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 어느 노래에 대한 역사적 기억 연습


Billy Bragg – The Internationale

“사회적 긴장관계들의 저 건너편에서 존재론적인 즉자존재로서 자신을 주장하는 한,
음악은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절규한다. 혁명은 죽었다! 혁명 만세!”

노래하지 않는 역사

1980년대 후반, 종로나 영등포의 거리로 뛰쳐나온 대학생들은 시위에 참여할 이들을 부르는 구호를 외치고 곧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근처에서 딴전 피우듯 눈길을 던지던 이들은 노래를 이어 부르며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로 시작되는 <흔들리지 않게>이기 일쑤였다. 그 노래는 어쩌면 연행될지 모를 불안, 미리 누설된 정보로 들이닥칠 경찰에 대한 염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그 순간에도 계속되어야 할 투쟁에 대한 다짐을 전송하였다. 그것은 여기에 모인 그들의 노래였으며, 함께 할 미래의 누구와 함께 되는 하나를 예언하는 노래였으며, 놀라운 눈길로 그들을 쳐다보는 이들에게 투쟁을 간청하는 노래였다.

2016년 우리는 어김없이 번 광화문 광장과 그 주변을 찾았다. 그렇지만 함께 부르는 노래는 없었다. 대신 수십만의 군중을 위해 마련된 거대한 전광 스크린과 엄청난 소리를 증폭하는 스피커를 통해 듣게 된 뮤지션들의 노래가 있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촛불을 흔들며 혹은 물결처럼 어깨를 흔들며 때로는 그들을 사랑하는 팬들의 열광적인 외침을 물끄러미 들으며 먼발치의 무대를 쳐다보고는 했다. 2016년 11월 26일, 촛불집회가 정점에 이른 5차 집회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합창단이 부르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들었다. 뮤지컬을 이미 보았던 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너는 듣고 있는가”를 부르는 대목에서 뮤지컬 배우들이 일제히 청와대를 손짓하는 몸짓을 했다는 이야기가 다음날 신문 기사와 인터넷을 통해 널리 회자되었다. 집회에 참여한 것인지 집회를 관전하러 온 것인지 모를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나는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이따금 발돋움을 하며 무대를 쳐다보고는 했던 그 날이었다. 그 어느 때인가부터 익숙해진 제스처였다. 싸움의 내부에 있으면서도 외부에 있는 듯한 어색한 자세. 그리고 우리는 전혀 다른 정치적 동원과 투쟁의 사운드스케이프로 이동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연인원 천만 명이 참여했다는 그 집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고, 조기 대선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인양된 세월호의 내부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얼룩처럼 대선 후보들의 공방을 전달하는 소식들 사이에서 등장하였다. “장미 대선”이라고 능청맞게 이름 붙은 선거가 시작되었을 즈음, 한 주 늦게 개화한 벚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해는 2017년이고, 먼 나라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괴물같은 기업가가 대통령이 되었고, 극우 정치인인 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이 어김없이 대통령 선거에서 선전할 것이라는 프랑스의 대선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해는 또한 얄궂게도 러시아혁명 1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어느 누구도 흥분시킬 힘을 잃은 1세기 전의 사태는 시간, 기억, 역사, 미래, 정치, 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숱한 낱말들이 어떻게 마비되었는지를 증언하며 역사의 명부(冥府)에서 서성인다. 힘을 가누며 그것을 기억하기에 이미 세계는 그것이 쉼 없이 예고하고 과시했던 역사적 시간을 부인한지 오래이다.

미국의 문화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최근에 쓴 「단독성의 미학」이란 글에서, 세계화 이후 또는 금융화 이후의 후기자본주의의 미학적 원리를 단독성의 미학으로 정의하면서, 그것의 바탕에 놓인 시간에 대한 태도를 순간, 찰나, 현재 만이 있는 세계로 정의한다. 우리는 오늘의 현재와 내일의 현재로 이어지는 현재의 연속 위에서 살아간다. 미래? 아마 그것은 “미래에셋”이라는 어느 금융업체의 이름 속에 버젓이 고개를 내민 미래, 당신의 노후와 다가올 소득의 장래를 준비하기 위해 기약된 시간을 가리키는 이름 따위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면 근거리에 닥친 새로운 기술적 미래이자 불안한 일자리를 가리키는 섬뜩한 개념인 ‘4차산업혁명’이 도래한 혹은 도래할 시대로서의 미래가 우리가 기껏 궁리한 미래일 것이다. 아무튼 백세시대의 노후나 자잘한 기술적 도구의 장점을 가리키는 자리에나 등장하는 맥 빠질 대로 맥 빠진 이름으로서의 미래는, 미래란 개념을 증오했던 모든 철학적 사변을 무색하게 한다. 목적론적 미래의 담론은 철학적 비판에 의해 청산되기에 앞서 이미 현실에서 결산을 마친 듯 보인다. 현존재(Dasein)나 세계-내-존재(Being-in-the world)란 개념을 내걸고 존재자로 환원된 세계의 시간으로서의 미래를 힐난하고, 찰나와 순간의 현존을 요청하는 하이데거의 희한한 개념인 “역사성(historicity)”이든, 아니면 자동적이면서도 기계적인 진보의 역사를 꿈꾸는 형이상학에 사로잡힌 역사유물론을 비판하며 메시아적인 중지의 시간을 역설했던 벤야민의 저 유명한 유토피아적인 현재이든, 맹렬하게 되찾고자 했던 현재의 시간은 오늘날 악몽과도 같은 시간으로 변전하였다.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는 시간의 맹인이 된 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미래란 말을 되뇐다.

우리는 현재를 꾸미기 위해 각자 마음대로 찾아낸 과거, 나의 행운과 불행을 가늠하기 위해 점성술사 같은 재무 설계사가 차트를 통해 보여주는 시간이 되어버린 미래 사이에서 휘청대며, 현재란 시간의 압도적인 힘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시간을 현재화하지만 그것을 과거와 연결하고 나아가 미래를 위한 역사적이면서도 집합적인 기획에 연결하는 매체였던 음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노래가 그런 역할을 담지한다. 노래는 음악에 속하지만 그것을 능가한다. <7080콘서트>에서 선별되어 되풀이되는 노래들은 노래이기에 앞서 행복한 과거라는 환상을 증언해주는 객체로서 동원된다. 예외 없이 그 노래를 청취하는 방청객의 훑는 TV 카메라의 시선은 그 노래에 홀린 낯을 비추면서 동시에 노래가 과거를 얼마나 아름답게 채색하는 능력을 지녔는지를 증언한다. 경기도 인근의 어느 통기타 카페에서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그 때’의 행복을 회상하는 이들에게 노래는 기억의 매체이자,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조율하는 힘이다.

그런데 그 노래가 <인터내셔널가>라면 어떨까. 그것이 어느 유행가처럼 나에게도 역시 행복한 과거가 있었음을 보장해주고 또 증명해주는 구실을 하지 않은 채,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면 어떨까. 그 노래가 오늘날 모두가 유혹당한 시간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되도록 이끄는 시간의 어떤 경첩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 글에서 그런 생각을 바탕삼아 동시대 예술에서 인터내셔널가를 영유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글을 쓰는 저자 자신에게는 러시아혁명 백주년이라는 연대기적 시간의 좌표 속에 오늘의 역사적, 정치적 시간을 반성하도록 이끄는 매개 항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인터내셔널가>를 경유하며 시간의 현상학으로 환원할 수 없는 시간경험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특성을 사유하려는 시도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내셔널가>를 기억하기, 혁명을 기억하기

몇 해 전 그러니까 2014년,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제목을 내걸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아무도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작품 하나가 TV 패널 위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서둘러 전시를 보러 허둥댔더라면 나 역시 건성으로 스쳐 지났을 공산이 컸을 것이다. 늦은 오후 함께 전시를 볼 이들을 기다리기 위해 전시장 입구에 놓인 의자에 기대 나는 한 눈을 팔고 있었다. 그 때 내게 아주 낯익은 기괴한 사운드가 들려왔다. 먼저 내게 들린 것은 친숙한, 어디서 듣더라도 잠시 주의를 가다듬었을, 어떤 악기의 사운드였다. 그것은 테레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팀 버튼의 <화성침공>에서 듣던 그 사운드는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의 B급영화에서 흔히 듣던 그러한 키치한 우주의 사운드 따위는 거리만 먼 것이다. 그리고 잠시 귀를 기울이던 나는 퍼뜩 놀라고 말았다. 주의를 집중해 귓속으로 더듬던 그 사운드는 놀랍게도 <인터내셔널가>의 멜로디였던 것이다. 그 작품은 제시 존스(Jesse Jones)의 작품인 <유령과 영역 The Spectre and the Sphere>이었다. 16mm 영화로 제작되어 비디오로 전환한 그 작품에 등장하는 중년의 여성은 테레민을 만든 그 테레민의 질녀였다. 인터내셔널가. 미국인들은 ‘인터내셔날레’라고 부르고, 중국인들은 중국공산당가라고 부르기도 했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의 송가로 알려진, 그리고 우리도 역시 노동자의 날을 즈음해 곧잘 부르곤 했던 그 <인터내셔널가>. 그 노래를 연주하는 기괴한 사운드는 작품의 제목이 가리키듯 오후의 볕이 기울던 환한 미술관을 떠돌고 있었다.

화면에서 테레민을 연주하는 이는 테레민의 질녀(姪女)인 리디아 카비나(Lydia Kavina)이다. 아마 희귀할 대로 희귀한 이 테레민 연주자는 테레민을 만든 레온 테레민에서 직접 테레민 연주를 배웠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모스크바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한 후 오늘도 세계 각국에서 연주를 하고 녹음을 한다. 팀 버튼의 영화인 <에드 우드>와 <화성 침략>의 사운드트랙에서 들을 수 있는 기괴한 전자악기의 음향은 모두 그녀가 연주한 것이다. 그녀는 사멸할 위기에 놓인 화석 같은 유토피아적인 악기에 연명할 숨을 불어넣어 왔다. 그러나 제시 존스의 작품에서 연주할 때, 글리산도와 바이브레이션을 통해 조음하는 그 악기는 인터내셔널가를 문자 그대로 유령과 같은 사운드로 바꾸어 버린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듣는 그 유령 같음은 단지 하나의 의미로 새길 수 없다. 먼저 우리는 두터운 붉은 커튼을 배경으로 우아한 모습으로 연주를 하는 그녀의 손길 주변으로 환영처럼 일렁이는 인터내셔널가의 사운드에서 분명 좌파 멜랑콜리(left-wing melancholy)라 불러 마땅할만한 것이 재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전자음악의 출발점이자 전력화(電力化)-“공산주의는 사회주의 더하기 전력과 같다”는 신경제정책 기 레닌의 선언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라는 슬로건을 따라 전개된 사회주의적 경제 건설의 어떤 총아처럼 간주되는 테레민의 사운드를 통해 인터내셔널가를 듣는다. 몰락한 (현실)사회주의를 상징화하는 키치처럼 보이던 그 악기는 갑자기 음울한 신음처럼 인터내셔널가를 토해낸다.

이는 웬디 브라운(Wendy Brown)이 어느 글에서 좌파 멜랑콜리라고 칭했던 것을 물질적으로 상징화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오늘날 사회주의적 이상이 좌절하고 현실적인 사회 전환의 전망이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에서 좌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좌파 멜랑콜리라고 부르며 질타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더욱 곤혹스러운 점은, 자신의 잠재적인 성취보다 자신의 불가능성에 더욱 애착하게 된 것이 바로 좌파라는 것이다. 희망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성과 실패에서 가장 안온해 하는 좌파, 자신의 죽은 과거로부터의 어떤 중압에 멜랑콜리한 애착의 구조에 갇혀있는 좌파. 그 좌파의 정신이란 유령과도 같고 그 좌파의 욕망의 구조란 것은 퇴영적이며 또한 책망이다.” 유령과도 같은 좌파의 정신? 퇴영적이며 스스로를 꾸짖는 것에 더 달콤한 쾌락을 느끼는 좌파의 욕망?

이 때 인터내셔널가는 무엇보다 상실된 혁명적인 이상을 물질화하는 사물 혹은 객체일지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욕망하고 사랑했던 것, 즉 혁명적 사회 변화의 꿈과 전망, 투쟁이 사멸했음을 비통해 한다. 그리고 그런 잃어버린 꿈, 상실된 투쟁을 만회하거나 그것을 동시대의 꿈으로 재건하기보다는 그러한 상실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진다. 좌절한 자의 침울하고 가눌 길 없이 비통한 낯의 뒤에는, 그러나 어떤 은밀한 그러한 상실에서 비롯되는 쾌락을 유지하려는 끈질긴 욕망이 흘러 다닌다. 그리고 우리는 갑자기 과거의 공산주의운동을 환기시키는 붉은 커튼을 배경으로 어느 테레민 연주자가 손끝에서 마법처럼 반향하는 인터내셔널가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가 터무니없이 환하고 안온한 실내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눈치 채게 된다. 이는 어쩌면, 혁명적인 비전과 실천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스스로에게 확인하지만 그러한 쓰라린 상실로부터 고통스러운 우울과 더불어 야릇한 안도감과 애상적인 쾌감을 얻고 있음을 생생하게 상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부추길만 하다.

그러나 좌파 멜랑콜리라는 퇴폐적인 욕망을 물질화하는 사운드로서 그것을 청취하는 것이 유일한 방향은 아닐 것이다. 1913년 1월 3일 레닌은 <프라우다 Pravda>에 인터내셔널가의 작사자 외젠 포티에(Eugène Pottier)가 세상을 떠난 지 25주년이 된 날을 기념하며, 그를 애도하는 글을 쓴다. 그 글에서 포티에가 세상에 남긴 노래, <인터내셔널가>를 두고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라면, 어떤 운명이 밀어닥쳐도 그 얼마나 스스로 이방인이라 느낄지라도, 언어도 벗들도 없고, 자신의 조국으로부터 멀어져 있을지라도, 자신들을 알아본다. 그는 <인터내셔널가>의 친숙한 후렴을 통해 동지들과 벗들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레닌은 여기에서 어쩌면 오늘 어디에서도 식별할 수 없게 된 혁명과 음악의 부정적(否定的) 대수학을 일깨운다. 그의 말처럼 그것은 혁명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주체로 지정된 (계급의식적인) 노동자의 보편성을 체화한다. 그것은 멜랑콜리한 상실의 대상을 물질화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들이 존재함을 자신들에게 가해진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힘이 버티고 있음을 고지한다. 그는 외롭게 홀로 있더라도 그 노래의 후렴구에서 벗과 동지들이 있음을 느낀다. 이제 인터내셔널가는 어떤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증거로도 부인하거나 억제할 수 없는 보편적인 충동을 권화한다. 그것은 멜랑콜리가 아니다. 그것이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가망 없는 슬픔에 빠진 나를 목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물질적인 부재도 아랑곳 않는 힘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인터내셔널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서인가. 그것을 그렇게 만나는 이는 누구인가.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 마주친 네마냐 스바노비치(Nemanja Cvijanovic)의 작품 <인터내셔널가의 이상을 향한 기억에 바치는 기념비 The Monument to the Memory of the idea of the Internationale>는 2012년 벨기에의 구 광산도시 헹크(Genk)에서 열린 마니페스타 9(Manifesta 9) 비엔날레에서 공개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매우 도식적이라 하리만치 인터랙티브 미디어(interactive media) 작업을 선보인다. 관람자는 불과 몇 센티미터 되지 않을 작은 크기의 뮤직 박스와 마주하게 된다. 관람자가 뮤직 박스의 핸들을 돌리면 그것은 영롱한 소리로 인터내셔널가를 들려준다. 그렇게 흘러나온 사운드는 마이크를 통해 증폭되고 다시 그 사운드는 다시 방을 거치며 스피커로 증폭되고 그렇게 전송된 사운드는 역시 다른 방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증폭되기를 거친다. 그리고 그렇게 전달된 사운드는 전시장 외부에 피라미드처럼 적재된 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여기에서 크로아티아 출신의 작가 네마냐는 추억과 향수를 응축하는 작은 골동품이 되어버린 뮤직 박스를 집어 든다.

마치 오슨 웰즈(Orson Wells)의 영화 <시민 케인>에 등장하는 저 유명한 스노우볼처럼 이 작은 장난감 같은 사운드 기계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를 향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를 통해 재생되는 사운드를 거의 자동적으로 추억의 선율로 만들어버리는 이 왜소한 기계를, 작가는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뮤직 박스의 태엽이 돌아가며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또한 개인의 귀를 향해 제공되는 것이다. 핸들을 돌릴 때, 우리는 자신의 손놀림에 반응하여 흘러나오는 소리를 수여받는다. 그 소리는 나를 위해 허락된 사운드이며, 개인적인 침잠을 위해 나즈막한 소리의 자장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그마한 뮤직 박스로부터 울려 퍼지는 인터내셔널가의 사운드를, 부유하는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채 끈질기게 소멸에 저항하는 기억의 알레고리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뮤직 박스라는 장난감에 입력된 사운드는 대개 과거의 유행가이거나 환하게 기억을 상기시키는 멜로디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뮤직 박스는 회상의 미디어이자 상기의 매체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사적인 매체인 듯 보이지만 그 기억을 사적인 것으로 축소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점에서 전시장이라는 공공장소에 설치된 그 매체는 각별한 것일지 모른다. 과거 탄광도시에 자리했던 어느 공장을 개조한 전시장에서 열렸다는 그 전시에서, 뮤직 박스가 놓인 공간은 이미 인터내셔널가라는 노래가 반복적으로 배회하였던 곳일지 모른다. 또한 그 곳에 놓인 뮤직 박스와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를 중계하고 증폭하는 케이블과 마이크는, 사적인 기억과 집합적이면서 공적인 삶을 증언하는 역사적 흔적이 공존하는 정황을 암시하고 있을 것이다. 관람자는 전시장의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누군가가 들려주는 인터내셔널가가 여러 중계 과정을 거치며 뭉툭하고 커다란 볼륨으로 울려 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전시장이라는 공적 공간을 찾은 이들을 동일한 듣기의 주체, 청취의 대중으로 불러 세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이중적인 난관에 맞서고 있었을 것이다. 먼저 그것은 집합적인 기억을 위한 가능성을 물질화하는 의례(이를테면 시위, 기념식, 합창 등)가 위축되거나 사라진 세계에서, 즉 TV와 휴대전화 아니면 다른 휴대용 플레이어와 같은 개별화된 매체를 통해 음악을 청취하며 개인적인 사운드스케이프에 갇힌 오늘날의 사람들에 거스르며 ‘공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제안한다. 그렇지만 다음으로 그것은 한편으로는 쇼핑몰이나 백화점, 체인점화된 식당 같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스케이프와 닮아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공적인 사운드스케이프는 또한 동시에 전적으로 사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기 위하여 마련된 허위적인 공적 사운드스케이프일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그런 그릇된 공적 사운드스케이프를 역시 비판하면서 비판적인 공적 사운드스케이프를 조성하고자 한다.

인터내셔널가의 기원적 장면: 유토피아적 인간학

1871년 5월 21일부터 28일, 훗날 코뮈나르(Communards)란 이름으로 불리게 될 파리의 노동자와 민중들은 베르사이유의 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당하며 진압 당한다. 프러시아군대의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지급했던 프랑스의 지배계급은 이제 자신들의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창설한 노동자와 민중들을 폭력으로 탄압하였고 적어도 6만여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그렇지만 파리 코뮌은 불가능한 가능성으로서 여전히 맥동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파리 코뮌에 참여하여 예술가동맹을 창설하며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던 직물장인이며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던 독학자 혁명가 외젠 포티에(Eugène Pottier)는 인터내셔널가로 알려질 노래의 가사를 시로 남겼다. 고작 인터내셔널가의 작사자로 알려진 포티에의 삶은 그리 상세히 알려진 적이 없는 듯하다. 그에 관한 위키피디아의 항목에서는 그를 인터내셔널가의 작사가로서만 소개한다. 그렇지만 제1인터내셔널의 회원이었으며 아버지가 경영하는 직물 공장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익힌 노동자였다. 그리고 그는 훗날 파리에서 스스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업장을 맡아, 훗날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을 이끈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를 예고라도 하는 듯이, 직물, 벽지, 디자인, 도기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여러 장인과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였다.

파리 코뮌에 관한 급진적 비평과 해석을 위해 노력한 몇 안 되는 지식인 가운데 하나일 크리스틴 로스(Kristin Ross)는 2016년 공동의 유복 Communal Luxury이라는 책을 출간하며, 포티에의 글에서 따온 구절을 책의 제목으로 삼는다. “공동의 유복”이란 포티에가 창립에 관여했던 예술가동맹의 선언문에 나오는 말로 “우리는 우리의 부활, 공동의 유복함의 탄생, 미래의 여예들과 보편 공화국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이다”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녀는 포티에를 파리 코뮌을 규정하려는 그간의 해석(사회주의 정치 프로그램의 기원으로 여겼던 마르크스주의의 입장과 프랑스공화주의의 역사적 여정 속에 코뮌을 위치시키려했던 프랑스 식 공화주의 역사학의 입장 등)과 갈라선다. 그리고 파리 코뮌을 이해하는데 있어 새로운 서사적 주제를 도입하려는그녀의 시도에 결정적인 모티브로 포티에에 주목한다. 아마 그러한 접근을 고무한 계기는 최근 국내에서도 잇달아 번역되며 큰 관심을 끌었던 랑시에르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19세기 중반 노동자-예술가들의 아카이브와 그들의 자기교육 혹은 보편교육에 관한 실천들에 관한 자크 랑시에르의 일련의 저서들은 그녀를 자극한 듯 보인다. 심미적 노동자주의라고 할 만한 것을 제시한 랑시에르의 빛나는 저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밤, 그리고 역시 코뮌에서 활동하다 망명을 떠난 루뱅에서 혁명적인 페다고지(pedagogy)를 실행한 자코토에 관한 글인 무지한 스승은, 역시 파리코뮌에서 열정적으로 투쟁하고 망명을 떠나 보스톤에서 활동했던 포티에를 이해하기 위한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자코토와 포티에가 같은 부류의 인물이었음을 강조한다.

감성을 조직하고 분배하는 일이 혁명적 정치 그 자체임을 역설하면서 프리드리히 실러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로부터 비롯된 미학적 정치의 경향을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를 비롯하여 앙리 르페브르와 상황주의자, 문자주의자들의 실천 등에서 지속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랑시에르는 이러한 전통에 참여하며 (자본주의적) 신비화(mystification)에 대한 비판으로서 과학을 우선시하며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분할하고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경험, 체험을 무시하거나 호도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을 호되게 힐난한다. 랑시에르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시비는 차치하더라도,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이라는 자본주의적 노동분업에 대한 비판을 전유하며, 더 이상 상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파리코뮌에서의 눈부신 노동과 교육을 둘러싼 혁명적 기획에 대한 로스의 찬사는 새길만하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시인-혁명가인 포티에의 인터내셔널이라는 시를 기억하려는 시도에 새로운 빛을 던진다.

그것은 한 때 국제적으로 공인된 노동자운동의 찬가였던 인터내셜가가 아니라 파리코뮌이라는 유럽 어느 나라의 지역적이면서도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사태를 유토피아적 정치의 상수(常數)로서 상기하는 몸짓이다. 이는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화를 폐지하려는 것이며 예술과 기술의 분할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분화를 폐지하는 것은 또한 이러한 노동 분업을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거듭 요청한다. 그러나 이는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이름으로 혹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설레발치면서 예술과 기술의 혼융, 지식과 실무의 통합을 외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의 슬로건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포티에가 통합교육(integral education)이나 폴리테크닉 교육을 요청했을 때, 그것은 인문학과 기술의 아름다운 통합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로스가 말하듯이, 보통교육을 실행했던 공화주의적 교육이 부자와 빈자 사이에 최소한의 공동 세계로서 교육의 공동체를 상정하면서 능력 있는 이라면 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급적 지위가 상승하는 꿈을 꾸도록 했던 것에 비해, 공산주의자였던 포티에는 이러한 최소 공동체 자체를 최대 공동체로 전화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내셔널가의 역사적 실존을 기억하기 위해 포티에를 떠올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된다. 인터내셔널가를 둘러싼 신화, 어느 백과사전에 수록되어 유명해진 인터내셔널가를 따라다니는 전설은, 이 노래가 프랑스 혁명의 송가였던 <라 마르세예즈>를 제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 선전의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내셔널가의 국제적인 보급의 역사는 단순히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의 확장된 영향으로 환원할 수 없다. 인터내셔널의 기원과 사후의 역사는 노래의 작사, 작곡 그리고 유행과 확산의 역사로 환원하기 불가능한 계기를 기원 속에 등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포티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이에 곡을 붙인 피에르 드제이테(Pierre Degeyter)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술가-노동자-투사라는 인물의 출현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공산주의라는 마르크스의 희귀한 유토피아적 주장을 현실화하는 작은 조각이다. 이 때 연합에 앞서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움이란 타율적인 강제나 속박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착취의 굴레와 지배의 사슬로부터의 자유는 필수적이지만 그것으로 이행 이후의 세계를 선취하는 개인, 즉 한 때 악명 높은 이름으로 알려졌던 ‘새로운 인간(new man)’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 새로운 인간이란 노동영웅이나 애국적인 투사로서의 정체성에 의해 윤곽 잡힌 인간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새로운 인간이란, 인터내셔널가는 포티에와 드제이테라는 시인 겸 작사가, 작곡가의 면모에서 볼 듯이, 전례 없는 ‘유토피아적인 인간학’을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생산과 분배의 평등한 사회화와 함께 하는 개인의 새로운 개인화의 전망을 요구한다. 그것은 사회적 소유의 주체와 자유로운 개인으로의 (재)개인화의 변증법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내셔널가는 그러한 변증법의 흔적이다.

그것이 수많은 나라(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노래는 약 1백여개가 넘는 나라의 언어로 번안되어 불린다)의 노동자운동과 반자본주의운동에서 불렸을 때, 그 노래는 다시금 번역되고 번안되며 편곡된다. 이는 그 노래를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에 호응하는 말들로 번안하고 또한 자신들의 음성과 의례, 싸움에 맞는 방식으로 편곡되고 연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급적 연대이자 국제적인 연대의 노래를 둘러싼 퍼포먼스에 참여할 때 많은 노동자는 또한 자유로운 개인으로 자신을 주체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운동의 ‘물질문화’는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업을 넘어서면서, 시인이자 음악가이고 또한 노동자인 새로운 개인들의 연대를 운반한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모습을 띠고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도입된 공식적인 관료기구의 노래로서 불렸을 수도 있다. 그것은 따분한 국가적인 의례나 정치 장치의 행사에서 식순에 따라 불렸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노래가 그러한 운명에 갇히는 것이 그 노래에 기재된 역사적 기억, 새로운 개인이 실천한 노동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흔적을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내셔널가를 기억하고 반복한다는 것은 어느 노래의 연대기적 역사로 환원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개인이 출현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삶을 제약하는 조건과 투쟁하며 사회적인 결속과 연대를 창출할 때 우리는 인터내셔널가를 다시 조우하게 될 것이다.

“브람스의 자장가보다 달콤한”

영국의 포크 록(folk rock) 뮤지션, 빌리 브래그(Billy Bragg)는 1990년 <The Internationale>이란 앨범을 발표하였다. 그는 기존에 불리던 인터내셔널가가 변화된 시대의 경험과 감각을 담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현대적인 버전으로 개작하려 하였다. 미국의 저항적 포크 운동의 선구자였던 피트 시거(Pete Seger)와 함께 주역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인터내셔널>에서 그는 인터내셔널가를 현대화하고자 했던 자신의 의지를 과시한다. 그가 개작하여 선보인 가사는 이런 것이다.

 

모든 억압의 희생자들이여 일어나라

너희의 힘에 폭압자들은 떨리라.

가진 것에 집착하지 말지니,

권리가 없다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리라

인종주의적 무지를 끝장내라

존중은 제국을 무너뜨릴 것이다

모두가 누릴 수 없다면

자유란 단지 늘어난 특권일 뿐이다.

 

Stand up all victims of oppression

For the tyrants fear your might

Don’t cling so hard to your possessions

For you have nothing if you have no rights

Let racist ignorance be ended

For respect makes the empires fall

Freedom is merely privilege extended

Unless enjoyed by one and all

 

[합창]

형제 누이들이여 일어나라

투쟁은 계속되리니

인터내셔널은 노래 속에서

세계를 통일하리라

그러니 동지들이여 단결하라

지금이야말로 그 때이자 그 곳이다.

인터내셔널의 이상은 인류를

함께 하도록 한다.

 

[Chorus]

So come brothers and sisters

For the struggle carries on

The internationale

Unites the world in song

So comrades come rally

For this is the time and place

The international ideal

Unites the human race

 

그 누구라도 우리를 분열시킬 벽을 쌓지 못 한다

다가와 새벽을 환영하라 그리고 곁에 서라

그들이 주었던 세상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자들,

착취로 병든 세상에서 우리는

함께 살거나 아니면 외로이 죽을 것이다.

하여 민족들의 오만함을 끝장내라.

우리에겐 함께 살아갈 하나의 세상이 있을 뿐이다.

 

Let no one build walls to divide us

Walls of hatred nor walls of stone

Come greet the dawn and stand beside us

We’ll live together or we’ll die alone

In our world poisoned by exploitation

Those who have taken now they must give

And end the vanity of nations

We’ve but one earth on which to live

 

그리고 거리와 들녘에서

최후의 극을 시작하라.

우리는 그들의 무기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일어선다.

그들의 공격에 맞서 싸울 때

우리는 그들의 총과 방패에 대적한다

사랑으로 영혼을 일깨우자

그들이 비록 물러설지라도

변화는 위로부터 오지 않을 터이니.

 

And so begins the final drama

In the streets and in the fields

We stand unbowed before their armor

We defy their guns and shields

When we fight provoked by their aggression

Let us be inspired by like and love

For though they offer us concessions

Change will not come from above.

 

우리는 인터내셔널가가 자본주의 세계를 변혁하는 자들을 위한 송가로 기여할 수 있기를 희구하는 그의 의지를 주저 없이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가사를 바꾸어 씀으로써 그 노래의 쇠잔한 효력을 쇄신할 수 있으리라는 그의 욕망을 선뜻 인정하기란 어렵다. 잔인한 노릇이지만, 그의 노고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훗날의 변화는 주관적 의지를 압도하는 현실의 변화에 따라 움직인다. 그가 부인하고 했던 현실은 자체의 맹목적인 논리에 따라 스스로를 추진한다. 이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새롭게 벌여 놓으며 현실에 추월당한 꿈으로 하여금 보다 철저하고 신속한 꿈을 꾸도록 강제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미래를 향한 꿈은 수치스러우리만치 창백하고 희미하다. 그러나 연대기적 시간의 눈금 위에서 이후라는 시간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면 미래는 다양한 양태를 취한다. 그것은 이제는 익숙하리만치 익숙해진 현재의 시간적 계좌로 이체된 미래에 가까운 벤야민 식의 미래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하며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는 개념”을 통해 장악된 미래, “메시아적 정지”를 통해 더 이상 미래로 셈해질 수 없는 전혀 다른 현재로서 둔갑한 미래. 그리고 어쩌면 이는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란 시간에 관한 급진적 버전일 것이다.

다분히 하이데거적인 역사성(historicity)을 연상시키는 벤야민의 계시(啓示)적 시간 개념은 널리 지지를 받지만 우리는 의구를 떨치기 어렵다. 그것이 충분히 자본주의의 역사적 시간성에 개입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로부터 발발하는 정치적 투쟁과 이행의 시간성을 포착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를 향해 발을 딛는 정치적 행위는 과연 사건이나 기적 혹은 은총처럼, 예기치 않은 것인가. 우리는 어떤 저항과 반란의 행위나 사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인과적인 사슬의 논리 속에 놓을 것이 아니라 아무런 토대나 근거 없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언어로는 현재의 사건을 규정하고 확인할 수 없음을 자인하고 사건이 새로운 시작임을 적극 인정하여야 할까. 지젝이 말하듯이 진정한 변화로서의 사건을 이야기하면 단언 하듯이, “사건 속에서 사태는 변화할 뿐 아니라, 변화하는 것은 우리가 변화한 사실들을 측정하는 패러미터 자체, 즉 전환점은 사실들이 나타나는 전체 지평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결단을 통해 그것이 생산한 단절을 신뢰하면서 그것이 기약한 행위의 논리에 헌신하여야 할까. 알랭 바디우의 사건과 충실성 개념은 벤야민의 시간성에 대한 사유를 반향하며 마르크스보다는 하이데거에 가까운 시간의 이미지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는 고작해야 몇 년에 한 번 정치지도자의 교체를 선출하는 것으로 정치의 시간성을 감금하고 있다. 정기적인 선거와 그 선거에서의 경쟁적 승리를 위해 주기적 발작처럼 펼쳐지는 홍보와 캠페인의 홍수는 이례적인 시간의 개시 혹은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미래라는 시간을 까마득한 기억으로 밀어내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시간이란 것이 있기는 한 것이었는지 궁금해 할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에 부응하는 즉 동시대적인 시간의 경험에 맞춰진 변화와 개조는 미래를 향한 길을 닦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현재로 축소하는 몸짓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앞서 말했던 현재의 반복으로서의 시간이라는 폐소공포증적 시간성은 계절에 따라 혹은 분기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내놓고 홍보와 할인판매를 하는 시장의 시간을 점점 닮아간다. 인터내셔널가를 둘러싼 기억 역시 이런 쟁점을 던진다. 그 노래는 미래를 향한 도정 속에 놓여있다. 그것은 과거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 노동자와 민중이 미래의 세계를 창립하고자 하는 투쟁과 저항에 나서도록 고무한다. 그러나 더없는 곤경에 처한 미래의 시간 속에서 인터내셔널가가 그러한 수행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억지이다. 그렇다면 그 노래는 어떻게 우리에게 시간과 상관하도록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인터내셔널가의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 <인터내셔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 마리나 펠레오 곤잘레스(Marina Feleo-Gonzalez)의 회상을 눈여겨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녀는 탄압을 피해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쓰라린 기억을 간직한 여성 극작가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교사이면서 6만 명이 넘는 농민들을 조직해 지주에 맞선 투쟁을 조직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아버지가 농민들과 함께 부르기 위해 그 노래를 필리핀말로 가사를 번역하여 노래를 가르치고 틈틈이 잠자리에 드는 어린 딸을 위해 자장가처럼 불러주던 시절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녀는 인터내셔널가가 “브람스의 자장가보다 훨씬 더 좋았다”고 따뜻하고 또렷한 미소와 함께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자리에 놓인 인터내셔널가를 만난다. 그것은 조직과 투쟁의 노래로서의 인터내셔널가가 아니라 자장가로서의 인터내셔널가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미래를 향한 노래로서 인터내셜가의 자리를 지키는 방식 가운데 하나에 이른다. 그것은 스펙터클한 공식적 투쟁의 찬가로서의 인터내셜가가 과거와 상관하는 방식과 단절한다. 인터내셔널가는 과거의 위엄있고 열정적인 정치적 사태 속에서 그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을 충전시킨 희망과 열정, 정동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로서 기념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 스페인 내전, 1912년 매사추세츠 로렌스 파업, 1968년의 파리의 운동, 1989년의 천안문 광장 등. 그러나 ‘정치 시사(時事)’를 방불케 하는 사건의 연표들 위에서 메아리치는 인터내셔널가는, 이미 공식적인 기념의 서사 속에 화석처럼 응고되어 버린 노래일 것이다.

그러나 곤잘레스가 기억하는 인터내셔널가는 가족의 앨범 속에 머물러 있는 기억이지만 또한 그것은 공식적인 기록영화 속에 붙박인 인터내셔널가보다 더욱 강렬하게 역사적인 기억을 운반하다. 그것은 사적인 기억이지만 또한 동시에 개인의 기억 속에 끈질기게 보존된 역사적 기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집합적인 기억이 더 중요하다고 강변하지만 이를 스펙터클한 공식적인 아카이브 속에 밀폐하며 역사적 과거를 구경거리로 우려먹는 사이비 역사적 기억보다 더 강인하게 기억을 지켜낸다. 그것은 오늘날 사회적인 것이나 집단적인 것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가상을 떠올려보면 쉽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인 것은 사교적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이름을 단 인터넷 매체가 소셜을 참칭할 때 그것은 마치 콘서트장이나 극장, 스포츠 이벤트에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맺는 사회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셜 미디어에서 사회란 대립과 불화에 의해 규정된 모순적인 전체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욕망과 열정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의 사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팔로우(follow)’와 ‘리트윗(re-tweet)’으로 중계되고 연결되어 구성되는 사회란 가상(假像)이 지배적일 때, 사회는 더 이상 저항과 투쟁의 기억을 위한 무대로서 기여하기 어렵게 된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서정시와 사회>에서의 아도르노의 주장을 떠올려보아도 좋을 듯싶다. 그는 서정시가 사회학적으로 현실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여느 문학 장르의 서사보다 더 사회적이며, 서정시인이라는 개인이 자신의 시적 언어에 더욱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더 많이 사회를 포함시키게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렇다면 브람스 자장가보다 더 좋은 자장가로서의 인터내셔널가는 공식적인 기억의 서사 속에 수장된 인터내셔널가보다 더 많은 함량의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역사적인 기억은, ‘아카이브’라는 기억의 대상에 대한 물신주의에 의해서나 자의적으로 마음껏 발화되고 구성되는 서사적 실천의 효과라는 주관주의에 의해서나,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 있다. ‘노스탤지어’와 ‘레트로(retro)’는 오늘날 과거를 기억하는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므로 자장가로서의 인터내셔널가는 사적인 것이지만 더 역사적이다. 그것은 집요하게 반복되고 버티는 기억을 통해 역사적인 시간의 지속을 등록한다. 그것은 유튜브(Youtube)를 통해 시간여행을 다니며 몇 년 대 풍의 세계의 경관을 관람하는 것 따위와는 매우 다른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 사회적 투쟁을 사이비 사회성과 역사성의 이데올로기가 훼손하지 않도록 그것을 빼내어 개인의 기억 속에 보관한다. 이 때 기억하는 개인은 사회의 대립항이거나 역사의 잔여분이 아니다. 역사적 총체성을 매개하는 기능을 사회적 실천이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할 때, 집단적인 역사적 기억이 기억을 표류시키며 과거의 자료더미를 파헤치며 유희를 즐기는 데 탐닉할 때, 개인의 기억과 노래는 역사적 총체성을 사유하고 경험하는 대피소가 될지도 모른다.

2016년 겨울 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의 마치 버려진 주차장처럼 황량한 지하 공간의 어느 전시에서 한국의 작가 강신대 역시 인터내셔널가를 끄집어냈다. 매우 냉소적이고 심지어 자학적이기까지 한 이름을 단 밴드에 의해 ‘리메이크’된 곡으로 제시된 그 인터내셔널가는, <본격 시대정신 밴드 컨템포러리 – 인터내셔널가(하즈X펄펄 Ver.)>란 제목의 뮤직비디오였다. 작가노트에서 작가는 “미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과거 역시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발터 벤야민의 표현은 현실이 되었다. 90년대, 00년대 등 (근)과거적 레트로 감성에 점령된 문화가 보여주듯이 시대적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할 개념은 스타일이 되었고 역사적인 기억과 회상은 투쟁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기념과 향수할 수 있는 놀이가 되었다.”고 고통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견이자 동시대-문화에 대한 코스프레”라고 적고 있다.

그 유사(類似) 뮤직비디오는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시대에 유행했을 법한 통속적인 선율로 편곡되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과거라는 시간의 스타일을 가지고 유희를 벌이고 있음을 고지하는 전자음악의 반주, 그리고 한국의 팝 뮤직에서 발라드 뮤직비디오에서 보았던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거리와 들판을 누비며 걷는 소녀의 클리셰(cliché)로 이뤄져 있다. 작가는 안간힘을 다해 기억하려 할 때 우리가 과거로부터 기억의 재료로 물려받는 것은 이러한 상투적이고 양식화된 스타일의 단편들뿐이지 않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그런데 그렇게 기억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인터내셔널가라는 노래를 통해 전송되는 역사적인 시간이 될 때, 그러한 몸짓은 풍자적 패러디가 되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쓰디 쓴 멜랑콜리를 자아낸다. 우리가 멍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듣고 보는 이 인터내셔널가는 더 없이 정직하게 역사적 시간의 빈자(貧者)로서 살아가는 우리를 비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에게 그 이상의 것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마비된 시간에 취한 우리의 멍한 시간의 경험을 힐난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것을 지각할 수 있다는 ‘비판’의 입김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 비판의 몸짓은 바로 동시대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는 어떤 틈새를 도입하는 인터내셔널가를 통해 마련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아마 어딘가에서 이어폰을 낀 채 컴퓨터의 모니터나 휴대전화의 화면을 쳐다보는 고독한 관람자에게, 더 이상 집합적인 정치적 투쟁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그 두절된 개인에게, 오늘날의 지배적인 시간의 이데올로기를 동요시키는 자극을 전달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우리가 어느날 이 노래를 듣고 나지막이 흥얼거릴 때, 그것은 오늘날 우리를 덮친 시간의 이데올로기를 동요시키는 가시가 될 것이다. 그 가시는 우리를 펄쩍 뛰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 속 어딘가에 보이지 않게 박힌 채, 다른 시간의 별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부록 | 인터내셔널가 (한국어)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 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_<문화과학> 2001년 여름호에 기고한 글. 인용은 문화과학에 수록된 수정된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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