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 신바람, 성공하는 사람을 위한 7가지 습관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노동과 문화

더 이상 기업가는 제조품을 만들어내는 업자가 아니라 연출가이며, 이야기꾼이고, 행위예술의 감독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 상식을 비웃기도 어려운 것이 이미 일의 강박관념에 휩싸인 채, “라꾸라꾸” 간이침대를 제 사무실에 들여놓고, 오피스텔 지하층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씹으며, 아직도 대박과 히트의 꿈을 꾸는 미래의 CEO들이 주변엔 즐비하다. 그들은 일에 환장해 있고, 일이 즐거우며, 무엇보다 일과 결혼하거나 연애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에의 몰입을 병리적 현상으로 쉽게 진단하며, 이를 그저 “노동중독”이라고 안이하게 부를 수만도 없다. 노동을 향한 강박관념, 그 열렬한 편집증적인 상태를 탓하기에는 그것을 심리적 병리 이상으로 분석하려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매그놀리아]는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음란한 메시지를 훌륭하게 상연한다. 알다시피 영화 [매그놀리아]의 주인공은 포스트모던 자본주의를 위한 리더십의 부흥사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창의성과 개성, 능력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목자이다. 그는 근면과 자조, 저축과 절제를 설교하던 근대 초기의 칼빈주의적 목사의 목소리를 21세기에 새로운 판본으로 재연하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소소한 가족적 가치의 파수꾼으로 전락한 교회에 비해, 위성 중계되는 경영 세미나와 부흥회야말로 우리 시대의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정도이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탐 크루즈는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낙오자들을 향해 선동한다. 그는 마음껏 자신들이 기죽어 지내며 외치지 못한 자신의 욕망의 목소리를 내뱉으라고 부추기고, 싸구려 히피주의와 동양철학 그리고 영성주의가 뒤범벅된 뉴에이지적 리더십 세미나를 주재한다.
영화 [매그놀리아]가 음울하게 재현하는 포스트모던 노동 주체의 모습은 이미 남한 자본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저 유명한 “신바람 건강법”이 히트를 쳤던 때가 IMF 위기를 전후한 시절이었던가. 그가 제시한 신바람 건강법은 언제 어느 때나 바보같은 자동인형의 모습으로 언제나 조증상태에 빠진 채 자신의 일과 행위를 쾌락으로 즐기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부터 우리의 독서 시장을 평정한 책들 역시 “즐거운 일”, 어느 경영학자의 말대로라면 “힘든 재미”로서의 일을 위한 복음서들이었다.
놀랍게도 한국과 대만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갔다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을 위한 7가지 습관]을 생각해보자.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구루(guru)인 스티브 코비는 일을 명료하게 정의되고 완수되어야할 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습관을 잘 조직하는 사람이라고 역설한다. 탈근대 자본주의의 영웅은 관료화된 노동조직에서 불굴의 에너지를 발휘한 소비에트적인 노동 영웅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노동 영웅은 바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이를테면 경영학 서적들의 클리세를 빌리자면, 놀이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들처럼, 자신의 일을 놀이의 즐거움 속에 심취한 노동자이다. 그것은 습관이며 기질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평소의 반복된 주장을 빌려쓰자면, 왕년의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심적 경제는 신경증이고,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심적 경제는 도착이다. 이를 풀이하자면 이럴 것이다. 산업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징화하려 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과업, 한정된 조직과 활동 따위로 직조된 포드주의적 공장에서의 노동자의 특성은 히스테리에 휩싸인 사람이다. 그 노동자는 자신을 규정하는 상징적 명령, 즉 자본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에서 그러한 명령의 주체 – 즉 사장, 선생님, 아버지 등 -는 없다. 따라서 질서와 규율, 명령 따위로 직조된 상징적 질서를 대신하는 것은 나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욕망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주체가 아닌 한 높은 가치의 활동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은 포스트모던 경영학, 교육학 등의 핵심적인 슬로건이다.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를 실현하고, 나의 개성을 발휘하며, 나의 잠재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경증적인 자본주의가 아니라 도착적인 자본주의이다. 도착의 결정적인 특성이 바로 자신을 상징적 명령의 자리에 내세우는 것이라면, 그것의 세속적인 표현은 포스트모던 경영의 담론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 시대의 비판적 문화 담론의 어떤 부분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하나의 팁. 일급 문화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톰 피터스와 피터 드러커 그리고 스티브 코비를 읽어라. 그리고 도착적인 자본주의와 죽도록 즐겁게 춤을 추어라. 탈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희한한 무도병의 희생자고 되고 싶다면.

2 thoughts on “매그놀리아, 신바람, 성공하는 사람을 위한 7가지 습관”

  1. 자신의 개성과 잠재성을 도착적으로 실현하며 희열을 느끼는게 문제가 되나요?

  2. 낭만적인 개인주의자들의 삶이 반란의 삶이었던 20세기 초엽이라면 사정이 다르겠지요. 그렇지만 개성 추구가 가장 획일적이고 표준적인 삶을 사는 한가지 방식이 되어버린 역설적인 명령의 시대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되는 정도가 아니겠지요. 그것은 노예가 되는 자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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