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그 너머 – 애도의 문화정치학

애도하는 국민
한국 사회에 대중들이 정치적인 행위에 가담하는 중요한 형식이 애도였다는 점은 서글픈 일이다. 가까이는 김선일씨의 죽음을 향한 애끓는 애도, 미군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을 향한 안타까운 공감의 애도, 그리고 멀리는 이한열, 박종철, 전태일, 김주열로 이어지는 투사들의 죽음을 향한 애도까지, 우리는 (정치적) 애도 행위를 통해 정치의 공간에 참여하여 왔다. 어떤 인물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처리하고 조직하는 의례를 통해 낯선 정치적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외려 그것은 마치 평범한 관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모든 사회의 정치적 사태 안에 스며들어 있다. 왕의 죽음이든 지식인의 살해이든 혁명가의 처형이든 우리는 죽음을 통고하는 소식을 통해 그리고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의례를 통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기존의 정치적 공동체를 보다 단단히 결속하는 권력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반대로 기존의 정치적 공동체를 돌파하는 열정을 끌어내며 근본적인 저항을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애도는 직접적인 정치적인 행위와 관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정치 공동체를 조직하는 근본적인 조건 자체에 연관되어 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은 우리의 정수리를 후려치는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 당시 모두 전두환 정권의 잔학한 폭력에 대해 이미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학생들과 지식인, 노동자들이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 이상 소문이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우리는 더 이상 현재를 감당할 수 없으며 지금의 정치체제를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시대의 기분에 감염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자각이 행위로 곧 정치적인 참여로 전환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이럴 수는 없어”라는 막연하고 우울한 확신이 “세상을 바꿔야 해”라는 행위로 비약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윤리적인 긴장이 가로놓여 있다. 애도가 자리잡은 공간은 바로 그 윤리적인 긴장의 자리이다. 정치적 애도는 행위의 망설임 앞에 놓여있는 윤리적인 긴장의 뇌관을 격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불에 데인 듯이 그 애도의 공간에 빨려 들어가 진정한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80년의 광주항쟁의 며칠이나 1987년의 6월 10일은 아마 그런 행위의 날짜였을 것이다. 그 애도의 날들은 더 이상 자신의 주관적인 의도에서 구속되지 않은 채 마치 맹목적인 힘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열정에 이끌리는 날들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볼 때 정치적 애도란 정치적인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이 정치적 주체의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이유 없는 윤리적인 강요임을 우리에게 암시한다.
왜 당신은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가. 이 물음에 답변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핑계를 내세울 수 있다. 아마 쉽게 들을 수 있는 답변은 “주체의 선택”이란 가정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당장 먹여 살려야할 처자식,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고생하신 시골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럽지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내가 운동의 대의에 전적으로 지지하며 공감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에 적극 가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안타까운 인간적 이유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서슴없이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겉보기에 선택이라는 형식을 취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선택 이상의 행위이다. 다시 말해 타산적인 이해와 계산으로 환원할 수 없는 윤리적인 차원이 그 안에 담겨있다. 운동에 참여하는 것 혹은 일반적으로 말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는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선택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처벌과 감금, 고문의 희생을 비롯한 불이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친 것처럼 뛰어드는 것이다. 반란은 분명 계산된 행위, 기획된 실천이지만 그 안에 놓여있는 주체는 의도적인 주체가 아니라 미친 자와 비슷하다. 그래서 반란은 미친 짓이다.
이쯤에서 지금 이 맥빠진 민주화 시대의 “정치적 주체의 윤리”와 근본적인 정치적 행위의 주체의 윤리를 비교하면 어떨까. 만약 NGO에 참여한다거나 자원봉사단체에 참여할 때 우리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생태주의, 공동체의 자기 지배 등의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울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정치적 행동에 깔린 윤리적 배경을 자신 있게 부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윤리적인 배경이 곧 변혁적인 행위에 가담하는 정치적 주체의 윤리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겉보기에 민주화의 요구와 친환경적인 경제성장의 요구는 형식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외려 단순히 정치적 제도의 변화에 머문 민주화의 요구보다는 자본주의적 문명의 근본적인 한계를 교정하고자 하는 환경운동이야말로 보다 높은 윤리적인 대의를 지니고 있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가 그것이 전 시대의 급진 운동(혹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 발휘하였던 것과 같은 강력한 윤리적인 압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급진 운동이 우리를 짓눌렀던 윤리적인 압박과 지금의 시민사회운동이 부과하는 (거북하기까지 한) 도덕적인 설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분명히 말해 지금의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기획이란 것은 윤리-정치적인 차원에서 무력한 것일 뿐 아니라 또한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당대비평 특별호에 기고한 글. 최종 본은 조금 고쳤다..
반란은 미친 짓이다 – 애도하는 세 가지 방법
우리가 “정치적인 애도”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 보려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애도”란 바로 제도화된 정치적 행위(이를테면 선거, 언론의 자유 등)로 환원할 수 없는 정치적 행위의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정치적 애도란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통합할 수 없는 요구를 던질 수 있는 “위반”의 가능성을 던질 수 있게끔 한다. 수많은 역사적인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왜 지배 집단이 그토록 장례식을 두려워하고 이미 죽은 자의 말없는 주검을 탈취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죽은 자는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는 침묵의 말로, 직접 들을 수 있는 투쟁하라는 요구보다 더 뿌리치기 어려운 힘을 발휘하며 우리에게 행위를 호소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이를 자신의 이웃, 동료, 시민을 살해한 불법적인 권력을 향한 분노가 낳은 감상적인 반응일 뿐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가 어느 시인이 극우 신문에 기고했던 글의 제목처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비명을 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같은 평범한 벗, 아우, 누이를 살해한 즉 자신과 동일한 공동체의 성원을 살해한 권력을 향해 분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머문다면 그것은 정말로 감상적인 파토스에 그칠 뿐이다. 자신과 같은 이웃의 모습으로 죽은 자가 수용될 때,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자신의 상상적인 타자,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공동체의 성원으로 그가 받아들여질 때 우리의 반응은 문자 그대로 감상적인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뿐이다.
그런 감상은 물론 현존하는 사회적 질서를 변형시키는 데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구조적 질서를 그대로 놓아둔 채 우리의 비루하고 서글픈 처지에 대한 연민, 더 고약하게 말하자면 나르시시즘적인 감상에 빠져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받치는 흐느낌 속에서 “그래, 잘가라, 친구여, 벗이여” 속삭이고 난 후 다시 이 지긋지긋한 현실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혼곤하고 비루한 삶이지만 우리는 이 삶이 우리의 현실임을 인정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도”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사망”의 수용이다. 기존에 있던 친밀한 인간관계 혹은 정치적 공동체를 그대로 놓아둔 채 그의 부재를 현실 안에 통합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그에게 “고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것이고 그 결과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지평 안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공식적인 가족사, 정치적 공동체의 역사 안에 기억될 것이다. 두 번째의 애도의 가능성은 죽음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심리적 현실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감상적인 집착이다. 이런 나르시시즘적인 집착은 나의 벗, 이웃, 가족의 죽음 안에서 자신의 상상적인 타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때에 애도는 과도한 감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다. 그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 안에서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 나는 내 삶에서 마주치는 자그마한 흔적들 안에서 그를 상기하며 걷잡을 수 없는 감상적인 우울에 휩싸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애도의 세 번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문자 그대로 “죽음의 굿판”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수용하는 정상적인 절차인 죽음을 현실 안에서 부재하지만 그의 상징적인 위치를 마련해 줌으로써 죽음을 현실에 통합해 내는 첫 번째의 애도, 그리고 감상적인 집착에 시달리는 불완전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인정하며 그것을 현실로 통합해 내는 두 번째의 애도와 달리, 세 번째의 애도는 개인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그 때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은 있을 수 없는 듯이 보이는 반대의 것 즉 희망의 축제로 실체변환할 수 있다. 장례의 절차를 통해 죽음을 상징화할 때 그리고 애도자로서 죽음을 수용하기 위해 곡을 하고 분향을 할 때,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개인과 사회를 보호한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 사람은 산 것이다. 우리“?살아야할 이 세상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죽음에 새겨진 위협을 우리의 상징적 질서 안에 포함시킨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것이 죽음을 애도하는 가능성의 전부는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죽음에 부여한 의미에 결코 화해할 수 없을 때, 애도의 과정은 장례가 아니라 미친 짓으로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해 죽음의 굿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광주항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광주항쟁은 알다시피 애도의 과정이었다. 그것은 계엄군의 진입과 무고한 학살로부터 비롯된 죽음을 향한 애도의 과정에서 폭발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애도의 과정은 사회 안에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추모와 장례의 행위로 종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광주항쟁에 관한 열정적인 기록들이 들려주듯이 열흘 밤낮의 황홀한 해방구, 이미 존재하는 정치적 공동체로부터 완벽히 벗어난 새로운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그것은 애도의 대상이 되었던 죽음을 이미 존재하던 정치적 규범에 따라 해석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기존의 정치적 상징질서의 바깥으로 과감히 뛰쳐나가는 미친 짓이었다. 광주 학살의 첫날 광주 시민들은 곤봉과 총알 세례에 쓰러진 젊은 청년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즉각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반체제 폭도의 진압, 헌정질서를 파괴한 문란한 공적의 소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고한 죽음이었음을 그들은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죽음을 향한 공포와 형제와 이웃을 잃은 비통함에 머물러 있었다면 애도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거리를 만들어 놓으며 질식할 듯한 침묵과 흐느낌 속에 파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광주의 시민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들이 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향해 말을 건네는, 저 유명한 <님을 위한 행진곡>의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노랫말처럼,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의 거리는 사라져 버렸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행위, 즉 반란이 시작되었다.
정치적 애도와 윤리-정치적인 주체
여기에서 우리는 집단적인 죽음이 주술처럼 불러낸 끔찍한 폭력, 자신을 짓밟은 역사의 명령의 불의를 향해 앙갚음을 행하는 피억압자의 광기를 찬미하는 결단주의적인 사고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애도를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죽음에 직면한 주체의 집단적인 심리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애도 자체의 윤리-정치적인 사건으로서의 성격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왜 그것인 윤리-정치적인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를 먼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한열의 영결식장에서 울려 퍼진 문익환 목사의 잊혀지지 않는 애끓는 음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날 아침 그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의례적인 장황한 조사를 읽지 않고 “이한열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전태일 열사여…”를 길게 목놓아 불렀을 때, 많은 이들은 걷잡을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우리는 왜 그런 전율에 휩싸였을까. 그는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죽은 자들의 숱한 이름을 외쳐 불렀을 뿐인데 왜 우리는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그 날 분명 문익환 목사는 죽음을 수용하는 장례식의 정상적인 절차에 위배되는 지나친 짓을 하였다. 그는 죽음을 우리의 현실 안에 통합하는 행위,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우리는 그를 어떻게 우리의 가슴에 묻을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거절했다. 그가 한 것은 장례 치르기를 거부하는 것, 즉 그(와 그를 비롯한 모든 죽은 자들)을 평범한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 기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고유명사를 읽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인 애도를 윤리-정치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문익화 목사는 직관적으로 고유명사와 그들을 위해 우리가 마련해 놓은 형식적인 직함, 기존의 정치적인 재현 체계가 부여한 지위인 민주화 운동의 투사라는 정체성 사이에 놓인 간극을 깨닫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그렇다, 그들을 민주화 운동의 투사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와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형식적인 권리를 요구했던 시민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부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각오한 삶에서 그런 거의 상식적인 요구를 발견하고 만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설령 그들의 드러난 정치적인 요구는 그런 평범한 것으로 제한되어 있었을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이 말했던 것, 말 할 수 있던 것 이상을 요구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의 시민으로서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그들은 이해관심에 매달리지 않은 순결한 영혼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문익환 목사의 그 조사(弔詞)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윤리를 모든 세속적인 정치적인 이해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노동자계급을 가난한 이웃으로 환원하고 그들의 불운한 처지에 “공감”하며 고생을 마다 않는 자선사업가의 윤리와 그들을 자본주의적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에 의해 착취 받는 계급으로 인식하고 반자본주의적인 투쟁에 투신하는 혁명가의 윤리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정치적인 애도의 과정에서 직면하는 윤리적인 충격은 앞의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도덕이 아니다. 우리가 정치적인 애도의 과정에서 목놓아 부른 “이름”의 주인들은 분명 사회의 변혁을 위한 정치적 투쟁에 참여한 공적인 주체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의 상징질서가 만들어 놓은 추상적인 정체성, 그의 정치적인 주체-위치를 통해 호명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그들은 열사, 투사, 혁명가, 민주주의자 등이 된다. 그렇지만 문익환 목사가 그들의 고유명사를 호명한 것은 정확한 일이었다. 이 때의 이름은 출석부의 번호 옆에 적혀있는 이름과 다르다. 그 때의 이름은 학급이란 사회에서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가리키는 정체성으로서의 번호(성적의 등수, 반 전체에서 키높이의 순서 등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규준)에 부속된 내용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은 근본적인 이타성으로서의 고유명사를 이야기하는 일부 철학자들의 주장에서 등장하는 그 고유명사와는 다른 이름이다.
고유명사는 상징적인 호명에도 불구하고 그에 소외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무엇보다 소중한 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한 나라는 허구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유명사가 자아(self)라는 상상적인 허구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또한 그것이 진정 고유한 이름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다. 그것은 방금 언급했던 문익환 목사의 호명에 등장하는 고유명사이다. 그 고유명사는 기존의 사회적 상징질서가 부여한 형식적인 지위로 환원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고유명사는 상징질서로 재현될 수 없는 탈소외된,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개인적인 삶을 가리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그 고유명사는 매우 독특한 성질을 얻게 된다. 그 고유명사는 레비나스나 데리다같은 이들이 말하듯이 상징질서의 어떤 규정에도 저항하는 근본적인 타자성, 사회로부터 해방된 환원불가능한 고유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고유명사의 고유성은 사회의 위계적 지위에 의해 매개되고 형식적인 정치적 규칙의 담지자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를 표시하는 주체의 고유성일 것이다.
민주주의와 그 너머 – 애도인가 투쟁인가
그렇지만 우리는 고유명사가 관계 맺는 사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때에 사회란 제도와 질서의 총체로서의 사회, 그 안에 속한 각각의 주체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매개하고 규제하는 체계로서의 사회가 아니다. 고유명사가 접근하는 사회, 차라리 그 고유명사가 반향하는 사회라 부를 수 있을 그 사회란 역설적인 뜻에서 불가능성으로서의 사회, 즉 다양한 사회적 체계와 구조를 가능케 하는 저변의 근본적인 원리로서의 사회를 가리킨다. 잘 조화된 전체, 통합된 체계로서의 사회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불가능한 사회를 가능케 하는 사회란 바로 사회를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적대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를 당연히 계급적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계급투쟁은 사회학적인 주체로서 계급이라는 인격적인 집단 간의 대립과 갈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투쟁이 벌어지는 곳은 계급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구조화하는 외부와 자본주의 사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회는 계급투쟁이라는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를 유효하고 실제적인 사회적 질서와 제도의 형식으로 상징화한 결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복지국가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종속적인 국가독점 자본주의같은 다양한 형태로 상징화된다. 물론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사회란 이런 구체적인 권리와 지위, 제도와 질서로 상징화된 사회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회의 일반적인 질서를 수립하도록 하는 것은 언제나 상징적으로는 불가능한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가능성으로서의 사회와 규정적인 실제 세계로서의 사회를 분간해야 옳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고유명사가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그 사회란 다름 아닌 전자의 사회 즉 우리의 삶을 구조화하는 근본적인 대립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의 투사들은 민주주의자인가. 물론 그렇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가던 시대의 정치적 질서와 경제적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를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또한 그 이상이었다. 우리가 정치적 애도의 자리에서 섬광처럼 마주하게 되는 그들의 위치는 그러한 상징적 질서의 체계를 초과하는 (비)사회에 속해있다. 그들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요구를 제시하고 투쟁했지만 그래서 바깥으로 드러난 것은 평범하고 단순한 요구였지만 그들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버팀대를 무너뜨리는 들리지 않는 요구를 제시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요구는 사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자유민주주의적인 요구였지만 그 시대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요구였다. 만약 그런 요구가 수용되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한국 자본주의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업장 안에서 노동자의 계약관계와 정치적 공동체 안에서의 시민의 계약관계는 각기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주체성의 위치를 규정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체성의 다양한 위치를 조정하고 접합하는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꿈꾸는 요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 요구를 초과하는 요구를 주장하는 주체는 윤리-정치적인 주체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윤리-정치적인 주체의 차원이 개인의 도덕적인 태도나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한 상징적인 규범이 아니라 왜 정치와 주체가 만나는 지점인지 깨달을 수 있다. 윤리-정치적인 주체란 도덕적인 개인과 정치적인 주체성이 결합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자아와 정치적인 주체성 사이의 만남으로 윤리-정치적인 주체를 간주한다면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전향” 그리고 “과거 청산”이란 문제를 어떻게 조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전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이 다양한 정치적 요구와 대의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향이란 어느 한 종류의 객관적인 지식에서 다른 종류의 객관적인 지식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변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전향에 저항하고 심지어 전향을 거부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전향을 강요당하는 주체가 다양한 객관적 지식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요구로서 자신의 이념을 선택한 주체, 즉 윤리-정치적인 주체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 청산의 문제와 연관하여 생각해보자. 우리는 구체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다양한 사실을 조사하고 그를 통해 그의 죄과를 해석하고 평가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과거란 행정적인 조사의 업무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민족주의자들이 “민족의 정기”를 주장할 때 포함된 윤리-정치적인 입장을 모방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청산이 자유주의적 개혁세력과 극우수구세력 사이의 세력 싸움을 위한 핑계에 머물지 않으려면 진정 잘못을 범한 윤리-정치적인 주체의 고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 때 우리는 일제의 야만적인 강요와 통제로 인해 모두 부역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동정을 뿌리쳐야 한다. 설령 그것이 거의 모든 사람을 망라하는 공동체 전체의 파국이 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감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친 김에 수많은 역사적 위원회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위원회들이 과거의 역사적 사태를 엄정하게 조사한다는 것은 사망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태와 연루된 정치적 주체에게 윤리-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화해와 진실을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시민참여의 민주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 시대의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애도란 어떤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윤리적인 주체와 만나는 순간으로서의 정치적인 애도, 그리고 정치의 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정치적인 애도는 희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중생의 죽음과 김선일씨의 죽음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적인 죽음을 애도하면서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갔다. 그렇지만 이런 거리의 애도는 허용된 장소에서의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행사가 되도록 강요당했다. 물론 이는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행위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위협, 즉 가능한 것만을 요구하라는 협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설교를 하여왔다. 우리에겐 수구세력의 청산과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즉 충분히 제도화되지 않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요지이다. 그것은 물론 완벽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약간의 사회안전망, 철저한 신자유주의적 정치개혁과 약간의 다원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눈에 거리에서의 애도 역시 바로 그런 민주주의의 불충분함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증거로 각색된다. 삶의 요구가 정치적 제도 안에서 공식적인 권리와 요구로 대변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거리에서의 애도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민중들이 여전히 정치적 애도를 필요로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왜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인 애도에 참여할까. 우리는 어쩌면 민주화 시대의 시민적 주체로 호명된 우리와 근본적인 사회적 적대에 놓여있는 간격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닐까. 정치적인 애도란 민주주의가 강요하는 현재의 정치적 상징 질서 안에서만 사고하고 요구라는 협박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물론 자유주의적 정치세력은 그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을 다시금 기존의 상징질서 안으로 통합한다. 그들은 그것이 주체를 흔들었던 윤리-정치적인 차원을 모욕하고 정치적인 애도를 요구와 권리로 전치한다. 따라서 우리는 국회에서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배상금을 지불하며 법률을 개정한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이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의 정치적 상징질서를 초과하는 윤리-정치적인 요구에 우리가 여전히 호소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은 한국 사회의 변혁적인 세력들에겐 중요한 희망의 징후이다. 허용될 수 있는 것만을 요구하는 타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상징적 주체로 전락한 정치적 주체, 보편적인 주체를 거부하고 타자화된 주체, 소수적 주체의 위치를 물신화하는 정치적 주체. 그 곁에 우리는 이 모두와 불화하는 윤리-정치적인 주체의 위치가 아직도 버티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한국의 변혁적인 세력들은 그 윤리-정치적인 주체에 접근할 어떤 전략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에서 느끼는 우리의 슬픔과 패배감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

지식노동자 – 탈근대자본주의 시대의 주체성과 비판이론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압축 재현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약호는 단연 “지식노동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식노동자를 현 단계 자본주의의 노동자의 역사적 종(種)으로 개념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경쟁자본주의 단계의 산업노동자와 독점자본주의단계의 대중노동자같은 유형으로 탈근대자본주의의 지식노동자를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유익한 일이 아니다. “지식기반경제” 혹은 “신경제”의 노동자로서 지식노동자는 전 단계의 노동자와 전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기술적 구성이나 노동과정의 조직, 그리고 노동하는 주체를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형태가 역사적 단계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식노동자란 노동자의 사회적 현실을 표상하는 개념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에서 특유하다. 지식노동자는 길드나 동업조합의 장인, 포드주의적 노동자와 더 이상 유사하지 않다. 지식노동자는 비노동주체와 구분될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의 세계와 노동이 없는 세계가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의 생애단계와 노동으로 입장하고 노동에서 은퇴하는 생애단계의 간격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유령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네그리와 하트가 푸코의 개념을 빌어 이야기했던 노동의 생정치(biopolitics)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 멀리가지 않도록 하자. “신지식인 운동”으로, “평생학습체제”로, “학습혁명”으로, “국가인적자원개발계획” 등으로, 지식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기획은 우리 주변에 이미 정착하였고 또한 가동 중에 있기 때문이다.
지식노동자는 일관생산라인이라는 직접적인 생산과정, 공장과 사무실이라는 특정한 공간의 배치, 출퇴근 시간과 테일러주의적인 시간동작연구로 상징되는 신체의 통제와 더 이상 상관없다. 노동자를 개별적인 신체로 규정하고 그를 표준과 규범에 따라 통제하고 조정하는 포드주의적인 훈육으로부터 지식노동자는 벗어나 있다. 개별적인 신체로서의 노동자는 이제 집합적인 신체 안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명의 노동자의 묶음이란 뜻에서의 집합적 신체가 아님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상사회에서의 정보와 지식의 (재)생산을 말할 때의 “집단지성”처럼 그것은 개별 신체, 지성, 감각의 집행이나 연장이 아니다. 일관생산라인에서 린 생산으로, 팀제로 변화된 탈근대적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는 개별적인 신체로서 성과를 발휘하고 생산성의 지표에 의해 측정되고, 동기와 보상의 체계 안에 귀속되지 않는다. 노동자는 일반적인 노동력 안으로 사라진 채 측정될 수 없는 순수한 추상적인 힘으로 등록된다. 이는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신경제의 “부”의 담론의 핵심은 재산이 아니라 자산(asset)일 것이다. 이는 직접적인 생산을 통해 만들어진 물질적 결과로서의 생산물이 아니라 법인기업이 가진 것으로 예측되는 잠재적인 능력 흔히 자산가치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보유하고 있는 현물과 수익이 아니라 자산을 통해 자본을 평가하는 유령적인 등가(等價)의 세계에 익숙해 있다. 물론 그 유령의 세계는 나스닥과 코스닥, 증권거래소이다. 아마존닷컴과 벅스뮤직의 주식가치와 월마트나 삼성전자의 주식가치 사이의 관계는 더 이상 미스테리가 아니다. 아마존닷컴의 자산가치는 아마존닷컴의 수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마존닷컴의 자산가치는 곧 그것의 잠재성일 뿐이다.
신경제 이데올로그의 주문같은 말처럼 “유한한 물적 자원에서 무한한 지식의 힘”으로 자본의 힘이 변화되었다면, 이는 노동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노동 역시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과받는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노동자 없는 노동의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란 용어일 것이다. “인적 자원 개발”, “인적 자본” 등의 개념은 한 명의 구체적인 심리적인 개인으로서의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나, 직장에 다니는 나, 월급을 받고 연금과 보험을 내는 나와 같은 뜻에서의 노동자 역시 잔존한다. 그렇지만 지식기반경제는 지식(그것은 신경제의 이데올로그들에 따라 다중지능, 창의성, 탁월성,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 EQ, NQ 등 다양하게 정의되고 세밀화된다)이라는 역량을 요구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신체와 지성 안에 포함되어있는 실체로서의 능력도 아니고 또한 노동자가 판매하며 보상되는 소유물도 아니다. 다시 푸코를 끌어들이자면 그것은 삶(life)이며 생능력(biopower)이다. 투입되는 노동력을 이미 예상하고 규정하는 생산수단(이를테면 미싱은 재봉사, 선반은 선반공과 같은 식으로)과 달리 지식기반경제의 생산은 이미 형식화되고 표준화된 노동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적 자원이란 개념은 따라서 경직된 직업 교육과 숙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실행하고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을 개선하고 향상하는 노동력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인적자원은 평생학습을 요구하며, 노동하는 주체의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강요한다.
한편 노동자는 언제나 해체와 이동을 함으로써 변신한다는 자본의 요구에 따라 혹은 변화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는 자본의 가속화된 순환에 따라 그 스스로 끊임없이 변형되어야 한다. 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마 최근 끊임없이 회자되는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의 전환”이라는 담론일 것이다. 지속적인 직업 이동, 동일한 직무와 직종 안에서의 이동이 아니라 다른 직업으로의 이동을 수반한 노동자의 이동은, 노동을 통한 자기(self)의 구성을 파산시킨다. 일의 여정(旅程)을 통해 자기의 생애를 재현하던 사람들은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주체성의 형식에 사로잡힌다. 평생직장과 철밥통의 세계를 대신하여 이태백, 사오정이라는 유연화된 노동자가 들어설 때, 그것은 불안과 위험 속에 내동댕이쳐진 노동자의 물질적 생존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또한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하고 관리하며 향상시켜야하는 기업가적 주체의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들은 리더십 프로그램과 자기계발 세미나, “아침형” 습관의 중독자, “메모의 기술”의 달인, 자기표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하는 주체에게 단순히 새로운 노동 기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성과,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점에서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은 관료적으로 조직된 조직 체계에서 즉 외부로부터 오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에게 던져진 최대의 명령인 “자기주도”가 알려주듯이 “자기를 돌보는” 에토스를 실현하는 주체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에토스는 노동하는 주체가 공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던 상징적 동일시의 형식(당연히 이에 해당하는 고전적인 개념은 당파성, 프롤레타리아트적 계급의식, 의사소통적 합리성 등이다)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노동은 있지만 노동을 수행하는 주체는 사라지고 있고, 노동하는 주체의 정체성을 재현하는 물질적인 제도와 기관(정당, 노동조합, 클럽, 신문, 출판사 등)은 위축되거나 무력해지고 있다. 노동자를 대신하여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기업가(the entrepreneur)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력경로를 관리하고 다중경력을 체득하며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을 향상시키는 주체이다. 물론 이를 가장 잘 요약하는 것은 신경제의 가장 탁월한 이데올로그인 톰 피터스의 “나-브랜드”일 것이다. 그에게 삶이 어떻게 의미작용의 코드와 사회적 재생산의 네트워크에 의해 규정되는가를 묻는 것은 진부한 일이다. 나의 삶은 일종의 프로젝트이며, 나는 무엇보다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노동하는 주체의 정체성의 변화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인가. 기호학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포스트구조주의를 익히며 데카르트적 코기토와 남근로고스중심주의와 투명한 자기의식적 주체와 작별을 고하는 것은 적어도 비판적 학계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대정신이 잊고 있었던 것은 그러한 변화가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정의하는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힘들의 장이었다는 것이다. 통속적인 경영학 서적에서 데리다가 신경제의 지식경영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정보자본주의를 선구한 예언가로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를 들먹이는 것은 차라리 참신하다 할 일이다. 젠체하는 마케팅서적에서 부르디외의 “아비튀스”와 “문화자본”을 인용하는 것은 이미 관례가 되다시피 하였다. 물론 그 자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다. 담론의 소비를 지식인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르크스 역시 월스트리트의 철학자로 둔갑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분석가로서의 마르크스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분석가로서의 마르크스가 다르지 않은 인물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분석하고 정의하는 일은 정치적인 개입이다. 그런 점에서 탈근대자본주의의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일은 근대성과의 단절 혹은 극복이 아니다. 외려 필요한 것은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둘러싼 적대적인 논쟁의 공간을 창출하고 참여하는 일이다. 지식노동자라는 탈근대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는 개념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우리는 그 자리에 컴컴한 공백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이는 슬프고도 참담한 일이다.
– 연세대학교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

기관 없는 신체 혹은 신체 없는 기관

기관 없는 신체 혹은 신체 없는 기관 – 신체의 재현과 그 위기


재현의 위기 그렇다면….
<아침형 인간>이란 자기계발서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명민한 사회학자라면 이러한 자기지침서(self-help manual) 혹은 자기계발서의 유행을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적 증상(social symptom)으로 진단하고 그것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회학 혹은 문화이론으로부터 이러한 자기계발서에 대한 분석이 적잖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이 자기지침서를 분석의 대상으로 정의할 때 주로 의지하는 개념은 “자아(self)”이다. “재귀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이란 개념으로 후기 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분석하는 앤서니 기든스의 입장 역시 자아 정체성이란 개념의 둘레를 맴돈다. 후기 근대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그의 저작의 제목은 <근대성과 자기정체성>이었다.
그가 말하는 후기 근대의 “성숙한 자아”란 재귀적 근대성의 체계 안에 놓여 있다. 재귀적 근대성을 설명하는 한가지 방식은 근대화는 곧 탈전통화라는 것이다. 탈전통화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일반적인 규범을 합리적인 반성의 대상으로 옮겨놓는다. 줄여 말하자면 이는 ‘감히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여’, 전통이나 미신과 같은 억견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앤서니 기든스는 탈전통화라고 불리우는 근대성의 영향은 정치나 경제와 같은 공식적인 사회적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탈전통화의 논리는 이제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까지 흘러들어 미만해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우리는 몸에 관한 의료과학의 공식적 지식의 일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대체의학을 선택한다, 우리는 친밀성의 유일한 합법적인 형식인 이성애적인 결혼을 상대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안적인 가족을 인정하고 있다 운운).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후기 근대이고 성숙한 근대성이다. 이제 탈전통화라는 근대의 비판적 해석학은 바야흐로 결혼과 가족관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친밀성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기든스가 예상하는 후기 근대의 성숙한 주체의 모습은 혹시 그 반대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개척하는 성숙한 근대적 주체의 재귀성은 거꾸로 뒤집혀져 우리의 삶을 옥죄는 “금지 없는 명령”이 된 것이 아닐까.
– 문학과 경계 봄 호에 기고한 글의 도입부입니다.

<삼국지> 읽는 남자

<삼국지>의 독서공간과 탈근대 자본주의의 자기계발 담론
삼국지 읽는 남자
<삼국지>야말로 우리 시대의 탈근대 자본주의적 대중문학의 가장 탁월한 표본이 아닐까. 혹은 문학적 정전의 전통에 속한 “작품”을 패키지화된 “상품”으로 소비하는 뛰어난 사례이거나. <삼국지>는 알다시피 원본을 정의하기가 불가능한 텍스트이다. 그러나 그 원본으로서의 가치를 나눠 받은 텍스트이든 아니면 <삼국지>를 참고하거나 인용하며 쓰여진 이차적인 텍스트이든, 그것은 모두 <삼국지>라는 텍스트를 구성하는데 참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삼국지>라는 본래적인 문학적 텍스트 혹은 고전이 따로 있고, 그로부터 파생된 기생적인 문화적 생산물로 나누는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문학 담론은 원본으로서의 <삼국지>를 특권화한다. 그것은 국내에서 간행되어온 <삼국지>의 저자성을 이야기할 때 고스란히 반복된다. 국내에서 이문열본, 조성기본, 김홍신본, 김구용본 그리고 최근 출간된 황석영본의 <삼국지>를 각기 나눌 때, 그것은 <삼국지>를 해석되고 평가되는 가상의 원본으로 다룬다. 그리고 각기 다른 판본은 그 원본만큼이나 가치 있는 이차적인 저작으로서의 권위에 가담한다. 다시 말해 각기 서로 다른 판본의 저자들은 <삼국지>의 저자와 유사한 저자로 권한있는 주체로 격상되고, 다른 인접한 텍스트들과는 다른 “저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따라서 그것은 <삼국지>를 문학적 정전의 지위에 안전하게 보존하고 더불어 저자로서의 문학의 주체라는 신화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삼국지>를 둘러싸고 제작되고 순환하는 다양한 이차적 텍스트로부터의 오염을 막고 자신을 안전하게 격리시켜주는 것은 전연 아니다.

한편 그것이 “독서 시장” 안에서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로 소비되고 있는 문화적 대상으로서의 <삼국지>를 분석하는데 얼마나 쓸모있을지 역시 의문이다. 문학 작품의 읽기의 공간을 한정하고 읽기의 방식을 감독하는 문학제도적 담론은 쇠잔해진지 오래이다. 더욱이 <삼국지>라는 텍스트를 전유하는 독자의 체험을 규정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삼국지>와 삼국지의 주변에 놓인 잡종적 텍스트의 배열을 읽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삼국지>를 다른 텍스트를 규제하는 담론적 진실의 장소로 정의하고 그 곁에 놓여있는 텍스트들을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텍스트로 놓는 것은, <삼국지>를 소비하는 하나의 장(문학제도의 장)이 강요하는 특권적인 시점일 뿐이다. 최근 “독서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삼국지 열풍’을 이해하는데, 앞에서와 같은 문학제도적 장으로부터의 시점은 별 쓸모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삼국지>를 문학의 보편적인 공간 안에 놓고 이야기하던 경향이 자취를 감추고 특수한 “지역문학” 혹은 “국민문학”의 범주 안에서 분석하는 주장에 의해 대체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거장 소설가들이 도전하고 시도하는 필생의 기획으로서의 “<삼국지> 쓰기”나 아니면 보편적인 문학적 교양의 대상으로서의 <삼국지>가 있었다면, 지금 변화된 문학제도의 장은 <삼국지>를 지역문화적 텍스트로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지구적인 문화의 공간에서 <삼국지> 역시 보편적인 문화적 교양으로부터 지역 문학의 한 예로 간주하려는 문학제도적 담론에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새로 옮겨진 황석영의 <삼국지>는 정통 중문학자와 한시 전문학자의 감수와 교정을 받았고, 또 번역의 전본으로 삼은 텍스트 역시 지역 내에서 검증받은 권위의 텍스트였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어떻든 지금 <삼국지>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독자들에게 문학(제도)적 장의 담론의 영향은 잦아들고 있다. 오히려 <삼국지>를 매력적인 독서의 대상으로 선택한 독자들에게 그것은 부차적인 소비의 기준으로 동원될 뿐이다(기왕 읽어야할 <삼국지>라면 누가 번역한 텍스트를 고를 것인가. 이런 단계에서나 <삼국지>를 둘러싼 문학비평적인 평가가 소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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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학계간지 [Para21]의 2003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대중문화로서의 트렌드 혹은 트렌드로서의 대중문화

(문화방해운동 cultural jamming)의 전위인 미국의 록밴드 네거티브랜드의 앨범 표지)
지식인이나 문화비평가가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문화나 문명의 위기를 고발한다는 생각은 어느덧 맥추지 못하게 된지 오래이다. 그들이 맡아하던 역할은 나오미 클라인이 <노로고>라는 책에서 “멋 사냥꾼”이라고 부른 시장조사자들이 떠맡고 있다. 그들은 통신원과 포토저널리스트를 동원하여 청소년들이 모여있는 게토를 누비고 그들의 은밀한 언어 안에 깃들어있는 성향과 감수성을 파악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소비자 욕구 조사의 거대한 정량기법의 사회통계를 비웃으며 이들은 도시의 인류학자들이 되어 민속지를 쓴다. 과포화된 미디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열광적인 정보통신의 네트워크 안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있다. 시대의 풍경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흐릿해지지만, 다행히 우리는 조각보처럼 기워진 세계의 이미지를 가까스로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시장조사자들과 트렌드 연구자들 그리고 미래예측가들의 덕택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미래생활사전>이나 <클릭 미래 속으로>의 저자이고 조금은 섬뜩하지만 우리 시대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예언가의 명성을 얻은 페이스팝콘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혹은 청소년 시장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의 기상예보관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스푸트니크”라는 회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마케터 혹은 트렌드 분석가의 모습과 다르다. 그들은 상품의 판매를 위한 아이디어의 제공자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문화분석가이기도 하다. 이는 문화와 경제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 상품은 더 이상 제조품이 아니라 정보와 상징, 기호(sign)가 되어버렸다는 주장은 이미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나아가 “무게 없는 경제”, “무형의(intangible) 경제”란 용어들은 유행어가 되었다. 상품의 세계는 곧 문화의 세계이고 상품의 판매는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과 환상의 소비를 위해 이뤄진다.
결국 우리는 트렌드 분석가야말로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의 분석가 혹은 시대정신을 분별하고 제시하는 인물이란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노르베르트 볼츠와 다비트 보스하르트란 독일의 문화이론가 겸 트렌드 연구자들은 천연덕스레 트렌드란 “문명 속에 깃들어있는 의례”라고 정의한다. 이 알쏭달쏭한 이야기는 트렌드와 유행의 차이, 또한 트렌드와 사회적 법칙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제안된 것으로 보인다. 유행이란 이미 이뤄진 선택이고 사물 혹은 상품 그 자체이다. 이를테면 남성용 색조화장품은 유행이지만 “메트로섹슈얼”이라는 현상은 트렌드이다. 우리는 메트로섹슈얼이란 트렌드에 따라 남성용 화장품은 물론 새로운 티비 프로그램과 팝 스타, 출판 아이템, 패션 디자인, 장신구 나아가 의료서비스와 자동차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트렌드는 곧 어떤 유행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습성, 행위의 경향, 심미적인 태도를 아우르는 것이란 뜻이 된다. 우리는 트렌드란 개념에 근접한 어떤 또다른 용어를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라이프스타일 또는 생활양식이란 말이다. 틈새시장과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이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경제적 활동의 핵심적인 특성은 곧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분간하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경제활동을 잘 보여준다. 이미 국내의 어떤 대기업은 자기네를 생활문화기업이라고 명명하였다. 감량경영과 리엔지니어링, 아웃소싱, 유연화, 생산의 정보화같은 말이 범람한지 십여년이 지난 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상품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상품의 진열은 문화의 박람회로 바뀌었다.
한편 트렌드는 사회 법칙과도 다르다.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규제된 행위의 규칙을 가리키는 사회 법칙과 달리 트렌드는 매우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행위의 문법을 가리킨다. 트렌드란 이미 주어진 규칙에 따라 이뤄지는 행위가 아니라 일련의 연속적으로 행위가 행위기 이어짐으로써 행위 방식과 선택이 결정됨을 가리킨다. 트렌드란 이미 결정된 규칙이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들의 시리즈이고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행위에 다른 행위가 덧붙여지고 그 행위에 대한 외부의 반응이 추가되고 내면화되면서 또 다음의 행위는 전개된다. 다음에 무슨 행위가 벌어질 것인가는 행위자의 의도, 행위자의 등뒤에서 그를 지배하는 규칙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다. 행위가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반복성과 상대적인 일관성이 결국 행위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트렌드란 일종의 경향이다(프랑스의 사회학자는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문화를 특정한 심미적인 성향의 체계로 분석하며 아비투스(habitus)란 개념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보자. 누군가 홍대 앞에서 자신이 흠모하는 영국의 펑크 밴드를 카피하는 연주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부르고 그들의 행위를 해석하기 위해 인디 음악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거나 빌려쓰게 되고, 다시 그것은 인디 음악이라는 일련의 성향을 만들어낸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인디 음악의 정신을 반영하고 집행하는 연주자들의 묶음으로 인디 음악을 정의해서는 안된다. 인디 음악은 우발적으로 뒤섞이고 또한 외부의 반응을 수용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에 재투입하면서 만들어지는 연속적인 돌연변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인디 음악과 “짝퉁” 인디 음악을 나누고 가늠하려는 시도가 언제나 반복되겠지만 그런다고 자신을 순수한 인디 음악으로 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디 음악의 연주가 되는 것은 인디 음악의 ‘법’에 마침내 다가섬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인디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해석해 냄으로써 어느덧 나는 인디 음악의 연주자가 된다. 줄여 말한다면 해석자와 해석하는 대상의 거리는 없다. 마치 과학철학에서 관찰자와 관찰 대상을 순수하게 분리시켜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트렌드 역시 이렇게 볼 수 있다. 우리는 트렌드를 묘사할 수 있지만 분석할 수는 없다. 아니 그것이 트렌드로 묘사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에워싸고 다양한 말을 쏟아내고 행위를 추가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생태계를 만들어 낸다.
문화 산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 간 대중 문화의 기류 역시 트렌드의 정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조용필과 서태지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조용필을 위대한 대중음악가로 기억한다. 대중음악의 가인(歌人)이자 장인 혹은 거장으로서의 조용필과 신세대 문화의 아이돌로서의 서태지 사이에는 대중음악가란 점을 빼곤 일치하는 점이 없다. 그 사이 한국 대중음악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소년 보이밴드의 댄스뮤직 일색의 대중음악을 향한 볼멘 푸념과 저항은 음악 문화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명분을 들먹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을 에워싸고 있는 변화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주장일 것이다. 물론 대중음악의 생산이 소규모의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기획사의 시스템을 통해 제작되고 거대 자본에 의해 집중된 배급 체제와 미디어를 통해 유통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영화 산업의 구조를 보나 음반 산업의 구조를 보나 이는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화산업의 구조가 획일화된 대중 소비자의 시대와 얼마나 다른가는 서태지를 통해 입증된다.
그러나 멀리 거슬러갈 것도 없다. 지난 해 가장 뜬 “비”라는 뮤지션을 생각해보자. 그는 요즘 뜨고있다는 새로운 트렌드인 “메트로섹슈얼”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남성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여성적인 그의 외모와 인상, 분위기. 시중의 평가는 그가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컨셉의 진정한 재현이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꽃미남”의 느끼한 감상적 호소와도 거리를 두고 촌스럽고 멍청한 진짜 사나이와도 무관한 그의 이미지는 물론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저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은 HOT와 GOD 모두 분발했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거대한 자본을 거느린 기업의 생산물이 아니라 작은 기획사의 용의주도한 기획과 마케팅을 통해 시장에 나왔다. “비”를 기획한 회사는 그를 정보경제의 콘텐츠로 가공하고 판매하는데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의 음반은 디지털콘텐츠의 쿠폰을 내장하고 있고, 그의 초상은 상품권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그의 뮤직비디오는 간접광고기법을 도입하여 여러 브랜드와 윈윈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모 치킨회사의 광고에 출연하여 “야마카시”란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분위기를 선사하고 브랜드를 감성화한다. 그의 음반에는 “비의 1일 매니저되기”와 “리니지 무료이용권’이 들어있어 고객관계관리, 멋진 말로 관계 마케팅을 솔선한다. 그렇다면 그는 두루두루 트렌드의 첨단을 걷는다. 그는 정보통신산업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하고 섹슈얼리티와 몸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트렌드와 함께 한다.
이처럼 현재의 문화산업은 세분된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혹은 트렌드의 방향에 따라 틈새 시장의 골목을 누비며 제작되고 마케팅된다. 역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표현처럼 “비”는 뮤지션이 아니라 “콘텐츠”인 것이다. 댄스 음악 일색의 뮤직 비디오형 가수들의 음악과의 차별화 덕택에 라이브 공연이 자신을 유지하고 인디 음악이라는 주변적인 음악 산업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나름의 문화 자본을 가진 부족화된 청중 집단과 만나게 된다. 조용필이라는 대중음악가가 딴따라에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개인, 영웅으로서의 예술가라는 미학적인 신념을 통해 대중음악을 향유하던 시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청취자로서 FM 음악방송을 열심히 듣고 연주회에 참여하는 전 시대의 대중음악의 향유자들과 지금의 대중음악의 수용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서태지가 대표하듯이 대중음악은 곧 그 시대를 향한 태도라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차원까지 상징한다. 나와 대중음악가 사이에 연주자와 수용자 사이의 즉 저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고 서태지는 우리가 된다. 물론 우리는 이를 밥 딜런, 비틀즈와 마돈나, 에미넴의 차이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록큰롤의 천재적인 아티스트였으며 반항적인 시대의 영혼이었던 비틀즈, 밥 딜런과 달리 마돈나와 에미넴은 동시대를 들여다보는 거울 그 자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록큰롤의 모차르트로 비틀즈를 부른 것처럼 마돈나와 에미넴을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요즘의 트렌드 분석가의 표현을 빌자면 신화의 제조자이고 생활양식의 창조자들이며 시대의 이야기꾼이고 삶의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가장 손쉬운 비판은 그것이 진정한 체험과 쾌락으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키고 문화산업이 만들어낸 조작된 욕망에 길들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경제와 문화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한 이들은 문화산업이 개성의 표현이라는 교환될 수 없는 고유한 삶의 세계를 상품이라는 보편적인 교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이른바 “신경제”의 시대로 불리는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계속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따라서 트렌드란 개념이 난데없이 부상하고 그에 관련된 책들이 날개 돋힌 듯 팔리는 현상도 이해할 수 있다. 과연 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잘 팔릴 것인가를 예상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조사하던 시대의 트렌드는 우리 시대의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트렌드란 결국 문화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 역시 다르지 않다.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의 부상은 새로운 상품 세계의 등장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따로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곧 문화는 상품이고 상품은 문화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집약하는 말이 있다면 트렌드일 것이다. 쿨(c0ol)에 관한 강박증을 생각해보자. 청소년 하위문화와 대항 문화의 레퍼토리를 모방하고 전용한 이 희대의 트렌드는 곧 상품의 세계이자 문화적 관례의 세계이다. 그것은 의류와 가방, 음반에서부터 심지어 마약과 윤리적 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 그리고 그것은 광고와 마케팅, 홍보에서 교육과 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펑크가 룩이 되고, 그런지가 패션이 되는 세계, 그것은 또한 트렌드의 세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