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팔이 혹은 물화된 정동: 감정과 체험의 유물론을 위하여 (1)

“사회주의 확립의 가장 큰 이점을 꼽으라면 말할 것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하는 고통스러운 필요성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다는 점일 것이다.”
(O. 와일드, “사회주의에서 인간의 영혼” 중에서)
”, 거짓의 쇠락, 은행나무, 2015, 223쪽.

정동적 전환?

언제부터인가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의 관심사는 재현이라는 물음으로부터 슬금슬금 벗어나기 시작했다. 재현 혹은 표상이라는 문제설정은 ‘언어학적 전환(linguistic turn)’이라고 칭해지기도 하는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기한 물음은 이제는 제법 상식이 되다시피 되었다. 그것의 핵심적인 전략은 객관적이고 보편적 진실이라는 것이 어떻게 재현의 체계에 의해 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구조주의적 언어학의 흔한 정의를 빌자면 어떤 기표의 개념적 의미로서의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며 우연적이다. 그것은 랑그(F. de. 소쉬르), 야생적 사고(L. 스트로스), 신화(R. 바르트), 에피스테메와 담론(M. 푸코), 상징계(J. 라캉) 등에 의해 구조화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적 실천이든 아니면 비언어적 실천이든 그것과 결부된 의미는 적극적으로 유예되어야 하며 그러한 표상의 체계를 생산한 권력, 제도, 사회관계를 드러내야 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비판 혹은 물신주의 비판과 공명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표상 비판은 지배적인 지식, 문화, 태도 등에 우리가 어떻게 예속되며 그를 통해 어떻게 주체성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규멍하는 유력한 이론적 정치적 접근이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하게 요약한 것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접근은 지난 수십 년간 인문사회과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접근으로 자리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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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물론과 문화연구 (1) – ‘시대구분’이라는 방법


AIR – LE SOLEIL EST PRES DE MOI (1999)

유물론의 약점은 지배 상황의 반성되지 않은 약점이다.
– Th.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홍승용 옮김, 한길사, 1999, 288쪽.

문화연구-마르크스주의 혹은 문화연구-역사유물론

어지간한 문화연구 입문서치고 마르크스주의자의 이론적 성과를 문화연구의 주요한 이론적, 정치적 원천으로 기념하지 않는 글이 없다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 번역된 주요한 문화연구 입문서들 역시 예외 없이 이러한 접근을 취한다. 이를테면 앤드류 밀너, 존 스토리와 존 피스크의 대표적 입문서들이 이에 해당된다. 반면 그래엄 터너 같은 경우엔 영국과 호주의 문화연구의 역사를 회고하며 문화연구의 이론적 궤적이 이데올로기 개념의 수정 및 재가공 그리고 그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과정으로 서술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앤드류 밀너, ‘우리시대 문화이론’, 이승렬 옮김, 한뜻, 1996.; 존 스토리 편, ‘문화 연구란 무엇인가’, 백선기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0; 존 스토리, ‘대중문화와 문화이론’, 박만준 옮김, 경문사, 2012, 스튜어트 홀, ‘문화, 이데올로기, 정체성’, 임영호 옮김, 컬처룩, 2015. 그래엄 터너, ‘문화 연구 입문’, 김연종 옮김, 한나래, 1995.
그람시, 알튀세르, 르페브르, 윌리엄스 등은 그렇다 치고 본격적인 문화연구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나 딕 헵디지(Dick Hebdige) 역시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이력과 떼어놓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문화연구의 기원적인 출발점을 마르크스주의에 귀속시키는 것은, 제법 그럴 듯한 가설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물론 문화연구에 관한 계보학적 분석을 실행한다면 짐짓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문화연구에서 항용 거론되고 참조되는 방법과 범주, 인식론적 접근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유산과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계급(계급투쟁),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재생산, 상부구조, 물신주의, 상품화 같은 개념을 마주할 때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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