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예술, 투쟁하는 예술


Future Islands – Seasons (Waiting On You)


서울의 어느 대학에 나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술렁거릴 때였다. 내가 일하는 미술대학 입구의 건물 앞에도 마침내 대자보가 붙었다. 생크림처럼 눈이 도톰히 뒤덮인 겨울 어느 날이었다. 소문으로 듣던 대자보의 나른한 말투와 사뭇 다른 어조였다. 그 대자보는 자못 비장하게 예술가들도 노동자라고, 노동자가 겪는 착취와 예술가가 겪는 착취가 다를 게 없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예술가가 노동자란 말은 가난과 불안정한 삶의 처지를 알려주지만 또 어찌 듣기엔 의젓하고 씩씩하기도 하다. 그것은 착취와 삶의 비참, 적대적인 사회관계에서 예술가가 동일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힘주어 말한다. 예술가도 노동자란 말은 그러나 정치적인 연대를 전달하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스스로 노동자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는 모두 흑인이라고 외치듯이 우리는 모두 프롤레타리아라고 외칠 수 있다. 불안정 고용과 빈곤, 채무 노예, 빈약한 공공서비스, 그 앞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고 또 그런 연대를 통해서만 지금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예술이 노동의 편에 서는 것을 넘어 예술적 실천을 노동과 동일시하는 것은 전연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것은 따져볼 만한 많은 이야기가 뒤엉켜 있다. 우두커니 대자보를 읽다 연구실로 가던 발걸음을 돌렸다. 생각이 복잡했던 탓이다.


그러다, 얼마 전 칼럼을 연재하던 어느 신문에, “노동하는 예술가”란 제목을 단 글을 기고했다.
아직 찬바람이 매섭던 겨울 끝자락 어느 날, 전시엘 다녀왔다. <본업: 생활하는 예술가>란 이름을 내건, 팔팔한 큐레이터들이 조직한 기획전이었다. 전시 제목부터가 심상찮지만, 마침 전시를 보러간 날 있었던 아티스트 토크 역시 흘려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기획전에 초대된 작가들은 모두 어느 지점에서는 모두 전업적인 미술가로서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이고자 했던 이들이었다. 지금이야 모든 삶이 처한 처지를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지만, 그들도 역시 아니 누구 못잖게 “불안”이란 낱말을 곱씹고 있었다. 어느 작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내 멋쩍은 표정으로 남들 다 살기 힘든데 유독 티를 내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다. 작가로서 살다간 굶어죽기 십상이기에 배운 재주가 있어 미술관의 전시 디자인 용역을 해서 먹고 산다는 이는 용역과 예술 사이에 놓인 자신의 처지, 외주화된 미술제도 내부의 노동 착취를 근심하고 있었다. 실은 이것이 그들의 작업이기도 했다. 바람에 펄럭이는 대형 면포 위에 허탈하게 혹은 엉거주춤 담벼락 위에 걸터앉은 이들을 그린 작가는, 어느 자리에서인가 생활을 이야기한 친구들이며 지인들을 그리려 했다고 한다. 불안을 그리려 했던 셈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이 하는 행위를 노동이라고 극구 주장한다는 것을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횡행하는 풍경과 극명한 대조를 보여, 놀라게 한다. 모든 상품은 예술품처럼, 모든 노동은 예술가의 창작처럼, 모든 진열은 예술품 전시처럼, 쓸모 대신에 감성과 스타일로, 보수는 역량에 대한 보상으로! 이런 슬로건들이 여전히 난무하는 창조경제 시대의 경제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언젠가부터 경제는 스스로 예술을 닮거나 흉내 내려는 시늉을 접고 숫제 스스로를 예술이라 자처할 지경이 되었다. 그 가운데 노동의 미학화는 가장 앞서 나간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일을 자신이 지닌 솜씨와 재능, 열정을 표현하는 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란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지만, 세상은 끈덕지게 자신의 일을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처럼 대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 탓에 일의 이름도 해괴하게 바뀌어왔다. 그런 우아한 이름을 갖지 못하면 마치 시대에 뒤처지고 창피스럽다는 듯이, 주방장을 쉐프라 부르고, 제빵공을 파티세라 부르고, 커피 뽑는 노동자를 바리스타라 부른다. 그건 그렇다 쳐도 햄버거 가게 오토바이 배달원을 라이더라고 부르는 것은 어쩐지 굴욕스런 기분까지 안겨준다. “알바 노동”의 피해를 알리는 인터넷 누리집에 들어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배달 알바의 고충은 라이더란 말을 마주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마치 속도광의 자기실현이 배달 노동이란 듯이.
미적인 자본주의라 불러도 좋을 이런 전환은 역겨운 기만이기도 하지만 또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드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런 예술가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의 계급적인 연대와 단결을 막는데 괜찮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 생존을 위한 임금이 아니라 재능과 끼에 대한 포상으로 임금을 둔갑시키며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를 궁극의 예술가로 우대하는데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한계효용의 경제학은 이제 미적 가치의 경제학에 양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젊은 예술가들은 그런 노동이 미적인 행위로 둔갑한 세계란 본 적도 없다는 듯이 예술가의 활동은 노동이라고 강변한다. 신산한 그들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은 고역스럽다. 예술을 자처하는 노동 그러나 노동이라고 항변하는 예술. 이런 자리바꿈의 대위법을 조율할 수 있는 논리는 없을 것이다. 실은 예술과 노동은 모순이기 때문이고, 예술은 끝까지 노동의 반대편에서 자본주의적 노동의 문제를 응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예술이 노동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임계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는 문화융성을 꿈꾼다지만, 실은 오래 전 문화파탄이 벌어진지 오래이다.
운운…..

짐작은 했지만, 이 글을 두고 불편한 기색을 비치는 이들이 많았다. 숫제 청년 세대 예술가가 처한 사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한 헛소리라는 비난에서부터 여전히 “작가의 노동을 숭고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묵살한다.”는 엉뚱한 푸념도 들린다. 난독증이 심한 이들이 많다는 사정을 아는 터라 짜증은 났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을”이 처한 비참함과 분노에 공감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은 우리는 모두 을이거나 을의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청년 예술가들을 착취하는 미술계 갑들의 횡포, 누군가가 말한 것을 빌자면 “비도(非道)”의 저열한 관행을 규탄하는 이야기를 듣자면 화가 나고 분이 치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도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규탄하고 개선하여야 하는 것이면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비도”의 관행을 “정상화”하고, 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고 그것을 수용하지 않을 태세면 어떻게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실력행사를 마다않는 투쟁을 하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그것이 만만하고 무시해도 좋은 일이라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지레짐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 인정한다. 그것만으로도 힘겨운 투쟁이고 또 그 투쟁에 나선 이들의 삶은 더없이 누추하고 비참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휴먼다큐를 찍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창백한 피해자의 표정이 아니라 투쟁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각오한 이들과 대화할 작정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이 글은 아무런 효력도 없고, 화만 돋을 것이다. 그러니 이즈음에서 글을 읽지 않았으면 싶다.
나는 몇 년간 벌어진 토론이 “미술계”의 부도덕한 관행을 폭로하고 시정하는 일 이상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동시대 미술이 처한 문제들의 징후를 요약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갑과 을의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을 자체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고, 나아가 갑의 모순을 보여주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며, 또 갑이나 을이나 자신이 공통으로 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술이라는 장 자체가 처한 위기의 징후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미술계 내부의 위계적 권력관계와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동시대 미술 자체가 처한 조건의 문제이자, 미술가 정체성의 위기의 문제이며, 예술제도 안에 연루된 모든 관행, 제도, 권력들이 연계된 미적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쟁점을 여기에서 말할 작정은 아니다. 그저 이후 우리가 더 비옥한 토론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필요가 있는지, 숨을 고르는데 이 글은 쓸모를 다 하려 한다.

예술가를 착취와 빈곤, 불안정한 삶에서 해방시키도록 하자. 좋다, 그렇게 하여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언제나 우리는 그것을 희망하므로 말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가 내걸어야 하는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프로그램이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지하지 않는다.
예술은 노동이라는 문제는 그 이상의 문제를 집약할 때만 우리가 덥석 손을 뻗어야 할 쟁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꺼이 고답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그 시점에서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하여 왔고 그런 점에서 지금의 불안정노동과 노동 없는 자본제적 착취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몇 달 전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짚어보는 토론을 위해 이야기를 꺼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청탁을 기꺼이 수락하던 즈음의 흔쾌한 기분은 졸아들고 말았다. 이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짐짓 망설이는 중이다. 당장 펼쳐지고 있는 진흙탕과 같은 토론 아닌 토론에 굳이 끼어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굳이 사정을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지금 노동과 예술의 관계를 에워싼 토론이 험악한 분위기란 것을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논쟁이 비록 비뚤어진 방향으로 치닫고 있기는 해도, 지속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생각하기 위한 탈선한 토론이 꼭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느 방향으로도 선회할 수 있다. 나는 그것에 기대를 건다. 그렇게 기대를 품을 만한 방향 전환의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동시대 예술의 미적 정치를 급진화하고 예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라면, 나는 이 토론에 우리 모두 내기를 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대 탓에 청년 예술가와 비평가, 학예사, 도슨트, 전시지킴이 등 우리가 알고 지내던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벌인 대화와 투쟁을 지지하였고 그 근처에서 벌어진 사태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가끔 토론에 끼어들기도 했다.
“예술 그리고 XX”. 우리는 예술과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짝을 지우는 낱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80년대에 박노해, 김정환, 황지우 같은 시인들이 만든 동인의 이름이었던 “시와 경제”가 생각난다. 그들의 시는 물론 경제와 관련한 시가 아니다. 여기에서의 경제란 기존의 시에 덧붙여지는 어떤 추가적인 차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시 자체를 뒤흔들고, 시가 놓여있던 문학적 장의 배치 전체를 흔들어버리기 위해 도입된 말이다. 그 말로 인해 그들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시를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려 했을 것이다. <시와 경제>라는 이름을 단 시집을 집어들었을 때 우리 모두 직관적으로 이것이 불온한 시라는 것들로 가득찬 시이며 우리가 읽어왔던 시와는 다른 시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반면 “반(反)시”나 “미래시”니 하는 이름을 들을 때 우리는 이런 이름을 단 시들이란 고작해야 전과는 조금은 다른 어법으로 변함없이 과거와 같은 시를 쓰겠다는 주장처럼 알아듣는다. 실은 뒤의 이름들이 더욱 과격하고 급진적인 척하는데도 말이다.
이는 예술과 노동이란 낱말의 조합에서도 같을 것이다. 기억에서 제법 멀어진 일이지만 한 때 예술과 민중, 예술과 자본주의, 예술과 시장 등 예술과 짝을 이루는 대상을 발견하고 그 둘을 이었을 때, 그것은 항시 예술이 스스로를 전화시키는 몸짓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예술과 XX”에서 XX의 자리를 차지할 대상을 골라냈다. “예술과 노동.” 그러나 이 말이 예술은 노동이라는 말로 새겨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예술적 실천도 숱한 일들로 이뤄져 있다. 그것을 모르는 천치는 없을 것이다. 그것 역시 생각과 감각을 짜내고 무엇인가를 제작하고, 전시하고 운반하고 글을 쓰며 대화를 나누고 지겹게 말을 거는 관객을 응대하는 숱한 행위들로 이뤄져있다. 물론 그런 일들에 더해 예술가는 숫제 “용역(service)”을 제공하는 신종 노동자를 가리키는 이름이라 말하기도 한다. 단 덧붙여야 할 말이 있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용역이란 어느 미술비평가가 말하듯이 탈숙련화(de-skilling)된 시대의 예술 행위로서 구상, 개념화, 제시, 주문 등은 자기가 맡고 나머지의 일은 다시 어디 누군가(미술관 인턴, 자원봉사자, 계약직 전시디자이너 등)에게 내맡기면 될 때의 그런 용역이다. 그런 미술 실천의 최신 공정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을의 을의 역할을 하는 노동자들의 숙련이나 솜씨를 저렴하게 착취한다. 그에 더해 주변에 있는 미술과 관련한 출판, 홍보, 광고, 이벤트 등에 속해 일하는 비정규직, 임시직에 속한 사람들까지 셈에 넣는다면, 이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모두 어느 작가와 나눈 대화에서 들었던 것처럼 모두 “미술 생산자”이다. 그러나 그런 미술생산자의 세계와 미술 착취자의 세계를 분할함으로써 우리는 자본주의의 내적 적대를 말하는 것처럼 미술적 실천과 제도 내부의 적대에 관해서 말하는 것일까.

노동을 발견함으로써 예술에 관한 사유는 전환을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을 이 자리에서 자세히 복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에서 예술가 조합의 탄생과 투쟁이든 1970년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한 미술노동자연합의 활동이든 아니면 금융위기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각지에서의 미술인 노동자 노동자조합의 활동이나 프레카리아트(precariat)나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로서 예술가를 자리매김하려는 금융위기 이후에 목격한 다양한 투쟁이든 우리는 도처에서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반성하며 비롯된 투쟁과 성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예술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기괴한 논리를 분쇄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 예술가를 발견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예술가는 영국, 미국, 그리스,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의 거리에서 긴축이라는 슬로건 아래 이뤄지는 공적 서비스의 축소, 연금의 축소에 반대하는 시위의 선두에 서고 무료 교육을 요구하며 예술가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라 요구한다. 기업가와 부자들로 구성된 이사회에 맡겨진 미술관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취업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문을 닫으려는 예술교육기관을 지킬 뿐 아니라 공짜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한다.
유럽과 남미에서 벌어진 노동과 예술의 관계를 둘러싼 투쟁, 논쟁, 전시, 보고, 선전 등이 전해주는 증언과 토론으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한 활동을 전해주는 웹사이트나 저널, 출판물은 이제 차고 넘친다. 우리는 그 소식을 들으며 분개하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예술대학에 다니는 학생이거나 인턴, 아르바이트생, 아웃소싱 디자이너, 비정규직 큐레이터이거나 강사 등이다. 그들의 말을 간추리자면 이런 것일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예술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예술가들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미술관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생각하고, 체험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우리는 겸손하고 소박하게 하나의 전환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러나 그러한 전환은 그와 대조되는 하나의 풍경과 대조하면, 이미 앞에서 인용한 칼럼에서도 말했듯이, 그로테스크한 이율배반을 깨닫게 한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금융화이기도 하지만 그 못잖게 노골적인 면모 가운데 하는 만물의 미학화의 시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예술이 노동이라고 말할 때, 저 편에서는 모든 자본은 예술이라고 말한다. 기호자본주의, 인지자본주의, 미적 경제, 체험의 경제, 비물질적 경제, 상징경제 운운은 더 이상 비즈니스스쿨의 경영학 교재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중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의 미래를 예측한다고 하는 경영 구루들만 그런 신탁에 가까운 예언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를 판단하기 위해 불안에 떠는 투자자들을 위한 자본의 점성술사로 자처한다면, 반대의 편에서도 역시 그런 예언자들을 찾으려는 욕망이 있다. 조직화된 노동자, 그들을 대표한다고 믿었던 강력한 급진 정당, 그리고 이를 통해 구성되던 상대적으로 윤곽이 뚜렷하던 정치적 대립의 공간. 이런 것들이 모두 소멸되고 난 이후 우리는 참담함이 더해 가는 세계를 반추하며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려 한다.
따라서 이미 공산주의의 모습을 한 자본주의라는 희극적인 발언에서부터 온갖 주장이 난무한다. 아무튼 우리는 노동이 없는 기업가적인 영혼으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실현하는 개인적인 인물들로 가득한 기이한 세계로 자신을 재현하는 자본주의와 만나고 있다. 그 세계에서 노동자는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일꾼이기보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인재로 자신을 식별한다. 자신의 역량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스스로 성격검사에서부터 외모관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어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의 말처럼 자신의 인적 자본에 투자하고 그것을 통해 이윤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의 편에서는 반대의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노동을 지우는 이들과 달리 시큼한 현실적 직접성으로 가득찬 노동의 초상을 그린다. 자본은 노동이란 것은 없고 자본만이 있다고 강변하는데 한술 더 떠 그 자본가란 인물은 모두 예술가와 같은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적 정신, 창의적인 감각으로 사업을 개척한다고 방자하게 떠든다. 그리고 그런 일의 성취에서 보람을 느끼고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된다고 능청맞게 수다를 떨며 호객을 한다. 그렇다면 경제는 곧 예술이라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경제적 이데올로기, 미학화된 경제의 세계라는 헛소리에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을까. 하물며 가장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린 청년 세대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이에 저항할 것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가난과 비참, 불안정한 삶을 역설한다는 것은 썩 좋은 대안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는 나름의 대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리스크가 높은 삶을 살아가야하는 예술인들의 생애주기에 맞춤된 능력개발형 복지를 제공하며, 공동체 기반의 자활적인 구제와 돌봄을 위해 예술 기반의 사회적 기업의 창업을 지원하며… 물론 이는 조금이라도 눈여겨 본 이들이라면 다들 훤히 알고 있는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빈곤과 비참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자유주의적인 복지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쏘다니고 지원서를 작성하고 고배를 마시며 욕설을 퍼부으며 술을 마신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예술가의 활동을 노동으로 긍정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십 년 전쯤 어느 방송사의 구성작가로 일하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보상을 조정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했을 때, 들었던 대답이 기억난다. 법원은 그 작가들이 “독립도급업자”이기 때문에 노동자일 수 없다고 판결하여 그들이 단체교섭을 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미술가? 물론 그들은 당연히 독립도급업자 가운데 독립도급업자이고, 최악의 자기고용 혹은 자기착취자이며,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가진 인적 자본가이며 동시에 프롤레타리아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프레카리아트이다. 그러므로 예술 행위가 노동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노동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문제는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투쟁에서 우리가 전적으로 패배하였고 그것을 전환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아티스트 피”나 “사례비”도 중요하다. 작품과 전시만 있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가 행한 노고와 생존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고약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영업자인 독립도급업자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다면 이는 노동이란 정체성과 동일시한 결과와는 무관하다. 예술가를 노동하는 주체로 조직하기 위해 우리는 더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편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절대 개인적인 노동이 아니다. 노동은 기계제 대공업 이후이든 아니면 자동화 이후이든 노동의 분업과 협업을 통해 조직된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인 노동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가치를 자본은 착취한다. 세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자원을 자신의 소유로 만듦으로써 이윤을 얻는데 혈안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횡포는 덤이다. 아무튼 집합적 노동으로서만 존재하고 그를 통해서만 노동으로서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었던 노동자를 생각하면, 예술가가 노동자란 발언은 허풍일 수 있다. 저자성(authorship)에 대한 숱한 반문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개인으로서 존재하며 지금의 미술제도에서는 브랜드화된 미술가의 이름을 달고 더욱 개인화된 주체로 완고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주체성의 모델로서 활약한다. 그것에 더욱 집요하게 저항하지 않은 채 가난을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술가들이 집합적으로 더욱이 꽤 괜찮은 삶의 조건을 누리는 방식은 사회적으로 조직된 힘과 그것을 제도화하는 투쟁을 통해 오직 가능하다. 그러나 스타 미술가가 미술관의 전속이 되어 꽤 괜찮은 수입을 얻고 주요 전시의 초대 작가가 되며 요트나 고급시계처럼 미술품을 수집하는 투자자나 수집가들을 위한 파티에서 사교에 힘쓸 때, 그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유명한 작가들을 뒤좇고, <아트스타코리아>란 미술판 “슈스케”가 큰 관심사가 되며 많은 이들이 그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환상을 품을 때, 예술은 온전히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착취 이데올로기의 알리바이로서 기여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리고 질시, 경쟁, 탐욕과 죄책감 따위가 뒤엉킨 예술가들의 감정적 복마전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가 사회적 주체의 낯이 듯이 어떻게 예술가들은 자신을 집합적 주체로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공동의 삶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건너뛴 채 경솔하게 예술가도 노동자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 밖에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들어 예술가는 노동자라는 선언이 불충분함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학기에 취업률 향상에 전력투구하라는 교육부의 협박에 겁에 질린 학교의 요구로 미술 전공 학생들을 위한 의무적인 교과로 <직업기초능력>이라는 기상천외한 과목이 생겼다. 직업으로서의 미술가, 그 직업을 위한 기초 능력 터득하기. 이 난센스에 가까운 수업을 떠맡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것이냐는 주변의 걱정스런 질문에 이렇게 짓궂게 답하곤 했다. 당연히 졸업 후 예술가로 살기 위해서는 “투잡”을 뛰어야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알바몬”을 휴대전화에 깔고 알바 찾기 배우기, 또 예술가로 먹고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므로 구세주인 제2금융권인 산와머니나 러시앤캐시, 바빌론에서 대출 노하우 익히기 등등을 공부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당연히 빚을 갚지 못할 것이므로 채권추심원이 들이닥쳐 장기포기각서를 쓰라고 공갈칠 것에 대비해 자위용 호신술을 익힐 수 있도록 무술 사범을 초대해 무공 익히기 등으로 수업을 채울 것이라고 지껄였다. 농담이었지만 그렇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수업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질겁할 일이었다. 예술가로서 먹고 살기란 주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들 사정을 뻔히 알고 있고 더욱이 그것이 칙칙하고 우울하기 짝이 주제인 터에, 미래의 불행과 불안을 그것도 15주 동안 곱씹는 일은 곤혹스럽다 못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수업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얼추 나는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이제 갓 미술대학에 진학한 꿈 많은 청춘들에게 당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청춘의 착취자들” 밖에 없다는 빤한 사실을 서로에게 주지시키는 것보다는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꼼꼼히 따져보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술은 직업일 수 있을까, 예술가들이 일을 한다면 그것은 어떤 능력인가, 예술가들에게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무엇에 대한 보상이어야 하는가, 예술가들의 생존권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장되어야 마땅한가, 등등을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도록 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몇 가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초청 강의와 워크숍을 하려 작정했다. 자본주의에 관한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최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올 해의 최저임금을 조사하도록 하고 자신의 알바노동의 권리를 지키려면 “매년 최저임금을 몸에 문신으로 새겨라.”고 윽박질렀듯이, 이 수업에서도 제자들을 다그칠 작정이었다.
미술가들을 위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볼 것, 예술인복지법에서 보장한 권리를 누리고 그 법률이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조건(5년간의 예술활동 증명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전술을 찾아볼 것, 재료비와 작품 값은 있지만 예술가는 부재하는 전시기관의 관행에 굴복하지 않는 방안을 찾아낼 것, 그리고 그 밖의 것들. 그러나 노동자와 노동법을 함께 공부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자격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는 것처럼, 예술가의 생존을 외면하는 미술계의 고질적인 “갑”에 대한 불평과 조롱만으로는 작가의 삶은 나아질 것이 없다. 그 투쟁은 생각만큼 급진적이지 못하고 빈약하며 무엇보다 동시대 미술을 둘러싼 우리의 토론을 내부로부터 잠식한다. 나는 “미술생산자모임”이 예술이란 이름으로 “삥 뜯긴” 피해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이 처한 심미적, 정치적 쟁점을 생산하는 예술가 활동가의 조직이 되길 원한다. 그를 위해 우리가 제기한 예술-노동-자본-신자유주의의 관계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나는 부러 어깃장을 부리기 위해 아방가르드의 주요한 주장 가운데 하나인 노동의 타자로서의 예술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물론 여기에서의 노동이란 경제이고 예술이란 자본제적 경제의 타자이다. 도구적이고 동일성 만을 좇는 자본제적 합리성에 맞서 예술에서 자본주의의 내적 비판의 잠재성을 찾는 모더니즘 비판의 미학은, 물론 시대착오적이고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예술은 노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아방가르드의 주장 또한 도착적이기는 매일반이다. 노동과 예술의 분화야말로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간주하고 이를 다시 결합하는 것에서, 삶을 미학화하고 미적인 것을 삶과 통합하고자 했던 급진적인 이상은, 유희의 정신이 노동의 정신이어야 한다고 설파하는 경영 지침서들로 둔갑하여 현실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이래 예술은 마치 자기동일성을 이러한 경제와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고 정의하려 시도하고자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만큼 노동과 예술은 예술적 실천의 정치학을 좌우하는 쟁점이다. 그러나 이를 당장 다시 곱씹어보는 자리는 아일 것이다(짧은 글을 쓰느라 거친 부분이 적지 않고 또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도 크지만, 일단 신현진이 <똑똑> 사이트에 쓴 “사례비만 받을까 인건비도 받을 것인가”란 글을 일단 참조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예술은 무엇으로서 세계와 대적하는가. 노동의 타자가 아니라면 자신은 어떻게 자본주의, 아니 이 용어가 너무 거북하다면 비참한 세계를 거스르는 타자로서 자신을 식별할 수 있을까. 부동산, 금과 더불어 가장 값비싼 투자가치의 자산이 되어버린 미술, 명품 핸드백에서 동네 시장의 명물 곰보빵과 빈대떡까지 모든 것을 모아 파는 백화점이 담론적인 매개를 통해 모든 상품을 동일화하듯이 세계적인 거장에서부터 길거리 아티스트까지 모두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 모아놓으며 예술이란 오직 비평적인 담론과 큐레이터 노트를 통해 하나의 대상으로 전시될 수 있다고 미술관은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스스로 급진적이고 정치적이라고 자처하는 예술가들이 갑자기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리인처럼 쉼 없이 분주하게 사회학적, 인류학적 상상력을 동원하며 관계의 미학과 사회참여예술, 공동체미술 따위의 이름으로 정신없이 부지런을 떨 때, 실은 이는 동시대 미술이 처한 무능력과 불임성을 부정하는 몸짓 아닐까. 나는 그것이 미술가, 큐레이터, 비평가의 수다스러운 부지런한 몸짓을 통해 예술이 자본주의와 대적할 수 있는 잠재성을 상상할 수 없다는 무력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수동적인 부정의 몸짓이라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어둡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낼 것이며, 지도를 그릴 것이고, 길을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변죽만 올리는 글이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이 크지만,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새삼 깨달은 질문들을 이후 더욱 밀고나갈 작정이다. 토론을 위해 쓴 글이니, 나로서는 뜨거운 토론보다 더 좋은 대꾸와 환대가 없다. 입을 열고 말을 건네주시길.
_미술생산자모임의 토론을 위해 기고한 글

3 thoughts on “노동하는 예술, 투쟁하는 예술”

  1.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화면으로 읽은 탓에 꼼꼼히 새기지는 못했지만, 약간 씁쓸한 마음을 담아 글 잘 읽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전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은 아직 10일 저녁인데 11일자로 올라온 글을 읽으니 이상하네요… 당장 제가 이 글에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없지만, 선생님 바람대로 여러 말과 많은 생각을 낳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요…

  2. 이런 여기서 안부를 듣는군요. 이제 제법 프랑스 생활은 적응하셨나요? 법률적 신혼 생활은 어떠신지? 저야 여전히 꼴통이지요. 분위기상으로 대세와 늘 어긋나는 생각을 품는 것은 나쁜 기질인데, 어쩌다보니 그게 타성이라 할 만한 것이 되었네요. 자주 안부 알려줘요~ 물론 건강과 안녕은 기본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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