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회과학: 사회성격논쟁과 마르크스주의

Four Tet – Planet

사회성격논쟁 ‘속’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성격논쟁 혹은 사회구성체논쟁으로 알려진 논쟁은 한국의 사회과학의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논쟁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학이라는 사회학, 정치학, 지리학 등의 사회과학 분야의 분과학문을 넘어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 분야에 역시 큰 영향이 반향 되었던 ‘학술적인’ 사건이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회상되곤 한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분단 이후 남한에서 거의 전례 없는 마르크스주의의 부활 또는 재기를 가리키는 사태로 기억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논쟁이 촉발된 시점의 일종의 시대착오성(anachronism)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한국의 민주항쟁 이후 도래한 잇단 세계적 사태들, 중국 천안문사태와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리고 ‘현실사회주의’란 이름으로 지칭되던 동구권의 잇단 몰락 혹은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이나 쇠퇴를 예고하였다. 물론 197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형태로의 서구 자본주의의 전환은 사회주의적 이상을 폄훼하고 나아가 악마시하는 과정을 통해 성사되었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와 그것에 관련된 사회주의 정치는 전례 없는 쇠퇴를 겪고 있던 즈음이다.

한국에서는 바로 그러한 정세적 배경을 참조할 때 예외적이라 할 수밖에 없을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이라 호명되는 사태가 전개되었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넘어 종말이 회자되는 시대의 지역적 인 어떤 마르크스주의가 성가를 드높인 현상은 이례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시 호명되었던 마르크스주의가 과연 이론적인 위기에 직면한 그 마르크스주의와 동일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실천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이론적 교의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하나의 사태는 아니었는지, 나아가 그러한 이론적 불운을 역류한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에 어떤 이질적인 특수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잇단 물음을 던져볼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광범위한 위기가 선언되고 또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지가 예외적으로 강건했던 이유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역사적 추이를 떠난 채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비판적 제시를 위한 이론적 프로그램으로 채택된 마르크스주의, 즉 이론 활동에 있어서의 윤리적 규범으로서, 도덕적 코드와 같은 것으로 이해된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적 작업 속에 투여된 분석 원리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정세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은 1980년대의 학생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고조되며 나타난 급진적 (지식) 문화의 증후로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급진적인 지적 실천의 문화적, 도덕적인 상징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성격논쟁에 투여된 이론적 주장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구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사회성격논쟁에서의 ‘마르크스주의’란 대상은 매우 흐릿한 윤곽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을 고지한 사태로서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성격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란 어떤 모습으로 실존하였는지에 대한 이렇다 할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마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박현채의 사회성격논쟁에의 개입을 마르크스주의의 복원이자 보편과 특수의 문제를 통해 모순론을 제기한 점에서 강조했던 윤소영의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낙청, 정윤형, 윤소영, 조희연, 현단계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족운동의 과제, 창비1987, 1987.

나아가 사회성격논쟁에 참여한 급진적인 이론가들의 주장 모두가 어느 정도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이었다고 뭉뚱그려 이해함으로써 이 논쟁에서 어떤 주장이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이었는지, 논전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쟁점으로서 꼽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확인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사회성격논쟁이 정치적 당파들 간의 논쟁과 동일시되면서 비롯된 혼란도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사회성격논쟁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인가 민주주의 혁명이 우선인가를 결정하고자 하는 논쟁이었다고 본다면 여기에서 논쟁의 쟁점은 정치적 프로그램으로서의 사회주의를 둘러싼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불평등한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저항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얼마간의 도덕적 동기와 실존적 용기, 집단적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현실을 규정하고 서술하는 ‘기표’ 역시 마르크스주의가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비마르크스주의적인 연원을 갖는 개념으로 적어도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에는 그 개념을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역사적 연구의 주장이다.

시장경제나 사적 소유 등의 개념과 호환될 수 있는 부정의한 경제질서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본주의란 개념을 떠올릴 때, 그것은 굳이 마르크스주의를 참조할 필요는 없다. 이는 사회성격논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임박한 것처럼 보였던 정치적 변혁을 앞두고 그것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여야 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급진적 정치세력들이 다툰 주장들은 굳이 마르크스주의를 참조하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면한 정치적 혁명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혁명의 주체는 어느 계급인가를 규정하고자 하는 쟁점이 당시의 논쟁에서 결정적인 의제였다고 간주한다면, 그것은 당시에 논의된 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사회주의란 정치적 변혁을 통해 구축할 사회적 모델을 가리키는 것으로 굳이 마르크스주의와 필연적인 연관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정치의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염두에 둔다면,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는 변별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의 사회성격논쟁이 자유주의적 정치와 사회주의적 정치 사이의 정치적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쟁이었는지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이론적 사유 사이의 논쟁이었는지를 분간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이켜보자면 사회성격논쟁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논쟁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한 몫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그러한 짐작은 사회성격논쟁을 촉발한 결정적인 텍스트로 알려진 박현채의 글을 읽어볼 때 사뭇 사정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입장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획기적 논문인 “현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 단계에 관한 연구 (I)-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을 둘러싼 종속이론 비판”은 다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글은 사회성격논쟁에 대한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흔한 짐작과 달리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을 규정하고 또 강변하는 글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론적 실천을 도입하고자 분투하는 ‘개입’의 텍스트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이른바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비판)의 역사를 개관하는 김수행의 저서에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 ‘사회구성체논쟁’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서술은 각 논의에 내장된 마르크스주의(경제학)에 대한 어떤 검토도 없다. 김수행,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도입과 전개과정,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존의 사회성격논쟁을 해석하는 상투적인 접근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사회성격논쟁에서 논쟁의 대립항을 이루었던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그에 근거한 민족해방파(NL)와 신식민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제기하고 이에 따른 정치노선을 제기한 민중민주파(PD)의 대립구도는 1980년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변혁적 사회운동에 깊은 효과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성격논쟁의 특색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준거로서 간주되곤 한다. 자주파인가 민중민주파인가, 이는 한국의 역사적 자본주의의 객관적 성격을 규정하고 서술하기 위한 논쟁에 다름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다시 그 논쟁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비판적 사회과학에 대한 욕구가 폭발한 독특한 이론적, 정치적 정세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개입이 이뤄지는 과정이었다고 볼만한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 비판적 사회과학을 둘러싼 이론적 실천이 드러내고 있던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특색과 이론적인 양태들을 반성하면서 문자 그대로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론적’ 개입이 이뤄진 상황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성격논쟁의 주역이었던 박현채는 자신의 개입이 ‘정치경제학적 입장’을 복원하는 것이었음을 역설한다. 정현주·박현채 좌담, 사회구성체 논쟁 개막의 주역, 박현채 전집 제1권, 고 박현채 10주기 추모집·전집 발간위원회 엮음, 해밀, 2006, 254-5쪽.

사회성격논쟁의 잠재적 마르크스주의-박현채의 사례

우리는 이 글에서 사회성격논쟁에 주목하되 그 논쟁에 투여되었던 마르크스주의의 구체적인 실천을 드러내보이고자 한다. 이는 사회성격논쟁에서 쟁점이었던 한국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그 논쟁을 촉발하고 또 주도적으로 관여하였던 어느 마르크스주의자의 사유를 살펴보며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실천의 특수한 모습을 조감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사회성격논쟁의 기원적인 텍스트이자 또한 사회성격논쟁의 주제(thematics)라 할 만한 것이 강력하게 드러난 텍스트인 박현채의 글을 살피면서, 크게 두 개의 주제를 살펴보려 한다. 먼저 그것은 역사적인 시간성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고 검토하는 것이 될 것이다. 덧붙여 밝히자면 이 글에서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더 알려진 당시의 논쟁을 사회성격논쟁으로 지칭하길 고집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사회성격논쟁이란 개념을 유지할 때 사회구성체의 기본모순과 역사적 시대와 단계에서의 주요모순을 구별하며 후자를 강조하고자 했던 박현채의 고민이 보다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현채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구성체는 역사발전의 5단계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사구체규정만으로는 그 사회의 구체적인 성격을 도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한 사회의 구체적인 모순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성격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고 이에 근거하여 사회성격의 분석에 모순론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박현채, 앞의 글, 259쪽.

‘시대(period)’/ ‘시대구분(periodization)’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한 이론적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른바 언어적, 문화적 전환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역사주의는 ‘너무나 근대적인’ 에피스테메(episteme)에 갇혀있음을 가리키는 특장으로서 끊임없이 조롱받아 왔다. 목적론적, 종말론적, 선형적인 역사 혹은 시간에 대한 사유에 갇힌 것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기소하고 비난하는 입장은 언어적, 문화적 전환 이후의 사회과학에서 하나의 상식처럼 간주되어 왔다. 이 글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시간과 역사 사유에 있어 그러한 근대적 형이상학에 갇혀있다고 힐난하는 이론적 주장에 대하여 대꾸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당연히 언급되어야 할 점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근대적 형이상학을 거부할 때 그 거부의 대상 가운데 결정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였던 시간 및 시간성, 역사성에 대한 접근(흔히 포스트모던 전환이라는 사유의 흐름에서 제안된)은 시간의 형이상학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보자면) 변화된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가 초래한 시간의 표상과 경험에서의 변화와 그 효과로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세계화라든가 금융화 등으로 번역되곤 하는 197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변화가 초래한 지각과 경험, 인식의 조건이 변화하면서 초래된 이론적 반응인 셈이다. 시간, 시간성, 역사성 개념을 둘러싼 정치적이면서도 이론적인 혼미를 돌파하려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개입의 사례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F. Jameson, The Seeds of Tim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 Osborne, Politics of Time: Modernity and Avant-Garde, London: Verso, 2010.

‘철학적’ 논제로서 시간과 시간성, 역사 등의 개념을 승인하는 순간,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모순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현실성(actuality)을 잃고 말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인식이나 정신의 범주나 개념으로서의 시간, 역사 등에 대하여 제기된 가장 강력한 반근대적인 담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특히 요강이나 자본에서 개진되는 마르크스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사유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가치와 자본에 의한 사회적 매개를 통해 역사적 시간을 총체화한다는 것을 설명함으로써 역사와 시간의 물질성을 인식하고자 한 바 있다. 이는 오늘날 강력하게 되돌아오는 베르그송주의적인 현상학적 시간 개념이나 하이데거의 역사성, 개시, 사건 등의 역시 현상학적 시간 사유의 위력이, 시간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사유에 효과적일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이론적 사유에 대한 열정이 혹은 시간과 역사성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범람하는 것이, 지구화, 금융화 이후의 자본주의에서의 시간의 ‘경험(experience)’을 둘러싼 미망(迷妄)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국가적 자본주의 ‘사회’가 사라지고 더불어 그러한 자율적인 역사적인 사회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실행된 근대화의 과정이 실종된 이후 우리가 접어든 역사적 시대는 시간과 역사에 대한 사유와 반성 자체를 재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연결된 초국적인 통신망을 통해 투기적 자본이 이동하고 TV, 이동통신,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매체을 통해 서로 다른 사태와 이미지들이 실시간으로 동조화되며 시간적 이벤트와 함께(새로운 시즌별 상품이 일제히 전 세계의 쇼핑몰에 함께 소개되는 것이나 새로운 디자인의 휴대전화나 자동차나 TV를 비롯한 가정용 내구재는 물론 블록버스터 영화나 게임 등이 같은 시간대에 광고, 홍보되는 사태를 생각해보라) 소개되는 상품들에 에워싸여 있는 세계에서, 시간과 역사를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체계의 역사의 변화와 관련해 비판적으로 분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능가하는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담론은 실은 시간에 대한 비판적 사유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전정치경제학 담론이 사회적 부가 왜 가치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지 즉 사회적 부의 증가가 아니라 부의 증가가 가치의 증식, 즉 이윤의 증가란 형태를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론을 전개했을 때, 이는 노동의 구체적 성격과 추상적 성격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으로 후자의 노동은 추상적인 노동 시간(마르크스가 자본 1권에서 자신의 가치론을 개관하며 도입한 저 유명한 가치의 실체로서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을 통해 실존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분배, 유통을 매개하는 데 있어 가치와 자본의 총체화하는 작인으로서의 역할은 언제나 추상적인 시간을 통해 전개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시간성에 대한 사유에 있어서의 전환이란 점에서 파악하는 대표적인 이론적 시도로 다음의 글을 보라. M. Postone, 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 a reinterpretation of Marx’s critical theory, Cambridge &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돌이켜보면 한국에서의 사회성격논쟁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있어 거의 수사(trope)적인 언어 습관이라 간주하고 싶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단계(stage), 시대(period), 시대구분(periodization) 등에 대한 거의 강박에 가까운 언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자로 프레드릭 제임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 저서인 후기자본주의 단계의 문화적 논리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숫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적 상부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와 시대구분이 일차적이라는 점을 제목에 기입한다. F.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1.
거의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절대적인 방법인 것처럼 그는 시대구분을 그의 대부분의 글에 도입한다. 그러나 이는 제임슨의 거의 기벽에 가까운 글쓰기의 요령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잠시 후 살펴볼 것처럼 그의 개인적 서명(署名)에 가까운 수사적 제스처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총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그가 의식적으로 도입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그 자체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 20세기 각 나라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토론들을 조감하면 상당수가 역사적 단계(보다 구체적으로는 충분히 자본주의적인가, 자본주의라면 어떤 단계인가, 아직 충분히 자본주의적인지 않다면 어떤 과도적, 이행기적 단계인가 등)를 둘러싼 논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레닌과 힐퍼딩, 룩셈부르크 등에 의해 왕성하게 토의된 20세기 초반의 제국주의 단계에 대한 논쟁이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의 강좌파/노농파(전후에는 강좌파/우노파(宇野派)), 봉건파/자본파의 해당 국가의 역사적 발전단계에 가까운 논쟁이든, 그것은 모두 단계와 시대구분에 골몰한다. 이러한 토론들이 역사적 시간과 자본의 초역사적인 시간의 모순 혹은 변증법을 다루는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내의 헤겔적 유산으로서의 역사주의를 척결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쇄신을 꾀한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 및 동료들의 시도 역시 이러한 시간성에 대한 사유의 예외라기보다는 이단적인 확장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한편 1965년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정치경제학을 둘러싼 각 국가에서의 논의를 통해 추적하고 개관하는 다음의 저작을 참조하라. 가치론과 가치형태론을 둘러싼 각 국가에서의 논의의 성과에 주목하는 편이지만 이 저작은 아시아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논쟁이 단계론을 통해 전개되었음을 살피는데 도움을 준다. Jan Hoff, Marx Worldwide: On the Development of the International Discourse on Marx since 1965, N. Gray trans. Leiden: Brill, 2017.

다음으로 사회성격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개입의 실천으로서 식별하려고 하는 것은 모순에 관한 접근이다. 알다시피 사회성격논쟁은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관계에 대한 악명 높은 토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늘날 다원주의적 사회이론에서 비롯된 정체성 정치가 가정하는 것처럼 계급, 젠더, 인종, 성정체성, 종교적 소속 등등의 다양한 정체성의 조합처럼) 민족과 계급이라는 별개의 사회적 실재를 가정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민족적 주체와 계급적 주체라는 것을 가정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이미 역사적 단계라는 개념에 의해 조정(措定)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급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소득수준이나 법률적 지위 등을 통해 분류할 수 있는 인구학적인 개념이 아닌 것처럼, 민족 역시 인종적인 소속이나 국적, 종교적인 성향 등에 의해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과 계급은 초역사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역사적인 객체(대상)으로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현채의 글에서 나타나는 마치 열정적인 마오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를 연상시키는 기본모순, 주요모순 등의 강조는, 민족과 계급이라는 두 범주 사이의 관계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에 따라 모순이 현실화되는 양상을 제시하는 역사적 변증법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박현채는 훗날 대담에서 “저의 모순론이 모택동의 그것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임을 인정하며 자신의 모순론이 도식적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모순관계를 중심으로 분석을 해야한다는 자신의 입장은 결코 철회될 수 엇으며 “그것은 포기될 수 없고 또한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박현채, 앞의 글, 260쪽.

이는 사회성격논쟁에서 강한 영향을 발휘한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일 뿐 아니라 훗날 범람하게 될 포스트모던한 민족주의 비판의 이데올로기와도 다른 방식으로 민족-국가적 형태의 자본주의 비판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추구가 국민국가적 근대화의 형태로 추진되었음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근대화/근대성의 동일성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나 사유형태로서의 근대성을 특권화하면서 근대화라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것은 근대성 비판의 한계를 말해줄 뿐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성 비판이라는 후기구조주의 이후의 사유의 한계를 비판하며 지구화 이후의 자본주의에서 발원한 독특한 관념론적 사유 흐름을 고발하는 제임슨의 글은 많은 점을 알려준다. F. Jameson, Actually Existing Marxism, Valences of the dialectic, London & NY: Verso, 2009, pp. 400-3.

그런 점에서 그의 모순론은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누적된 경험적 사회현실에 대한 고발로서의 전비판적인 비판(경험주의적인 윤리적 비판)에 머무르지도 않고,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통해 자본주의적 지배를 고발하는 비과학적인 자본주의 비판에 기울지도 않은, 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적 사유를 펼친 독특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불행한 점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독자들이 희귀한 상황에서 그의 개입을 ‘이론적인 비판’으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신식민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그의 분석적 결론에 집착한 채 공식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적 규정에 연연했다고 비난하거나 그의 이론적 프로그램을 요약하는 ‘민족경제론’을 잣구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민족주의자로 힐난하는 것은 그의 이론적 작업의 의의를 무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론적 사유의 노력을 살펴보면 그러한 비난은 전연 근거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거꾸로 그는 교조적인 공식 마르크스주의에 전연 구속되지 않은 채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사유를 추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회성격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 없는 마르크스주의’ 만을 보았던 그간의 비평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성격논쟁 ‘속의’ 마르크스주의를 식별하기 위해, 박현채의 이론적 실천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요긴한 것으로 보인다.

시대구분과 역사성

“역사주의는 단계들로 파악하는 현대이론에 대한 믿음을 지칭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는데, 대개 이 이론자체가 치명적으로 다윈(Charles Darwin)적이거나 진화론적인 함축 혹은 저의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 다만 내게는 ‘단계론’이 함축하는 역사적 계기들 사이의 질적이고 체계적인 차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달리 말해 나는 진정 역사주의자입니다.) 이에 덧붙여 (특히 때때로 ‘생산양식’론으로 불리는 맑스주의적 이론인) 단계론에 정치적으로 현저하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아니면, 실천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쩌면 단계론과 관련된 사항은 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의 사회구성체가 어떠할지 상상하도록 자극을 받게 되지요. 나는 이 상상력의 노력을 마르쿠제(Herbert Marcuse)와 블로흐(Ernst Bloch)를 따라 유토피아적 충동이라고 불러오곤 했습니다. 이런 충동이 없으면 정치적 실천을 불가능해 보입니다(오늘날 좌파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실패, 가능하고 바람직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성격이 어떠할지에 대한 문제를 비껴가는 사람들의 신경과민이 내게는 정말 아주 커다란 실패로 보입니다.” F. 제임슨, 문화적 맑스주의와 제임슨, 신현욱 옮김, 창비, 2014, 58쪽.
(강조는 원저자)

인용한 대담에서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역사주의를 개관한다. 이를 요약하면 ‘단계적 사유의 이율배반’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먼저 그는 역사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긍정하면서 자본주의가 단계에 따른 역사적 차이를 나타내는 것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역사주의적 사유로 환원할 수 없는 미래의 시간성이 ‘다음 단계’와 같은 것일 수는 없음을 지적한다. 미래는 단계가 아니라 유토피아적 충동에 의해 상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사고를 좇을 때,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에 내장된 두 개의 역사적 시간성(temporality)의 논리가 작동함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현재의 역사성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성으로서 자본주의가 자신의 논리를 실현하고자 할 때 부단히 자신을 역사적으로 재구조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역사적 시대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는 기업자본주의(경쟁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제국주의단계의 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세계화, 금융화 자본주의) 등의 역사적 단계로서 나타난다. 한편 다른 시간성은 포스트자본주의의 시간성으로 그것은 역사철학적인 논리를 통해 예고되거나 측량될 수 없는, ‘미래’의 초과적 혹은 잉여적 시간성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파악될 수 없는, 즉 오늘이 이러하므로 내일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시간성의 척도를 통해 파악될 수 없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참조하며 많은 이들이 역설하듯 사후성과 소급성의 시간, 즉 새로운 역사적 시간의 출현과 더불어 정립된 시간적 지평을 가리킨다. 이러한 시간성에 대한 사유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는 지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거의 모든 글에서 이러한 시간성 사유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다 꼼꼼한 사유를 전개하는 것으로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분명 여기에 뼈 하나가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새로운 토대를 향하여, 정혁현 옮김, 인간사랑, 2016.
그런 점에서 제임슨이 사고하기에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이중적 시간성 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시대구분은 단지 연대기적인 시간의 분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대의 총체성을 사유하기 위한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경제와 정치, 문화 등의 다양한 심급들 사이의 규정과 인과성을 사유하면서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총체성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기구분은 마르크스주의적 총체성의 변증법을 사유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성격논쟁에서 동원된 마르크스주의적 사유의 사례로서 박현채의 시간성, 역사성에 대한 사유의 특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민족경제론을 이루는 이론적 입장과 방법을 밝히고자 1989년 출간한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란 저서에서 그가 민족경제론의 핵심적인 이론적 범주로서 ‘사회구성체’와 ‘발전단계’를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저작에 실린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은 따로 분리되어 다음 해인 1990 주종환의 회갑기념논문집인 한국자본주의론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박현채 전집, 1권에 수록된 글을 참조한다. 박현채,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 앞의 책.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구성하는 민족적 생활양식론과 자립경제론, 민중론 등이 상세히 제시되는 이 저서에서 그는 자신의 이론적 기초를 구성하는 핵심 범주로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을 꼽는다. 그는 1991년 사회평론에 기고한 일종의 지적 회상록이라 할 수 있을 “민족경제론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술회한다. “나의 학문, 나의 사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치경제학적 입장이라는 것이다. 나의 학문과 사상은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학문·사상적 입장을 대표하는 민족경제론(한길사, 1978)은 정치경제학적 입장의 한국적인 구체적 상황에의 적용이며, 그것이 제기된 배경은 식민지 자본주의하에서 추상적인 정치경제학적 개념과 식민지 자본주의하의 구체적인 내용상의 괴리를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박현채, 민족경제론을 다시 생각한다, 앞의 책, 224쪽.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정치경제학적 입장’이라고 확인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정치경제학적 입장이란 마르크스주의를 가리키는 암호와도 같은 말이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현채 스스로 이러한 입장을 확인하여 준다. “민족경제론은 정치경제학의 한국적 적용이고 반식민지 종속적 발전에 있어 정치경제학의 원용이다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초기단계에 있어서는 정치경제학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민족이란 이름의 외피를 통해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박현채, 사회구성체 논쟁 개막의 주역, 앞의 책, 257쪽.

그렇게 생각할 때 앞서 언급한 저서에서 그가 자신의 민족경제론을 구성하는 이론적 원리와 방법을 서술할 때 그것은 또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 나름의 전유의 결과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 글에서 그가 개진하는 정치경제학을 구성하는 이론적 핵심 범주들은 모종의 사회철학적 사유에 의해 채색된 듯 보인다. 특히 상당한 논란이 되었던 ‘민족적 생활양식’같은 개념은, 훗날 학계를 휩쓸게 될 민족주의 비판 담론이나 후기식민적(Postcolonial) 담론을 감안하자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민족적 생활양식이란 개념을 통해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지배되며 또 특정한 사회집단에 의해 주체화되는지를 무시한 채, 초역사적인 실체인 것처럼 가정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담론적 전회 이후의 시각으로 민족경제론의 이론적 범주들을 심의하는 것은 이론의 ‘서사적 우의성(寓意性)’이라 부를 법할 만한 것을 무시하는 듯이 보인다. 국민경제와 민족경제의 괴리라는 점에서 종속적 발전의 파행을 진단하며 자립경제라는 이상을 실행하는 것이 그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 비롯된 정치학 즉 이행과 변화의 정치학이라 기꺼이 간주할 수 있다면, 민족적 생활양식과 같은 개념에 대해 그리 신경질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개념들은 종속적 조건에서 일국적인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가능성을 설명하고자 외삽된 것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개념들은 실용적인 것이기도 하면서 제3세계주의나 비동맹주의같은 정치적 담론의 네트워크에조차 근접하기 어려웠던 한국에서, 신식민주의적 조건에서 이행의 현실성을 피력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민족적 생활양식, 민족주의, 민족경제 등의 개념 자체라기보다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정치적 프로그램과 그것을 현실화하는데 따르는 지적이면서 문화적인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상할 것이라는 사안일 것이다.

박현채는 “정치경제학적 입장을 피억압 종속 상태의 민족적 상황에 적용한” 민족경제론의 얼개를 설명하면서 “민족경제론을 기초 짓는 민족적 생활양식론, 민족자본론, 자립경제론과 민족경제론, 민족주의론, 민중론,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 등 6개의 범주”를 열거한다. 앞의 책, 227쪽.
이 때, 무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다른 범주들이 사회적 앙상블 전체를 제시하는 사회(과)학의 범주들에 가까운 것들이라면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이야말로 정치경제학적 입장에 해당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사회성격논쟁에서 박현채는 앞서의 주요 범주들을 언급하지 않은 채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만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에서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회적 전체’를 제시하는데 기여하는 다른 범주들과 달리 정치경제학적인 입장에 해당되는 범주로서는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 만이 남는다. 그러므로 박현채의 마르크스주의의 중핵이 바로 여기에 있다면 그가 말하는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이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을 현실화하는 것인지 보다 유의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인식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개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역사적 과정을 될 수 있는 대로 구체적으로, 이론화는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서술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일반적으로 확립된 이론적인 법칙적 인식의 방법과 기초적인 제 범주, 예를 들면 경제제도나 사회구성체 등의 이론적 도구를 활용하여 역사발전의 법칙을 해명하고 오늘의 상황(한 사회의 성격이나 발전 단계)을 제대로 본다는 관점에서 구체적인 역사적 과정과 현상을 이론적으로 정서(整序)지어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 구체적인 나라에 있어서 구체성을 발견하려고 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개의 방법은 즉각적으로 서로 정면으로 모순되거나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앞의 방법을 취한다고 해도 역시 일정한 이론이나 개념을 매개로 하지 않는 역사인식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역사인식이라 할지라도 종국에는 추상화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화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개별을 개별로 파악해서 좁은 외연을 갖고 새로운 법칙을 자의적으로 창출하고 서술하는 것과 보편적인 법칙을 매개로 하여 개별을 인식하고 그 개별의 특수성을 명백히 하는 것과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당위적인 역사인식의 방법은 보편적인 법칙 (그것이 법칙적인 데서 완벽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을 매개로 하여 개별을 인식하고 그 개별의 특수성을 명백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역사인식에 있어서 경제적 인식은 다른 역사인식, 전체적인 역사인식에서 고립되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체적인 역사인식과의 관련에서 주어지고 현상은 모든 것의 서로 얽힘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쪽에서의 올바른 역사인식은 그 경제적인 쪽에서는 물론 전체적인 역사인식을 위한 완결된 체계(그것이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고 인간의 인식능력의 유한성 때문에 끝내 완벽한 것이 되는 것도 아니나)를 갖춘 것이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논의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서는 개념이나 분석수단과 같은 기초적 범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 단계의 해명을 위한 분석이론으로서의 주변부자본주의 사회구성체론이나 식민지 · 반봉건 사회론은 그 동기나 배경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노력에서 중요한 예단 또는 오류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현채, 앞의 글, 710-1쪽.

길게 인용한 앞의 부분은 사회성격논쟁을 격발한 그의 유명한 논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사회성격논쟁에 개입하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요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에서 박현채는 자신의 역사성에 대한 사고의 면목을 역력히 보여준다. 이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시간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위적인 역사인식의 방법은 보편적인 법칙 (그것이 법칙적인 데서 완벽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을 매개로 하여 개별을 인식하고 그 개별의 특수성을 명백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 그는 자본주의적 시간성을 파악함에 있어서의 보편성/필연성이 차지하는 의의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인 특수성/우연성(contingency)을 전연 무시하지 않는다. 나아가 그는 시간을 인식함에 있어 그것을 주관적인 인식 범주로서 사고하는 것을 부정하면서 그것을 역사적인 시간 속에 등록한다. 현실사회주의 붕괴가 본격화된 시점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사회주의 정치를 신산스럽게 바라보면서 박현채는 매우 놀라운 주장을 던진다. “오늘의 상황이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사회과학체계의 몰락 또는 해체가 될 수 없는 것은 소련과 동구에 있어서 사회주의의 부분적 파산이 인류의 사회주의를 위한 이상의 추구에 있어서 전면적인 좌절 또는 파산이 될 수 없다는 데서이다. 마르크스의 사회과학 체계에는 사회주의의 미래상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회구성체간의 이행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처럼 인간의 사회적 실천에 있어서 자의성과 창조성이 강조되는 시기는 없다. 이것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자본제사회의 태내에서 사회주의적 소유 또는 생산양식이 기존의 것으로 주어지지 않는데서 온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에 의해 권력을 장악한 후에 창조적으로 그 하부구조를 창출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로의 길은 다양한 길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자의적이고 창조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위기에 처한 사회주의는 이와 같이 많은 사회주의의 길 중에서 하나의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인 스탈린적 사회주의의 길일 뿐이라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박현채,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 과연 위기인가, 앞의 책, 206-7쪽. 사회주의의 역사적 위기를 강하게 부인하는 이 서술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그의 역사유물론적 사유에서의 필연성/우연성의 변증법에 대한, 매우 대담한 서술이다. 이는 생산력/생산관계의 도식에 따른 사회주의로의 필연적 이행이 아니라 이행의 우연성(그의 표현을 빌자면 자의성, 창조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와 확연히 단절하며 우연성/특수성 그리고 과잉(과소)규정된 정세(conjunctures)로서의 이행기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역사인식에 있어서 경제적 인식은 다른 역사인식, 전체적인 역사인식에서 고립되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체적인 역사인식과의 관련에서 주어지고 현상은 모든 것의 서로 얽힘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쪽에서의 올바른 역사인식은 그 경제적인 쪽에서는 물론 전체적인 역사인식을 위한 완결된 체계(그것이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고 인간의 인식능력의 유한성 때문에 끝내 완벽한 것이 되는 것도 아니나)를 갖춘 것이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시간 인식에 있어 역사적 객관성의 규정, 즉 경제적인 규정을 역설한다.

물론 이는 ‘경제사’가 다른 모든 역사(정치사, 문화사 등)을 규정한다는 식의 논리는 아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의 글에서 경제결정론이나 경제주의에 대해 주의할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인 것의 우위(priority)에 대한 그의 강조는 역사적 시간성을 인식하기 위해 도입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경제가 정치를 비롯한 다른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공식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상부구조 모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성의 사유를 위한 논리로서 경제적인 것을 정위시킨다. 다시 말해 그는 시간을 역사적으로 사유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경제적인 규정의 선차성을 인식하여함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경제적인 것이란 사회적 레벨이나 영역(sphere)으로서의 경제가 아니라 알튀세르가 말하는 구조인과성(structural causality) 혹은 ‘부재하는 원인(absent cause)’으로서의 경제라고 할 수 있다. 벤야민의 어법을 빌어, 다양한 사회적인 층위나 영역의 성좌/짜임새(constellation)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혹은 구조나 체계(system)의 시간성을 인식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경제적 논리가 우선적임을 승인하지 않는 시간성에 대한 사유는 결국 관념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박현채는 사회성격논쟁에 개입하며 한국사회의 구체성을 인식하고자 한다면 역사적으로 특수한 자본주의적 시간성에 의지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직관적인 시간 경험을 통해 한국사회를 나름껏 진단하고 분석하려는 숱한 ‘◯◯사회’론의 범람과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분석(?)에 해당되는 이론적 접근의 사례로서 그나마 정교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마음의 사회학”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현상학적인 경험주의에 기운 채 한국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을 밝히는 데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그러나 이는 정치철학적, 윤리학적 전환을 좇으며 사회 분석을 관념화하는 다른 이론적 접근과 달리 경제적인 변화와 문화적인 변화를 대조하고 연관시키려 애쓴다는 점에서 보다 나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보편법칙이 가리키는 시간성은 무엇일까.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만들어내는 시간은 주관적 경험의 시간을 삭제하고 이른바 질적인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제거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시간 없는 시간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시간에 대한 거부, 양적인 대상으로 객체화된 시간에 대한 부정은 19세기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철학적 사변의 주제가 되어 왔다. 아시아에서의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과정에서 시간과 경험에 대한 관계에 대한 분석은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의 반근대적인 담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그것은 반자본주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반근대적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지배의 효과를 시간성의 레벨에서 대응하고자 했던 일본과 동아시아의 철학적 사변에 대한 분석으로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해리 하르투니언, 역사의 요동: 근대성,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 윤영실, 서정은 옮김, 휴머니스트, 2006.

그렇지만 이러한 인식은 주관적 경험의 대상성을, 즉 주관적인 경험이 어떻게 객관적으로 규정되고 매개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경험과 체험으로서의 시간과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몰시간적 시간성이라는 이율배반은 해소할 수 없는 것일까. 전자는 주관적인 의식이나 경험, 감각 속에 갇혀있고 후자는 주관화될 수 없는 맹목적인 원리로서 우리의 등 뒤에서 맹렬히 움직이는 것일까. 그러나 이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은 역사라는 개념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역사란 개념은 곧 뒤에서 살펴볼 변증법이란 개념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있어 역사란 존재론적인 역사 이론이나 역사철학에서 상상하는 것처럼 변화를 조정하고 규정하는 항상적이고 본원적인 실체가 아니라 반복과 변화의 동일성/비동일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자본의 한계는 자본 자체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표현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성은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즉 자본으로서 자신의 운명인 가치증식을 지속하기 위해 불가불 변화를 필연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기동일성의 반복과 자기파괴를 통한 변화의 모순은 결국 자본주의의 내적인 변화를 불가피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일정하게 구조화되면서 독특한 자율적인 규칙과 패턴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그것을 단계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피상적으로 보았을 때 단계란 연대기적인 분류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의의 모순이 역사적으로 분절되는 과정과 그 효과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자본주의 발전단계란 개념으로 나타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는 경제사적인 단계의 개념과는 전연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사회구성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심급들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러한 심급들 사이에 이뤄지는 매개의 형식 자체를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자본주의와 리얼리즘, 독점자본주의와 모더니즘, 후기자본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자본주의 단계에 상응하는 문화적이면서 미적인 규범, 감성, 형식, 제도 등을 총체화하는 인식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단계란 개념과 호환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란 개념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사태는 복잡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헤겔주의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정신(Zeitgeit)’이라는 개념이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시대란 개념은 모든 현상을 망라하는 근원적인 본질, 기원적인 원인을 정초하고 모든 것을 그것의 표현이자 연장(延長)으로 환원하는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인과성 개념을 분류하며 알튀세르가 표현적 인과성(expressive causality)이란 개념이라 칭하며, 이러한 개념에 속박된 역사 인식(역사철학이나 역사주의, 나아가 라이프니츠-헤겔주의라고 칭했던)을 비판할 때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튀세르에 의한 표현적 인과성 개념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수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알튀세르는 자본을 읽는다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의 이론적인 ‘혁명’으로서 내세운 ‘구조인과성’을 전-마르크스주의적 혹은 부르주아적 과학의 인과성과 대조하며, 후자의 인과성을 기계적 인과성, 표현적 인과성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제임슨 같은 이는 이러한 알튀세르의 입장에 대해 지지를 보내면서도 기계적 및 표현적 인과성에 대한 알튀세르의 거부를 제한한다. 이를테면 그는 표현적 인과성 개념은 서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알레고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나름의 효용을 갖는다는 것이다. “표현적 인과성 또는 알레고리적 지배 서사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이 항상 유혹적이라면, 이는 이러한 지배 서사 자체가 텍스트와 그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까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알레고리적 서사의 기의들(signifieds)은 문학 및 문화 텍스트들에 늘 존재하는 차원인데 그 이유는 바로 이들이 역사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사고와 집단적인 환상의 근본적 차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이곳이 ‘표현적 인과성’에 입각한 연구가 이끄는 지점이라 한다면, 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실제적 경험에서 역사라는 텍스트 및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실질적인 억압을 가져온다. 안 그래도 점증하는 사유화가 그러한 차원을 거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만드는 때에 말이다.” F. 제임슨, 정치적 무의식, 이경덕, 서경목 옮김, 한길사, 40-41쪽. 여기에서 제임슨은 표현적 총체성을 후하게 대접하는 데,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서사를 분석할 때 알레고리가 갖는 기능에 유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훗날 그가 음모론이 비뚤어진 방식이긴 하지만 잡다한 사회적 현실을 낳는 원인을 인식하고 그러한 다양한 파편적 사실들을 총체화하고자 하는 일종의 인식론적 지도그리기의 일종으로 분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편 이는 앞서 언급한 바 있던,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의 서사적 우의성이라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족경제론을 구성하는 사회학적인 개념들은 한국자본주의의 역사적 현실을 재현하기 위한 서사(narrative)로서, 민족경제론 자체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구조화하는 원인을 분절하기 위한 알레고리적 서사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보다 통속적인 사회비평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일종의 유사(類似)-시대 개념으로서 ‘세대’담론을 통해 구체화되기 되기도 한다. ○○세대 등의 저널리즘적인 용어는 공통의 가치관, 감수성, 의식형태, 생활양식 등을 언급하면서 나름대로 역사적인 시간을 분절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세대론란 관념을 통해 표상되는 시대 혹은 역사란 지각과 경험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시간성의 효과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현실이 왜 그렇게 현상하고 경험되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를 단순히 기술하는 데 머문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기껏해야 공통의 역사적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지각하고 경험하는 현실에 대한 느낌을 사회심리학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 시간성의 지평에서 사회와 역사는 빠져나가고, 그것이 아무리 집합적인 것이라고 해도 (여기에서 집합적인 것이란 개인적인 것의 확장이나 개인이 자기증식된 다수란 점에서 질적인 차이를 갖지 않는 것이기에) 개인적인 심리적 경험으로 시간과 역사를 환원한다. 그러나 역사적 시대(구분)과 단계란 접근은 이러한 시간의 경험을 주관적인 지각과 정동의 차원에 제한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모순의 역사적인 전개와 결합시켜 이해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박현채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의 요체를 이루는 발전단계론이 역사적인 진화론과 전연 다른 것이면서 동시에 (내적) 본질 대 (외적) 현상이라는 이분법을 좇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의한 붕괴의 필연성을 역설하며 자본주의 내에서의 역사적 차이를 무시하는 입장과 선명히 구분되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위기에 대한 반성을 어느 정도 경과한 지금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둘러싼 이론적인 토론과 논쟁이 전연 불가능했던 현실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역사적 시간성의 담론으로서 이해한 박현채의 식견은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성격논쟁에서 발전단계론이라는 것이 이행의 조건과 이행을 실행할 정치적 주체를 규정할 작정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 자체와는 무관하게 외삽된 정치적으로 실용적 논의라는 선입견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가 역사유물론의 이론적인 약어(略語)인 사회구성체론과 거의 대등한 비중으로 발전단계론을 자리매김하고 그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간주했다는 것은 정치적 실용주의에 유혹된 몸짓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인 실재로서 자본주의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특별한 이론적 반성의 결과로 볼 필요가 있다.

모순과 인과성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전변과 무관하게 자본주의의 보편적 동일성을 확인하면서 그것의 근본적인 규정성을 되풀이하여 주장하고 나아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붕괴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통속적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박현채가 발전단계론을 역설함으로써 역사적 시간성의 인식으로서 마르크주의를 성취하였다면, 이는 무엇보다 그의 독특한 모순과 규정성에 대한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자신의 글에서 논쟁의 상대로 간주한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은 그 주장들의 이론적 성격, 무엇보다 모순 이론의 부재를 비판하는 것이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박현채는“한 사회의 성격의 해명에 있어서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외적 모순의 주요 모순으로의 전화가능성은 때로는 사회구성체로서의 한 사회의 성격 규정이나 해명이 아니라 외적 모순을 주요모순으로 되게 하는 한 사회에 대한 성격 해명을 하게 한다.”고 역설한다. 앞의 글, 675쪽.
다시 말해 그는 사회성격을 분석할 때 외적 모순(예컨대 제국주의 대 식민지, 종속국 간의 모순)이 주요모순으로 ‘나타나는’ 것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거나 그것이 그러한 주요모순이라는 점을 단순히 확인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이 “주요 모순으로 되게 하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못 박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변주자본주의론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주변부자본주의의 구조나 주변부사회구성체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그것이 더욱 정밀화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경제잉여의 일상적 누출 메커니즘의 정착화로서의 식민지 경제구조’ 이상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굳이 사회구성체라고 성격 지을 만한 조건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일축할 수 있는 것이다. 앞의 글, 686쪽(강조는 인용자).
주변부자본주의론이나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 “정태적인 유형화”에 머물러 있다면 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어떤 분석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기에 그러한 한계에 벗어나 있는 것일까.

“한 사회의 성격 해명에 있어서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외적 모순의 주요 모순으로의 전화 가능성은 때로는 사회구성체로서의 한 사회의 성격 규정이나 해명이 아니라 외적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하게 되는 한 사회에 대한 성격 해명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오늘에 있어서 한 사회의 성격을 위한 노력에서 많은 혼미를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식민지‧반봉건 사회론에 의거한 전전 한국사회의 사회구성체적 성격 규정 그리고 이의 전후에서의 연장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다음으로 한 사회의 발전 단계를 밝힌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구성체적인 것이지만 좁은 의미에 있어서는 한 사회구성체에 있어서 발전의 단계를 밝히는 것이다. 전자가 자본주의인가 아닌가를 묻는 것인데 대하여 후자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역사적인 발전 단계, 즉 산업자본단계, 독점자본 단계, 그리고 독점의 특수한 다른 단계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를 밝히는 것으로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회구성체 간 에는 물론 같은 사회구성체 안에서도 발전 단계를 달리함에 따라 인간간의 사회적 관계는 달라지고 모순의 내용 또한 다른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앞의 글, 675쪽.

인용한 글에서 박현채는 앞서 보았던 발전단계론과 사회구성체론을 연관시키며 모순론과 (역사적) 시간론의 연관을 제시한다. 먼저 그는 모순에 관한 이론적 서술을 전개하며 이른바 자본주의에서 모순의 규정이 복합적인 것임을 예시한다. 그는 각 역사적 단계에서 근본모순의 자기표현이나 실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적 모순의 주요 모순으로의 전화가능성을 언급하며 그것이 ‘사회구성체적 성격 규정’을 파악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외적 모순은 외적 모순이지만 그것은 기본 모순을 통해 매개되며 또 역으로 자본주의적 사회로의 이행과 발전의 과정은 이러한 외적 모순이나 다른 부차적 모순과의 매개를 통해 실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외적 모순과 내적 모순은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매개(과정)을 통해 주요 모순으로 분절되고 또 현상한다.

이를테면 박현채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외적 모순은 일정한 대상 및 과정의 본질과 그 변화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모순을 통해, 내적 모순에 의해 굴절되고 매개되어 내적 모순의 표현‧존재형태로서 나타나는 모순으로, 내적 모순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고 그 해결도 주요한 내적 모순의 해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며, 더욱이 이와 같은 내적 모순과의 결합을 젖혀놓고는 외적 모순이 존재하지 않고 작용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박현채, 앞의 글, 674쪽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외적 모순을 배경, 맥락, 외적 조건으로 간주한 채 기본 모순 만을 역설하거나, 아니면 기본 모순을 여러 가지 모순의 한 종으로 격하하고 외적 모순에 그와 대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모두 비판한다. 물론 그의 글에서 주된 이론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후자이다. 따라서 후자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한국사회의 성격을 사실적으로 표상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즉 그것의 분석적인 규정이 오류이기에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비판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구성체’론이라는 이름으로 환유적으로 약호화된 당시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유물론의 실제적 형태를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는 주변부사회구성체론과 같은 사회구성체론이 어떻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이해와 어긋나는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성격을 밝힌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인간간의 상호관계에서 주어지는 모순관계를 밝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그것은 한 사회에 있어서 기본적인 내적 모순을 밝히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기본적인 내적 모순을 밝히는 것은 사회구성체로서의 한 사회에 존재하는 기본적 모순을 역사적으로 연이어지는 사회발전의 단계에 비추어 제시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성격이 사회구성체로서 자본주의냐 아니냐는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한 사회에 있어서 내적 모순은 때로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경제 제도 또는 생산양식 안에서의 모순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러한 한 사회의 성격을 밝힌다는 것은 때로는 한 사회에 존재하는 버금가는 여러 모순 가운데 주요한 것을 밝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한 사회에서 주어지는 인간간의 상호관계에는 부차적인 것이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사회 밖으로 연관되면서 여타의 많은 외적 모순을 가지며 이와 같은 부차적이거나 외적인 모순은 기본적인 것을 젖히고 주요모순으로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본모순은 일정한 사회구성체 또는 경제제도 (경제제도 또는 생산양식) 안에서 주어지는 기본모순을 내재적인 것으로 가지면서 일정한 사회구성 또는 경제제도 상호 간에 주어지는 모순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이다.” 박현채, “현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 단계에 관한 연구 (I)-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을 둘러싼 종속이론 비판”, 박현채 전집 3, pp. 673-4쪽.

그의 사회구성체론이 역사유물론을 가리키는 은어(隱語)라는 것은, 위의 서술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의 사회구성체론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서의 보편적인 동일성, 시간 없는 역사로서의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흔한 인식과 단절한다. 이는 독특하게도 그가 사회구성체론을 곧 모순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론은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지속되는 자기동일성에 집착하면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와 재편을 간과하는 것을 피한다. 즉 그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시간성을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발전단계론이란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동인이 또한 그것의 역사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동인이기도 한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를 가리키는 이름은 당연히 변증법이다. 한편 박현채는 모순론을 통해, 알튀세르의 표현을 참고하자면,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에 가까운 관념을 적극 도입한다. 그러나 그가 인용하는 것은 알튀세르가 아니라 마오란 점에서 다를 뿐이다. “한 사회의 성격을 밝힌다는 것은 때로는 한 사회에 존재하는 버금가는 여러 모순 가운데 주요한 것을 밝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한 사회에서 주어지는 인간간의 상호관계에는 부차적인 것이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사회 밖으로 연관되면서 여타의 많은 외적 모순을 가지며 이와 같은 부차적이거나 외적인 모순은 기본적인 것을 젖히고 주요모순으로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언급할 때 우리는 그의 주장이 곧 알튀세르의 역사유물론의 비판적 독해를 통해 소개된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이론적 면모를 선취하는 것으로 여기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까지 한다. 그런 점에서 박현채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지지하고 그의 ‘독점 강화, 종속 심화’ 테제를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이론화한 PD파에게 주요한 마르크스주의적 참조점이 알튀세르의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였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이론적인 후속 관계는 단순히 한국자본주의의 성격 규정에 대한 결론이 일치해서이기보다는 박현채의 역사유물론적 인식에 잠재해 있던 변증법적 사유의 요소가 알튀세르의 과잉(과소)규정, 구조인과성, 모순 등과 매우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현채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을 요약하는 것으로서의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의 이론적 혹은 역설적으로 반이론적인 지위라고 할 수 있다. 사회구성체론과 발전단계론을 통해 그가 자신의 이론을 구성할 때, 그것은 전체 사회적 현실을 망라하고 초월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이론, 즉 특정한 교의와 정리(定理)들로 구성된 체계적 논술로서의 이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라기보다는 실천적인 상태로서 작동하는 이론, 즉 분과학문으로 환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철학에서의 존재론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그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구성체론 즉 모순의 역사적, 사회적 분절을 통해 규정되는 한 사회에 대한 구체적 분석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사회로서의 자신의 모순을 형성,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역사적 변화(이는 경제적 변화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법률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변화 등을 아우른다)가 초래하는 단계의 변전을 분석하는 역사적인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라 할 수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1985년 어느 문학계간지에 사회성격논쟁의 포문을 연 글이 실렸다. 그 글은 지금, 여기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변혁하기 위해 누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을 개시한 기원적인 텍스트로 기억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은 그 텍스트에 대한 융숭한 대접이기는커녕 그 글이 겨냥했던 이론적, 정치적인 야심을 억압하거나 부인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러한 의혹에서 비롯되었다. “현실적인 인간의 사회적 요구는 보다 구체적인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자기들의 역사적 상황을 밝힘으로써 내일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실천에의 지침을 주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역사 인식 또는 과학의 추상적인 법칙의 추구는 그것을 당장 그리고 바로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박현채, 앞의 글, 709쪽.

그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지나가며, 읽는 이에 따라 그저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례적인 서술인 듯 여기기 쉬운, 서술을 남긴다.
그러나 그의 언급은 그의 글이 개시할 논전에서 자신이 위치할 곳을 지시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말하는 추상적인 법칙이란 경험적인 대상을 관념 속에서 추상화한 그러한 추상적 법칙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론에서 말하는 ‘추상’, 즉 그것은 주관적인 관념이나 의식을 통해 외적 대상을 추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편에서 이뤄지는 추상, 즉 무한히 다양한 감각적 활동인데도 그것을 추상적 노동으로 규정하는 자본주의 자체의 현실적 추상(real abstraction), 가치, 화폐, 자본이라는 추상화된 형태의 사회적인 부만이 인정되고 추구되는 자본주의의 추상, 그리고 그러한 추상을 통해 매개된 사회적인 적대(계급, 민족, 인종, 젠더)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말한 추상적 법칙이란 분석의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을 완곡하게 강조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그 대상이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자 그에 과잉/과소 규정된 혹은 그를 통해 매개된 다양한 모순들이 분절되어 형성된 역사적 사회구성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그 자체 추상을 통해 작동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박현채의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그러한 대상(object), 즉 역사적인 시대/단계와 그것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모순의 규정의 효과로서의 현실의 사회 구조를 강조하며 추상적 법칙이란 관념을 유지한다.

민족적, 민중적 지식인의 모범으로서 암흑과도 같은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투사로서 그를 기억하는 것, 소년 빨치산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독학하며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시대에 이단적인 이념을 지키고 투쟁했던 영웅적인 좌익 지식인으로서 그를 기억하는 것, 이 모두는 한국 현대사를 잊지 않는 이들에겐, 부당하지만은 않은, 지식인 박현채를 기억하고 또 흠모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는 그를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으로서 기억하는 것 역시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그는 무수히 많은 경제평론을 썼지만 그 글들은 모두 자본주의라는 체계 혹은 구조의 작용으로서 인식하고 분석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분석할 수 없었지만 박현채는 거의 형언할 수 없는 이론적인 고립을 견디며 자신의 마르크스주의를 다듬어 왔다. 아마 그러한 그의 이론적 사색의 놀라운 효과는 훗날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도덕적인 수사처럼 남용되었던 ‘천민성’, ‘매판성’ 등의 개념을 고안하고 널리 퍼뜨렸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천민성, 매판성 같은 개념을 제안하기 위해 막스 베버와 일본의 베버주의적인 경제사가인 오쓰카 하사오(大塚久雄)의 논변을 대담하게 참조하고 인용한 것은 그의 이론적인 절충주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박현채, 한국자본주의론, 박현채 전집 제4권, 197-821쪽, 정신적분위기와 생산력의 발전, 박현채 전집 제5권, 550-553쪽.
오히려 박현채는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규정이 결과한 ‘상부구조’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대담한 이론적 사색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론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이 글에서 우리는 사회성격논쟁 속에 투여된 담론들을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적 사회과학으로 분할하며 박현채의 이론적 개입을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이론적 실천의 사례로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는 사회성격논쟁을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이 상연되었던 독특한 무대로서 분석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부대적인 욕구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였음을 밝혀두어야 할 듯싶다. 그것은 먼저 마르크스주의적 어법을 사용하지만 정치적 정세에서 비롯된 다양한 열정을 반영할 뿐이었던 비판적인 사회분석이 쇠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를 곧 마르크스주의의 소멸이나 몰락으로 이해하려 했던 그간의 인식에 시비를 걸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결산은 유보되거나 아니면 비판을 추월한 거부로 대체되어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한 것도 결산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사회성격논쟁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토론이 제기될 수 있는 일차적인 후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으로 돌아가 보았자 우리가 마주하게 될 마르크스주의는 거의 박현채의 마르크스주의일 것이다. 그것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아니라 발전단계론과 사회구성체론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으로 학문적 검열을 피해 가공 처리된 마르크스주의, 자신의 사회성격규정을 위해 드러나게 또는 은밀하게 제시된 그의 역사변증법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자신이 논쟁하고 씨름할 대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이론 없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이론적 신체 즉 저자, 어휘, 개념, 텍스트, 논쟁 등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상상하는 출발점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

_한국의 지식엘리트 심포지엄을 위해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