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과 불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세계

Maximum Joy – Stretch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사이의 오랜 불화가 종결되었다는 징후는 그들이 모두 악이란 개념을 향해 줄달음쳤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악의 지적 인플레이션은 조지 부시의 악명 높은 ‘악의 축’ 선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물론 그것은 동어반복에 가까운 진부한 말장난이다. 테러지원국을 지칭하고자 창안된 개념인 악의 축은 이미 테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적을 악의 울타리 안에 놓기 때문이다. 테러는 폭력이란 비유를 통해 정치적 행위를 선제적으로 윤리화한다. 윤리적 악당으로서의 적이란 시점은, 지구화 이후 미국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 중도하차하고 만 박근혜 정권은 취임 초기보다 이른바 4대 악 척결을 내세우며 으름장을 놓았다. 성폭력, 학교 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유통이라는 4가지 악의 사례는, 악이란 범주를 남용하는 안쓰러운 몸짓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어느새 우리는 20세기에 접어들며 유럽과 미국을 넘어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었던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가 ‘사회문제’란 개념으로 포착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다양한 무질서한 현상들을 더 이상 사회적인 것으로서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문제란 개념이 개인의 악행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자 애썼다면 이제 모든 행동의 책임은 개인에게 귀착된다. 어느 정치인의 발언처럼 사회 따위는 없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악이란 개념이 범람하게 된 데에는 사회란 집합적 전체가 사라지고 개인들이 전부인 세계에 이르렀다는 불길한 변화가 큰 구실을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악의 귀환은 헤겔에 의해 정점에 이르렀던 윤리적인 실체로서의 사회라는 윤리학적 혁명을 뒤집는 반동이라 생각할 수 있다. 헤겔은 개인의 윤리적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을 국가를 비롯한 사회적 기관이나 제도의 자동적인 실천이 대신할 수 있음을 간파했다. 그것은 윤리적인 주관성을 객관화하고자 했던 위대한 시도였다. 말하자면 개인의 선의에서 비롯된 기부와 적선을 무미건조한 사회복지사의 공무(公務)가 대신하는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악이라는 윤리적인 개념을 사회문제라는 정치적 현실로 변환하였다. 그리고 이는 그를 적대시하는 숱한 자유주의자들의 비난과 달리 헤겔은 우리를 악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며 민주주의를 악의 대립항으로 만들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시 악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악은 비단 윤리적 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미적 숭고와 같은 개념을 통해 심미화 된다. 홀로코스트를 재현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인될 수 없다는 윤리적 명령은 또한 미학적인 명령이기도 하다. 그를 재현하려는 어떤 이미지도 불경함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윽박지르는 관념, 다시 말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악이라는 생각은 오늘날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세기를 악의 세기로 기억하는 오늘날의 탈-역사적인(post-historical) 관념은, 홀로코스트나 전쟁 폭력을 통해 지난 시대를 상기하는 데 진력한다. 그런 점에서 선이라는 관념 뒤에 숨어, 우리는 지난 시간을 악의 향연이 베풀어진 때로 기억한다. 그리고 20세기는 평등과 자유를 위한 세기였음이 모조리 부인된다. 물론 홀로코스트의 끔찍함을 마주하고 악이란 관념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려는 유혹에 맞서 그것의 객관적인 규정을 헤아리려 애쓰는 일을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악은 불의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때 비롯되는 효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란 관념에 기울 때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셈이다. 악이란 관념은 절대로 일반화될 수 없는 개별적인 악을 추켜올린다. 그러나 정의를 위한 투쟁은 악의 사회적인 일반성을 반성함으로써 그것이 제어될 수 있고 해결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태로 만들어 낸다. 테러는 악마에 홀린 개인적인 악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어떤 삶의 곤경도 해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비롯된 결과일지 모른다. 신정론(theodicy)이 부활한 세계에서 불행하고 비참한 이는 더욱 불행하고 비참해질 것이다.

_제1회 강원비엔날레 <악의 사전>을 위해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