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과 제3세계 그리고 세계사: 68혁명을 역사화하는 하나의 시론


DN AIDIT -PKI(인도네시아공산당) 지도자에 대한 회고

1. 들어가며

“태국에서 공산주의에 가담하게 된 신참자들의 상당수는, 특히 1975-6년 이후에는, 태국 일류 대학 출신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마르크스주의의 일부는 문화혁명 중국과 베트남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들은 또한 1960년대의 아이들로서 북유럽과 미국의 신좌파 마르크스주의뿐 아니라 그람시, 알튀세르, 프랑크푸르트학파도 역시 접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존 바에즈와 밥 딜런에게 열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 두 사람은 국제무대에 너무나 뒤늦게 도착했던 터라, 인도네시아의 합법적 공산당 당원들이 이들을 즐겼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Anderson, 1998: 291)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아시아 제3세계 기획의 흥망성쇠를 온 몸으로 지켜본 이였을 것이다. 비록 그가 평생 연구한 지역은 동남아시아였지만 그것은 중소분쟁 이후 마오주의에서 개방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영향이 깊이 드리워진 보다 확장된 아시아이기도 하였다. 그는 수카르노의 교도 민주주의(guided democracy)와 ‘나사콤’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 운이 좋았더라면 이탈리아 공산당이나 프랑스 공산당과 거의 같은 시기에 합법적 지배정당이 될 수 있었던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이 수하르토의 집권과 더불어 순식간에 궤멸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아직도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구 소련과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당원을 거느리고 있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궤멸과 오늘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의에 대한 인도네시아 동시대적 관점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삐삣, 2011)
그는 수하르토가 이끈 군사 쿠데타의 전말을 둘러싼 나름의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요약한 보고서를 발표한 연유로 인도네시아로부터 영구 입국 금지를 당한다. 그는 수하르토의 ‘신질서(New Order)’의 시대에, 다시는 인도네시아를 찾지 못할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다음의 목적지는 태국이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가 도착한 태국은 오랜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고 3년에 걸친 전무후무한 민주주의가 개시되는 시대였다. 그리고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오랜 봉건 군주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태국 왕실의 반격으로 태국 민주주의 운동의 기원적인 장소였던 타마삿대학교에서의 유혈 학살을 기점으로 태국에서의 제3세계 기획 역시 오랜 기간 숨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다시 앤더슨이 걸음을 옮긴 곳은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물결이 도래한 필리핀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필리핀 공산당이 패주하며 게릴라 무장투쟁에 접어드는 모습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Anderson, 2016)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며 마침내 그의 첫사랑이자 그의 학자로서의 현지 연구의 장소였던 인도네시아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앤더슨은 그곳에서 삶의 끝을 마주하였다. 마지막 교정을 마친 채 미처 출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저자의 회고록은 아시아의 1968년에 대한 눈부신 기억들이 스며있다. 마치 아시아의 68혁명을 증언하려는 사명이라도 타고난 듯이 그는 반둥 회의를 통해 비동맹운동을 개시하고 가장 열정적인 제3세계 기획을 진수시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태국과 필리핀을 거쳐 간다. 그리고 그는, 인용한 글이 말해 주듯, 서구 제1세계의 68혁명과 제3세계에서의 68혁명이 교차하는 희귀한 순간이 발광(發光)하는 방콕의 모습을 중계한다. 이는 서구 제1세계의 청년 세대의 문화혁명이 방콕의 청년, 노동자들의 제3세계 기획의 움직임과 겹쳐지는 찰나였을 것이다. 1970년대 초반 방콕의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미군기지 철수와 임금 인상,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를 외치면서 동시에 먼 나라에서 찾아온 포크 뮤직을 흥얼대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Ungpakorn, 2001, 2006) 이 글이 수록된 문화연구 저널 <인터-아시아(Inter-Asia)>의 같은 호에는 아시아의 다양한 나라들에서의 1960년대의 제3세계 운동을 증언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Inter-Asia Cultural Studies, 2006)
미국과 구 소련이라는 두 열강이 지배하는 냉전 체제에서, 미국과의 ‘혈맹(血盟) 관계’를 거듭 맹세하여야 했던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남한의 냉전 세대에게, 이러한 모습은 더욱 떠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서구 정치학자가 전력을 다해 기억에서 찾아낸 아시아의 제3세계의 역사는 또한 68혁명의 공식적인 서사 속에서는 좀체 초대받지 못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68혁명으로부터 딱 반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68혁명의 역사적 재현에서 그러한 증언과 기억, 유산을 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97-8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을 거쳐 남한을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2008년 미국을 덮친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전환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역사적 보편성을 행사하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분할된 정체성의 세계들이 벌집처럼 아우성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에서의 퇴행적인 역사적 상상을 물리치며 다시금 세계사(world-history)를 마주하는 인식이 귀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전연 억지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68혁명을 역사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다시 제3세계의 기획이 전개되었던 과거의 세계사를 방문하여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68혁명에 관한 역사적 서사는 1968년이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기표(signifier)가 단지 1968년이라는 한 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연도가 그러하듯 폭넓은 역사적 시간의 범위, 무엇보다 시대를 가리키는 부호와 같은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68혁명을 역사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시대’란 범주에 의지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시대구분의 방법을 통한 역사적 재현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우리는 68혁명의 ‘역사적’ 재현에 따르는 곤란을 의식하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책으로서 시대와 시대구분의 방법을 채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전환의 역사적인 시대의 상징적 부호로서 68혁명을 사고하면서, 68혁명에 대한 역사적 서사화를 둘러싼 두 개의 쟁점을 다음의 각각의 장에서 검토할 것이다.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은 이른바 제3세계주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려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이 글은 제3세계라는 기획을 68혁명을 분절하고자 하는 역사화의 서사로서 구성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변 속에 68혁명의 효과를 새로운 방식으로 쓸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이를 위해 먼저 이 글은 문화혁명으로서의 68혁명을 규정하는 그간의 지배적인 서사에 이의를 제기하면 역사적 총체성의 관점에서 68혁명을 바라 볼 필요를 요청할 것이다. 다음의 쟁점은 68혁명의 세계(사)적 성격으로서 우리는 지정학적인 외연으로서의 제3세계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사적 보편성이란 관점에서 제1세계에서의 전환과 제3세계에서의 이행이 함께 연루된 사태로서 68혁명의 역사적 총체성을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매우 간략하게나마 68혁명의 구성요소로서 제3세계 기획 혹은 제3세계주의(Third Worldism)의 역사적 추이를 개관할 것이다. 이는 제3세계의 기원으로서 흔히 간주되는 1955년의 반둥 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서 1983년 비동맹회담 델리 회의에 이르는 과정으로서 제3세계의 자주적 발전의 프로젝트가 발진하고 마침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헤게모니에 의해 추월되는 궤적을 시사한다.

2. 제3세계라는 기획: 68혁명과 시대, 시대구분

근년 68혁명을 ‘역사화’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부쩍 늘어났다. 68혁명에 관한 최근 연구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기억의 서사’로서의 68혁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기억의 서사는 역사적 재현의 주요한 장르일 것이다. 68혁명에 참여하였거나 그것을 목격했던 이들에게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애사나 기억 담론이 범람하는 와중에 68혁명이 그러한 서사의 주요한 플롯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나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다양한 전쟁의 기억들이 기억의 서사 가운데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만 그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사태들 역시 기억의 촉매이자 충격으로서 큰 역할을 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68혁명을 역사화’하고자 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을 두 가지 곤란을 떠올리게 된다. 먼저 그것은 68혁명이라는 대상의 모호함이다. 기억의 서사 속에서 1968년이라는 역사적인 시간은 피할 수 없이 공간화된다. 기억을 시간의 공간화(나아가 육체화)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겠지만, 기억이 시간성을 특정한 장소, 풍경, 객체화된 이미지,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다양한 기록과 물질적 객체들로 제시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1968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에서 시간성(temporality)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점차 희박해지거나 불투명하게 표상될 수밖에 없다. 한편 공간화된 형태로 시간을 인식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근년의 변화는 충분히 시간을 공간화하지 못한다는 역설적인 제약에 직면하기도 한다. 시간을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공간으로 환원하면 할수록 시간의 효과가 미치는 넓은 범위의 공간은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경험하거나 인식되기 어려운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 68혁명을 둘러싼 기억 서사가 대개 북미와 서유럽, 일본 등으로 한정되며, 나아가 구체적 공동체나 지리적 장소의 주변으로 국한된다. 그런 점에서 공간화된 68혁명의 서사는 역사적 시간성을 외면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그저 ‘68’이라는 연대기적인 숫자 속에 흐릿하게 담아낼 뿐이라는 의구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68혁명을 역사화하고자 한다면 그 68혁명이라는 명칭 속에 늘 따라다니는 1968년이라는 시간적 표지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역사적 시간에 대응하는지 판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억 서사가 풍요롭게 회상하고 추념하는 68혁명이 있다면, 반면으로는 그것의 역사적 시간성이 망각되면서 역사로부터 점차 탈출하는 68혁명이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68혁명을 역사화한다고 말할 때, 거기에서의 역사(화)란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도록 한다. 그것은 재현의 원리로서의 역사화를 가리킨다. 68혁명을 역사화한다는 것은 68혁명의 시간적 규정, 달리 말하자면 그것의 역사적인 시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68혁명을 역사화한다는 것은 역사적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사태로 보고자 한다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68혁명을 ‘지방적인’ 이상(異常) 사태나 역사적 조건에서 일시적으로 탈구된 축제와도 같은 순간으로 낭만화하지 않고자 한다면, 68혁명은 자신이 가리키는 사태를 넘어 그 바깥에 혹은 그 주변에 놓인 다양한 역사적 사태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지난 사태를 재현하기 위한 주된 담론적인 전략으로서 역사(학)은 점차 쇠퇴하거나 주변화되어가고 있다. “홀로코스트가 기억의 시대를 열고 과거청산 운동과 사회주의의 쇠퇴가 기억 담론을 활성화하는데 이바지하기는 했지만 기억을 중요시하게 된 근본적 요인은 아마도 ‘역사학의 위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고 말하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이 들려주듯이, 역사(학)은 더 이상 전과 같은 시간적 경과 속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재현하는 지배적 담론으로 구실하지 못한다 (황보영조, 2017: 17). 그런 점에서 68혁명을 역사화한다는 것은 차츰 기억 서사에 흡인되어가는 68혁명에 대한 지배적 재현 양식의 위력에 저항하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68혁명을 특정한 사회집단 혹은 개인의 기억을 통해 재현될 수 있는 주관적인 서사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기에 직면한 역사(담론)을 방어하거나 재생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이러한 물음은 ‘보편사’나 ‘세계사’와 같은 역사 담론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헤겔적 보편사나 세계사 개념은 본질주의 비판나 역사주의 비판, 보편성 비판이라는 이론적 유행을 통해 집요하게 규탄 받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적, 주관적 특수성을 강변하면서 시간적 보편성을 기각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을 때, 이는 뉴튼적 시간을 문제 삼는 척 했을지라도 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역사적 체제가 다양한 지역, 주체, 경험을 일반화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한편 우리는 사르트르가 프란츠 파농이 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서문에서의 유명한 언급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서 사르트르는 “얼마 전, 세상은 20억 명의 주민들을 헤아리게 되었다. 5억 명의 인간들(men)과 15억 명의 원주민들(natives). 전자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후자는 단지 그것을 사용했다”고 일갈한다. (Jameson, 1988: 486에서 재인용, 강조는 원저자) 여기에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바는 단지 원주민이 인간적 주체로서 발언을 하게 되었다는 뜻을 가리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인용하고 주석하면서 제임슨이 말하듯이, 그것은 크로체(Croce) 역사학의 의미에서, 인간 자유의 역사(history of human freedom)로서 역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즉 보편사적인 역사의 비전으로서도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비단 제3세계의 민중에 머물지 않고 1세계에서의 인종적 소수자들이나 여성, 주변적 주체들을 두루 망라하는 것으로서 훗날 월러스틴이 세계혁명으로서의 68혁명을 가리키면서 말했던 ‘잊혔던 민중’의 도래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월러스틴, 2008) 그런 점에서 ‘자유의 보편사’는 2차세계대전 이후 탈식민화 이후에서 비롯된 무엇보다 68혁명의 제3세계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투쟁적인 흐름을 통해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고도 선명하게 출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한 공간에 특유한 관념, 사고, 감각이 있을 뿐 일반적인 관념, 의식, 감각은 있을 수 없다는 오늘날의 상식에 강하게 저항하지 않은 채 68혁명을 바라본다는 것에 도사린 위험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결국 68혁명을 역사화한다고 말할 때의 이중적인 곤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i) 68혁명이라 칭할 때의 68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구체적인 연대기로 환원할 수 없는 1968년이라는 상징적 시간대, 1968년이라는 시간적 범위를 초과하는 구조적, 역사적 시간으로서의 68혁명의 시간적 객관성이란 무엇인가. ii) 역사화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어느 시공간적 특수성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의 세계사적, 보편사적인 특성을 재현하려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68혁명을 역사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마 1968년을 전후해 서구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문화적’ 격변과 계급적, 인종적 저항에 대한 경험적 묘사나 서술을 넘어 1968년을 시기구분의 모델에 따라 파악하고자 한 대표적인 사례는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의 작업일 것이다. 그는 「1960년대를 시대구분하기 Periodizing the 60s」란 글에서, “1960년대의 ‘상황’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면, 역사적인 시대라는 관점에서 사고하고 역사적 시대구분의 모델에 따라 작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Jameson, 1988: 483). 시대구분이라는 역사적인 서사(화) 방법을 거부하는 비난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제임슨은, 그의 많은 다른 글들에서도 그러하듯이,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인 역사 서사(화)의 원리로서 시대구분을 견지한다. 단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는 매우 오랜 마르크스주의적인 제스처를 반복하면서, 책의 제명에 이미 시기구분의 방법을 각인한다 (Jameson, 2001). 그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후기 자본주의)와 그에 해당되는 문화적 상부구조의 역사적 형태(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 놓인 변증법적인 관계를 설정한다. 흔히 경제와 문화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조응, 반영, 상동성, 이상동형(isomorphism) 등으로 묘사하곤 하는 것과 변증법적인 매개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제임슨의 접근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제임슨, 2014, 2015).

물론 이는 역시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고 간주하는 역사적인 총체화의 원리를 충직하게 좇는 것이다. 곧잘 인용되곤 하는 제임슨의 다음과 같은 서술은 단적으로 이를 요약한다. “사회적 삶이란 그 근본적인 현실(reality)에 있어서 하나이며 분리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이음새 없는 그물망이며, 하나의 단일한, 개념화할 수 없는 초개인적인 과정으로서, 이 층위에서는 언어적 차원과 사회적 격변 내지는 경제적 모순들이 결코 서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것들을 연결할 방법을 발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순간적인 재통합은 순전히 상징적인 것 내지 단순한 방법론적 허구로 남게 될 것이다” (제임슨, 2015: 47-8).

포스트구조주의적 사고에 깊이 침식당한 지금, 제임슨의 오래 전의 선제적인 비판은 아직도 놀라움을 준다. 인식 대상의 주관적인 조작이나 사고방식으로서의 총체화와 달리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객관적 총체성을 구분하는 것이나 그러한 객관적 총체성의 작동이 한 대상과 다른 대상 사이의 관계를 넘어 각 대상 자체에 내재적으로 형식화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형식의 이데올로기) 등은 여전히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68혁명을 검토하는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68혁명을 역사적 사태로 서사화할 때, 문화 혁명이나 정치 혁명 등 그것의 역사적인 성격의 규정이다. 이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68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태를 사회구성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수준(levels)이나 심급(instances) 가운데 어느 하나를 특권화하거나 지배적인 항으로서 고려함을 가리킨다. 문화혁명으로서의 68혁명이나 정치혁명으로서의 68혁명이든, 68혁명을 특정한 심급의 차원에서 서사화하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일정 정도 진실을 포함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는 또한 68혁명을 역사적 사태로서 재현함에 따르는 곤란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는 68혁명을 역사화하고자 할 때, 역사적 총체성이라는 재현의 원리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까닭 가운데 하나가 바로 68혁명을 구성하는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인 제3세계의 누락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본 제임슨의 표현을 빌자면, 이는 서로 다른 수준이나 심급 사이에서의 매개와 각각의 자율적인 동일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68혁명은 역사적인 시대, 시대구분을 통해 파악되기를 집요하게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에 더해 우리는 68혁명이 끼어있는 60년대의 변동이 역사적인 재현 자체를 위기에 처하게 했던 때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의 위기나 몰락을 둘러싼 숱한 토론과 논쟁들이 그것이 기원한 시점으로서 1960년대를 꼽는 사정은, 또한 68혁명을 전후한 사태들의 재현에도 역시 적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68혁명을 60년대라는 역사적인 시대의 효과이자 반응으로 파악하는 것은 68혁명을 역사의 예외적인 삽화로서 한정하지 않고 그것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데 요긴한 방법일지 모른다. 제임슨은 이를 알제리 전투와 가나의 독립을 알린 1957년에서 시작해 자본주의의 위기가 재개된 1972-3년으로 종결되는 것으로 제시한다. 제임슨의 글이 실린 저널의 같은 호에 제임슨과 다른 두 명의 학자가 함께 참여해 만든 연표 역시 이러한 시대구분의 방법을 좇는다. (Jameson, Stephanson and West, 9184: 210-215)

3. 제3세계주의의 성쇠: 60년대라는 역사적 시대의 연대기

68혁명을 역사적 총체성이란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할 경우, 이는 그것의 세계사적 성격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물론 여기에서 세계사란 관념이 오늘날 지극히 불신 받는 관념이란 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정체성의 군도로 이뤄진 역사(들)의 다양태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포스트-역사 담론의 관점에 설 때, 숱한 역사적 경험, 의식, 사태를 망라하고 종합하는 세계사라는 개념보다 더 미심쩍은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지배와 종속이라는 비대칭적 위치를 고려하는 한 역사적 재현의 공약불가능성을 단언하는 이들의 편에서 볼 때, 역사를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를 억압하거나 부정하는 세계사라는 관념보다 위험천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사라는 개념을 부정하고 기각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금보다 세계사라는 개념이 절박한 때도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장황한 서술을 피하며 말하자면, 세계화(globalization)와 포스트-역사 담론의 역사적 서사의 차이와 다양성 사이에 놓인 이율배반을 제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세계화를 승인하는 담론들은(맥마이클의 표현을 빌자면 국민국가 차원의 발전으로서의 개발 프로젝트에서 세계 시장에의 참여라는 지구화 프로젝트가 제3세계의 지상명령이 되도록 이끄는 다양한 국제기구, 기관, 대중매체, 학술집단과 저자들이 생산한 담론들.)(맥마이클, 2013)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바깥에 놓인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보편성을 지시한다. 제임슨은 1960년대를 전후한 시기를 두고 “전지구적인 규모로 체계 재구조화가 일어난 결정적인 전환기”로 정의하면서 “고전적 자본주의 시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자연(Nature)의 마지막 자취”(그는 무의식과 제3세계를 그에 해당하는 것으로 꼽는다)마저 마침내 제거되어버리는 때라고 못 박는다.(Jameson, 1988: 513)

모든 현실을 자본주의적 역사의 그늘 아래 포괄하는 보편적인 역사 담론은 세계화 담론을 통해 완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근대화(modernization) 이론에 내장된 자유주의-자본주의적인 보편성을 역사적으로 혁신함은 물론 그것을 보다 불가역적인 것으로서 완성한다. 근대화론과 발전(development) 담론이 세계사 담론의 범례로서 구실했다는 분석은 포스트-발전 담론분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종속이론, 생산양식 접합이론, 세계체제론, 부등가교환론 등 숱한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담론을 무시하거나 상대화하면서 근대화론에 내재된 긴장과 대립을 축소하고 근대/탈근대의 도식 역시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근대화 담론에 내재하는 긴장과 갈등을 준별하지 못한 채 그 모든 담론을 근대성이라는 도식으로 환원한다. 이는 특히 ‘서발턴(subaltern)’ 담론을 통해 도발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발턴 담론이 갖는 비판적, 계발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담론을 근대성의 담론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한 인식론적, 정치적 비판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며 또한 계속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발전담론의 역사와 내적 긴장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프라샤드, 2007; Escobar, 1995; Mitchell, 2002; Murray, 2007; Pletsch, 1981; Randall, 2004; Rist, 2008; Prashad, 2012)
오늘날 역사의 바깥에 선다는 것은 이러한 세계화에 거역하거나 부인하는 것을 뜻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 보편사 담론에 대하여 비판적인 담론들의 지형을 상세하게 살피는 것은 이 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대한 간략한 비판적 언급으로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서동진, 2018)

그런 연유로 우리는 68혁명을 역사화한다는 것의 또 다른 논리적 귀결로서 그것을 세계사적(world-historical) 사태로서 서사화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계사적인 것이란 지리적 범위에서 세계적인 것이란 점을 넘어 역사적 총체성이란 의미에서의 세계적인 성격을 가리킨다. 간략히 말하자면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지구적으로 진행된 탈식민화(de-colonization)와 함께 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역사적 계기로서 68혁명을 분석에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일상생활의 혁명, 문화 혁명으로서의 68혁명이라는 흔한 제1세계를 특권화하는 견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도 하다. 한편 이는 서구의 급진주의자들의 상상 속에서 낭만적인 상상의 이미지로 재현되는 탈식민운동이나 민족해방운동이, 68혁명의 결정적인 요소였음을 적극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68혁명을 둘러싼 서사에서 탈식민화된 세계에 대한 재현은 베트남전쟁, 알제리전쟁, 체 게베라, 프란츠 파농, 에메 세제르, 피델 카스트로 등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친다. 식민주의의 종결과 더불어 나타난 민족해방운동을 상기하고자 하는 이러한 서사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체제의 변동에 따른 광범한 질서의 변동을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전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해방된 민족들이 국민국가로 자신을 재구성하며 자신의 역사적 운명을 발진시켰을 때, 그것은 제3세계라는 저항적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3세계라는 ‘기획(project)’은 68혁명을 전후한 역사적인 시대에서 결정적인 사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제3세계의 세계적인 통사를 제시하는 프라샤드는 프로젝트로서의 제3세계를 다음처럼 정의한다. “제3세계는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프로젝트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인민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적 존엄성을 그리고 삶의 필수재인 토지, 평화, 자유를 염원했다. 그들은 불만과 열망을 다양한 형태의 조직으로 모아냈고 민족지도자들은 이 조직들을 통해 요구사항을 수렴할 발판을 마련했다.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가나의 크와메 은크루마,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같은 지도자들은 20세기 중반의 10년간 여러 곳에서 만난 민족지도자들은 인민의 희망을 담아낼 사상과 일련의 기구를 만들어 갔다. ‘제3세계’란 이러한 희망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들을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프라샤드, 2007: 13)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1968년 세계혁명의 지속되는 유산」에서 1968년의 파리에서의 5월의 청년 세대와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범위로 제한할 수 없는 1968년 운동의 ‘세계적’ 성격을 역설한 바 있다. 그것이 세계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그 운동이 발생하고 실행된 범위가 세계 전역이었다는 뜻에서 지리적 분포의 세계적 성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월러스틴은 역사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세계사, 다시 말해 역사의 새로운 단계를 개시하는 변화를 만들어낸 사태로 68혁명을 바라본다. 그의 말을 빌자면 “1968년 세계혁명은 우리가 1968년을 한 시대의 종언이자 새로운 세계체제로의 이행의 시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세계체제의 지정학과 지구문화 구조를 변혁시켰다”는 것이다.(월러스틴, 2008: 111). 요컨대 그는 1968년의 ‘세계혁명’을 통해 초래된 불가역적인 변화를 강조하며, 1968년을 전후해 프랑스와 체크슬로바키아를 비롯하여 유럽과 아시아, 남미 여러 곳을 휩쓸었던 68혁명을 기꺼이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묘사하는 셈이다. 월러스틴이 “1968년의 결과 발생한 주요한 변화는 무엇이었는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도자유주의가 세계체제의 무적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지위에서 폐위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잊혔던 민중’이 세계체계에서 진행 중인 정치적 투쟁에 분명하고도 의미심장하게 진입한 것이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잊혔던 민중의 주역이 바로 제3세계의 민중을 가리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이들이 68혁명을 역사화하는 서사 속에 도입될 때, 68혁명은 세계사적인 혁명으로서 총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제3세계주의가 지구에 관한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을 무너뜨렸다면 세계화라는 관념은 그것의 통찰들을 통합하고 대체”하고 있음을 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Birchall, 2013: 154).

68혁명으로서 제3세계(the Thrid World) 기획과 그 역사

1955년 4월
아시아․아프리카 회의(Asian-African Conference).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4월 개최. 반둥 회의(Bandung Conference)라고도 불리며 아시아, 아프리카의 29개국 대표들이 참여하여 ‘반둥10원칙세계 평화와 협력의 추진에 관한 선언)’을 채택. 훗날 제3세계가 탄생한 사건으로 기억되며 제3세계주의(thirdworldism)나 반둥정신(Spirit of Bandung) 역시 이를 통해 출현. 아시아에서의 반둥 회담이 미친 효과를 검토하며 아시아 60년대의 역사적 풍경을 검토하는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라. (Mushakoji, 2005; Hadiez, 2006)

1957년
아시아아프리카 인민연대회의(Afro-Asian People’s Solidarity Conference) 개최
국제원자력기구 발족
1960년
남한에서 4.19혁명 발발. 이승만 하야.

1961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아시아아프리카 여성회의(Afro-Asian Women’s Conference) 개최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비동맹 회담 개최와 더불어 비동맹운동(NAM: Non-Alignment Movement) 발진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발의로 남미국가들을 대상으로한 ‘진보를 위한 동맹’ 개시. 남미지역에서의 녹색 혁명 본격화. 미국 국제개발청 총재 가우드(Gaud), 제3세계에서의 혁명은 폭력 적색 혁명이나 이란식 백색혁명이 아닌 녹색 혁명이어야 한다며 농업생산의 증대의 정치적 의의를 정의. 일부 제3세계에서의 재-농민화와 탈-농민화를 둘러싼 과정 본격화.

1962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과 프랑스 사이의 정전협정. 알제리 독립.

1964년
국제연합 무역개발협의회(UNCTD: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립총회 개최, 120개국 참가. 그 가운데 77개 나라가 라울 프레비시 주도로 77그룹(G77: Group of 77) 결성. 근대화론(Modernization)에 근거한 발전 모델 비판 시작.

1965년
인도네시아 1965년 9월 30일의 밤 사태 개시, 수백만 명에 달하는 공산주의자 대학살 시작. 수하르토가 이끄는 신질서(New Order) 체제 시작.
1966년
삼대륙회의로 불리기도 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연대회의 쿠바의 아바나에서 개최.

1967년
5월 낙살라이트(Naxalite) 시위에 경찰이 실탄 발표하며 투쟁이 격화되고 유로코뮤니즘의 모델에 가까운 합법적 의회 활동을 주장하던 인도공산당으로부터 마오주의자들이 분리, 마오주의자 인도공산당(CPI-ML: Communist Party of India (Marxist–Leninist)) 결성.

1968년
1월 북베트남 구정 공세 개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대학생들의 투쟁이 확산.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지로 확산된 이른바 서유럽의 68혁명 개시.

197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제4차 비동맹운동 정상회담 개최, 알제리 대통령인 사회주의자 우아리 부메디엔(Houari Boumedienne)가 신국제경제질서(NIEO: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구축을 촉구. UN 총회에서 신국제경제질서(NIEO: 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채택하고 그 해 말, 국가의 경제적 권리의무헌장(the Charter of Economic Rights and Duties of States) 선언.
태국 민주화투쟁 시작, 3년간 지속. 투쟁에 참여한 다수의 청년 학생들은 마오주의적 태국공산당에 합류하여 게릴라 투쟁.
칠레 아옌데 정권 합법적 선거로 사회주의 혁명 완수하지만 피노체트 군대에 의해 전복.

1974년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으로 군부독재 몰락. 과거의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독립.

1975년
북베트남군 사이공 함락으로 남베트남 해방. 베트남전쟁 종결.
프랑스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의 발의로 G7(Group of 7) 정상회담 개최
수입대체산업화(SIS)와 수출지향산업화를 둘러싼 경쟁이라는 담론이 득세

1983년
제7차 비동맹운동 정상회의 델리에서 개최. 싱가포르 대표인 신나탐비 라자라트남(Rajaratnam)은 국가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율적 결정을 옹호하는 입장 제기. 수입대체산업화를 통해 부상한 신흥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요구하며 카스트로 노선과 정면 대결.

제3세계의 출현과 역사적 추이를 설명하는 방식은 이 글에서 모두 망라하기가 불가능하리만치 다양하다. 제3세계의 역사적 단계를 구분하는 논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아본다면, ‘반둥 체제(Bandung regimes)의 두 단계’로(Berger, 2001), ‘1세대 제3세계주의 체제와 2세대 제3세계주의 체제’로(Berger, 2004), ‘개발 시대에서 지구화 시대로’(맥마이클, 2013), ‘반둥과 비동맹운동의 단계(1950-80)와 반둥, 비동맹운동 없는 세계의 단계(1980-현재)’(Amin, 2015)로 분류하는 등, 제3세계의 역사는 상이한 방식으로 연대기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구분은 제3세계 자체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의 전개과정에 연루된 전반적 변화(무엇보다 냉전 체제의 등장과 소멸, 현실 사회주의 내부의 갈등(중소분쟁)을 위시해 전후 자본주의 축적 과정의 위기와 그 해결 과정 등)을 망라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주권적인 국민국가에 기반한 정치적인 엘리트 중심의 경제적 민족주의가 주된 추동력이 되었던 첫 번째 단계와 보다 급진적인 사회주의적인 기획의 경향이 강한 발전과 이행의 투쟁이 펼쳐진 것으로서 두 번째 단계를 강조하는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각각의 분석이 자신의 단계 구분을 통해 강조하려는 바를 떠나 이 글에서 우리는 그것을 68혁명을 통해 정점에 접어든 (장기적인) 60년대라는 역사적인 시대의 구성적인 계기로서 제3세계의 기획을 규정하고자 한다. 아쉽지만 이 글에서는 앞서의 표를 통해 요약하였듯이 제3세계라는 역사적 기획의 출현과 그것의 좌절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간략한 연대기적인 서사로 요약하고자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글에서 제3세계라는 기획의 전체적인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이 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려니와, 이 글에서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세계사적 사태로서의 68혁명과 그의 핵심적인 계기로서의 제3세계의 기획 자체이기 때문이다.

“소비(Sauvy)는 ‘무시당하고 착취당하고 경멸당한 제3세계는 제3신분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존재가 되기를 요구한다’고 썼다. 1789년 이전 구제도 아래서 프랑스 왕실은 고문들을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으로 나눴고, 제3신분은 부르주아의 자리가 됐다. 프랑스 혁명의 혼돈 속에서 제3신분은 국민의회를 결성해 전체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제3세계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고 연대의 발판을 만들고 국제정세의 역학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것이 제3세계라는 계몽의 약속이다.”(프리샤드, 앞의 책: 31).

인용한 대목에서 프리샤드는 제3세계란 개념의 기원을 둘러싼 서술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요약하고 있다. 그것은 제3세계란 개념이 제1세계 자본주의 국가들과 제2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한 나머지의 ‘국가들’이라는 잔여범주가 아니라는 것, 그 용어를 고안한 프랑스 경제사가 겸 인류학자인 소비가 염두에 두었듯이 프랑스 공화주의 혁명이 산출한 정치적 상상인 ‘제3신분(Tiers Monde)’, 즉 새로운 역사적인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제3세계 개념의 기원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Wolf-Phillips, 1987. Berger, 2004).

따라서 제3세계의 대두를 자유의 역사로 나아가는 보편사적인 계기로 파악하려 했던 많은 이들의 생각은 수긍할 만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보편사적인 상상의 내적인 모순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세계사적인 자유와 진보의 상상을 요약하고 있으며 제3세계 기획에서도 주요한 참조점이 되었던 2차대전 이후 공표된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Unvi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1948)은 제 22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하여 그리고 각국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실현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서 개인들이 맺는 사회적인 계약은 국가를 통해 나아가 국가 간 관계를 통해 이뤄진다고 말함으로써, 제반 ‘권리’가 국가를 통해 매개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시민적 권리를 지닌 주체로서 제3세계의 인민은 제3신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럽적인 자유주의 근대성의 중추였던 국가-시민의 모델을 수용해야 했다.(Berger, 2001. Patel, Rajeev & McMichael, Philip. 2004). 권리의 보호자이자 실행자로서의 국가에의 의지는 물론 제3세계의 한계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후 서구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권리의 보호자로서 자처했던 국민-사회-국가(the national-social-state)의 성쇠와 대응하기 때문이다.(발리바르, 2010).

제3세계는 2차 대전이 끝나며 형성된 역사적인 정세, 즉 탈식민화와 민족해방 그리고 냉전이라는 배경에서 등장했다. 제3세계가 민족해방운동을 통해 형성된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주권적 영토 국민국가들을 가리키지만 1945년에서 1981년까지 국제연합에 새로 가입한 국가들의 숫자는 105개국에 이른다.

또한 이는 국가에 의해 주도된 경제적 민족주의에 의지한 국가 발전 프로젝트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제3세계와 짝을 이루는 ‘제3세계주의’는 제3세계라는 기획을 정당화하는 서사 혹은 이데올로기를 가리키지만 그것의 내용을 간단히 규정하기란 어렵다. 사미르 아민의 경우 제3세계주의란 개념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의 회상록에서 68혁명과 제3세계주의의 관계를 반추하면서 제3세계주의를 서유럽의 청년 세대가 자기네 세계의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이지 않다는 데 대한 실망과 더불어 제3세계의 인민들에게 투사한 소박한 메시아적인 기대로서 폄하한다. 그리고 이러한 식으로 구상된 제3세계주의가 훗날 종족적, 종교적, 기타 공동체주의적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으로 변질되며 이들이 인도주의적 조직이나 NGO들에 헌신하며 새로운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놀아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혹평한다. 비록 제3세계주의가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국제주의적인 연대의 관점을 만들어냈다고 그것의 미덕을 언급하지만, 아민은 제3세계주의를 제1세계의 독특한 문화정치적 서사로 일축한다. 이는 제3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많은 급진적 연구자들이 제3세계의 정치적 주체들에 의해 역사적으로 생산, 수용, 전파된 담론, 특히 반둥 회의와 그 이후의 비동맹운동을 통해 확산된 다양한 지식, 정책, 비전들과 전연 다른 것을 언급한다. 이에 대해 아민이 제시하는 주장은 제3세계 자체에서 출현한 담론은 민족주의인 경우가 거개이며 일부가 민족부르주아적 기획에 대해 조금 비판적인 정도였다는 것이다. 비록 아민이 주장하는 바가 과장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제3세계주의를 낭만화하는 경향에 대한 주목할만한 비평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Amin, 2006: 196-7).

제3세계주의에는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추세를 배경으로 하는 유토피아주의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또한 그것은 국민국가체제가 전지구적으로 일반화되면서 만들어진 자유주의의 요소, 이를테면 국민적 주체의 온전한 대표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요소를 아울러 포함하며, 식민주의 시기 이전에 존재했던 사회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 혹은 전통의 발명에 의지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반둥 회의를 조직하고 비동맹운동을 적극 이끌었던 인도네시아 수카르노(Sukarno)의 경우 나사콤(Nasakom)이라는 독특한 제3세계주의 판본을 실행하였다. 이는 민족주의(NASionalis)와 이슬람(Agama) 그리고 공산주의(KOMmunis)를 합성한 말로서 제3세계주의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민족주의의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를 기초로 여러 가지 이념과 정책을 합성한 제3세계주의의 담론적 구조를 예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프라샤드, 2007. McVey, 1996: 111. Berger, 2004:15. Hadiz, 2006: 560)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란 관념은 미국을 맹주로 하는 제1세계가 바라보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의 국가들에 대한 지배적인 표상, 즉 전통 사회나 저개발(underdevelopment) 사회라는 표상과 분명하게 대립하였다. 그런 점에서 근대화(modernization) 담론과 개발 담론 혹은 이니셔티브가 구상하고 있던 재현 방식은 제3세계가 대항적으로 제출했던 다양한 담론, 특히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으로 대표되는 대항 담론과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담론들은 단순히 학술적인 지식에 머물지 않고 탈식민화된 다양한 국민국가들의 차이를 망라하며 이를 동질적인 세계로 제시할 수 있도록 하며 역사적으로 특수한 정치적 대상으로 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물론 동아시아의 신흥산업국(NICS: Newly Industrialising Countries) 즉 남한, 싱가포르, 홍콩, 대만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경제 발전은 1980년대 제3세계주의에 대한 공격을 위한 구실이 되었으며, 아울러 수입대체산업화라는 경제적 민족주의에 따라 추진된 발전 기획의 실패를 입증하는 사례처럼 선전되었다. 그런 점에서 신흥산업국 담론과 그것이 장려한 수출지향산업화는 제3세계주의자들이 민족해방운동 이후 구축하고자 했던 제3세계라는 동질적인 대상에 깊은 균열을 내는 데 기여하였다. 버거가 요약하듯 “1970년대 후반, 동아시아에서의 성공적인 자본주의 발전은 제3세계 혹은 제3세계주의의라는 관념 속에 포함된 사회주의인 의제를 대체하고 말았다.”(Berger, 2004: 27). 앞서 언급했듯 개발(발전)이란 특정한 지식과 이를 연장하는 정책, 제도, 기관 등을 통해 제3세계라는 대상을 규정하고 또 그에 개입하며 관리도록 하는 “진리 체제”로서 기능하여 왔다.(Escobar, 1992: 23).

그런 점에서 1983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7차 비동맹운동 정상회의는 제3세계주의의 좌절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태일지도 모른다. 이는 경제적 민족주의를 통해 민족해방과 사회혁명을 함께 도모하고자 했던 제3세계라는 기획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협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상연했기 때문이다. 이미 위기에 처한 구 소련의 경제적 상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혁명에서 제3세계 기획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역사적 진보의 노선을 옹호했던 카스트로는 뉴델리 회의에서 예기치 않은 적수를 만나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싱가포르의 독재자인 리콴유(李光耀) 총리와 더불어 인민행동당을 결성했던 신나탐비 라자라트남(Sinnathamby Rajaratnam)은 “최선의 정책이란 자유시장경쟁을 기반으로 정부가 경쟁의 정신을 꺾지 않고 경쟁의 결실을 재분배하는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라고 선언하였다. 리콴유는 이즈음 범아시아주의적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국가주도 수출지향 산업화를 통해 성공적인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자신들이 1세계로 진입할 수 있음을 역설하는 반제3세계주의의 이데올로그로 역할 하였다. 리콴유의 From Third World to First(국내에는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이란 이름으로 번역, 소개되었다)란 저서의 제목은 그런 점에서 제3세계기획이 붕괴하는 과정의 한 장면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Berger, 2004: 27, 리콴유, 2001)

그는 여전히 계급동맹을 통한 사회혁명의 비전을 견지하고자 안간힘을 다했던 카스트로 노선에 응수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라자라트남의 도전장은 역사적인 승리로 귀결되었다. 전후 역사적 자본주의는 이제 새로운 역사적인 시대로 접어들었고 서구 1세계에서의 68혁명을 패퇴시킨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더불어 제3세계 역시 지구화와 더불어 전지구적 남반구라는 새로운 역사적 형세 속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4. 맺음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자 중국한 연구자인 아리프 딜릭은 이렇게 단언한 바 있다. “1968년은 제3세계의 해였다.”(Dirlik, 1998: 295). 이런 대담한 주장은 흔한 상식에서 매우 비껴나 있다. 1968년은 프랑스의 파리나 이태리의 로마와 볼로냐, 독일의 베를린, 영국의 런던 아니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일본의 도쿄나 교토에 해당되는 일이다. 그것은 1세계에서 벌어진 일로 상기되기 일쑤였다. 거기에서 베트남 전쟁과 알제리 전쟁,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나 게릴라 투쟁의 영웅 체 게바라 같은, 제3세계라는 지리적 장소를 상징하는 몇몇의 인물이 조역으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딜릭이 말하는 제3세계는 북미와 유럽, 혹은 발전된 제1세계의 나라들에서 상상되고 표상된 제3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한편 그가 말하는 1968년은 연대기적인 연표 상에 등장하는 어느 한 해로서의 1968년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1968년이란, 지금은 모두가 기피하거나 의심하는 시대(period) 혹은 시대구분(periodization)이라는 개념에 따른 장기적인 1960년대, 후술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1955년에서 1983년에 이르는 독특한 역사적인 기획, 즉 제3세계라는 기획이 발진하고 종료하기까지의 시대로서의 1960년대를 가리키는 ‘역사적인 표장(標章)(historical marker)’으로서의 1968년이라 할 수 있다 (ibid.: 296)

1968년은 제3세계의 해였다고 확언하는 딜릭의 주장은, 이른바 ‘68혁명’을 둘러싼 서사(narrative) 그것이 역사적 서사이든 아니면 회상적인 기억의 서사이든, 아니면 불가역적인 문화변동으로서의 분기를 가리키는 문화사회학적 서사이든 68혁명의 서사와 그것의 기호학적인 의미에서의 장르, 형식 등은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러한 68혁명의 서사적 종차들이 아니라 그것이 역사적 시간과 그 내의 사태를 식별, 종합하는 역사적 재현의 원리에 주목한다.

가 기대고 있는 가정을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이는 유럽의 사건으로서 68혁명이 지방화(provincializing) 되어왔음을 알린다. 1968년은 제3세계의 해라고 말할 때 그 때의 제3세계란 지리정치적 범주로서의 제3세계, 즉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에 속한 국민국가들의 묶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제3세계란 2차 대전이 종결하고 난 직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벗어난 사회들이 정치적 주권성의 모델에 따라 국민국가를 형성하게 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나라들을 가리키곤 한다. 그를 감안한다면 제3세계란 어떤 개별 국가의 지정학적인 소속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전후에 생성된 정치적 공간 속에서 탈식민화 이후의 변화의 방향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진 자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친미적인 근대화(modernization)의 모델, 비동맹운동의 노선에 따른 민족적, 민중적(national, popular) 발전 모델, 국제적 케인즈주의의 모델, 종속적인 사회민주주의 모델 혹은 친소련적이거나 친중국적인 국가 개입의 발전 모델 같은 것으로 복잡하게 나타났다 (맥마이클, 2013. Rist, 2008. Prashad, 2012. Amin, 2015. 물론 여기에 덧붙여 1980년대부터 급격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아시아의 신흥산업국들(NICs), 아시아의 용, 아시아의 호랑이 등으로 불린 나라들의 발전 모델 역시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마르크스-레닌주의이든 아니면 마오주의이든, 아니면 체 게바라에 의해 대표되는 농촌 게릴라투쟁이든(foco theory), 이 모두는 제3세계가 지리적 장소 이상으로서 즉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프로젝트’로서 간주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제3세계란 개념은 단순히 어떤 지시적인 용어로서의 의미를 넘어 2차대전 이후 탈식민화된 사회에서 자신의 발전의 모델을 구축하고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인 선택과 갈등을 가리키기도 할 뿐 아니라 보다 나아가서는 일종의 윤리적, 정치적 에토스로서 민족해방 이후의 문화적 비전이 투여된 사고이자 비전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기획으로서의 제3세계가 등장하고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시기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있듯이, 종결되었다. 비서구 세계를 가리키는 저널리즘적인 용어로서 혹은 단순한 분류적인 지시어로서 제3세계란 낱말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지만 프로젝트로서의 제3세계는 실패와 좌절에 직면하였고, 그 개념은 이제 전지구적 남반구(global south)란 용어로 대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흔히 세계화(globalization)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칭해지는 새로운 정치적 프로젝트가 지배하는 역사적 시대로의 이행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서구 제1세계에서의 68년의 좌절이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통해 예시된다면, 제3세계의 실패는 세계화 이후의 빈곤한 전지구적 남반구라는 표상을 통해 지시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68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반성하는 역사적 반성이 제3세계라는 기획의 성공과 실패를 경유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어쩌면 억지로 간주될 수 있을 무모함을 동원해 서구의 청년, 노동자 세대의 국지적인 반항의 소동으로 간주되었던 68혁명을 시대화하고자 68혁명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사태로서 장기 60년대의 영고성쇠를 간략하게 서술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는 제3세계 기획에 기재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의 전략과 개입, 그리고 그 나라들에서의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들을 망라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이 글에서 포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68혁명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분석이 향후 도래하게 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기원을 보다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그와 달리 이 글은 제3세계 기획의 실현과 좌절의 과정으로서 68혁명을 역사적인 반성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전지구적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에 형성된 새로운 형세의 역사적인 기원과 궤적을 이해하고자 시도하였다. 비록 68혁명을 역사화하기 위한 모험적인 가설에 가깝지만 이 글이 지난 세기의 후반부터 자본주의의 역사를 둘러싼 인지적 지도-그리기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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