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 스펙터클 그리고 이미지 ‘비판’

Beach House – Black Car

기억과 기념이 역사적인 의식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눈여겨 본 이들에겐 상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을 대신해 기억학(memory studies)이라는 학문이 부상한 것이나, 역사적 경험이 놓였던 자리에 트라우마, 국가폭력, 애도 등이 기세를 떨치는 것이나 모두 역사의 상실 혹은 패주를 가리키는 징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인 시간성을 의식하고 비판하는 것을 자신의 일차적인 소임인 줄 알았던 미술적 근대성 자체가 패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예술, 그 가운데서도 시각예술은 처음부터 자신을 ‘모던’ 아트라고 명명하며 자신의 역사적 시간성을 모든 실천 속에 기입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동시대’, ‘당대’, ‘컨템포러리’ 예술같은 낱말로 슬며시 대체되었다. 이런 추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둘러싸고 여전히 분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지간한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미래라는 시간이나 유토피아적인 정치 기획을 둘러싼 적의,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회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카이브적인 실천 혹은 전시의 범람, 역사적 건축 유산을 기억의 경험을 상연하는 장소로 둔갑시키는 전시시설이나 제도의 성행 등은 어쨌거나 반(反)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추세에 모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2018년의 무지막지한 여름을 우리는 통과하고 있다. 아마 어딘 가에선 기후변화가 초래한 재앙을 실감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인류세 시대의 예술적 실천이 시급하다며 강변하는 이들이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엔 2018년인 1968년으로부터 50년 그러니까 반세기에 접어든 해라는 점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개인이나 특수한 집단이 겪은 상처와 고통의 기억이 과거 시간을 소환하는 구실로서 가까스로 이바지하는 판국에, 1968년의 ‘68운동’이라는 범세계적인 유토피아적인 투쟁에 관심을 쏟는다는 건, 어쩌면 힘에 부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말처럼 68운동은 20세기의 마지막 반체제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러시아혁명과 그를 반영한 20세기 초반의 유토피아적인 격변과 그 배반을 계승하였다. 아마 아직도 많은 이들은 황홀하고 흥분된 심정으로 1968년이라는 눈부신 연대를 상기할 것이다. 그 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의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애와 섹스에서부터 생산과 정치적 대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혁명을 도입하고자 했다. 68운동이 없는 개념미술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며, 플럭서스와 제3세계 미술, 고다르와 영화적 모더니즘 역시 상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68혁명을 결산하고자 시도했던 이들은 착잡한 심사를 숨기지 않는다. 68운동이 내세웠던 창의성과 자율성이란 이상은 곧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신조가 되었으며 민족해방운동은 곧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젖줄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68운동의 화신이었던 기 도브로(Guy Debord)와 상황주의(Situationism)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는 이미지의 역사적, 사회적 생산이라는 문제에 관한 한 불가역적인 지점을 나타낸다. 물론 그를 계승하거나 비판하는 이미지의 이론가들이 있어 왔다.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나 시뮬라시옹에 관한 담론이든 아니면 아감벤의 이미지론이든 또는 스펙터클을 대신할 변증법적 이미지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디디-위베르만같은 이들은 모두 스펙터클이라는 문제설정 주변을 배회하며 이미지의 정치를 미술적 실천의 쟁점으로 유지하여 왔다. 그럼에도 스펙터클로서의 이미지와 대결하는 강건한 시도를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그러한 논의가 절박한 때에 말이다. 사진과 광고, TV가 초래한 이미지의 위기에 견주면 셀피(selfie)와 유튜브(youtube), 인스타그램(instagram)의 시대에 이미지가 처한 상태는 거의 재앙에 가까울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매개되는 전무후무한 규모의 이미지 아카이브 위에서 우리는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검색하고 관람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눈 깜짝할 새에 폭발적으로 증대한다. 이미지의 포화란 말이 사치스러울 만치 이미지가 쇄도하는 세계에서 거의 익사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자신이 맞닥뜨린 이미지가 빈곤하고 재미없다고 느낀다. 증강현실을 비롯한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이미지의 증대도 그런 불만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극장은 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제공하기 위해 3D극장이나 아이맥스(iMax) 극장으로 변신해 왔다. 그리고 히토 슈타이얼의 말을 빌자면 ‘누추한(poor)’ 이미지, 한국에서 선호하는 표현을 빌자면 ‘열화(劣化)된’ 이미지를 향한 반동적인 애착 역시 잦아들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OLED, 레티나, UHD니 하는 우리의 시각적 감각 능력을 압도하는 세정도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며 뻔뻔스레 자랑하는 이미지-기계들이 있다면 다른 쪽에서는 ‘구린’ 이미지가 더 아름다고 쿨하다고 아우성친다. 사소한 픽셀 이미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운 어느 사진작가의 강박을 인용하는 삼성TV의 광고 옆에는 아스키 코드로 만든 조악한 이미지나 구식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들로 구성된 영상 작업들을 전시하는 전시장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렇지만 이미지의 정치학을 탐험한 최후의 이론가로서 드보르를 방문하고자 한다고 해서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허위 혹은 기만으로서의 이미지를 비판하고자 했던 마지막 위대한 이론가였다고 새기려는 이들이 드보르에 대한 해석을 독점해 온 이상, 드보르의 주장은 ‘이미지 타도’론으로 성급하게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은 드보르의 주장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스펙터클의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스펙터클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없앤다”는 것이었다. 이미지는 현실을 기만하는 환영으로서 언제나 의심받아 왔다. 따라서 이미지 비판은 허위와 기만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심의 해석학으로부터 드보르의 주장을 도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드보르 역시 그만한 빌미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직접적인 경험이 표상 즉 이미지로 축소되는 세계를 규탄하였기 때문이다. “현대적 생산 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삶은 스펙터클의 축적물로 나타난다.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모든 것이 표상 속으로 멀어진다”고 역설하는 드보르의 발언을 마주하고 직접성과 매개를 분할하며 직접적인 경험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목소리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미니멀리즘 그리고 대지미술에서 장소특정적 미술로 이어지는 상당한흐름은 경험의 회복, 감각적 지각의 직접적 현존을 겨냥하며 이미지의 허위에 저항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은 드보르를 알음알음 참조했다.

그러나 드보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의 탈을 쓴 하이데거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모든 말이 ‘한담(idle talk)’이 되어버렸다고 개탄하며 말의 진정성(authenticity)을 희구하며 대중매체가 중개하는 언어적 실천들을 경원했던 존재와 시간의 하이데거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미지를 통해 기만되지 않은 직접적인 충일과 완벽한 지금-여기에-있음이라는 욕망은 스펙터클보다 더 기만이었을 것이다. 이는 “킨포크(Kinfolk)”니 “미니멀 라이프”니 하는 문화적 패션이 가짜와 위선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찾겠다고 발버둥치는 시늉을 하지만 실은 경험을 복제가능하고 소비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과 진배없다.

1968년으로 돌아가는 것, 스펙터클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각별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비판으로서의 이미지에 둔감하거나 무력하다. 자신의 경험을 순수하게 직접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사실주의를 동원하는 대다수 동시대 미술의 작업은 1968년 이전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복고라고 부르기도 사치스러운 퇴행이다. 반면 새로운 기술적인 이미지들과 그것의 복제가능성과 변용에 넋을 잃은 채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마법에 열광하는 동시대 미술의 추세 역시 1968년 이전으로 돌아간다. 지난 세기의 미술사 속에서 1968년이라는 계기와 스펙터클이라는 계기가 갖는 의의도 그 때문이다. 현재의 이미지 체제를 검토하고 반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미술사 속의 눈부신 순간이었던 반세기 전을 다시 찾아야 한다. ■

_<아트인컬처>를 위해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