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느 테레사의 미니멀리스트 댄스를 2018년 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다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RE:ROSAS

– 미니멀리스트적인 조각으로 가득한 미술관을 떠나 안느 테레사의 공연을 보는 것은 레트로 미니멀리즘 혹은 미니멀리즘 빈티지 소비에 참여하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을 들게 하는데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느 테레사의 무용사적 아카이빙 작업에, 그렇게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이끈 무용 컴퍼니인 <로사스 댄스 로사스>가 몇 해 전 LG 아트센터에서 공연했을 때, 무용에 과문했던 나는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난생 처음 조우한 그녀의 퍼포먼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 안느 테레사는 미니멀리즘 댄스의 수퍼스타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수학했고 거기에서 터득하고 변조한 미니멀리즘 댄스를 가지고 유럽으로 갔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번 퍼포먼스는 그녀의 출세작인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 가운데에서 3부 ‘바이올린 페이즈’라는 16분 짜리 단편이다. 완결된 작품에서 절단된 이 단편은 무용 <작품>이라기보다는 무용사나 퍼포먼스의 역사를 위해 추출된 정보, 기록에 가깝거나 그에 이바지한다. 전작(全作)을 충실하게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일부를 잘라내어 어떤 사례(case)로서 제시하는 것이, 이번 작업의 요점이 아닐까?

–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위한 사례일까, 나는 궁금해진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은 이렇다. 미니멀리즘 댄스란 이름으로 모든 역사적, 지리적 특수성을 초월한 무용사-쓰기의 맹목성에 대한 거부이다. 안느 테레사는 미니멀리즘 댄스의 한 인물로서 기록되기를 거부하는 듯이 보였다. 북미의 안무가가 아닌 벨기에 출신이며 벨기에로 귀환하여 유럽적 형태의 미니멀리즘 댄스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스티브 라이히의 미니멀리즘 음악을 기용하여 자신의 댄스가 미니멀리즘에 소속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몸짓은 무엇일까. 공간적 지각의 경험을 안무하는 미니멀리즘 댄스의 정형과 달리 4각형의 캔버스 형태의 백색 모래의 표면 위에서 자신이 만들어내는 표면적 흔적을 보도록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미니멀리즘 안에 있으며 미니멀리즘을 위반하는 몸짓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다시 말해 관객들이 마치 무용 관객이 아니라 미술 관람객처럼 자신의 무용을 보도록 조작하는 것은 어떤 효과를 갖는가. 내친 김에 말하자면 자신의 장르적, 매체적 특정성에 더없이 충실했던 미니멀리즘의 원리에 어떻게 비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무용적 미니멀리즘과 미술적 미니멀리즘은 그렇게 무관한가. 나는 포스트모던 무용이나 컨템포러리 무용의 걸작의 단편으로서 그녀의 퍼포먼스가 소비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미니멀리즘 댄스의 과거를 재연하고 반성함으로써 무용사의 담론에 대한 어떤 개입일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