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잃은 세계의 기억 : 임흥순의 작업에 관한 메모

Damon & Naomi – Song to the Siren

사례로서의 임흥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영국의 철학자 콜링우드(Collingwood)는 제법 오랜 동안 철학의 무대에서 물러나 있던 관념, 역사철학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46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행했던 강의 노트와 이른 죽음으로 미처 출판되지 못한 원고를 모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이 저작은 20세기 역사학을 뒷받침하는 기초적 관념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은 오늘날 더 이상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기억에 대한 적대 때문이다. 그의 생각에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사변을 꼽자면 이런 것일지 모른다. “역사적 사고는 언제나 반성이다. 왜냐하면 반성이란 사고행동에 대한 사고이며 모든 역사적 사고는 언제나 그러한 사고라는 것을 이미 보아왔다. … 이 문제는 기억이나 지각에 대한 역사가 성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R. G. 콜링우드, 서양사학사: 역사에 대한 위대한 생각들, 김봉호 옮김, 탐구당, 2017, 410쪽.

추체험으로서의 역사를 강변하는 이 완고한 철학자는 역사와 기억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놓여있음을 통지한다. 그는 역사가의 온당한 임무를 직접적인 경험으로 주어진 것을 반복하고 회상하는 일로 절대로 환원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용어로 옮기자면 그는 의식으로의 반성을 통한 재현을 강조한다. 어떻게 역사를 재현할 것인가. 이를 가리키기 위해 그가 골라든 개념은 추체험이었다. 추체험이란 의식으로 번역되고 해석된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경험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역사가의 책을 읽거나 강연에 참석하지 않는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고 ‘의식화’되던 세대는 이제 미욱한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젊은 세대는 증언, 고백, 폭로의 이미지(유사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응답하라> 류의 TV 드라마, 그리고 <1987>로 정점을 이룬 듯 보이는 일련의 영화들은 모두 이러한 기억의 문화에 참여한다)를 관람하며 고통의 뜨거움에 슬쩍 데이거나 지난 날의 애틋한 풍속에 뭉클해 한다. 아무튼 역사와 연관된 반성된 사고나 객관적인 재현은 어떤 사건을 겪은 자들의 직접적인 경험, 그것으로부터 출현하는 증언, 목격, 혹은 이를 대신하는 물질적인 객체들-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또 의미를 해독해야할 언어적 기표가 아니라 경험 그 자체의 질료로서-의 제시 이는 오늘날 전시에서 범람하는 아카이브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요청한다. 현재 어디에서나 마주하는 아카이브는 사전적으로 정의된 아카이브에 대한 이해를 넘어선다. 오늘날 아카이브는 점차 정동적인(affective) 경험을 촉발하는 오브젝트가 되어간다. 아카이브를 제시하는 근년의 전시들은 며칠에 걸쳐 관람해야 부분적인 독해가 가능하리만치 압도적인 정보들을 제시한다. 따라서 그것은 처음부터 ‘아카이브를 읽고 이해한다’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런 탓에 엄청난 양의 아카이브는 읽기를 위한 텍스트의 배열과 모음이 아니라 관객에게 정서적인 감응을 위한 질료 자체로서 구실한다. 인식의 매체, 기록으로서의 아카이브라기보다는 정서적인 반응을 위한 소재로 전환된 새로운 아카이브의 특징은 보다 깊은 분석을 요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새로운 아카이브의 특성은 임흥순의 아카이브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_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2017. 11. 30.∼2018. 4. 8. 아래에서는 ‘전시’로 줄여쓴다)에서 임흥순은 일본에서 세상을 떠난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과 그녀의 뜨개소품을 전시한다. 거대한 창고의 내부처럼 직선의 옷걸이에 걸려 배열된 할머니의 옷가지들은 ‘메시지’라기보다는 고통을 겪은 자의 삶 자체의 현신으로서 관객에게 감정이입과 정서적인 반응을 촉구하는 듯 보인다. 마침 그것은 바로 앞 전시실에서의 경험을 이어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전시실 5를 구성하는 마치 목멘 자를 기다리는 듯한 고목과 기슭에 닿아있는 듯한 거룻배 등은 ‘정동(affect)의 스테이지’를 만들어낸다. 마주하고 있는 이미지-대상에 완전히 침잠할 것을 강요하는 다크큐브(dark cube)를 마다하고 여기저기에서 희미한 빛들이 새어나오는 드라마틱한 무대에서 영상을 마주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 일일지 아마 논란이 있을 것이다.
로 대체된다. 우리는 이제 하염없이 기억의 단편들을 마주하고 그것을 보거나 듣는다. 더불어 역사를 수용하고 전유함으로써 가능하다고 기대되던 역사의식은 이제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였던 고통의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 전이, 감정이입으로 전환된다. 역사는 이제 복잡한 서사적인 장르들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특히 무엇보다 과학적인 지식으로서의 역사학을 격퇴하고 비판적인 재현으로서의 역사-이미지를 비웃으며 기억-경험-이미지를 듣고 보는 일로 바뀐다. (신)문화사, 일상사, 미시사, 구술사 등의 이름 뒤에 숨은 새로운 서사들은, 점차 역사적 재현과 의미를 ‘기억의 시학(poetics)’으로 재편한다. 그리고 이제 시간성에 대한 우리의 경험 역시 현저하게 바뀌어 왔다.
결국 21세기의 초엽 우리는 콜링우드의 주장이 패배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현재 역사는 기억에 의해 흡수되거나 아니면 기억을 통해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기억이 역사의 대립 항(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역사가 지배하는 자의 의식 속에 반성된 역사라면 지배당한 자들은 기억으로 역사 바깥에 놓인 자신들의 삶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탓에 역사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기억을 완강히 보호하고 그것에게 숨을 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집요한 의지가 생겨난다. 이 때 기억은 역사의 외부에서 역사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개조하며 연대기적인 시간의 달력에 기록된 사건들을 새롭게 역사화한다. 기억은 역사의 적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수선하는 역사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이제 기억의 기능은 다른 것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시각예술이나 영화에서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역사-다큐멘터리로부터 기억-다큐멘터리로의 전환이라고 할 만한 흐름의 한 가운데 서있는 작가 중의 한 명인 임흥순의 작업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생긴다. 그는 역사에서 기억으로의 전환이라는 동시대 다큐멘터리의 경향을 그의 서명(署名)과도 같은 형식을 통해 다듬어왔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의 결과들을 기억-다큐멘터리로 명명하는 것은 그다지 세련된 처사는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그의 작업들을 ‘에세이 영화(essay film)’로 분류하고 장르적인 소속을 배정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에세이영화를 둘러싼 표준적인 정의들을 좇자면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다. 대개 에세이영화란 개인적이면서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에 대한 지각을 보여주는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가리키곤 한다. 그러나 에세이영화란 용어는 내게 마치 새로운 유행을 가리키는 이름처럼 들린다. 그것은 에세이영화가 역사적으로 발생한 것임을 감춘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어떤 전환과 표류의 효과로서 에세이영화가 등장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영화나 이미지들을 소급적으로 에세이영화로 불러 세우고 정렬할 때 우리는 또한 영상 이미지를 경험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인식론이 대두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변화의 조짐들을 역력히 의식하고 드러내지 못한 채 어떤 흐름을 단박에 하나의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은 그것을 마치 상표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임흥순의 작업은 그의 개인적 노고의 결과이지만 또한 동시에 오늘날 시간-역사-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시각예술의 영역에서의 공통적인 경향을 반영한다. 임흥순의 작업을 비평하는 일은 임흥순의 작업이 역사와 맺는 관계를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이지만 더불어 그의 작업을 동시대의 역사적 경험과 반성이 놓여있는 배치 속에서 역사화하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임흥순은 하나의 사례로서의 자리를 점한다. 그가 역사를 대하는 자리를 들여다보는 것 못잖게 우리는 그의 작업이 놓여있는 역사적인 시좌를 밝혀야 할지 모른다. 이 글은 그를 위한 간단한 메모이다.

역사-다큐멘터리에서 기억-다큐멘터리로

임흥순의 다큐멘터리 작업의 여정은 그의 초기 단편인 <추억록>이란 작품의 제목이 알려주듯이 기억의 답사(踏査)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역시 <추억록>에서 이미 드러나듯이 가족과 그 주변의 인물들의 삶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위로공단>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애틋하고 치열한 것은 아마 무엇보다 감독 자신이 자신의 가족들과 어머니(<추억록>, <위로공단>), 파트너와 그의 친척들(<숭시>, <비념> 등)의 삶에 간직된 기억을 간곡히 듣고 그것이 새긴 상처를 쓰다듬고 위안하고자 하는 몸짓 때문일 것이다. 특히 <위로공단>에서 여성 의류 노동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은 또한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공경심 가득한 기억으로 확장된다. 또한 그것은 한국의 70년대의 구로공단과 같은 의류 산업 공단을 대신하는 베트남과 다른 아시아지역의 의류 노동자들의 세계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가해진 착취와 폭력을 응시하려는 의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기억의 지구화(globalization of memory)라는 흐름에 그 역시 기꺼이 참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때 기억의 주체는 가족으로부터 머나먼 세계의 인물들로 뻗어나간다.
기억의 지구화란 1990년대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 걸쳐 과거의 시간에 벌어진 사태에 접근함에 있어 기억이 일차적인 역할을 떠맡게 된 추이를 가리킨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 전시 폭력과 강간에 대한 기억,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억 등 이러한 기억의 범람은 학술적인 제도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논쟁으로 대중문화 속의 다양한 이미지로, 혹은 추모와 애도, 기억을 위한 다양한 장소들의 설립으로 이어져왔다. 이에 대한 국내외의 논의를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억학(memory studies)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학문분과는 기억을 역사학을 승계하거나 대체하는 새로운 학문임을 자처하고 있고, 그를 소개하는 입문서를 비롯한 저작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논쟁과 더불어 기억에 관한 텍스트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도서관에서 기억이란 이름으로 검색하면 등장하는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예술이론 등의 분야에서의 엄청난 양의 글들은 기억이 얼마나 큰 호응을 얻고 있는지 말해준다.
그러나 기억의 지구화는 이러한 기억의 전 지구적인 유행을 가리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의 공간화의 논리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제 서로 다른 장소들은 기억을 저장하고 전시하는 기억-대상(memory-object)이 된다. 임흥순의 작업 역시 많은 작품들이 여행이나 이동, 방문(<위로공단>, <려행>, <비념> 등)의 이미지들로 구축된다. 또한 그 장소들은 시간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들로부터 탈구되지만 고통이 발생하고 경험되었던 주관적인 장소로서는 등가화(等價化)된다. 이러한 등치(等値)의 장소들은 멀리 떨어진 장소들을 동일한 장소의 사슬, 즉 기억의 장소-계열체(series)로 모여지기도 한다. <위로공단>에서 시작과 더불어 제시되는 베트남의 유적과 폐허 그리고 뒤를 잇는 노동자들의 숙소는 다시 그것과 대구(對句)를 이루는 구로공단의 쪽방으로, 가산디지털단지의 현재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수출의 여신상’ 제막식 장면, ‘수출의 다리’의 인서트 장면, 밤하늘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벚나무, 접근금지 푯말이 붙은 가로등 아래의 골목 등의 장소-이미지들은 <위로공단>에서 두 명의 화자가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두 화자란 풍경 그리고 증언하는 자의 목소리이다. 어쩌면 애니미즘적이라 하리만치 풍경 이미지에 많은 노고를 쏟는 감독의 접근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풍경 이미지는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 못잖게 서사적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나 이는 임흥순의 독특한 손짓이 아니다. 그것은 유사한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서 고루 볼 수 있는 수사학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풍경은 말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연쇄 옆에서 그것은 ‘반-이야기’로서, 즉 말해질 수 없음을 가리키는 표지로서 구실한다. 전시에서 투 채널로 상영된 <환생>은 남한 군인들의 손에 학살과 폭력을 겪은 베트남과 이란-이라크 전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재연하면서 이란이라는 장소를 서로 비춘다. 이러한 머나먼 장소들이 상응(相應)하는 장소들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말인지만 고통을 담은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장소’는 물론 역사의 기억으로의 전환을 알린 피에르 노라와 그리고 그와 함께한 학자들의 공동의 저작의 제목이기도 하다. 피에르 노라, 기억의 장소 1-5, 김인중, 유희수 외 옮김, 나남, 2010.
이제 기억은 지구를 횡단하며 서로 다른 장소들을 기억의 지도 속에 배정한다.
그러나 장소와 기억이 동행하는 것, 아니 거의 분할할 수 없는 동일성으로 융해되는 것은 또 하나의 쟁점을 가리킨다. 그것은 바로 경험/체험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의식은 경험에 대한 반성을 통해 획득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거리를 가늠하고 그것이 반복이든 연장이든 발전이든 시간의 추이를 가리키는 개념들을 그에 덧붙인다. 그를 통해 우리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 해결된 것과 해결되지 않은 것, 동일한 것과 변화된 것 등을 측량한다. 그리고 역사적 시간을 해석하는 개념으로서 발전, 성장, 반복, 변화 같은, 시간에 관한 역사적 관념을 추스른다. 이와 달리 고통과 상처의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상대한다. 그것은 반복/변화로서의 시간을 잊는다. 그것은 모든 시간이 지나가는 길을 고통이라는 경험으로 물들이며 동일한 시간으로 구성한다. 그 동일한 시간들 내부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외상적 충격의 시간과 잠복, 분출, 억압된 것의 귀환처럼, 고통의 경험에 의해 규정된 자전적이면서 개인적인 시간이 있을 뿐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이 시간의 바깥에 있음을 가리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관념인 트라우마(trauma)를 참조하지 않을 수 없다. 트라우마는 제주 4.3항쟁, 일본군 위안부, 한국전쟁 시기의 학살, 광주항쟁, 그리고 참사란 이름으로 지칭되는 잇단 충격의 경험 등을 제시하고자 하는 작가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참조되는 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왕성하게 소비되는 곳은 대중 영화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충격과 정신적 외상은 느와르를 비롯한 액션영화나 재난영화, 호러영화와 같은 장르 영화에서 시간과 서사를 교직하는 주도적인 플롯이라는 점을 간단히 상기하기로 하자. 이는 그와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각예술 분야에서의 작업들도 그러한 시간 경험의 미적 형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가리킨다.
트라우마 즉 정신적 외상이란 개념이 아우르는 여러 가지 면모 가운데 하나는 그것의 시간성의 위축 또는 중단이라 할 수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이들에 관해 임상적인 자료들이 말하는 것이나 아니면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들의 증언이나 그의 주변의 인물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시간 없는 시간’을 보여준다. 이는 외상적인 사태를 겪은 그 시간을 전연 기억하지 못한다든가 아니면 그 시간에 고착된다든가 아니면 그 시간을 다른 시간과 반복하여 중첩시킨다든가 하는 모순적이면서도 이질적인 형태를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띠고 나타나든 여기에서 시간은 정지된 시간 혹은 뒤죽박주된 고장난 시간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으로부터 시간을 오려낸다. 트라우마는 기억 담론이 형성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특히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199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으로 확산된 유태인학살 즉 쇼아를 둘러싼 기억 담론은 기억의 자의성과 직접성, 개인성을 둘러싼 논란을 모면하기 위해 트라우마란 개념을 섬세하게 다듬어왔다. 이 때 트라우마는 단순한 심적 외상으로서의 증상이나 증후가 아니라 이론적 지위를 획득한다. 그를 통해 기억의 한계로서 지적되었던 증상인 트라우마는 역사 담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개념으로 고양된다. 트라우마의 개념을 기억의 역사를 이루는 중추적 개념으로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이들은 오늘날 트라우마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글들로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Cathy Caruth, Unclaimed experience: trauma, narrative, and history,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6. 도미니크 라카프라, 치유의 역사학으로-라카프라의 정신분석학적 역사학, 육영수 옮김, 푸른사학사, 2008.

그러나 트라우마란 개념을 전연 참조하지 않지만 중단, 정지로서의 시간에서 유토피아적인 잠재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억압적인 동일성을 중단시키는 멈춤과 단절에서 다른 역사적 시간이 출현할 수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생각은 이제는 비평적인 상투어구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가 말하는 ‘지금-시간’(Jetztzeit/Now-time)은 분명 저항하기 어려운 시간-역사의 시학을 마련해준다.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는 개념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포기할 수 없다. … 역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적 대상에 다가가되, 그가 그 대상을 단자로 맞닥뜨리는 곳에서만 다가간다. 이러한 단자의 구조 속에서 그는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지, 달리 말해 억압받는 과거를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인식한다.”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347-8쪽.
그러나 오늘날 폭증하는 기억의 담론에서 발견하는 트라우마의 시간 없는 시간 혹은 외상적인 지금-시간과 대조해 볼 때, 벤야민이 말하는 지금-시간은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시간은 시간에 대해 무감각해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농밀하고 강렬한 시간의 경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호랑이의 도약’이 알려주는 것처럼, 미래로의 현기증 나는 뛰어듦을 포함한다. 앞의 글, 345쪽.
그러므로 그것은 억압적인 동일성과의 단절을 통해 예언되거나 설계될 수 없는 미증유의 미래를 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救贖), 구원이라는 관념과 트라우마라는 관념 사이에 놓인 가까움을 염두에 둔다면 트라우마란 개념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시간의 윤리학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윤리학이 기약하는 다른 삶은, 유토피아적인 미래가 아닌, 임흥순의 말을 빌자면, ‘환생’일지 모른다. 해방이나 혁명을 대신하게 된 부활이나 환생이란 대체물은 또한 임흥순의 작업을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의 유토피아 정치 이후의 정치적 상상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트라우마-유령이란 기억의 주체

임흥순의 작업에서 가장 빈번하게 출현하는 주인공은 유령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원혼(冤魂)의 모습을 한 이 유령은 그의 작업 뿐 아니라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빈번하게 소환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당장 박찬경, 임민욱 등의 작업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비념>의 시작을 알리는 유령들, 유령 자신이 주인공인 <다음 인생>, <위로공단>에서의 소녀 유령 등, 그는 유령에 대한 깊은 애착을 드러낸다. 그것은 또 나아가 <환생>에서 학살과 폭력을 경험한 할머니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어느 인터뷰어의 말에서처럼, 고통을 경험하는 방식, 즉 유령과의 만남이 시간과의 만남 자체를 주선하기도 한다. 유령에 대한 임흥순의 깊은 애착을 보여주는 작가 자신의 발언으로서 <교환일기>라는 비디오 다이어리에서의 표현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지만 평생을 죽어 사는 사람들의 얼굴, 죽었지만 죽지 못하는 얼굴 없는 사람들의 얼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그의 작업들에서 살아있는 죽음으로서 살아있는 자들과 죽었으면서도 아직 눈을 감지 못한 자들은, 모두 유령이라는 신분을 얻는다. 흔한 유령에 대한 정의는 두 번의 죽음과 관련되곤 한다. 우리는 두 번의 죽음 즉 생물학적인 죽음에 더해 상징적인 죽음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지만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사회의 상징적인 의미의 질서에 등록하지 못할 때 그/그녀는 산-죽음(living-dead), 유령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에서의 유령은 임흥순과 많은 동시대 미술 작가들이 집착을 보이는 유령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령이란 데리다의 유령학(hauntology)이 말하는 것처럼 의미의 종착점, 최종적인 기의(記意, signifié)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차이(différance)를 가리킬 수 있다. 또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상징적 질서에 통합되지 못한 채 어떤 사건과 경험을 의미화하고자 발버둥치는 욕망, 즉 해석에의 욕망을 지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그 모두는 의미에 도달하는 것, 앞서 인용했던 콜링우드의 어법을 빌자면 반성에 성공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이해와 비판에 이르는 활동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러나 임흥순에게서 유령은 그러한 의미와 재현을 위한 요구에 부응하길 꺼린다. 여기에서 유령은 의미의 대립항, 즉 재현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함을 강렬하게 제시하는, 유태인들의 강렬한 고통, 나치의 ‘최종 해결책’으로 인해 멸절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들의 참상에 대한 재현의 금지와 유사하다. 그것은 의미화될 수 없고 해석될 수 없는, 과잉 그 자체이다. 클로드 란츠만(Claude Lanzmann)의 가공할 다큐멘터리 <쇼아(Shoah)>(1985) 이래, 많은 이들이 뜨겁게 벌여온 논쟁은, 이러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재현과 재현 불가능성이란 쟁점을 둘러싸고 순회하여 왔다. 누군가 겪었던 불합리한 고통을 이해될 수 있는 사실로서 즉 하나의 규정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낼 때 그것은 불행과 고통을 무시하는 짓이란 비난은, 오늘날 이미지를 둘러싼 대표적인 율법 가운데 하나를 말해 준다. 또한 고통을 겪은 이들이 자신의 강렬한 비참을 조리 있게 서술하고 제시할 때 그 역시 의심스러운 것이란 혐의를 받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구성하는 자아 속으로 통합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강렬한 경험이지만 나의 삶의 이야기 속에 내가 살아온 세계의 이야기 속에 직조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율배반에 가까운 압력 앞에서 어떻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음을 전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어떻게든 고지하는 말을 위한 자리가 남겨져야 할 때, 우리는 그 짐을 유령에게 위임할 수 있다. 물론 이 때의 유령은 의미의 전달자, 메신저는 아니다. 유령은 메시지, 의미 있는 텍스트, 인과적인 서사의 화자와 달리 강렬한 고통의 현존을 알리는 부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령의 형상은 곧 고통의 형상이다. 이는 <다음 인생>에서는 제법 도식적인 형태로 원혼의 모습과 부패한 시체의 낯과 몰골로, <비념>이나 <위로공단>, <환생>에서는 삶의 기운을 모두 박탈당한 듯한 멍한, 클로즈업된 표정으로 나타난다.
미술비평가인 할 포스터는 <외설적인, 비천한, 외상적인>이란 신랄한 글에서 1990년대 이후의 소위 동시대 미술에서 유행하는 미학적인 추이 가운데 하나로 ‘투라우마’에 대한 관심을 꼽는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즉 범용어가 되어 버린 트라우마란 개념에 대해 그가 보이는 적대감은 거칠지만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는 트라우마 담론의 논리적 역설을 꼬집는다. 그는 주체의 죽음을 알리는 문화적 전환 이후 우리는 주체가 필요하지 않지만 그렇게 비워진 주체의 자리를 생존자, 희생자, 목격자 등의 주체로 메우고 있다고 힐난한다. 한쪽에서는 주체는 없다고 끈질기게 떠들어댄다. 역사의 주체는 없다, 이성적 주체, 계급적 주체, 이데올로기적인 주체 따위는 없다는 말들은 오늘날 문화적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 옆에서는 다문화주의적 정체성의 담론을 통해 걸러진 숱한 주체들이 출몰한다, 여성, 종족과 민족, 소수자, 약자들이 곁은 폭력과 고통을 통해 그 어떤 주체보다 더 강력한 주체들이 모습을 내민다. 그 주체들은 외상적인 고통을 겪은 트라우마 주체이다. 그래서 포스터는 주체는 ‘소거되면서 동시에 추켜올려진다(evacuated and elevated at one and the same time)’고 일갈한다. Hal Foster, Obscene, Abject, Traumatic, October 78, 1996, p. 124. 이 글은 포스터의 <Bad New Days>에서 ‘Abject’란 제목의 챕터로 재수록 되어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주체를 가리키기 위해 포스터가 선택하는 이름이 트라우마 주체, 즉 ‘좀비(zombie)’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ibid.

트라우마는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한 고통의 경험을 가리킨다. 그리고 기억은 그 트라우마의 망각할 수 없고 되풀이되는 경험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기억은 역사적 시간을 경험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너무나 까다로운 관념인 ‘경험’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발터 벤야민은 평생 근대 자본주의에서 경험의 운명을 집요하게 파헤친 철학자이다. 그의 초기작인 <경험>, <경험과 빈곤>에서부터 그의 가장 빛나는 문학 평론일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프에 관하여>와 <이야기꾼>, 나아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이르기까지 그의 핵심적인 텍스트들은 모두 경험의 분석에 몰두한다. 그는 우리말로 굳이 옮기자면 경험과 체험에 각각 해당될 두 가지의 경험을 구분한다. 먼저 경험(Erfahrung)이 있다. 누군가를 두고 그/그녀가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서의 경험은 감각적 지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활동을 반복하고 축적하면서 그러한 활동 속에 스며있는 구조나 규칙을 터득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런 연유로 벤야민은 “경험(Erfahrung)이라는 것은 집단생활이나 개인생활에서 모두 일종의 전통 문제이라고 말한다. 경험은 기억(Erinnerung) 속에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Gedächtnis)의 산물이다”라고 말한다.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외, 김영옥, 황현산 옮김, 길, 2010, 182쪽. 벤야민에게 있어 두가지 종류의 경험과 두 가지 종류의 기억 사이의 연관에 대한 분석으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Andrew Benjamin, Tradition and Experience, Art, Mimesis and the Avant-Garde: Aspects of a Philosophy of Difference, London: Routledge, 1991.

그가 경험을 두고 전통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거의 자동적인 반응처럼 무의지적으로 작동하는 행위, 역사적으로 축적된 시간의 경험이 나타나는 형태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의례, 제의, 습관 등은 벤야민에 있어 경험과 그것의 기억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는 한편 또 다른 경험, 즉 체험(Erlebnis)과 대비한다. 체험이란 오늘날 우리에게 수여된 경험의 지배적인 형태란 점에서 벤야민이 자신의 시대를 두고 말했던 것과 비교될 수 없다. 그것은 속사포처럼 연속된 연속적인 충격을 경험하도록 몰아가는 블록버스터 영화나 그것의 경험을 보다 강화시킬 목적으로 관람 경험을 증대시키는 3D나 4D 영화관은 오늘날 경험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체험은 무엇보다 상품의 세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경제학자나 경영학자, 산업디자이너들이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체험경제’란 오늘날 소비 행위 자체가 체험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조지프 파인 2세, 제임스 H. 길모어, 고객 체험의 경제학, 신현승 옮김, 세종서적, 2001.
이를테면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풍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스타벅스의 모토는 오늘날 체험이 자리한 위치를 역력히 보여준다. 이처럼 체험 소비는 대중문화 안에서도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자신과 사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농축하고 있는 대표적인 행위일 먹기는 오늘날 체험으로서의 먹기로 바뀌었다. 맛집 체험이나 미식 체험은 시간과 공간을 모두 놀랍고 이례적인 체험으로 환원한다. 거의 모든 시간대의 TV 채널을 채우는 맛집 찾기의 미식 체험은 동네, 단골 등의 낱말이 지시하는 것처럼, 경험이 축적된 일상생활을 기획, 연출된 이벤트로 만들어 내면서 체험을 조작하고 생산, 판매하도록 이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쇼핑몰들이 영화관이나 공원은 물론 익스트림 스포츠 따위의 맞춤된 강렬한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들과 상점을 겸비한다. 그런 탓에 우리는 경험은 고갈되어버리고 그것을 제공된 경험으로서의 체험, 비정상적인 순간적 경험으로서의 체험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고 말하게 된다. 이미 20세기 초엽 발전된 자본주의 도시에서 그러한 체험의 범람을 통렬하게 감지하고 분석한 벤야민은 자신과 자신의 시대의 사람들을 두고 “경험을 기만당한 사람, 근대인”이라고 말하도록 이끌었다. 발터 벤야민, op. cit. 224쪽.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체험, 단속(斷續)적인 충격의 경험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기억/경험이 소멸한 세계에서의 회상/체험

그런 점에서 트라우마와 경험, 기억은 미심쩍은 미학적 원리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경험을 완벽하게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경험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전통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러나 전통을 대신하게 된 삶의 규칙들 역시 변덕스러운 시장의 유행에 맞춰 바뀌어가고 있다. 경험이 간직되고 번성하는 대표적인 일상적 삶의 영역일 의식주는 각기 패션, 인테리어, 미식 등을 통해 제조된 체험에 의해 변모된다. 그리고 단절적인 충격 체험의 연속에서 마모될 만큼 마모된 우리의 지각을 낚아채기 위해 즉 관심과 주의(attention)를 얻기 위해, 이미지와 언어는 보다 효과적이고 강렬한 충격을 만들려 전력한다. 미술평론가 조너선 크레리는 오늘날 이미지의 세계가 처한 모습을 충격과 주의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조너선 크레리, 24/7: 잠의 종말 김성호 옮김, 문학동네, 2014.
그렇다면 시간을 경험의 찰나로 환원하고 역사적 의식과 반성을 고통을 겪은 경험에의 공감으로 대체하려는 접근에 대하여 마땅한 의심이 생기게 된다. 기억이 오늘날 경험이 사라진 세계의 체험, 강렬한 자극과 충격의 연쇄와 손을 잡고 있다면 말이다. 기억이 고통의 경험을 운반하고 관객에게 그 고통의 경험에 공감하도록 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 될지 모른다. 오늘날 성행하는 충격 체험의 문화는 관객에게 그러한 공감과 전이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흥순의 기억-다큐멘터리에서 이러한 충격-기억에 대한 애착이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몇 편의 작업이 있다. 그 가운데 <비념>이 가장 두드러질 것이다. 그러나 그를 널리 세상에 알린 이 장편 다큐멘터리와 그 뒤를 잇는 <위로공단> 사이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념>은 역사를 배경으로 삼고 고통의 경험을 전경으로 내놓는다. 제주 4/3 항쟁과 강정마을을 잇는 시간의 연속에서 재현되어야 할 역사는 암시되거나(그의 영화에서 역사적 사태에 대한 언급은 많은 경우 매개된 지시, 그러니까 TV 뉴스 화면을 중계하는 형태를 띤다는 매우 징후적이다) 부재한다. 그러나 <위로공단>은 어쩔 수 없이 역사적 사태를 직면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역사적인 경험은 개인적인 경험이면서 동시에 집합적인 경험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기억의 주역으로 증언을 하는 이들은 모두 개인적인 경험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증언은 집합적인 기억으로서 이미 매개된 기억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전직 여공(女工)들 혹은 동시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외상적인 충격의 증언이라기보다는 구성된 서사의 체를 통해 걸러져 나온다. 그렇기에 카메라를 응시하며 가끔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성노동자들은 기꺼이 화면을 향해 눈물을 쏟아내며, 울음이 나올 것 같다고 실토하며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토해낸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증언하고 고백하는 목격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가 겪었던 경험을 모두가 경청하고 이해해야 하는 역사적 사태의 진술에 가깝다. 동일방직, 청계청 평화시장, 대우어패럴에서 일한 여성 의류노동자이든 아니면 대형마트나 콜센터, 항공승무원으로 일한 여성노동자이든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기억하지만 동시에 역사적인 사태로서, ‘이미 매개된 경험’으로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민주노동조합운동’이나 ‘비정규직 철폐운동’이니 하는 이미 자신의 경험을 조율하고 재현할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사적, 정치적인 서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의 이야기는 풍부하고 기억해야할 이야기들을 잘 찾아내며 심지어 우는 낯을 카메라에 내어줄 만큼 듣는 이와의 상호작용에 대해 신뢰를 보내고 있다. 아마 이것이 경험-기억과 체험-회상을 구분하며 서로 다른 경험의 형태, 서로 다른 기억을 연관시켜
그렇기 때문에 <위로공단>은 기억과 역사라는 대립적인 서사적인 충동 사이에서 뒤척인다. 그것은 역사에 등을 돌린 기억으로 기울면서도 그렇다고 역사의 편에서 기억을 거부하지도 않는, 불안한 몸짓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작인 <비념>과의 차이는 두드러진다. 결국 <위로공단>은 분열된 텍스트로 남아있게 된다. 이는 두 가지의 충동 사이의 분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임흥순은 과거의 경험과 체험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역사적인 서사를 멀리하거나 비껴가고자 한다. 그는 <비념>을 정점으로 역사적 재현과 동일시/탈-동일시를 기억의 경험과 공감/전이(transference)로 전환하려는 일련의 포스트역사적인 다큐멘터리의 경향에 가장 능숙한 작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위로공단>에서 이러한 재현을 기피하는 움직임을 제지하는 힘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을 들려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꾼(storyteller)으로서의 자질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고통 가운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들이 겪은 착취와 억압의 경험을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전달하기 위해 자신들의 낱말을 준비하고 있고(이는 그들이 시위, 집회, 재판, 인터뷰, 강연, 아니면 심지어 연극 등을 통해 반복하여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여 왔을 것이다), 그것에 맞는 어조와 표정, 불안을 극복한 몸짓을 가지고 있다. 이와 크게 대조되는 것은 베트남의 여성 의류노동자의 모습이다. 수줍은 혹은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그들은 자신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이 공장에서 노동하는 자신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힘겹게 들려주는 어색하고 불안한 모습은 그들이 서사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기억 속에서 어떻게 저장하고 이야기의 재료로서 변용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겨 있다. 그들이 박탈당한 것은 기억이나 경험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과 기억을 결합시켜 자신들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재현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사적 서사화의 능력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임흥순의 거의 모든 작품을 지배하는 또 그 못잖게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숱한 영상 작업의 형식적인 프로토콜이라고 불러도 좋을 풍경의 이미지를 피할 수 없다. 역시 트라우마, 충격을 통해 199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조회하는 정윤석의 <논픽션다이어리>나 트라우마적 풍경 자체를 제시함으로써 이례적인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던 김일란과 홍지유의 <두 개의 문>은 각기 희대의 살인자 집단인 ‘지존파 사건’과 ‘용산 참사’를 다룬다. 물론 <논픽션다이어리>에서 지존파 사건은 일종의 알레고리로서 그 주변의 잇단 사건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외상적 사건들의 사슬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두 영화들에서 가장 대표적인 형식은 단연코 풍경의 제시이다. 이 낯선 그러나 곧 관례적이게 된 그리고 이제는 잇단 다큐멘터리 사진들에서조차 관습처럼 자리하게 된, 풍경 이미지는 서사화에 저항하는 혹은 역사적 진실의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지하는 몸짓으로 보인다. 혹은 정동(affect) 담론에 의지하는 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일종의 이미지-역능으로 구실한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지로서의 이미지, 재현으로서의 이미지와 대립하는 정동-풍경의 이미지는 역사적인 서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동-풍경 자체를 주된 이미지 텍스트로 삼고 있는 임흥순의 거의 모든 작업은 이러한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의 우리가 얼마나 방황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글을 맺으며

우리는 임흥순을 오늘날 역사 이후의 다큐멘터리적 실천의 사례로서 간주하기로 했음을 밝히며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개별적인 텍스트를 비평하는 것보다 그의 작품들이 모여 이루는 어떤 흐름을 동시대의 시각예술에서의 경향으로서 역사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가 선택한 주제는 기억/역사, 경험/체험, 트라우마와 충격 등이었다. 이는 역사적 과거와 대면하고자 하는 많은 작품들에서 엿볼 수 있는 주제들이자 또한 임흥순 자신의 작업들에서 강조되었던 것들이다. 이러한 주제들이 어떻게 오늘날 그토록 강렬하게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을 유인했는가에 대한 분석은 중요하다. 그것은 이 글에서 지나가며 언급했던 다른 작가의 작업들을 포함한 많은 작품들을 분석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한편 임흥순의 기억-다큐멘터리라는 주제의 범위에서 충분히 다룰 수 없는 쟁점들, 그의 작품의 관객과 맺는 관계(이를테면 치유 혹은 위안으로서의 다큐멘터리와 비판적 교육(pedagogy)로서의 다큐멘터리),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간주되는 인터뷰와 증언, 기록 이미지를 가용하는 경향의 함의(그것은 기원적으로 분열된 주체, 자기의식과 자기경험이 어떻게 객관적으로 매개된 것인가를 드러내고자 했던 비판적 전통의 다큐멘터리와 대립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등은 모두 세심히 가늠하고 분석할 쟁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임훙순의 작업들을 경유함으로써 우리는 2010년대 한국에서의 영상 작업들의 미적 정치가 무엇인지 식별하고 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_국립현대미술관 임흥순 앤솔로지를 위해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