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로지스틱스의 도시, 자카르타와 방콕

물류 자본주의 이후의 도시

얼마 전 우연찮게 세계에서 가장 교통 체증이 심한 두 도시를 잇달아 찾을 기회가 있었다. 두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교통 체증이 심한 도시 순위에서 1-2등을 두고 다투는 도시이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태국의 방콕. 나의 여정은 태국의 방콕을 경유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다시 그 곳에서 반둥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목적지는 반둥이었다. 그곳은 1955년 반둥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나는 수카르노, 네루, 낫세르, 주은래와 같은 이름들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비동맹운동의 씨앗이 뿌려진 곳이자 제3세계라는 프로젝트가 발진한 그곳에 대한 야릇하고 조바심 나는 애착을 품고 있었다. 벼르던 그 도시를 찾겠다는 꿈을 이번 겨울엔 이룰 작정이었다. 음력 설 연휴를 앞둔 어느 날 나는 서둘러 짐을 꾸렸다. 막상 도착한 반둥에서 나를 제압한 것은, 반둥의 아시아-아프리카 거리의 아르데코 풍의 유사 식민지적 건물들과 그 사이에서 초라하게 뙤약볕을 견디고 있던 아시아-아프리카 회담이 열린 곳을 재단장한 박물관만은 아니었다. 이 도시들의 끔찍한 인프라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미 나는 그곳을 찾기 전 인도네시아 현대사에 관한 책을 여럿 읽었고,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도시의 참혹한 생활 환경을 두고 쏟아진 개탄과 저주, 고발에 익숙해 있었다.

지구화 이후 발전국가 버전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그로테스크한 현신이라 할 이 작은 도시는, 모범적인 사례처럼 소개되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를 그렇게 자랑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건네 준 여행자를 위한 간이 지도에 버젓이 그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건축가 출신의 시장의 이름은 지도 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는 역시 도시공학을 전공했고 건축가이기도 했던 수카르노를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정작 재개발되어야 할 도시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한 채 역사적 유물로 간주되는 장소와 건축물들만이 어색한 표지와 안내판들 사이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거리. 도시를 여행객의 방문지로 꾸미는 재생된 도시의 풍경은 육중한 DSLR 카메라를 들거나 “셀카봉”을 든 채 연신 “셀카”를 찍어대는 젊은이들, 특히 히잡 차림의 젊은 여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몰려들었을 이 관광객들은 용케 거리를 누비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트위터 가입자가 있는, 그리고 가장 열심히 트위터를 이용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가장 많은 셀피(selfie)를 찍는 나라도 역시 인도네시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는 어떻게 이 숨 막히도록 번잡한 도시에서 이동하고 있을까. 마침 음력설을 즈음한 때에 도착해 그 연휴가 끝나는 날 반둥에서 떠날 일정이었던 나는 참으로 오랜 만에 초현실적인 교통 체증을 겪었다. 3시간여 거리면 도착하는 자카르타였지만 그날 7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낡은 밴을 개조한 미니버스의 부서진 의자 위에서 나는 한쪽 다리가 저려 얼얼할 지경이 되도록 꼼짝없이 차에 갇혀 있어야 했다. 다음날 우연히 집어든 <자카르타포스트>는 지면 한쪽을 설 연휴 마지막 날 인도네시아를 뒤덮은 초유의 교통체증을 보도하며 마침 내가 겪은 반둥 탈출의 수고를 위안이라도 하듯 반둥에서 고향으로 가야했던 현지 귀향자들의 끔찍한 사례를 다투어 전하고 있었다. 미로처럼 뻗어있는 도로, 행인을 위한 보도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길, 그 주변으로 난립한 고층빌딩과 다시 그 뒤를 비집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터무니없으리만치 초현실적인 거미줄 같은 슬럼가의 집들. 거의 윤곽을 식별할 수 없는 공간적인 우주 속에서 사람들은 이동하여야 한다. 아직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산업화는 그들을 도시로 내몰고 있고, 그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아니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그러나 거기엔 어떤 어엿한 대중교통도 없다. 지하철도 없고 노선버스도 없다. 거기엔 어마어마한 숫자의 오토바이와 승용차만이 가득 하다. 이 모터 달린 바퀴들이면 모든 것이 집결한 듯한 카오스는, 언젠가부터 마주하게 된 새로운 지리적 세계의 단면이다.

세계 최고의 종주도시(primate city)로 알려진 도시가 방콕이다. 종주도시란 줄여 말해 다른 도시들과 견주어 거의 압도적으로 비대한 제1의 도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방콕은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치앙마이에 비해 40여배 정도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비대한 기형 도시인 셈이다. 그리고 방콕은 아직도 도시로 이주하려는 농민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지구화와 신자유주의가 병행적으로 급습한 태국에서의 변화는 마치 태국의 고유한 만성적인 갈등인 것처럼 알려진 노란 셔츠파와 붉은 셔츠파 사이의 갈등 만은 아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투기적 금융자본의 희생양이 되어 동남아시아 지역 외환위기의 진앙지가 되었던 태국을 생각하면 충분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의 방문지가 되어 있는 방콕에서 쾌적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디에나 세븐일레븐 편의점이나 탑스(Tops) 슈퍼마켓, 테스코(Tesco) 쇼핑몰이 즐비하고, 유니온페이(UnionPay)을 비롯해 어지간한 신용카드를 이용해 밥을 먹고 쇼핑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들은 여행-소비자를 위해 마련된 인프라의 회로 속을 유영하며 현지인들의 지리적 공간을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극심한 교통 정체는 물론이고 주요 도로를 벗어나면 더 이상 차가 진입할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사이로 옮겨 다니려 방콕 시민들이 이용하는 모터바이크와 미니버스를 굳이 이용할 여행자들은 없다. 그들에겐 마치 골프장의 카트같은 모습을 한 채, 호텔의 로고를 큼직하게 그려넣고 멋을 부린 ‘뚝뚝(tuk-tuk)’이 있다.

그리고 나는 두 나라를 찾으며 두 개의 유심 칩을 갈아 끼우면서 맹렬히 휴대전화에 매달렸다. 이 도시에서 나는 단 한 번도 통화를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휴대전화는 내겐 전화로서의 쓰임새는 전혀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겐 없어선 안 될 휴대용 GPS장치였다. 나는 십여 년전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한 저가항공의 노선들이 촘촘하게 짜여진 아세안 국가들은 이 지역과 외부는 물론 지역 내부에서 항공수송을 엄청나게 증대시키고 있었다. 반둥은 자카르타 중산층이 주말의 휴식을 위해 찾는 관광지였지만 또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온 쇼핑객들이 저렴한 옷과 외식을 즐기려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이 모든 이동의 흐름은 세계 최악의 교통 인프라를 가진 나라에서 불가능할 듯 보이지만 그러나 가능해진다. 나는 어디에서든 구글 맵(Google Map)이나 애플 지도를 보기 위해 휴대전화를 켰다. 그 지도의 용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지도와 자동적으로 연결된 치량공유 앱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가야할 곳을 정하고 근처에 있는 택시나 승용차를 호출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우버(Uber)와 고잭(Go-Jek)을 그리고 태국에서는 그랩(Grab)과 우버(Uber)에 매달렸다. 가는 곳마다 영어로 된 잡지나 신문을 파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구해 읽은 아세안 지역을 커버하는 신문과 주간지들은 연일 최대의 경제적 이슈인 그랩과 우버의 인수합병을 둘러싼 루머와 예언으로 가득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중국의 디디추싱은 우버와 그랩에 이제 막 천문학적인 투자를 한 터였고 하버드대학교 출신의 말레이시아 청년들이 만든 스타트업인 그랩은 곧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기고 동남아지역의 시장을 무서운 기세로 장악한 뒤였다. 인도네시아 사정에 밝은 고젝 역시 그랩과 더불어 인도네시아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배한 시장은 어떤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일까. 그것은 지리와 이동의 시장이다. 그리고 이 시장은 전지구적인 공급 사슬(supply chain)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일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순환시킨다. 그것은 국가 간 이주만이 아니라 지역 내의 미시적인 이동과 수송을 망라한다. 물류자본주의의 광범한 네트워크는 이렇게 전개된다.

그리고 나는 지구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새로운 생산의 지리학, 누군가 대서양 포드주의라고 불렀던 서유럽과 북미지역에 집중되었던 자본의 운동 체제가 종결된 후의 생산의 지구적 질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제3세계의 자주적인 발전의 경로가 파산한 이후 세계로 뻗어나간 자본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지리학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IMF와 세계은행의 도움으로 닦아진 길을 투기적인 금융과 생산 자본 및 상업 자본들이 진입하며 다투어 세계의 공장과 쇼핑몰을 만들어 놓은 곳의 지리였다. 그곳들은 컨테이너화로 상징되는 대규모의 물류 체제에 의해 서구의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항구와 공항, 거대 물류 기지를 잇는 거시적인 운송과 이동의 회로는 그와 연동된 미시적인 물류의 세계와 결합되어야 한다.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런던, 상하이, 센젠(深圳), 로테르담, 부산을 잇는 지리적 회로는 또한 자카르타와 방콕의 수십 킬로미터 반경 안에서의 효과적인 이동과 운송을 가능케 하는 지리적 회로와 결합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왜 2차대전 이후의 도시 건조 환경을 거의 바꾸지 않은 채 그리고 끔찍한 주거와 이동의 지옥을 여전히 유지한 채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접속된 세계의 도시 풍경을 이해할 작은 조각 하나를 발견하였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나라의 수도인 자카르타, 세계 제1의 종주도시인 방콕. 그 두 도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분류되고 표상되는 독특한 지리 속으로 이동하여 있었다. 쾌적한 배수 시설과 청결한 도시 위생,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저렴한 대중교통 따위는 그들의 지리적 좌표 속에는 제거되어도 괜찮은 것이었다. 구 식민지 경영에 필수였던 철도와 도로는 이제 콰이강의 다리나 오리엔트 특급 열차처럼 관광 상품이 되었다. 이제 새로운 식민적 자본주의는 달리 이동과 수송을 위해 신경 쓸 일이 없다. 유일한 삶의 가능성인 임금노동자가 될 기회를 위해 도시로 밀려든 이들은 오토바이와 자동차, 심지어 자전거와 삼륜차에 달려든다. 그들은 몇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을 견딜 것이고, 값싼 배달을 즐길 것이며, 교통공유 앱을 사용해 쌓은 포인트로 맥도널드와 KFC에서 햄버거와 치킨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화 시대의 물류 자본주의를 보충하는 미시적인 이동과 수송의 지리학이 펼쳐지고 있고, 이는 새로운 도시 풍경을 직조하는 현기증나는 기계와 기술적 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거대도시의 GPS와 휴대전화 앱은 그러한 정치적, 기술적 어셈블리의 말단에 속한다. 만화경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의 도시화의 규칙은 그렇게 작동하며 괴물같은 도시의 생장을 돕는다. 도시화 이후가 아니라 이제 새로운 재도시화가 이뤄지고 있다.

_전시자료집 <서브토피아>를 위해 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