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사 이후의 유토피아적 기억 – <옥토버>의 분투(奮鬪)

 

독일관념론의 위대한 유산이 죽은 개 취급을 당하게 된지 오래지만, 그 유산 목록 가운데 가장 철저하게 추궁을 당하고 금지당한 관념은 보편사(universal history) 혹은 세계사일 것이다. 근대철학 자체와 같은 것으로 알려진 계몽적인 이성이나 데카르트적 주체를 구원하거나 그것의 죄를 경감하려는 철학적인 시도들은 제법 시끌벅적하게 시도된 편이다. 그러나 보편사란 개념만큼은 눈곱만큼도 구제받지 못한 채 새로운 이론적 기소자들을 충원하여 왔다. 얼마 전부터는 탈식민주의적인 저술가들이 그 대열에 합류해 헤겔적 보편사를 심문하는 글을 잇달아 발표하곤 했다. 모두 보편사란 개념을 향한 적의로 똘똘 뭉쳐있는 듯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많은 단서를 단 조건 하에서이지만 수전 벅-모스는 그의 도발적인 논문을 확장한 신작 헤겔, 아이티, 보편사에서 보편사란 녹슨 개념을 숫돌에서 벼리는 도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직 파문당한 관념인 보편사란 관념이 조만간 귀환할 것인지 여부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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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로지스틱스의 도시, 자카르타와 방콕

물류 자본주의 이후의 도시

얼마 전 우연찮게 세계에서 가장 교통 체증이 심한 두 도시를 잇달아 찾을 기회가 있었다. 두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교통 체증이 심한 도시 순위에서 1-2등을 두고 다투는 도시이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태국의 방콕. 나의 여정은 태국의 방콕을 경유해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다시 그 곳에서 반둥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목적지는 반둥이었다. 그곳은 1955년 반둥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나는 수카르노, 네루, 낫세르, 주은래와 같은 이름들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비동맹운동의 씨앗이 뿌려진 곳이자 제3세계라는 프로젝트가 발진한 그곳에 대한 야릇하고 조바심 나는 애착을 품고 있었다. 벼르던 그 도시를 찾겠다는 꿈을 이번 겨울엔 이룰 작정이었다. 음력 설 연휴를 앞둔 어느 날 나는 서둘러 짐을 꾸렸다. 막상 도착한 반둥에서 나를 제압한 것은, 반둥의 아시아-아프리카 거리의 아르데코 풍의 유사 식민지적 건물들과 그 사이에서 초라하게 뙤약볕을 견디고 있던 아시아-아프리카 회담이 열린 곳을 재단장한 박물관만은 아니었다. 이 도시들의 끔찍한 인프라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미 나는 그곳을 찾기 전 인도네시아 현대사에 관한 책을 여럿 읽었고,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도시의 참혹한 생활 환경을 두고 쏟아진 개탄과 저주, 고발에 익숙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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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잃은 세계의 기억 : 임흥순의 작업에 관한 메모

Damon & Naomi – Song to the Siren

사례로서의 임흥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영국의 철학자 콜링우드(Collingwood)는 제법 오랜 동안 철학의 무대에서 물러나 있던 관념, 역사철학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46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행했던 강의 노트와 이른 죽음으로 미처 출판되지 못한 원고를 모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이 저작은 20세기 역사학을 뒷받침하는 기초적 관념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은 오늘날 더 이상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기억에 대한 적대 때문이다. 그의 생각에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사변을 꼽자면 이런 것일지 모른다. “역사적 사고는 언제나 반성이다. 왜냐하면 반성이란 사고행동에 대한 사고이며 모든 역사적 사고는 언제나 그러한 사고라는 것을 이미 보아왔다. … 이 문제는 기억이나 지각에 대한 역사가 성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R. G. 콜링우드, 서양사학사: 역사에 대한 위대한 생각들, 김봉호 옮김, 탐구당, 2017, 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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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의 계곡을 넘을 수 있을까

 

위로공단 (Factory Complex, 2015) 

1.
임흥순의 <위로공단>은 한국 현대사의 눈물겨운 흔적, 그 가운데서도 여공애사(女工哀史)를 추적한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애틋하고 치열한 것은 아마 무엇보다 감독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역사적 곡절을 통해 쓰다듬고 위안하는 몸짓 때문일 것이다. 여성 의류 노동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은 또한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공경심 가득한 기억으로 확장된다. 또한 그것은 한국의 70년대의 구로공단과 같은 의류 산업 공단을 대신하는 베트남과 다른 아시아지역의 의류 노동자들의 세계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가해진 착취와 폭력을 응시하려는 의지가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빼어난 기억의 유사(類似)-다큐멘터리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다큐멘터리가 처한 위기의 어떤 면모와 함께 하기도 하면서 또 그를 추월할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인 계기를 확보하고자 애쓴다. 무엇보다 그것은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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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불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세계

Hiroshi Yoshimura (吉村弘) – Water Copy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사이의 오랜 불화가 종결되었다는 징후는 그들이 모두 악이란 개념을 향해 줄달음쳤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악의 지적 인플레이션은 조지 부시의 악명 높은 ‘악의 축’ 선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물론 그것은 동어반복에 가까운 진부한 말장난이다. 테러지원국을 지칭하고자 창안된 개념인 악의 축은 이미 테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적을 악의 울타리 안에 놓기 때문이다. 테러는 폭력이란 비유를 통해 정치적 행위를 선제적으로 윤리화한다. 윤리적 악당으로서의 적이란 시점은, 지구화 이후 미국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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