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 그래 너 잘났다.

철호님, 역시 전문가라 내공이 다르시네요 ^^
사실, 어제 데이터베이스에 무슨 행패를 부렸다고 오늘 그 데이터베이스 덕에 꼭두부터 난리부르스를 췄습니다. 이 비정규직 분필장사가 겨울방학에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12월이 오면 전 무조건 죽었다, 춘삼월까지 버티자 하는 각오로 삽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마침 쌀이 떨어져 쌀도 좀 사고 떨어진 집안의 물건들을 산다고 인터넷 쇼핑에서 결재를 하려는데 웬걸 사용불가지 않습니까. 께름직해서 수중에 있는 카드를 죄다 입력해보았는데 모두 같다는 겁니다. 이런 낭패가. 마침 업무시간전이라 내내 무슨 영문일까 전전긍긍하다 9시 땡하고 종치자마자 날쌔게 전화통을 붙잡고 법석을 떨었지요. 영문인 즉슨 제가 쓰지 않아 잘 모르고 있던 신용카드 하나가 늦게 결제가 되는 바람에 그 카드 사에서 냉큼 공동망인지 뭔지에 정보를 올렸고 일제히 모든 신용카드사들이 사용을 중지했다는 겁니다. 데이터베이스의 STRIKE BACK! 이었지요. 그 덕에 아침부터 법석을 떨고, – 찜찜하고 기분나쁘고 처량하고 분하고 뭐 그런 것 때문이었지만 – 결국 지들끼리 팩스를 주고받고선 하나둘씩 고객님, 어쩌구 하는 알랑방귀를 껴대는 예쁜 목소리로 마음껏 이용하시라고 기별을 해왔습니다. 큰 일이지요. 신용카드가 없으면 신용으로 외상 밥을 먹으며 긴긴 겨울을 보내야하는 저에겐 날벼락인데. 여튼 오늘 혼쫄이 났고, 결국은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샛길로 가기 시작해서 제 앞길을 가늠하지 못한 처지에 대한 분개와 반성에서부터 괜한 처량한 기분까지 왔다갔다하며 울렁대다,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아, 씨팔, 별게 다 속을 썩이네. 뭐, 그런 식으로 털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심하게 무안하고 그렇데요 -.-;; 철호님, 이야기를 읽고, 다시 어제 끄적인 글을 떠올리며, 중언부언 적어보지요.
데이터베이스, 더 그럴 듯하게 시정이 넘치는 말로 아카이브라고도 부르는 이 지식의 저장고는 사실 새삼스럴 것도 없지요. 가끔 저는 자본주의의 관료제를 이야기할 때 그것의 건축학의 핵심은 캐비닛이라고 곧잘 생각하곤 합니다. “경찰서, 아니 가까운 동사무소에 가보라, 거기에 무엇이 있나. 물론 그곳엔 오직 캐비닛과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있지 않는가.” 캐비닛을 지키는 사람이 앉아 기록된 문서를 발급하고 등록하며 확인하는 일을 하지요.
이 카프카적이라고 해야할 캐비닛의 공간, 캐비닛을 지키는 사람의 형상은 다른 이미지로 꾸역꾸역 전사됩니다. 이를테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적 변태들의 이름을 발명한 크라프트-에빙이 생각납니다. 그가 바이마르 시대의 대도시에서 – 베를린이거나 비엔나였겠지요 – 경찰이 수집한 방대한 문서를 섭렵하며 쓴 책이 저 유명한 <성의 정신병리>이고 그는 그 책을 쓰면서 사디스트, 마조히스트같은 수많은 이상성욕자들의 이름을 발명하고 그들을 분류했지요(그런 점에서 저는 이 박학한 문학적 독자였던 에빙 덕에 우리는 투박하지 않고 우아한 사드주의자같은 멋진 이름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가 기계적으로 그 행위를 서술하는 패기애자, 맞기애자 등으로 이름을 작명했다면 얼마나 시시했을까요).
어쨌든 범죄를 성욕과 연결하는 일을 하였을 때, 그는 물론 범죄를 행위의 결과도 벌어진 행위의 객관성도 아닌 행위자의 내면의 세계와 연결하는 독특한 근대적 주관성의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참여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 프리츠 랑의 M은 그런 점에서 동시대의 크라프트-에빙을 염두에 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것의 포스트모던 버전은 당연히 그 모든 것의 압권이라할 “양들의 침묵”이겠고요(아니 그것의 선구는 당연히 히치콕의 “싸이코”겠지만서두) 여튼 변태들은 범죄자라는 그 맹랑한 근대적인 도식 안에는 문서철이 끼어있지요. 하긴 모든 영화에서 범죄자들을 캐릭터화하는 결정적인 서사는 범죄자의 신원을 기록한 문서의 발견과 조회에 있지 않습니까? 헐리우드 영화에서 거의 클리세가 되어있는~!
어쨌거나 서류 혹은 문서의 세계는 결국 이 모든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우울하게 기억하는 사건들, 이를테면 IBM의 최대의 고객은 나치였다는 것, 수많은 유태인들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IBM의 데이터 처리 장치를 구입함으로써 IBM은 기사회생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 미국의 컴퓨터 혹은 정보처리장치의 발전은 방대한 세금 처리를 위해 필요했다는 것 등을 하나씩 떠올리면 우리는 20세기의 역사를 데이터베이스의 역사 만으로도 백과전서 만큼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겁니다.
철호님이 말한 대로 고객관계관리에서 최근의 NEIS에 이르기까지 거의 물샐틈없는 데이터베이스가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 수십년간의 데이터베이스가 빅 브라더식의 정보감옥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전자감시사회라는 이름으로 데이터베이스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의 지갑마다 들어있는 수많은 포인트카드, 그리고 그 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할 오케이 캐시백은 정말 섬뜩하지 않습니까. 정보를 긁어모으고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스스로 정보가 된다는 점에서 전연 다른 논리를 통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것이 소비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지요. 소비를 예상해서 생산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생산과 항상 동시적인 자본주의, 가치의 실현을 위해 시장에서 모험을 치러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산자이며 소비자인 자본, 혹은 거꾸로 스스로 소비를 하는 순간 이미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버린 노동자, 뭐 이런 그림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저는 빅 브라더 식의 생각은 한물이 가도 한참 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결정적인 점은 신원 혹은 정체성과 데이터베이스의 관계가 전혀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데이터베이스가 아무개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증거 혹은 보증이라면 (예를 들어 주민증 좀 봅시다, 이런 것은 네가 누구인가를 관료제적으로 번역하는 지식의 테크닉이라고 하겠지요) 지금은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과거의 데이터베이스가 “저는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것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지금의 데이터베이스는 네가 누구이건 일 없어,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냥 네 삶의 부분이야, 이를테면 네가 어떤 놈이라고 네 스스로 믿고 사람들이 생각하건 상관없어, 내가 알고싶은 건 네 신용등급이야(은행), 네 병력이야(보험사), 네 구매횟수야(백화점), 네 탑승회수야(항공사), 네 토익점수야(기업) 등등으로 이어지죠. 저는 이 새로운 데이터베이스가 갖는 획기적인 특성이 바로 이 점에 있다고 봅니다. 이를 굳이 요즘의 철학자들이 하는 말을 빌어 풀이하자면, 이를테면 네그리같은 사람이 <제국>에서 몇몇의 생각을 따오면서 했던 말, 개인(In-Dividual-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것, 즉 나)에서 Dividual(끊임없이 쪼개지고 나눠질 수 있는 추상적인 삶)로의 이행이란 것에 정확히 대응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이는 데이터베이스가 갖는 객관성이 두드러지면 두드러질수록 우리가 가지게 되는 반동, “그래, 나는 네 녀석들이 수집한 정보와 기준에 따라 그렇게 측정되고 지표화되고 랭크되겠지. 그렇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겐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지”라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거리가 사라졌지 않을까요? 그에 관한 기록을 보고 범죄자인줄 알고 만났는데 그에게서 어떤 천사의 그림자를 보고 감격하는 사람, 그런 영화들이 우리 곁엔 얼마나 많았습니까. 저는 이것이 아무리 나를 데이터화하여도 나는 데이터가 될 수 없는, 언제나 그걸 초과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의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환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이런 퉁명스런 답을 듣겠지요. “그래, 너 잘났다. 그런데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야. 네가 아무리 훌륭한 엔지니어이고 그래서 설령 몇 년 뒤 대박을 터뜨리는 벤처사업가가 된다고 해도, 그런 너의 진면목은 내게 관심이 없어. 내가 믿는 건 오직 네 은행 잔고이고 신용카드 사용실적이야”. 그리고 데이터베이스가 진정 승리한 시대가 왔겠지요. 데이터가 가리키는 대상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한 데이터, 데이터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으로서의 나와는 무관한 채, 제 스스로 살아가는 시대, 그것이 데이터베이스의 세계이겠지요 ..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떠든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

2 thoughts on “dB, 그래 너 잘났다.”

  1. 아휴… 정말 더러운 꼴 당하셨네요.
    마치 형님도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주인공이 되신 기분이셨겠어요.
    아 글구 부끄럽습니다. 원래 그냥 보고 조용히 지나가려했는데
    그만 또 흥분해버리고 말았습니돠…
    오늘 제가 하고 있는 일을 깊이 생각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2. 정말 당혹스러우셨겠어요.–: 데이터베이스 오류는 흔한 일이지만 그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되는 개인에겐 너무 답답한 노릇이죠.준공무원이었을 때 국정감사마다 캐비넷내의 묵은 문서들 뒤지고 복사하고 위조하는 게 일이었어요.실상 아무 소용없는 짓거리들이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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