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Men At Work – Down Under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주의가 인간을 이해하는데 널리 권장하고 또 사용하며 오늘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수련해야 할 행위의 덕목을 가리키는 말. 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기 위해 업자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였던 과거를 물리치고 오늘날 인간을 이해하는 결정적 단서로서, 시대의 낱말이 되었다. CPU속도, 모니터 해상도, 스피커 채널 등을 가리키는 스펙이란 용어는 이제 노동자 나아가 모두의 됨됨이를 역량(competence)으로 환원하고 측정하는 데 두로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OECD 국가들이 앞 다투어 실행하여 재미를 보았다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National Competence Standard)은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전문대학을 비롯한 모든 직업교육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국가직무능력을 관장하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직무능력이란 온-스펙(On-Spec)이다. 해당직무에 맞는 똑떨어지는 능력들을 가리키는 온-스펙은 일을 직무를 이루는 일들의 집합으로 여긴다. 만약 내가 미용사라면 나는 커트력, 샴푸력, 염색력 등의 능력을 합한 일을 하게 된다. 일은 대상에 따라 다르고 일하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며 숙련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이제 엄살이 된다. 일은 이제 거의 한계 끝까지 표준화되고 단순화되고 경영자가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재구성된다.

그러나 스펙의 탄생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지닌 특성에서 이미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이란 내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사람이 하는 활동으로서의 일을 돈이 되는 노동으로 바꾸어놓았다. 예술가는 작품을 창작하지만 노동자는 상품을 생산한다. 창작과 노동 사이의 거리는 천국과 지옥의 거리만큼 멀어진 것이 자본주의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노동을 대신해 손으로 하는 일, 메이커(Maker)가 되고 공예가가 되고 DIY가 유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노동의 법칙에서 벗어난 참된 일을 찾고 싶은 이들의 꿈이 배어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슬픈 일이지만 서툰 꿈일 뿐이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아이를 위한 목마나 맛있는 빵을 나의 솜씨와 시간, 상상을 들여 만들 수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은 그렇게 만들어질 수 없다. 나아가 1인기업이니 스타트업이니 기업가정신이니 하는 자기가 잘 하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라는 사탕발림의 말로 우리를 꾀어내는 스펙의 문화에 더욱 얽매이게 된다.

마르크스는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으로 구분하면서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은 이런 두 가지 노동의 모순적인 통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빵을 굽고 재봉을 하고 자동차를 조립하는 등의 구체적, 개별적인 일을 하지만 그것은 모두 노동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처럼 노동을 사회화하여 사회 전체의 노동에 비추어 개별 노동은 평가받는다. 그 결과 어떤 노동이 행하는 노동방식이 기준이 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은 비효율적이라는 둥 비능률적이라는 둥이란 이름으로 가차 없는 개선과 인사고과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스펙은 새로운 노동자의 모습이 요구되는 자본주의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노동자의 집단적인 힘이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나라에 따라 다르기도 했지만 같은 직종에 종사하면 대개 비슷한 임금을 받거나 하는 식으로 보상이 결정되었다. 이는 직업이나 산업별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나서 자본가들과 협상을 통해 같은 임금을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교섭력이 땅에 떨어지면서 노동자들은 개별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된다. 이는 성과임금제나 연봉 체제를 널리 확대시켰고 노동자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말려들었다. 자본가들은 핵심인재라면 후한 대접을 하겠지만 아니라면 역량개발과 평생학습을 통해 스펙을 끌어올리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인 일이 벌어졌다.

두 번째로 스펙은 자본가에 의한 지배와 착취로부터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이 착취의 주인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노동자가 되려는 이나 이미 노동자인 사람들도 이제 기업이 기꺼이 채용해줄 인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관리하고 경영하여야 된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봉사활동, 자격증, 수상, 인턴경력” 등 8대 스펙 쌓기가 2010년대 한국에서 스펙의 공식이다. 그러나 이는 그냥 최소한 일뿐이다. 이제 나는 인적 자본이므로 그것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모, 말투, 체력, 사교관계 등 모든 면에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술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면에서 스펙은 오늘날 우리가 자신의 삶으로부터 뿌리째 뽑혀져 나가는 소외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세 번째로 스펙은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를 묻는 윤리가 완전히 재편된 세계에 접어들었음을 가리킨다. 스펙은 이 세상에서 사랑할 것은 나밖에 없다고 못 박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물으며 자신을 어떻게 개인화시킬 것인가란 물음은 언제나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더 높은 사양의 스펙을 쌓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스펙이란 말이 가장 악랄한 점은 내가 어떤 삶을 사는 게 좋은지 잊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스펙이란 새로운 외래어가 사전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사전 편찬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사전은 새로운 낱말을 등록하고 풀이하는 일이 아니라 사라져야 할 낱말을 찾아내고 그것에 대한 관심을 북 돋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첫 번 째로 스펙이란 낱말을 기꺼이 골라 보았다.

_<워커스>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