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사물이 될 때, 사진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

Bob Dylan and The Band – Like A Rolling Stone

찬 비 맞으며 눈물만 흘리고/하얀 눈 맞으며 아픈 맘 달래는 바윗돌/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저 하늘 끝에서 이 세상 웃어보자
(정오차/바윗돌의 노랫말 중에서)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Bob Dylan, Lke a rolling stone의 노랫말 중에서)

1.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철학적, 미학적 주제는 존재 혹은 사물인 듯 보인다. 그것은 주체/객체라는 몇 세기 동안 우리를 지배한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이를테면 여기에 돌덩이가 있다. 그것은 사물인가, 객체인가, 존재인가, 물어보자. 그 돌은 터키에서 수입된 값비싼 화강암이거나 혹은 이태리에서 가져온 질 좋은 대리석일 수도 있다.(나는 언젠가 1970년대에 한국의 이름난 조각가들이 최상의 재료로 작업을 하려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 그곳의 채석장에서 작업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건축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조각을 위한 재료이든, 그 암석들은 그를 다루고 조작하려는 인간, 즉 주체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그 돌들은 무엇이든 인간-주체가 대면하는 대상-객체로 간주된다. 그것은 자신을 주관하고 변용하는 주체와 짝을 이룬다. 혹은 그것에 대(對)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돌을 존재(being)라고 명명하는 순간 사태는 완연히 달라진다. 존재란 개념은 주체와 객체로 분할되기 이전의 사유, 철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바를 좇자면 칸트적인 비판철학의 사유에 의해 추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존재, 존재론이란 개념을 끌어들일 때 그것은 비판철학이라는 독일관념론과 그 이후의 철학, 흔히 칸트-헤겔-마르크스 등으로 이어지는 철학을 은밀히 비토하거나 거부한다. 이를테면 하이데거로부터 시작된 20세기 초반의 존재론적 전환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전환은 딱히 과거로의 회귀, 근대 이전의 ‘전-비판적(pre-critical)’ 철학으로 되돌아가려는 몸짓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근대적 사유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후-비판적(post-critical) 철학과 예술이론을 설립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주체/객체냐 존재냐 하는 논쟁은 철학적 사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소동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사고하고 체험하는 방식에 도사리고 있는 영속적인 긴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비판철학과 존재론은 근대 세계, 극히 간략하게 말해 부르주아 사회가 등장한 이후 철학은 무엇인가에 관련된 엄청난 판돈이 걸린 내기의 주역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여기에서 다룰 여유도 없고 또 생각도 없다. 마침 돌과 그에 대한 이미지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쟁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식하고 감각하는 주관은 존재를 모른다. 주체에게 그런 것은 허무맹랑하거나 아니면 망상에 가까운 것이다. 생각하는 나/우리의 주관에 알려지지 않은 것, 즉 (인식) 대상으로서 주어지는 것 이전에 존재하는 그 무엇은 불가사의하거나 억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명명하기 위해 칸트가 마련해 둔 이름이 물 자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흥미롭게도 돌은 칸트의 철학적 사색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칸트는 지진학(seismology)의 창시자 가운데 한 명이다. 발터 벤야민은 리스본 대지진에 관련해 쓴 어린이를 위한 라디오 대본에서 독일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유럽인에게 전대미문의 충격을 주었던 그 자연 재난을 설명한다. 그리고 독일 어린이라면 몇몇은 한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칸트를 소개한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돌을 존재에서 객체로 전환시킨 발군의 이성의 지도자로서의 칸트를 알리는 희한한 시도이다.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는 작은 도시에서 평생 벗어나지 않게 될 24살의 청년 칸트는 유럽인을 경악시킨 리스본의 대지진을 규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얻은 기록과 자료를 분석한다. 그는 점액과도 같은 뜨거운 돌의 물결의 분출, 신의 분노로 알려졌던 지진을, 3백 킬로미터 두께의 지표가 움직여 다니며 생긴 결과라고 추론한다. 그렇게 그의 생각을 밝힌 책이 보편 자연사와 천체론 Universal Natural History and Theory of the Heavens이란 책이다. 이 저술을 통해 청년 칸트는 보기 좋게 인간의 과학적 이성을 실험한 셈이었던 것이다. 이는 신의 의지를 실어 나르고 우리에게 우주의 섭리와 존재의 사슬 속에 자리한 신비한 돌(-존재)을 과학적 이성이 탐색하여야 할 객체, 무엇보다 지질학(geology)과 지진학의 대상으로 변환시키는 것이었다고, 조금 허풍스레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돌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현자의 돌? 굳이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러 가지 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얼핏 생각해보면 세상의 사물 가운데 돌보다 더 집요하게 관성적인(intert) 사물은 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것을 마주하는 주체 혹은 주관성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사물로서의 성질을 고집하며 거기에 존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스본 대지진 이전의 시대에 지진에 관하여 유럽인이 생각했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돌의 물길, 용암에 관한 이미지는 이제 쇠약해진다. 그들이 돌에서 울려 퍼지는 신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 돌은 주체와 객체가 분화되기 이전의 존재였을지 모른다. 어쨌든 벤야민이 고하는 칸트와 리스본을 엄습한 돌들의 발작은 존재의 단편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 침착히 규명하고 분석해야 할 돌이다. 지질학과 지진학이라는 과학적 이성을 통해 돌은 존재에서 객체로 변용되었던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정은 다르게 돌아가는 듯 보인다. 존재론적 전환(ontological turn)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때에 따라서는 미학적 전환(aesthetical tur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다양한 ‘전환 소동’은 객체와 주체 대신에 존재와 정동(affect), 아름다움(beauty)을 만회하기 위해 애쓴다. 그것은 자신을 제외한 것들은 객체로 간주하는 근대 형이상학의 오만을 꾸짖는다. 사물이나 이미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위해 마련된 의미와 이데올로기를 발견하려 했던 주관성의 신화를 비난한다. 그들은 주체나 객체나 모두 존재의 사슬 속에 놓여있는 것들로 다루어져 마땅하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러한 존재론적 사고를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이라 부르기도 한다. 객체 위에 선 주체가 아니라 같은 높이에 나란히 펼쳐진 인간과 자연, 기계, 사물의 동등성의 평면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논쟁에 끼어 들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염중호의 <괴물의 돌>이란 전시에 입회하고 있을 뿐이다. 그 전시는 돌과 그에 관한 이미지, 사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부득이하게 오늘의 철학이나 미학 논쟁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아마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정은 매우 단순하다. 돌의 사진적 이미지는 생각보다 기괴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어리석어보이는 물음을 던져보자. 돌은 이미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사진의 피사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식도를 타고 들어오는 가는 도관에 부착된 카메라가 훑는 신체 내부부터 우주선에 탑재된 카메라가 전송하는 우주의 무한한 공백과 행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사진의 대상으로 운반된다. 그렇다면 돌은? 돌은 이미지의 대상으로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물음 앞에서 앞의 확신은 흔들리고 만다. 돌은 이미지가 되기엔 어쩐지 어색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왜 다른 것은 모두 될 수 있는데 돌은 이미지의 객체가 되어선 안 될까. 물론 돌도 사진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지질학적 분류의 목적을 위한 것이거나 석재판매상의 판매용 카탈로그 위에서 돌은 사진 이미지가 될 자격을 얻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실용적인 용도를 벗어나 마치 인물 사진이나 풍경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돌에 관한 사진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쩐지 이상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진이란 당연히 ‘이미지’로서의 사진이다. 이미지란, 한동안 사진이론이 골몰했던 것처럼,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와 같은 것이다. 사진이론은 사진이 언어 가운데 도상(icon)인지 지표(index)인지 아니면 상징(symbol)인지를 두고 집요하게 입씨름을 벌여왔다. 그렇지만 돌을 찍은 사진을 두고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엄청난 선예도와 해상도를 지닌 이미지로 제시된 현무암 조각 사진이 있다고 치자. 우리가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읽어 들이기는 어렵다. 그것은 돌을 찍은 사진-이미지라기보다는, 즉 어떤 해독되어야(decoded) 할 언어의 조각이라기보다는, 그 자체 사물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에 관하여 말을 건네는지를 이해하기보다는 그 사진 자체, 그것의 의미를 규정하는 코드나 상징적 규칙, 서사적 문법 따위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사진으로서의 사진’, 그 자체 하나의 사물로 승격된 사진을 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날카롭고 해박한 사진의 기호학자였던 롤랑 바르트가 푼크툼(punctum)이라 부른 사진의 수수께끼에 해당되는 것인지는 잘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심심찮게 마주하는 사진들이 바로 그러한 이미지-사진으로부터 사물-사진으로 향한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고 적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진을 사회적 상징으로 인식하고 논쟁하던 시절은 까마득히 먼 오래처럼 보인다. 우리는 사진에게서 사진이라는 사물을 보려는 충동은 어쩌면 언어학이나 정신분석학을 참조하며 마르크스주의적이거나 여성주의적 사진 이론과 비평이 내세웠던 주장, 즉 사진은 언어라는 테제에 대한 반동 혹은 피곤함처럼 생각될 여지도 있다. 어쩌다 사진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자리에서 나는 제법 여러 차례, 이제 사진은 기꺼이 사진 자체의 아름다움, 사진 자체의 표면이 만들어낼 수 있는 미적인 힘에 골몰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해들을 기회가 있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사진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과감한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언어-이미지로서의 사진으로부터 바야흐로 존재로서의 사진으로 향하는 길이 활짝 열린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괴물의 돌>은 이러한 경향에 어떻게 개입하려 할까. 놀라운 점은 작가는 이러한 추세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척 군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瓷器)의 표면이든 아니면 나무나 건물이든 최근 우리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놀라운 밀도와 정서적인 집중을 동원한 사진들의 은밀한 미학적 주장을 가볍게 무시한다. 그는 동시대의 사진의 좌표 가운데 하나인 사진의 현상학 같은 것은 전연 겪어본 적도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뗀다. 그리고 그는 돌을 매개로 오늘날의 문화적 형세를 헤아리고 짐작하는 듯이 시늉을 한다. 수석수집가들과 그들의 돌,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돌, 주택의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 돌들이 교차하고, 돌을 수집하는 이들의 허무맹랑한 발화들(utterances)은 돌가루로 채색된다. 그리고 작가는 숫제 마치 돌의 직물을 스스로 재구성하기라도 하겠다는 양 벽돌과 콘크리트, 도자기 잔해를 반죽해 괴석(塊石)을 만들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찍은 돌 사진의 일부는 인터넷에서 여행작가나 사진작가들이 찍은 것을 보고 직접 찾아가 찍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사진에서 어떤 존재론적 풍미를 찾으려는 사진의 추세 따위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는 사진을 정보를 얻고 버리는 비루한 이미지로 처리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 점에서 나는 <괴물의 돌>이란 작가의 전시 표제가 자꾸 <괴물의 사진>처럼 읽히곤 했다. 이는 전시에 등장할 사진과 영상이미지 그리고 그에 부가된 설치와 파운드오브젝트 등이 서술을 위한 낱낱의 단위처럼 보였던 탓이기도 하지만 다른 까닭도 있었다. 그것은 그가 돌을 둘러싼 문화적 태도와 자취를 열거하는 척 굴면서 실은 사진 이미지의 (불)가능성을 사유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보낸 작가노트에서 말하듯이 “인간과 함께 늘 거기 있는 기본물질이라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그는 곧바로 그런 생각을 비웃고 있음을 들려준다. 수석을 모으는 이들의 동호인 취미 속에 등장하는 저속하고 우스꽝스러운 돌과 마주치기도 하고 한국의 어느 곳이나 가면 목격할 수 있는 숱한 장식 석들을 보며 냉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작가의 술회가 돌의 소비를 둘러싼 문화인류학적인 보고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돌에게서 발견한 무엇을 사진의 자리에 옮겨놓는다. 채석장의 돌이 쪼개지고 운반, 보관, 수집, 마모, 장식, 기념, 방치되는 것처럼 그는 사진을 숱한 말하기의 방식 속에 배치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의 이번 개인전이 “다른 여러 명의 내가 참여한 하나의 전시”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토로한다. 여러 가지 의미를 운반하는 돌, “괴물의 돌, 이성의 돌, 종교의 돌…” 운운으로 돌의 다양한 이미지 연쇄를 제시할 때 작가가 돌 자체, 돌이라는 사물 속에 깃든 끈질긴 실체(substance)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전연 아닐 것이다. 그것은 돌을 사용하는 허다한 몸짓과 작용, 시간의 좌표, 역사적 계기 등을 어지럽게 펼쳐 놓는다. 마치 아무 것도 아닌 멍청한 돌이란 대상이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이 어떤 이미지로서 출현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듯이 말이다. 나아가 이는 오늘날 사진에서 사진의 실체를 찾으려는 엉뚱한 몸짓에 대한 대꾸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대꾸는 진지하다기보다는 가볍다. 진지한 척하지만 전연 무겁지 않은 어떤 주장에 응답하는 방법은 농담(joke)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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