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行…

– 전주엘 다녀왔다. 유쾌하지 못한 이유로 전주영화제를 떠난 후 내내 그곳을 가기가 어려웠다. 이젠 시간도 흘렀고 다른 낯의 사람들로 채워져 쉽게 걸음할 수 있다 여겼다. 그 전 내가 차지했던 지위에 가늠할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비를 붙을만큼의 기력도 없으니, 이젠 그저 영화나 보고 식당이나 기웃대는 가벼운 여행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게 그곳과 어떤 인연을 상기시키는 이들을 피하자는 작정대로 낮은 포복으로 움직여 다녔고, 사람이 모일 만한 곳이면 피하려 애썼다. 덕분에 맘 주름질 일 없이 3박4일, 전주행을 했다.
– 이렇다 할 좋은 영화를 건지지 못해 아쉬웠다. 장유웬의 신작 <녹차>는 아주 실망이었고, 개방개혁 시대에 문혁의 그늘을 규탄하고 처치하려던 한 명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그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괴물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어떻게 전락하는지 보는 듯 했다. 그에게서는 더이상 중국도 없고, 자유도 없고,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분노도 없었다. 아르노 데스플레셍의 <파수꾼>이 그나마 건진 수작이라면 수작일까.
– 카롤린느 샹페띠에라는 촬영감독의 작품이란 이유로 선정된 그의 작품은 고전적인 카프카적인 세계였고, 드물게 인물에 관한 영화였다(모든 영화는 인물을 다루지만 그것은 캐릭터이지 인물은 아니다. 스토리를 상연하는 배역과 불가사의하리만치 충일한 한 인물을 재현하는 영화는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인물을 다룬 영화는 많이 희귀해졌다. 이를테면 나는 데칼로그는 인물에 관한 영화라고 본다. 아니 키에슬로프스키의 모든 영화는 그저 인물에 관한 영화라고 본다). 한시도 한 인물의 낯을 떠나지 않는 영화를 만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데스플레셍은 냉전의 종식과 평화라는 세계의 표면 뒤에서 어떤 공식적인 제도와 권위로부터 그의 자유가 면제된 한 인물 – 역설적으로 그는 자유를 선택한 인물이다 – 과 그의 죽음을 쫓는 한 법의학도의 병적인 집착을 쫓는다. 영화는 아버지가 외교관이었으며 독일에서 성장한 프랑스 청년인 법의학도 마티아스의 파리행을 쫓는다. 마티아스는 프랑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외교부의 관리라는 자로부터 불법입국자란 혐의를 받고 곤욕을 치른 후 파리에 도착한다. 끔찍하고 영문모를 사건에 시달렸던 그가 파리에 도착한 후 열어본 가방에는 괴이한 사람의 머리 하나가 들어있다. 마티아스는 이 영문모를 머리의 신원을 추적하려 발버둥치고, 그는 그가 구 소련에서 살았던 인물이며 수마트라에서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 프랑스의 외교부 안에는 구 소련에서 자유를 택한 과학자를 몰래 서방세계로 빼내 그가 가진 첨단의 과학적 지식을 얻어내는, 일종의 인신매매 비즈니스 팀이 있다. 그들은 소련의 한 인물을 프랑스로 빼내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자유의 영지로 배당된 수마트라에서 자신의 온전하지 못한 자유에 저항을 했고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그의 친형이었던 프랑스인은 그의 동생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외교부에 안에서 투쟁을 벌이다 지금은 미치광이이자 반역자로 몰려 추방을 당하게 된다는 신세가 된다. 마티아스에게 머리를 넘긴 인물은 바로 그였다.
– 그러나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마티아스의 윤리적인 얼굴이다. 음모적인 비밀경찰과 맞서 싸우는 영웅적인 인물이란 설정은 흔한 것이고, 그렇게 보자면 이야기의 얼개는 매우 진부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시시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야기에 실린 서스펜스를 쫓는 것이 아니라 거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듯 보이는 한 미지의 인물을 향한 그의 집착이다. 그의 그런 태도는 국가권력의 뒤안에서 희생당한 한 인물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려는 자의 도덕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자신을 뒤쫓는 저항할 수 없는 윤리적인 요구이다. 그는 마치 그것이 없다면 그의 삶이 무너질 것처럼 그것에 매달린다. 그러나 그의 안티고네적인 모습이 숭고하기는커녕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하게 보이기만 한다.

– 알랭 기로디의 신작 장편인 <용자에겐 쉴 곳이 없다 No Rest for the Brave>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오래된 꿈 That Old Dream That Moves>(일전 나는 이 작품을 “쿨 타임”이란 영어 제목으로 봤던 듯 하다. 로테르담이었던가..)을 다시 볼 수 있어 행복했다. 특히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단편들 역시 만났다. 그러나 아마 그는 매우 난삽한 이력을 가진 감독인 듯 하다. 그의 단편들 가운데 <그것들의 힘>은 적잖이 실망스런 치졸한 작품이었다. 다른 단편 둘은 재치가 있었고, 특히 그가 미장센을 조직하는 능력에 있어 매우 탁월하며, 특히 사운드에 관한 한 금욕적이고 또한 이미지와 대사 사이에 소박하지만 그러나 사려깊은 연관을 부여하는 재주를 지녔음을 알려주었다. 다시 본 <오래된 꿈>은 파스빈더의 <팍스와 그의 친구들>을 연상시키는 그러면서도 그와 동년배일 울리히 사이들이나 미하엘 하네케 혹은 로베르 귀에드기엥을 연상시킨다. 그들의 정묘한 사회적 사실주의나 노동계급 출신 게이의 삶에 관한 치밀한 재현은 무조건적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 <영화보다 낯선>이란 프로그램을 섭렵하지 못한 것은 후회할 일이다. 조나스 메카스나 론 라이스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만나지 못한 것은 분명 후회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영화를 보기 위해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 아이작 줄리앙의 근작을 보지 못한 것 역시 안타깝고 분하다. 그렇지만 마침 상영일정에 포함된 패트릭 킬러의 작품들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는 탈근대적인 도시인 영국에 관한 일종의 “도시의 교향곡” 풍의 영화를 만들려는 듯 했다. 그는 어느 산보객을 내세우며 런던이란 도시를 주유하고 도시의 풍경과 산보객의 파노라마적인 시선을 제시하려 애쓰지만 그 작품은 그 어디에서도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능가하지 못한다. 그저 그 영화는 수다스럽게 기억과 체취가 사라진 도시에 대한 한탄만을 늘어놓고 새로운 도시에서 배양되는 지각의 세계를 근거 없이 혹은 막연하게 축복한다. 그는 너무 책을 많이 읽었거나 아니면 남에게 지루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듯 하다.
– 끌로딘 에이지크만과 기 피만의 실험영화는 볼 만 했지만 흥미로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영화와 사진의 연관을 대신하여 영화와 회화의 관계에 주목하는 실험영화 감독들 같았다. 그들은 이미지의 환영적 성격을 강조하는 사진으로서의 영화와 이미지의 정동적(affective) 능력을 강조하는 회화로서의 영화 가운데 후자의 편에 서있음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시도했던 영화의 이미지의 회화적 성격 – 이 말은 이제 우스운 말이 될 것이다 -을 향한 집요한 관심은 디지털 영화 이후의 시대엔 매우 진부한 물음이다. 아마 많은 이들은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시도했던 수많은 이미지의 회화적 변조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중인화와 빛과 색채의 다양한 변용을 통해 보여준 이미지들은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 사이에서는 이미 식상한 것이거나 흔한 것이다.
– 전주에서 체재하는 어제, 내겐 귀빠진 날이었다. 후배 녀석이 케익과 선물을 준비해 날 감격케 하였다. 동석했던 전주의 토박이 게이들도 내게 후한 축하를 베풀어주었다. 산란해진 마음을 빗질하기 위해 갔던 여행이기도 했던 터라, 그들의 우연한 호의가 날 가격했을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칸 영화제로 가게되었다는 소식이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한국 영화의 개가라고 뿌듯해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문득 최근 이혼을 선언한 어느 개그 우먼 생각에 마음이 신산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는 데 정작 현실에서 여자는 남자의 동네북이기 때문이다. 사실무근이라고 남편은 주장한다지만,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을 제일로 여기는 여자 연예인이 그런 결단을 내렸을 정도면 여염 여성들은 오죽 했겠는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가정 내 폭력을 보여주는 흔하고 뻔한 또 하나의 사례로 치부해서는 안될 듯 하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확대되고 또한 실제로 가장이 되기도 하면서 남자들이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자들이 이런 왜소해진 지위를 인정하기 힘들어하고 그에 따른 심리적 반동으로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게되었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일리가 없지 않다. 이미 많은 가족의 경제적 재생산 형태가 남성 가장의 임금 소득에 의존해 있지 않다. 남자들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살림하는 여자라는 공식은 현실에서는 사라졌는데, 남자들의 뇌리에는 아직 깊이 남아있는지 모른다.

최근 높아지는 이혼율에 제동을 거는 방편으로 정부는 이혼 부부들이 반드시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소통하며 지내는 연습을 시킨 후에 결혼할 자격을 주는 결혼인증제를 도입하자고까지 제안한다. 손쉽게 이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적어도 이혼이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관계를 거부하는 방편인 한 그것은 결혼을 좀 더 민주화하는 장치가 된다. 그렇지만 이혼을 선택할 자유가 보장된다고 결혼이 민주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뇌리에 박힌 기억에 매달린 채 달리 살자는 요구가 곧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 여기는 한, 결혼은 다시 폭력에 말려들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은 남자의 지위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 평등을 요구하는 주장을 이렇게 곡해하는 것은 결혼뿐이 아니다 최근 의회로 진출한 민노당의 평등의 요구를 부유층의 재산을 뺏는 짓이라 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평등의 에토스에 무감각하다. 상생이란 말이 인플레를 일으키는데 정작 평등의 상생은 안 보인다. 왜 일까.
<서울경제신문 칼럼에 쓴 글>

2004. 4. 23.

– 왜 이렇게 마음이 수상한지 모르겠다. 중독되거나 몰입되거나 하는 이상항진상태에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삶의 여독인가. 문득 며칠전 글을 읽다 생각난 것이 떠오른다. 요즘 한참 자기강화, 자긍심 따위를 떠들어대고 장려하는 사회적 변화를 살피다가 의존증후가 미국인의 최대의 악폐라는 이야기를 접했다. 곰곰이 살피니 비단 미국의 일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나 역시 그런 의존증후에 시달린다는 확신이 든다.
– 알콜중독인 남편에게 시달리면서도 더욱 그에게 매달리는 아내들을 두고 의존 증후라고 한단다. 제 정신으로 보면 제게 이로운 것이 뭔지를 헤아릴 줄 모르고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들에게 자주 떠넘기는 비난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긍심도 부족하고 자기를 강화시키려는 의지도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난 그런 “자긍심과 자기강화에의 의지”를 탈근대적인 자아를 조성하는 또다른 권력에의 의지의 변종이라고 본다. 차라리 난 그런 사람들을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고 위로할 것이다.
– 의존증후는 사실 자신의 피해와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왜곡된 희생이 아니라 어떤 윤리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복종하려는 욕망은 지배의 결과를 계산하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배가 있어 복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이 고안해 낸 덫에 타인을 지배의 위치에서 자리잡도록 꾀어내는 것은 아닐까. 매를 맞으면서 함께 사려는 강한 욕망을 굽히지 않는 것, 그것이 거래하는 무엇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내어야 옳지 않을까.

–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소설의 어느 귀퉁이에서 뻔한 말 한토막에 정신이 욱신거렸다. “속 깊은 대화”라는 글귀였는데, 그게 돌부리처럼 눈에 채였다. 그리고 혼자 속 깊은…속 깊은….을 뇌였다. 내가 언제 누구와 속깊은 대화를 나눴었지… 가물하기도 하려니와 숫제 전혀 내 생애에 그런 일은 없었던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몹시 슬펐다.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임태훈을 석방하라

또 한 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감옥에 갇혀 재판 중에 있다. 그는 성공회대학교 엔지오대학원에 재학 중인 평범한 청년이다. 그 역시 여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같이 자신의 윤리적 신념과 결단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다른 병역거부자들과 다르다. 최근 그는 자신이 증거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없음에도 구속 결정을 내린 당국의 판결에 항의해 25일 남짓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였다. 초췌한 모습으로 재판정에 출두한 그의 모습을 본 그의 벗들은 모두 안타까운 심정을 누를 길 없었다.
그의 이름은 임태훈이다. 그는 한때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가로서 동성애자의 인권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에 헌신하였고 현재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회원으로서 역시 동성애자의 사회적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진력하여 왔다. 또 그는 성공회대학교 엔지오대학원에 진학하여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자의 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의 탄핵 정국을 둘러싼 소란에 파묻혀 그의 고독한 양심적인 병역거부는 세인의 관심에서 벗어난 채 벌어지고 있다. 같은 동성애자로서 그리고 그의 선배이자 벗으로서 나는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그가 벌이는 싸움이 고독하지만은 않음을 알리기 위해 이 지면에 글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였음을 밝혔다. 아울러 현재의 병역제도 안에 포함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군복무에 적합한 적성을 확인하고 검증한다는 명분에서 이뤄지는 설문에서 성전환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되는 이를 군복무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군복무는 남성에게 중요한 권리로 인식돼 왔다. 근년 논란이 되었던 군가산점 제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군복무는 곧 남성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서 인정받고 대우받도록 하는 중요한 권리의 제도였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군복무의 권리에서 배제된 성적 소수자는 취업은 물론 공직에서의 활동에 심각한 차별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미 비공식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많은 동성애자들이 일종의 심리적 이상으로 판정되어 여러 굴욕적인 대우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처지에 비추어볼 때 그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한 것과 군복무를 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군복무 중에 있는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전혀 어긋난 일이 아니다. 그는 인권운동가로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한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서 그는 군복무가 한국사회에서 성인 남성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고 통합되는 중요한 통로임을 주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복무가 곧 성적인 소수자를 차별하는 중요한 사회적 제도임을 고발하고 비난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양심적인 병역거부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떳떳이 밝힌 채 한국의 병역제도의 반인권성을 문제삼고 있다. 나는 이미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서 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얼마나 대단한 실존적인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 또한 그것이 단순히 윤리적인 용기로서 치하받기에 앞서 또한 동성애자 사회가 형성되기 위한 필수적이고 피할 수 없는 행위임을 잘 알고 있다.
커밍아웃은 동성애자들이 침묵에서 벗어나 서로를 지원하고 결속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활동의 출발점이다.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들어 커밍아웃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라면 비겁하고 또한 옹졸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 자신이 성적 소수자임을 알리는 일은 그 사회의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이성애적인 규범과 질서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이끈다. 결국 커밍아웃은 동성애자가 자신의 거역할 수 없는 삶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에 차이를 일깨우고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가 굳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참여한 것은 나를 포함한 성적 소수자에게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임태훈의 투쟁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의 외로운 싸움의 벗이 될 것을 자청한다. 또한 그의 조속한 석방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더불어 군대 안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받으며 복무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소수적 성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차별과 모욕을 받지 않은 채 병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복무 기준과 교육이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 다시 한번 밝힌다. 동성애자로서 그리고 평화주의자로서 나는 임태훈씨의 투쟁을 지지한다.
서동진/문화평론가
http://www.hani.co.kr/section-001062000/2004/04/001062000200404071925151.html

나는 동성애자이므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

나는 게이 남성으로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 그것은 보다 나은 삶을 향한 나의 꿈이 개인적인 소망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게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나의 개인적인 욕망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동성애자는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하며 만들어진 역사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는 자본주의사회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진보적인 전망과 가치에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사회는 이성애적 가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친밀한 인간관계로 만들었다. 노동의 가치를 분배하는 제도는 언제나 이성애 가족과 결혼이었으며, 그것에 의해 우리는 삶을 재생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탓에 이성애자와 구별되는 다른 모든 성의 주체는 차별과 적대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이성애 중심적인 자본주의사회를 극복하려는 꿈을 함께 꾸는 벗으로서 민주노동당을 선택한다. 물론 우리는 한국 사회를 비롯하여 많은 부유한 자본주의 사회들이, 다양성을 떠들며 동성애자들을 사회에 포용하는 시늉을 보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아가 높은 소득을 누리며 가족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세련된 삶을 산다고 동성애자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조차 한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를 일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개척자로 칭찬한다고 해서 성적 소수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고작해야 부유한 일부 남성 동성애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려니와 거기서 가리키는 동성애자란 소비자로서의 동성애자이지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동성애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올곧은 노력을 통해서만 성적 소수자의 삶 역시 변화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더욱 나는 민주노동당을 신뢰하며 이번 총선에서도 그들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나는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모든 착취와 불평등을 해결하고 또한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금융 위기 이후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삶의 고통에 직면해 있다. 빈곤은 심화되어 가고 있고, 실업은 늘어만 가고 있으며, 교육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서비스는 기업화되어가고 있다. 규제완화와 유연고용, 자기계발과 국제경쟁력을 내세우며 정부와 자본은 우리에게 위협을 일삼고 있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꿈은 멀어지고 있고 미국의 독단적인 패권주의에 종속된 채 더러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바꾸어 가는데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가장 미더운 대안일 것으로 믿는다.

기관 없는 신체 혹은 신체 없는 기관

기관 없는 신체 혹은 신체 없는 기관 – 신체의 재현과 그 위기


재현의 위기 그렇다면….
<아침형 인간>이란 자기계발서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기계발서의 유행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명민한 사회학자라면 이러한 자기지침서(self-help manual) 혹은 자기계발서의 유행을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사회적 증상(social symptom)으로 진단하고 그것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회학 혹은 문화이론으로부터 이러한 자기계발서에 대한 분석이 적잖이 등장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이 자기지침서를 분석의 대상으로 정의할 때 주로 의지하는 개념은 “자아(self)”이다. “재귀적 근대성(reflexive modernity)”이란 개념으로 후기 근대자본주의의 주체성을 분석하는 앤서니 기든스의 입장 역시 자아 정체성이란 개념의 둘레를 맴돈다. 후기 근대의 자기정체성에 관한 그의 저작의 제목은 <근대성과 자기정체성>이었다.
그가 말하는 후기 근대의 “성숙한 자아”란 재귀적 근대성의 체계 안에 놓여 있다. 재귀적 근대성을 설명하는 한가지 방식은 근대화는 곧 탈전통화라는 것이다. 탈전통화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일반적인 규범을 합리적인 반성의 대상으로 옮겨놓는다. 줄여 말하자면 이는 ‘감히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여’, 전통이나 미신과 같은 억견을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앤서니 기든스는 탈전통화라고 불리우는 근대성의 영향은 정치나 경제와 같은 공식적인 사회적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탈전통화의 논리는 이제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까지 흘러들어 미만해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우리는 몸에 관한 의료과학의 공식적 지식의 일의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대체의학을 선택한다, 우리는 친밀성의 유일한 합법적인 형식인 이성애적인 결혼을 상대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대안적인 가족을 인정하고 있다 운운).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후기 근대이고 성숙한 근대성이다. 이제 탈전통화라는 근대의 비판적 해석학은 바야흐로 결혼과 가족관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친밀성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기든스가 예상하는 후기 근대의 성숙한 주체의 모습은 혹시 그 반대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개척하는 성숙한 근대적 주체의 재귀성은 거꾸로 뒤집혀져 우리의 삶을 옥죄는 “금지 없는 명령”이 된 것이 아닐까.
– 문학과 경계 봄 호에 기고한 글의 도입부입니다.

내 사랑 커트

살아 있다면 미국 나이로 서른 일곱, 한국 나이로 서른 여덟,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동갑내기의 스타이다. 존 레넌의 부고를 들었더라도 그랬을까, 나는 그의 때 이른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망연자실했다. 그 때 나는 많은 부음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불과 한 주 전에 어느 미국 주간지에서 오려내어 액자에 끼워 두었던 그의 近影을, 영정으로 삼고, 참으로 섧게 목놓아 울었다. 그는 90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보수적 규범에 이를 물고 대들기로 했던 내게 있어 일종의 정령이었고 또한 더없이 따뜻한 수호천사였다.

신장개업한 신촌의 록카페에서 <너바나>의 노래를 최고의 볼륨으로 틀어놓고, 만취한 채 광란하는 일은, 나의 90년대의 일과였다. 그것은 나의 80년대, 사회주의적 운동권을 통해 훈육된 몸을 벗는 탈피의 노동이었고 또한 새롭게 각성한 나의 기이한 성벽을 향한 화해와 찬송이기도 했다. 란제리와 가발과 화장을 향한 그의 기이한 선호는 내게 있어 더없이 분명했다. 그의 도착은 나의 도착이었다.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착란적인 것있는지 모르겠지만, 곧 도착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신은 게이다”는 그의 노랫말을 복창하며 나는 제 자신의 90년대적인 자유주의적 일탈을 만끽했다. 그러나 너바나의 열혈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슬픈 일이었으며 또한 너바나의 음악은 결국 고독한 리스너들을 위한 음악인지를.

욕망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성혁명

결혼전문가 혹은 커플매니저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학적 증상일 것이다. 모든 사회이론은 만남 자체를 괄호친다. 만남을 성사시키는 조건은 묻지 않은 채 만남이 이뤄진 뒤의 공식적인 사회적 계약 요컨대 결혼과 가족, 연인 등을 분석한다. 따라서 그런 만남이 이뤄지도록 만들어주는 조건을 분석하는 것은 망각되거나 포기된다. 그런 점에서 커플매니저와 결혼전문가는 사회학자들이 방만하게 무시했던 중요한 영역, 즉 만남에 관하여 분석하고 종합하는 우리 시대의 숨은 사회학자들이다. 그들은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분석하며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상징적 지식을 생산한다. 물론 그것을 통해 꽤 많은 돈까지 벌어들인다.

(제프 쿤스, <블로우 잡(카마수트라)>)
접대 혹은 손님을 맞이하는 정신적 태도가 제3자 혹은 이방인과의 만남이라면, 결혼이나 연애는 내부에서의 만남에 해당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 제법 많은 사회이론가들이 분석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호텔은 전문화되고 상업화된 접대의 공간이다. 나날이 번창하는 컨벤션 센터류의 접대 공간과 파티서비스업과 캐터링 산업 등이 선도하는 접대 행위의 산업화는, 만남의 행위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가능한 손님을 집으로 맞이하길 꺼린다. 푸짐한 성찬과 과시적인 증여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던 과거의 접대의 에토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는 가능한 집을 밀실화하고 있으며 “둥지”와도 같은 집이 바깥에 드러나길 꺼린다. 탈근대적 주거문화의 표본이자 “한국판 상류층의 신주거문화”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아파트는 아예 입주자를 찾는 손님을 재울 게스트룸을 따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입주자들을 취재한 어느 신문의 기사는 “그들의 생활양식”에 관해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태도는 한마디로 말하면 “예절과 매너”라는 것이다. 동네 수퍼마켓을 갈 때라도 츄리닝을 입어선 안되는 예절이 바로 그들의 에토스이다. 그렇지만 접대의 문화적 정체성이 이렇게 바뀌어가듯이 만남의 정체성 역시 상당히 바뀌었다.
일전 누가 서평을 게재한 적이 있는 미셀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은 우리 시대의 만남의 불가해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보고서일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욕망의 철학을 비판하는 과격한 선언을 제출한다. 그는 이미 노환에 시달리고, 그 자신의 잦은 표현에 따르면 망령이 들은 노인들의 헛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욕망의 철학”을 규탄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그 염병할 노인들이 누구일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분명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나아가 욕망과 쾌락을 예찬한 모든 철학자들일 것이다. 우엘벡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욕망의 철학과 생활양식은 미국에서 건너온 비트족과 히피족의 정신적인 에토스를 흡수하고 욕망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다가 스스로 파멸했으며 나아가 그 뒤를 잇는 세대를 파멸시킨 자들이다(따라서 들뢰즈와 푸코가 미국에서 복잡계이론과 초끈이론, 분자생물학을 뒤섞은 희한한 히피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예찬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나체 해수욕장과 뉴에이지 풍의 레저시설의 주인이 되었으며, 불감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병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비판을 자신의 욕망을 확보하기 위한 저열한 경쟁과 아집으로 몰아넣은 자들이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바로 이러한 68 세대의 철학 아래에서 황폐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의 아들, 딸들이다. 그들이 근사한 아파트의 테라스에서 스와핑을 즐기고, 저녁 식사에서 욕망의 철학을 회상하며 쭈글해진 뱃가죽을 쓸어 내릴 때, 바로 그들이 번식시킨 두 아들, [소립자]의 주인공인 브뤼노와 미셸은 우울증과 편집증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든다. 그런데 우엘벡의 [소립자]나 [플랫폼]같은 소설이 들려주는 하염없이 서글픈 20세기를 향한 부고는 또한 우리에게도 더없이 해당된다.
그러나 우엘벡의 소설이 환기하는 것은 만남에 대한 음험하고 도저한 향수이다. 그것은 낭만적 사랑, 진실한 사랑을 향한 안타까운 열망을 제외하곤 만남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우엘벡은 실증주의와 무성생식의 세계를 꿈꾸는 미셸과 결국은 미쳐버린 채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섹스중독자인 브뤼노로부터 지극히 애매하고 반동적인 주장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재발견이다. 그들이 죽기 직전 마침내 진정한 사랑인 듯한 운명적인 그녀들과 재회하고, 잠시 행복을 맛본 후 곧 끔찍한 죽음으로 그녀들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각자 파멸적인 선택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우엘벡의 싱겁고 시시한 결론의 암시로부터 가정의 가치를 일깨우고 진정한 헌신과 맹세에 바탕한 결혼을 강조하는 통일교와 모르몬교의 복음을 들을 뿐이라고 강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우엘벡같이 총명한 작가가 주장하려 한 바는 바로 섹스를 둘러싼 “풍속의 해방”이 가져온 파국적인 결과, 사이비 절대 자유주의의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반성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우엘벡의 주장 따위는 아랑곳 않을 것이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며 기꺼이 안전하고 쾌적한 SM을 즐길 것이고, 애널 섹스를 둘러싼 공포를 극복하고자 애쓸 것이며, 스와핑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추출된 상대와 수백 번이 넘게 미팅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가장 안전하고 훌륭한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기꺼이 요금을 지불하고 데이터베이스 속에 자신의 자질구레한 신상명세를 넘길 것이다. 또한 “동쪽에서 오는 귀인을 만나게될 것이다”는 따위의 점괘를 얻고자 복채를 지불할 것이며, 타로카드와 사주궁합을 보는 데 아낌없이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싸구려 행동심리학과 뉴에이지 풍의 사이버네틱스, 허접한 동양학이 뒤섞여 만들어낸 만남의 과학을 통해 만남의 “기적”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이같은 “만남”을 둘러싼 인식의 증대가 어느 사회학자의 말마따나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가져오고 한결 “자기성찰성”이 증대된 “순수한 관계”, “조형적인 섹슈얼리티”로의 진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물론 우리는 그런 주장에 한치도 동의할 수 없다. 우엘벡의 주장처럼 우리는 사랑을 더욱더 지혜롭게 통제할 수 있는 세대가 되기는커녕 만남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인류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여기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느라 우리는 또 수십 년을 허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또 한번의 성혁명이 있을 것이다. 부디 그것이 극우가족주의자에 의한 반혁명이 아니길 학수고대할 뿐이다.

위안부 누드, 강간 환상 그리고 식민주의의 섹슈얼리티

정반대로 위안부 누드는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억마저 소모하고 있기에 더욱 위악하고 또한 폭력적이다. 위안부 누드는 역사적 기억을 강간 환상의 무대 안에서 소비한다. 그 자리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한 성적인 파트너, 마조히스틱한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그것의 공식명칭은 종군위안부 테마영상집이었다 한다)로 북새통이다. 식민의 역사를 다시 기억해보자는 진지한 발로에서 위안부 누드를 기획했다는 제작사 측의 주장은, 참으로 가소롭고 기상천외한 설레발이다. 이런 졸렬한 변명을 할 생각이었으면 그냥 함구하고 있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이들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위안부 누드를 만든 이들은 위안부 여성들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천연덕스럽게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했거나 무식했던 점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다들 즐기고 있다”는 순진한 사실만을 알고 있었지 “아무도 즐기지 않는 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어제 나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흔해빠진 저질스런 음란한 낙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고 말았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물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옆집에 사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화장실 낙서와 위안부 여성들의 성적인 재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모두 은밀한 강간 환상의 틀을 통해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위안부 여성들이 식민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위안부 여성들의 체험을 집요하게 성으로부터 떼어놓으려 애써왔다.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체험을 상징화하는 유일하게 허용된 방식은 “식민지 백성”이다. 이는 그녀들이 겪은 고통의 핵심적인 원인이 강간이라는 사실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는 전시에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체험을 인종적 폭력과 식민적인 지배의 결과로 환원하려는 (보스니아나 르완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남성의 역사적 법정의 논리이다. 설령 그녀들이 겪은 강간의 체험을 마지못해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가 아니라 자기 여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힘없는 남자들의 무력과 자괴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오랜 세월 숨죽여 살다가 마침내 ‘커밍아웃’을 하였을 때 그녀들을 그토록 침묵하게 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그녀들이 전시에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누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대 할머니들을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를 기억하는 남성 주체의 입장 안에 강간당한 여성의 자리는 없거나 부정된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이이거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다. 그렇지만 민족의 역사가 위안부 여성들이 겪은 강간당한 여성으로서의 체험을 소외시키고 식민지 백성으로 상징화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위안부 여성들의 강간의 체험을 완벽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된 채 긍정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위안부 누드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런 억압된 채 즐겨지고 있던 남성적 환상이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혹은 성의 희생을 강요당한 역사 속의 여성들)에게 투입되어 있는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그만 어이없이 누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위안부 누드는 괜찮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정반대로 위안부 누드는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억마저 소모하고 있기에 더욱 위악하고 또한 폭력적이다. 위안부 누드는 역사적 기억을 강간 환상의 무대 안에서 소비한다. 그 자리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한 성적인 파트너, 마조히스틱한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때의 위안부 여성은 재국주의적 전쟁에 징발당한 채 성적인 보상을 제공해야 했던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집행하는 “나의” 상상적인 여성일 뿐이다. 이는 강간이나 성희롱을 자행한 남자들에게서 흔히 듣는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그는 왜 그녀가 그것이 싫었다면 왜 감히 저항하고 부정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과 그녀 사이에 놓인 권력관계를 보지 못한 채 오직 욕망의 대면만으로 그 상황을 각색한다. 성폭력과 강간을 저지른 남자들의 집요한 환상은 언제나 그녀도 분명히 즐겼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부 누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리고 위안부 누드의 비참함은 바로 이런 성적 환상을 위해 전시 강간이라는 비극적 진실을 망각한다는데 있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의 체험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우고 있다. 어떻게 감히 “어머니 조국”을 능욕하느냐고 위안부 누드를 비난할 때 그 주장은 식민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의 역사 안에 놓인 위안부 여성의 체험에 숨어있는 성을 떼어내고 아울러 자신의 몰역사적인 강간 환상을 유지하려는 몸짓에 가깝다. 위안부 누드는 식민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강간 환상을 이용한 싸구려 포르노일 뿐이다. 그것은 식민적 역사와 전시의 강간을 자신의 환상의 무대 안의 간단한 장치로 소비하려 했을 뿐이다. 따라서 위안부 누드의 평범하고 순진한 의도가 격렬한 거부에 좌절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견지되어야만 하는 “망각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성적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우리는 상대의 욕망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욕망의 무대가 되는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현실을 가능한 모른 척해야 한다. 그래야 그 환상은 달콤하고 뜨거워진다. 그러나 위안부 누드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결코 그것을 무덤까지 비밀로 지킨 채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와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부 누드가 실패한 것도 이 점에 있을 것이다. 자신의 체험을 진술하고 증언하는 여성 앞에서 남성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위안부 여성은 결코 자신의 체험을 역사화하지 못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주체가 민족인 한 그것이 기억하는 여성은 어머니나 누이 뿐이다. 민족-역사의 환상과 강간 환상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온당한 방식일 수 없고 또한 위안부 여성을 기억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는 것은 그것을 은밀히 즐기는 자들의 허울좋은 농담일 뿐이다.
– 컬티즌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어느 급진주의자의 생각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길 거부하는 수구반동 세력의 “테르미도르의 반동”인지 아니면 노무현 식 신자유주의의 순항을 위한 “올인” 계략인지 아직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세상은 뒤집혔다. 당장 7만 명이 넘는 이들이 광화문에 모였고, 광주에서도 부산에서도 탄핵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탄핵안이 가결된 그 날 더럽고 꿀꿀한 기분으로 한 나절을 어영부영 보내고 난 후 우리는 티비 앞에서 여론조사의 발표를 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상황은 야릇하게 흘러가고 있다. 여론조작과 언론공세를 탓하며 제 분수를 모른 채 투덜대는 야당은 그렇다 치자.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폭거라는 둥 헌정 위기, 국정 문란이라는 둥 갖은 해괴한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질서유지당으로서의 본색을 유감 없이 드러내는 열린우리당의 방황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급기야 정동영은 오늘 시위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다. 아직은 흐뭇하고 반갑기 짝이 없는 현상이겠지만 이 시위가 언제 어느 곳으로 튈지는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무현을 향한 여론과 탄핵을 향한 여론 사이에 놓은 간극은 바로 그런 불안의 원천이다. 헌법재판소의 무난한 판결로 사태를 수습하고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대박을 터뜨리려는 열린우리당의 정략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유동적인 상황은 열린우리당이 그리 쉽게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발적인 시민들의 저항과 행동은 열린우리당이 어떤 오버를 하든 쉽게 그들의 의지대로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물어보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데 “탄핵무효 국민행동”의 행보 역시 시원찮은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인가 친노 대 반노인가라는 이상한 대비를 내세우며 열린우리당의 헤게모니를 조금은 따돌리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 들어선 길이란 점을 덮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민주노동당의 비판적 지지자이며,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무슨 지식인이지 뭔지 하는데 참여했던 작자이다. 사태를 분명히 하자.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IMF의 신탁통치라는 금융위기를 발판으로 벤처 캐피탈리스트, 펀드 매니저, 닷컴 졸부 등과 함께 입성했다. 그것은 거의 해일처럼 들이닥친 구조조정의 태풍을 낳았고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의 참담한 현실을 선물로 주었다. 국민의 정부는 서슬 푸른 군부통치의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전에 없던 민주주의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에겐 인간의 모습을 한 신시대형 개발 독재였다. 이것이 파시즘적인 개발독재와 다른 점은 국민적 합의를 동원하는 새로운 조합주의적인 통치체제라는 점 뿐이다. 그 어느 것이든 민중적 이해와 상관없는 정권임은 다르지 않다. 게다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노사정 위원회니 청소년보호위원회니 아니면 국가인권위원회니 하는 수많은 시민사회 참여형 위원회를 통해 참여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또한 통합된 정치적 개혁과 변화의 프로그램에 대한 상상은 질식시키고 사안마다 각 이해집단의 협의와 조정으로 풀어낸다는 새로운 위원회형 정치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는 총체적인 정치 변화란 낡은 사회주의정치의 유산일 뿐이라고 빈정대며 무수한 모모 연대와 위원회로 흩어져 열심히 신자유주의적인 퇴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다. 노무현 정권은 거의 공포에 질려있는 국민과 상대하고 있다. 전무후무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줄어드는 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의 꿈은 오직 하나 변변한 일자리와 약간의 임금 소득이다. 탄핵 정국이라는 이름의 정세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판박이처럼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웃지 못할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제신용평가기관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성장과 발전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는 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맹위를 떨친다. 국민의 정부가 경제적 위기 관리를 위한 조합주의적 정치 체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최대의 수혜자는 노무현 정권이었다. 이제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인 구조 개혁을 성공리에 마친 한국 자본주의의 두 번째 라운드의 위기를 관리하고 해결해야할 책임을 떠맡았다. 그것은 전무후무한 빈부격차와 실업, 공교육의 위기 그리고 이런 사회적 변화가 초래한 숱한 혼란이다. 신자유주의의 슬로건은 수도 없이 바뀌어왔다. 지식주도, 유연화, 혁신과 변화 등의 개념은 입사준비용 시사상식에나 등장하는 먼 옛날의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배드 뱅크”와 “신불자”, 생계형 자살, 이태백과 사오정, 웰빙족과 명품족같은 신조어들에 휩싸여 있다. 노무현 정권이 서있는 자리도 여기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화 시대의 경제에 연착륙하였고 IMF와 굴지의 신용평가사들과 초국적기업들로부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들었다.
노무현 정권은 바로 그 변신한 한국 자본주의의 사회적 위기 관리의 책임을 떠맡았다. 다행히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정착한 신자유주의적 정권은 여러 가지 보호막에 싸여 있었다. 노빠부대는 바로 노무현 정권의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가진 자들의 정권으로 기능하는 노무현 정권이 그 어느 때보다 없는 자들의 희망의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한국 보수정치의 구태에 염증 난 이들의 선량한 희망을 모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쟁취한 시민민주주의를 수호하여야 한다는 이들의 선의를 의심할 생각 역시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지만 넥타이부대의 전설은 이제 끝날 때도 되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보다 열린우리당이 건전하고 신선하며 양호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무현 정권이 군부독재의 공포정치보다 훨씬 국민적인 정권이란 주장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이 변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관리를 위해 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정권이란 점은 인정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지역주의와 악랄한 반공, 반북주의 그리고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보수주의를 버무린,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데올로기 없는 헤게모니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반동 때문에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또 버텼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힘들은 바로 한국 자본주의가 변화하며 낙오를 강요당한 이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뒤섞여 있다. 임금 경쟁에서 밀려난 중소기업인들, 대형할인점에 쫓겨난 재래식 상가의 상인들, 자기관리와 취업을 강요당하는 중산층 이하여 여성들, 심지어 미래가 안 보이는 데도 끊임없이 능력과 창의성, 계발을 강요당하는 지친 20대들(이들이 반공단체를 능가하는 막가파 꼴통 보수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그 지지세력 아닐까.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수구반동 대 민주의 이분법의 틀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그렇게 입바른 소리 잘하는 진보는 뭐했냐고 물으면 할 말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지금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로 이어지는 변화의 와중에서 아주 넋을 잃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들러리로 전락한 세력과 당장 절대절명의 삶의 순간에 사로잡힌 이들의 분노에 끌려다니는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물론 압도적으로 성공하였으며 대세인 것은 전자이다. 이들은 사회책임경영, 상생의 기업문화 등을 내세우고, 주총을 쫓아다니고 공인회계사와 변호사를 동원해 투명 경영과 합리적인 착취를 강변한다. 사회운동은 이제 재단을 설립하고 변호사의 자문을 받고 공인회계사의 평가를 받는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가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세력은?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 혹은 빈민화한 제조업분야의 노동자들과 함께 주변화될 만큼 주변화되고 있다. 다들 자기고용과 기업가정신의 신경제의 이데올로기에 홀라당 넘어가 착취에 대한 반대는커녕 행여나 자기가 부족한 게 있을 새라 <아침형 인간>을 읽으며 자신을 혁신시키는 것이 신경제의 시대의 삶의 풍경이다. 따라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분노에서 계속 악순환을 거듭하는 전투적인 조합주의는 여간 심란하고 심지어 거리를 두고 싶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민노총과 진보적인 사회운동은 계속 그런 빈민화된 민중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서울역 앞에서 벌어진 초라한 민중운동 진영의 집회와 그리고 울산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의 쓸쓸한 분노는 아마 그런 진보진영이 직면하고 있는 답보의 단면이었을 것이다.
다시 탄핵정국으로 돌아가자. 맘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위기관리를 떠맡은 노무현 정권의 순조로운 통치를 위한 호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권은 어쩌면 다수 여당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고 국민의 정부 시절 순조롭게 완수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뼈대 위에 정책과 제도의 살을 붙여 이를 완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았던 장벽은 놀랍게도 민중 진영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보수정당이었다. 그러나 판은 새롭게 짜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노빠부대와 참여형 경선 그리고 대선을 통해 확보한 국민적 헤게모니를 사사건건 무너뜨리려 했던 반동적인 보수 야당은, 이제 몰락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서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열린우리당과 현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향한 비판을 보수반동에 대한 저항이란 이름으로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더없이 나쁜 시나리오이다. 항간에서 들려오는 총선 연기와 개헌 음모의 시나리오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설령 그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 해도 그것은 제2의 탄핵이 될 것이고 또 한번 들붙같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궁지에 몰렸어도 사양길에 접어든 보수적인 당파들이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하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다면 아마 그들은 아마 가장 추악하고 참담한 파멸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몰락을 자초한 보수적인 당파들에 관하여 심판을 내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이 이후의 상황에서 발휘할 바람직하지 못한 효과를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민의 힘으로 재기에 성공한 참여정부는 이제 신자유주의적 개혁 드라이브를 접고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 아랑곳없이 또한 미국의 간섭과 주문을 가볍게 물리치며 국민의 이해를 살피는 정권으로 거듭 날까. 물론 그것은 전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정반대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참여 정부를 위해 국민에게 남겨진 것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협의에 참여하는 것이고, 부안 거리에서 떼지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세로 대책 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신불자가 되어, 불안한 미래에 몸서리치는 반실업자가 되어, 이 미증유의 변화를 강요하는 사회의 논리에 압사당할 것이다. 결국 탄핵 정국을 돌파하는 옳은 대안은 질서유지당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개입을 물리치고 국민적인 저항의 진정한 방향을 가늠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관건은 화염병을 던지고 육탄전을 벌이며 시내 전역을 숨바꼭질했던 울산의 노동자대회와 10만개의 촛불을 밝히고 아름답고 성숙한 축제를 벌인 광화문의 행사장 사이에 놓인 거리에 있다. 그 거리는 곧 참여정부가 수구세력의 정치적 반동의 피해자라는 연민과 분노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이 초래한 불안하고 참담한 삶을 향한 분노 사이에 놓여있다. 이 거리가 참여정부형 신자유주의적 정권이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줄지 아니면 군사독재의 유령에 짓눌린 채 민주주의만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중적인 개입의 출발점이 되어줄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질서 수호의 이데올로기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그 무엇으로도 완성될 수 없고 완성되어선 안되는 명령이다. 우리는 이미 실현된 민주주의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부족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