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커트

살아 있다면 미국 나이로 서른 일곱, 한국 나이로 서른 여덟,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동갑내기의 스타이다. 존 레넌의 부고를 들었더라도 그랬을까, 나는 그의 때 이른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망연자실했다. 그 때 나는 많은 부음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불과 한 주 전에 어느 미국 주간지에서 오려내어 액자에 끼워 두었던 그의 近影을, 영정으로 삼고, 참으로 섧게 목놓아 울었다. 그는 90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보수적 규범에 이를 물고 대들기로 했던 내게 있어 일종의 정령이었고 또한 더없이 따뜻한 수호천사였다.

신장개업한 신촌의 록카페에서 <너바나>의 노래를 최고의 볼륨으로 틀어놓고, 만취한 채 광란하는 일은, 나의 90년대의 일과였다. 그것은 나의 80년대, 사회주의적 운동권을 통해 훈육된 몸을 벗는 탈피의 노동이었고 또한 새롭게 각성한 나의 기이한 성벽을 향한 화해와 찬송이기도 했다. 란제리와 가발과 화장을 향한 그의 기이한 선호는 내게 있어 더없이 분명했다. 그의 도착은 나의 도착이었다.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착란적인 것있는지 모르겠지만, 곧 도착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신은 게이다”는 그의 노랫말을 복창하며 나는 제 자신의 90년대적인 자유주의적 일탈을 만끽했다. 그러나 너바나의 열혈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슬픈 일이었으며 또한 너바나의 음악은 결국 고독한 리스너들을 위한 음악인지를.

욕망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성혁명

결혼전문가 혹은 커플매니저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학적 증상일 것이다. 모든 사회이론은 만남 자체를 괄호친다. 만남을 성사시키는 조건은 묻지 않은 채 만남이 이뤄진 뒤의 공식적인 사회적 계약 요컨대 결혼과 가족, 연인 등을 분석한다. 따라서 그런 만남이 이뤄지도록 만들어주는 조건을 분석하는 것은 망각되거나 포기된다. 그런 점에서 커플매니저와 결혼전문가는 사회학자들이 방만하게 무시했던 중요한 영역, 즉 만남에 관하여 분석하고 종합하는 우리 시대의 숨은 사회학자들이다. 그들은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분석하며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상징적 지식을 생산한다. 물론 그것을 통해 꽤 많은 돈까지 벌어들인다.

(제프 쿤스, <블로우 잡(카마수트라)>)
접대 혹은 손님을 맞이하는 정신적 태도가 제3자 혹은 이방인과의 만남이라면, 결혼이나 연애는 내부에서의 만남에 해당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 제법 많은 사회이론가들이 분석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호텔은 전문화되고 상업화된 접대의 공간이다. 나날이 번창하는 컨벤션 센터류의 접대 공간과 파티서비스업과 캐터링 산업 등이 선도하는 접대 행위의 산업화는, 만남의 행위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가능한 손님을 집으로 맞이하길 꺼린다. 푸짐한 성찬과 과시적인 증여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던 과거의 접대의 에토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는 가능한 집을 밀실화하고 있으며 “둥지”와도 같은 집이 바깥에 드러나길 꺼린다. 탈근대적 주거문화의 표본이자 “한국판 상류층의 신주거문화”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아파트는 아예 입주자를 찾는 손님을 재울 게스트룸을 따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입주자들을 취재한 어느 신문의 기사는 “그들의 생활양식”에 관해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태도는 한마디로 말하면 “예절과 매너”라는 것이다. 동네 수퍼마켓을 갈 때라도 츄리닝을 입어선 안되는 예절이 바로 그들의 에토스이다. 그렇지만 접대의 문화적 정체성이 이렇게 바뀌어가듯이 만남의 정체성 역시 상당히 바뀌었다.
일전 누가 서평을 게재한 적이 있는 미셀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은 우리 시대의 만남의 불가해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보고서일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욕망의 철학을 비판하는 과격한 선언을 제출한다. 그는 이미 노환에 시달리고, 그 자신의 잦은 표현에 따르면 망령이 들은 노인들의 헛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욕망의 철학”을 규탄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그 염병할 노인들이 누구일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분명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나아가 욕망과 쾌락을 예찬한 모든 철학자들일 것이다. 우엘벡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욕망의 철학과 생활양식은 미국에서 건너온 비트족과 히피족의 정신적인 에토스를 흡수하고 욕망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다가 스스로 파멸했으며 나아가 그 뒤를 잇는 세대를 파멸시킨 자들이다(따라서 들뢰즈와 푸코가 미국에서 복잡계이론과 초끈이론, 분자생물학을 뒤섞은 희한한 히피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예찬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나체 해수욕장과 뉴에이지 풍의 레저시설의 주인이 되었으며, 불감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병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비판을 자신의 욕망을 확보하기 위한 저열한 경쟁과 아집으로 몰아넣은 자들이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바로 이러한 68 세대의 철학 아래에서 황폐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의 아들, 딸들이다. 그들이 근사한 아파트의 테라스에서 스와핑을 즐기고, 저녁 식사에서 욕망의 철학을 회상하며 쭈글해진 뱃가죽을 쓸어 내릴 때, 바로 그들이 번식시킨 두 아들, [소립자]의 주인공인 브뤼노와 미셸은 우울증과 편집증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든다. 그런데 우엘벡의 [소립자]나 [플랫폼]같은 소설이 들려주는 하염없이 서글픈 20세기를 향한 부고는 또한 우리에게도 더없이 해당된다.
그러나 우엘벡의 소설이 환기하는 것은 만남에 대한 음험하고 도저한 향수이다. 그것은 낭만적 사랑, 진실한 사랑을 향한 안타까운 열망을 제외하곤 만남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우엘벡은 실증주의와 무성생식의 세계를 꿈꾸는 미셸과 결국은 미쳐버린 채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섹스중독자인 브뤼노로부터 지극히 애매하고 반동적인 주장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재발견이다. 그들이 죽기 직전 마침내 진정한 사랑인 듯한 운명적인 그녀들과 재회하고, 잠시 행복을 맛본 후 곧 끔찍한 죽음으로 그녀들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각자 파멸적인 선택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우엘벡의 싱겁고 시시한 결론의 암시로부터 가정의 가치를 일깨우고 진정한 헌신과 맹세에 바탕한 결혼을 강조하는 통일교와 모르몬교의 복음을 들을 뿐이라고 강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우엘벡같이 총명한 작가가 주장하려 한 바는 바로 섹스를 둘러싼 “풍속의 해방”이 가져온 파국적인 결과, 사이비 절대 자유주의의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반성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우엘벡의 주장 따위는 아랑곳 않을 것이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며 기꺼이 안전하고 쾌적한 SM을 즐길 것이고, 애널 섹스를 둘러싼 공포를 극복하고자 애쓸 것이며, 스와핑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추출된 상대와 수백 번이 넘게 미팅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가장 안전하고 훌륭한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기꺼이 요금을 지불하고 데이터베이스 속에 자신의 자질구레한 신상명세를 넘길 것이다. 또한 “동쪽에서 오는 귀인을 만나게될 것이다”는 따위의 점괘를 얻고자 복채를 지불할 것이며, 타로카드와 사주궁합을 보는 데 아낌없이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싸구려 행동심리학과 뉴에이지 풍의 사이버네틱스, 허접한 동양학이 뒤섞여 만들어낸 만남의 과학을 통해 만남의 “기적”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이같은 “만남”을 둘러싼 인식의 증대가 어느 사회학자의 말마따나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가져오고 한결 “자기성찰성”이 증대된 “순수한 관계”, “조형적인 섹슈얼리티”로의 진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물론 우리는 그런 주장에 한치도 동의할 수 없다. 우엘벡의 주장처럼 우리는 사랑을 더욱더 지혜롭게 통제할 수 있는 세대가 되기는커녕 만남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인류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여기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느라 우리는 또 수십 년을 허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또 한번의 성혁명이 있을 것이다. 부디 그것이 극우가족주의자에 의한 반혁명이 아니길 학수고대할 뿐이다.

위안부 누드, 강간 환상 그리고 식민주의의 섹슈얼리티

정반대로 위안부 누드는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억마저 소모하고 있기에 더욱 위악하고 또한 폭력적이다. 위안부 누드는 역사적 기억을 강간 환상의 무대 안에서 소비한다. 그 자리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한 성적인 파트너, 마조히스틱한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그것의 공식명칭은 종군위안부 테마영상집이었다 한다)로 북새통이다. 식민의 역사를 다시 기억해보자는 진지한 발로에서 위안부 누드를 기획했다는 제작사 측의 주장은, 참으로 가소롭고 기상천외한 설레발이다. 이런 졸렬한 변명을 할 생각이었으면 그냥 함구하고 있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이들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위안부 누드를 만든 이들은 위안부 여성들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천연덕스럽게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했거나 무식했던 점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다들 즐기고 있다”는 순진한 사실만을 알고 있었지 “아무도 즐기지 않는 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어제 나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흔해빠진 저질스런 음란한 낙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고 말았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물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옆집에 사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화장실 낙서와 위안부 여성들의 성적인 재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모두 은밀한 강간 환상의 틀을 통해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위안부 여성들이 식민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위안부 여성들의 체험을 집요하게 성으로부터 떼어놓으려 애써왔다.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체험을 상징화하는 유일하게 허용된 방식은 “식민지 백성”이다. 이는 그녀들이 겪은 고통의 핵심적인 원인이 강간이라는 사실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는 전시에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체험을 인종적 폭력과 식민적인 지배의 결과로 환원하려는 (보스니아나 르완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남성의 역사적 법정의 논리이다. 설령 그녀들이 겪은 강간의 체험을 마지못해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가 아니라 자기 여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힘없는 남자들의 무력과 자괴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오랜 세월 숨죽여 살다가 마침내 ‘커밍아웃’을 하였을 때 그녀들을 그토록 침묵하게 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그녀들이 전시에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누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대 할머니들을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를 기억하는 남성 주체의 입장 안에 강간당한 여성의 자리는 없거나 부정된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이이거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다. 그렇지만 민족의 역사가 위안부 여성들이 겪은 강간당한 여성으로서의 체험을 소외시키고 식민지 백성으로 상징화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위안부 여성들의 강간의 체험을 완벽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된 채 긍정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위안부 누드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런 억압된 채 즐겨지고 있던 남성적 환상이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혹은 성의 희생을 강요당한 역사 속의 여성들)에게 투입되어 있는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그만 어이없이 누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위안부 누드는 괜찮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정반대로 위안부 누드는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억마저 소모하고 있기에 더욱 위악하고 또한 폭력적이다. 위안부 누드는 역사적 기억을 강간 환상의 무대 안에서 소비한다. 그 자리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한 성적인 파트너, 마조히스틱한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때의 위안부 여성은 재국주의적 전쟁에 징발당한 채 성적인 보상을 제공해야 했던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집행하는 “나의” 상상적인 여성일 뿐이다. 이는 강간이나 성희롱을 자행한 남자들에게서 흔히 듣는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그는 왜 그녀가 그것이 싫었다면 왜 감히 저항하고 부정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과 그녀 사이에 놓인 권력관계를 보지 못한 채 오직 욕망의 대면만으로 그 상황을 각색한다. 성폭력과 강간을 저지른 남자들의 집요한 환상은 언제나 그녀도 분명히 즐겼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부 누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리고 위안부 누드의 비참함은 바로 이런 성적 환상을 위해 전시 강간이라는 비극적 진실을 망각한다는데 있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의 체험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우고 있다. 어떻게 감히 “어머니 조국”을 능욕하느냐고 위안부 누드를 비난할 때 그 주장은 식민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의 역사 안에 놓인 위안부 여성의 체험에 숨어있는 성을 떼어내고 아울러 자신의 몰역사적인 강간 환상을 유지하려는 몸짓에 가깝다. 위안부 누드는 식민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강간 환상을 이용한 싸구려 포르노일 뿐이다. 그것은 식민적 역사와 전시의 강간을 자신의 환상의 무대 안의 간단한 장치로 소비하려 했을 뿐이다. 따라서 위안부 누드의 평범하고 순진한 의도가 격렬한 거부에 좌절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견지되어야만 하는 “망각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성적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우리는 상대의 욕망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욕망의 무대가 되는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현실을 가능한 모른 척해야 한다. 그래야 그 환상은 달콤하고 뜨거워진다. 그러나 위안부 누드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결코 그것을 무덤까지 비밀로 지킨 채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와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부 누드가 실패한 것도 이 점에 있을 것이다. 자신의 체험을 진술하고 증언하는 여성 앞에서 남성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위안부 여성은 결코 자신의 체험을 역사화하지 못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주체가 민족인 한 그것이 기억하는 여성은 어머니나 누이 뿐이다. 민족-역사의 환상과 강간 환상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온당한 방식일 수 없고 또한 위안부 여성을 기억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는 것은 그것을 은밀히 즐기는 자들의 허울좋은 농담일 뿐이다.
– 컬티즌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어느 급진주의자의 생각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길 거부하는 수구반동 세력의 “테르미도르의 반동”인지 아니면 노무현 식 신자유주의의 순항을 위한 “올인” 계략인지 아직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세상은 뒤집혔다. 당장 7만 명이 넘는 이들이 광화문에 모였고, 광주에서도 부산에서도 탄핵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탄핵안이 가결된 그 날 더럽고 꿀꿀한 기분으로 한 나절을 어영부영 보내고 난 후 우리는 티비 앞에서 여론조사의 발표를 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상황은 야릇하게 흘러가고 있다. 여론조작과 언론공세를 탓하며 제 분수를 모른 채 투덜대는 야당은 그렇다 치자.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폭거라는 둥 헌정 위기, 국정 문란이라는 둥 갖은 해괴한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질서유지당으로서의 본색을 유감 없이 드러내는 열린우리당의 방황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급기야 정동영은 오늘 시위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다. 아직은 흐뭇하고 반갑기 짝이 없는 현상이겠지만 이 시위가 언제 어느 곳으로 튈지는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무현을 향한 여론과 탄핵을 향한 여론 사이에 놓은 간극은 바로 그런 불안의 원천이다. 헌법재판소의 무난한 판결로 사태를 수습하고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대박을 터뜨리려는 열린우리당의 정략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유동적인 상황은 열린우리당이 그리 쉽게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발적인 시민들의 저항과 행동은 열린우리당이 어떤 오버를 하든 쉽게 그들의 의지대로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물어보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데 “탄핵무효 국민행동”의 행보 역시 시원찮은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인가 친노 대 반노인가라는 이상한 대비를 내세우며 열린우리당의 헤게모니를 조금은 따돌리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 들어선 길이란 점을 덮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민주노동당의 비판적 지지자이며,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무슨 지식인이지 뭔지 하는데 참여했던 작자이다. 사태를 분명히 하자.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IMF의 신탁통치라는 금융위기를 발판으로 벤처 캐피탈리스트, 펀드 매니저, 닷컴 졸부 등과 함께 입성했다. 그것은 거의 해일처럼 들이닥친 구조조정의 태풍을 낳았고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의 참담한 현실을 선물로 주었다. 국민의 정부는 서슬 푸른 군부통치의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전에 없던 민주주의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에겐 인간의 모습을 한 신시대형 개발 독재였다. 이것이 파시즘적인 개발독재와 다른 점은 국민적 합의를 동원하는 새로운 조합주의적인 통치체제라는 점 뿐이다. 그 어느 것이든 민중적 이해와 상관없는 정권임은 다르지 않다. 게다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노사정 위원회니 청소년보호위원회니 아니면 국가인권위원회니 하는 수많은 시민사회 참여형 위원회를 통해 참여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또한 통합된 정치적 개혁과 변화의 프로그램에 대한 상상은 질식시키고 사안마다 각 이해집단의 협의와 조정으로 풀어낸다는 새로운 위원회형 정치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는 총체적인 정치 변화란 낡은 사회주의정치의 유산일 뿐이라고 빈정대며 무수한 모모 연대와 위원회로 흩어져 열심히 신자유주의적인 퇴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다. 노무현 정권은 거의 공포에 질려있는 국민과 상대하고 있다. 전무후무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줄어드는 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의 꿈은 오직 하나 변변한 일자리와 약간의 임금 소득이다. 탄핵 정국이라는 이름의 정세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판박이처럼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웃지 못할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제신용평가기관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성장과 발전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는 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맹위를 떨친다. 국민의 정부가 경제적 위기 관리를 위한 조합주의적 정치 체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최대의 수혜자는 노무현 정권이었다. 이제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인 구조 개혁을 성공리에 마친 한국 자본주의의 두 번째 라운드의 위기를 관리하고 해결해야할 책임을 떠맡았다. 그것은 전무후무한 빈부격차와 실업, 공교육의 위기 그리고 이런 사회적 변화가 초래한 숱한 혼란이다. 신자유주의의 슬로건은 수도 없이 바뀌어왔다. 지식주도, 유연화, 혁신과 변화 등의 개념은 입사준비용 시사상식에나 등장하는 먼 옛날의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배드 뱅크”와 “신불자”, 생계형 자살, 이태백과 사오정, 웰빙족과 명품족같은 신조어들에 휩싸여 있다. 노무현 정권이 서있는 자리도 여기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화 시대의 경제에 연착륙하였고 IMF와 굴지의 신용평가사들과 초국적기업들로부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들었다.
노무현 정권은 바로 그 변신한 한국 자본주의의 사회적 위기 관리의 책임을 떠맡았다. 다행히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정착한 신자유주의적 정권은 여러 가지 보호막에 싸여 있었다. 노빠부대는 바로 노무현 정권의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가진 자들의 정권으로 기능하는 노무현 정권이 그 어느 때보다 없는 자들의 희망의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한국 보수정치의 구태에 염증 난 이들의 선량한 희망을 모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쟁취한 시민민주주의를 수호하여야 한다는 이들의 선의를 의심할 생각 역시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지만 넥타이부대의 전설은 이제 끝날 때도 되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보다 열린우리당이 건전하고 신선하며 양호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무현 정권이 군부독재의 공포정치보다 훨씬 국민적인 정권이란 주장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이 변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관리를 위해 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정권이란 점은 인정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지역주의와 악랄한 반공, 반북주의 그리고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보수주의를 버무린,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데올로기 없는 헤게모니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반동 때문에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또 버텼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힘들은 바로 한국 자본주의가 변화하며 낙오를 강요당한 이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뒤섞여 있다. 임금 경쟁에서 밀려난 중소기업인들, 대형할인점에 쫓겨난 재래식 상가의 상인들, 자기관리와 취업을 강요당하는 중산층 이하여 여성들, 심지어 미래가 안 보이는 데도 끊임없이 능력과 창의성, 계발을 강요당하는 지친 20대들(이들이 반공단체를 능가하는 막가파 꼴통 보수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그 지지세력 아닐까.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수구반동 대 민주의 이분법의 틀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그렇게 입바른 소리 잘하는 진보는 뭐했냐고 물으면 할 말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지금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로 이어지는 변화의 와중에서 아주 넋을 잃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들러리로 전락한 세력과 당장 절대절명의 삶의 순간에 사로잡힌 이들의 분노에 끌려다니는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물론 압도적으로 성공하였으며 대세인 것은 전자이다. 이들은 사회책임경영, 상생의 기업문화 등을 내세우고, 주총을 쫓아다니고 공인회계사와 변호사를 동원해 투명 경영과 합리적인 착취를 강변한다. 사회운동은 이제 재단을 설립하고 변호사의 자문을 받고 공인회계사의 평가를 받는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가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세력은?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 혹은 빈민화한 제조업분야의 노동자들과 함께 주변화될 만큼 주변화되고 있다. 다들 자기고용과 기업가정신의 신경제의 이데올로기에 홀라당 넘어가 착취에 대한 반대는커녕 행여나 자기가 부족한 게 있을 새라 <아침형 인간>을 읽으며 자신을 혁신시키는 것이 신경제의 시대의 삶의 풍경이다. 따라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분노에서 계속 악순환을 거듭하는 전투적인 조합주의는 여간 심란하고 심지어 거리를 두고 싶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민노총과 진보적인 사회운동은 계속 그런 빈민화된 민중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서울역 앞에서 벌어진 초라한 민중운동 진영의 집회와 그리고 울산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의 쓸쓸한 분노는 아마 그런 진보진영이 직면하고 있는 답보의 단면이었을 것이다.
다시 탄핵정국으로 돌아가자. 맘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위기관리를 떠맡은 노무현 정권의 순조로운 통치를 위한 호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권은 어쩌면 다수 여당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고 국민의 정부 시절 순조롭게 완수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뼈대 위에 정책과 제도의 살을 붙여 이를 완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았던 장벽은 놀랍게도 민중 진영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보수정당이었다. 그러나 판은 새롭게 짜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노빠부대와 참여형 경선 그리고 대선을 통해 확보한 국민적 헤게모니를 사사건건 무너뜨리려 했던 반동적인 보수 야당은, 이제 몰락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서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열린우리당과 현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향한 비판을 보수반동에 대한 저항이란 이름으로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더없이 나쁜 시나리오이다. 항간에서 들려오는 총선 연기와 개헌 음모의 시나리오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설령 그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 해도 그것은 제2의 탄핵이 될 것이고 또 한번 들붙같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궁지에 몰렸어도 사양길에 접어든 보수적인 당파들이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하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다면 아마 그들은 아마 가장 추악하고 참담한 파멸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몰락을 자초한 보수적인 당파들에 관하여 심판을 내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이 이후의 상황에서 발휘할 바람직하지 못한 효과를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민의 힘으로 재기에 성공한 참여정부는 이제 신자유주의적 개혁 드라이브를 접고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 아랑곳없이 또한 미국의 간섭과 주문을 가볍게 물리치며 국민의 이해를 살피는 정권으로 거듭 날까. 물론 그것은 전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정반대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참여 정부를 위해 국민에게 남겨진 것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협의에 참여하는 것이고, 부안 거리에서 떼지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세로 대책 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신불자가 되어, 불안한 미래에 몸서리치는 반실업자가 되어, 이 미증유의 변화를 강요하는 사회의 논리에 압사당할 것이다. 결국 탄핵 정국을 돌파하는 옳은 대안은 질서유지당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개입을 물리치고 국민적인 저항의 진정한 방향을 가늠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관건은 화염병을 던지고 육탄전을 벌이며 시내 전역을 숨바꼭질했던 울산의 노동자대회와 10만개의 촛불을 밝히고 아름답고 성숙한 축제를 벌인 광화문의 행사장 사이에 놓인 거리에 있다. 그 거리는 곧 참여정부가 수구세력의 정치적 반동의 피해자라는 연민과 분노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이 초래한 불안하고 참담한 삶을 향한 분노 사이에 놓여있다. 이 거리가 참여정부형 신자유주의적 정권이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줄지 아니면 군사독재의 유령에 짓눌린 채 민주주의만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중적인 개입의 출발점이 되어줄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질서 수호의 이데올로기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그 무엇으로도 완성될 수 없고 완성되어선 안되는 명령이다. 우리는 이미 실현된 민주주의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부족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탄핵무효·부패정치 척결 비상시국선언문

2004년 3월 12일은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의 치욕의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한나라당·민주당 등 야당에 의해 저질러진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탄핵 소추 가결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첫째, 의회쿠데타를 자행한 수구 부패정치인들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야당은 오직 총선을 겨냥한 정략만을 앞세운 채 의회 쿠데타를 자행하고 말았다. 이는 명분없는 정치적 폭거이며 합법을 가장한 다수의 횡포이자, 국민에 대한 배반이다.
수구 부패 정치인들의 대통령 탄핵으로 온 나라는 순식간에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다. 정치가 이렇게 나라와 국민을 욕보여도 되는 것인가? 국민들은 나라를 온통 혼란에 빠뜨린 두 야당의 대통령탄핵에 결코 동의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전국 곳곳에서 정치적 폭거를 자행한 국회는 해산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87년 6월, 국민항쟁으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요체는 바로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회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아무런 명분도, 국민적 동의도 없이 함부로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87년 민주항쟁으로 꽃피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정면도전하고 있는 낡은 정치세력의 이같은 시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헌법재판소는 탄핵무효임을 신속하게 결정하라
헌법재판소는 탄핵 무효를 요구하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탄핵소추안에 대해서 신속하게 기각함으로써 국가적 혼란을 하루 빨리 끝내야 한다. 국회에서 가결한 탄핵소추는 법률적으로도 근거가 없으며 국민적으로도 명분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고도 명쾌하게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서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는데 그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에 나설 것이다.
탄핵가결을 비판하는 국민적 여론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위는 두 야당의 쿠데타나 다름없는 정치폭거를 준열히 규탄하며 나아가 국민을 배반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수구부패정치권의 작태에 대해서 엄중히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는 국민의 피땀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이며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전진시킬 역사적 운동이 될 것이다. 무책임한 정치를 국민의 뜻에 철저히 복속시키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모든 국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2004년 3월 13일
탄핵무효 부패정치척결 범 국민행동 준비모임

<삼국지> 읽는 남자

<삼국지>의 독서공간과 탈근대 자본주의의 자기계발 담론
삼국지 읽는 남자
<삼국지>야말로 우리 시대의 탈근대 자본주의적 대중문학의 가장 탁월한 표본이 아닐까. 혹은 문학적 정전의 전통에 속한 “작품”을 패키지화된 “상품”으로 소비하는 뛰어난 사례이거나. <삼국지>는 알다시피 원본을 정의하기가 불가능한 텍스트이다. 그러나 그 원본으로서의 가치를 나눠 받은 텍스트이든 아니면 <삼국지>를 참고하거나 인용하며 쓰여진 이차적인 텍스트이든, 그것은 모두 <삼국지>라는 텍스트를 구성하는데 참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삼국지>라는 본래적인 문학적 텍스트 혹은 고전이 따로 있고, 그로부터 파생된 기생적인 문화적 생산물로 나누는 생각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문학 담론은 원본으로서의 <삼국지>를 특권화한다. 그것은 국내에서 간행되어온 <삼국지>의 저자성을 이야기할 때 고스란히 반복된다. 국내에서 이문열본, 조성기본, 김홍신본, 김구용본 그리고 최근 출간된 황석영본의 <삼국지>를 각기 나눌 때, 그것은 <삼국지>를 해석되고 평가되는 가상의 원본으로 다룬다. 그리고 각기 다른 판본은 그 원본만큼이나 가치 있는 이차적인 저작으로서의 권위에 가담한다. 다시 말해 각기 서로 다른 판본의 저자들은 <삼국지>의 저자와 유사한 저자로 권한있는 주체로 격상되고, 다른 인접한 텍스트들과는 다른 “저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따라서 그것은 <삼국지>를 문학적 정전의 지위에 안전하게 보존하고 더불어 저자로서의 문학의 주체라는 신화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삼국지>를 둘러싸고 제작되고 순환하는 다양한 이차적 텍스트로부터의 오염을 막고 자신을 안전하게 격리시켜주는 것은 전연 아니다.

한편 그것이 “독서 시장” 안에서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로 소비되고 있는 문화적 대상으로서의 <삼국지>를 분석하는데 얼마나 쓸모있을지 역시 의문이다. 문학 작품의 읽기의 공간을 한정하고 읽기의 방식을 감독하는 문학제도적 담론은 쇠잔해진지 오래이다. 더욱이 <삼국지>라는 텍스트를 전유하는 독자의 체험을 규정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삼국지>와 삼국지의 주변에 놓인 잡종적 텍스트의 배열을 읽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삼국지>를 다른 텍스트를 규제하는 담론적 진실의 장소로 정의하고 그 곁에 놓여있는 텍스트들을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텍스트로 놓는 것은, <삼국지>를 소비하는 하나의 장(문학제도의 장)이 강요하는 특권적인 시점일 뿐이다. 최근 “독서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삼국지 열풍’을 이해하는데, 앞에서와 같은 문학제도적 장으로부터의 시점은 별 쓸모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삼국지>를 문학의 보편적인 공간 안에 놓고 이야기하던 경향이 자취를 감추고 특수한 “지역문학” 혹은 “국민문학”의 범주 안에서 분석하는 주장에 의해 대체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거장 소설가들이 도전하고 시도하는 필생의 기획으로서의 “<삼국지> 쓰기”나 아니면 보편적인 문학적 교양의 대상으로서의 <삼국지>가 있었다면, 지금 변화된 문학제도의 장은 <삼국지>를 지역문화적 텍스트로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지구적인 문화의 공간에서 <삼국지> 역시 보편적인 문화적 교양으로부터 지역 문학의 한 예로 간주하려는 문학제도적 담론에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새로 옮겨진 황석영의 <삼국지>는 정통 중문학자와 한시 전문학자의 감수와 교정을 받았고, 또 번역의 전본으로 삼은 텍스트 역시 지역 내에서 검증받은 권위의 텍스트였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정이 어떻든 지금 <삼국지>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독자들에게 문학(제도)적 장의 담론의 영향은 잦아들고 있다. 오히려 <삼국지>를 매력적인 독서의 대상으로 선택한 독자들에게 그것은 부차적인 소비의 기준으로 동원될 뿐이다(기왕 읽어야할 <삼국지>라면 누가 번역한 텍스트를 고를 것인가. 이런 단계에서나 <삼국지>를 둘러싼 문학비평적인 평가가 소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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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학계간지 [Para21]의 2003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대중문화로서의 트렌드 혹은 트렌드로서의 대중문화

(문화방해운동 cultural jamming)의 전위인 미국의 록밴드 네거티브랜드의 앨범 표지)
지식인이나 문화비평가가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문화나 문명의 위기를 고발한다는 생각은 어느덧 맥추지 못하게 된지 오래이다. 그들이 맡아하던 역할은 나오미 클라인이 <노로고>라는 책에서 “멋 사냥꾼”이라고 부른 시장조사자들이 떠맡고 있다. 그들은 통신원과 포토저널리스트를 동원하여 청소년들이 모여있는 게토를 누비고 그들의 은밀한 언어 안에 깃들어있는 성향과 감수성을 파악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소비자 욕구 조사의 거대한 정량기법의 사회통계를 비웃으며 이들은 도시의 인류학자들이 되어 민속지를 쓴다. 과포화된 미디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열광적인 정보통신의 네트워크 안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있다. 시대의 풍경은 갈수록 모호해지고 흐릿해지지만, 다행히 우리는 조각보처럼 기워진 세계의 이미지를 가까스로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시장조사자들과 트렌드 연구자들 그리고 미래예측가들의 덕택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미래생활사전>이나 <클릭 미래 속으로>의 저자이고 조금은 섬뜩하지만 우리 시대의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예언가의 명성을 얻은 페이스팝콘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혹은 청소년 시장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의 기상예보관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스푸트니크”라는 회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마케터 혹은 트렌드 분석가의 모습과 다르다. 그들은 상품의 판매를 위한 아이디어의 제공자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문화분석가이기도 하다. 이는 문화와 경제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 상품은 더 이상 제조품이 아니라 정보와 상징, 기호(sign)가 되어버렸다는 주장은 이미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나아가 “무게 없는 경제”, “무형의(intangible) 경제”란 용어들은 유행어가 되었다. 상품의 세계는 곧 문화의 세계이고 상품의 판매는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과 환상의 소비를 위해 이뤄진다.
결국 우리는 트렌드 분석가야말로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의 분석가 혹은 시대정신을 분별하고 제시하는 인물이란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노르베르트 볼츠와 다비트 보스하르트란 독일의 문화이론가 겸 트렌드 연구자들은 천연덕스레 트렌드란 “문명 속에 깃들어있는 의례”라고 정의한다. 이 알쏭달쏭한 이야기는 트렌드와 유행의 차이, 또한 트렌드와 사회적 법칙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제안된 것으로 보인다. 유행이란 이미 이뤄진 선택이고 사물 혹은 상품 그 자체이다. 이를테면 남성용 색조화장품은 유행이지만 “메트로섹슈얼”이라는 현상은 트렌드이다. 우리는 메트로섹슈얼이란 트렌드에 따라 남성용 화장품은 물론 새로운 티비 프로그램과 팝 스타, 출판 아이템, 패션 디자인, 장신구 나아가 의료서비스와 자동차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트렌드는 곧 어떤 유행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습성, 행위의 경향, 심미적인 태도를 아우르는 것이란 뜻이 된다. 우리는 트렌드란 개념에 근접한 어떤 또다른 용어를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라이프스타일 또는 생활양식이란 말이다. 틈새시장과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이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경제적 활동의 핵심적인 특성은 곧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분간하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경제활동을 잘 보여준다. 이미 국내의 어떤 대기업은 자기네를 생활문화기업이라고 명명하였다. 감량경영과 리엔지니어링, 아웃소싱, 유연화, 생산의 정보화같은 말이 범람한지 십여년이 지난 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상품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상품의 진열은 문화의 박람회로 바뀌었다.
한편 트렌드는 사회 법칙과도 다르다.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규제된 행위의 규칙을 가리키는 사회 법칙과 달리 트렌드는 매우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행위의 문법을 가리킨다. 트렌드란 이미 주어진 규칙에 따라 이뤄지는 행위가 아니라 일련의 연속적으로 행위가 행위기 이어짐으로써 행위 방식과 선택이 결정됨을 가리킨다. 트렌드란 이미 결정된 규칙이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들의 시리즈이고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행위에 다른 행위가 덧붙여지고 그 행위에 대한 외부의 반응이 추가되고 내면화되면서 또 다음의 행위는 전개된다. 다음에 무슨 행위가 벌어질 것인가는 행위자의 의도, 행위자의 등뒤에서 그를 지배하는 규칙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다. 행위가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반복성과 상대적인 일관성이 결국 행위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트렌드란 일종의 경향이다(프랑스의 사회학자는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문화를 특정한 심미적인 성향의 체계로 분석하며 아비투스(habitus)란 개념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보자. 누군가 홍대 앞에서 자신이 흠모하는 영국의 펑크 밴드를 카피하는 연주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부르고 그들의 행위를 해석하기 위해 인디 음악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거나 빌려쓰게 되고, 다시 그것은 인디 음악이라는 일련의 성향을 만들어낸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인디 음악의 정신을 반영하고 집행하는 연주자들의 묶음으로 인디 음악을 정의해서는 안된다. 인디 음악은 우발적으로 뒤섞이고 또한 외부의 반응을 수용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에 재투입하면서 만들어지는 연속적인 돌연변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인디 음악과 “짝퉁” 인디 음악을 나누고 가늠하려는 시도가 언제나 반복되겠지만 그런다고 자신을 순수한 인디 음악으로 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디 음악의 연주가 되는 것은 인디 음악의 ‘법’에 마침내 다가섬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로 인디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해석해 냄으로써 어느덧 나는 인디 음악의 연주자가 된다. 줄여 말한다면 해석자와 해석하는 대상의 거리는 없다. 마치 과학철학에서 관찰자와 관찰 대상을 순수하게 분리시켜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트렌드 역시 이렇게 볼 수 있다. 우리는 트렌드를 묘사할 수 있지만 분석할 수는 없다. 아니 그것이 트렌드로 묘사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에워싸고 다양한 말을 쏟아내고 행위를 추가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생태계를 만들어 낸다.
문화 산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 간 대중 문화의 기류 역시 트렌드의 정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조용필과 서태지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조용필을 위대한 대중음악가로 기억한다. 대중음악의 가인(歌人)이자 장인 혹은 거장으로서의 조용필과 신세대 문화의 아이돌로서의 서태지 사이에는 대중음악가란 점을 빼곤 일치하는 점이 없다. 그 사이 한국 대중음악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소년 보이밴드의 댄스뮤직 일색의 대중음악을 향한 볼멘 푸념과 저항은 음악 문화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명분을 들먹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을 에워싸고 있는 변화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주장일 것이다. 물론 대중음악의 생산이 소규모의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기획사의 시스템을 통해 제작되고 거대 자본에 의해 집중된 배급 체제와 미디어를 통해 유통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영화 산업의 구조를 보나 음반 산업의 구조를 보나 이는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화산업의 구조가 획일화된 대중 소비자의 시대와 얼마나 다른가는 서태지를 통해 입증된다.
그러나 멀리 거슬러갈 것도 없다. 지난 해 가장 뜬 “비”라는 뮤지션을 생각해보자. 그는 요즘 뜨고있다는 새로운 트렌드인 “메트로섹슈얼”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남성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여성적인 그의 외모와 인상, 분위기. 시중의 평가는 그가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컨셉의 진정한 재현이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꽃미남”의 느끼한 감상적 호소와도 거리를 두고 촌스럽고 멍청한 진짜 사나이와도 무관한 그의 이미지는 물론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저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은 HOT와 GOD 모두 분발했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거대한 자본을 거느린 기업의 생산물이 아니라 작은 기획사의 용의주도한 기획과 마케팅을 통해 시장에 나왔다. “비”를 기획한 회사는 그를 정보경제의 콘텐츠로 가공하고 판매하는데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의 음반은 디지털콘텐츠의 쿠폰을 내장하고 있고, 그의 초상은 상품권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그의 뮤직비디오는 간접광고기법을 도입하여 여러 브랜드와 윈윈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모 치킨회사의 광고에 출연하여 “야마카시”란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분위기를 선사하고 브랜드를 감성화한다. 그의 음반에는 “비의 1일 매니저되기”와 “리니지 무료이용권’이 들어있어 고객관계관리, 멋진 말로 관계 마케팅을 솔선한다. 그렇다면 그는 두루두루 트렌드의 첨단을 걷는다. 그는 정보통신산업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하고 섹슈얼리티와 몸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트렌드와 함께 한다.
이처럼 현재의 문화산업은 세분된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혹은 트렌드의 방향에 따라 틈새 시장의 골목을 누비며 제작되고 마케팅된다. 역시 요즘 유행하고 있는 표현처럼 “비”는 뮤지션이 아니라 “콘텐츠”인 것이다. 댄스 음악 일색의 뮤직 비디오형 가수들의 음악과의 차별화 덕택에 라이브 공연이 자신을 유지하고 인디 음악이라는 주변적인 음악 산업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나름의 문화 자본을 가진 부족화된 청중 집단과 만나게 된다. 조용필이라는 대중음악가가 딴따라에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개인, 영웅으로서의 예술가라는 미학적인 신념을 통해 대중음악을 향유하던 시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청취자로서 FM 음악방송을 열심히 듣고 연주회에 참여하는 전 시대의 대중음악의 향유자들과 지금의 대중음악의 수용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서태지가 대표하듯이 대중음악은 곧 그 시대를 향한 태도라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차원까지 상징한다. 나와 대중음악가 사이에 연주자와 수용자 사이의 즉 저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고 서태지는 우리가 된다. 물론 우리는 이를 밥 딜런, 비틀즈와 마돈나, 에미넴의 차이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록큰롤의 천재적인 아티스트였으며 반항적인 시대의 영혼이었던 비틀즈, 밥 딜런과 달리 마돈나와 에미넴은 동시대를 들여다보는 거울 그 자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록큰롤의 모차르트로 비틀즈를 부른 것처럼 마돈나와 에미넴을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요즘의 트렌드 분석가의 표현을 빌자면 신화의 제조자이고 생활양식의 창조자들이며 시대의 이야기꾼이고 삶의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가장 손쉬운 비판은 그것이 진정한 체험과 쾌락으로부터 우리를 소외시키고 문화산업이 만들어낸 조작된 욕망에 길들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경제와 문화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한 이들은 문화산업이 개성의 표현이라는 교환될 수 없는 고유한 삶의 세계를 상품이라는 보편적인 교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이른바 “신경제”의 시대로 불리는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계속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따라서 트렌드란 개념이 난데없이 부상하고 그에 관련된 책들이 날개 돋힌 듯 팔리는 현상도 이해할 수 있다. 과연 시장에서 어떤 상품이 잘 팔릴 것인가를 예상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조사하던 시대의 트렌드는 우리 시대의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트렌드란 결국 문화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 역시 다르지 않다.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의 부상은 새로운 상품 세계의 등장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따로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곧 문화는 상품이고 상품은 문화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집약하는 말이 있다면 트렌드일 것이다. 쿨(c0ol)에 관한 강박증을 생각해보자. 청소년 하위문화와 대항 문화의 레퍼토리를 모방하고 전용한 이 희대의 트렌드는 곧 상품의 세계이자 문화적 관례의 세계이다. 그것은 의류와 가방, 음반에서부터 심지어 마약과 윤리적 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 그리고 그것은 광고와 마케팅, 홍보에서 교육과 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펑크가 룩이 되고, 그런지가 패션이 되는 세계, 그것은 또한 트렌드의 세계이기도 하다.

역사의 디즈니랜드화, TV 생활사 박물관 [다모]

어디서 보았는지 가물거리지만 곱씹을수록 섬뜩한 이야기가 있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도무지 영문을 알길 없는 괴이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단다. 그 사건을 취재하러 온 방송국 기자가 한 동네 사는 마을 주민에게 물었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겠냐고. 그랬더니 주민 왈, “글쎄요. 몇 년 안에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하지 않겠어요. 그럼 우리도 뭔 일이 났는지 알겠지요.” 그 주민은 아주 영특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우리 시대에 역사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쓰여지는지 정곡을 짚고 있다. 지금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무슨 뜻인지 우리는 굳이 애써 물을 필요가 없다. 하물며 내가 살기도 전에 벌어진 일들이 무슨 진실을 갖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조만간 대중문화가 먹기 좋고 보기 좋은 형태로 가공하여 방부처리된 패스트푸드처럼 내게 배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대중문화는 역사가 어떤 이미지로 규정되고 소비되어야 할지 결정해주고 있다.

대박까지는 아니겠지만, [옥탑방 고양이]를 대신해 등장한 새 티비 드라마 [다모]가 뜰 기세이다. “퓨전 무협 사극”이라는 아리송한 간판을 달고 나온 이 드라마는 [와호장룡]의 유려한 와이어 액션을 본뜬 데다 유치찬란한 멜로적 요소와 수사극이라는 연속극의 얼개를 뒤죽박죽 뒤섞어 놓은 짬뽕 드라마이다. [다모]란 드라마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역사를 소비하는 포스트모던한 방식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엄혹한 신분차별의 사회에서 서얼 출신의 포청 관리와 역적을 꾀한 양반 가문 출신의 노비인 여주인공과 대동 세상을 꿈꾸는 어느 혁명아의 진부한 삼각관계가 이 드라마를 엮는 얼개이다. 조선시대 후기란 배경은 물론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이 드라마를 즐겁게 소비하기 위해 시청자들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그저 분위기를 잡아주는 배경일 뿐이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독특한 이야기의 장르가 언제나 현재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쓰여진 과거일 뿐이라지만 그 과거는 더 이상 무슨 의미심장한 역사의 법칙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현재가 무엇인지 재현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역사는 이미 그 역사를 전유할 이데올로기적 주체를 잃은 지 오래이다. 국민적 정체성 아래 우리를 묶어주던 공통의 과거로서의 역사는 고작 공무원 시험에나 등장하는 국사일 뿐이다. 피억압 계급으로서의 민중의 역사는 탈근대의 낭만적 신화가 되어 대하무협지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에서의 18일]을 읽으며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에 대해 머리를 싸매는 것은 바보짓이다. [나폴레옹과 조세핀 문화미술대전] 박람회에 가면 우리는 프랑스의 역사를 전감각적으로 생생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모]는 지금 우리가 역사와 맺고 있는 관계를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예일 것이다. 이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보며 역사라는 문자에 전율했던 386세대, 식민지반봉건이냐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냐를 놓고 단내를 뿜으며 논쟁했던 6월항쟁 세대의 역사와 매우 다른 것이다. 역사란 사회적으로 소비하는 이야기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생각해 보자면 둘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반공자유민주주의의 주술로부터 해방되는데 우리는 한 점의 사소한 역사적 지식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때의 역사 역시 물론 이야기인 것이다. 국가안전기획부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온건한 역사책을 빨갱이 책의 대표 선수로 낙인찍고 그토록 집요하게 금지한 것은 그 책의 이야기로서의 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역사학자들이 이야기로서의 역사란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탈근대 자본주의는 벌써 훨씬 앞서나가 있다.
탈근대 자본주의가 역사를 가리키기 위해 쓰는 가장 흔한 용어는 “문화콘텐츠”일 것이다. 역사는 자연사박물관과 문화축제, 테마 파크, 시뮬레이션 게임, 패키지 여행을 만들어내는 우리 시대의 훌륭한 문화상품이다. 우리는 허준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허준 의료박물관을 건립하여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릴 수도 있고, 허준의 간난에 찬 삶을 추념하며 그의 이름을 딴 약초 박람회를 열 수도 있을 것이며, 허준의 이름을 딴 브랜드 마케팅을 특허로 등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던 지식 경제에서 역사도 역시 문화상품이며 콘텐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의 디즈니랜드화로부터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역사의 이야기가 폭증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역사의 이야기로서의 빈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역사가 이야기란 것은 굳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앞에서 우리와 다른 라이프스타일의 한 종류로 상연되는 역사를 관전할 때, 그 역사는 알다시피 이야기가 아니라 침묵이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이야기 안에서 소비되는 역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역사란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지 않은 채 영원한 동일성의 순환이라는 질식할 듯한 침묵에 빠져든 역사이다. 역사가 이야기일 때 그것은 현재의 삶을 말하는 방식을 차별화한다는 뜻이다. 역사가 삶의 서사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서사란 것은 그것이 끊임없이 이야기된다는 점에 있다. 이야기가 끊기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세헤라자데처럼 우리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포스트모던한 역사의 소비로부터 우리가 구제해야할 것이야말로 이야기로서의 역사이다.

매그놀리아, 신바람, 성공하는 사람을 위한 7가지 습관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노동과 문화

더 이상 기업가는 제조품을 만들어내는 업자가 아니라 연출가이며, 이야기꾼이고, 행위예술의 감독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 상식을 비웃기도 어려운 것이 이미 일의 강박관념에 휩싸인 채, “라꾸라꾸” 간이침대를 제 사무실에 들여놓고, 오피스텔 지하층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씹으며, 아직도 대박과 히트의 꿈을 꾸는 미래의 CEO들이 주변엔 즐비하다. 그들은 일에 환장해 있고, 일이 즐거우며, 무엇보다 일과 결혼하거나 연애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에의 몰입을 병리적 현상으로 쉽게 진단하며, 이를 그저 “노동중독”이라고 안이하게 부를 수만도 없다. 노동을 향한 강박관념, 그 열렬한 편집증적인 상태를 탓하기에는 그것을 심리적 병리 이상으로 분석하려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매그놀리아]는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음란한 메시지를 훌륭하게 상연한다. 알다시피 영화 [매그놀리아]의 주인공은 포스트모던 자본주의를 위한 리더십의 부흥사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창의성과 개성, 능력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목자이다. 그는 근면과 자조, 저축과 절제를 설교하던 근대 초기의 칼빈주의적 목사의 목소리를 21세기에 새로운 판본으로 재연하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소소한 가족적 가치의 파수꾼으로 전락한 교회에 비해, 위성 중계되는 경영 세미나와 부흥회야말로 우리 시대의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정도이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탐 크루즈는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낙오자들을 향해 선동한다. 그는 마음껏 자신들이 기죽어 지내며 외치지 못한 자신의 욕망의 목소리를 내뱉으라고 부추기고, 싸구려 히피주의와 동양철학 그리고 영성주의가 뒤범벅된 뉴에이지적 리더십 세미나를 주재한다.
영화 [매그놀리아]가 음울하게 재현하는 포스트모던 노동 주체의 모습은 이미 남한 자본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저 유명한 “신바람 건강법”이 히트를 쳤던 때가 IMF 위기를 전후한 시절이었던가. 그가 제시한 신바람 건강법은 언제 어느 때나 바보같은 자동인형의 모습으로 언제나 조증상태에 빠진 채 자신의 일과 행위를 쾌락으로 즐기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부터 우리의 독서 시장을 평정한 책들 역시 “즐거운 일”, 어느 경영학자의 말대로라면 “힘든 재미”로서의 일을 위한 복음서들이었다.
놀랍게도 한국과 대만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갔다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을 위한 7가지 습관]을 생각해보자.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구루(guru)인 스티브 코비는 일을 명료하게 정의되고 완수되어야할 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습관을 잘 조직하는 사람이라고 역설한다. 탈근대 자본주의의 영웅은 관료화된 노동조직에서 불굴의 에너지를 발휘한 소비에트적인 노동 영웅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노동 영웅은 바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이를테면 경영학 서적들의 클리세를 빌리자면, 놀이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들처럼, 자신의 일을 놀이의 즐거움 속에 심취한 노동자이다. 그것은 습관이며 기질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평소의 반복된 주장을 빌려쓰자면, 왕년의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심적 경제는 신경증이고,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심적 경제는 도착이다. 이를 풀이하자면 이럴 것이다. 산업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징화하려 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과업, 한정된 조직과 활동 따위로 직조된 포드주의적 공장에서의 노동자의 특성은 히스테리에 휩싸인 사람이다. 그 노동자는 자신을 규정하는 상징적 명령, 즉 자본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에서 그러한 명령의 주체 – 즉 사장, 선생님, 아버지 등 -는 없다. 따라서 질서와 규율, 명령 따위로 직조된 상징적 질서를 대신하는 것은 나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욕망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주체가 아닌 한 높은 가치의 활동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은 포스트모던 경영학, 교육학 등의 핵심적인 슬로건이다.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를 실현하고, 나의 개성을 발휘하며, 나의 잠재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경증적인 자본주의가 아니라 도착적인 자본주의이다. 도착의 결정적인 특성이 바로 자신을 상징적 명령의 자리에 내세우는 것이라면, 그것의 세속적인 표현은 포스트모던 경영의 담론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 시대의 비판적 문화 담론의 어떤 부분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하나의 팁. 일급 문화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톰 피터스와 피터 드러커 그리고 스티브 코비를 읽어라. 그리고 도착적인 자본주의와 죽도록 즐겁게 춤을 추어라. 탈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희한한 무도병의 희생자고 되고 싶다면.

35세 정년, 조 스트러머 그리고 386 세대

단 한번도 386이란 문자와 동일시해 본 적이 없는, 그 동네에서 스스로 호적을 파버린 날라리 문화평론가인 내게, 30대를 향한 모욕과 적대는 참으로 우습다. 가소롭다. 솔직히 말해 이보다 별 시덥잖은 꼴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오정(45세 정년)이란 괴담이 떠돌더니 이제는 삼오정(35세 정년)이란 더 섬뜩한 괴담이 횡행하고 있다. 완전계약제와 연봉제라는 유연한 고용 형태가 시대의 흐름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탈근대자본주의의 나팔수들마저 이런 추세에 뜨끔해 한다. 그래도 일말의 눈치는 남은 것이다.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만년 철밥통을 꿰찼거나 아니면 고액연봉의 오르가즘에 진저리치는 이들이 복창하는 노동의 자유가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겐 해고의 자유이며 빈곤의 자유란 것은 지난 5년의 세월이 충분히 증명하여 주었다. 그런데 이제 삼오정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30대 이후의 일 맛을 터득한 숙련 노동자에게 조기 퇴직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이동을 보장해주라는 썩 겸손한 조언이 다투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잠시만 기다리자. 전통적인 위계의 고리타분한 직장에서 벗어나 “와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법한(물론 나는 지금 마돈나나 에미넴만큼이나 유명한 톰 피터스의 [와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자신을 브랜드화한 30대 초반의 CEO가 등장하여 우리의 불안을 씻어줄 것이다. 쇄신이 아니라 혁명이고 질서가 아니라 혼돈이며 직업이 아니라 인생의 실험이라는 탈근대 자본주의의 경영 구루들의 복음은 나날이 인기를 더해 가는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이다. 아쉽게도 나는 선착순 몇 천명만 받는다는 세계적인 경영 전도사 스티븐 코비의 장충체육관 내한 강연 이벤트에 가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주제에 주5일제 근무가 어디 언감생심인가. 내가 아는 한 일초도 쉬지 않고 “좆뺑이”치는 것이 탈근대자본주의이다. 그래도 스티븐 코비 박사의 강연은 들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는 바로 내게 시간관리의 잘못을 알려주고, 베르그송이나 들뢰즈보다 더 쓸모 있는 지속과 생성의 시간론을 귀띔해 주었을지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게다가 그는 스타 아닌가.
정말 우연히 며칠 전 조 스트러머(Joe Strummer)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해 말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몸담았던 펑크 원조 [더 클래시(The Clash)]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랑 동갑내기인 커트 코베인조차 존 레논만큼 늙은 영혼처럼 추억되고 있는데, 하물며 조 스트러머를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그러나 그의 부음은 내게 영 새삼스럽다.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가 죽었다는 부음을 들은 지 불과 며칠 전이었기 때문일까.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은 마치 예상한 부음인 듯 여겨진다. 언제나 음울한, 죽음을 자청한 자들의 괴팍한 기분을 그가 풍기고 다닌 탓일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툼한 스웨터를 걸치고 탁자 옆에서 일본산 사탕 깡통 옆에서 찍은 사진의 기억 뒤로 나는 그의 멜랑콜리가 지겨웠다. “아픈 척도 한두 번이지 너는 해도 너무 한다”는 내 졸렬함 탓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 스트러머의 부고를 접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거의 끝났다는 우울에 빠졌다. 록큰롤의 명예의 전당의 역사에나 어울리는 기억을 주억거리며 내가 센티멘탈해질 이유가 뭐 있겠는가. 그가 조용필도 아니고 신중현도 아니고 한대수도 아닌데.
아마 그것은 내가 30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아직 주택청약예금에 가입도 못했는데, 남들 다 한다는 뮤추얼 펀드에 계좌도 만들지 못했는데, 30대 쁘띠 부르주아지를 향해 세상이 선고하는 부음을 들어야 하다니. 그래서 억울하고 약이 올랐던 탓일까. 60년대를 미국의 몰락과 타락으로 단죄하는 미국의 우익들과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86세대가 나라를 망친다고 거품을 쏟는 꼰대 정객들의 광란 사이에는 묘한 닮은 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한번도 386이란 문자와 동일시해 본 적이 없는, 그 동네에서 스스로 호적을 파버린 날라리 문화평론가인 내게, 30대를 향한 모욕과 적대는 참으로 우습다. 가소롭다. 솔직히 말해 이보다 별 시덥잖은 꼴이 없다. 이광재란 자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몰라도 그를 두고 그렇게 막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극구 노동운동을 하다 잘린 손가락이라는데, 모 일보의 논설위원이란 자가 나서서 그의 소영웅주의에서 비롯된 만용인지 아니면 출세의 의지에서 비롯된 쇼였는지 따지고 그의 순정한 삶에 침을 뱉을 일이 아니란 것이다. 댁들이 배불리 와인 홀짝이고 골프치고 해외여행 다닐 때, 정신이 나갔는지 마음이 본래 약했던 것인지, 눈물을 뿌리며 말리는 부모들에게 등돌리고 구로공단에 들어갔던 젊은 청년을 향해, 그렇게 사후적으로 뒷다마 까는 건 역사적인 예의가 아니다. 청와대 상황실장이 별거라면 별 것이겠지만, 문득 내가 작별했던 그 고약한 386들에겐 그건 정말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한 것이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런데 이번 글은 왜 이렇게 감상적인 거지, 제길. 편집자 양반, 자르려면 자르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