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마음’ 그런 것

후지노(藤野登) 또는 문승근
– 아마, 어제 밤 단숨에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경식이란 필자에 대하여 항상 적잖은 위화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나는 그가 디아스포라란 개념을 사용할 때에도 역시 지레짐작으로 그의 어떤 호사벽의 표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새롭고 좋은 것에 대한 집착에 대한 증오가 투사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디아스포라란 용어는 자신을 주변화함으로써만 서구 좌파 아카데미 안에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주술적 개념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아마 어쩌면 디아스포라란 이름의 락밴드가 나올지도 모르고 그런 이름의 관광 패키지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디아스포라란 개념에서 그것이 감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외려 도착적인 쿨하고 세련된 느낌을 감지한다면 그 용어는 전적으로 실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신새벽 뒷골목에 분필로 남몰래 쓰는” 민주주의”. 그 시구에 등장하는 민주주의란 단순히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정치 체제의 용어가 아니라 강렬한 정서적 진동을 갖고 동시에 그를 읽는 개인들 각자를 어떤 보편적인 운명의 지평 속으로 운반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섭리란 뜻에서의 운명이라기보다는 결국은 선택해야할 그리고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이 없는 결정의 계기를 가리키는 것일지 모른다. 그것은 거대 서사의 소멸을 주장하는 세태에 비추어보자면 광적인 비합리성에 음울하게 물든 어떤 메타적인 신앙의 외침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없이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로써 희망을 전하려는 자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는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말이다.

–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나는 이 “연약한” 저자에게 깊이 감동받았다. 아마 그것은 그 책에서 언급하는 디아스포라란 존재의 삶에 관한 서술보다는 그가 그것을 체험하는 방식, 순전히 그의 실존적인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품고 있던 근거 없는 반감을 완전히 해제하게 된 것은 그의 책 곳곳에 등장하는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한 그의 언급 때문이었다. 나는 타인의 죽음에 관하여 특히 같은 재일조선족의 죽음에 관하여 서술하는 부분에서 잠시 호흡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나의 기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혹은 그녀가 죽었을 때, 부고가 도착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몰려오기보다는, 조금은 어떤 다행스럽고 또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 죽음과 직면하는 것. 나는 그것이 바로 디아스포라로서의 자신의 기분이라고 이야기할 때의 서경식에게서 깊이 감동했다. 이를테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추상적인 지식을 제시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를 서술할 때마다 등장하는 개념이나 용어들, 차별, 착취, 억압, 배제, 불관용 등의 말은 부족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 어느 젊은 게이 친구가 자살을 했을 때, 나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견딜 수 없는 애매한 기분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보다 몇 해 전 에이즈로 죽은 어느 선배의 영결식에서 절감했던 어색하고 견딜 수 없는 기분과 다르지 않는 것이었다. 명랑하게 잘 지내던 그가 또는 그 누구보다 낙천주의자이던 그가 갑자기 목숨을 놓았을 때, 그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그의 죽음에서 어떤 해방감까지 느끼는 것.
– 서경식은 그런 느낌을 한나 아렌트의 글에서 찾는다. “망명자는 싸우는 대신에, 또는 어떻게 하면 저항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대신에 친구와 친척의 죽음을 바라는 데에 익숙해져버렸다.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은 이제 어깨의 짐을 전부 내려놓았구나 하고 쾌활하게 생각해보곤 한다.” (한나 아렌트, ‘우리 망명자들’, <디아스포라 기행>, 50쪽) 서경식은 이런 심정을 자신에게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아는 재일조선인 중에 자살한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 봐도, 화를 내야 할 때 서글프게 웃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다가 스위치를 뚝 끄듯이 사라져 버렸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런 죽음과 만났을 때 나의 마음에 일어나는 감개는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아, 역시나’ 하는 심정에 가깝다. ‘그 사람은 이제 어깨의 짐을 전부 내려놓았구나’ 생각하고픈 마음을 알 것 같다.” (51쪽) 그는 이것을 ‘소수자의 마음’이라고 부른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어느 글에서 썼던 듯하다. 19살의 어린 동성애자 청년이 자살을 택했을 때, 나는 게이로 사는 것은 부고를 접하는 것이며 그에 대하여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자에 대한 자의 기분을 느끼는 것이라고 끄적였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에 대하여 서경식처럼 통렬한 성찰을 하지는 않았다. “이제, 됐어, 그만 끝을 낼까 생각하면서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 몸을 내밀려 할 때 확 뒷머리를 잡아채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 중 하나는, 의심할 바 없이 ‘국민’이라는 관념이다.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고향과 그것의 자연, 자기를 사랑해주는 가족, 조상이 남겨준 유형무형의 재산,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전해지는 혈통, 과거에서 미래로 계속되는 ‘국민’의 전통, 고유의 역사와 문화, 하나하나 자세히 검토해보면 근거가 희박한 이 관념들이 단단히 모여 있는 것, 그것이 ‘국민’이다.”(55쪽)
–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가 단지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분노와 증오가 깊었던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더없이 섬약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외려 대단히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지닌 슬픔을, 자신이 견디는 고통을, 자신이 견디는 외로움을, 어떻게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이 미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과 동일한 처지의 타인들을 묶는 감상적인 동일시로부터 벗어나, 그들과의 관계로부터 보는 시선을 통해 나와 또 다른 처지의 타인들을 볼 수 있었겠는가. 나의 또다른 나로서의 타인을 향해 감상적으로 나르시시즘적으로 동일시하며 꺽꺽대고 울기보다는, 어떻게 그가 한 명의 무한하고 환원할 수 없는 한 명의 존재로서 살았는가 바라보는 시선의 힘을, 나는 그에게서 느낀다. 그가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삶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의 미술관과 음악회를 떠돌며 사치스럽게 자신의 감상과 기행을 뇌아리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나의 볼품없고 건방진 짐작은 틀려도 많이 틀린 것이었다.
– 프리모 레비의 글을 어떻게든 번역하고 싶어 안달하던 어떤 지인이 생각난다. 나는 그가 왜 조금은 뜬금없이 그의 책을, 아우슈비츠의 고통에 관한 범람하는 증언과 책, 영화들로 이제는 거의 신물이 날 지경인 터에, 번역하자고 고집할까 의아해 했었다. 나는 그것이 파시즘 비판이라는 한국의 젠체하는 지식인의 어떤 특성의 표현일 것이라고 쉽게 짐작했다. 그러나 나는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으로 투옥된 경험이 있었고, 그 정치적 사건은 어떤 민주화운동도 서슴없이 두둔하기 어려운 어떤 금기의 선을 넘어선 잔혹한 것이었다. 그 사건으로 그가 취조를 받고 고문을 받으며 수형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그가 어떤 물리적 고통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참담한 고독과 삶의 무의미를 겪었을 것이라는 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삶에 닥친 짐승처럼 사는 삶, 즉 목숨을 부지하는 삶 이상의 삶, 그 희한한 비실체적인 여분의 그 무엇에 얼마나 집착했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레비, 그는 그가 겪었던 참상의 증언보다 더 전율할만한 무엇을 우리에게 주지 않았는가. 바로 그가 그 여분, 자신의 삶을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가능케 하는 차원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 무엇보다 나치즘의 악으로서의 성격을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 그리고 오늘 스필버그의 신작인 <뮌헨>을 미루다 보았다. <뮌헨>은 분명 실패한 영화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 편의 영화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스필버그가 의탁하고 있던 세계 전체의 실패일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나 무모한 도박을 하였고 그는 그 대가를 치른 것처럼 보인다. 스필버그를 읽을 때 항용 등장하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유명한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이데올로기란 그것이 언제나 비뚤어진 정치적 전망과 결합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언제나 이데올로기의 이중적 차원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 즉 이데올로기란 언제나 그것이 표면적으로 언급하는 내용 속에 있는 것이기는 커녕 유토피아적인 충동을 조작하는 형식 안에 있다는 것. 아마 그것이 그의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펼칠 때 자주 인용하는 감독이 스필버그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그 스필버그의 쓸쓸한 쇠락을 생각해 볼 적절한 때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스필버그의 영화에 대한 피상적인 비난, 즉 그의 영화가 노골적으로 가족적 가치를 찬미하며, 이상화된 백인 노동계급 남성성에 호소하고, 미국 중심주의의 신화를 노골적으로 지지한다는 투의 주장에 전연 관심이 없다. 그것은 그의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전연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외려 이데올로기 이후를 예상하는 일련의 젠체하는 영화들, 즉 노골적으로 왕년의 이데올로기적 신화(그러나 이미 상징적으로 그것의 위력이 반감되거나 아니면 소멸한)를 재연하며 그것에 대하여 거리를 두는 체 하는 영화들이야말로 더욱 이데올로기적이며 또한 역겹다(아마 최근에 내가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일 것이다. 모든 관료적 제도와 기성의 권위와 맞서 싸우는 위반과 반항의 시인들(근친상간적 관계를 서슴치 않는!)을 노래하는 이 회상적인 영화는 어느 자유주의적 좌파 감독의 나르시시즘적인 향수라고 봐주기엔 너무나 거북했다).
-………….

7 thoughts on “‘소수자의 마음’ 그런 것”

  1. 디아스포라 기행을 저도 단숨에 이제야 다 읽었습니다.
    사놓고 두어달동안 읽을 시간이 없다가 토요일 오후를 빌어 다 보았네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덤덤하게 쓴 글 사이에는 처절함이 베어나와
    몸둘바를 모르게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자신의 외국인등록증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선
    서경식교수의 모습에선 잠시 책을 덮어두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두형이 무고하게 독재정권에 의해 옥살이 했고
    고문을 견디다 못해 거짓자백을 안하려
    난로를 끌어안고 온몸이 타버렸 던 일까지 그냥 그냥 읽었는데
    아… 외국인등록증을 들고 직접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는 글에선
    커다란 구멍이 가슴에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2. 그렇지요? 광주시립미술관에 재일교포 작가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데 언제 한번 짬을 내어 제대로 볼 기회를 가졌으면 하고, 벼르고 있습니다. ^^

  3. 서경식 교수님 교환 교수로 울 대학 오시는 것 알고 있남
    4월부터 학교 계실 텐데…한홍구 교수님께서 안식년이라서 한 교수님 연구실 쓰시기로 하셨답니다.
    서준식 선생은 두 딸과 함께 독일로 뜨고 동생인 서경식 교수는 울 대학교 연구교수 오고, 서승 씨는 일본과 한국을 왔다리 갔다리 하시고 쩝
    서경식 교수 만나면 언니 글이나 보여 줘야 겠다. ㅋㅋㅋ

  4. 잘 읽었습니다. 2006년의 글이었군요. 이 글이 2009년 라는 책에 언급이 되었는데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제가 무심코 찾아들어오기까지 남아있다니 신기해서 댓글을 남겨봅니다. 위에 “이 글을 왜 보여줘? 허튼짓 마라” 라는 댓글이 남아있는것도 재미있어요. 책에는 이렇게 써있거든요. “아까 얘기한 에 나오는 죽음 얘기에 대해서 서동진 선생의 서평이 저를 제일 잘 이해해 주셨다는걸 느꼈”다고요. 잘 둘러보고 갑니다.

    1. 네 어쩌다 이 글을 읽고 서경식 샘이 연락을 해 함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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