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간다 사진의 유령들

Arca – Desafío

만취한 채 책을 읽었던 탓일까 아니면 나이가 먹어 심약해진 탓일까. 결국 늦은 밤 나는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항복한 채 책을 덮었다.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책”이란 제목의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 잠시 생각하였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새벽 3시가 지나고 있었다. 결국 손에서 놓고 만 책은, 며칠 전 세상에 나온 디디에-위베르만의 사진 에세이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2017)이었다.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으려 했던 나치수용소의 유태인의 광기에 가까운 용기를 생각하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사진-이미지를 세상에 남기겠다는 각오를 생각하면, 나의 뒷걸음질은 비겁한 짓이리라. 끔찍한 살인과 죽음의 광경을 전하는 언어를 견디지 못한 채 욕지기를 느끼며 책을 덮은 물러터진 비위 역시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자들의 살갗과 표정 가까이 바싹 다가가 그것의 표면을, 윤곽을, 보이지 않는 비명을 확인하도록 하는 윤리적 요청은 가누기 어려웠다. 그러나 실은 그런 것들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미지, 무엇보다 아무런 값을 못하는 사진-이미지의 무력함에 대하여 한 비평가가 보내는 고문과도 같은 글은, 우리를 아니 어쩌면 나를 걷잡을 수 없는 죄의식에 빠지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사진적 진실’(photographic truth)을 비웃고 조롱하며 보낸 지난 포스트모던 사진 비평의 철없는 불장난에 대하여, 그는 거칠게 화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숨 막힐 듯 빠른 속도의 문장을 따라가며 어느 사진-이미지 앞에서도 미처 몇 초를 머물지 못하는 부박함을 힐난하는 듯한 저자의 고집에, 몇몇은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았을까. 사진-이미지는 즐거움을 주고, 잠시 쾌적한 기분에 젖게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냉소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단 한 장의 사진-이미지가 만들어지고 보전되고 증언하는데 동원되었던 압도할만한 사태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손에 주어진 4장의 아우슈비츠의 사진, 영원히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그 끔찍한 지옥이 실재했음을 고발하는 그 사진은, 우리에게 사진-이미지는 그렇게 거품과도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도록 촉구한다. 이 때 사진은 어떤 정보를 담은 기록이기에 앞서 이것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사진-이미지에서 어떤 윤리적 부하(負荷)도 찾을 수 없는 듯 보이는 교만한 이미지 소비의 시대를 끔찍하게 혐오하지 않을 수 없다.

2.

그렇지만 사진-이미지의 효력을 비웃는 데 저항하는 것은 어느 윤리적 사진 이론가의 글인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상점에서 담배를 살 때마다 마치 철갑(鐵甲)처럼 담뱃갑을 에워싸고 있는 끔찍한 사진은 사진-이미지가 얼마나 대단한 효력을 가지고 있는지 과시한다. 흡연을 하게 되면 성욕을 감퇴시키고 피부를 노화시키고 폐를 병들게 할 것이라는 등등의 협박을 전하는 그 사진-이미지들은 사진의 교육적 능력, 사진의 프로파간다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듯이 능청을 떤다. 그것은 놀랍게도 사진-이미지의 실제적 효력을 입증한답시고 들이대는 인구학적 통계를 통해 뒷받침된다. 그러한 이미지를 게재하였을 때 흡연율이 어느 정도나 감소하였는지 입증하는 다양한 자료들은, 사진-이미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신의 능력을 잃지는 않고 있음을 증빙한다(흡연경고 사진 게재 후 흡연율 평균 4.2% 감소!). 그것은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길 원하는 이들에겐 희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희소식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는 사진-이미지가 여전히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을 지녔음을 확인하고 불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이들을 비웃어야 할 것이다. 사진은 이전보다 더, 어쩌면 더욱 진득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는 사진이 가진 다른 어떤 설득하는 능력을 희생하는 조건 아래에서만 그렇게 된다. 사진의 프로파간다적인 능력을 저울질하는 방식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의 프로파간다는 한 쪽의 노선에는 증대한다. 그리고 다른 쪽의 노선에서는 감소한다. 이런 이중성을 헤아리지 못한 채 사진-이미지의 설득 능력을 결산한다면 그것은 불충분한 것일 수밖에 없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사진을 따지는 데 있어 이는 결정적이다.

3.

사람들은 더 이상 사진을 믿지 않으며 사진이 지닌 증거로서의 가치에 대해 점차 회의적이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다수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사진을 소비하는 이들의 맹랑하고 약삭빠른 태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사진으로부터 증거의 가치를 찾으려 했던 것은 사진을 보는 이들이 그런 믿음을 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사진의 정치학는 사진의 심리학이 되어버린다. 사진을 통해 범죄의 증거를 수집하고 범죄자의 인상을 측정하고 질병의 상태를 확인하며 사회 평화를 증진시키려 했던 것은 당연히 국가가 뒤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복지국가니 사회국가니 하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그 국가는 복잡하고 꼼꼼한 관료제를 발전시키면서 치안, 건강, 복지 등을 위해 애쓰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료제적 행정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보다 믿을 만하며 효과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사진에 의지했다. 사진이론가인 존 택(John Tagg)이 제안했던 “증거로서의 사진”이란 명제는 바로 그러한 현대 국가가 등장하고 활약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면 사회의 안녕과 행복을 책임지는 권력기관으로서의 국가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방만하고 비능률적인 국가가 나설 것이 아니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에 의해 모든 문제가 값싸고도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세상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20세기말부터 미국과 유럽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훗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사회질서가 자리잡았다. 당연히 사진은 이제 공무(公務)를 수행하는 데 그다지 필요가 없다. 저 유명한 미국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의 사진은 뉴딜정책이라는 미국 식 복지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위지(Weegee)의 사진도 미국의 경찰제도와 사회 안전의 파수꾼으로 자처했던 신문이나 라디오를 떠나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사진에서도 1차대전을 전후한 시기 어느 유럽 국가의 모습이 기웃댈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두는 지난 일이다. 그리고 사진은 더 이상 설득하고 선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사진-이미지가 설득가로서의 역할을 단념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사진은 더욱 맹렬하게 프로파간다가 되어 간다.

4.

지난 시대 프로파간다로서의 사진의 관람자는 국민이거나 적어도 어떤 정치적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다. 그것은 전시(戰時) 속의 국가의 국민일 수 있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따라 맞서고 있는 어느 진영의 인간일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을 보는 이들을 개인이 아닌 어떤 공통된 운명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집단적 눈으로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식으로 사진을 소비하는 이들은 세상에 흔치 않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흔한 사진 형태가 ‘셀피(selfie)’, 더 친근한 우리 말로 ‘셀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국민이라기보다는 행정서비스를 소비하고 불만과 고충을 토로하는 개인으로서의 시민-소비자는 깊이 자신을 사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적인 운명을 바꾸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정치보다는 자신의 개인적 이해를 보다 잘 대표할 수 있는 개인으로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있다. 촛불집회를 드러내는 우리 시대의 사진들이 정치적 프로파간다라기보다는 광고적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촛불집회를 기록하는 사진들은 다투어 광장으로 나와 함께 촛불을 든 시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시한다. 그런 사진들은 타인과 함께 하는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그들이 다수가 되는 장관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항공사진이든 아니면 가까운 자리에서 접사에 가까운 촬영을 한 것이든 촛불집회에서의 시민은 하나, 하나의 얼굴로서 자리 잡는다. 이는 한때 의기양양했던 계급이나 인민이란 개념이 가리키던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프로파간다는 여전히 작동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광고 사진의 프로파간다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바둥대는 개인들을 향한 프로파간다이고, 그 사진의 문법은 광고의 문법과 겹친다.

5.

소비의 프로파간다는 이 상품을 선택하면 당신이 더욱 행복하고 윤택해지며 멋있어질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그러한 프로파간다적 전략은 이제 사진의 역사를 새기는 자리에도 파고든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사진의 역사를 드러내는 출판 사진집들은 포토저널리즘이나 역사적, 정치적 다큐멘터리 사진을 밀어내고 사적이며 회상적인 사진들, 이를테면 가족 앨범과 같은 사진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한 사진들은 전쟁, 민주주의, 지배, 수탈 같은 것들을 밀어내며 일상생활의 모더니티 같은 것을 말하는 사진으로 자신들의 미덕을 자랑한다. 이러한 추세는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몰락했거나 더 이상 관심사가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소멸하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정치란 것이 집단적인 행위를 통해 공동의 운명을 결단하고 바꾸는 행위임을 인정하는 이들이라면 사진은 프로파간다여야 한다. 사진이 국가권력의 시녀가 되고 비밀경찰과 관제언론의 나팔수가 되는 것을 두고 사진이 프로파간다가 되었다고 탄식한다면, 이는 오직 개인만이 있을 뿐 집단적 운명은 없다고 설레발치는 자유주의의 프로파간다에 매수당한 것이다. 공통의 운명을 결정하는 행위로서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이라면, 사진에서 유토피아적 정치를 위한 설득, 동원, 변화가 사진을 통해 기대될 수 있다고 믿는 이라면, 다시 프로파간다로서의 사진을 재고해야 한다. 사진가는 프로파간다를 실천해야 하며 더욱 뛰어난 프로파간다의 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6.

2017년, 올 해는 러시아혁명 1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나는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re Rodchenko)의 터무니없이 야심만만한 사진과 그 몽타주들을 찾아본다. 아마 러시아혁명 1백주년을 기념하며 세계 어디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그의 사진들이 걸려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시지각의 평균적 심리학”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각적 이성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어떤 프로메테우스적인 사진가. 그는 그리고 그의 시대에 그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나갔던 많은 사진의 투사들은 프로파간다였다. 오늘날 프로파간다는 지난 냉전 시대의 끔찍한 사진의 일탈 즈음으로 여겨진 채 고발당하고 조롱받는다. 그것은 매우 슬프고 쓰라린 일이다. 그러나 사진에게, 프로파간다를 잊은 사진에게, 애꿎게 분통을 터뜨리는 것 역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코앞에 둔 오늘 우리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사진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판으로서의 사진보다 미학으로서의 사진에 마음이 기운 오늘, 내 주변의 사진가들에게 선거의 풍경을 전하는 사진은 아무런 호기심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무릅쓰며, 한 통의 필름을 건네받고 질식할 듯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셔터를 눌렀을 이름 모를 어떤 이를 생각하면, 그런 허세는 어쩌면 사진 자체를 저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숨을 내 건 사진-이미지가 그 언젠가 있었고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보고 있다. 그렇게 사진은 사라지지 않고 머문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1년 뒤에도, 더 오랜 세월 뒤에도 그럴 것이다.

_사진잡지 보스톡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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