 치던, 그러나 다시 그 아버지를 자신의 눈길 아래에 놓으면서 화해하는, 어느 사진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것이 완곡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있다. 그가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듯 자신이 영화감독이 되도록 하였던 “아버지의 영화”를 향한 반목과 이 단편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게 대응한다. 오종은 인터뷰 자리에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홈 무비용 소형 카메라로 가족들을 찍었고, 자신은 언제나 그 영화가 볼품없어 불만이었다고 곧잘 말하곤 하였다. 그리고 급기야 자신이 직접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 후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감히 말하기 어렵던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야릇한 쾌감과 권력을 준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아버지를 향해 다시 카메라를 돌리고, 아버지의 영화를 향해 조롱을 퍼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을 때, 그것은 카메라의 눈길로 자신을 지배하던 아버지의 권력에 도전한 것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갓난 시절 찍힌 자신의 사진을 보며 그를 흉물스럽다고 모욕하던 아버지 때문에 정신적인 외상(外傷)을 얻은 아들이 병상의 아버지를 찍을 때, 그가 얻는 것은 어떤 반전된 위치, 자신의 자리에서 상상하던 아버지의 권력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커다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그가 아버지의 자리에 위치하는 순간 그는 아버지와 동일시 하기는 커녕 이전의 자리, 즉 아버지에 반목하던 위치야말로 아버지와 동일시하던 자리임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시선에 자신을 놓았을 때 그는 아버지와 동일한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 자신을 통제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눈길을 그가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것이 자신이 상상했던 아버지와 너무나 다른 것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무해하고 심지어 유약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일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은유는 오종의 초기 영화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식 뉴 퀴어시네마?
그렇다면 우리는 오종이 반목했던 아버지의 영화가 무엇인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른바 누벨 바그가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그 이후 필립 가렐이나 샹탈 애커만 등이 등장한 70년대 세대, 그리고 80년대 이후 프랑스 영화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모리스 피알라와 그의 후예들의 영화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90년대 이후 프랑스 영화의 세계는 어느 영화평론가의 적절한 표현처럼 “여러 세대의 이중인화된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벨 바그 감독들은 여전히 건재하며 가장 중요한 영화적 혁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와 영향 아래에서 성장한 프랑스의 영화 제도(특히 비평과 교육)와 산업이 배출한 젊은 감독들이 역시 그들과 동거하고 있다. 이런 세대적 동거는 물론 그들에게 “훌륭한 프랑스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에 대한 규범이 연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작가(auteur)”로 알려진 감독의 정체성일 수도 있고, 그것이 영향을 주는 제작 방식과 미적인 규범일 수도 있다. 비록 제한된 채널을 통해 언제나 그렇듯이 소규모의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지만 프랑스 영화는 사회주의 정권의 지지를 받으며 일종의 인공호흡장치에 매달린 채 유럽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산업적 기반을 재생산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누벨 바그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작가적인 영화의 생명선이었다. 그 내부에서 온전히 성장하였으며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오종에게, 그에 거스르고자 하는 갑갑증과 반감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오종의 영화를 프랑스 판 뉴 퀴어시네마의 흐름 속에 놓고 분석할 수도 있다. 멀리 잡아 시릴 꼴라르의 <사베지 나이트 Les Nuits Fauves>(1992)에서부터 근년의 브누와 작꼬의 <육체의 학교 L'Ecole de la chair>(1998)나 까뜨리는 코르시니의 <리허설La Répétition>(2001)에 이르는 일련의 영화들은 프랑스의 독특한 레즈비언, 게이 영화의 흐름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 가운데 빠트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감독은 단연 앙드레 떼시네일 것이다.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인 떼시네는 후기의 그의 대표작인 <야생 갈대 Les Roseaux sauvages>(1994)와 <도둑들 Les Voleurs>(1996) 등 작품을 통해 프랑스 레즈비언, 게이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처럼 알려졌다. 그렇지만 오종을 이러한 자리에 놓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일이다.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오종이 자신의 영화를 위한 범주가 있다면 차라리 “양성애(bisexual) 영화”일 것이라며, 자신이 샌프란시스코 게이, 레즈비언 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주최 측으로부터 그런 말을 함구해달라는 부탁을 들었는데 뉴욕에서는 그런 말을 해도 되냐고 농담을 한 걸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이는 프랑스의 레즈비언, 게이 영화들이 이미 기성의 동성애 정체성을 서술하는 영화에 전연 관심이 없으며, 외려 이성애를 벗어난 성애적 관심, 성정체성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따라서 영미식 “정체성 영화” 평론의 관점을 투사하여 그를 게이 영화의 계보 속에 끼워넣는 것은 그다지 온당하지 않다.(알다시피 프랑스에서는 게이란 정체성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둘러싸고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대표적인 초기 단편인 <섬머 드레스>에서부터 <타임 투 리브>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게이 인물들은 모두 이성인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심지어 그런 관계로부터 자신의 성욕을 회복하고 무기력했던 관계를 되살려 내거나(섬머 드레스) 아니면 성행위를 통해 자신의 아이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수락한다(타임 투 리브). 파스빈더의 희곡에 바탕한 <워터 드롭스 온 더 버닝 락스>에서의 게이 커플 역시 파스빈더 영화의 게이들이 그렇듯이 게이 정체성을 대표하는 전형이거나 그것의 인격적 표현은 아니다.
“프랑스 영화”의 감독
한편 그렇다고 해서 오종의 영화를 가스파 노에(<돌이킬 수 없는>)나 얀 쿠넹(<도베르만>)같은 젊은 감독들과 나란히 놓으며 섹스와 폭력, 그리고 인습파괴의 상투적인 도식 안에 묶어버리는 것 역시 잘못이다. 어느 평론가의 가혹한 비평처럼 “포스트모던한 허섭쓰레기”와 “작가주의”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오종은, 자신의 재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이제 분명한 프랑스의 작가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종의 영화적 이력을 그의 스타일이나 주제의 변화만으로 축소시켜 바라보는 것은 하는 단견일 것이다. 그가 프랑스 영화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는 무엇보다 프랑스의 영화감독이다. 그의 출신 국적이나 그가 활동하는 곳이 프랑스여서가 아니라 그가 프랑스의 국가 영화(national cinema)의 체제와 전적으로 동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프랑스 영화 산업이 스스로 버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측면에서 보자면 오종보다 더 그것과 변죽이 잘 맞는 감독도 없을 것이다. 오종은, 행여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국가 영화 장학생이라 불러야 옳다. 그는 페미스(FEMIS)로 알려진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였고, 자국의 “국민 영화(national cinema)”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통해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그의 많은 영화를 제작한 “피델리티”는 프랑스의 감독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카날 방송국이 설립한 제작사이다. 많은 감독들이 관객 수입의 일부를 적립하여 제공하는 예산지원을 받고 그 대신 티비 판권을 방송사에 제공하고 근근이 자신들의 영화를 찍는다면, 장르 영화의 관습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일정한 흥행의 성공을 기대하면서 제작 지원을 받는 소수의 감독 가운데 하나로 발탁된 셈이다. 오종은 적어도 <사랑의 추억> 이후 “의욕과잉의 떠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비타협적인 작가 감독”으로서 승인을 받았고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자산”이자 희귀한 “돈이 되는 작가 감독”으로서의 지위를 얻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영화와 화해한 셈이다.
쾌락의 횡포
오종은 이제 자신이 증오하고 반항했던 아버지의 영화가 결국 자신의 투사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성 제도와의 타협이나 권위와의 화해로 풀이하는 것은 억지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종은 B급 영화와 다양한 악취미의 영화들을 참조하고 인용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 영화들을 젊은 날의 반항으로부터 물러나 성숙한 어른으로 변신하기 위하여 지불했던 철부지같은 그러나 불가피했던 대가로 치부하며 어떤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나 인색한 짓이다. 외려 거꾸로 우리는 그의 반항적 몸짓 속에서 오직 반항만을 보았던 것을 뉘우치며, 그가 송신하려 했던 메시지를 이제야 비로소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오종의 영화는 거꾸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즉 역순으로 연대기를 쫓아가며 그의 영화를 봄으로써, 우리는 난삽하기까지 했던 다채로운 그의 영화들이 상호 반향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종 영화의 초기작들의 가장 중요한 경향이라 할 것이 바로 쾌락의 횡포와의 투쟁이라 생각할 때이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의 횡포란 말 그대로 쾌락을 억압하는 권위의 반대말이다. 2차 대전 이후, 적어도 70년대의 “성혁명” 이후 성적인 쾌락이 지닌 위치는 현저하게 바뀌었다. 성적인 쾌락은 더 이상 질서를 위하여 억압되어야 했던 제물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의 자유를 증빙하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추구해야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리하여 1980년대 이후 우리는 희한하게도 쾌락의 의무로부터 달아나려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섹스를 하지 않을 자유”를 외치는 기이한 장면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추세는 곧 오종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반항적인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시적인 것은 단연 <시트콤>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기괴한 장면은 식탁에서 불쑥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보이는 태도이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충격에 휩싸이고 아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공을 들여 동성애 정체성이 정당한 것임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널리 행해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중언부언 늘어놓는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상투적인 인상, 즉 모든 것을 금지하고 쾌락을 독식했던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적인 자유를 되찾았다는 생각은 정반대로 뒤집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정반대로 아버지의 집요한 요구, 즉 쾌락을 위하여 살라는 요구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쾌락의 횡포에서 놓여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끈덕진 쾌락의 요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반신 불수가 되어버린 딸, 과잉성욕자라는 혐의를 인정하는 듯이 음험한 외모의 변태성욕자들을 초대하여 모임을 갖지만 그 감춰진 방에서 고작 평범하고 건전한 게임을 즐기는 아들 등,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성욕을 추구하는 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종결부에서 우리가 보는 아버지의 장례의 장면은 쾌락을 추구해야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난 평온한 커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모두 짝을 이룬 채 쾌락의 의무에서 벗어난 상대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아버지의 살해
이런 점은 <크리미널 러버>에도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대한 우리의 피상적인 느낌은 자신의 성적인 유희와 환상을 위해 자신의 남자친구의 욕망을 조종하는 사악한 소녀와 그녀의 좌절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 소년의 성적인 불능이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섹스를 할 때마다 번번이 발기에 실패한다. 하지만 자신의 여자 친구의 말을 믿고 그녀를 강간했다고 믿은 동급생을 살해한 후에 그는 어느 사냥꾼으로부터 겁탈을 당한 후에 자신의 성욕을 회복한다.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설정은 사이코스릴러의 장르적 관습과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를 뒤섞은 난삽한 영화적 구성과 엉켜 더욱 혼란을 자아낸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마침내 자신의 성적인 능력을 회복하고 여자친구인 앨리스와 풍족한 섹스를 나누고 그 주변으로 작은 동물들이 모여들고 배회하는 키치적인 장면은 더욱 황당하다. 그렇지만 이제 그의 영화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그것이 매우 인정할만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기 왕성하고 욕정적인 동급생 남자 아이를 대신해 성적으로 무능한 애인을 택한 앨리스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는 왜 그를 살해하자고 음모를 꾸몄을까. 또한 왜 그녀의 애인인 뤽은 왜 사냥꾼의 겁탈을 통해 성욕을 회복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는 왜 자신을 능욕한 그 사냥꾼 사내를 사랑하는 시늉을 보이는 것일까. 물론 그것을 일리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들이 모두 성욕의 만족으로부터 끈질기게 도피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욕의 추구를 강요하는 색정적인 동급생 남자아이를 죽이는 것, 상대의 성적 만족이란 부담으로부터 해방된 섹스로부터 비로소 자신의 성욕을 되찾는 것이 이들 인물의 특성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다시 사랑을 위하여
그렇다면 어쩌면 <바다를 보라>에서 예고되었으며 <사랑의 추억>에서 본격적으로 완성되는 영화들 역시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앞의 두 영화들이 모두 친밀한 관계 속에 깃들어 있는 착취와 폭력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물론 휴양지 해변에서 홀연 종적을 감춘 남편에게 짓눌린 채 그의 부재를 고통스럽게 애도하는 <사랑의 추억>의 마리 역시 “관계”의 문제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섬뜩하고 잔인한 떠돌이 여자 여행자의 출현이 불러일으키는 질식할 듯한 불안과 그녀의 잔인한 앙갚음이 도식적이라면 <사랑의 추억>은 매우 섬세하고 풍부하다. 여자의 고독과 제어할 수 없는 성적인 욕망,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며 각 인물의 고통스런 변화를 보여주는 배경(주로 자연)과의 관계는 두 영화에서 모두 공통적이지만, 후자에서 오종은 간단한 이야기의 틀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곧 자신의 뮤즈가 될 샬롯 탬플링의 연기를 완벽하게 이끌어내고 그녀는 어떤 인물이 아니라 불안과 광기, 욕정과 무력감 사이의 감정을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잇고 그 감정들 사이의 사건을 스스로 상상하고 작성하며 그의 영화에 참여하도록 요구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오종의 영화 속에 두 가지의 경향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다를 보라> 이후 잠복하다 <사랑의 추억>을 통해 회귀한 하나의 경향과 <시트콤>에서부터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으로 이어지는 “쾌락의 횡포”를 거부하는 또 하나의 경향이다. 물론 이 두 경향은 거리가 멀지 않다. 두 가지 모두 어떤 점에서 서로를 반향한다. 물론 여기에서 부정적인 반향의 지점은 쾌락의 횡포와 그를 거부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는 쾌락의 의무를 비난하지만 그 방식은 그것을 예찬하던 영화의 관습을 빌어 불장난을 벌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중요한 초기작들은 그 관습에 익숙한 관객들의 당연한 수용방식, 즉 성적인 모험과 도발을 통해 인습과 맞서 싸우는 목소리라는 인상을 되풀이하여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의 분석이 맞다면, 오종의 초기작들은 정반대의 목표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형식과의 작위적인 유희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전복의 효과도 일으키지 않는 충격 효과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실패의 이면에 바로 쾌락의 횡포를 향한 그의 거부가 있었다고 읽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는 이제 자신의 영화 속에 잠재하던 가장 중요한 능력을 회복한다. 그것은 바로 쾌락의 횡포 바로 옆에 놓여있는 자리, 즉 쾌락의 짓누르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관계”의 영역으로, “둘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물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물음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물음 가운데 하나이다. 쾌락의 횡포 아래에서 서로에게 오르가즘을 제공할 의무를 지닌 상대로 취급받았던 사랑하는 이들의 관계는 사랑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위기에 처한 사랑은 금욕적이고 낭만적인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손쉬운 유혹에 빠지지 않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관하여 물음을 던질 수 있고, 이제 영화들은 그런 물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물음을 던지는 영화의 가장 앞자리에 오종의 영화들이 서 있다. 다시, 사랑을 위하여, 그러나 쾌락의 횡포에 속박되지 않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관하여, 오종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이르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영화들을 찍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소모적인 몸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유혹에 빠졌던 방식을 취하지 않고 또한 그 물음에 이를 길 역시 없기 때문이다. 즉 그는 도착적인 아버지이긴 하지만 그 아버지를 거부하는 몸짓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던 것이다. 따라서 오종의 초기작들은 상처로 가득 찼지만 또한 우리 시대의 영화가 어떤 물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 회피할 수 없는 길을 걸어온 영화들로 볼 충분한 근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