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포럼A와 이 포럼A, 그리고 90년대의 한국 미술

Norman McLaren – Dots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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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럼A>는 경계성 성격 장애를 호소한다. 진단이 필요하다. 치료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기억상실과 기억포화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방황하고 있다. 포럼A는 그 방황의 어느 자락에서 더욱 깊은 방황의 고통을 앓는 듯 보인다. 그들은 옛 포럼A의 이름을 승계하자는 선택 앞에서 신경증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이 계속하기로 한 그 것, 포럼A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채택하게 되었을 때의 혼란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듣자면 먼저 이런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그들이 유산상속자임을 머뭇대는 포럼A는 과연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 이에 대해 새 포럼A는 그것은 별 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안소현은 “옛 포럼A의 중요한 글들을 읽고 토론을 했지만 그 의의를 정리하고 역사화하는 일은 별도의 비평사적 연구를 통통해 진행할 일이라는 판단”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나를 놀라게 한다. 유산상속을 위해선 먼저 상속될 유산의 가치를 저울질해야 한다. 땡전 한 푼 남기지 않고 파산한 자에게서 상속받을 유산같은 건 없다. ‘어마무시’한 유산을 남겼다면 유산상속 싸움이 불가피하다. 누가 그 유산을 챙길 것인가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 새 포럼A는 유산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는 무슨 말로 새겨야 옳을까. 새 포럼A가 옛 포럼A로부터 상속, 계승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심지어 알고 싶지 않다면 그러한 명명을 브랜딩(branding)처럼 다루면 될 일이 아닐까. 가볍게, 실용적으로, 마케터의 전술처럼 이름을 사용하면 될 일이다. 백두산에서 길은 물이라 백산수라 부르고, 제주 한라산에서 길은 물이라서 삼다수라고 부른다 한 들, 우리가 그 물의 연원과 정체성을 두고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던가. 그런데도 자기 지명(指名)을 통해 자신의 상속의 고통을 하소연하는 것, 자신을 호명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들은 새 포럼A의 비평 실천에 도사린 어떤 위험과 불안을 토로하고자 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90년대 문제’라고 부르기로 한다.

[2]

옛 포럼A는 1990년대적이다. 이는 그들의 주요한 활동시기가 1990년대였다는 점에서도 1990년대적이지만, 또한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의미로도 1990년대적이다. 미술사적인 의미에서의 1990년대란 시대아닌 시대, 즉 1990이라는 숫자를 통해 연대기적으로 표지함으로써만 가까스로 그 때의 시간적 경험을 가리킬 수 있다는 뜻에서 ‘시대 없는 시간(적 범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란 역사화된 시간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거칠고 도식적이게 들리겠지만 그리고 이런 역사적 시기 구분을 지지하는 이들을 찾기 어렵겠지만-물론 나는 역사적 총체화가 비평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한때 유행했던 미술사에서의 ‘시대’에 빗대어 말하자면, 기업자본주의 시대의 리얼리즘, 제국주의 시대의 모더니즘,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것이 역사적 시대와 예술적 실천의 시대 사이의 관계를 총체화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 대 민중미술의 대립(만약 그러한 대립(opposition)이 미술 바깥에서 진행되고 있던 사회적 대립이 미술적 실천 내의 대립으로 전치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으로 재현되면서 정점에 이르렀던 미술사적인 시대구분(periodization)은 바로 그러한 시대구분을 유지했다. 그리고 역사와 사회, 미술의 관계를 연관시킴으로써 자율적인 작품을 신성화하는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평적 의식 역시, 1990년대에 이르면서 좌초한다. 다시 말해 미술적 실천을 역사화할 수 있던 마지막 시기(period)였던 80년대 전후가 종료되면서 1990년대는 도래했다. 그렇기에 1990년대란 역사적 기억상실증을 가리킨다. 그리고 1990년대는 누군가에겐 종말이지만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으로 서사화된다.

 

[3]

한국의 동시대 미술을 헤아리는 어느 집단 저작에서는 1990년대를 한국 ‘동시대 미술’의 시작으로 꼽는다. 한국현대미술포럼이 기획한 한국 동시대 미술: 1990년 이후는 노골적으로 1990년대를 동시대 미술에 편입한다. 이를테면 그 글에서는 이런 서술이 등장한다. “최근의 미술이 보여주는 성향 중 상당부분이 이미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책에서는 동시대 미술의 시간적 폭을 넓혀 1990년대까지 포괄하고자 한다. 이 시대가 이른바 다원주의(pluralism) 시대로 일컬어지듯이 이 시기의 미술은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는 1990년대라는 모호한 비-시대적 시간을 과감하게 동시대란 시간에 등재함으로써 골치 아픈 문제를 처음부터 선제적으로 제거한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접근에 인접한 듯싶으면서도 1990년대의 한국 미술을 특유의 시간대로서 서사화하려는 시도가 문혜진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1990년대 미술을 역사화한다기보다는 1990년대의 어떤 기우뚱하고 예외적인 듯 보이는 징후들을 ‘이상화’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상화란 말 그대로 포스터모더니즘이라는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이념을 수용, 실천, 변용하는 과정으로서 1990년대 미술을 본다는 뜻이다. 즉 그것은 (제 아무리 번역과 변용, 잡종화를 강조한다 하더라도) 미학적, 정치적 이상을 통해 종합될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90년대 미술의 사례들(전시, 비평, 제도 등)을 훑는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화와는 거리가 멀다. 나아가 그것은 평범한 경험적인 사회학적 분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대단한 꼼꼼함과 광범한 자료 수집을 통해 1990년대 한국미술을 둘러싼 작업과 그에 대한 자기반영적 담론들을 아카이빙하지만, 여기에서 1990년대라는 역사적 시간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사실들이 집적된 사회학적 사실들로 환원된다. 문화번역이란 것이 지구화 이후의 역사적 조건에서의 문화 생산/소비의 정치를 ‘번역’의 공정을 통해 밝혀내는 것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번역은 임의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분석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러한 분석을 요구하는 역사적 조건을 내부에 포함시킨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구화라는 자본주의의 특수한 과정의 일부가 문화번역일 것이다. 그렇다면 분석 대상 역시 분석의 외부에 자립하여 놓인 것이 아니라 (해체주의적 어법을 빌자면) 이미 구성적인 외부로서 자리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자면 문화번역이란 이미 가치를 상실한다. 문화번역이란 국민국가의 경계가 선명하고 국민-문화라는 상상적인 자율적인 실체가 있을 때만 가능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화번역이란 지구화가 본격화될 때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문화번역이란 사고는 포스트모더니즘 이전(以前)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근본적인 제한과는 상관 없이 그는 1990년대가 예외적이며 섣불리 ‘컨템포러리’로 소급하여 처리하는 데 망설인다.

 

[4]

경험주의적인 사회학적 분석이 1990년대 한국미술을 분석하는 논리로 작용하는 본보기와 같은 사례는 1990년대 미술을 자율적인 전시 대상인 것처럼 만들어 낸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일 것이다. 이 전시를 담당한 큐레이터인 여경환의 글을 읽는 이는 당황하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일곱 가지로(실은 그가 셈하기를 잊은 한 가지를 추가하면 여덟 가지) 꼽지만, 그것은 연관과 매개 없이 열거된 외적인 사회적 배경들을 묘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세대 소비문화의 등장, 컬러텔레비전과 휴대전화 등을 비롯한 통신매체 수용에서의 변화, 해외여행자유화와 비엔날레의 붐, 새로운 전시제도의 발흥 등은 모두 그저 외재적인 경험적인 사실들이다. 그것이 어떤 효과를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다. 분석은 그것이 어떻게 연관되고 매개되어 미술에서의 경험과 지각, 표현 형식, 제도적 실천들로 나타나는지 추적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즉 무관해 보이는 듯한 경험적 사실들의 연관과 매개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외적 배경에 비추어 멀뚱하게 대조하는 즉 역사적 시간 바깥에 문화나 예술을 세워놓는 것이다. 이때 역사는 사회적 배경으로 전락하고, 1990년대는 아무런 역사적 시간성을 품지 못한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원인은 배경으로 전락하고 역사적인 규정은 외적 조건에 대한 묘사에 그친다. 그것은 역사적 인과론이 없는 사회학적 묘사로 치닫고 만다. 그러나 예술과 사회, 역사의 관계는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아니다. 그 때 비평은 분석에서 좌초한 비평 이전의 저널리즘적인 묘사 근처에서 배회하게 된다. 특정한 예술적 실천, 작품을 분석한다는 것은, 적어도 형식주의적 분석(역사적 규정을 배제한 채 작품이나 미(美)같은 물화된 개념에 의존한 분석)이나 미학주의적 비평(미적 가치를 절대화하고 그것의 함량에 따라 고립된 작품을 비평하는 것)을 피한다면, 역사화한다는 것이고 비평은 역사적 분석이다. 그리고 역사화한다는 것은 ‘시대’의 역사적인 규정(determination)을 밝히는 것이다.

 

[5]

그런데 1990년대는 역사적 의식이 스러지는 시간대였다. 장차 그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 경험으로서의 기억, 무한한 현재로서의 동시대성이라는 시간이다. 어떤 이의 표현을 빌자면 시간성의 종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 즉 현재라는 시간만이 남고 과거는 현재에 의해 소환된 기억으로 환원되고, 그 과거사라는 이름으로 축소된 시간조차 트라우마, 충격, 강박 같은 고립된 개인 혹은 특수한 정체성으로 묶인 집단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 점멸하면서 환기된다. 이러한 기억 상실은 물론 물론 포화된 기억, 그리고 신종 문화산업의 일종으로 부상한 기억산업(memor business)을 통해 생산, 소비되는 현상과 짝을 이룬다. 기억은 역사를 밀어내며 현재를 시간의 전부이자 전체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달리 말하자면 1990년대는 역사화를 둘러싼 의식이 어려움에 봉착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장황하게 당시의 사회적 조건이 어떻게 그 시대의 문화예술 현상을 결과했는지 낱낱이 셈한다. 경험적 사실들로부터 특정한 예술적 실천이 귀결되었음을 분석하지 못하는 곤란은 세대적 감수성, 메체/기술의 변화에 따른 지각형태의 변화 등과 같은 유사 사회심리학이나 매체론을 통해 보완된다. 그도 아니면 1990년대라는 기표(記標)가 연상시키는 한국 사회에서의 일종의 불수의적 게슈탈트((이를테면 거의 직관적인 ‘맞아 그 때는 그랬지!’와 같은 결코 무매개적이라 할 수 없는 매개된, 그러나 직접적인 듯 간주되는 상상)를 통해 근근이 분석의 곤란을 벌충한다. 결국 1990년대의 한국 미술은 종합할 수 없는 사실들의 세계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를 어떻게 역사화할 것인가의 문제에 따른 곤란은 옛 포럼A를 역사화하는데 따르는 어려움과 잇닿아 있다. 이는 옛 포럼A(그리고 ‘미술비평연구회’, 그리고 그와 공조했거나 연루되었던 작가, 비평가들을 모두 망라하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가 역사/기억 사이의 분기를 보여주는 즉 역사화가 불가능한 어떤 시점에 놓여있다면 포럼A 역시 예외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예외적인 위치에 놓을 수 있다면, 즉 포스트모더니즘 대 포스트민중미술이라는 역사적 대립을 포스트란 접두어 속에 부정적으로 보존하면서, 1990년대의 미술 내부에서의 변화를 역사화할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하려 했다고 대담하게 가정해 볼 수도 있다.

 

[6]

그러나 옛 포럼A가 과연 동시대미술이란 이름으로 범람하게 될 역사 이후의 미술, (미술사적) 비평 이후에 모습을 드러낼 창작과 비평의 예후를 포착하고 인지적 지도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기란 곤란하다. 그것은 포럼A가 부족했다거나 착오에 빠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중미술이 근거하고 있던 미술적 실천이 역사적 비평에 의존하고 있었다면 1990년대라는 시간대는 그러한 역사적인 비평을 좌초시키는 변동의 시간대였고 포럼A가 결을 거슬러 그러한 역사적인 시점을 획득하기가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포스트 역사 혹은 탈-역사라는 시간적 의식과 경험의 자장에서 포럼A가 손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흥미로운 것이 옛 포럼A가 역사적 사회적 비판을 대신해 혹은 그것이 지나치다면 역사적, 사회적 비판의 수정된 버전으로 제출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미술운동의 4세대를 위한 노트」라는 글에서 포럼A를 이끌었던 박찬경은 이렇게 언급한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프로그램이 가능하다. 9-1. 새로운 주제의식: 역사적, 사건적, 인물중심적, 선언적, 서정적, 기념비적, 작가중심적, 일방적 주제의식 → 현재적, 일상적, 상황중심적, 구체적, 서사적, 관객중심적, 쌍방적 주제로의 이행.” 그리고 우리는 지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은 완전히 성공적으로 실현되었고 동시대 미술이라는 미술 실천의 주류가 되었다고 말이다. 현재적? 시간을 공간화하며 지금 여기에서의 경험을 촉구하는 설치와 퍼포먼스는 오늘날의 주된 형식이 되었지 않는가. 일상적? 정체성을 다루는 것은 기본이요 일상생활에서 비롯되는 경험치들은 전시장소를 가득 채운 지 오래이다. 서사적? 신화, 전설에서 시작해 증언, 고백, 르포르타주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미술의 전시장 어디에나 넘쳐나는 서사적 충동을 굳이 이야기해야 할까. 관객중심적? 관객참여형 작업은 오늘날 좋은 작업이 되기 위한 윤리적 기준으로 군림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는 이러한 미술의 윤리적 전환을 근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쌍방적? 관계미학에서 사회참여예술, 공동체 예술, 대화예술, 참여예술 등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비평 아닌 비평적 담론은 차치하더라도 전시제도 자체가 스스로를 플랫폼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며 너스레떨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위에 언급한 다양한 새로운 주제의식들 가운데 다른 주제의식들의 효과를 좌우하는 규정적인 항목이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서 ‘현재’로의 전환이다. 그 전환은 작가나 비평가의 의식과 의도를 통해 생산되고 촉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서 기억으로의 전환, 역사적 과거에서 현재적 과거로의 전환, 미래의 소멸 등은 주관적인 의식의 변덕이 아니라 무엇보다 시간을 둘러싼 경험과 의식을 구성하는 객관적 현실에서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단계로의 전환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정치의 쇠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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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운동의 4세대를 위한 노트」에서 박찬경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아방가르드란, 극우적인 파괴성이 아니면 간접적인 것이건 아니건 진보적 사회운동의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미학적 아방가르드와 정치적 아방가르드는 그 출생에 있어 거의 구분할 수 없으며 민중미술의 진정한 힘, 이어가야할 핵심적 테제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지금. 거의 10년 주기로 포럼A의 최초의 문제의식을 복기하며 그에 대한 고쳐 쓰기를 시도하는 글에서, 박찬경은 2015년 추가한 어느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술운동이 없는 미술은 어떻게 미술일까.” 그는 여전히 운동으로서의 미술, 정치적인 행위로서의 미술에 관하여 상기한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미술운동은 물론 앞서의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물음은 앞에서 제기했던 ‘핵심적 테제’를 잊는다. 그것은 미학적 아방가르드가 가능하기 위해 정치적 아방가르드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아방가르드란 결국 총체화된 시간적 구조로서의 역사적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이다. 그렇다면 시간, 역사, 의식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미술운동은 역사적 실천으로서의 정치와 만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정치운동 없이 미술운동이 여전히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가 된다. 그러기 위해 1990년대의 포럼A는 1990년대적으로 시간, 역사, 의식을 상실하는 과정에 동참했다. 그들은 나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모더니즘의 잔당들과 대치하고 싸운다고 했지만 그들은 보다 깊이 반(反)1990년대적이지 못했다. 외려 그들은 너무나 1990년대적이고자 했고 또 그렇게 되고 말았다.

 

[8]

그러므로 이제 다시 새 포럼A로 돌아가 말할 수 있다. 비평집담회에서 안소현이 말했듯이 이제 고작 창간호를 낸 어떤 비평 매체에 대하여 그것의 의의를 따지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새 포럼A의 실적을 가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새 포럼A가 미술에 대한 역사적 글쓰기의 다른 이름인 비평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으로 질문을 고쳐 던지면, 문제는 달라진다. 옛 포럼A는 민중미술이란 역사적인 미술 운동의 성취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역사적 비평으로서의 미술비평을 고집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적 시대를 읽기 위해 그들이 집어든 광학장치는 줌인만이 되는 이상한 것이었다. 그것은 현재를 역사적인 시간(과거-미래)와 연결하기 위한 거리를 확보할 수 없었다.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조준하고 측량하는 보폭을 내딛지 못했다. 여기라는 장소, 현재라는 시간, 경험이라는 주관적 현상과 체험이라는 신체, 감각에 너무 정신을 팔았다. 어질한 소비자본주의의 도착과 범람, 황홀한 대중문화와 시각문화의 급류에 대응하기 위해 꺼내든 일상성 비판은 현재, 경험, 구체 등의 개념에 의존했다. 그렇지만 그 개념들의 이론적 정치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거나 좋게 말하자면 안이했다. 그러한 개념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중립적인 분석의 도구가 아니라 이미 현상학적이거나 존재론적 사변철학, 실용주의 등에 의해 깊이 침윤된 개념들이고, 그런 점에서 이미 특정한 경향의 이론적 실천과 정치를 전제한다. 동시대 미술을 지배하는 개념, 이론, 서술, 수사학들은, 하이데거의 현존재(거기-있음 Da-Sein)이든 퐁티의 육화된(구체적인) 인식이든 제임스의 체험으로서의 예술이든, 이미 어떤 이론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 그러나 자생적인 미술언어를 찾느라 그들은 진정으로 지배적인 미학적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었다. 자생적 의식과 언어가 투명하고 순수하고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왜 이데올로기적인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9]

민중미술은 내용에만 치중했지 형식을 소홀히 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비평은 1990년대라는 시간을 역사화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미술 실천의 형식이 왜 역사적으로 규정된 것인지, 설치와 다양한 매체라는 새로운 형식이 왜 그러한 역사적 규정에 따라 매개된 형식이었는지 규명하지 못할 때, 이미 그것은 그러한 형식이 곧 내용일 수밖에 없는지 밝히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내용이 형식으로부터 자율화되고 또 거꾸로 형식이 내용으로부터 자율화될 때, 형식이 매개된 내용이고 내용은 곧 형식을 통해서만 온전히 발화될 수 있다는 것을 밝히지 못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내용과 형식의 매개를 가리키는 이름이 역사적인 비판(비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도르노의 마르크수주의적인 예술 비평을 온전히 고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아도르노가 미학이론에서 말하는 주장을 역사적 비평, 지금은 시들해지거나 죽은 개처럼 취급당하는 ‘미술사적 비평’의 정수로서 지지한다.(다시 말하지만 미술사라고 말할 때, 그것은 미술이라는 자율적 대상의 역사가 아니라 예술적 실천이 다른 사회적 실천과의 연관을 읽어냄으로써 자신을 역사화하는 분석과 비평을 미술사적인 것으로 가정한다.) “사회 속의 예술의 내재성이 아니라 작품 속의 사회 속의 내재성이 사회에 대한 예술의 본질적 관계이다. 예술의 사회적 사상 내용은 그 개별화의 원칙 외부에서 위치하지 않고 개별화 속에 위치한다. 물론 이 역시 사회적이지만, 그 때문에 예술에 대해서는 그 자체의 사회적 본질이 은폐되어 있고, 해석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비평의 원리여야 한다고 확신한다.

 

 

[10]

“예술 작품은 창문 없는 단자(fensterlose Monaden)로서 그처럼 작품 자체가 아닌 어떤 것을 상상한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작품 자체의 역동성을 통해서, 즉 자연과 자연지배의 변증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의 내재적인 역사성이 외부 세계의 역사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모방하지도 않고도 자체로서 그와 유사해진다는 점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미학적인 생산력은 유용성 있는 노동의 생산력과 동일하며 자체 내에 그와 동일한 목적론을 지닌다. 또한 미학적 생산력은 미학적 생산관계 속에 파고들어 이에 작용을 가하게 되는데, 이 미학적 생산관계 역시 사회적인 생산관계의 침전물 혹은 복사품이다. 예술이 자율적이면서도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는 이중적 성격은 자율성의 영역에서도 부단히 나타난다.” 아도르노의 미학적 사고를 압축하는 이 대목은, 악명 높은 스탈린주의적인 역사유물론을 모방한다. 그는 여기에서 미학적 생산력과 미학적 생산관계라는, 스탈린주의적 유물론의 정수로 알려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을 기꺼이 참조한다. 그러나 이 서술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러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도식을 통해서만 미적 자율성과 사회적 규정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으며 그것이 개별 작품의 역사성을 규정할 수 있다는 놀라운 통찰에 있다. 그는 예술작품을 단자(單子, monad)로서 보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아도르노의 역사적인 비평의 알파와 오메가인 개념인 단자란 개념은 오늘날 더없이 중요하다. 단자란 개념은 예술적 실천 혹은 작품의 역사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외적인 시대적 배경을 참조하면서 거칠고 유치한 사회학적 비평을 내세우기에 앞서 개별 작품이라는 고립된 단자 안에서 역사적인 규정을 읽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사회학적인 비평이나 섣부른 예술의 사회적 ‘참여’에 대하여 강박적으로 경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사회적 참여 예술, 공공예술, 대화예술, 관계예술 등으로 이어지는, 참여를 특권화하는 동시대 미술의 유사(類似) 비평 혹은 전비평적 비평을 비판하는 데 아도르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믿게 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옛 포럼A의 실패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새로운 미적 형식이 역사적으로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형식, 매체, 전시 방식이 왜 역사적으로 규정된 것인지 밝히지 못한 채 사회적 조건의 변화로부터 말미암은 효과로 확인하는 데 머물고 만다. 역사적 규정을 밝히지 못한다면, 어떠한 예술적 실천을 역사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시대적인 분위기에 대한 묘사로 머문다. 그것은 전(前)-비평적인 묘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헤맨다. “예술의 사회적 사상 내용은 그 개별화의 원칙 외부에서 위치하지 않고 개별화 속에 위치한다”고 아도르노가 말할 때, 그것은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을 가리킨다. 내용과 형식은 자연스럽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면 보일수록 그것은 “예술에 대해서는 그 자체의 사회적 본질이 은폐되어 있고, 해석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원칙을 좇아야 한다. 여기에서 아도르노가 말하는 해석으로서의 비평은 바로 개별 작품을 통해, 개별 작품에서 작용하는 형식이 곧 내용임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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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 포럼A의 비평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는 옛 포럼A의 실패를 반복한다. 그것은 비평적 글쓰기를 역사적 비평으로부터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적 비평은 미술사적인 질문과 답변을 끌어들이고 카탈로그식 연대기를 쓰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체이든 형식이든 전시형태와 제도이든 비평이든 모두 역사에 의해 매개되고 규정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물론 매개(mediation)나 규정(determination)이라는 개념들이 오늘날에도 그렇게 큰 호소력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념은 시대의 기분을 담아내는 장신구가 아니다. 상품이라는 개념적 규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것을 부인한다면, 현실에서 생활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상품, 자본, 이자, 이윤, 가치, 노동 모두 개념이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무한히 다양하고 구체적인 노동은 추상적 노동이 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개념이 지배하는 세계를 이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개념들이 활보하는 세상을 가리키기 위해 물신주의란 용어를 끌어들인다. 개념과 개념에 의해 구성된 질서로서의 체계라는 인식을 시원시원 배짱을 부리며 거부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개념으로 작동하는 세계의 외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개념을 강조하는 것은 매개와 규정을 통해 구체적인 현실이 개념화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뿐이다. 배고픔과 전쟁의 고통과 경험을 구제하고자 한다면 몇 방울의 눈물과 한 줌의 인도주의를 얻으면 그뿐이지만 그것의 원인으로서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넘어서려면 튼튼한 개념과 비판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배고픔이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 아니라 실업 때문에 비롯된 배고픔이라면 그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매개되고 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_서울시립미술관 2017 현대미술비평집담회를 위해 쓴 글. 일부를 축약하여 기고하였다. 전문은 곧 출간될 <동시대 이후>(현실문화, 2018)에 실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