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아닌 시민을 위한 교육

스타가 아닌 시민을 위한 교육 – 청소년문화예술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
요 몇 년 청소년 영화제에서 심사를 볼 일이 자주 있었다. 어제 마침 또 하나의 청소년 영화제가 있어 심사를 보게 되었다. 출품된 작품을 보면서 또 한번 심란해졌다. 한두 해 전부터 청소년 영화제에서 작품을 고를 때 견지하는 원칙이란 게 생겼다. 수시로 바뀌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고수하는 게 있다면 “입시 영화는 안된다”는 것이다. 수시나 특차 전형을 위한 발판으로 영화를 찍고 출품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진짜 자기 영화를 찍은 친구들을 가려내기 위해 나름대로 굳힌 원칙이다. 그런 영화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면 “심사위원 선생님 앞”으로 보내는 편지라는 점이다. 나는 학교나 청소년수련관에 더 많은 영상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동네마다 청소년들의 시네클럽이 생겨나길 바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영화가 미지의 심사위원 선생님의 맘에 들기 위한 메시지여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그 영화는 언제나 보이고 입씨름할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한다. 자기의 관객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말을 건네려는 욕망이 없는 영화는 결국 시시하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감동도 안준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을 보아야하는 어른 심사위원들도 역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영화를 만드는 청소년들은 “모범생 영화 키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개 왕따 당한 친구, 학교 폭력, 장애우나 성정체성이 모호한 친구들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친구들이 으레 그런 취급을 받을 때 그를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자신의 무력감, 타인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볼 때 느껴지는 교묘한 쾌감 따위의 복잡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자기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는,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나 최악이다. 청소년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곤혹스러움과 실망을 위안하려 핑계를 둘러대지 않는 건 아니다. “방송 다큐가 애들을 버렸어, 쯔즛!”. 그렇지만 범람하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영향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청소년 다큐멘터리는 거의 한결같이 보이스오버로 메워져 있다. 삶이 말하기도 전에 찍는 이가 말을 다 해버린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논술시험 정답같은 이야기를 참고화면을 통해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삶보다 정답을 보고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착한 청소년들이 꾸미는 연극에 불과하다.
청소년 영화제에 참견하면서 드는 생각은 또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생각으로 번지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청소년을 길러내고 교육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지난 십 년 간 한국 사회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관심과 더불어 “공부해!”라는 슬로건을 내던지고 “잘 놀아!”라는 슬로건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지식을 머리 속에 주입하는 학교 사회가 규탄을 받게 된 것이 꼭 자유를 꿈꾸고 개성을 실현하며 자기를 되찾으려는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십년도 더 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교실 이데아>란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학교 사회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고 우리는 학교라는 끔찍한 감옥과 공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상식처럼 받아들였다. 명령과 통제, 훈육과 규율의 대명사였던 학교 사회가 맥을 못추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생각을 조금 달리한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을 억누르던 명령과 압력이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란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잘 놀아!”라는 슬로건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그렇지만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 주도하며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은 자유이지만 사실 한꺼풀 벗겨놓고 보자면 그것은 전보다 더 스트레스를 주는 명령일 수 있다. 따라서 자유가 주어질 때 그것이 자유를 길들이는 명령과 어떻게 만나고 결합하는지 눈여겨보아야 한다. “잘 노는 청소년”이 칭찬 받고 추켜올려지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회적 변화가 배경에 깔려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식정보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은 지식강국, 두뇌강국이 되는 것에서 나온다는 말이 부상하고, 이는 다시 평생학습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교육정책과 청소년정책의 변화로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교육과정을 바꾸기 시작했고 서구 사회에서 이미 시작했듯이 역동적인 한국, 창조적인 한국을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퍼져나갔다. 이제 세상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식과 정보, 감성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말을 몇 년 사이 지긋하도록 들어왔다. 웰빙신드롬을 통해 여실히 체험했듯, 이제 물건을 팔아도 우리는 감성을 팔아야 하는 사회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감성적인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감성 경영, 감성 조직, 감성 교육, 감성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요란한 충고에 주눅들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이 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은 이성과 지식을 전부인 줄 알던 시대의 편협한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괜찮고 멋있는 기획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자율성과 가치를 실현하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삶의 기회를 북돋울 수 있는 교육이 되지 못한 채 더 많은 청소년들을 우울증에 빠뜨릴 수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잘 노는 것,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 문화에 대한 안목이 느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다. 또한 몇 명만 스타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자가 되는 대중문화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잘 버티고 싸울 것인지 궁리하지 못한다면 기죽고 절망한 아이들만 만들어낼지 모른다. 주눅 든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아이가 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힘들면 우거지상이라도 지을 수 있었던 옛날보다 거짓으로라도 씩씩한 척 신난 척 해야하는 지금이 더 힘들 수 있다. 자기가 찾는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폭넓은 문화적 경험과 교육을 쌓도록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매일 시험대에 올라 자신의 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치고 말 것이다.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이 새로운 사회의 능력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되고자 한다면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심과 지혜를 피해서는 안된다. 그런 수고를 마다 않을 때에만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은 말대로 삶의 질이 높아진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선배의 부탁을 받고 청소년문화예술교육 사이트인 arte(http://www.arte.ne.kr)에 기고한 글. 이 곳 어딘가에 끄적였던 “망할 청소년”이란 글을 둘러싼 경계와 비난 때문이었는지 완곡하고 온건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글쎄, 그게 그런 글이었나? “감성자본주의사회적 청소년되기”의 논리에 질질 끌려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에 가까운 글이었던 것 같은데…여튼 부탁대로 좋은 시민인 척, 기왕 하시는 것 잘하시란 식의 글을 썼다. 그간 내 글 중에 가장 쉬운 글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쩝, 글쓰기 수업을 받든가 해야겠다.

소송사회에서 새로운 헌법을 상상한다


헌법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바뀔 헌법의 모습이 어떤 것일지 상상하는 노력보다 헌법을 바꾸려는 욕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 캐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헌법을 개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문과 욕망 뒤에는 최근 벌어진 사태들이 있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국가보안법의 합헌 판결,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위시한 주요한 사안들의 헌법과의 부합 여부를 둘러싼 쟁송 등. 결국 사회적 대립과 정치적 갈등이 벌어지는 주요한 무대는 한결같이 헌법이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일약 법률을 규율하는 기관을 넘어 모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매개하고 조정하는 권력의 심급이 된 듯 보이기까지 하였다.
이는 어떤 이들이 “정치의 사법화”라고 부를 만큼 한국 사회가 탈근대적인 “소송 사회”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법만능주의”란 말이 무색하리 만치 모든 문제를 법의 판결로 환원하고 법의 판단에 호소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어느 문학평론가는 자신이 어느 출판사를 문학권력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더니 반비판이 돌아온 게 아니라 명예훼손죄로 고발한다는 소장을 받았다고 푸념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그것 역시 소송 사회의 단면을 비춘다. 분하고 억울하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의 조정을 받으면 된다는 논리가 횡행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언제부터인가 파업이 벌어질 적마다 등장하는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란 것이리라.
지금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가 초래하는 불이익에 관하여 기업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는 자본 역시 권리의 주체라는, 얼핏 들으면 대단히 형식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에 근거한다. 그러나 노동삼권은 노동에 기반한 사회, 고용 임금에 근거하여 부의 분배가 이뤄지는 자본주의를 지탱하여 온 원리이다. 사실 임금소득자란 개념으로 노동하는 자의 삶을 법적 계약의 주체로 한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법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법률은 노동을 평등한 계약자들 간의 계약에 따른 공정한 행위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논외로 칠 때, 노동삼권은 얼마간 서구의 자본주의의 특정한 역사적 단계(즉 복지국가적 자본주의)의 타협과 성과를 반영한다. 이 시대의 법은 사회란 노동(혹은 고용)에 바탕한다는 공리를 전제한다.
따라서 노동삼권이란 노동자라는 특수한 이해집단의 권리이기에 앞서 사회란 노동에 근거함을 전제하며 제시된 사회적 조정의 원리일 것이다. 노동삼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란 특수한 이해집단이기에 앞서 법이 상대하는 “국민”, “사회적 존재 일반”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노동삼권이란 국민이 자신의 삶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권리의 하나이다. 반면 기업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인민의 권리, 피치자의 권리를 특수한 이해관계자의 권리로 축소한다. 이는 몇몇 논자들이 이야기하는 “시민사회의 소멸”이라는 흐름에 대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민사회란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와 사회를 매개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노동조합이나 지역사회는 국가가 사회를 관리하고 경영함에 있어 사회를 매개하여주는 장치였다. 그러나 이제 시민사회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소송하는 개인이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쟁의의 주체”는 “소송의 주체”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헌법의 개정을 둘러싼 욕망에는 노동에 근거하고 시민사회의 매개를 통해 사회를 관리하던 체제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을 것이다. 불과 십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했던 노동조합운동은 이제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주축이 되어 국가와 협상하는 주체가 되기는커녕 탈규제적인 개혁을 가로막는 귀찮고 성가신 사회 발전의 장애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기획이 설 자리는 영영 사라지고 소비자적인 시민의 잇단 소송과 판결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 따라서 기업가적인 정부와 소비자적인 시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언제나 법률적 소송이라는 형식에 의존하고 사회적 갈등의 공간은 법정이라는 밀실에 유폐되어 버린다. 87년의 6월 항쟁 이후 등장한 새 헌법이 이미 낡은 법이 되었다는 주장은 솔깃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개정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기에 우리는 걱정을 덜 수가 없다. 굳히 탈규제적이고 유연한 지배를 보증하는 헌법이 등장하지 않아도 국제법에 따라, 국제기구의 비준과 요구에 따라 한국 사회는 관리받고 있다. IMF 위기가 헌법의 위기가 아니었다면 무엇인가. 사회적 부의 분배와 관리를 위한 권리가 국민에게 더 이상 바탕하지 않는 법의 체제를 겪은 마당에 헌법의 자리는 옹색하고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에 참여하는 두 개의 흐름을 경계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한 쪽에서 주장하듯, 현재의 헌법에서 더 많은 인권, 더 많은 기본권, 더 많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차별과 억압, 착취를 극복하는 주체를 소송의 주체로 형식화하는 몸짓에 불과하다면 그같은 헌법 개정의 논리에 명백히 반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레이건-부시 정권의 사법개혁의 핵심이 “위대한 사회”의 국민을 “자율과 책임”의 소비자적 개인으로 바꾸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성과 유색인종, 이주노동자, 게이와 레즈비언, 장애인, 복지수혜자는 자율과 책임의 개인이기에 앞서 사회의 성원이다. 인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상대하던 헌법을 잘게 나뉘어진 다원적인 이익집단과 지역사회로 나누는 헌법의 개정은 위험하고 또한 보수적이기까지 하다. 한편 극우적인 호헌론자와 달리 사회의 규범적인 한계로서 헌법의 존속을 지지하는 즉 법의 규범적인 초월성을 지지하는 또 다른 호헌론자들의 주장에도 반대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 냉소적인 눈길을 건네는 것이 곧 법이 유일한 사회적 통합의 조건일 수밖에 없음을 무시한 섣부른 태도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군주의 명령보다는 민주적인 헌법이 낫지만 그렇다고 헌법이 사회를 묶어주는 유일한 한계라는 것은 법을 향한 물신주의에 불과하다. 헌법을 향한 의문은 사회의 통합의 조건을 향한 의문이 아니라 사회의 적대와 대립을 향한 의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헌법을 개정하려는 욕망은 곧 헌법이 재현하는 사회적 구성원리에 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헌법의 전문을 다시 쓰는 상상에 어떤 재갈을 물릴 필요가 없다. 헌법의 전문을 바꿔쓰는 우리의 실험이 곧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를 발명하는 실천이어야 한다면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이렇게 헌법의 전문을 바꿔 쓸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인류의 모든 전통과 역사를 존중하는 세계시민으로서 국민의 주권과 타인의 주권에 어떤 우열을 두지 않으며, 오직 노동하는 민중의 역사적인 업적과 정의와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에 근거하여 자유와 평등, 우애의 원리에 따라 사회의 모든 성원의 삶을 향상시키고, 불의와 차별, 억압에 대항하는 민중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되 이것이 그 어떤 이념적인 한계와 조건에 앞서는 것임을 분명히 하며, 일체의 삶의 영역에서 민중들 각자가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고른 삶의 기회를 누리되 이에 어긋나는 어떤 간섭에 앞서 이것이 우선함을 확인하면서 1948년7월12일에 제정되고 9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쓰고 나니, 석연치 않다. 국제법과 헌법의 관계가 애매해지는 시대, 국민과 비시민이 뒤섞여 사는 시대, 주권적인 삶의 기반이 바뀌어버린 시대, 그런 시대에 헌법의 전문을 다시 쓰는 것은 곧 상상의 작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모습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분석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간 황해문화> 2004년 가을호에 기고한 글… 주제는 다시 쓰는 헌법 전문. 헌법전문을 다시 써서 얌전히 바치기는 커녕 기획의도에 대하여 불쾌한 시비를 걸 수도 있는 글이 되어버렸다. 몇 해동안 법률과 사회, 혹은 소송사회에 대한 나의 근심은 커지고만 있다. 언젠가 털어보고 싶은 주제 가운데 하나..

공포산업의 사회 – 과연 누가 정의의 주체가 될 것인가


느와르 영화의 변천을 눈여겨보면 느와르와 네오 느와르 혹은 그 이후의 잡종적 느와르를 구분해주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그 가운데 하나가 단연 “정의의 위치”라고 부를 만한, 느와르 영화를 조직하는 주인공의 위치일 것이다. “고전적인” 느와르 영화에서 정의의 위치는 대부분 주인공이 스스로 떠맡는 편이다. 이를테면 저 유명한 사립 탐정 “필립 말로우”가 그런 인물을 대표할 것이다. 그는 법의 정의에 관하여 깊이 회의하지만 그렇다고 법의 바깥에서 정의의 기반을 찾아내는 데엔 실패하고만 인물이다. 따라서 느와르 영화의 중요한 매력 가운데 하나는 주인공의 영웅적인 고독, 아무런 보증 없이 제 스스로의 힘으로 정의를 수립해야 하는 그의 외로움에 있다. 이렇듯 히스테리컬한 주인공의 “정의의 위치”는 바로 부패한 경찰, 무능한 정의를 배경으로 할 때에만 제대로 살아난다. 정작 정의의 위치를 맡고 있어야 하지만 그를 방기한 채 무능하고 무력한 관료적 장치가 되어버린 경찰 그리고 생생한 삶의 세계 한 복판에서 정의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집행하는 주인공의 대립. 이런 대조법이 있을 때에야 주인공의 정의는 제 힘을 발휘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신의 자의적인 변덕과 개인적인 판단을 휘두르는 자로 전락해버리고 우리는 그저 그런 무법자의 광란극을 보는데 머물고 말 것이다.
따라서 느와르의 세계는 관료제적인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물론 그런 관료제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제도는 경찰이다. 느와르 영화의 배경은 관료제적 자본주의, 특히 공무원과 경찰로 대표되는 행정 기구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 치안과 안녕을 돌보고 관리하는 사회이다. 이런 관료제적 기구와 장치는 범죄에 관한 통계를 수집하고, 사망률을 집계하며, 자연재해와 화재, 사고를 예방하고 처리한다. 그리고 이는 주민 혹은 인구(the population)의 삶을 지배의 목적과 연결시키는 방대하고 복잡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냈다. 느와르의 주인공이 서있는 정의의 위치는 바로 이런 관료제적 장치가 맡고 있는 정의의 기능 혹은 “국가의 이성(raison d’etat)”과 대립하는 자리에 있게 된다. 그의 위치는 관료제적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경찰과 법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감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느와르의 주인공은 삶의 세계를 진득하게 뒤덮고 있는 악을 간단히 문서상의 범죄로 간주하고 처분하길 거부하고, 제 스스로 목숨을 걸고 정의를 만들어내고 행사하려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덧붙이고 싶은 점은 판단하는 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끌려 기존 질서의 정의와 다른 위치에서 그도 모르게 정의를 찾으려 애쓴다. 그런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애매한 위치야말로 느와르 주인공이 뿜어내는 매력의 진원지일 것이다.)
이 점에서 네오 느와르나 그 이후의 잡종적 느와르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정의의 위치 변경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새로운 느와르 영화들에서 발견하는 “정의의 위치”는 관료제적인 자본주의의 형식적인 법률적 정의 대 주인공의 고독한 정의의 대립을 무너뜨린다. 조금은 도식적이겠지만 네오 느와르나 잡종적 느와르들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을 자본주의의 변화와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새로운 자본주의, 우리가 지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는 자본주의는 바로 이런 관료제적 자본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등장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느와르 영화의 배경은 바로 이런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자본주의 사회를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말한 것처럼 “공포산업”의 사회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포는 날로 호경기를 맞고 있는 사설 경비 산업과 사회통제산업의 원료다. … 사설경찰과 사설 감옥 시장은 대목을 맞고 있는데,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점점 더 이웃의 감시자요, 공포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느와르 영화에서 주인공의 관료제적인 법과 행정기구에 대한 환멸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냉소적이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적인 주체”, 주인공의 개인적인 “판단”이 들어선다. 이 때 정의의 위치는 동시에 사라진다. 아니 사라진다기보다는 골고루 나뉘어진다. 정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정의롭거나 아니면 아무도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커티슨 핸슨의 을 생각해보자. 그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정의는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얻기 위하여, 개인적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하여 각각 정의에 가담한 냉소적이고 나르시시즘인 개인들의 정의일뿐이다. 그것은 이기적인 이해관심과 정의 사이에 구분이 사라져버린 세계이다. 그리고 그들은 놀랍게도 모두 경찰관이었고 그들이 투쟁하고 있는 악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찰조직 안에 기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서 바라보는 것은 사실 경찰이라는 근대 국가권력의 가장 커다란 관료제적 조직의 부패라는 직접적인 사실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생명과 행복, 질서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중립적이고 초월적인 기능의 관료제적 장치 자체의 몰락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테면 많은 잡종적인 느와르들, 특히 SF 느와르의 핵심적인 무대는 대개 사적인 비즈니스로 전락한 경찰과 그들이 활약하는 정의라곤 없는 미래의 황무지(대개는 LA)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우리 시대의 느와르에 독특한 색채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주민의 삶의 복리를 증대시키는 것을 자신의 지배의 합리성으로 삼는 자본주의 권력을 생권력이라고 부르며 푸코는 “공안(police)”이란 개념의 등장을 강조한 바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폴리스”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경찰이란 개념과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공안은 복지와 노동, 교육 등의 기능으로 점차 분리되어나가고 치안이나 공공안녕이란 개념 등으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주민의 삶 혹은 생명을 돌보는 권력으로서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하였고, 이것이 경찰을 비롯한 방대한 관료적 제도를 발전시켜왔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관료제적 자본주의의 총아인 경찰과 관료제적 기구들은 사라지거나 대체되어가고 있다. 감옥산업복합체니 안전주택단지니 하는 말들은 더 이상 낯선 말들이 아니다. 강남의 부자들이 사는 동네엔 이미 골목마다 폐쇄회로감시티비가 설치되어 있고 전자감시사회란 말이 무색할 만큼 온갖 “안전”의 전자적 장치와 서비스들이 판매되고 있다. 경찰보다는 “세콤”을 믿으며, “파출소”보다는 “보디가드”를 더 믿는다. 보안, 경비는 이제 국가의 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날로 번창하는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며칠 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2006년부터 자치경찰제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상당한 생색을 내고 싶어하는 청와대와 지배 집단의 욕심과 달리 이는 그만저만한 주목을 받고 금새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질 태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치경찰제의 도입이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대단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자본의 구조조정을 넘어서 국가의 구조조정으로 나아가는 (사실 이것이 노무현 정권의 핵심적인 국정 과제이다) 변화의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을 비롯한 일련의 개혁에서 성공점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노무현 정권은 슬슬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이다. 그것은 비대한 구 시대의 중앙집중적인 국가권력에서 주민의 자율과 참여에 의해 운영되는 경찰로 탈바꿈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수요자 중심의 사회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원칙을 내걸고 있다. 그렇지만 공급자 중심의 공공적인 사회적 서비스를 수요자 중심의 맞춤 서비스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가 이제 공공적인 사회적 서비스를 사유화, 시장화한다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치안불평등”이라는 재난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식중독과 교통사고, 갖은 범죄가 만연한 대다수의 가난한 자들의 마을과 첨단전자안전장비로 중무장한 요새 저택에 살며 사설보안, 경비업체의 서비스를 통해 이중삼중으로 생명과 안녕을 보장받는 한줌밖에 안되는 부자들의 마을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미 미국과 남미에서 만연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들 나라에서 감옥산업과 범죄산업의 나란한 발전, 그리고 앞서 말한 공포산업의 폭발적인 번영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바로 우리가 지지해야할 정의 역시 근본적인 위기를 맞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경찰”을 향한 비판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일이다. 우리는 행정 권력의 전횡을 고발하는 인권기구와 시민단체를 통해 이에 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자치경찰”이 감금한 수많은 잡범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민의 이해관심으로 환원된 정의를 위해 어떤 다른 정의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실질적인 내용을 갖지 않은 순전히 형식적인 개념인 국민(혹은 인구)을 내세우며, 관료제적 국가는 그나마 정의를 구체적인 이해와 요구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있었다. 그럼으로써 정의란 개념을 이해관계의 맥락에서 떼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치경찰의 시대에 정의란 누구에 의해 제정되고 주장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물음을 회피한 채 자치경찰제를 맞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렵지만 물어야 하고 또한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
컬티즌에 기고한 글 (부디, 악플 없길…)

제발 도롱뇽이 되지 말자 – 생명의 윤리학 비판


아마 우리 시대에 가장 거룩한 성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며칠 전 58일간의 단식을 끝낸 지율 스님이 아닐까. 이름 없는 미물, 작은 짐승 한 마리에도 생명의 고결함을 발견한 사람, 도롱뇽의 삶을 파괴하고 살해하는 “막개발”을 고발한 외롭고 거룩한 영혼. 그는 천성산을 관통하는 공사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결행하였고 마침내 문재인이라는 청와대 청지기의 방문으로 단식은 해제되었다. 6조원을 투입한 국가의 대 역사(役事)에 맞서 외롭게 분투하느 스님의 고집과 결의는 충분히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한 마리의 도롱뇽에게서 문명의 잔인한 폭력, 죽음에의 위협을 발견하고 생명의 위엄을 방어하려는 이, 그가 던져주는 깊은 울림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자꾸 짓궂은 그러나 이유 있는 물음을 던지고 싶은 유혹에 빠져든다. 전신이 마비될 듯한 숭고한 윤리적 장면 앞에서 불경한 의구가 자꾸 꼼지락거린다.
괘씸한 일이겠지만 나는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떼를 쓰는 프랑스의 어느 여배우의 이유 있는 “윤리적인” 주장과 천성산 도롱뇽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는 지율 스님의 “윤리적인” 주장 사이에서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개고기를 먹는 타자의 풍속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서구 숙녀의 신경질적인 무례와 무지를, 우리는 매우 손쉽게 비난하다. 그렇지만 도롱뇽 사건(?)은 그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이는 그런 시시한 문화적 사안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22분 빨리 가겠다고 누억년 동안 이뤄진 장엄한 자연의 업적을 간단히 파괴하는 문명의 힘에 대항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단식을 해제한 후에 지율 스님이 천성산 닷 컴에 올린 글처럼 이미 이긴 게임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긴다. 왜냐면 우리는 바로 그 생명의 위대함이란 편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 비슷한 글을 지율 스님은 게시판에 올렸다.
그렇지만 개에게서도 역시 삶의 위엄을 발견하는 브리짓 바르도는 왜 성스러우면 안 되는가. 물론 여기에는 윤리적이고 뭐고를 떠나 우리는 개의 생명의 위엄이란 것이 서구의 우아한 숙녀의 허영스런 삶을 치장하는 장식으로 전락한 것 때문에 불쾌하고 분개했을 것이다. 번지르한 서구 부르주아적 라이프스타일의 편에 서있음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났기에 그녀는 결국 진 게임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개발 문명을 향한 비판이든 타자의 야만적 풍속에 대한 비판이든 두 입장은 자신의 근거로 생명의 존엄을 끌어들이는데 있어 일치한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공명하는 윤리적인 태도를 문제삼고 싶어진다. 그래야 우리는 천성산 막개발에 맞선 지율 스님의 결단을 제대로 도울 윤리적인 입장을 찾을 수 있다. 그래야 “부안”에서 벌어졌던 투쟁에 제대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 혹은 현자가 되어버린 전직 혁명 시인의 말을 빌자면 “살림”의 세계관.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윤리-정치적인 지상명령이 되어있다. 그러나 생명 혹은 삶의 존엄이라는 명령이 근대사회의 핵심적인 권력의 윤리였음을 즉 자본주의적 삶의 일차적인 원리였음을 망각해선 안될 것이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타인을 직접적인 인격적 예속 상태에 두었던 봉건 사회는 근대인에게 언제나 죽음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반면 모든 인격적인 예속에서 벗어난 채, 신민, 노예의 지위에서 벗어난 근대의 자유인에게서 우리가 떠올리는 근본적인 형상은 삶의 이미지이다. 이를 두고 푸코같은 이는 말년에 전근대 사회란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는 사회라면 근대 사회란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이런 그의 생각을 압축하는 유명한 도식이 바로 지금은 거의 우리 시대의 상투적인 현학적 용어가 되다시피한 “생권력(bio-power)”이다.
푸코의 생각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민들을 살게끔 한다(살게 하는 권력). 잘 먹고 잘 사는 것,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 국민의 장수와 건강을 목표로 삼는 것, 이것이 근대의 생권력의 목표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즉 죽음과 분리된 삶의 시간을 극대화하는 사회, 삶의 가치와 행복을 정점으로 밀어 올리는 사회, 포드주의적 복지국가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이 사회는 생권력을 통해 지탱되는 자본주의였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가 등장했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으로 대표되는 시대, 생물학의 시대인 후기 자본주의가 생권력 자체로 움직이는 사회라고 달리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푸코가 결코 미완의 유산으로 남겨놓은 후기의 모든 작업은 바로 이런 생권력의 비판에 할애되어 있었다. 말년의 푸코가 저항은 권력에 내재적이라는 절망적인 결론에서 탈출하기 위해 “존재의 미학”을 꿈꾸는 하찮은 자유주의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항간의 비난은 옳지 않다. 그에게 붙여준 권력의 미시물리학의 해부학자라는 명칭은 생명의 존엄이라는 윤리에 따라 행사되는 권력을 비판하는 기획을 인식할 때 오직 온당한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박정희 체제는 생권력의 화신이다. 박정희는 국민이 따뜻한 쌀밥을 배불리 먹게 하는 꿈을 꾸었던 도착적인 모습의 근대 군주였다. 그가 도착적이었던 것은 파시즘의 핵심적인 특성이 그렇듯이 살리기 위해 마음껏 죽였다는 점에 있다. 아리아 인종의 삶, 독일 국민의 생명을 위해 생식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인 논리(우생학과 사회위생학 등)를 동원했던 나치즘은 생명, 삶에 미친 권력이었다. 이처럼 박정희 체제도 역시 국가의 부강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 긴급조치와 반공법이라는 죽일 수 있는 군주적 권력은 번영과 행복이라는 근대적 생권력과 함께 회전하였다. 우리가 박정희 체제를 그토록 오랜 동안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그는 애꿎은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살해하고 고문한 독재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는가. 그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박정희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왜 불충분하고 불가능한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장식된 추상적인 민주주의와 삶의 권리란 내용으로 충만한 “한국적 민주주의” 사이에서 엉거주춤 서있다. 그래서 박정희 체제의 유령은 죽지 않고 살아 날뛴다.
대학살, 홀로코스트의 권력이 삶의 권력, 생명의 권력이라는 이 기묘한 역설을 깨트릴 때 진정 나치즘을 비판할 수 있다고 주장하듯이, 우리 역시 생권력으로서의 박정희 체제를 비판할 수 있을 때 지금 문제가 되는 “현대사 바로잡기”에 역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무고한 생명을 죽인 권력이란 점에서 좌익과 우익은 다를 바 없다! 그래 친일부역자, 민족의 삶을 팔아먹은 반역자를 고발하라! 그러나 동시에 역시 생명을 죽인 또 다른 악인 좌익도 고발하라! 우리는 지금 이런 어처구니없는 공갈에 맞닥뜨려 있다(최근 한나라 당은 이런 협박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물러나선 안 된다. 전체주의와 살육, 전쟁이라는 모든 역사적인 악의 기원에는 생명을 향한 위협이라는 악의 윤리가 있다는 협박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래 그들도 삶에 대한 존중, 인간의 얼굴이 없었다고 뇌아림으로써 둘을 은근슬쩍 뒤섞어선 안 된다. 인간적인 모습을 덧붙임으로써 더 나은 해방의 전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 패배적인 것은 없다. 한 포기의 풀에서도 지고한 생명의 향기를 느낀다는 윤리적인 농담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생명의 존엄이란 이름으로 파업할 권리를 가까스로 방어하고, 인권이란 이름으로 정치적 항변을 가까스로 보호하는 이 지긋지긋한 생명의 사회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생명의 존엄은 초월적인 윤리적 명령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의 논리이다.
지율 스님에게 우리는 간곡히 부탁해야 한다. 도롱뇽에게서 불성을 발견하기에 앞서 해방자 붓다의 모습을 발견하자고. 삶의 덧없음을 알려주며 자유를 추구하기를 설법하는 캘리포니아 선사들의 붓다가 아닌 붓다, 도롱뇽에게서 인간과 다름없는 생명의 위대함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생태철학의 붓다가 아닌 붓다. 지상 최대의 인도주의자에 불과했다면 붓다는 어느 사회에서나 흔하디 흔한 생명지상주의의 도덕군자에 불과하다. 동물학대반대운동론자를 우리 시대의 성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살고 죽는 생명의 차원으로 전락한 인간, 즉 죽는 존재로서의 동물-인간이 아니라 불사(不死)의 존재, 억겁을 거쳐도 결코 죽지 않는 인간, 자연의 흐름을 교란하며 분리되어 있는 예외적인 존재를 옹호한 붓다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도롱뇽이 되어선 안된다. 우리는 이미 삶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회,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사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럼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천성산의 도롱뇽, 시화호의 지네, 서해 갯벌의 지렁이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분리된 인간이 되기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당연히 천성산의 막개발을 막아야 한다. 설악산의 산양을 지켜야 한다. 나아가 이라크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착취를 막아야 한다. 생계형 자살을 막아야 한다. 이에 맞서 투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생명의 위엄, 삶의 존엄이란 이름으로 막을 수는 없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도모하는 사회적 권력의 윤리와 악착같이 웰빙에 매달리고 무병장수의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소비자본주의적 개인의 윤리, 그 모두와 같은 차원으로 변화의 윤리를 내동댕이칠 수 없다. 알다시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윤리를 저버리기 시작했는가. 스웨덴형인지 네덜란드형인지 노사정 대타협을 향한 꿈이 이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유일한 꿈이라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더욱 악착같이 고용유연화를 하여 노동하는 삶의 질을 제고하고 (물론 그것은 대량실업과 고용불안정이라는 삶의 위협을 낳을 수 있으므로) 부디 죽지 말라고 덧 얹어주는 약간의 “사회안전망”, 그런 것이 우리의 윤리가 될 수는 없다. 빈사상태의 윤리를 소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진과 수양이 아닐 것다. 오히려 죽음을 무릅쓴 인간되기,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컬티즌에 기고한 글. 또 욕먹을 글을 썼다는 핀잔에도 불구하고 만용을 부렸다. 일전 당대비평의 특집호에 써먹으려했던 메모에서 한꼭지를 끄집어냈다. 확답이 있는 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심문하는 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도 불안하게 묻고 있는 물음, 그러나 분명히 확인된 물음, 답은 예비되어있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물음을 자꾸 던지며, 무책임해진다. 그럴 수록 초조감만 깊어간다. 며칠 이상한 두통에 시달렸다. 머리 전체에 열기가 가득한 편두통. 머리 전체가 바이스에 물려있는 듯한 멍청한 상태. 지난 원고를 쓰고 난 후유증같다. 어제는 작정하고 글을 읽지 않고 편히 쉬겠다 생각하고선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잠을 청했다. 조금은 나아진 듯?

감성적인 너무나 감성적인 자본주의?

언젠가부터 지식정보자본주의란 말이 세상을 휩쓸더니 이제는 미적 경제니 감성 경제, 체험 경제, 창의적 경제니 하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모두 전 시대의 경제와 지금의 경제 사이엔 큰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가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정의하며 나온 개념들이다. 각각의 개념은 모두 하나의 물음을 향해 있다. 그 물음은 우리 시대에 경제적 가치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이다. 이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보수주의자이든 사회주의자이든 정치경제학의 편에 선 사람들은) “노동”에서 가치가 나온다는 입장을 지지했다. 그렇지만 신경제의 시대에 이런 접어들며 오랜 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노동가치론은 심각한 도전에 부닥쳤다. 가치는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 지식, 정보, 미적인 가치, 감성적인 자극와 효과 등에서 나온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당장 집 근처의 대형할인점을 상상해 보라. 우리는 쌀집에 가서 쌀을 사먹었다. 그리고 삼겹살을 구워먹으려면 동네 정육점에 들러 삼겹살을 사먹었다. 쌀은 그냥 쌀이고 삼겹살은 그냥 삼겹살일 뿐이었다. 다를 게 있다면 고작해야 경기미냐 정부미냐, 어제 잡은 돼지고기냐 일주일이 지난 돼지고기냐 하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달걀 한판을 사는데도 고심해야 한다. DHA 성분을 강화한 달걀, 녹차 먹은 달걀, 콜레스테롤 없는 영양 달걀, 홍삼 먹은 유정란 등등 온갖 종류의 달걀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냥 달걀은 달걀일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 지식과 정보를 추가함으로써 달걀의 가치는 달라진다. 어떤 참신한 지식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상품의 가치는 매우 달라진다. 그냥 달걀이 아니라 건강에 좋은 성분을 추가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돋울만한 포장과 진열을 하면 상품은 다른 값으로 팔 수 있다. 한 알에 몇 십원 하는 달걀도 어떤 정보와 지식, 감성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몇 백원하는 달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적 경제니 체험 경제니 하는 개념을 내세운 어느 경영학자는 매우 그럴 듯 하게 들리는 예를 제시한다. 생일 파티를 한번 생각해보자. 구 경제의 시대에 엄마는 생일 파티를 마련하기 위해 밀을 빻고, 계란과 신선한 우유를 구해, 생일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가 왔고, 이제 엄마는 동네의 식료품점에서 물을 붓고 섞은 후에 바로 오븐에 넣고 구우면 되는 간편한 케이크 가루로 간편하게 생일 케이크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또 세월은 흘러 “서비스경제”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엄마는 동네의 수퍼마켓에서 어린이를 위한 생일파티용 케이크를 주문하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체험 경제”의 시대가 찾아왔다. 이제 엄마는 휴대폰이나 인터넷으로 파티 체험을 제공하는 회사에 주문을 한다. 그럼 어린이의 감성을 오랫동안 연구해서 풍부한 프로그램을 가진 파티전문회사가 생일파티를 배달한다. 이제는 생일 케이크뿐 아니라 어린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게임, 놀이로 가득찬 파티를 가져온다. 밀가루에서 케이크가루, 다시 수퍼마켓의 배달 케이크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생일 파티의 체험.
이같은 변화의 과정은 곧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예전에 사람들은 상품이 충족켜주는 편의를 구매했다. 생일 케이크가 필요했기 때문에 생일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구입했다. 그렇지만 서비스 경제 시대엔 사람들이 집에서 번거롭게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적인 부담과 번거로움, 즉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미 만들어진 갖가지 모양과 재료의 케이크를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케이크 가루보다 훨씬 비싼 값에 생일 케이크를 팔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체험의 경제, 감성의 경제 시대에 사람들은 케이크 이상의 것을 판다. 그것은 상품 안에 꿈과 추억, 기쁨과 모험심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추가한다. 그래서 케이크를 파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파티를 판다. 이제 사람들은 상품에 깃든 편의를 구매하는 것이 그 상품에 깃들어 있는 즐거움, 체험의 요소를 즐기려 한다.
이제는 음식을 사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멋지고 즐거운 체험을 함께 나누는 체험을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상식처럼 여겨진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은 장맛도 좋고 뚝배기도 좋아야 하며 게다가 시골의 구수하고 따뜻한 정서까지 함께 팔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외식산업이라는 구 경제 시대의 후진 말 대신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 즉 먹다(eat)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결합한 새로운 용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새로운 경제적 시대가 우리의 삶에 깊이 자리잡았다는 점을 극적으로 알려주는 조짐은 “웰빙”의 유행일 것이다. 웰빙은 더 잘 사려는 소비자의 욕망을 보여준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덧붙임으로써 상품을 비싼 값에 더 많이 팔려는 기업가의 욕망을 보여준다. 이제는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엄마가 해주시던 김장김치처럼 잘 숙성된 김치를 보관해주는 김치냉장고가 시장에 나온다.
그렇지만 과학기술혁명이 낳은 첨단적인 생산의 시대에 상품의 가치는 이제 더 이상 상품에 투입된 노동과 재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추가된 지식과 정보, 라이프스타일과 미적인 가치, 정서적인 체험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에 너무 쉽게 동조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디지털 정보통신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자본의 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가장 값싼 임금에 가장 유순하고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일하는 노동력을 찾아 자본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이를테면 퓨마같은 운동화가 생산되어 판매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고무와 가죽은 남미에서, 제조는 중국에서, 포장은 필리핀에서, 광고는 뉴욕에서, 마케팅 이벤트는 런던에서 행해지는 게 일쑤이다. 이처럼 새로운 감성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는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흐름이 있다. 따라서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한 자본주의,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감성과 호흡하는 자본주의는 또한 불평등하고 야만적인 자신의 모습을 은폐한 자본주의일 수 있다. 우리가 너무나 감성적인 자본주의를 너무 손쉽게 환영해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 기고한 글. 쉽게 쓴다고 썼는데…쩌업

민주주의와 그 너머 – 애도의 문화정치학

애도하는 국민
한국 사회에 대중들이 정치적인 행위에 가담하는 중요한 형식이 애도였다는 점은 서글픈 일이다. 가까이는 김선일씨의 죽음을 향한 애끓는 애도, 미군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을 향한 안타까운 공감의 애도, 그리고 멀리는 이한열, 박종철, 전태일, 김주열로 이어지는 투사들의 죽음을 향한 애도까지, 우리는 (정치적) 애도 행위를 통해 정치의 공간에 참여하여 왔다. 어떤 인물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처리하고 조직하는 의례를 통해 낯선 정치적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외려 그것은 마치 평범한 관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모든 사회의 정치적 사태 안에 스며들어 있다. 왕의 죽음이든 지식인의 살해이든 혁명가의 처형이든 우리는 죽음을 통고하는 소식을 통해 그리고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의례를 통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기존의 정치적 공동체를 보다 단단히 결속하는 권력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반대로 기존의 정치적 공동체를 돌파하는 열정을 끌어내며 근본적인 저항을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애도는 직접적인 정치적인 행위와 관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정치 공동체를 조직하는 근본적인 조건 자체에 연관되어 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은 우리의 정수리를 후려치는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 당시 모두 전두환 정권의 잔학한 폭력에 대해 이미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학생들과 지식인, 노동자들이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 이상 소문이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우리는 더 이상 현재를 감당할 수 없으며 지금의 정치체제를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시대의 기분에 감염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자각이 행위로 곧 정치적인 참여로 전환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이럴 수는 없어”라는 막연하고 우울한 확신이 “세상을 바꿔야 해”라는 행위로 비약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윤리적인 긴장이 가로놓여 있다. 애도가 자리잡은 공간은 바로 그 윤리적인 긴장의 자리이다. 정치적 애도는 행위의 망설임 앞에 놓여있는 윤리적인 긴장의 뇌관을 격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불에 데인 듯이 그 애도의 공간에 빨려 들어가 진정한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80년의 광주항쟁의 며칠이나 1987년의 6월 10일은 아마 그런 행위의 날짜였을 것이다. 그 애도의 날들은 더 이상 자신의 주관적인 의도에서 구속되지 않은 채 마치 맹목적인 힘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열정에 이끌리는 날들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볼 때 정치적 애도란 정치적인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이 정치적 주체의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이유 없는 윤리적인 강요임을 우리에게 암시한다.
왜 당신은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가. 이 물음에 답변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핑계를 내세울 수 있다. 아마 쉽게 들을 수 있는 답변은 “주체의 선택”이란 가정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당장 먹여 살려야할 처자식,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고생하신 시골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럽지만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내가 운동의 대의에 전적으로 지지하며 공감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에 적극 가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안타까운 인간적 이유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서슴없이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겉보기에 선택이라는 형식을 취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선택 이상의 행위이다. 다시 말해 타산적인 이해와 계산으로 환원할 수 없는 윤리적인 차원이 그 안에 담겨있다. 운동에 참여하는 것 혹은 일반적으로 말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는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은 선택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처벌과 감금, 고문의 희생을 비롯한 불이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친 것처럼 뛰어드는 것이다. 반란은 분명 계산된 행위, 기획된 실천이지만 그 안에 놓여있는 주체는 의도적인 주체가 아니라 미친 자와 비슷하다. 그래서 반란은 미친 짓이다.
이쯤에서 지금 이 맥빠진 민주화 시대의 “정치적 주체의 윤리”와 근본적인 정치적 행위의 주체의 윤리를 비교하면 어떨까. 만약 NGO에 참여한다거나 자원봉사단체에 참여할 때 우리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생태주의, 공동체의 자기 지배 등의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울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정치적 행동에 깔린 윤리적 배경을 자신 있게 부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윤리적인 배경이 곧 변혁적인 행위에 가담하는 정치적 주체의 윤리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겉보기에 민주화의 요구와 친환경적인 경제성장의 요구는 형식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외려 단순히 정치적 제도의 변화에 머문 민주화의 요구보다는 자본주의적 문명의 근본적인 한계를 교정하고자 하는 환경운동이야말로 보다 높은 윤리적인 대의를 지니고 있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가 그것이 전 시대의 급진 운동(혹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 발휘하였던 것과 같은 강력한 윤리적인 압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급진 운동이 우리를 짓눌렀던 윤리적인 압박과 지금의 시민사회운동이 부과하는 (거북하기까지 한) 도덕적인 설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분명히 말해 지금의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기획이란 것은 윤리-정치적인 차원에서 무력한 것일 뿐 아니라 또한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당대비평 특별호에 기고한 글. 최종 본은 조금 고쳤다..
반란은 미친 짓이다 – 애도하는 세 가지 방법
우리가 “정치적인 애도”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 보려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애도”란 바로 제도화된 정치적 행위(이를테면 선거, 언론의 자유 등)로 환원할 수 없는 정치적 행위의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정치적 애도란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통합할 수 없는 요구를 던질 수 있는 “위반”의 가능성을 던질 수 있게끔 한다. 수많은 역사적인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왜 지배 집단이 그토록 장례식을 두려워하고 이미 죽은 자의 말없는 주검을 탈취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죽은 자는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는 침묵의 말로, 직접 들을 수 있는 투쟁하라는 요구보다 더 뿌리치기 어려운 힘을 발휘하며 우리에게 행위를 호소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이를 자신의 이웃, 동료, 시민을 살해한 불법적인 권력을 향한 분노가 낳은 감상적인 반응일 뿐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가 어느 시인이 극우 신문에 기고했던 글의 제목처럼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고 비명을 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같은 평범한 벗, 아우, 누이를 살해한 즉 자신과 동일한 공동체의 성원을 살해한 권력을 향해 분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머문다면 그것은 정말로 감상적인 파토스에 그칠 뿐이다. 자신과 같은 이웃의 모습으로 죽은 자가 수용될 때,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자신의 상상적인 타자,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공동체의 성원으로 그가 받아들여질 때 우리의 반응은 문자 그대로 감상적인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뿐이다.
그런 감상은 물론 현존하는 사회적 질서를 변형시키는 데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구조적 질서를 그대로 놓아둔 채 우리의 비루하고 서글픈 처지에 대한 연민, 더 고약하게 말하자면 나르시시즘적인 감상에 빠져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받치는 흐느낌 속에서 “그래, 잘가라, 친구여, 벗이여” 속삭이고 난 후 다시 이 지긋지긋한 현실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혼곤하고 비루한 삶이지만 우리는 이 삶이 우리의 현실임을 인정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도”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사망”의 수용이다. 기존에 있던 친밀한 인간관계 혹은 정치적 공동체를 그대로 놓아둔 채 그의 부재를 현실 안에 통합하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그에게 “고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것이고 그 결과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지평 안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공식적인 가족사, 정치적 공동체의 역사 안에 기억될 것이다. 두 번째의 애도의 가능성은 죽음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심리적 현실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감상적인 집착이다. 이런 나르시시즘적인 집착은 나의 벗, 이웃, 가족의 죽음 안에서 자신의 상상적인 타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때에 애도는 과도한 감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다. 그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가는 현실 안에서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 나는 내 삶에서 마주치는 자그마한 흔적들 안에서 그를 상기하며 걷잡을 수 없는 감상적인 우울에 휩싸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애도의 세 번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문자 그대로 “죽음의 굿판”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수용하는 정상적인 절차인 죽음을 현실 안에서 부재하지만 그의 상징적인 위치를 마련해 줌으로써 죽음을 현실에 통합해 내는 첫 번째의 애도, 그리고 감상적인 집착에 시달리는 불완전한 형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인정하며 그것을 현실로 통합해 내는 두 번째의 애도와 달리, 세 번째의 애도는 개인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그 때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은 있을 수 없는 듯이 보이는 반대의 것 즉 희망의 축제로 실체변환할 수 있다. 장례의 절차를 통해 죽음을 상징화할 때 그리고 애도자로서 죽음을 수용하기 위해 곡을 하고 분향을 할 때,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개인과 사회를 보호한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 사람은 산 것이다. 우리“?살아야할 이 세상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죽음에 새겨진 위협을 우리의 상징적 질서 안에 포함시킨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것이 죽음을 애도하는 가능성의 전부는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죽음에 부여한 의미에 결코 화해할 수 없을 때, 애도의 과정은 장례가 아니라 미친 짓으로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해 죽음의 굿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광주항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광주항쟁은 알다시피 애도의 과정이었다. 그것은 계엄군의 진입과 무고한 학살로부터 비롯된 죽음을 향한 애도의 과정에서 폭발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애도의 과정은 사회 안에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추모와 장례의 행위로 종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광주항쟁에 관한 열정적인 기록들이 들려주듯이 열흘 밤낮의 황홀한 해방구, 이미 존재하는 정치적 공동체로부터 완벽히 벗어난 새로운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그것은 애도의 대상이 되었던 죽음을 이미 존재하던 정치적 규범에 따라 해석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기존의 정치적 상징질서의 바깥으로 과감히 뛰쳐나가는 미친 짓이었다. 광주 학살의 첫날 광주 시민들은 곤봉과 총알 세례에 쓰러진 젊은 청년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즉각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반체제 폭도의 진압, 헌정질서를 파괴한 문란한 공적의 소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고한 죽음이었음을 그들은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죽음을 향한 공포와 형제와 이웃을 잃은 비통함에 머물러 있었다면 애도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거리를 만들어 놓으며 질식할 듯한 침묵과 흐느낌 속에 파묻혔을 것이다. 그리고 광주의 시민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들이 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향해 말을 건네는, 저 유명한 <님을 위한 행진곡>의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노랫말처럼,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의 거리는 사라져 버렸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행위, 즉 반란이 시작되었다.
정치적 애도와 윤리-정치적인 주체
여기에서 우리는 집단적인 죽음이 주술처럼 불러낸 끔찍한 폭력, 자신을 짓밟은 역사의 명령의 불의를 향해 앙갚음을 행하는 피억압자의 광기를 찬미하는 결단주의적인 사고를 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애도를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죽음에 직면한 주체의 집단적인 심리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애도 자체의 윤리-정치적인 사건으로서의 성격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왜 그것인 윤리-정치적인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를 먼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한열의 영결식장에서 울려 퍼진 문익환 목사의 잊혀지지 않는 애끓는 음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날 아침 그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의례적인 장황한 조사를 읽지 않고 “이한열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전태일 열사여…”를 길게 목놓아 불렀을 때, 많은 이들은 걷잡을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우리는 왜 그런 전율에 휩싸였을까. 그는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죽은 자들의 숱한 이름을 외쳐 불렀을 뿐인데 왜 우리는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그 날 분명 문익환 목사는 죽음을 수용하는 장례식의 정상적인 절차에 위배되는 지나친 짓을 하였다. 그는 죽음을 우리의 현실 안에 통합하는 행위,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우리는 그를 어떻게 우리의 가슴에 묻을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거절했다. 그가 한 것은 장례 치르기를 거부하는 것, 즉 그(와 그를 비롯한 모든 죽은 자들)을 평범한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 기념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고유명사를 읽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인 애도를 윤리-정치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문익화 목사는 직관적으로 고유명사와 그들을 위해 우리가 마련해 놓은 형식적인 직함, 기존의 정치적인 재현 체계가 부여한 지위인 민주화 운동의 투사라는 정체성 사이에 놓인 간극을 깨닫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그렇다, 그들을 민주화 운동의 투사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와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 형식적인 권리를 요구했던 시민의 일원으로서 그들을 부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그들의 죽음을 각오한 삶에서 그런 거의 상식적인 요구를 발견하고 만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설령 그들의 드러난 정치적인 요구는 그런 평범한 것으로 제한되어 있었을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이 말했던 것, 말 할 수 있던 것 이상을 요구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의 시민으로서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그들은 이해관심에 매달리지 않은 순결한 영혼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문익환 목사의 그 조사(弔詞)를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윤리를 모든 세속적인 정치적인 이해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노동자계급을 가난한 이웃으로 환원하고 그들의 불운한 처지에 “공감”하며 고생을 마다 않는 자선사업가의 윤리와 그들을 자본주의적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에 의해 착취 받는 계급으로 인식하고 반자본주의적인 투쟁에 투신하는 혁명가의 윤리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정치적인 애도의 과정에서 직면하는 윤리적인 충격은 앞의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도덕이 아니다. 우리가 정치적인 애도의 과정에서 목놓아 부른 “이름”의 주인들은 분명 사회의 변혁을 위한 정치적 투쟁에 참여한 공적인 주체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의 상징질서가 만들어 놓은 추상적인 정체성, 그의 정치적인 주체-위치를 통해 호명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그들은 열사, 투사, 혁명가, 민주주의자 등이 된다. 그렇지만 문익환 목사가 그들의 고유명사를 호명한 것은 정확한 일이었다. 이 때의 이름은 출석부의 번호 옆에 적혀있는 이름과 다르다. 그 때의 이름은 학급이란 사회에서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가리키는 정체성으로서의 번호(성적의 등수, 반 전체에서 키높이의 순서 등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규준)에 부속된 내용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은 근본적인 이타성으로서의 고유명사를 이야기하는 일부 철학자들의 주장에서 등장하는 그 고유명사와는 다른 이름이다.
고유명사는 상징적인 호명에도 불구하고 그에 소외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무엇보다 소중한 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한 나라는 허구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유명사가 자아(self)라는 상상적인 허구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또한 그것이 진정 고유한 이름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다. 그것은 방금 언급했던 문익환 목사의 호명에 등장하는 고유명사이다. 그 고유명사는 기존의 사회적 상징질서가 부여한 형식적인 지위로 환원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고유명사는 상징질서로 재현될 수 없는 탈소외된,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개인적인 삶을 가리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그 고유명사는 매우 독특한 성질을 얻게 된다. 그 고유명사는 레비나스나 데리다같은 이들이 말하듯이 상징질서의 어떤 규정에도 저항하는 근본적인 타자성, 사회로부터 해방된 환원불가능한 고유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고유명사의 고유성은 사회의 위계적 지위에 의해 매개되고 형식적인 정치적 규칙의 담지자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를 표시하는 주체의 고유성일 것이다.
민주주의와 그 너머 – 애도인가 투쟁인가
그렇지만 우리는 고유명사가 관계 맺는 사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때에 사회란 제도와 질서의 총체로서의 사회, 그 안에 속한 각각의 주체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매개하고 규제하는 체계로서의 사회가 아니다. 고유명사가 접근하는 사회, 차라리 그 고유명사가 반향하는 사회라 부를 수 있을 그 사회란 역설적인 뜻에서 불가능성으로서의 사회, 즉 다양한 사회적 체계와 구조를 가능케 하는 저변의 근본적인 원리로서의 사회를 가리킨다. 잘 조화된 전체, 통합된 체계로서의 사회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불가능한 사회를 가능케 하는 사회란 바로 사회를 가로지르는 근본적인 적대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를 당연히 계급적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계급투쟁은 사회학적인 주체로서 계급이라는 인격적인 집단 간의 대립과 갈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투쟁이 벌어지는 곳은 계급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구조화하는 외부와 자본주의 사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회는 계급투쟁이라는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를 유효하고 실제적인 사회적 질서와 제도의 형식으로 상징화한 결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복지국가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종속적인 국가독점 자본주의같은 다양한 형태로 상징화된다. 물론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사회란 이런 구체적인 권리와 지위, 제도와 질서로 상징화된 사회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회의 일반적인 질서를 수립하도록 하는 것은 언제나 상징적으로는 불가능한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가능성으로서의 사회와 규정적인 실제 세계로서의 사회를 분간해야 옳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고유명사가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그 사회란 다름 아닌 전자의 사회 즉 우리의 삶을 구조화하는 근본적인 대립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의 투사들은 민주주의자인가. 물론 그렇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가던 시대의 정치적 질서와 경제적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를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또한 그 이상이었다. 우리가 정치적 애도의 자리에서 섬광처럼 마주하게 되는 그들의 위치는 그러한 상징적 질서의 체계를 초과하는 (비)사회에 속해있다. 그들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요구를 제시하고 투쟁했지만 그래서 바깥으로 드러난 것은 평범하고 단순한 요구였지만 그들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버팀대를 무너뜨리는 들리지 않는 요구를 제시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요구는 사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자유민주주의적인 요구였지만 그 시대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요구였다. 만약 그런 요구가 수용되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한국 자본주의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업장 안에서 노동자의 계약관계와 정치적 공동체 안에서의 시민의 계약관계는 각기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주체성의 위치를 규정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체성의 다양한 위치를 조정하고 접합하는 자본주의이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꿈꾸는 요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 요구를 초과하는 요구를 주장하는 주체는 윤리-정치적인 주체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윤리-정치적인 주체의 차원이 개인의 도덕적인 태도나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위한 상징적인 규범이 아니라 왜 정치와 주체가 만나는 지점인지 깨달을 수 있다. 윤리-정치적인 주체란 도덕적인 개인과 정치적인 주체성이 결합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자아와 정치적인 주체성 사이의 만남으로 윤리-정치적인 주체를 간주한다면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전향” 그리고 “과거 청산”이란 문제를 어떻게 조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전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이 다양한 정치적 요구와 대의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향이란 어느 한 종류의 객관적인 지식에서 다른 종류의 객관적인 지식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변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전향에 저항하고 심지어 전향을 거부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전향을 강요당하는 주체가 다양한 객관적 지식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요구로서 자신의 이념을 선택한 주체, 즉 윤리-정치적인 주체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 청산의 문제와 연관하여 생각해보자. 우리는 구체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다양한 사실을 조사하고 그를 통해 그의 죄과를 해석하고 평가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과거란 행정적인 조사의 업무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민족주의자들이 “민족의 정기”를 주장할 때 포함된 윤리-정치적인 입장을 모방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청산이 자유주의적 개혁세력과 극우수구세력 사이의 세력 싸움을 위한 핑계에 머물지 않으려면 진정 잘못을 범한 윤리-정치적인 주체의 고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 때 우리는 일제의 야만적인 강요와 통제로 인해 모두 부역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동정을 뿌리쳐야 한다. 설령 그것이 거의 모든 사람을 망라하는 공동체 전체의 파국이 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감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친 김에 수많은 역사적 위원회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위원회들이 과거의 역사적 사태를 엄정하게 조사한다는 것은 사망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태와 연루된 정치적 주체에게 윤리-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화해와 진실을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시민참여의 민주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 시대의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애도란 어떤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윤리적인 주체와 만나는 순간으로서의 정치적인 애도, 그리고 정치의 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정치적인 애도는 희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중생의 죽음과 김선일씨의 죽음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적인 죽음을 애도하면서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갔다. 그렇지만 이런 거리의 애도는 허용된 장소에서의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행사가 되도록 강요당했다. 물론 이는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행위를 가로막는 근본적인 위협, 즉 가능한 것만을 요구하라는 협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설교를 하여왔다. 우리에겐 수구세력의 청산과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즉 충분히 제도화되지 않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요지이다. 그것은 물론 완벽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약간의 사회안전망, 철저한 신자유주의적 정치개혁과 약간의 다원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눈에 거리에서의 애도 역시 바로 그런 민주주의의 불충분함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증거로 각색된다. 삶의 요구가 정치적 제도 안에서 공식적인 권리와 요구로 대변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거리에서의 애도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민중들이 여전히 정치적 애도를 필요로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왜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인 애도에 참여할까. 우리는 어쩌면 민주화 시대의 시민적 주체로 호명된 우리와 근본적인 사회적 적대에 놓여있는 간격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닐까. 정치적인 애도란 민주주의가 강요하는 현재의 정치적 상징 질서 안에서만 사고하고 요구라는 협박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물론 자유주의적 정치세력은 그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을 다시금 기존의 상징질서 안으로 통합한다. 그들은 그것이 주체를 흔들었던 윤리-정치적인 차원을 모욕하고 정치적인 애도를 요구와 권리로 전치한다. 따라서 우리는 국회에서 조사위원회를 만들고 배상금을 지불하며 법률을 개정한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이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의 정치적 상징질서를 초과하는 윤리-정치적인 요구에 우리가 여전히 호소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은 한국 사회의 변혁적인 세력들에겐 중요한 희망의 징후이다. 허용될 수 있는 것만을 요구하는 타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상징적 주체로 전락한 정치적 주체, 보편적인 주체를 거부하고 타자화된 주체, 소수적 주체의 위치를 물신화하는 정치적 주체. 그 곁에 우리는 이 모두와 불화하는 윤리-정치적인 주체의 위치가 아직도 버티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한국의 변혁적인 세력들은 그 윤리-정치적인 주체에 접근할 어떤 전략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애도의 공간에서 느끼는 우리의 슬픔과 패배감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

상품의 세계, 가족의 세계 – 딩크족과 듀크족 그리고 가족의 생활세계

우리 시대의 인류학자는 마케터들이다. 20세기에 원시부족사회를 헤집고 다니며 현지조사를 벌이던 말리노프스키, 프란츠 보아스, 마가렛 미드같은 인류학자들이 있었다면 21세기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발명하고 취향의 만화경을 섭렵하는 시장조사자들이 있다. 이들은 천편일률적인 질문지를 들고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1950년대 시장조사자들의 모습과 닮은 데가 거의 없다. 이들은 마치 인류학자처럼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도시의 뒷골목을 뒤지며 청소년들의 하위문화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MTV와 나이키, 디젤같은 첨단 기업들에게 트렌드라고 불리우는 우리 시대의 신화를 판매한다. 인류학자들이 식민주의 정부와 커넥션을 맺었다면 이제 시장조사자들은 전지구적인 기업과 커넥션을 맺고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우리 시대의 부족민들은 라이프스타일의 부족들이다.
시장조사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얼개를 분석하며 명명하는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과거에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맡고 있던 이같은 역할은 이제 시장조사자들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이를테면 다가올 시대의 예보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그것은 트렌드 분석가들이다. 미국의 유명한 일간지가 트렌드 분석가인 페이스팝콘을 일러 “우리 시대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 칭했던 것은 전연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갈 사회의 모습은 곧 어떤 상품을 소비했는가에 의해 표현된다. 어느 문화이론가가 더 이상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것은 노스탤지어적인 상상력에 따른 역사일 뿐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를 정확히 최근의 한국 영화와 티비 드라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적어도 서태지 세대 이후 우리에겐 역사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을 통해 제시되지 않는다. 역사는 그 당시에 우리가 소비했던 소소한 상품들에 의해 표현된다. 당시에 우리가 신었던 신발의 브랜드, 당시에 우리가 먹었던 우유의 상표, 당시 우리가 즐겨들었던 대중음악 등이 그 시대를 보여주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가족사회학자들 역시 시장조사자들이다. 딩크족이나 듀크족같은 새로운 우리시대의 부족들 역시 모두 시장조사들이 발견하고 명명한 것들이다.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은 자녀 없이 부부 생활을 보내려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가리키고 듀크족(Dual Employed With Kids)은 맞벌이를 하면서 자녀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새로운 가족형태를 가리킨다. 딩크족이면서 아이 대신에 애완동물을 기르며 그들에게 감정적인 애착을 보이는 가족 형태는 딩펫족(Double Income No Kids+Pet)이라고 한단다. 여기에 조금 우울한 버전인 딘스족(Double Income No Sex)도 있다. 이들은 말 뜻 그대로 부부이지만 섹스를 하지 않는 커플을 가리킨다.
이런 새로운 가족 형태들이 지닌 특성은 겉보기엔 우리 시대의 가족 형태의 변화 추세를 예리하게 분석하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가족의 분석은 가족을 분석하는 자의 관점과 태도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화씨 9.11>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그는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어 참혹한 청소년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을 매우 설득력 있게 분석한 바 있었다. 그가 찾아낸 결론은 무엇보다 가난한 가족들의 비극이었다. 그가 찾아낸 미국의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은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려 해도 해고의 위협 혹은 빈곤의 공포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난한 가족들일 뿐이다.
이는 비단 미국에 한정된 일은 아닐 것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한국의 부부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듀크족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이 듀크족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뿐이다. 그들은 소비자 가족으로서 시장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딩크족이든 듀크족이든 그것은 모두 소비주의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정의하는 시대가 만들어낸 가족의 모습일 뿐이다. 따라서 딩크족과 듀크족의 특성은 곧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의 목록을 통해 나타날 뿐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아직 끝내지 않은 일이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산만하게 서성이는 미국 가정 주부의 모습은 한국의 주부들의 모습에 투영되지 않을 수 없다. 자녀를 향한 관심은 값비싼 육아상품들을 소비하는 일일뿐이고 정작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가족과의 관계는 서먹해지고 낯설어질 뿐이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매개하는 것은 육아상품이고, 부부관계를 매개하는 것은 레저상품이며, 자신과 가족의 관계를 확인하고 즐기는 것은 외식과 여행일 뿐인 세계. 그런 세계가 행복한 세계일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딩크족과 듀크족은 포스트모던한 자본주의가 상품의 세계와 친밀한 삶의 세계인 가족의 세계를 용해하는 용광로일 뿐일까. 그런 냉소주의에 빠질 때 우리는 절망에 빠질 뿐이다. 전통적인 가족의 신화에 현혹되어 가족적 가치를 내세우는 보수적인 선택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딩크족과 듀크족이 포착한 가족의 변화가 소비자로서의 가족임을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고 명명하는 노력에 뛰어들어야 한다. 새로운 가족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고 새로운 상품의 세계일 뿐일 때 우리가 가족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틀은 빈곤해지고 불행해진다. ■
사보에 기고한 글. 약간의 이데올로기적 검열이 있어 싱겁다.

지식노동자 – 탈근대자본주의 시대의 주체성과 비판이론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압축 재현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약호는 단연 “지식노동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식노동자를 현 단계 자본주의의 노동자의 역사적 종(種)으로 개념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경쟁자본주의 단계의 산업노동자와 독점자본주의단계의 대중노동자같은 유형으로 탈근대자본주의의 지식노동자를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유익한 일이 아니다. “지식기반경제” 혹은 “신경제”의 노동자로서 지식노동자는 전 단계의 노동자와 전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기술적 구성이나 노동과정의 조직, 그리고 노동하는 주체를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형태가 역사적 단계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식노동자란 노동자의 사회적 현실을 표상하는 개념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에서 특유하다. 지식노동자는 길드나 동업조합의 장인, 포드주의적 노동자와 더 이상 유사하지 않다. 지식노동자는 비노동주체와 구분될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의 세계와 노동이 없는 세계가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의 생애단계와 노동으로 입장하고 노동에서 은퇴하는 생애단계의 간격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유령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네그리와 하트가 푸코의 개념을 빌어 이야기했던 노동의 생정치(biopolitics)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 멀리가지 않도록 하자. “신지식인 운동”으로, “평생학습체제”로, “학습혁명”으로, “국가인적자원개발계획” 등으로, 지식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기획은 우리 주변에 이미 정착하였고 또한 가동 중에 있기 때문이다.
지식노동자는 일관생산라인이라는 직접적인 생산과정, 공장과 사무실이라는 특정한 공간의 배치, 출퇴근 시간과 테일러주의적인 시간동작연구로 상징되는 신체의 통제와 더 이상 상관없다. 노동자를 개별적인 신체로 규정하고 그를 표준과 규범에 따라 통제하고 조정하는 포드주의적인 훈육으로부터 지식노동자는 벗어나 있다. 개별적인 신체로서의 노동자는 이제 집합적인 신체 안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명의 노동자의 묶음이란 뜻에서의 집합적 신체가 아님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상사회에서의 정보와 지식의 (재)생산을 말할 때의 “집단지성”처럼 그것은 개별 신체, 지성, 감각의 집행이나 연장이 아니다. 일관생산라인에서 린 생산으로, 팀제로 변화된 탈근대적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는 개별적인 신체로서 성과를 발휘하고 생산성의 지표에 의해 측정되고, 동기와 보상의 체계 안에 귀속되지 않는다. 노동자는 일반적인 노동력 안으로 사라진 채 측정될 수 없는 순수한 추상적인 힘으로 등록된다. 이는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신경제의 “부”의 담론의 핵심은 재산이 아니라 자산(asset)일 것이다. 이는 직접적인 생산을 통해 만들어진 물질적 결과로서의 생산물이 아니라 법인기업이 가진 것으로 예측되는 잠재적인 능력 흔히 자산가치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보유하고 있는 현물과 수익이 아니라 자산을 통해 자본을 평가하는 유령적인 등가(等價)의 세계에 익숙해 있다. 물론 그 유령의 세계는 나스닥과 코스닥, 증권거래소이다. 아마존닷컴과 벅스뮤직의 주식가치와 월마트나 삼성전자의 주식가치 사이의 관계는 더 이상 미스테리가 아니다. 아마존닷컴의 자산가치는 아마존닷컴의 수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마존닷컴의 자산가치는 곧 그것의 잠재성일 뿐이다.
신경제 이데올로그의 주문같은 말처럼 “유한한 물적 자원에서 무한한 지식의 힘”으로 자본의 힘이 변화되었다면, 이는 노동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노동 역시 그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과받는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노동자 없는 노동의 세계를 가리키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란 용어일 것이다. “인적 자원 개발”, “인적 자본” 등의 개념은 한 명의 구체적인 심리적인 개인으로서의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나, 직장에 다니는 나, 월급을 받고 연금과 보험을 내는 나와 같은 뜻에서의 노동자 역시 잔존한다. 그렇지만 지식기반경제는 지식(그것은 신경제의 이데올로그들에 따라 다중지능, 창의성, 탁월성,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 EQ, NQ 등 다양하게 정의되고 세밀화된다)이라는 역량을 요구한다. 이것은 노동자의 신체와 지성 안에 포함되어있는 실체로서의 능력도 아니고 또한 노동자가 판매하며 보상되는 소유물도 아니다. 다시 푸코를 끌어들이자면 그것은 삶(life)이며 생능력(biopower)이다. 투입되는 노동력을 이미 예상하고 규정하는 생산수단(이를테면 미싱은 재봉사, 선반은 선반공과 같은 식으로)과 달리 지식기반경제의 생산은 이미 형식화되고 표준화된 노동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적 자원이란 개념은 따라서 경직된 직업 교육과 숙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실행하고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을 개선하고 향상하는 노동력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인적자원은 평생학습을 요구하며, 노동하는 주체의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강요한다.
한편 노동자는 언제나 해체와 이동을 함으로써 변신한다는 자본의 요구에 따라 혹은 변화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는 자본의 가속화된 순환에 따라 그 스스로 끊임없이 변형되어야 한다. 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마 최근 끊임없이 회자되는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의 전환”이라는 담론일 것이다. 지속적인 직업 이동, 동일한 직무와 직종 안에서의 이동이 아니라 다른 직업으로의 이동을 수반한 노동자의 이동은, 노동을 통한 자기(self)의 구성을 파산시킨다. 일의 여정(旅程)을 통해 자기의 생애를 재현하던 사람들은 이제 그 자리에 새로운 주체성의 형식에 사로잡힌다. 평생직장과 철밥통의 세계를 대신하여 이태백, 사오정이라는 유연화된 노동자가 들어설 때, 그것은 불안과 위험 속에 내동댕이쳐진 노동자의 물질적 생존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또한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하고 관리하며 향상시켜야하는 기업가적 주체의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들은 리더십 프로그램과 자기계발 세미나, “아침형” 습관의 중독자, “메모의 기술”의 달인, 자기표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하는 주체에게 단순히 새로운 노동 기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성과,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점에서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은 관료적으로 조직된 조직 체계에서 즉 외부로부터 오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에게 던져진 최대의 명령인 “자기주도”가 알려주듯이 “자기를 돌보는” 에토스를 실현하는 주체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에토스는 노동하는 주체가 공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던 상징적 동일시의 형식(당연히 이에 해당하는 고전적인 개념은 당파성, 프롤레타리아트적 계급의식, 의사소통적 합리성 등이다)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노동은 있지만 노동을 수행하는 주체는 사라지고 있고, 노동하는 주체의 정체성을 재현하는 물질적인 제도와 기관(정당, 노동조합, 클럽, 신문, 출판사 등)은 위축되거나 무력해지고 있다. 노동자를 대신하여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기업가(the entrepreneur)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력경로를 관리하고 다중경력을 체득하며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을 향상시키는 주체이다. 물론 이를 가장 잘 요약하는 것은 신경제의 가장 탁월한 이데올로그인 톰 피터스의 “나-브랜드”일 것이다. 그에게 삶이 어떻게 의미작용의 코드와 사회적 재생산의 네트워크에 의해 규정되는가를 묻는 것은 진부한 일이다. 나의 삶은 일종의 프로젝트이며, 나는 무엇보다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노동하는 주체의 정체성의 변화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인가. 기호학과 정신분석학 그리고 포스트구조주의를 익히며 데카르트적 코기토와 남근로고스중심주의와 투명한 자기의식적 주체와 작별을 고하는 것은 적어도 비판적 학계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대정신이 잊고 있었던 것은 그러한 변화가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정의하는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힘들의 장이었다는 것이다. 통속적인 경영학 서적에서 데리다가 신경제의 지식경영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정보자본주의를 선구한 예언가로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를 들먹이는 것은 차라리 참신하다 할 일이다. 젠체하는 마케팅서적에서 부르디외의 “아비튀스”와 “문화자본”을 인용하는 것은 이미 관례가 되다시피 하였다. 물론 그 자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다. 담론의 소비를 지식인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르크스 역시 월스트리트의 철학자로 둔갑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분석가로서의 마르크스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분석가로서의 마르크스가 다르지 않은 인물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분석하고 정의하는 일은 정치적인 개입이다. 그런 점에서 탈근대자본주의의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일은 근대성과의 단절 혹은 극복이 아니다. 외려 필요한 것은 탈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둘러싼 적대적인 논쟁의 공간을 창출하고 참여하는 일이다. 지식노동자라는 탈근대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는 개념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우리는 그 자리에 컴컴한 공백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이는 슬프고도 참담한 일이다.
– 연세대학교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

기관 없는 신체 혹은 신체 없는 기관

기관 없는 신체 혹은 신체 없는 기관 – 신체의 재현과 그 위기


재현의 위기 그렇다면….
<아침형 인간>이란 자기계발서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명민한 사회학자라면 이러한 자기지침서(self-help manual) 혹은 자기계발서의 유행을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적 증상(social symptom)으로 진단하고 그것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회학 혹은 문화이론으로부터 이러한 자기계발서에 대한 분석이 적잖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이 자기지침서를 분석의 대상으로 정의할 때 주로 의지하는 개념은 “자아(self)”이다. “재귀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이란 개념으로 후기 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분석하는 앤서니 기든스의 입장 역시 자아 정체성이란 개념의 둘레를 맴돈다. 후기 근대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그의 저작의 제목은 <근대성과 자기정체성>이었다.
그가 말하는 후기 근대의 “성숙한 자아”란 재귀적 근대성의 체계 안에 놓여 있다. 재귀적 근대성을 설명하는 한가지 방식은 근대화는 곧 탈전통화라는 것이다. 탈전통화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일반적인 규범을 합리적인 반성의 대상으로 옮겨놓는다. 줄여 말하자면 이는 ‘감히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여’, 전통이나 미신과 같은 억견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앤서니 기든스는 탈전통화라고 불리우는 근대성의 영향은 정치나 경제와 같은 공식적인 사회적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탈전통화의 논리는 이제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까지 흘러들어 미만해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우리는 몸에 관한 의료과학의 공식적 지식의 일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대체의학을 선택한다, 우리는 친밀성의 유일한 합법적인 형식인 이성애적인 결혼을 상대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안적인 가족을 인정하고 있다 운운).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후기 근대이고 성숙한 근대성이다. 이제 탈전통화라는 근대의 비판적 해석학은 바야흐로 결혼과 가족관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친밀성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기든스가 예상하는 후기 근대의 성숙한 주체의 모습은 혹시 그 반대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개척하는 성숙한 근대적 주체의 재귀성은 거꾸로 뒤집혀져 우리의 삶을 옥죄는 “금지 없는 명령”이 된 것이 아닐까.
– 문학과 경계 봄 호에 기고한 글의 도입부입니다.

욕망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성혁명

결혼전문가 혹은 커플매니저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학적 증상일 것이다. 모든 사회이론은 만남 자체를 괄호친다. 만남을 성사시키는 조건은 묻지 않은 채 만남이 이뤄진 뒤의 공식적인 사회적 계약 요컨대 결혼과 가족, 연인 등을 분석한다. 따라서 그런 만남이 이뤄지도록 만들어주는 조건을 분석하는 것은 망각되거나 포기된다. 그런 점에서 커플매니저와 결혼전문가는 사회학자들이 방만하게 무시했던 중요한 영역, 즉 만남에 관하여 분석하고 종합하는 우리 시대의 숨은 사회학자들이다. 그들은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분석하며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상징적 지식을 생산한다. 물론 그것을 통해 꽤 많은 돈까지 벌어들인다.

(제프 쿤스, <블로우 잡(카마수트라)>)
접대 혹은 손님을 맞이하는 정신적 태도가 제3자 혹은 이방인과의 만남이라면, 결혼이나 연애는 내부에서의 만남에 해당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 제법 많은 사회이론가들이 분석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호텔은 전문화되고 상업화된 접대의 공간이다. 나날이 번창하는 컨벤션 센터류의 접대 공간과 파티서비스업과 캐터링 산업 등이 선도하는 접대 행위의 산업화는, 만남의 행위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가능한 손님을 집으로 맞이하길 꺼린다. 푸짐한 성찬과 과시적인 증여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던 과거의 접대의 에토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는 가능한 집을 밀실화하고 있으며 “둥지”와도 같은 집이 바깥에 드러나길 꺼린다. 탈근대적 주거문화의 표본이자 “한국판 상류층의 신주거문화”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아파트는 아예 입주자를 찾는 손님을 재울 게스트룸을 따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입주자들을 취재한 어느 신문의 기사는 “그들의 생활양식”에 관해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태도는 한마디로 말하면 “예절과 매너”라는 것이다. 동네 수퍼마켓을 갈 때라도 츄리닝을 입어선 안되는 예절이 바로 그들의 에토스이다. 그렇지만 접대의 문화적 정체성이 이렇게 바뀌어가듯이 만남의 정체성 역시 상당히 바뀌었다.
일전 누가 서평을 게재한 적이 있는 미셀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은 우리 시대의 만남의 불가해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보고서일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욕망의 철학을 비판하는 과격한 선언을 제출한다. 그는 이미 노환에 시달리고, 그 자신의 잦은 표현에 따르면 망령이 들은 노인들의 헛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욕망의 철학”을 규탄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그 염병할 노인들이 누구일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분명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나아가 욕망과 쾌락을 예찬한 모든 철학자들일 것이다. 우엘벡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욕망의 철학과 생활양식은 미국에서 건너온 비트족과 히피족의 정신적인 에토스를 흡수하고 욕망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다가 스스로 파멸했으며 나아가 그 뒤를 잇는 세대를 파멸시킨 자들이다(따라서 들뢰즈와 푸코가 미국에서 복잡계이론과 초끈이론, 분자생물학을 뒤섞은 희한한 히피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예찬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나체 해수욕장과 뉴에이지 풍의 레저시설의 주인이 되었으며, 불감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병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비판을 자신의 욕망을 확보하기 위한 저열한 경쟁과 아집으로 몰아넣은 자들이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바로 이러한 68 세대의 철학 아래에서 황폐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의 아들, 딸들이다. 그들이 근사한 아파트의 테라스에서 스와핑을 즐기고, 저녁 식사에서 욕망의 철학을 회상하며 쭈글해진 뱃가죽을 쓸어 내릴 때, 바로 그들이 번식시킨 두 아들, [소립자]의 주인공인 브뤼노와 미셸은 우울증과 편집증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든다. 그런데 우엘벡의 [소립자]나 [플랫폼]같은 소설이 들려주는 하염없이 서글픈 20세기를 향한 부고는 또한 우리에게도 더없이 해당된다.
그러나 우엘벡의 소설이 환기하는 것은 만남에 대한 음험하고 도저한 향수이다. 그것은 낭만적 사랑, 진실한 사랑을 향한 안타까운 열망을 제외하곤 만남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우엘벡은 실증주의와 무성생식의 세계를 꿈꾸는 미셸과 결국은 미쳐버린 채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섹스중독자인 브뤼노로부터 지극히 애매하고 반동적인 주장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재발견이다. 그들이 죽기 직전 마침내 진정한 사랑인 듯한 운명적인 그녀들과 재회하고, 잠시 행복을 맛본 후 곧 끔찍한 죽음으로 그녀들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각자 파멸적인 선택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우엘벡의 싱겁고 시시한 결론의 암시로부터 가정의 가치를 일깨우고 진정한 헌신과 맹세에 바탕한 결혼을 강조하는 통일교와 모르몬교의 복음을 들을 뿐이라고 강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우엘벡같이 총명한 작가가 주장하려 한 바는 바로 섹스를 둘러싼 “풍속의 해방”이 가져온 파국적인 결과, 사이비 절대 자유주의의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반성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우엘벡의 주장 따위는 아랑곳 않을 것이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며 기꺼이 안전하고 쾌적한 SM을 즐길 것이고, 애널 섹스를 둘러싼 공포를 극복하고자 애쓸 것이며, 스와핑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추출된 상대와 수백 번이 넘게 미팅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가장 안전하고 훌륭한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기꺼이 요금을 지불하고 데이터베이스 속에 자신의 자질구레한 신상명세를 넘길 것이다. 또한 “동쪽에서 오는 귀인을 만나게될 것이다”는 따위의 점괘를 얻고자 복채를 지불할 것이며, 타로카드와 사주궁합을 보는 데 아낌없이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싸구려 행동심리학과 뉴에이지 풍의 사이버네틱스, 허접한 동양학이 뒤섞여 만들어낸 만남의 과학을 통해 만남의 “기적”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이같은 “만남”을 둘러싼 인식의 증대가 어느 사회학자의 말마따나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가져오고 한결 “자기성찰성”이 증대된 “순수한 관계”, “조형적인 섹슈얼리티”로의 진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물론 우리는 그런 주장에 한치도 동의할 수 없다. 우엘벡의 주장처럼 우리는 사랑을 더욱더 지혜롭게 통제할 수 있는 세대가 되기는커녕 만남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인류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여기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느라 우리는 또 수십 년을 허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또 한번의 성혁명이 있을 것이다. 부디 그것이 극우가족주의자에 의한 반혁명이 아니길 학수고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