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섹슈얼, 마초 이미지에서 탈출한 포스트모던 영웅들에 대한 유감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죄다 게이”라며 절망하던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나날이 희소식(?)이 찾아들고 있다. 이성애자 남성들이 한층 변신하고 있다지 않은가. 게이 웹사이트에 가면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상대 찾기” 광고. “좋아하는 타입-일반틱한 남자(일반이란 이성애자 남성, 이반이란 동성애자 남성을 각각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로는 “straight acting gay”. 그러나 “이반틱한 이성애자 남자”를 쫓는 이성애자 여성을 위해 준비된 새로운 남성성의 “트렌드”가 목하 확산 중이다. 심지어 이성애자(straight)와 게이(gay)를 합성한 스트레이(the Strays)란 신조어도 나왔단다. 즉 “gay-acting-straight men”이다. 우리말로 “이반틱한 일반 남자”? 이제 게이처럼 사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믿는 이성애자 남성들이 뜨고 있다.

요 얼마간 국내 일간지들이 다투어 “화장하는 남자”들에 관한 기사를 싣고 있다. 반신반의하며 컬러 로션을 내놓았다 대박을 터뜨렸다는 어느 화장품 회사의 성공담이나, 수능이 끝난 여고생을 대상으로 한 화장 강좌가 이제 남고생들에게 확대되고 있다는 이야기나, 강남의 쿨한 바나 클럽을 전전하며 직장인을 대상으로 스킨 케어와 메이크업 강좌를 하고 고객을 확보하는 새로운 마케팅이 재미를 본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에 등장한다. 어느 일간지의 설문조사는 아예 한국의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네 가지의 남성 유형을 제시하고 선택하는 설문조사를 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선택 대상에는 “짙은 화장을 한 남자”, “알 듯 말 듯 화장을 한 남자”, “그냥 평범한 단정한 남자”, “터프한 남자” 등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수위는? “알 듯 말 듯 화장을 한 남자”였다.
얼마 전부터 우리 시대의 가장 쿨한 성문화의 트렌드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다. 데이빗 베컴과 안정환은 아마 가장 유명한 메트로섹슈얼의 아이콘일 것이다. 스파이스걸즈 출신의 아내 “포시 스파이스”의 메니큐어를 칠하고, 꽁지머리를 묶고, 치마를 걸치는 베컴의 이미지는 더 이상 거북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그것은 쿨할 뿐이다. 안정환? 역시 그의 수려하고 세련된 외모는 질투의 대상이다. 그의 헤어스타일, 피부, 의상 등은 이성애자 남자들이 질시하는 대상이다. 빌 클린턴, 브래드 피트, 자니 뎁, 마키 마크 월버그, 조지 클루니, 주드 로, 이완 맥그리거 등등. 이 모든 스타들의 공통점은 한가지, 바로 메트로섹슈얼이란 점이다.
그 희한한 용어를 발명한 문화평론가 마크 심슨이 정의하는 메트로섹슈얼은 이렇다. “대도시에 살거나 일하며 가처분 소득이 많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GQ]같은 패션잡지나 아니면 게이 바에서 볼 수 있었지만 1990년대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음” 운운. 결국 메트로섹슈얼은 남녀 구분이 더 이상 의무와 규범의 압력에 짓눌린 곳에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성형외과와 다이어트 카운슬러와 헬스클럽, 패션 잡지, 인테리어, 요리 등등. 이 모든 곳에서 남성은 있고, 그들은 남성성을 변화무쌍한 라이프스타일로 변조할 수 있는 재주를 지녔다. 메트로섹슈얼은 이성애적 남성성의 규범,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마초”적인 남성의 이미지로부터 탈출한 포스트모던 영웅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녀유별의 절대적 주술에서 헤어난 이 쿨한 남성들을 쌍수 들어 환영할 것인가.
메트로섹슈얼은 우리 시대의 성별의 정치학을 라이프스타일의 정치학으로 전락시키는, 신종 퇴행의 전략이다. 부드럽고 세련되며 분방한 “젠더의 예술가”인 메트로섹슈얼이 자신의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반성한다지만, 그들이 반성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반성하는 위치 자체의 남성이라는 규정이다. 자신의 남성성을 반성하는 그 남성의 위치란 대관절 무엇인가. 물론 그 위치는 “그것은 네 남성성을 마음껏 변형시켜라. 하지만 그것이 바로 네 남성의 주체성 안에서 이뤄지도록 하라”는 명령에서 영원히 거울 반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캔 맥주를 훌쩍거리며 프로야구 경기나 즐기고, 헤진 청바지에 싸구려 골프 셔츠를 걸친 채 방바닥을 뒹구는 마초적인 이성애자 남성보다 훨씬 “교활한” 남성이다.
진부한 이성애자 남성은 적어도 자신의 남성이란 성별적 주체성을 “타율적 명령”으로 인식하는 건전한 판단을 지니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자신의 남성적 주체성이 바로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벗어난 외부로터의 강제이며, 사회적 명령임을 간파하고 있다. 그러나 메트로섹슈얼에게 남성/여성이란 오직 우리가 마음껏 스스로의 연출을 통해 “각색”할 수 있고, 쇼핑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며, 상품적 스펙터클이다. 잘 나가는 모든 마케팅 서적은 21세기의 새로운 “트렌드”를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트렌드 예측의 노스트라다무스이자 21세기 소비자본주의의 선지자라는 페이스 팝콘은 21세기의 “트렌드”는 “여성적 사고”이자 “남성해방”이라고 주장한다.
역시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메트로섹슈얼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고, 여성리더십, 여성적 가치의 활용은 경제학, 경영학의 핵심적인 패러다임이 되었다. 물론 우리는 놀라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는 이런 포스트모던한 “계몽적 각성” 혹은 얼빠진 착란에 빠져야 하는 것이다. 참회는 시작되었다. “얼마나 우리는 어리석었는가. 바로 가부장제가 바로 “트렌드”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토록 육중하게 우리를 짓누르던 성별이 바로 “라이프스타일”이었다는 것을 몰랐다니.“ 결국 메트로섹슈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자연스러운 절대적 한계로 강요하고, 남성과 여성이란 언제나 우리의 삶이 기원하는 근원적인 기반으로 종용하는 성별의 테크놀로지이란 것이다. 메트로섹슈얼? 아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쾌적하게 우리를 찜쪄먹는 성의 보수적 이데올로그일 뿐이다. 결국 그들은 ”리트로섹슈얼(retrosexual)“이다.

One thought on “메트로섹슈얼, 마초 이미지에서 탈출한 포스트모던 영웅들에 대한 유감”

  1. 이게 정말 교활한 남성에 대한 경계인지, 일반틱이 촌스러움과 후짐으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중년 게이의 안타까움인지 좀 헷갈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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