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빈더처럼 a la Fassbinder

Fox and His Friends (1975) – Rainer Werner Fassbinder

<폭스와 그의 친구들 Faustrecht Der Freiheit>은 파스빈더 스스로 우둔한 프롤레타리아 게이 주인공 역을 맡아 연기하고 또 감독했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아하고 세련된 중간계급 게이가 복권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된 게이를 등쳐먹고 버리는, 어쩌면 신파적인 게이 멜로이다. 할리우드의 멜로 황제인 더글라스 서크를 사숙했던 파스빈더의 작품 가운데, 아마 이 영화는 가장 신랄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파스빈더 식으로 살겠다고 재차 다짐한다. 그래서 “파스빈더처럼 à la Fassbinder”이다. 그는 계급과 사랑, 섹스, 섹슈얼리티를 파고드는 갈등과 불화, 적대를 탐색한다. 단 정체성에 대한 지루한 농담은 거기엔 없다. 소수자로서의 자기동일성을 단언하기에 바쁜 오늘날의 정체성 정치를 쳐다보자면 비동일성을 만드는 대립에 골몰하는 파스빈더의 영화는 과거로부터 날아온 냉정한 야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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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다도해를 떠다니는 여객선의 승객들 – 퀴어 영화에 대한 어떤 생각


James Blake – Radio Silence

얼마 전 세상에 나온 소설가 임성순의 신작 자기 개발의 정석은 제법 허를 찌른다. 이 소설은 우연히 비뇨기과엘 들러 전립선치료를 받던 중 전립선 오르가즘의 신세계에 입문한 중년 남자 주인공의 삶을 비춘다. 주인공은 나이 마흔 여섯으로, “그곳이 대한민국 평균보다 조금 작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조금 나은, 중산층의 대체로 무난했던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만성전립선염을 치료받으러 간 그는 인생 최고의 굴욕을 겪는다. 버젓이 엉덩이를 깐 채 항문을 남의 손에 내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가 전립선마사지를 위해 처방받은 아네로스라는 신기한 도구에 눈을 뜬다. 그의 말을 빌자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기러기아빠인 그는 이제 변태와 게이라는 욕설이 주렁주렁 달린 게시판을 눈으로 밟으면서 “드라이 오르가즘”을 즐기는 신세계의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멀쩡한 아니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순종 이성애자 중년 남성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 남자라는 페르소나를 압축하는 ‘아재’ 혹은 ‘개저씨’의 화신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그는 뜻밖의 인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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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꺼져다오, 좆같은 호모새끼들아


오해를 미연 방지하기 위하여 미리 한마디.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시쳇말로 ‘폴리티컬리 코렉트’하기는 커녕 그 말만 들어도 사지가 부르르 떨리는 세칭 동성연애자 혹은 호모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동성애혐오적인 증오도 아니며, 동성애혐오를 내면화한 어느 비뚤어진 게이의 자기혐오도 아니라, 친애하는 나의 재수 없는 벗들에게, 우리가 동성애자란 이유로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을 털어놓고자 하는, 의리 반 푼어치 없는 욕설일 뿐이다. 이제 모두들 노골적인 자기의 음험한 욕망을 자제하며 사회의 보편적인 선을 유지하기 위해 짐짓 위선적인 공중파 텔레비전을 보던 시대는 사라졌다. 이를테면 미국 텔레비전을 빗대어 말하자면, 우리가 보는 것은 이제 <코스비가족>이나 <달라스>가 아니라 <섹스 앤 시티>와 <퀴어 애즈 포크>이다. 케이블 채널이 창궐한 이래 우리가 바라보는 텔레비전은 갖은 싸구려 욕망을 전시하며 우리는 얼마나 솔직한가 얼마나 반항적인가 자화자찬하는 저능아들의 세계이다. 나는 거의 모든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증오한다. (고백하자면 내가 제일 증오하는 채널은 “온스타일”이다. 이 유치찬란한 채널의 미덕이 있다면 인생은 스타일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허무주의적인 채널 이름에 있다) 그러나 진정 내가 증오하는 프로그램의 리스트에 올라있는 것들은 대개 미국산 “리얼리티 쇼”이다. 우리 시대의 윤리적인 추문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현장 고발 치터스>나 <제리 스프링거쇼>같은 저질 폭로 프로그램에서부터 <미운오리새끼>같은 이른바 변신 쇼를 거쳐 <백만장자와 결혼하기2>, <배철러>같은 사랑을 두고 장난치는 기괴한 변태 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리얼리티쇼이다. 그러나 그 중에 날 가장 돌게 만드는 쇼는 단연 <퀴어 아이>이다. 그것은 적어도 게이로서의 내 삶의 위엄을 무참히 짓밟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퀴어 아이> 이후에 게이는 더 이상 성정체성이 아니다. 퀴어란 무엇인가?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상식적인 답변은 그것은 21세기 초반에 극성을 부린 어떤 소비자 집단의 정체성이란 것이다. <퀴어 아이>가 볼 품 없고 미련한 이성애자 남자를 끌어내어 그들을 ‘쿨’한 존재로 탈바꿈시킬 때, 그 극성맞은 놈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천명하는 몸짓은 쇼핑객의 제스처이다. 하긴 그들만 그러한가. 자유란 이념조차 상품의 카탈로그로 만들 줄 아는 이 멋진 “소비의 신세계”, 어디 한 구석 안 그런 데가 있는가.
<피처>라는 잡지의 청탁을 받고 기고한 글.

임태훈을 후원하는 모임을 제안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어있는 우리의 벗, 임태훈씨의 1심 재판이 끝났습니다. 지난 5월 15일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하며 우리는 아직도 서울구치소에 갇힌 수인의 신세에 놓인 임태훈 씨를 상기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알다시피 그는 최근 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의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불구속 수사, 보석 허가, 재판 유보 등의 흐름과는 달리 재판부의 “독특한” 재량과 판단에 의해, 실형 1년6개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에 그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고 동성애자의 군대 내에서의 차별을 폐지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은 이번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임태훈 씨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뜻을 한데 모으고자 합니다. 다행히 최근 서울 남부지방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3명에게 무죄판결을 내림으로써 자신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헌법이 보장하는 제 권리와 합치하는 것임을 뒷받침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임태훈씨의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보여준 인권을 향한 참담한 인식에 대한 실망에서 벗어나 이후 재판 과정에서 그의 평화를 향한 충정과 양심적인 결단이 보다 깊이 존중받고 그의 조속한 석방을 포함한 전향적인 판결이 이뤄지길 기대하여 봅니다. 이에 우리는 임태훈씨가 지난 재판 과정에서 겪었던 부당하고 모멸적인 대우를 지적하고 아울러 다음의 재판 과정에서 우리가 품은 기대와 희망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임태훈씨는 최후 진술과정에서 병역거부자 구속수사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던 중 판사의 제지에 의하여 최후진술이 중단되는 폭력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병역거부라는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했던 배경이었던 인권운동가로서의 전력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우리를 실망케 하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 임태훈 씨의 전력에 관한 기록에 충분히 제시되었던 그의 인권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참고하지 않은 채, 그에게 “무슨 인권활동을 했느냐”, “국제사면위원회는 어떤 단체이냐”는 등의 납득키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는 재판부의 성실한 심리의 태도를 의심케 할 뿐 아니라 피고인 임태훈씨의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를 품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재판의 경과를 지켜보며 임태훈 씨의 동성애자로서의 소수적 성정체성에 관련된 편견이 재판부의 심리 및 판결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인정하기 어려운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은 헌법의 근본적인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인권의 규범에 위반된다는 것이 널리 인정받고 있는 지금, 재판 과정에서 임태훈 씨의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자 차별에 대한 항의와 비판은 지극히 정당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는 그의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에 관한 언급과 검토를 기피함으로써 동성애자로서의 그의 특수한 지위와 입장을 무시하였습니다. 임태훈씨의 동성애자 정체성은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결단하게 하였던 중요한 이유이자 근거였음에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그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자 하는 노력을 거부함으로써 매우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알다시피 현재의 병역법은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병역법은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상태이고 그 위헌성 여부가 아직 판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연유로 현재까지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많은 재판이 최종 판결을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로 연기하여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임태훈씨의 경우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달리 구속 수사를 받음은 물론 보석 조치까지 거부당함으로써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최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재판부의 무죄 판결은 항소심에서 보다 전향적인 결론이 나타나길 기대하는 우리의 희망에 작은 용기를 더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임태훈씨의 예정된 항소심에서 재판부의 전향적인 접근을 기대합니다. 물론 양심적인 결단을 내린 그에게 어떤 증거 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재판부는 마땅히 보석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재판부가 그의 양심적 결단을 존중하고 평화와 인권을 향한 그의 충정을 이해하는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는 군복무에 따르는 노역과 수고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살상의 전쟁을 거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임태훈씨가 대체복무제의 도입과 개선을 한결같이 주장하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전체 병역 의무 이행 대상자 가운데 60%정도만이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나머지 40%는 병역특례 등 기타의 방법으로 병역을 이행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 복무가 곧 안보불안을 야기한다는 식의 주장이 전연 근거 없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안보와 반공이란 이름으로 국민의 인권을 서슴없이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질식시켰던 과거의 군사독재 시대의 논리로 병역 의무의 이행을 재단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한 개인의 양심에 따른 결단임과 더불어 안보와 국가적 이익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억압적으로 지배하고 훈육시켰던 구 시대의 마지막 잔재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친근한 벗, 임태훈 씨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결단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의 조속한 석방과 군대 내에서의 어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질 때까지 힘차게 투쟁할 것을 다짐합니다. 아울러 그의 처지에 공감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참여와 지지를 기대합니다.
2004. 5. 24.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임태훈을 지지하는 동성애자들의 모임
(서동진, 중전, 달래, 승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칸 영화제로 가게되었다는 소식이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한국 영화의 개가라고 뿌듯해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문득 최근 이혼을 선언한 어느 개그 우먼 생각에 마음이 신산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는 데 정작 현실에서 여자는 남자의 동네북이기 때문이다. 사실무근이라고 남편은 주장한다지만,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을 제일로 여기는 여자 연예인이 그런 결단을 내렸을 정도면 여염 여성들은 오죽 했겠는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가정 내 폭력을 보여주는 흔하고 뻔한 또 하나의 사례로 치부해서는 안될 듯 하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확대되고 또한 실제로 가장이 되기도 하면서 남자들이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자들이 이런 왜소해진 지위를 인정하기 힘들어하고 그에 따른 심리적 반동으로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게되었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일리가 없지 않다. 이미 많은 가족의 경제적 재생산 형태가 남성 가장의 임금 소득에 의존해 있지 않다. 남자들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살림하는 여자라는 공식은 현실에서는 사라졌는데, 남자들의 뇌리에는 아직 깊이 남아있는지 모른다.

최근 높아지는 이혼율에 제동을 거는 방편으로 정부는 이혼 부부들이 반드시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소통하며 지내는 연습을 시킨 후에 결혼할 자격을 주는 결혼인증제를 도입하자고까지 제안한다. 손쉽게 이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적어도 이혼이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관계를 거부하는 방편인 한 그것은 결혼을 좀 더 민주화하는 장치가 된다. 그렇지만 이혼을 선택할 자유가 보장된다고 결혼이 민주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뇌리에 박힌 기억에 매달린 채 달리 살자는 요구가 곧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 여기는 한, 결혼은 다시 폭력에 말려들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은 남자의 지위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평등을 요구하는 주장을 이렇게 곡해하는 것은 결혼뿐이 아니다 최근 의회로 진출한 민노당의 평등의 요구를 부유층의 재산을 뺏는 짓이라 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평등의 에토스에 무감각하다. 상생이란 말이 인플레를 일으키는데 정작 평등의 상생은 안 보인다. 왜 일까.
<서울경제신문 칼럼에 쓴 글>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임태훈을 석방하라

또 한 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갇혀 재판 중에 있다. 그는 성공회대학교 엔지오대학원에 재학 중인 평범한 청년이다. 그 역시 여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같이 자신의 윤리적 신념과 결단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다른 병역거부자들과 다르다. 최근 그는 자신이 증거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없음에도 구속 결정을 내린 당국의 판결에 항의해 25일 남짓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였다. 초췌한 모습으로 재판정에 출두한 그의 모습을 본 그의 벗들은 모두 안타까운 심정을 누를 길 없었다.
그의 이름은 임태훈이다. 그는 한때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가로서 동성애자의 인권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에 헌신하였고 현재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회원으로서 역시 동성애자의 사회적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진력하여 왔다. 또 그는 성공회대학교 엔지오대학원에 진학하여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자의 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의 탄핵 정국을 둘러싼 소란에 파묻혀 그의 고독한 양심적인 병역거부는 세인의 관심에서 벗어난 채 벌어지고 있다. 같은 동성애자로서 그리고 그의 선배이자 벗으로서 나는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그가 벌이는 싸움이 고독하지만은 않음을 알리기 위해 이 지면에 글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였음을 밝혔다. 아울러 현재의 병역제도 안에 포함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군복무에 적합한 적성을 확인하고 검증한다는 명분에서 이뤄지는 설문에서 성전환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되는 이를 군복무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군복무는 남성에게 중요한 권리로 인식돼 왔다. 근년 논란이 되었던 군가산점 제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군복무는 곧 남성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서 인정받고 대우받도록 하는 중요한 권리의 제도였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군복무의 권리에서 배제된 성적 소수자는 취업은 물론 공직에서의 활동에 심각한 차별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미 비공식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많은 동성애자들이 일종의 심리적 이상으로 판정되어 여러 굴욕적인 대우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처지에 비추어볼 때 그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한 것과 군복무를 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군복무 중에 있는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전혀 어긋난 일이 아니다. 그는 인권운동가로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한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서 그는 군복무가 한국사회에서 성인 남성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고 통합되는 중요한 통로임을 주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복무가 곧 성적인 소수자를 차별하는 중요한 사회적 제도임을 고발하고 비난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양심적인 병역거부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떳떳이 밝힌 채 한국의 병역제도의 반인권성을 문제삼고 있다. 나는 이미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서 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얼마나 대단한 실존적인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 또한 그것이 단순히 윤리적인 용기로서 치하받기에 앞서 또한 동성애자 사회가 형성되기 위한 필수적이고 피할 수 없는 행위임을 잘 알고 있다.
커밍아웃은 동성애자들이 침묵에서 벗어나 서로를 지원하고 결속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활동의 출발점이다.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들어 커밍아웃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라면 비겁하고 또한 옹졸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 자신이 성적 소수자임을 알리는 일은 그 사회의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이성애적인 규범과 질서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이끈다. 결국 커밍아웃은 동성애자가 자신의 거역할 수 없는 삶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에 차이를 일깨우고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가 굳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참여한 것은 나를 포함한 성적 소수자에게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임태훈의 투쟁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의 외로운 싸움의 벗이 될 것을 자청한다. 또한 그의 조속한 석방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더불어 군대 안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받으며 복무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소수적 성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차별과 모욕을 받지 않은 채 병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복무 기준과 교육이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 다시 한번 밝힌다. 동성애자로서 그리고 평화주의자로서 나는 임태훈씨의 투쟁을 지지한다.
서동진/문화평론가
http://www.hani.co.kr/section-001062000/2004/04/001062000200404071925151.html

나는 동성애자이므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

나는 게이 남성으로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 그것은 보다 나은 삶을 향한 나의 꿈이 개인적인 소망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게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나의 개인적인 욕망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동성애자는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며 만들어진 역사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는 자본주의사회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진보적인 전망과 가치에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사회는 이성애적 가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친밀한 인간관계로 만들었다. 노동의 가치를 분배하는 제도는 언제나 이성애 가족과 결혼이었으며, 그것에 의해 우리는 삶을 재생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탓에 이성애자와 구별되는 다른 모든 성의 주체는 차별과 적대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이성애 중심적인 자본주의사회를 극복하려는 꿈을 함께 꾸는 벗으로서 민주노동당을 선택한다. 물론 우리는 한국 사회를 비롯하여 많은 부유한 자본주의 사회들이, 다양성을 떠들며 동성애자들을 사회에 포용하는 시늉을 보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아가 높은 소득을 누리며 가족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세련된 삶을 산다고 동성애자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조차 한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를 일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개척자로 칭찬한다고 해서 성적 소수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고작해야 부유한 일부 남성 동성애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려니와 거기서 가리키는 동성애자란 소비자로서의 동성애자이지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동성애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올곧은 노력을 통해서만 성적 소수자의 삶 역시 변화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더욱 나는 민주노동당을 신뢰하며 이번 총선에서도 그들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모든 착취와 불평등을 해결하고 또한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금융 위기 이후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삶의 고통에 직면해 있다. 빈곤은 심화되어 가고 있고, 실업은 늘어만 가고 있으며, 교육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서비스는 기업화되어가고 있다. 규제완화와 유연고용, 자기계발과 국제경쟁력을 내세우며 정부와 자본은 우리에게 위협을 일삼고 있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꿈은 멀어지고 있고 미국의 독단적인 패권주의에 종속된 채 더러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바꾸어 가는데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가장 미더운 대안일 것으로 믿는다.

게이 결혼의 ‘권리’라는 미망

영국의 경제주간지 에서 커버스토리로 미국 대선의 게이 결혼에 관련된 이슈를 다뤘다. 선거에 임박하면서 민주당의 대선주자를 둘러싼 뜨거운 소란만큼이나 보수당의 표챙기기를 위한 데마고기도 역시 파상처럼 벌어진다. 왜 사회의 이데올로기적인 분할이 게이 결혼이란 이슈를 통해 제기되고 또한 실현될까. 게이의 결혼 권리를 둘러싸고 마치 그것이 중요한 이슈인양 게이정치학이 개입하는 것은 왜 잘못일까. 게이 결혼을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쟁점이 아니다. 그것은 친밀성을 탈이성애화시키려는 게이 정치학의 급진적인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씨빌유니언과 포괄적인 사회적 권리로서의 결혼 그리고 가정적 동반자관계(domestic partnership)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것을 한국에 빗대어본다면? 게이 호주권? 세대주로서의 권리? ….
The case for gay marriage
Feb 26th 2004
It rests on equality, liberty and even society

SO AT last it is official: George Bush is in favour of unequal rights, big-government intrusiveness and federal power rather than devolution to the states. That is the implication of his announcement this week that he will support efforts to pass a constitutional amendment in America banning gay marriage. Some have sought to explain this action away simply as cynical politics, an effort to motivate his core conservative supporters to turn out to vote for him in November or to put his likely “Massachusetts liberal” opponent, John Kerry, in an awkward spot. Yet to call for a constitutional amendment is such a difficult, drastic and draconian move that cynicism is too weak an explanation. No, it must be worse than that: Mr Bush must actually believe in what he is doing.
Mr Bush says that he is acting to protect “the most fundamental institution of civilisation” from what he sees as “activist judges” who in Massachusetts early this month confirmed an earlier ruling that banning gay marriage is contrary to their state constitution. The city of San Francisco, gay capital of America, has been issuing thousands of marriage licences to homosexual couples, in apparent contradiction to state and even federal laws. It can only be a matter of time before this issue arrives at the federal Supreme Court. And those “activist judges”, who, by the way, gave Mr Bush his job in 2000, might well take the same view of the federal constitution as their Massachusetts equivalents did of their state code: that the constitution demands equality of treatment. Last June, in Lawrence v Texas, they ruled that state anti-sodomy laws violated the constitutional right of adults to choose how to conduct their private lives with regard to sex, saying further that “the Court’s obligation is to define the liberty of all, not to mandate its own moral code”. That obligation could well lead the justices to uphold the right of gays to marry.

Let them wed
That idea remains shocking to many people. So far, only two countries—Belgium and the Netherlands—have given full legal status to same-sex unions, though Canada has backed the idea in principle and others have conferred almost-equal rights on such partnerships. The sight of homosexual men and women having wedding days just like those enjoyed for thousands of years by heterosexuals is unsettling, just as, for some people, is the sight of them holding hands or kissing. When The Economist first argued in favour of legalising gay marriage eight years ago (“Let them wed”, January 6th 1996) it shocked many of our readers, though fewer than it would have shocked eight years earlier and more than it will shock today. That is why we argued that such a radical change should not be pushed along precipitously. But nor should it be blocked precipitously.
The case for allowing gays to marry begins with equality, pure and simple. Why should one set of loving, consenting adults be denied a right that other such adults have and which, if exercised, will do no damage to anyone else? Not just because they have always lacked that right in the past, for sure: until the late 1960s, in some American states it was illegal for black adults to marry white ones, but precious few would defend that ban now on grounds that it was “traditional”. Another argument is rooted in semantics: marriage is the union of a man and a woman, and so cannot be extended to same-sex couples. They may live together and love one another, but cannot, on this argument, be “married”. But that is to dodge the real question—why not?—and to obscure the real nature of marriage, which is a binding commitment, at once legal, social and personal, between two people to take on special obligations to one another. If homosexuals want to make such marital commitments to one another, and to society, then why should they be prevented from doing so while other adults, equivalent in all other ways, are allowed to do so?

Civil unions are not enough
The reason, according to Mr Bush, is that this would damage an important social institution. Yet the reverse is surely true. Gays want to marry precisely because they see marriage as important: they want the symbolism that marriage brings, the extra sense of obligation and commitment, as well as the social recognition. Allowing gays to marry would, if anything, add to social stability, for it would increase the number of couples that take on real, rather than simply passing, commitments. The weakening of marriage has been heterosexuals’ doing, not gays’, for it is their infidelity, divorce rates and single-parent families that have wrought social damage.
But marriage is about children, say some: to which the answer is, it often is, but not always, and permitting gay marriage would not alter that. Or it is a religious act, say others: to which the answer is, yes, you may believe that, but if so it is no business of the state to impose a religious choice. Indeed, in America the constitution expressly bans the involvement of the state in religious matters, so it would be especially outrageous if the constitution were now to be used for religious ends.
The importance of marriage for society’s general health and stability also explains why the commonly mooted alternative to gay marriage—a so-called civil union—is not enough. Vermont has created this notion, of a legally registered contract between a couple that cannot, however, be called a “marriage”. Some European countries, by legislating for equal legal rights for gay partnerships, have moved in the same direction (Britain is contemplating just such a move, and even the opposition Conservative leader, Michael Howard, says he would support it). Some gays think it would be better to limit their ambitions to that, rather than seeking full social equality, for fear of provoking a backlash—of the sort perhaps epitomised by Mr Bush this week.
Yet that would be both wrong in principle and damaging for society. Marriage, as it is commonly viewed in society, is more than just a legal contract. Moreover, to establish something short of real marriage for some adults would tend to undermine the notion for all. Why shouldn’t everyone, in time, downgrade to civil unions? Now that really would threaten a fundamental institution of civili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