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경험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자오량의 <고소>에 관하여


赵亮-上訪 Petition

踏遍靑山, 問計人民
청산을 다니며 인민에게 계책을 묻는다.

계시와도 같은 영화들

얼마 전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조망하는 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199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사회참여적 독립 다큐멘터리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이 책의 저자인 댄 에드워즈(Dan Edwards)는, 서두에서 자신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예기치 않은 계기를 술회한다. 그는 홍콩국제영화제의 프레스룸에서 작은 TV 화면으로 자오량(赵亮, Zhao Liang)의 다큐멘터리 작품 <고소(上访 Petition)>을 보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뇌리에서 떨치지 못했을 한 고통스러운 장면을, 그 역시 마주했던 순간을 전한다. 그가 보았던 장면은 어느 노구의 고소인들이 자신을 쫓는 이들을 피해 달아나다 기차에 치여 온 몸이 산산조각 난 후의 모습이다. 그의 사체를 수습하기 위해 주변의 고소인들은 철로를 누비고, 철로에 끈적하게 붙어있는 그의 살점, 머리 조각을 찾아내다 결국 바닥에 뒹굴고 있던 손가락 하나를 주워든다. 몇 년간 중국 정부가 소유했던 월간 잡지에서 일하던 댄 에드워즈는 자신이 매일 북경의 거리를 오가며 감지했던 불편하고 음산한 느낌의 정체를 설명해주는 한 영화와 마주쳤다. 개혁과 개방 이후 무서운 기세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 그것도 수도인 북경의 거리를 거닐 때마다 곧잘 맞닥뜨려야 했던 남루한 행색의 겉도는 이들의 모습에서 그는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소>는 번영하고 있는 표면의 현상 뒤앙에 놓인 중국 동시대적 상황의 숨겨진 구석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의 중국 다큐멘터리 세계에 대한 열광과 몰두는 그 첫 상영을 통해 굳어졌다.” Dan Edwards, Independent Chinese Documentary: Alternative Visions, Alternative Publics,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5, p.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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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존재론적 전환이란 게 가능할까

RAT FILM (Theo Anthony dir.)

지난 십여 년간 동시대 철학을 급습하여 성가를 높이고 있는 존재론적 전환(ontological turn)은, 다큐멘터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런 물음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 혹은 비평이나 이론에 눈독을 들인 이들이나 즐겁게 곱씹을 주변적인 질문일까. 그것을 너무 뜬금없는 물음이라 치부하기엔 이미 주요 미술 전시를 석권한 작업들, 무엇보다 영상 작품들은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말해준다. 몇 해 전부터 영상 전시를 찾을 때면, 혹시 알아보지 못할 관람자들에게 충고라도 하듯이 자신이 존재론적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음을 밝히는 작품과 마주칠 일이 잦아졌다. 이를테면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마주하게 된 영상작품 가운데 하나는 작품설명에서 작가 자신이 객체지향적 존재론(OOO: Object-Orietned Ontology)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버젓이 역설한다. 마리에 쾰백 이워슨(Marie Kølbæk Iversen)의 거울 치료(Mirror Therapy)란 작품이 바로 그런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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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다도해를 떠다니는 여객선의 승객들 – 퀴어 영화에 대한 어떤 생각


James Blake – Radio Silence

얼마 전 세상에 나온 소설가 임성순의 신작 자기 개발의 정석은 제법 허를 찌른다. 이 소설은 우연히 비뇨기과엘 들러 전립선치료를 받던 중 전립선 오르가즘의 신세계에 입문한 중년 남자 주인공의 삶을 비춘다. 주인공은 나이 마흔 여섯으로, “그곳이 대한민국 평균보다 조금 작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조금 나은, 중산층의 대체로 무난했던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만성전립선염을 치료받으러 간 그는 인생 최고의 굴욕을 겪는다. 버젓이 엉덩이를 깐 채 항문을 남의 손에 내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가 전립선마사지를 위해 처방받은 아네로스라는 신기한 도구에 눈을 뜬다. 그의 말을 빌자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기러기아빠인 그는 이제 변태와 게이라는 욕설이 주렁주렁 달린 게시판을 눈으로 밟으면서 “드라이 오르가즘”을 즐기는 신세계의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멀쩡한 아니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순종 이성애자 중년 남성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 남자라는 페르소나를 압축하는 ‘아재’ 혹은 ‘개저씨’의 화신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그는 뜻밖의 인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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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 어느 어둑한 골목 끝 환한 불빛, 퀴어 극장


My own private idaho trailer

벌써 20여년 가까이 되어버린 오랜 시절의 일이었다. 지금은 문을 닫고 사라지고 만 시네코드선재가 자리하고 있던 곳, 아트선재센터 지하에 인적 드문 극장이 있었다. 프로시니엄 무대 뒤편으로 흰 색의 스크린이 놓여있고 그 맞은편엔 아마 붉은 색이었으리라 짐작하는 푹신한 팔걸이의자들이 느긋한 부채꼴로 펼쳐져 있었다. 그 때 인사동을 지나 종로경찰서 앞 건널목을 건너 다시 풍문여고를 거쳐 극장에 이르는 길은 소란스러운 지금과 달리 제법 한적했다. 그러나 한 번도 스산했던 적은 없다. 외려 그곳은 알 수 없는 어느 곳에서 몰려든 이들로 갑자기 부산한 세계로 둔갑하기도 했다. 1998년 10월 16일, 1년 전 무산되었던 서울퀴어영화제가 아트선재센터에서 마침내 개최되었던 날도 그랬을 것이다. 그 날 어떤 이들이 영화제를 찾아주었는지 낱낱이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화제를 찾는 일 자체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일일 밖에 없던 시절, 영화제를 찾은 이들은 불안하고 근심어린 낯빛으로 혹은 적잖이 상기된 표정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극장을 서성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 가운데 누군가는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를 난생 처음 조우하기도 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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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8.

Brody-Son-of-Saul-1200

<사울의 아들>은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안티고네적 윤리의 삽화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이 영화의 모든 성패가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슈비츠라는 집단적이면서 정치적인 악을 고발하기보다 끝까지 자신의 아들을 온전히 유대식으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사울의 집요한 고집을 과연 옹호해도 좋을 것인가. 감독은 이를 말하는 데 영화의 모든 것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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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에 대한 몇 가지 생각

The Field – A Paw in My Face

뒤척이며 고백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 쾌적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모래>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모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성장한 여성 감독의 자술서이다. 감독은 반목하거나 아니면 무심했던 아버지의 세계를 헤쳐 보는 딸이다.
그녀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고, 꾀죄죄하게 영락한 아파트에서 얼마라도 더 건지겠다고 버티는 부모님을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그녀는 진보적인 당파를 지지하고 아버지는 열성 여당 지지자이다. 그러나 그 여당은 정치적 신의를 바치는 정당이라서 지지하는 당이 아니다. 악착같이 살아 마련한 유일한 삶의 자산인 아파트의 값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인 탓에 여당은 아버지의 당파이다. 물론 지배 당파는 항상 그렇게 지지를 동원하지만 말이다. 반면 맏딸인 감독은 배우겠다는 것이라면 두 말 없이 밀어줘 대학원까지 보내놓았더니 취미 생활로나 삼았을 영화를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는 나쁜 딸이다.
그렇게 살았던 한 가족이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가족이란 인연으로 흩어지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가족 말이다. 그리고 그 가족은 대치동을 떠난다.
누구는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혀를 차며 개탄하고, 누구는 토건 국가라며 진저리를 치는 이 나라에서, 치부의 가장 안전한 수단은 뭐니 뭐니 해도 강남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서글프게도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플레이션과 상관없이 안전하게 제 값을 지켜주기에 은행에 맡겨두는 돈보다 안전하고 사업을 하는 것보다 믿음직스럽다. 펀드니 주식이니 설쳐도 그것은 언제나 생각하기도 싫은 리스크란 이름의 유령을 동반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강남의 아파트는 아직은 리스크 제로이다. 강남 아파트는 사회적인 쓸모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가치를 유지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완벽한 물신이다.
<모래>의 주인공일 아버지는 퇴직 후 옷 공장을 운영하고 어머니는 남대문에서 그 옷을 판다. 아마 사업 수완이 있거나 했다면 덤볐을 리 만무한 사양 산업에, 부모는 뛰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것은 매 달 꼬박 갚아야 하는 빚만 안겨준다. 따라서 다시 아파트이다. 어쩌다 목돈이 생겨 욕심을 부려 빚을 좀 더 얹어 장만한 유일한 미래의 보증일 그 아파트 말이다. 해결책은 안전한 생존의 모든 약속인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이지만 그러기 어렵다.
어쩌다 목돈을 쥐게 되어 강남으로 건너 간 이들이 모여 사는 곳, 아마 그런 곳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대치동의 은마아파트일 것이다. 중동에서 공사장에서 일을 하였고, 다시 서울에서 답십리에서 아파트를 짓고, 집 장사를 한다는 게 무슨 짓인지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을 위해 부모님은 강남의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국 퇴장한다.
<모래>는 그렇게 은마아파트에 살게 된 그러나 그곳을 떠나게 되어버린 한 가족에 관한 초상을 그린다. 아파트 한 채가 좀 더 나은 형편으로 상승할 수 있는 모든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기만일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고 팔 수 있는 자산에 불과한 아파트를 소유한 자들과 모든 부는 아파트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은 채 아파트 한 채에 인생을 걸게 된 이들 사이에는 닮은 점이라곤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강남에 입성하였지만 결국 실패를 한 채, 아니 그 물신의 유혹에서 마침내 풀려난 채 강북으로 떠나게 된 가족의 초상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말이다.
그런데 <모래>를 자전(自傳) 다큐멘터리로 읽는 것은 아무래도 빗나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모래>는 아무런 자술도 하지 않는다. 아니 자술을 피하려 애쓴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외려 자술하는 것은 은마아파트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길지 않은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시정이 넘치는 부분을 찾는다면, 혹은 감독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느낌을 온전히 드러내는 주관적인 장면을 찾는다면, 내 생각엔 그것은 쓸쓸하게 부식하고 있는 아파트의 모습을 담은 롱 테이크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 얼굴 없는 장면들은 다큐멘터리에서이든 혹은 아니면 극영화에서이든 낯선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는 클리셰(cliché)라고 불러도 좋을 장면들일 것이다. 그런 장면들은 전개되는 이야기를 쪼개고 나눠주는 삽입구일 수도 있고 영화에서 지속되는 정조를 상기하기 위해 수사적인 반복 어구처럼 사용될 수도 있다.
<모래>에서도 그런 관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창을 통해서 바라본 아파트 바깥의 풍경이거나 달리는 차창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 혹은 미국 뉴욕의 마천루 혹은 차창에서 바라본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투여된 분주하고 화려한 욕망과는 아무런 상관을 찾을 수 없는 낡을 대로 낡은 아파트의 풍경, 이런 것이 이 영화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래>라는 영화 속에 어쩌면 과하다 싶으리만치 자주 등장하는 이 삽입어구에 대하여 마땅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의 흐름을 중재하기 위해 등장하는 어떤 서사적인 매듭일까. 나는 그것이 마치 문장 속의 말줄임표처럼 카메라가 어떤 생략을 표시하는 몸짓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객관적인 이미지를 찾지 못한 채 거기에 시야 속으로 들어온 화면일 것이다.
감독은 차마 말을 다 못하거나 아니면 말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화면은 감독에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래>가 아름답다. 그것은 은마아파트에 살았다 떠나게 된 어느 가족의 사회사를 그려내는데 급급하지 않으려 하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화해하고자 다가서는 윤리적인 대상이 가족일 때, 과연 누가 그것에 완벽한 말을 가지고 있을까. 감독은 범람하는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와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너스레를 떠는 TV 속의 감상적 휴먼 다큐들과 거리를 둔다. 거기에서 우리가 듣고 보는 것은 황폐하고 불임일 뿐인 수다일 뿐이다.
그러나 <모래>는 ‘차마’ 혹은 ‘미처’ 같은 수사적인 말들을 화면으로 옮긴다. 어떤 이야기에서 진실이란 이런 세부의 수사법에 있기 마련이다.

쾌락의 횡포를 넘어

Wu Meng Chen
쾌락의 횡포를 넘어 : 오종의 초기 영화를 읽는 한 가지 방식
<사랑의 추억>, 그 이전과 이후
오종의 영화 이력은 매우 복잡하고 더불어 균질적이지도 않다. 언제나 그의 뒤를 쫓아다닌 도발꾼, 악동, 패덕자 등의 꼬리표는 적어도 <사랑의 추억> 이후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키치-캠프적인 감수성을 화려하게 내보인 <8명의 여인들>을 뺀다면, <사랑의 추억> 이후 <타임 투 리브>에 이르기까지 그가 발표한 신작들은 전작들과 매우 먼 거리에 놓여 있는 듯이 보인다. 부르주아적인 성도덕을 무책임하게 위반하고 조롱했던 인습파괴자로 오인 받았던 그의 행적은, 이제 그런 이유로 그를 숭배했던 팬들을 당황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는 도발과 논쟁을 위한 감독으로부터 은퇴하여 마치 관조적인 현자(賢者)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 “뉴 퀴어 시네마”의 그 어떤 과격한 작품 못잖은 도발을 일삼던 감독이, 그 스스로의 표현을 빌자면 “백퍼센트 헤테로섹슈얼” 영화로 갔으며, 스타일 역시 매우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사랑의 추억>과 이후의 작품들은 마치 누벨 바그 이후 프랑스 영화의 주요한 흐름들에 근접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를 조롱하거나 거부했던 평론가들마저 일제히 그를 환영하며 그를 향한 반감을 뉘우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프랑스 영화에 관한 많은 텍스트들은 그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오종은 90년대 이후의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꼽히게 될 것이다. 어쨌든 오종이 몇 년 사이에 건너뛴 거리는 컬트 무비의 악당인 존 워터스의 영화와 유럽의 가장 탁월한 작가인 샹탈 애커만의 영화 사이에 놓인 거리에 가까울 정도이다. 존 워터스의 세계는 온갖 도착자들이 등장하는 세계이고, 그 세계는 그 인물들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직접적으로 의인화되는 선명한 패덕의 세계일 것이다. 반면 샹탈 애커만의 세계는 인물에게 부여된 어떤 정체성(주부, 여학생 따위)으로부터도 물러나, 탈인격화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민감하고 미묘한 감정의 세계이다. 오종은 그와 흡사한 두 세계를 건너뛰며 자신의 영화적 이력을 전개하였다. 그 거리는 너무나 멀고 그 거리를 종주한 것은 매우 큰 단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모인 오종의 작품들은 그의 영화의 한 단계를 집약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아버지의 영화
그렇다면 그토록 서로 다른 세계로 나아가며 오종은 무엇을 하였던 것일까. 조금 도식적인 논리를 들이밀자면, 어쩌면 오종의 지금까지의 행적은, 마치 그의 초기 단편 중의 하나인 <작은 죽음>에서 언급한 어느 사진작가의 초상을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아버지의 눈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발버둥 치던, 그러나 다시 그 아버지를 자신의 눈길 아래에 놓으면서 화해하는, 어느 사진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것이 완곡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있다. 그가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듯 자신이 영화감독이 되도록 하였던 “아버지의 영화”를 향한 반목과 이 단편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게 대응한다. 오종은 인터뷰 자리에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홈 무비용 소형 카메라로 가족들을 찍었고, 자신은 언제나 그 영화가 볼품없어 불만이었다고 곧잘 말하곤 하였다. 그리고 급기야 자신이 직접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 후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감히 말하기 어렵던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야릇한 쾌감과 권력을 준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아버지를 향해 다시 카메라를 돌리고, 아버지의 영화를 향해 조롱을 퍼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을 때, 그것은 카메라의 눈길로 자신을 지배하던 아버지의 권력에 도전한 것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갓난 시절 찍힌 자신의 사진을 보며 그를 흉물스럽다고 모욕하던 아버지 때문에 정신적인 외상(外傷)을 얻은 아들이 병상의 아버지를 찍을 때, 그가 얻는 것은 어떤 반전된 위치, 자신의 자리에서 상상하던 아버지의 권력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커다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그가 아버지의 자리에 위치하는 순간 그는 아버지와 동일시 하기는 커녕 이전의 자리, 즉 아버지에 반목하던 위치야말로 아버지와 동일시하던 자리임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시선에 자신을 놓았을 때 그는 아버지와 동일한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 자신을 통제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눈길을 그가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것이 자신이 상상했던 아버지와 너무나 다른 것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무해하고 심지어 유약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일 뿐이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은유는 오종의 초기 영화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식 뉴 퀴어시네마?
그렇다면 우리는 오종이 반목했던 아버지의 영화가 무엇인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른바 누벨 바그가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그 이후 필립 가렐이나 샹탈 애커만 등이 등장한 70년대 세대, 그리고 80년대 이후 프랑스 영화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모리스 피알라와 그의 후예들의 영화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90년대 이후 프랑스 영화의 세계는 어느 영화평론가의 적절한 표현처럼 “여러 세대의 이중인화된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벨 바그 감독들은 여전히 건재하며 가장 중요한 영화적 혁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와 영향 아래에서 성장한 프랑스의 영화 제도(특히 비평과 교육)와 산업이 배출한 젊은 감독들이 역시 그들과 동거하고 있다. 이런 세대적 동거는 물론 그들에게 “훌륭한 프랑스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에 대한 규범이 연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작가(auteur)”로 알려진 감독의 정체성일 수도 있고, 그것이 영향을 주는 제작 방식과 미적인 규범일 수도 있다. 비록 제한된 채널을 통해 언제나 그렇듯이 소규모의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지만 프랑스 영화는 사회주의 정권의 지지를 받으며 일종의 인공호흡장치에 매달린 채 유럽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산업적 기반을 재생산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누벨 바그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작가적인 영화의 생명선이었다. 그 내부에서 온전히 성장하였으며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오종에게, 그에 거스르고자 하는 갑갑증과 반감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오종의 영화를 프랑스 판 뉴 퀴어시네마의 흐름 속에 놓고 분석할 수도 있다. 멀리 잡아 시릴 꼴라르의 <사베지 나이트 Les Nuits Fauves>(1992)에서부터 근년의 브누와 작꼬의 <육체의 학교 L'Ecole de la chair>(1998)나 까뜨리는 코르시니의 <리허설La Répétition>(2001)에 이르는 일련의 영화들은 프랑스의 독특한 레즈비언, 게이 영화의 흐름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 가운데 빠트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감독은 단연 앙드레 떼시네일 것이다.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인 떼시네는 후기의 그의 대표작인 <야생 갈대 Les Roseaux sauvages>(1994)와 <도둑들 Les Voleurs>(1996) 등 작품을 통해 프랑스 레즈비언, 게이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처럼 알려졌다. 그렇지만 오종을 이러한 자리에 놓는 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일이다.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오종이 자신의 영화를 위한 범주가 있다면 차라리 “양성애(bisexual) 영화”일 것이라며, 자신이 샌프란시스코 게이, 레즈비언 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주최 측으로부터 그런 말을 함구해달라는 부탁을 들었는데 뉴욕에서는 그런 말을 해도 되냐고 농담을 한 걸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이는 프랑스의 레즈비언, 게이 영화들이 이미 기성의 동성애 정체성을 서술하는 영화에 전연 관심이 없으며, 외려 이성애를 벗어난 성애적 관심, 성정체성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따라서 영미식 “정체성 영화” 평론의 관점을 투사하여 그를 게이 영화의 계보 속에 끼워넣는 것은 그다지 온당하지 않다.(알다시피 프랑스에서는 게이란 정체성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둘러싸고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대표적인 초기 단편인 <섬머 드레스>에서부터 <타임 투 리브>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게이 인물들은 모두 이성인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심지어 그런 관계로부터 자신의 성욕을 회복하고 무기력했던 관계를 되살려 내거나(섬머 드레스) 아니면 성행위를 통해 자신의 아이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수락한다(타임 투 리브). 파스빈더의 희곡에 바탕한 <워터 드롭스 온 더 버닝 락스>에서의 게이 커플 역시 파스빈더 영화의 게이들이 그렇듯이 게이 정체성을 대표하는 전형이거나 그것의 인격적 표현은 아니다.
“프랑스 영화”의 감독
한편 그렇다고 해서 오종의 영화를 가스파 노에(<돌이킬 수 없는>)나 얀 쿠넹(<도베르만>)같은 젊은 감독들과 나란히 놓으며 섹스와 폭력, 그리고 인습파괴의 상투적인 도식 안에 묶어버리는 것 역시 잘못이다. 어느 평론가의 가혹한 비평처럼 “포스트모던한 허섭쓰레기”와 “작가주의”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오종은, 자신의 재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이제 분명한 프랑스의 작가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종의 영화적 이력을 그의 스타일이나 주제의 변화만으로 축소시켜 바라보는 것은 하는 단견일 것이다. 그가 프랑스 영화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는 무엇보다 프랑스의 영화감독이다. 그의 출신 국적이나 그가 활동하는 곳이 프랑스여서가 아니라 그가 프랑스의 국가 영화(national cinema)의 체제와 전적으로 동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프랑스 영화 산업이 스스로 버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측면에서 보자면 오종보다 더 그것과 변죽이 잘 맞는 감독도 없을 것이다. 오종은, 행여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국가 영화 장학생이라 불러야 옳다. 그는 페미스(FEMIS)로 알려진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였고, 자국의 “국민 영화(national cinema)”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통해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그의 많은 영화를 제작한 “피델리티”는 프랑스의 감독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카날 방송국이 설립한 제작사이다. 많은 감독들이 관객 수입의 일부를 적립하여 제공하는 예산지원을 받고 그 대신 티비 판권을 방송사에 제공하고 근근이 자신들의 영화를 찍는다면, 장르 영화의 관습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일정한 흥행의 성공을 기대하면서 제작 지원을 받는 소수의 감독 가운데 하나로 발탁된 셈이다. 오종은 적어도 <사랑의 추억> 이후 “의욕과잉의 떠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비타협적인 작가 감독”으로서 승인을 받았고 더불어 프랑스 영화의 “자산”이자 희귀한 “돈이 되는 작가 감독”으로서의 지위를 얻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영화와 화해한 셈이다.
쾌락의 횡포
오종은 이제 자신이 증오하고 반항했던 아버지의 영화가 결국 자신의 투사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성 제도와의 타협이나 권위와의 화해로 풀이하는 것은 억지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종은 B급 영화와 다양한 악취미의 영화들을 참조하고 인용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 영화들을 젊은 날의 반항으로부터 물러나 성숙한 어른으로 변신하기 위하여 지불했던 철부지같은 그러나 불가피했던 대가로 치부하며 어떤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나 인색한 짓이다. 외려 거꾸로 우리는 그의 반항적 몸짓 속에서 오직 반항만을 보았던 것을 뉘우치며, 그가 송신하려 했던 메시지를 이제야 비로소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오종의 영화는 거꾸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즉 역순으로 연대기를 쫓아가며 그의 영화를 봄으로써, 우리는 난삽하기까지 했던 다채로운 그의 영화들이 상호 반향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종 영화의 초기작들의 가장 중요한 경향이라 할 것이 바로 쾌락의 횡포와의 투쟁이라 생각할 때이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의 횡포란 말 그대로 쾌락을 억압하는 권위의 반대말이다. 2차 대전 이후, 적어도 70년대의 “성혁명” 이후 성적인 쾌락이 지닌 위치는 현저하게 바뀌었다. 성적인 쾌락은 더 이상 질서를 위하여 억압되어야 했던 제물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의 자유를 증빙하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추구해야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리하여 1980년대 이후 우리는 희한하게도 쾌락의 의무로부터 달아나려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섹스를 하지 않을 자유”를 외치는 기이한 장면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추세는 곧 오종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반항적인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시적인 것은 단연 <시트콤>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기괴한 장면은 식탁에서 불쑥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보이는 태도이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충격에 휩싸이고 아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공을 들여 동성애 정체성이 정당한 것임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널리 행해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중언부언 늘어놓는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상투적인 인상, 즉 모든 것을 금지하고 쾌락을 독식했던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성적인 자유를 되찾았다는 생각은 정반대로 뒤집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정반대로 아버지의 집요한 요구, 즉 쾌락을 위하여 살라는 요구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쾌락의 횡포에서 놓여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끈덕진 쾌락의 요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반신 불수가 되어버린 딸, 과잉성욕자라는 혐의를 인정하는 듯이 음험한 외모의 변태성욕자들을 초대하여 모임을 갖지만 그 감춰진 방에서 고작 평범하고 건전한 게임을 즐기는 아들 등,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성욕을 추구하는 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종결부에서 우리가 보는 아버지의 장례의 장면은 쾌락을 추구해야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난 평온한 커플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모두 짝을 이룬 채 쾌락의 의무에서 벗어난 상대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아버지의 살해
이런 점은 <크리미널 러버>에도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대한 우리의 피상적인 느낌은 자신의 성적인 유희와 환상을 위해 자신의 남자친구의 욕망을 조종하는 사악한 소녀와 그녀의 좌절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 소년의 성적인 불능이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섹스를 할 때마다 번번이 발기에 실패한다. 하지만 자신의 여자 친구의 말을 믿고 그녀를 강간했다고 믿은 동급생을 살해한 후에 그는 어느 사냥꾼으로부터 겁탈을 당한 후에 자신의 성욕을 회복한다.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설정은 사이코스릴러의 장르적 관습과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를 뒤섞은 난삽한 영화적 구성과 엉켜 더욱 혼란을 자아낸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마침내 자신의 성적인 능력을 회복하고 여자친구인 앨리스와 풍족한 섹스를 나누고 그 주변으로 작은 동물들이 모여들고 배회하는 키치적인 장면은 더욱 황당하다. 그렇지만 이제 그의 영화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그것이 매우 인정할만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기 왕성하고 욕정적인 동급생 남자 아이를 대신해 성적으로 무능한 애인을 택한 앨리스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는 왜 그를 살해하자고 음모를 꾸몄을까. 또한 왜 그녀의 애인인 뤽은 왜 사냥꾼의 겁탈을 통해 성욕을 회복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는 왜 자신을 능욕한 그 사냥꾼 사내를 사랑하는 시늉을 보이는 것일까. 물론 그것을 일리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들이 모두 성욕의 만족으로부터 끈질기게 도피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욕의 추구를 강요하는 색정적인 동급생 남자아이를 죽이는 것, 상대의 성적 만족이란 부담으로부터 해방된 섹스로부터 비로소 자신의 성욕을 되찾는 것이 이들 인물의 특성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다시 사랑을 위하여
그렇다면 어쩌면 <바다를 보라>에서 예고되었으며 <사랑의 추억>에서 본격적으로 완성되는 영화들 역시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앞의 두 영화들이 모두 친밀한 관계 속에 깃들어 있는 착취와 폭력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물론 휴양지 해변에서 홀연 종적을 감춘 남편에게 짓눌린 채 그의 부재를 고통스럽게 애도하는 <사랑의 추억>의 마리 역시 “관계”의 문제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섬뜩하고 잔인한 떠돌이 여자 여행자의 출현이 불러일으키는 질식할 듯한 불안과 그녀의 잔인한 앙갚음이 도식적이라면 <사랑의 추억>은 매우 섬세하고 풍부하다. 여자의 고독과 제어할 수 없는 성적인 욕망, 그리고 그것을 이어주며 각 인물의 고통스런 변화를 보여주는 배경(주로 자연)과의 관계는 두 영화에서 모두 공통적이지만, 후자에서 오종은 간단한 이야기의 틀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곧 자신의 뮤즈가 될 샬롯 탬플링의 연기를 완벽하게 이끌어내고 그녀는 어떤 인물이 아니라 불안과 광기, 욕정과 무력감 사이의 감정을 어슬렁거린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잇고 그 감정들 사이의 사건을 스스로 상상하고 작성하며 그의 영화에 참여하도록 요구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오종의 영화 속에 두 가지의 경향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다를 보라> 이후 잠복하다 <사랑의 추억>을 통해 회귀한 하나의 경향과 <시트콤>에서부터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으로 이어지는 “쾌락의 횡포”를 거부하는 또 하나의 경향이다. 물론 이 두 경향은 거리가 멀지 않다. 두 가지 모두 어떤 점에서 서로를 반향한다. 물론 여기에서 부정적인 반향의 지점은 쾌락의 횡포와 그를 거부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는 쾌락의 의무를 비난하지만 그 방식은 그것을 예찬하던 영화의 관습을 빌어 불장난을 벌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중요한 초기작들은 그 관습에 익숙한 관객들의 당연한 수용방식, 즉 성적인 모험과 도발을 통해 인습과 맞서 싸우는 목소리라는 인상을 되풀이하여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의 분석이 맞다면, 오종의 초기작들은 정반대의 목표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형식과의 작위적인 유희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전복의 효과도 일으키지 않는 충격 효과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실패의 이면에 바로 쾌락의 횡포를 향한 그의 거부가 있었다고 읽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는 이제 자신의 영화 속에 잠재하던 가장 중요한 능력을 회복한다. 그것은 바로 쾌락의 횡포 바로 옆에 놓여있는 자리, 즉 쾌락의 짓누르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관계”의 영역으로, “둘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물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물음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물음 가운데 하나이다. 쾌락의 횡포 아래에서 서로에게 오르가즘을 제공할 의무를 지닌 상대로 취급받았던 사랑하는 이들의 관계는 사랑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위기에 처한 사랑은 금욕적이고 낭만적인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손쉬운 유혹에 빠지지 않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관하여 물음을 던질 수 있고, 이제 영화들은 그런 물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물음을 던지는 영화의 가장 앞자리에 오종의 영화들이 서 있다. 다시, 사랑을 위하여, 그러나 쾌락의 횡포에 속박되지 않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관하여, 오종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이르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영화들을 찍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소모적인 몸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유혹에 빠졌던 방식을 취하지 않고 또한 그 물음에 이를 길 역시 없기 때문이다. 즉 그는 도착적인 아버지이긴 하지만 그 아버지를 거부하는 몸짓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던 것이다. 따라서 오종의 초기작들은 상처로 가득 찼지만 또한 우리 시대의 영화가 어떤 물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 회피할 수 없는 길을 걸어온 영화들로 볼 충분한 근거가 있다. ●

“시대착오적인 도착의 시대극 – 데릭 저먼의 르네상스 영화들”

– 이젠 내 글을 남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에서 보고 읽는다. 아, 이게 내 글이었구나. 저를 떠나 제 스스로 삶을 살고 있는 문자들, 아니 푸코의 말을 빌자면 언표들. 문장도, 명제도, 발화도 아닌 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발명하는 말들. 그저 사물이 되어버린 그 글자의 행렬. 서운하다, 나의 문자들이여, 그렇게 저를 낳은 주인을 저버리는가,그런, 당치않은 허튼 감상이 들 정도이다.
1.
*데릭 저먼의 작품을 전유하는 일차적인 맥락은 그의 시대착오성이다. 물론 그는 기꺼이 시대착오적이고자 했으며 또한 시대에 지나치게 몰입했다. 이는 데릭 저먼을 “뉴 퀴어시네마”의 자장 안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그는 토드 헤인즈나 존 그레이슨, 말론릭스보다 과격하다.이는 숨겨진 역사를 복원하고 자신의 거부된 흔적을 답파하려는 게이 역사학의 영화적 실천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뉴 퀴어 시네마의 다른 감독들에게는 이성애규범적인 역사(쓰기)로부터 추방당한 온전한 자신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회향할 과거조차 없다고 확언한다는 점에서 저먼은 그들과 구분된다.
*저먼의 퀴어 시대극들은 향수와 회한의 돌아보기를 통해 과거 자체를 (재)보존하려는 욕망에 복무하는 모든 영화적 실천을 비난한다.
케네스 브래너, 아이보리 형제 나아가 피터 그리너 웨이 등의 영국 영화는 이른바 유산영화(heritage film)를 만개시켰다. 유산영화는 “제 2의 엘리자베스 시대”를 주창했던 대처주의와 공명했고, 1985년 영국 영화산업계는 “영국영화의 해”를 선언하며 유산영화가 가져온 영국영화의 성장을 자축했다.오랜 동안의 쇠퇴와 부진 속에 허덕이던 영국의 부흥을 위해 영국은 르네상스를 반복하고자 열망했다.
물론 그 르네상스는 저먼이 집요하게 자신의 영화 속에서 대적했던 엘리자베스 시대였다.
*그런 점에서 저먼의 르네상스 영화( <천사의 대화> ,<템페스트>,<희년>,<에드워드 II세> 등)는 모두 영국 영화의 동시대적 맥락에 조응한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들이 강조하듯, 카라바지오와 푸생(Nicholas Poussain)의 대립과 자신의 영화적 실천이 놓여있는 형국을 대조한다. 그는 기원과 전통 그리고 사실적 재현의 명령에 복종했던 푸생의 계보(여기에는 단연 케네스 브래너와 피터 그리너웨이를 포함시켜야 것이다.)를 자신의 작업과 구분한다. 그는 카라바지오의 회화적 재현의 정치학을 또한 그의 영화적 재현의 정치학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의 담론을 통해 매개된 과거만이 있을 수 있음을 공언하고,
같은 시대의 민중의 삶을 신화와 성서의 회화적 재현의 대상으로 삼은 카라바지오의 전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푸생이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를 정의 하며 로마적 원리,
본래적으로 존재했던 미술의 규칙과 법이 유일한 예술의 소명이라고 믿으며, 카라바지오를 반역자와 파괴자로 비난 했을 때,
이는 또한 저먼에게 쏱아졌던 비난과 다르지 않다.
모두들 그가 역사를 파괴하고 오염시키며 날조한다고 중상하지 않았던가.
*카라바지오가 역사적 과거의 제시를 위해 동시대의 민중의 신체를 화면에 옮겨 놓듯이,
데릭 저먼 역시 과거라는 환영적인 공간에 파묻히지 못하도록 끈덕지게 개입한다.
<에드워드 II세>에서의 영국의 유명한 레즈비언, 게이 운동조직인 “아웃레이지(Outrage)” 운동가들의 시위,
애니 레녹스의 등장 등이나 <카라바지오>에서의 모터사이클,타자기,전자계산기 등의 사용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우리는 아예 시간여행 자체를 모티브로 삼는 <희년>에의 기괴한 펑크적인 시대극이나
<천사의 대화>의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동조되어있는 프리즈 화면의 연속체는 숫제 그런 시대착오성을 전면화하고 있다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그의 형식적 실천 역시 매우 명료하다. 상이한 역사적 시대에 속한 사물 혹은 소도구의 병치를 통한 시대착오적 미장센의
활용이나 역사의 담론적 구성을 영화적 실천자체에서 서술하는 그의 명민한 특기인 밀실공포적인 내부적 공간의 특권화
(우리는 이 점을 화면으로부터 외부를 어둠 속에 잠기게 함으로써 표면 위에 재현되는 대상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카라바지오의 화법과 그의 인테리어 영화가 놀랍도록 대응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감독으로서의 저먼에게 있어 영화를 전유하는 주체의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 스스로 일종의 중세적 카니발인 가면극을 상연하는것으로 간주했던 <에드워드 II세>는 분명 자신이 속한 공동체,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작업을 둘러싼 모든 의문에 한결같이 자신의 영화는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영화 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저먼은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표상하는 언어를 박탈하고,자신에게 치욕과 박탈, 고통의 삶을 배당해준 역사에 대하여 언제나 적대적이다.
(“나는 우리의 활기찬 현재를 거세했던 엘리자베스적인 과거를 깊이 혐오한다”,<퀴어 에드워드 II세>).
로카르노 영화제 에서 <세바스찬>의 첫 상영중에 벌어진 소동, 그리고 그날 밤 펑크들의 시위와 폭력,
스위스 첫 게이운동조직의 출범을 회상하며, 저먼은 언제나 행복해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주체로서 퀴어의 존재를 압축하는 곳은 <대영제국의몰락>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스프링”의 난폭한 수음의 장면일 것이다.
카라바지오의 <육욕의 사랑 Profane Love> 이란 그림 위에 누워 그는 아랫도리를 부비며 수음을 하고,
그위로 그를 쳐다보며 촬영하는 저먼의 그림자가 떨어진다.(저먼은 이를 “cinematic fuck”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훗날 퀴어들이 침대에 누워 포터블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수음을 하기를 원했다.
(Long Live cinematic fuck!).
*저먼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특성은 또한 그가 직조하는 시각적 쾌락의 장치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형식들을 개주 하거나 재무대화한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저먼은 카라바지오가 영화적 빛을 발명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의어두운 실내는 곧 영화의 스튜디오 세트이다),
<천사의 대화>의 소네트, <에드워드 2세>의 가면극(the masque)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먼에게 르레상스기에 있어 중요한 미적 형식이자 그것을 주재한 집단은
연금술사, 신플라톤주의자(플라토닉 러브!) 점성술사였다.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연금술사 존 디( John Dee )는 바로 르네상스의 이단적 연금술사였다.
그리고 연금술적 이미지
(<천사의 대화> 에서의 수정공, 부채, 또한 <희년>의 존 디 , 그리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울, <템페스트>의 그림 등)는
저먼에게 있어 자신의 영화적 실천의 은유였다.
저먼은 “빛과 물질의 화합 – 연금술적 결합이 영화이다” 이라고 주장한다.
2.
*”나는 신비의 영역은 동성애적 상황의 은유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마법은 금지되어 있으며 위험하고 난해하며 신비스럽다.
나는 콕도의 영화, 케네스 앵거, 그리고 에이젠슈타인의 영화에서 마법을 본다.
아마 그것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금지의 영역이며 게이 상황에 관한 은유일 수 있다.”().
저먼은 그럼으로써 퀴어 영화의 계보속에 자신을 기입해 넣는다.
장주네의 <사랑의 찬가>의 감옥, 장 콕토의 <오르페우스>의 회랑과 요술상자같은 방들,
<쾌락궁전의 창립>등에서 그 스스로 마법의 사도이고자 했던 케네스 앵거,
파졸리니의 <살로,소돔 120일> 의 격자창에 에워싸인 밀실, 그리고 자신의 <세바스찬>에 등장하는 숙영지 . 이 모두는 퀴어 공동체의 물질적 현존이며 그것의 영화 속 장소이다.
그러나 한가지 추가할 점, 그것은 암호와 은밀한 언어이다.
그 장소에서 우리는 공통의 언어로는 들을 수 없는 세계의 목소리를 포착해야 한다.
<희년>에서 엘리자베스가 토로하듯 “아름다운 꽃들의 은밀한 언어 “가 바로 그 언어이다.
*한편 연금술은 “기억의 기예(art)”이다. 퀴어 시대극은 결국 그런 연금술적 기억의 기예로부터 출발한다.
그 스스로 연금술과 르네상스기의 마법에 몰두하였던 저먼은 자신의 영화들이 곧 기억의 기예가 되기를 희구하였다.
<대영제국의 몰락>와 <천사의 대화>혹은 <여왕은 죽었다>같은 뮤직비디오를 참작하며
그를 장 뤽 – 고다르를 사사한 모더니즘으로 간주하고
나아가 영국의 “뉴 웨이브”(콜린 맥카베나 피터 울른 등)의 전통 속에 묶어버리는 비평적인 입장은 그런 점에서 빗나간 것이다.
영화적 재현의 환영성을 비판하기 위한 모더니즘적인 책략이라기보다는 저먼의 영화는 정서적 힘 자체를 겨냥하며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레오 버사니가 말하듯이 저먼은 파졸리니와 같이 영화로부터 힘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영화적 텍스트의 물질적 조성에 대한 꼼꼼한 반응을 시도하는 관객이 아니라
영화로부터 정동(affect)을 취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감각과 의식을 변형시키는 것이 영화여야한다
(알다시피 물직과 의식의 변형이야말로 연금술의 텔로스 아닌가)
그런 점에서 파졸리니의 시학의 영화는 곧 저먼의 연금술적 영화와 상통하는 것 아닐까하는 과감한 상상까지 한다.
*<천사의 대화>의 프리즈된 화면의 연속체
( 8mm 카메라로 빠른 속도로 촬영한 후 이를 다시 정상 속도로 영사하고
다시 이를 필터 촬영한 후 다시 35 mm로 블로우업하면서 생겨난 사진적인 혹은 수정공적인 이미지),
<대영제국의 몰락>의 홈 무비와 빈번한 이중인화 그리고 대조적인 몽타주,
<여왕은 죽었다>에서의 피카디리 광장의 에로스 상, 헤엄치는 금붕어, 우울한 소년 등의 이중인화 등은 모두 저먼에게 있어 “기억의 체계”이다.
저먼은 푸코의 말을 빌자면 “반기억(counter-memory)”를 실천하는 기억의 연금술을 발휘한다. 그것은 역사적 세부에 대한 고증과 발견,
그리고 그를 통한 역사 자체를 장악할수 있고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나아가 그로부터 역사와 현재의 거리를 확보할 수있는 이데올로기적 공간의 보장, 이 모두가 저먼이 위반해야 하는 것들이다.
“신은 과연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물음을 거절하고,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착수하고 과거를 현재의 맥락과 해체시키고, 과거의 물질을 현재의 시간적대상 속에 합성하는 연금술. 그것은 저먼의 반기억의 실천을 위한 영화적 전망을 구성한다. 물론 연금술사들, 소도미(sodomy)와 마녀 라는 이름으로 박해를 받은 주변적인 주체들은 곧 르네상스 시대의 소수자들이었고, 또한 그것은 대처주의의 암운과 애국주의적 광기로 충만한 동시대의 소수자들인 퀴어의 환유이기도 하다.
*저먼은 <에드워드 II세>에서 추방지에서 돌아오는 가베스턴은 가면극의 휘황한 매력과 즐거움을 상기한다.
단 한번도 야외 장면을 포함하지 않은 <에드워드 II세>의 밀실공포적인 세트는 곧 가면극 자체를 상영한다.
물론 이 때의 가면극은 곧 근대적인 연극과 다르다.
그것은 재현과 청중사이의 관계가 전연 다르기 때문이다.
“아웃레이지”의 액티비스트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오고 그들은 저먼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정치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상징화 한다.
르네상스의 화려한 가면극은 관객이 극 속으로 끼어듦으로써 극 안에서 전개되던 갈등을 해소하는 카니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가면극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행(performance) 자체로부터 신화적인 진실을 현재의 진실과 포개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가면극은 저먼의 퀴어 시대극과 공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먼의 영화들은 에이즈 시대의 퀴어 영화이다.
저먼은 커밍아웃한 퀴어 감독이다 또한 HIV감염자 였다.
그의 <가든>, <블루>와 같은 후기작들은 에이즈 위기 시대의 맥락과 분리시킬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에이즈 위기는 그를 동시대의 뉴 퀴어시네마와의 관계를 설명하도록 해준다.
그의 퀴어 시대극은 에이젠슈타인과 장 콕토 그리고 퀴어 하위문화를 연결하는 존 그레이슨의 <소변기>와 대응하고,
장 주네와 B급 호러영화, 그리고 타블로이드 신문 속의 퀴어를 연결하는 토드 헤인즈의 <포이즌>과 대응한다. 또한 랭스턴 휴즈와 할렘 르네상스를 소환하는 아이작 줄리언의 <랭스턴을 찾아서>역시 그에 추가되어야 한다.
이 모두는 뉴 퀴어 시네마의 퀴어 시대극들이며 또한 가장 탁월한 작품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이성애자와 다르지 않은 정상적인 존재로 등록함으로써
자신을 표상하려던 게이 영화의 “정체성의 정치학”과 모두 단절하고자 하엿다.
그리고 저먼은 그러한 뉴 퀴어 시네마의 척후병이었다.
참고한 글들
Leo Bersani & Ulysse Dutoit, Caravaggio, London, BFI, 1999
Jim Ellis, “Queer Period – Derek Jarman’s Renaissance”, Outtakes -Essays on Queer Theory and Film, Ellis Hanson ed., Duhram and London , Duke Univ Press, 1999
Derek Jarman, At Your Own Risk -A Saint’s Testament, New York , The Overlook Press, 1993
Derek Jarman, Kicking the Pricks, London, Vintage, 1996
Derek Jarman, Queer Edward II, London, BFI, 1999
Tony Peake, Derek Jarman: a Biography, New York, Overlook Press, 2000
Justin Wyatt,” Autobiography, Home Movies, and Derek Jarman’s History Lesson”, Between the Sheets, in the Streets: Queer,
Lesbian, Gay Documentary, Chris Holmlund and Cynthia Fuchs, ed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盛夏의 어느 週末


– 세네프 심사위원 회의를 마치고 Y씨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차이밍 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다시 보았다(나는 부산에서 지난 해 이 작품을 보았다). 설친 잠 때문에 필시 졸거라는 짐작대로 초반 나는 잠시 고개를 주억대며 졸았던 듯 하다. 그렇지만 역시 <안녕, 용문객잔>은 대단하다. 구스 반 산트의 기이한 변화처럼 그의 변화도 이미 <하류>에서 예고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착된 듯 보인다. 더 변화하기보다 그는 지금의 발견에서 잠시 더 머물 듯 하다. 그가 발견한 것은 아마 이미지의 정동(情動)을 생산해내는 영화의 능력일 것이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혹은 여기 한 컷의 이미지가 있다. 아니 여기에 지리한 하나의 씬이 있다. 물론 그 안에는 약간의 정보가 있다. 불이 환이 켜진 마지막 날의 극장의 객석, 장마비가 자욱히 쏟아지는 극장 어귀의 스산한 모습, 침침한 불빛이 켜진 긴 낭하와 화장실의 문 등등. 그리고 그 이미지 안으로 가끔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이 過少한 정보 탓에 관객은 처음엔 지루해하고 조금은 불편하며 어색한 감정에 빠져들 것이다. 그렇지만 곧 우리는 그가 이야기를 할 의중이 없음을 깨닫는다.((너무 많은 지나침과 너무 적은 지나침 가운데서 후자에 대한 이야기는 드문 듯 하다.로트코나 말레비치의 그림에 대한 추상성 운운의 분석은 그런 점에서 잘못일 것이다. 그 그림은 적음이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적음으로 인해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왜 나는 이런 적은 것들에 이토록 많은 관심이 가는 걸까? 지나치게 화려하고 많은 캠프적인 아름다움에도 유혹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사실 그리 깊은 감동을 얻지는 못한다….언젠가 곱씹어볼 문제이다).
– 사실 그의 영화에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기억 속의 장면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처럼 회상될 때마다 장면은 다른 모습과 다른 정서적인 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사실 그 탓에 나는 그날 바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의 기억의 회상에 관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거의 기억의 절차를 기만한다. 기억은 노동에 가깝고 그 노동은 그 사건들의 뭉치를 기억하게 하는 서로 다른 강세를 가진 이미지들과 소리의 파편들과 함께 내 의식 속에서 조립된다. 따라서 기억은 애시당초 이야기를 모른다. 기억은 이야기가 되는데 실패한 것들을 계속 남겨두었다가 내 의식 속으로 자꾸 떠민다. 기억은 이미 완결되어 저장되어 있던 이야기를 다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지 못한 채 떠도는 장면들(어쩌면 그 말 뜻 그대로 기표(signifiant))을 내게 들이민다.
– 이를테면 내가 어제 술을 먹다 Y씨와의 대화에서 다시 떠올린 대여섯살 남짓의 기억의 한 장면, 하얀 법랑을 씌운 대야에 고여있던 핏물이 그렇지 않을까. 나는 누이의 실수로 어느 겨울날 시멘트로 쌓은 수돗가에 내동댕이쳐졌고, 오른쪽 이마가 으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내 오른쪽 눈썹은 비뚤어져있다. 여튼 스냅 숏처럼 엮인 내 기억 안에서 그 사고의 이전 장면은 굴다리가 있는 시장 통의 어느 가게 앞에 아버지가 펴놓은 난전이다. 아버지는 그 때 색색의 나일론사가 섞인 싸구려 겨울 양말을 팔고 있었고, 누이는 날 업고 그리로 갔던 듯 하다. 나는 비닐 위에 놓여있던 연두색과 감귤색의 나일론 양말들이 아직도 뚜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점프컷되어 횟가루가 쌓여있던 장의사 앞의 수돗가 근처가 생각나고 그 뒤로 난 저장된 장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까무러쳤던 나는 아마 외과에서 치료를 받다 잠시 의식이 깼던 모양이다. 그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눈부시게 흰 하얀 법랑을 씌운 병원의 대야였고 그 안에 고인 내 핏물이었다. 그런데 이따금 떠오르는 그 장면은 애초부터 다른 장면으로부터 떼어내진 것이다. 다른 장면이 붙여졌다면 나는 그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다른 이야기와 감정에 사로잡히는 혼란을 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외톨이같은 장면은 기억의 순간에 내가 사로잡혀있던 느낌과 이야기 속으로 삽입되어 다른 정동의 장면으로 생산된다. 곰곰이 생각하면 그 장면은 매번 조금씩 다른 이야기와 함께 불려나온다. (6. 27.)
– <안녕, 용문객잔>은 구스 반 산트의 <제리(Gerry)>나 <엘리펀트(Elephant)>로의 이행과 흡사하다. 비트 세대의 적자인 구스 반 산트가 왜 <아이다호>의 음울하고 멜랑콜리한 고급 드라마에서 벗어나 <제리>로 갔을까. 광주의 어느 대학교에서 불과 몇 사람과 뒤섞여 본 <제리>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이 아연할만한 금욕적인 영화는 시종일관 길을 걷는 두 사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보여준다기보다는 들려주고 보여주며 종내엔 화면 안에 존재하는 인물과 동화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는 동일시가 아니다. 내가 화면 속의 인물과 같은 위치에서 세계를 지각하고 있고 그것을 매개하는 일차적인 통로가 카메라였다면 그것은 동일시겠지만, 사실 화면 안의 인물은 거의 아무 것도 보지않는다. 아니 볼 필요가 없다. 사건이 없기에 그는 말을 건넬 사람도 없고,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참조할 어떤 사물도 없다. 그저 그는 걷고 있을 뿐이다. 아니 걷는 사람이 보여지지만 그것은 걸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걸음에 깃들어있는 감각을 보여준다. 걷는다는 사실 혹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화면을 지켜보는 한 화면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그것은 언제나 걷는다는 동일한 사실을 끊임없이 전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지루함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문득 놀라게 된다. 나는 이제 걷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걸음에 깃들어 있는 감각의 세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현실적으로 크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 모래를 밟고 수풀을 헤칠 때의 미묘한 소리, 그리고 걸음의 강약 심지어 걸음 사이로 비쳐드는 빛의 강도까지 나는 어느새 감각한다. 그런 점에서 <제리>는 봄/보임의 영화가 아니라 감응 혹은 정동(affection)의 영화였다. 어떻게 달리 보도록 할 것인가, 봄(seening)이라는 행위 안에 작동하는 시각적인 법칙을 어떻게 철폐할 것인가. 이것이 지난 수십년간 (비판적) 영화 이론의 모토였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전연 다른 영화들이 들어서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적어도 <와화장룡>과 <매트릭스> 이후 대중영화의 변화가 영화의 정체성을 위협에 빠트렸듯다면, <제리>는 그것을 아예 자신의 문제로 제시하는 듯 하다. 영화는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고 환영적인 사실을 인지하도록 하는가. 이런 반복된 물음에서 빠져나와 몇몇 감독들은 다른 물음을 던진다. 나는 그런 물음의 노선에 구스 반 산트 역시 서있다는 생각이다. (6.29.)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有感

일상의 탈출을 맛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평범한 관객에게 불쾌감만 주는 나쁜 영화라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본 어느 학생의 글이 게시판에 올랐다. 그가 나는 그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물어와서 이렇게 몇자 적었다.
-소시민 혹은 프티부르주아지의 위선적인 삶에 대한 조롱 혹은 야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읽는게 거의 관행인듯 합니다. 물론 그런 지적은 틀린 것도 아니지요. 특히 영화가 스펙터클을 즐기는 오락, 뻔한 서사적인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면서 느끼는 강박증적인 퇴행의 쾌감(똑같은 것은 언제나 즐겁지요^^)이 되어버린 이후에, “내면”이라는 자아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 특히 그냥 무심하고 평면적인 사물의 풍경인데도 그 내면의 표현으로서 제시하는 것은 분명 모더니즘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선적인 그의 속내(혹은 멋진 모더니즘적인 문화비평의 용어를 빌려쓰자면 “내면”)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은 뒤늦게 부활한 모더니스트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의 뒤틀리고 야비한 심지어 비열하고 아주 사악하기까지한 관찰과 폭로의 과정이 매우 즐겁고 짜릿하지만(거의 자학적인 것이겠지만..^^), 그에게서 어떤 대단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면의 관찰은 상투적으로 재현되는 그의 예측할 수 있는 정체성-그는 남자이니,노동자이니, 서울사람이니, 한국인이니 아마 이러저러할꺼야와 같은 미리 상상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 – 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개별성을 삭제하고 지워버리는 것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 바로 내면이라는 개념이 갖는 미덕이겠지요. 그래서 내면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와 그와 어긋나는 내가 상상하는 나 사이의 고통스러운 차이, 불일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바로 그 고통스러운 발견의 대상인 내면과 외부 세계의 긴장이 사라진채 거의 물신화된 내면만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정교하고 또한 가장 흥미로운 <생활의 발견>이 가장 지리멸렬한 이유도 그런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영화에서 그는 <오! 수정>같은 곳에서 끈덕지게 유지했던 그런 내면과 그 위부 사이의 긴장을 잃은 채 내면이라는 것을 저 혼자 키득키득 웃으며 상상하는 싸구려 심리학자의 모습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런 것이 이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도 역시 반복되었던 것 같아요.
(객설이지만 그런 점에서 왕가위는 아주 별난 감독이겠지요? 그의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 춘광사설 심지어 그 모든 것의 극치인 화양연화같은 작품에서 그는 내면이라고 상상하는 풍경을 아름답게 정말 유혹적으로 보여주지요. 그러나 외부의 세계가 자신에게 부여한 모든 정체성의 덧없음, 허위성, 피상성에 반해 은폐되어 있는 자신의 진정성이 보증받는 그 곳은 이제 전혀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거꾸로 내면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안과 밖이 뒤집혀진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지요. 그의 영화가 견딜 수 없도록 멜랑콜리한 점도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리고 적고 싶은 몇가지가 더 있었다. 나는 이번의 홍상수의 작업이 갖는 어떤 회화적인 금욕주의(?)라고 할만한 것에 의문이 들었다. 그는 설정 숏에서부터 마지막 엔딩 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돌리 숏을 가능한 억제하면서 카메라 만을 움직인다. 그것이 물론 인물의 시점과의 몰입을 억제하도록 하고 언제나 관찰하는 듯한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점화를 억제함으로써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동일시하는 것을 차단하거나 억지하는 상투적인 작위라면 모를까 그것이 다른 기능을 하는 듯 하였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영화를 못찍는 어떤 견습생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또한 적잖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미니멀한 것이라기보다는 관조에 가까운 눈길이다. 다시 그의 영화를 본다면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다.
– 마지막 씬에서의 그를 유혹한(그가 그녀를 유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유혹한) 여학생과 앞길이 막막한 시간강사인 유지태와의 섹스 후의 대화는 나를 졸게 만들었다. 그런 기회가 한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 내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그런 위험한 일탈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하기도 하는 눈치이다 – 학생과 불륜에 빠지면 어쩌나 하는 기우 말이다. 학생과 사랑을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섹스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리고 난 후의 아주 불쾌하고 유치한 기분을 생각하면 모험을 걸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