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우울은 내게로 옮겨집니다. – 렌 항 任航에게

Metronomy – The Upsetter

당신이 세상을 떠난 그날, 당신이 살던 기이한 세계, 아마 당신을 알고 지내던 이들이라면 모두 당신을 처음 조우하고 또 그 후에도 당신을 알기 위해 항상 찾던 곳인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나 역시 당신의 부음을 들었답니다. 먼저 페이스북에서 전 당신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는 제 친구들의 잇단 피드를 보았지요. 일본에서 게이 포르노 배우기도 하고 퀴어 독립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이마이주미 씨(氏)는 당신의 사진집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당신의 영면을 기원했습니다. 지난 해 유명한 미술전문 출판사인 타셴(Taschen)에서 출판한 책이지요. 렌항, 당신의 이름 뒤에 R.I.P(Rest In Peace)이란 가까이하고 싶지 않는 낱말이 함께 짝을 이뤄,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제 시야에 출몰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신다운 장례식과 당신다운 추모였겠지요. 저도 당신을 처음 해후한 것은 핀터레스트(Pinterest)인가 하는 인터넷의 소셜 미디어 채널 가운데 하나였지 싶어요. 당신의 이미지를 위한 아주 적절한 플랫폼이겠지요.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부터 알게 된 텀블러(Tumblr)의 당신 페이지를 이따금 찾곤 합니다. 이제 그것은 영원히 업데이트되지 않겠지요.

이제 당신의 우울은 내게로 옮겨집니다. – 렌 항 任航에게 더보기

프로파간다 사진의 유령들

Arca – Desafío

만취한 채 책을 읽었던 탓일까 아니면 나이가 먹어 심약해진 탓일까. 결국 늦은 밤 나는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항복한 채 책을 덮었다.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책”이란 제목의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 잠시 생각하였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새벽 3시가 지나고 있었다. 결국 손에서 놓고 만 책은, 며칠 전 세상에 나온 디디에-위베르만의 사진 에세이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2017)이었다.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으려 했던 나치수용소의 유태인의 광기에 가까운 용기를 생각하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사진-이미지를 세상에 남기겠다는 각오를 생각하면, 나의 뒷걸음질은 비겁한 짓이리라. 끔찍한 살인과 죽음의 광경을 전하는 언어를 견디지 못한 채 욕지기를 느끼며 책을 덮은 물러터진 비위 역시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자들의 살갗과 표정 가까이 바싹 다가가 그것의 표면을, 윤곽을, 보이지 않는 비명을 확인하도록 하는 윤리적 요청은 가누기 어려웠다. 그러나 실은 그런 것들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미지, 무엇보다 아무런 값을 못하는 사진-이미지의 무력함에 대하여 한 비평가가 보내는 고문과도 같은 글은, 우리를 아니 어쩌면 나를 걷잡을 수 없는 죄의식에 빠지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사진적 진실’(photographic truth)을 비웃고 조롱하며 보낸 지난 포스트모던 사진 비평의 철없는 불장난에 대하여, 그는 거칠게 화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숨 막힐 듯 빠른 속도의 문장을 따라가며 어느 사진-이미지 앞에서도 미처 몇 초를 머물지 못하는 부박함을 힐난하는 듯한 저자의 고집에, 몇몇은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았을까. 사진-이미지는 즐거움을 주고, 잠시 쾌적한 기분에 젖게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냉소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단 한 장의 사진-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보전되고 증언하는데 동원되었던 압도할만한 사태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손에 주어진 4장의 아우슈비츠의 사진, 영원히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그 끔찍한 지옥이 실재했음을 고발하는 그 사진은, 우리에게 사진-이미지는 그렇게 거품과도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도록 촉구한다. 이 때 사진은 어떤 정보를 담은 기록이기에 앞서 이것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사진-이미지에서 어떤 윤리적 부하(負荷)도 찾을 수 없는 듯 보이는 교만한 이미지 소비의 시대를 끔찍하게 혐오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파간다 사진의 유령들 더보기

사진을 읽는다는 것: 앨런 세쿨러를 그리워하며

Allan Sekula , Noël Burch – The Forgotten Space

사진을 ‘읽는다’는 말은 가치가 하락한 지 오래이다. 한때 사진은 의미, 이데올로기, 신화, 코드 따위를 탑재한 이미지이자 텍스트였다. 그것은 읽기를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정되기 위해 우리 앞에는 ‘쓰인’ 사진이 놓여있어야 했다. 즉 어떤 의미를, 이데올로기를, 가짜 진실을, 허위적인 욕망을 기재하고 등록한 이미지로서 사진이 그들 앞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뒷받침해주었던 것은 사진 자체이기도 했지만 그를 위해 불가분한 하나의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소우주 속에서도 사진이 자리하는 시대의 소인(消印)이 찍혀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연기처럼 흩어진 듯 보이는 갈등의 원리이다. 나는 갈등의 원리를 장소이든 시간이든 물질적 흔적이든 이미지이든 모든 것에 사회를 규정하는 지배와 갈등이 비쳐있고 또 조심스러운 눈길로 그것을 헤쳐 보면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읽는다. 그것은 대상의 편에 무늬처럼 새겨져있는 대립과 모순의 기호(記號)를 일컫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을 읽는다는 것: 앨런 세쿨러를 그리워하며 더보기

사진이 사물이 될 때, 사진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

Bob Dylan and The Band – Like A Rolling Stone

찬 비 맞으며 눈물만 흘리고/하얀 눈 맞으며 아픈 맘 달래는 바윗돌/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저 하늘 끝에서 이 세상 웃어보자
(정오차/바윗돌의 노랫말 중에서)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Bob Dylan, Lke a rolling stone의 노랫말 중에서)

1.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철학적, 미학적 주제는 존재 혹은 사물인 듯 보인다. 그것은 주체/객체라는 몇 세기 동안 우리를 지배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이를테면 여기에 돌덩이가 있다. 그것은 사물인가, 객체인가, 존재인가, 물어보자. 그 돌은 터키에서 수입된 값비싼 화강암이거나 혹은 이태리에서 가져온 질 좋은 대리석일 수도 있다.(나는 언젠가 1970년대에 한국의 이름난 조각가들이 최상의 재료로 작업을 하려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 그곳의 채석장에서 작업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건축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조각을 위한 재료이든, 그 암석들은 그를 다루고 조작하려는 인간, 즉 주체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그 돌들은 무엇이든 인간-주체가 대면하는 대상-객체로 간주된다. 그것은 자신을 주관하고 변용하는 주체와 짝을 이룬다. 혹은 그것에 대(對)하고 있다.

사진이 사물이 될 때, 사진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 더보기

사진은 이모티콘이다, 그래서 사진은 위험해졌다

moon_030

그렇다, 사진은 그냥 ‘이모티콘’일지 모른다. 오늘날 사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집계하고 드러낼 작정이라면, TV와 인터넷(특히 소셜미디어서비스 SNS)에 범람하는 사진의 화용론(pragmatics)을 떠올려보는 게 수순일 것이다. 이제 사진은 어떤 시간에 있었던 사물, 사태, 현실에 대한 광학적인 기록이 아닌 듯 보인다. 사진은 더 이상 지표(index)적인 언어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바르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푼쿠툼의 푼크툼이다. 바트르의 요청처럼 사진을 사실을 재현하고 지시하는 언어 기호로 볼 것이 아니라 미적인 감응의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면, 우리는 이미 그러는 중이다. 지겨우리만치 사진을 관람하는 이들의 체험 한 복판에 이런 좌우명은 새겨져 있다. 우리는 사진에서 무엇이 기록되었는지 끈기 있고 사려 깊게 관찰하고 바라보기보다는 그것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어떤 감정이입(empathy)을 강요받는다. 사진은 무엇보다 눈물샘을 가격하여야 한다. 사진은 당장 분하고 괘씸한 심정을 자아내야 한다. 혹은 사진은 당장 흐뭇하고 따사로운 감정을 쥐어짜는 손짓이어야 한다.

사진은 이모티콘이다, 그래서 사진은 위험해졌다 더보기

상품의 추억


상품의 추억: 한국 자본주의 물질문화의 이미지, 김한용의 사진


표상과 현상: 광고 사진을 읽기 위하여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김한용의 광고 사진은 한국 현대 광고 사진의 이정표이다. 기호학적 표현을 빌자면 그는 물건의 쓸모를 언급하던 지표적인 사진을 상품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상징적인 사진으로 둔갑시켰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국 사진의 역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를 낱낱이 따져본다면 이야기는 아주 복잡하고 긴 것이 될지 모른다. 나는 이 글에서 김한용의 사진을 읽는데 필요한 몇 가지 실마리를 찾아볼 작정이다. 간단히 말해 김한용은 ‘상품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한국 광고 사진의 개척자이다. 여기에서 ‘물건의 초상’이나 ‘사물의 표상’이라 말하지 않고, ‘상품의 이미지’라고 말해야 한다는 점에 주의하도록 하자. 상품의 이미지라고 말할 때, 김한용은 물건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물건을 상품으로 전환시킨 사진적 마법을 실행하였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한국 사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상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그의 사진은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물질문화의 전환을 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이란 낱말과 이미지란 낱말 모두가 중요하다. 따라서 김한용의 사진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조금 번거로운 우회가 필요할 것 같다. 그를 위해 나는 먼저 상품과 이미지란 개념을 조금 더 따져보고 그의 사진을 살펴볼 생각이다.
먼저 상품. 그의 사진은 쓰임새만을 가진 물건을 유혹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주었다. 누구나 알듯이, 상품은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물건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그것은 아직 상품이랄 게 못된다. 상품이기 위해 사고 팔리는 물건은 새로운 인격체를 만나야 한다. 그의 이름은 소비자이다. 소비자는 구매자와 다른 사람이다. 소비자도 값을 치르고 물건을 산다는 점에서 구매자이다. 그렇지만 구매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다. 소비자는 구매자와 다른 독특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물건을 상품으로 만나는 사람이다. 물건을 상품으로 전유하는 사람은 물건에서 쓸모 이상을 찾는 사람을 일컫는다. 물건을 사는 사람은 그에게 널리 알려진 쓸모를 사지만, 상품을 사는 사람은 다른 것을 산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는 쓸모없는 것을 산다. 우리는 ‘소비사회’란 말을 숱하게 들먹인다. 흔히 생각하기에 소비사회란 ‘풍요’로운 사회이다. 그렇지만 풍요란 사물이 충분히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풍요란 쓸모 혹은 실용성이란 장벽을 넘어서며 너무 많이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풍요는 필요를 만족시킬 만큼의 풍족함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과잉이다. 달리 말해 소비자는 ‘그 이상’을 산다. 그 때의 ‘그 이상’이란 충분한 것을 넘어서는 어떤 상대적이고 객관적인 양이 아니다. 그 이상이란 부족, 충분이나 과분(過分)과 관련 없는 실체이다. ‘그 이상’이란 것이 필요의 ‘그 이상’일 필요가 없다. 나아가 ‘그 이상’은 그것이 이상이기 위해 전제하였던 필요 자체도 소급적으로 다른 것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비사회에 접어들었을 때, 필요란 ‘그 이상’이란 몫을 통해 그 자체 ‘그 이상’인 것, 즉 필요 이상의 것으로 되어버린 필요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더 이상 콩나물을 먹지 않고, 항상 콩나물 이상의 것을 먹는다. 이제 대형마켓 진열대 위에는 온갖 브랜드와 포장을 한 콩나물이 늘어서 있다. 그 콩나물은 필요한 물건이다. 그렇다면 물건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나에게 상품으로서 말을 건넨다, 아니 나를 유혹한다. 내가 유기농을 재배된 콩으로 만들고 비타민 성분이 강화되어 있고 자연분해 플라스틱 봉지에 담긴 이름난 브랜드의 콩나물을 집어들 때 실은 나는 콩나물을 산 것일까? 콩나물이 필요했다면 나는 아무 콩나물이나 사서 쓰면 된다. 그러나 내가 어떤 특별한 콩나물, 강원도 청정수로 씻고 제주도의 유기농 콩으로 만든 A사의 브랜드 콩나물을 살 때, 실은 나는 콩나물 이상의 것을 산다. 이 때 그 이상의 것이 추가된 물건, 우리는 그것을 상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상식과 달리 쓸모를 가진 상품을 사서 쓰는 일은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생산물을 교환하는 어느 사회 체계에서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교환되는 것은 물건이지만, 상품은 오직 어떤 역사적 시대에만 특수하게 나타난다. 사랑하는 애인의 생일에 건네주는 생일 선물은 물건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상품이 아니다. 폴라니라면 이를 상호성의 경제에서 관찰할 수 있는 물건이라 할 것이다.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 홍기빈 옮김, 길, 2009
수재민에게 적십자에서 나눠주는 생활물자는 물건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상품이 아니다. 다시 폴라니라면 이것을 재분배의 경제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슈퍼마켓에서 내가 돈을 주고 산 코카콜라 한 병도 물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히 진짜 상품이다. 폴라니라면 이를 시장경제에 나타나는 물건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상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크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마르크스는 저 유명한 ‘자본’이란 책은 상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본’ 1권의 제 1장 제 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 실체와 가치 크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 집적’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 형태로 나타나다. 그래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카를 마르크스, ‘자본 I-1’, 강신준 옮김, 2008, 길, 87쪽
그런데 이런 발언은 조금만 주의해 들여다보면 당혹스럽게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출발점이 될 만한 것이 왜 노동, 자본, 화폐, 이윤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될 이유는 뭐란 말인가. 우리는 흔하게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이야”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자본주의는 뭐니 뭐니 해도 이윤을 최고로 여기는 세상이지”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돈이나 이윤이 분석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마르크스는 천연덕스럽게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 집적’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 형태로 나타나다. 그래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넘어간다. 의식적으로 자신이 왜 이런 순서로 분석을 하고 글을 쓰는지 생색을 내곤 했던 마르크스치고는 꽤 그답지 않은 서술인 셈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여러 서로 다른 생각이 출현할 수 있다. 또 실제로 그렇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복잡한 이야기이니까 건너뛰자.
아무튼 문제는 상품이 왜 출발점이냐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답은 ‘외양’ 혹은 ‘현상’이란 낱말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든 현상한다. 자본주의는 추상적인 현실의 법칙이어서 내가 직접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일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을 넘어 관념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무엇인가. 마르크스에게서 독특한 점은 법칙을 추상적인 본질의 편에 놓고 현상은 그것의 외피(外皮) 혹은 기만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자신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하여 외투를 걸치고 환상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물건 혹은 사물이 상품으로 지각되고 교환되는 순간, 이 가장 흔해빠지고 평범한 대상은 이미 본질 자체가 현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탓에 상품은 이미 본질의 현상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현상한다는 말 자체가 중요한 단절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말과 사물 사이에 혹은 지식과 현실, 이미지와 세계 사이에 놓인 관계가 근대로 접어들며 유사(resemblance, 類似)에서 표상(representation, 表象)으로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미셀 푸코, ‘말과 사물’, 이광래 옮김, 민음사, 1987
말 혹은 지식이 그것이 가리키거나 의미한다고 말하는 세계와 닮았거나 일치한다고 말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유사하다는 점에 따르지 않고 표상한다는 것을 통해 결정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사와 표상(적 동일성)이란 뭐가 다른가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이런 비유를 든다. 호두는 뇌와 모양이 닮았기 때문에 뇌에 좋은 음식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리바이스 청바지 한 벌과 한 상자의 코카 콜라가 같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같은 가치를 같기 때문에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같은 가격을 갖기 때문에 동일한 것으로 표상된다. 푸코가 말하듯이 ‘근대’는 표상의 시대이다. 푸코는 주로 담론의 고고학이란 점에서 유사와 표상의 관계를 다룬다. 이미지의 고고학이란 측면에서 유사와 표상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단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Jen Webb, Understanding representation, London & LA, Sage, 2009

그렇다면 푸코가 말하는 표상하기는 방금 마르크스의 상품을 두고 말했던 현상하기란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푸코는 마르크스 역시 어떤 물건에 투여된 노동의 가치란 점을 통해 부가 어떻게 표상되는지 보려했다는 점에서 그 역시 표상의 이론가였다고 말한다. 사실 신고전파경제학자들은 마르크스를 리카도와 스미스를 뒤잇는 고전정치경제학의 이단적인 후예쯤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르크스 모든 부는 그것에 투여된 노동을 통해 표상될 수 있다는 가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예컨대, x량의 상품 A와 y량의 상품이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에 투여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크기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짐작과 달리 마르크스가 표상하기란 틀을 통해 부를 분석하려 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현상하기란 틀로 표상하기란 것을 비판하려 했던 것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표상한다는 것과 현상한다는 것은 질서의 편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것과 적대의 편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것 사이의 차이와도 똑같다. 부는 어떻게 표상되는가를 물음으로서 표상의 정치경제학자들이 사물들의 조화로운 교환의 세계를 꿈꾸었다면 마르크스는 표상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지 않을까. 그가 ‘이윤율의 경향적인 저하’니 위기(crisis)니 하는 것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도 아마 이것 아니었을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는 결국 자본주의는 붕괴하게 되어있다는 예언이 아니라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자신의 경제적 현실을 표상하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려 했던 것 아닐까.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란 결국 자신을 작동하기 위해 자신을 하나의 조화로운 교환의 질서로 표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내고자 폭력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이고, 그런 점에서 그는 표상의 가능성/불가능성이라는 생각을 제안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표상하기를 현상하기로 비판한 것이었다고 말할 때, 내가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이런 표상의 체계를 성립하기 위한 폭력이다. 아마 이런 폭력은 최근의 금융위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더 이상 아무런 지불수단도 될 수 없게 된 엄청난 양의 화폐를 살려내기 위하여 미국과 유럽은 엄청난 구제 금융을 퍼붓는다. 그 때 그 구제금융이란 게 바로 부의 표상으로서의 화폐가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화폐가 더 이상 부의 표상이 될 수 없을 때 자본주의는 움직이길 멈춘다. 그렇다면 화폐를 통한 부의 표상을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자본은 구제금융을 퍼붓는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마르크스가 상품을 통해 자본주의를 분석하려 한 것인지 이해할만 하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표상인 상품을 다룬다. 상품이라는 것은 공통의 것, 그것의 본질을 표상한다. 물론 그것을 이전의 정치경제학자들은 노동이라고 부른다.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그런 가정이 아주 웃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그는 노동이란 것은 어떤 본질의 현상으로 표상되기 위하여 도입되어야 하는 폭력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상품이 노동을 표상하는 것이고자 한다면 이때의 노동은 빵을 만드는 일, 기계를 조립하는 일, 셔츠를 만드는 일 같은 구체적인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마르크스를 읽어본 이라면 누구도 알듯이 ‘추상 노동’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을 추상화한다는 것은 노동의 어떤 구체적인 특성을 낱낱이 해부해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 노동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노동이란 낱낱의 노동을 모두 합쳐놓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 노동 혹은 마르크스가 즐겨 쓰는 표현을 빌자면 사회적인 노동이란 인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이 노동으로 표상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폭력이 개입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상품이란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표상한다고 간주하는 노동이 이미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노동력 상품이라고 고쳐 쓴다. 그리고 자기가 기존의 정치경제학과 다른 점은 오직 여기에서라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말할 때, 그는 표상되는 것(노동)이 이미 표상하는 것(상품) 속에 전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이 상품을 통해 표상된다고 말할 때 그 노동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이미 그 노동은 상품으로서의 노동, 즉 표상되기를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라 이미 표상되어진 것으로서의 노동, 즉 자본이 만들어내는 표상의 세계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표상될 수 없는 노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표상한다는 것은 이미 표상되어지는 것이 표상하는 것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순에 봉착한다. 그리고 이 모순이 바로 마르크스가 자본의 적대적인 모순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은 모든 경제적 현실을 현상하게 하는 비밀이다. 이 모순은 자본의 편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것은 표상하기란 자신이 작동할 수 있도록 이미 그 기원에 폭력을 도입하고 또 그것을 완벽히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본주의는 부를 표상하는 자신의 질서를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상품은 노동을 표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려 자본을 ‘현상’한다. 그것은 노동이란 것을 지배하기 위하여, 상품, 화폐가 노동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하여, 자본은 무엇보다 먼저 노동을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놓아야 한다. 거기에는 자연스러운 것이란 하나도 없다. 여기에는 노예 무역에서 시작하여 토지에서 농민들을 쫓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식민지를 탈취하는 것에 이르는 역사적인 폭력이 포함되어 있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표상하기를 현상하기로 전환시켰다고 말할 때, 그는 실은 노동의 표상으로서의 상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본은 상품으로 자신을 현상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표상의 질서라는 근대의 담론을 결정적으로 공격하는 현상의 폭력이란 담론을 제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직 그것 뿐!
그렇다면 이것이 상품의 이미지를 분석하는데 어떤 도움을 준다는 것일까. 이미 말했듯이 상품은 노동을 표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지에 대하여 대해서도 같이 말할 수 있다. 이미지는 대상을 표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이미지는 표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우리 시대의 시각문화 분석의 상식과는 매우 어긋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미지가 대상을 표상한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다. 이미지가 대상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증명사진에 찍힌 내가 자신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텔레비전에서 본 현장 사진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짓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표상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현상하기란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광고 사진을 살펴볼 때 이는 더욱 그러하다.

그림 코카콜라, 김한용, 1970
그림 미국 코카콜라 광고캠페인의 사진, 1970
그럼 에두르지 말고 김한용의 사진으로 들어가자. 내가 여기에서 살펴볼 그의 광고 사진은 그를 한국 광고 사진의 역사에 등록시킨 코카콜라 광고 사진이다.
“‘오직 그것 뿐!’으로 대표되는 코카콜라 광고(1970)는 한국 광고의 현대화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한국 광고 시장에 진출한 코카콜라는 광고에 새바람을 일으켰으며, ‘It’s the real thing’이라는 영문 슬로건은 ‘산뜻한 그 맛, 오직 그것뿐!’으로 번역되어 이 시기의 표현스타일을 주도했다.”(강조는 인용자) 김병희·윤태일, ‘한국광고회사의 형성: 구술사로 고쳐 쓴 광고의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66쪽
“코카콜라가 한국에 진출할 무렵의 광고 캠페인 테마는 ‘It’s the real thing’이었다. 우리말로는 ‘산뜻한 그 맛, 오직 그것뿐’으로 옮겨진 코카콜라의 광고가 한국광고계, 특히 크리에이티브 면에 미친 영향은 측정하기 힘들만큼 컸다. 철저한 조사에 기초하여 컨셉트를 정하고, 광고를 캠페인으로 끌고 나간다는 기본개념이 도입되었다. 광고의 아이디어를 나타내는 카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했으며, 연간 광고계획에 따라 프리젠테이션을 하고나면 변함없이 캠페인을 밀고 나간다는 새로운 광고방법은 그 당시 한국 광고계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전 매체를 일관하는 광고표현, 제작비의 대담한 투입, 사진에는 김한용, 편곡을 위해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작곡가 최장권, 노래에 조영남을 쓴 것 따위는 일찍이 한국 광고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강조는 인용자)” 신인섭·서범석, ‘한국광고사’, 나남출판, 296-7쪽
방금 인용한 것은 한국 광고의 역사를 다루는 텍스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서술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코카콜라의 ‘상륙’이 한국 사회의 물질문화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의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앞의 인용문에서 말하듯이 그것은 ‘크리에이티브’를 도입함으로써 광고 산업을 바꾸었다. ‘크리에이티브’란 광고산업 내부에서 상용하는 흥미로운 방언(方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에이티브가 광고를 생산하고 조직하는 작업공정을 조직하는 이름이든 아니면 광고란 천재적인 작가의 영감과 솜씨로 인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자 만들어진 내러티브의 일부이든 크리에이티브란 용어를 만들어내며 광고산업을 전환시킨 미국과 영국의 광고회사들은 모두 창업주의 이름을 딴다. 데이비드 오길비, 레오 버넷에서 사치&사치에 이르는 모든 광고회사의 이름들은 ‘신화적인’ 크리에이티브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한다. 광고를 이끈 영웅들의 신화적인 역사란 점에서 광고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으로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마크 턴게이트, ‘광고판: 세계 광고의 역사’, 노정휘 옮김, 이실MBA, 2009

이는 우리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초창기 코카콜라 광고 크리에이티브는 이렇게 전개되었다.  1968-1969: “마시자, 코카콜라(Let’s drink, Coca-Cola)”  1970-1977: “오직 그것뿐(It’s the real thing)”  1978-1980: “즐거움을 더해주는 코카콜라(Coke adds life to)”  1981-1982: “코카콜라와 함께 웃어요(Have a Coke and a Smile)”  1983-1987: “코카콜라 그것 뿐(Coke is it)”[김병희·윤태일, 앞의 책, 67-8쪽]
또한 한국에서는 시리즈라고 불리는 이른바 캠페인 광고를 통해 광고가 제시되는 형식에서의 혁신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코카콜라 광고가 신기원을 도입했다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 광고가 “한국 광고의 현대화”이자 “한국 광고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역설할 때, 그것은 또한 광고 자체를 떠나 사진이란 이미지의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각각 1968년과 1969년에 우리나라에 상륙함으로써 국내 청량음료업계는 크게는 상륙품 대 국산 ‘콜라’로, 그리고 이는 다시 ‘코카’ 대 ‘펩시’ 및 국내 기존 제조업체의 ‘칠성’ 대 ‘서울’로 각각 판도를 압축하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에는 총 68개의 청량음료메이커가 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의 군소업체들은 성수기 한철을 바라고 영세한 규모로 가동하고 있으나, ‘상륙’ 콜라의 국내 대 메이커에 눌려 1969년에 들어서면서 기업계 전반에 걸친 자금난의 중압으로 도산된 기업체가 많아졌다. 즉 1964년에 42개, 1966년에 48개, 1967년에 69개, 1968년에 81개까지 늘어났었던 청량음료 메이커 수가 69년에 들어 13개 업체의 도산으로 68개 업체로 줄어든 것이다.
…… 다수의 국내 생산업체 중에서도 대기업인 ‘필성’과 ‘서울’이 ‘코카’, ‘펩시’의 두 상륙품과 서로 경쟁을 하면서 시장확보를 위하여 주력하고 있다. 1968년 이전 ‘코카콜라’가 상륙하기 전에는 東邦 청량음료 주식회사의 ‘칠성’(스페시콜라)이 청량음료 판매시장을 독점하다시 했었다.
‘코카’와 ‘펩시’가 상륙하여 치열한 판매경쟁이 벌어졌던 1969년에는 ‘칠성’의 시장점거율이 대폭 후퇴하긴 하였지만 아직도 전시장의 35%를 점거하고 있어, 적어도 상륙제품 ‘콜라’보다 10%포인트 정도는 각각 앞지르고 있다. 즉 1969년 청량음료업계의 4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칠성’, ‘서울’, ‘코카’, ‘펩시’의 판매기록을 보면 ‘칠성’이 전술한 바와 같이 약 35%, ‘서울’이 10.2%, ‘코카콜라’가 25.5%, ‘펩시콜라’가 24.3%를 점하고 있고 나머지 5%는 국내 군소 ‘메이커’가 점거하고 있는 실정이다.“ ‘1970년 한국경제연감’, 전국경제인연합회, 1970, 290-1쪽
앞의 인용문에서 코카콜라는 ‘상륙품’으로 묘사된다. 수입품도 아니고 외제도 아니라 왜 상륙품일까. 나는 그것이 제법 적절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이미 ‘거무스레한 달콤한 액체’인 콜라란 물건은 충분히 있었다. 그와 경쟁을 벌이고도 남을 숱한 음료들 역시 있었다. 그런 점에도 코카콜라는 음료 시장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사물들의 가짓수 가운데 하나가 추가되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콜라의 한 종류, 음료의 한 가지가 아니라 그 모두, 여기에서는 음료수라는 물건 혹은 사물을 상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코카콜라는 다른 무엇보다 상품 중의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그 당시 코카콜라의 지역 광고 캠페인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카피였다고 알려진 “오직 그것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그것 뿐”이란 사물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 아닐 것이다. 가장 맛있고, 가장 근사하고, 가장 좋은 무엇이라면 그것은 상품이 될 수 없다. 사물은 그것의 쓸모와 미적 가치를 사람마다 다르게 발휘한다.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겨준 손목시계는 내게는 시계이기에 앞서 중요한 징표이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사물일 수 없다. 사물은 이처럼 구체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상품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아니 똑같아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 그런 사물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물이 상품이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상품은 사물로부터 해방되어 사물을 보편적인 매력의 대상으로 끌어올린다. 상품은 사물에서 사물로서의 특성을 빼앗고 사물 이상의 무엇을 각인한다. 그렇게 새겨진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무엇이 좋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오직 그것 뿐”이란 말보다 더 적합한 말도 없을 것이다. 실은 그 말은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그것일 뿐이다. 오직 그 것뿐, 혹은 영어의 카피처럼 바로 그 “진짜(the real thing)”야말로 상품이라는 것을 표상하기 위해 예약된 표현이 아닐까. 이 때 사진은 물건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에서 등장하는 사물의 이미지는 그 사물을 상품으로 현상하게 한다. 더불어 사진 속의 사물도 상품으로 된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원근법적인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1970년 코카콜라 광고가 등장하면서 상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또한 본격적인 ‘소비자’ 즉 사물을 구입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등장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 상품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어떤 음료가 내게 “바로 그것”이 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를 위해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바로 사진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알다시피 내가 마시는 맥주는 이미 사진에서 본 맥주이다. 내가 입고 있는 청바지는 이미 사진으로 본 청바지이다. 내가 구입한 자동차는 당연한 말이지만 지겹도록 사진으로 이미 본 자동차이다. 따라서 사진으로 이미 본 적이 없는 상품이 아니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한 번도 사진으로 찍혀 본 적이 없는 상품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설령 그것의 사진을 본 적이 없더라도, 나는 이미 그것을 사진 속에서 본 듯한 대상처럼 대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이미 사진과 함께 있는 상품이다.
“코카콜라의 광고 캠페인은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려 한국 광고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함과 동시에 코리에이티브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카콜라 캠페인에는 특유한 방법이 도입되었다. 우선 철저한 조사에 기초해 콘셉트를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캠페인 주제를 개발한 다음, 소비자조사를 바탕으로 조사에 나타는 결과를 보완해주는 캠페인 주제를 결정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이는 당시 국내에는 처음으로 시도했던 방법이었으며, 아이디어 위주로 표현되던 기존의 광고방식에서 탈피해 소비자에게 광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광고계에는 연간 광고계획에 따라 한 가지 광고 콘셉트를 꾸준히 끌고 나가는 캠페인 효과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또한 모든 매체에 일관되게 광고표현을 한다든가, 제작비를 대담하게 투입하게 한다는 가하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접근방법을 시도했다.(강조는 인용자)” 김병희·윤태일, 앞의 책, 68쪽
코카콜라 광고에서 상품의 출현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지금 인용한 글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아이디어 위주로 표현되던 기존의 광고방식에서 탈피해 소비자에게 광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표현이 눈에 띈다. 광고의 대상이 된 상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면 이런 전환은 더욱 두드러진다. 주요 광고주 10개를 추렸을 때 대부분을 차지하던 제약회사는 1970년대가 지나면서 고작 하나 정도만 남기고 사라진다. 신인섭·서범석, 앞의 308-11쪽

그리고 광고 시장은 식료품과 전기제품들 중심으로 대체된다. 그것은 “알리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에서 효율적으로 알려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앞의 책, 396쪽
의약품은 사물로서의 가치에 갇혀 있는 미숙한 상품이다. 그것은 질환이라는 분명하고 특정한 쓸모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점에서 아직 상품으로서의 자리에 이르지 못한다. 또한 그것은 효능이라는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지 코카콜라처럼 모두를 위한 ‘그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의약품 광고가 몰락하고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식료품 광고가 광고의 세계를 석권하게 되자, 광고는 상품이라는 언어, 즉 기호(記號)를 다루는 일로 바뀐다. 그리고 상품은 사진적 표상을 통해 존재하게 되는 사물이 된다. 그것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라 특정한 상징적 가치를 가진 물건, 즉 ‘그것’이 된다. 거무스레한 달콤한 물이 ‘오직 그것 뿐’이 되듯이 말이다.
최선의 이미지, 상품의 이미지
김한용은 아직도 “김한용 사진연구소”를 운영한다. 그곳은 아마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연구소일 것이다. “사진연구소”는 한국 사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낱말이다. 그것은 광고 사진이 등장할 때, 사진을 둘러싼 가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우리는 광고 사진과 더불어 사진의 표상적인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사진연구소는 사진을 연구하는 곳일까? 물론 아니다. 재미나게도 사진연구소는 광고사진을 찍는 곳을 가리키는 독특한 이름이었다.
“사진 스튜디오는 벌써 1950년대에도 있었고 1960년대에도 있었고 상당히 오래됐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뭐라 그럴까 광고 사진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몇 집 안돼요. 그런 데는 오히려 사진연구소 이런 간판을 붙여가지고 일을 했지요 …… 당시에 원로인 김한용 사진연구소라든지, 미대 출신으로 유명한 사진연구소 하는 사람들 몇 명이 있었어요.” 김병희·윤태일, 169-70쪽
앞의 인용문을 보면 광고 사진을 하는 곳이 사진스튜디오(더 익숙한 말을 찾자면 사진관 혹은 사장(寫場)일 것이다)가 아니라 사진연구소란 간판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진스튜디오와 사진연구소는 다른 사진을 찍는 곳이다. 그렇다면 두 곳에서 나오는 사진들은 어디가 다른 것일까. 인물 사진과 광고 사진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싱거울 뿐 더러 그럴싸하지도 않은 답일 것이다. 인물 사진이 없는 광고사진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광고에서의 인물 사진은 전연 다른 인물 사진을 생산한다. 나는 사진스튜티오와 사진연구소의 차이는 바로 이미지로서 사진의 가치, 사진의 표상적 가치와 관련한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연구소는 광고사진을 찍지만 그것은 또한 사진에 새로운 표상적 가치를 끼워 넣는다. 그 가치란 바로 사진에서 표상되는 대상을 “오직 바로 그것”으로 ‘실체 변환’(transsubstantiation)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김한용 씨와 제품 하나를 찍는데 스물다섯 번을 찍었다니까요. 하루건너 매일 저녁마다 찍으면서 코카콜라 프로덕트가 어떻게 찍어야 잘 나오는지를 제가 터득한 거죠. 매일 찍어 현상해 보고, 제가 병 뒤에 다 페인트질까지 했다니까요. 그렇게까지 해서 찍었어요. 김병희·윤태일, 237쪽
“코카콜라 업무에 아직 익숙하기도 전인 1970년 새해 벽두에 홍콩으로부터 스틸 CF 제작할 카메라맨을 파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우리나라 정(靜) 사진계에는 김한용 씨, 이윤정 씨, 한영수 씨 등 원로들이 주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사진의 내용이 정적인 것이든 동적인 것이든 하나같이 4X5 대형 카메라를 받쳐놓고 모델에게 움직이는 동작을 그럴 듯하게 시킨 후 ‘움직이지 말고, 하나 두울 셋-찰칵’하고 찍는 것이 고작이었다. 초점이 정확하게 맞아 있는지는 사전과 사후에 결과물을 놓고 확대경을 들고 확인해야 가능했다.” 윤석태, 2001, 56-8쪽
그림 유한킴벌리 코텍스 광고 1973년
그림 4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이 촬영한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1955년 6월호에 게재된 사진
이런 이야기는 광고 사진을 제작하는 과정에 담긴 노고에 관하여 말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실은 더 이상 사진적 이미지를 제작하는 일이 전같지 않게 되었을 표지하는 이야기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광고 사진에서 최고의 컷을 얻는 일은 사진스튜디오에서 인물사진을 찍을 때 최선의 사진적인 이미지를 얻는 일과 사뭇 다른 일이지 않았을까. 따라서 ‘사진연구소’에서 사진을 뽑아내는 일이 더 복잡하고 정교한 솜씨를 요하는 일이 된 것이었다기보다는, 아마 ‘연구’가 필요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연구’란 말이 광고 사진에서의 사진, 그 사진의 표상적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광고 사진은 그래픽을 중심으로 조직된 이미지, 즉 그래픽의 연장으로서의 사진일 수도 있다. 이때의 사진은 그래픽의 레이아웃과 가장 잘 어울릴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일부이기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초기 광고 사진은 회화나 그래픽과 동일한 표상적 가치를 가진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이를테면 그림 3과 그림 4를 보자. 1973년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코텍스 광고에서 우리가 보는 사진 이미지는 실은 화면의 기하학적인 구성에 따른다. 즉 그것은 곁에 놓인 문자 텍스트와 함께 그래픽적인 레이아웃을 위해 이바지하는 사진이 된다. 이때의 사진은 사진 이미지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는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이 찍은 그림 4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다. 이 사진은 광고의 역사를 서술할 때 흔히 아트디렉터의 전설이라고 말하는 알렉시 브로드비치(Alexey Brodovitch)가 편집한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r>의 광고에 등장하는 사진이다. 이 때 이 광고 속에서의 사진은 전적으로 그래픽에 가까운 이미지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것은 이후의 광고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연 다른 표상적 가치를 가진다. 이 사진은 그래픽이라는 이미지 구성 원리에 종속된 채 자신의 표상적 가치를 한정한다.
그러나 이미 그림1과 그림2에서 보았듯, 미국에서의 코카콜라 광고 캠페인과 김한용의 광고 사진에서 보는 코카콜라는 더 이상 이미지가 놓여있는 표면의 구성, 즉 그래픽적인 이미지의 구속에서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여기에서 사진은 사진 이미지 그 자체로서 말을 건넨다. 물론 초기 텔레비전 광고 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초기 텔레비전 광고에서 동영상은 사진의 연속체나 슬라이드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이려니와 한국에서도 초기의 텔레비전 광고는 대개 슬라이드쇼를 조직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 광고 사진가를 “정(靜) 사진”이라고 서술할 때, 그것이 스틸 사진에 대한 한국의 지방적인 번역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그것은 사진을 어떻게 지각하고 체험하는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게 된 사진 이미지는 아직 동영상을 통해 표상되는 사진 이미지로서의 자율적인 표상적 가치를 획득하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불연속적인 전환은 컬러텔레비전이 출현하고 무엇보다 MTV가 등장하게 되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둘러싼 광고 이미지 제작자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새로운 매체 형태에 부합하는 기술적인 적응이나 변화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들을 것이 아니라 광고에서 사진의 표상적 가치를 규정하기 위하여 그들이 무엇을 하였는지 헤아려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림 광고 사진 속의 윤정희, 김한용 사진

그런데 김한용이 코카콜라 사진을 통해서 보여준 “오직 그것 뿐”으로서의 사진, 즉 상품적 이미지로서의 사진이 무엇을 뜻하는지 헤아릴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는 인물 사진일지도 모른다. 인물 이미지가 어떻게 변천하였는지를 풀이하는 손쉬운 방법은 아마 관상학에서 골상학을 거쳐 사진적 도상학으로 이어지는 변천을 떠올려보는 것이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상쟁이가 얼굴을 읽는 방법과 광고사진가가 얼굴을 읽는 방법이 같을 리 만무할 것이다. 현대 소설이 인물의 캐릭터를 주조(鑄造)할 때, 즉 그가 악인이거나 범인임을 독자에게 알려주고자 할 때, 소설은 인물의 얼굴 인상을 채용한다. 그것은 관상학적인 지식을 통해 인물의 낯과 그의 인품 즉 캐릭터를 상관시킨다. 예컨대 움베르토 에코가 <얼굴의 언어>란 글에서 “음침하게 충혈된 눈, 튀어나온 턱, 납작코, 크고 뾰족한 송곳니, 땀에 절은 뻣뻣한 턱수염을 한 사내에게 지금까지 저축한 돈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어떻게 억누를 수 있겠는가” 움베르토 에코, ‘얼굴의 언어’, ‘예술과 광고’. 김효정 옮김, 열린책들, 2009, 69쪽
라고 말할 때, 그는 얼굴 이미지는 절대 투명하지 않음을 일러준다. 다시 말해 그는 얼굴이란 항상 어떤 담론을 통해 매개된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김한용의 주요한 업적이라고 할 인물 사진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없을 것이다. 김한용이 찍은 인물 사진은 상품이 된 인물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진에서 표상하는 개인을 지운다. 그의 사진은 엄앵란을, 윤정희를, 유지인을 보여주지만 실은 그가 보여주는 것은 각 개인들의 인품도 개성(personality)도 아니다. 그의 인물 사진은 상품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사진처럼 상품화된 인격으로서의 인물을 표상한다. 아마 그런 인물 사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한국에서 광고를 소비하는 독특한 매체였던 달력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림 대한석유공사 1969년 달력, 김한용

그림 코카콜라 1971년 달력, 김한용

“70년대 우리나라 광고산업은 소비자 서비스 측면에서 캘린더의 비중이 의외로 높은 편이어서 광고주마다 경쟁적으로 새로운 캘린더를 제작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코카콜라 내에서도 판매상이나 소비자용으로 캘린더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계절별로 CF용으로 촬영된 6X6 스틸 필름 중에서 두 달에 한 장씩 총 6매의 캘린더에 24장의 사진을 골라 추천했다.” 김병희·윤태일, 70쪽
앞의 코카콜라 달력 광고 제작에 관한 회고에서 보듯이 달력 제작은 광고 산업 자체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이는 대중이 사진을 소비하는 방식에서의 전환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때 사진을 전유하는 방식에서의 전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물 사진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극장에서 진열된 영화 스틸 사진이 배역이나 개성적인 개인이 아니라 ‘스타’라는 독특한 인물(figure)을 창조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달력 사진의 도상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이 독특한 인물 사진의 사진적 미학은 실은 ‘상품-얼굴’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상품의 이미지로서의 사진이 그러한 것처럼 육체의 일부로부터 해방된 얼굴을 창출하였을 것이다.
맺음말에 대신하여
장 보드리야르는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라는 악명 높은 저작에서 ‘생산물’이 존재하던 사회에서 ‘사물’이 존재하는 사회, 다시 말해 “사물의 의미목적성, 전언(傳言) 및 기호로서의 지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바로 바우하우스였으며 그 때문에 ‘물건의 혁명’에 관한 연대를 논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바우하우스로부터이다”고 주장하였다. 장 보드리야르, “디자인과 혁명 또는 정치경제학의 단계적 확대”,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이규현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2 211-2쪽

여기에서 그가 생산물과 사물이라고 칭하는 각각의 낱말을 우리는 물건에서 상품이라고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신화적인 슬로건을 통해 기억된다. 그 때 그들이 그 슬로건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디자인을 위한 하나의 목표를 내거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실은 디자인 자체를 창립하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때까지 전연 양립할 수 없었던 모든 물건들을 등가화(等價化)시킨다. 스푼과 의자, 양탄자, 부엌 벽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아마 그 때까지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우하우스는 그것을 모두 기능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값을 지닌 물건으로 간주하였다. 그것은 부엌의 사물, 요즘말로 키친웨어(kitchen ware)라는 물건의 집합에 속한 등질적인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엌에 속한 사물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공통의 기능에 따라 공통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스푼과 식탁과 접시, 의자는 동일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따라서 바우하우스는 물건을 표상하는 새로운 지평을 설립하였다. 그런데 이는 모든 물건을 상품으로서 등가화하는 자본주의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적인 삶의 물건들을 상품으로 표상하는 세계가 도래함으로써 있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우하우스의 실험은 또한 동시에 이미지로서의 상품의 세계, 엄밀한 의미에서의 소비사회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신호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진에서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김한용의 사진이 한국 자본주의 물질문화에서 수행한 역할 역시 이러한 것 아니었을까. 그는 구체적인 현실의 대상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가치, 여기에서는 상품으로서, 상품과 동등한 얼굴로서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사진을 생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실은 김한용의 사진을 사진의 역사적 연대기 속에 가두는 것은 그의 사진이 만들어낸 효력을 억압하거나 망각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그의 사진을 한국 자본주의 물질문화의 역사 속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때 사진은 물질문화의 한 성분이 된다. 그것은 사물이 된 상품과 더불어, 추상적인 아름다움의 도상이 되어버린 얼굴과 더불어, 특정한 형태를 취하게 디자인된 물건과 더불어, 상품을 수식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어법을 수정하게 된 언어와 더불어, 함께 이야기되어야 한다. 사진은 고독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김한용의 사진은 그러하다. 한국 자본주의 물질문화의 궤적과 함께 한 사진이며 또한 그것을 증언하는 사진이기에, 그의 사진은 한국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기록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사진 이미지의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존재한다. ❍
_김한용 사진전을 위해 쓴 글. 일부 그림은 제외. 아직 미출간 원고이므로 글에서의 인용은 자제!

<丙戌年>을 위한 슬라이드

Yu Dong Ling
Yu Dong Ling
Yu Dong Ling
Yu Dong Ling
Yu Dong Ling
Yu Dong Ling
Yu Dong Ling

중국 현대미술의 작가인 유동링의 작업입니다.
때늦은 것이긴 하지만 개의 해를 위한 송가로
적절한 야유인 듯 하여 올려봅니다.
조용한 감상을 위해 짖지 않기! …:)
시간이 나신다면 포스트-사회주의의
처량한 말로에 관하여 3초 이상 생각해 보기!
마오 동지. 제가 다 미안합니다.
(일전 홍콩에서 들른 벼룩시장에서 전 미친듯이
모택동 기념품을 샀습니다. 당신의 작은 붉은 책과
당신의 배지와 사기로 만든 컵과 당신을 책을 흔드는
작은 여성투사가 있는 탁상시계와 당신의 낯이 새겨진
작은 접시를. 그래서 어느 쇼핑퀸으로부터 졸지에
마오 쇼핑 퀸으로 낙인찍혔습니다. 말인즉슨 맞지요.
저는 당신을 쇼핑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물신주의로라도
당신의 文化革命에 대한 저의 믿음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영면이 안될 당신을 위하여
그러나 사유하는 미술가가 있다는 기쁜 전갈, 드립니다.
광기의 시대로 규탄하는 당신의 시대를 위해 마련된
끔찍한 정경은 붉은 책을 흔드는 홍위병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을 규탄하는 자들의 세계는
애완견을 안고 돈다발을 흔드는 자들의 세계입니다.
이 품위 없고 멍청한 세상을 향해 어느 작가가 보내는
대위법은 아주 현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중국, 그리고 당신들이 일으킨 革命,
그것이 쉬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증좌입니다.
기뻐하시길…..
– 블로그를 쓰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누가 나의 글을 읽고 있을까, 적잖이 궁금하다. 여기에 올라오는 글을 읽는 이로 내가 아는 이들은 몇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이야기를 건네면 답해 주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친구이고 싶고 또한 지지받거나 거부당하길 원한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무언가 글을 써야할 이유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읽었다는 기별이라도 남겨주시길…

포스트-민중미술을 넘어 – 배영환의 <남자의 길>과 그 성취

“상식적인” 삶, 그리고 “상식적인” 미술가

배영환, 완전한 사랑

배영환은 자신의 미술가적 정체성을 고백하는 어느 글에서, “반은 예술가로 반은 무능력자로 살아갈 거룩한 결심”을, 농반진반(弄半眞半) 다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다시 작가의 말을 빌자면 “우리 착하게 정말 상식적으로 살면서 각자의 길을 가자”던 비상식적인 약속대로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상식이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믿음에 관하여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식을 따르는 짓은 손해일 뿐이라는 영악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냉소주의자의 상식일 것이다. 그러므로 배영환이 일컫는 상식적인 삶이란 비상식적인 삶을 기꺼이 살아가면서 동시에 상식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냉소주의를 향해 보내는 야유일지도 모른다. 이런 야유를 발설하는 자리에 선 인물과 자신의 미술가적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것은 고상한 엘리트적 예술가를 고발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런 몸짓을 간단히 비판의 몸짓으로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현대 미술의 흔한 유행 가운데 하나는 미술가의 권위와 정체성에 대한 공격과 비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식에 대한 믿음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동시에 그 어떤 죄의식이나 거북한 감정 없이 몰상식하게 살 수 있는 냉소주의자의 모습은 또한 미술가의 모습과 겹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현재의 미술가들 역시 자신의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극구 부인하면서, 아니 나아가 미술가 아닌 정체성과 동일시하면서, 미술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지 않는가. 이는 마치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취하는 논리와 흡사한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상품은 으레 ‘대량생산시대’ 혹은 ‘공급자중심 경제’의 상품 정체성을 비판하는 시늉을 취한다. 예컨대 현재의 자본주의에서 상품은 언제나 건강을 걱정하고 환경을 보살피며 개성과 자유를 생각하는 상품 아닌 상품으로 자신을 내세운다. 따라서 상품은 더 이상 더 이상 경제적 대상이 아닌 듯이 자신을 뽐낸다. 따라서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다거나 미적인 쾌감을 향유하는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상품은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즉 맹목적인 이윤의 추구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개성과 자유를 질식시키는 과거의 상품의 세계를 힐난하면서, 더욱 집요하게 자신의 상품 정체성을 관철한다.
포스트-민중미술과 작가의 정체성

(중략)
완전한 사랑에의 꿈
배영환은 <남자의 길>에서 금욕적일 만큼 매우 단순한 설치를 제시한다. 작가가 손작업을 통해 꼼꼼하게 혹은 처량하게 복원(?)한 기타들과 그 기타를 만들면서 사용한 재료의 출처이자 또한 매체로서의 기타의 서사적 유래를 가리키는 사진들이 전시의 전부이다. 그리고 전시 작품 가운데 표제를 가지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란 이름을 단 쌍기타 한 점과 역시 그 기타를 장식한 재료의 출처이자 서사적인 유래를 가리키는 자개 경대의 사진과 볕이 내리쬐는 덤불숲에서 기타를 찍은 사진이 전부이다. 그렇지만 이는 그의 직전의 작업인 <유행가> 작업보다 정서적인 감응이 훨씬 진하고 강하다. <유행가>는 흘러간 유행가의 가사를 다양한 오브제를 써서 직접 옮겨 적는 작업이었다. 알약이든 깨진 병조각이든 다양한 매체는 가사가 언급하는 현실(사랑, 죽음, 고독 등)을 재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런 재현의 과정에 연루된 자들의 삶을 환기시켜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독하게 멜랑콜리한 것이면서 또한 동시에 비루한 주변적인 존재의 삶을 단숨에 현상하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길>은 그런 주변적인 삶에 관한 서사적인 재현의 틀을 쫓으면서도 이전의 작업과 단절을 꾀한다. 얼핏 주변적인 삶의 세부를 관찰하며 그것을 유행가와 각기 짝짓는 형식을 취하던 작업이 허세와 위악에도 불구하고 순정하고 소박한 남자의 이야기로 단순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외면적인 축소의 형태는 그의 작업의 반성적인 확장으로 뒤집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주변적인 삶을 향한 연민이나 감상적인 애착이라면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크게 감동할 부분이 없다. 그의 작업보다는 훨씬 정교한 아니 감상적인 연민의 공식에 통달한 “휴먼 다큐”가 훨씬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과 자선의 윤리로 분노와 저항의 윤리를 대체하고, 민중을 피해자나 희생자로 재현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윤리-정치적 좌표라면, 우리가 그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차이는 갤러리에 전시된 미술작품이라는 제도적 형식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의 길>은 그런 자리에 서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남자의 길”은 알레고리나 패러디같은, 성행하는 편의적인 수사법과 거리를 취한다. 그가 선택한 “남자의 길”이란 제목이나 유일한 작품 표제인 “완전한 사랑”은 맥락, 특수성, 차이를 강조하는 유행 담론에 비추어보자면 매우 저속하거나 아니면 맹목적인 것이다. 그것은 “남자”라는 보편적인 인물을 내세우고 “완전한” 사랑이라는 수사학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쩌면 전형을 향한 충동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물론 그 때의 “남자”의 “완전한 사랑”의 길이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비루한 사랑에 대한 애상적인 향수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상실을 향하여 보내는 안타까운 그리고 추문에 가까운 물음일 것이다. 따라서 <남자의 길>을 어느 무명의 노동계급 남자의 사랑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불가능한 사회”를 향한 작가의 제유(提喩)로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완전한 사랑”과 그것을 증언하는 특수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전시하는 작가의 몸짓은, 단순히 풍속화적인 재현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을 떠맡고 있는 보편적인 주체를 재현하려는 욕망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배영환의 작업을 민중미술의 계보에 속한 그러나 그것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작가로 보아야할 이유도 제법 분명해진다. 그는 한국의 진보적인 미술 속에서 정체성의 정치학과 타협하지 않고 보편적인 주체의 재현에 충실하려는 드문 작가라 할 수 있다. 포스트-민중미술에 속한 젊은 진보적 작가들이 결국 포스트-정치적인 정치학으로 전락하였다면, 그는 민중미술의 가장 중요한 미적 정치학을 고집한다. 물론 그것이 그의 작업을 각별하고 동시에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힘임은 물론이다.
월간미술의 청탁과 친구 배영환의 압력으로 쓰게된 평론. 아직 출판되지 않은 글이라 민중미술과 전형의 관계를 논하면서 차이의 정치학이라는 포스트민중미술의 경향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부분을 생략했다. 앞뒤가 부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나의 친구에 대한 충성심은 가끔 분별력을 잃고 그들의 작업을 지지할 이유를 발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번 작업은 근사하고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