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민중미술을 넘어 – 배영환의 <남자의 길>과 그 성취

“상식적인” 삶, 그리고 “상식적인” 미술가

배영환, 완전한 사랑

배영환은 자신의 미술가적 정체성을 고백하는 어느 글에서, “반은 예술가로 반은 무능력자로 살아갈 거룩한 결심”을, 농반진반(弄半眞半) 다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다시 작가의 말을 빌자면 “우리 착하게 정말 상식적으로 살면서 각자의 길을 가자”던 비상식적인 약속대로 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상식이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믿음에 관하여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식을 따르는 짓은 손해일 뿐이라는 영악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냉소주의자의 상식일 것이다. 그러므로 배영환이 일컫는 상식적인 삶이란 비상식적인 삶을 기꺼이 살아가면서 동시에 상식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냉소주의를 향해 보내는 야유일지도 모른다. 이런 야유를 발설하는 자리에 선 인물과 자신의 미술가적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것은 고상한 엘리트적 예술가를 고발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런 몸짓을 간단히 비판의 몸짓으로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현대 미술의 흔한 유행 가운데 하나는 미술가의 권위와 정체성에 대한 공격과 비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식에 대한 믿음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동시에 그 어떤 죄의식이나 거북한 감정 없이 몰상식하게 살 수 있는 냉소주의자의 모습은 또한 미술가의 모습과 겹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현재의 미술가들 역시 자신의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극구 부인하면서, 아니 나아가 미술가 아닌 정체성과 동일시하면서, 미술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지 않는가. 이는 마치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 취하는 논리와 흡사한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상품은 으레 ‘대량생산시대’ 혹은 ‘공급자중심 경제’의 상품 정체성을 비판하는 시늉을 취한다. 예컨대 현재의 자본주의에서 상품은 언제나 건강을 걱정하고 환경을 보살피며 개성과 자유를 생각하는 상품 아닌 상품으로 자신을 내세운다. 따라서 상품은 더 이상 더 이상 경제적 대상이 아닌 듯이 자신을 뽐낸다. 따라서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다거나 미적인 쾌감을 향유하는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상품은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즉 맹목적인 이윤의 추구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개성과 자유를 질식시키는 과거의 상품의 세계를 힐난하면서, 더욱 집요하게 자신의 상품 정체성을 관철한다.
포스트-민중미술과 작가의 정체성

(중략)
완전한 사랑에의 꿈
배영환은 <남자의 길>에서 금욕적일 만큼 매우 단순한 설치를 제시한다. 작가가 손작업을 통해 꼼꼼하게 혹은 처량하게 복원(?)한 기타들과 그 기타를 만들면서 사용한 재료의 출처이자 또한 매체로서의 기타의 서사적 유래를 가리키는 사진들이 전시의 전부이다. 그리고 전시 작품 가운데 표제를 가지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란 이름을 단 쌍기타 한 점과 역시 그 기타를 장식한 재료의 출처이자 서사적인 유래를 가리키는 자개 경대의 사진과 볕이 내리쬐는 덤불숲에서 기타를 찍은 사진이 전부이다. 그렇지만 이는 그의 직전의 작업인 <유행가> 작업보다 정서적인 감응이 훨씬 진하고 강하다. <유행가>는 흘러간 유행가의 가사를 다양한 오브제를 써서 직접 옮겨 적는 작업이었다. 알약이든 깨진 병조각이든 다양한 매체는 가사가 언급하는 현실(사랑, 죽음, 고독 등)을 재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런 재현의 과정에 연루된 자들의 삶을 환기시켜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독하게 멜랑콜리한 것이면서 또한 동시에 비루한 주변적인 존재의 삶을 단숨에 현상하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길>은 그런 주변적인 삶에 관한 서사적인 재현의 틀을 쫓으면서도 이전의 작업과 단절을 꾀한다. 얼핏 주변적인 삶의 세부를 관찰하며 그것을 유행가와 각기 짝짓는 형식을 취하던 작업이 허세와 위악에도 불구하고 순정하고 소박한 남자의 이야기로 단순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외면적인 축소의 형태는 그의 작업의 반성적인 확장으로 뒤집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주변적인 삶을 향한 연민이나 감상적인 애착이라면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크게 감동할 부분이 없다. 그의 작업보다는 훨씬 정교한 아니 감상적인 연민의 공식에 통달한 “휴먼 다큐”가 훨씬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과 자선의 윤리로 분노와 저항의 윤리를 대체하고, 민중을 피해자나 희생자로 재현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윤리-정치적 좌표라면, 우리가 그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차이는 갤러리에 전시된 미술작품이라는 제도적 형식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의 길>은 그런 자리에 서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남자의 길”은 알레고리나 패러디같은, 성행하는 편의적인 수사법과 거리를 취한다. 그가 선택한 “남자의 길”이란 제목이나 유일한 작품 표제인 “완전한 사랑”은 맥락, 특수성, 차이를 강조하는 유행 담론에 비추어보자면 매우 저속하거나 아니면 맹목적인 것이다. 그것은 “남자”라는 보편적인 인물을 내세우고 “완전한” 사랑이라는 수사학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쩌면 전형을 향한 충동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물론 그 때의 “남자”의 “완전한 사랑”의 길이란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비루한 사랑에 대한 애상적인 향수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상실을 향하여 보내는 안타까운 그리고 추문에 가까운 물음일 것이다. 따라서 <남자의 길>을 어느 무명의 노동계급 남자의 사랑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불가능한 사회”를 향한 작가의 제유(提喩)로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완전한 사랑”과 그것을 증언하는 특수한 이야기를 채집하고 전시하는 작가의 몸짓은, 단순히 풍속화적인 재현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을 떠맡고 있는 보편적인 주체를 재현하려는 욕망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배영환의 작업을 민중미술의 계보에 속한 그러나 그것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작가로 보아야할 이유도 제법 분명해진다. 그는 한국의 진보적인 미술 속에서 정체성의 정치학과 타협하지 않고 보편적인 주체의 재현에 충실하려는 드문 작가라 할 수 있다. 포스트-민중미술에 속한 젊은 진보적 작가들이 결국 포스트-정치적인 정치학으로 전락하였다면, 그는 민중미술의 가장 중요한 미적 정치학을 고집한다. 물론 그것이 그의 작업을 각별하고 동시에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힘임은 물론이다.
월간미술의 청탁과 친구 배영환의 압력으로 쓰게된 평론. 아직 출판되지 않은 글이라 민중미술과 전형의 관계를 논하면서 차이의 정치학이라는 포스트민중미술의 경향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부분을 생략했다. 앞뒤가 부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나의 친구에 대한 충성심은 가끔 분별력을 잃고 그들의 작업을 지지할 이유를 발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번 작업은 근사하고 감동적이었다.

“시대착오적인 도착의 시대극 – 데릭 저먼의 르네상스 영화들”

– 이젠 내 글을 남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에서 보고 읽는다. 아, 이게 내 글이었구나. 저를 떠나 제 스스로 삶을 살고 있는 문자들, 아니 푸코의 말을 빌자면 언표들. 문장도, 명제도, 발화도 아닌 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발명하는 말들. 그저 사물이 되어버린 그 글자의 행렬. 서운하다, 나의 문자들이여, 그렇게 저를 낳은 주인을 저버리는가,그런, 당치않은 허튼 감상이 들 정도이다.
1.
*데릭 저먼의 작품을 전유하는 일차적인 맥락은 그의 시대착오성이다. 물론 그는 기꺼이 시대착오적이고자 했으며 또한 시대에 지나치게 몰입했다. 이는 데릭 저먼을 “뉴 퀴어시네마”의 자장 안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그는 토드 헤인즈나 존 그레이슨, 말론릭스보다 과격하다.이는 숨겨진 역사를 복원하고 자신의 거부된 흔적을 답파하려는 게이 역사학의 영화적 실천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뉴 퀴어 시네마의 다른 감독들에게는 이성애규범적인 역사(쓰기)로부터 추방당한 온전한 자신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회향할 과거조차 없다고 확언한다는 점에서 저먼은 그들과 구분된다.
*저먼의 퀴어 시대극들은 향수와 회한의 돌아보기를 통해 과거 자체를 (재)보존하려는 욕망에 복무하는 모든 영화적 실천을 비난한다.
케네스 브래너, 아이보리 형제 나아가 피터 그리너 웨이 등의 영국 영화는 이른바 유산영화(heritage film)를 만개시켰다. 유산영화는 “제 2의 엘리자베스 시대”를 주창했던 대처주의와 공명했고, 1985년 영국 영화산업계는 “영국영화의 해”를 선언하며 유산영화가 가져온 영국영화의 성장을 자축했다.오랜 동안의 쇠퇴와 부진 속에 허덕이던 영국의 부흥을 위해 영국은 르네상스를 반복하고자 열망했다.
물론 그 르네상스는 저먼이 집요하게 자신의 영화 속에서 대적했던 엘리자베스 시대였다.
*그런 점에서 저먼의 르네상스 영화( <천사의 대화> ,<템페스트>,<희년>,<에드워드 II세> 등)는 모두 영국 영화의 동시대적 맥락에 조응한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들이 강조하듯, 카라바지오와 푸생(Nicholas Poussain)의 대립과 자신의 영화적 실천이 놓여있는 형국을 대조한다. 그는 기원과 전통 그리고 사실적 재현의 명령에 복종했던 푸생의 계보(여기에는 단연 케네스 브래너와 피터 그리너웨이를 포함시켜야 것이다.)를 자신의 작업과 구분한다. 그는 카라바지오의 회화적 재현의 정치학을 또한 그의 영화적 재현의 정치학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의 담론을 통해 매개된 과거만이 있을 수 있음을 공언하고,
같은 시대의 민중의 삶을 신화와 성서의 회화적 재현의 대상으로 삼은 카라바지오의 전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푸생이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를 정의 하며 로마적 원리,
본래적으로 존재했던 미술의 규칙과 법이 유일한 예술의 소명이라고 믿으며, 카라바지오를 반역자와 파괴자로 비난 했을 때,
이는 또한 저먼에게 쏱아졌던 비난과 다르지 않다.
모두들 그가 역사를 파괴하고 오염시키며 날조한다고 중상하지 않았던가.
*카라바지오가 역사적 과거의 제시를 위해 동시대의 민중의 신체를 화면에 옮겨 놓듯이,
데릭 저먼 역시 과거라는 환영적인 공간에 파묻히지 못하도록 끈덕지게 개입한다.
<에드워드 II세>에서의 영국의 유명한 레즈비언, 게이 운동조직인 “아웃레이지(Outrage)” 운동가들의 시위,
애니 레녹스의 등장 등이나 <카라바지오>에서의 모터사이클,타자기,전자계산기 등의 사용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우리는 아예 시간여행 자체를 모티브로 삼는 <희년>에의 기괴한 펑크적인 시대극이나
<천사의 대화>의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동조되어있는 프리즈 화면의 연속체는 숫제 그런 시대착오성을 전면화하고 있다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그의 형식적 실천 역시 매우 명료하다. 상이한 역사적 시대에 속한 사물 혹은 소도구의 병치를 통한 시대착오적 미장센의
활용이나 역사의 담론적 구성을 영화적 실천자체에서 서술하는 그의 명민한 특기인 밀실공포적인 내부적 공간의 특권화
(우리는 이 점을 화면으로부터 외부를 어둠 속에 잠기게 함으로써 표면 위에 재현되는 대상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카라바지오의 화법과 그의 인테리어 영화가 놀랍도록 대응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감독으로서의 저먼에게 있어 영화를 전유하는 주체의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 스스로 일종의 중세적 카니발인 가면극을 상연하는것으로 간주했던 <에드워드 II세>는 분명 자신이 속한 공동체,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작업을 둘러싼 모든 의문에 한결같이 자신의 영화는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영화 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저먼은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표상하는 언어를 박탈하고,자신에게 치욕과 박탈, 고통의 삶을 배당해준 역사에 대하여 언제나 적대적이다.
(“나는 우리의 활기찬 현재를 거세했던 엘리자베스적인 과거를 깊이 혐오한다”,<퀴어 에드워드 II세>).
로카르노 영화제 에서 <세바스찬>의 첫 상영중에 벌어진 소동, 그리고 그날 밤 펑크들의 시위와 폭력,
스위스 첫 게이운동조직의 출범을 회상하며, 저먼은 언제나 행복해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주체로서 퀴어의 존재를 압축하는 곳은 <대영제국의몰락>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스프링”의 난폭한 수음의 장면일 것이다.
카라바지오의 <육욕의 사랑 Profane Love> 이란 그림 위에 누워 그는 아랫도리를 부비며 수음을 하고,
그위로 그를 쳐다보며 촬영하는 저먼의 그림자가 떨어진다.(저먼은 이를 “cinematic fuck”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훗날 퀴어들이 침대에 누워 포터블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수음을 하기를 원했다.
(Long Live cinematic fuck!).
*저먼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특성은 또한 그가 직조하는 시각적 쾌락의 장치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형식들을 개주 하거나 재무대화한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저먼은 카라바지오가 영화적 빛을 발명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의어두운 실내는 곧 영화의 스튜디오 세트이다),
<천사의 대화>의 소네트, <에드워드 2세>의 가면극(the masque)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먼에게 르레상스기에 있어 중요한 미적 형식이자 그것을 주재한 집단은
연금술사, 신플라톤주의자(플라토닉 러브!) 점성술사였다.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연금술사 존 디( John Dee )는 바로 르네상스의 이단적 연금술사였다.
그리고 연금술적 이미지
(<천사의 대화> 에서의 수정공, 부채, 또한 <희년>의 존 디 , 그리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울, <템페스트>의 그림 등)는
저먼에게 있어 자신의 영화적 실천의 은유였다.
저먼은 “빛과 물질의 화합 – 연금술적 결합이 영화이다” 이라고 주장한다.
2.
*”나는 신비의 영역은 동성애적 상황의 은유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마법은 금지되어 있으며 위험하고 난해하며 신비스럽다.
나는 콕도의 영화, 케네스 앵거, 그리고 에이젠슈타인의 영화에서 마법을 본다.
아마 그것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금지의 영역이며 게이 상황에 관한 은유일 수 있다.”().
저먼은 그럼으로써 퀴어 영화의 계보속에 자신을 기입해 넣는다.
장주네의 <사랑의 찬가>의 감옥, 장 콕토의 <오르페우스>의 회랑과 요술상자같은 방들,
<쾌락궁전의 창립>등에서 그 스스로 마법의 사도이고자 했던 케네스 앵거,
파졸리니의 <살로,소돔 120일> 의 격자창에 에워싸인 밀실, 그리고 자신의 <세바스찬>에 등장하는 숙영지 . 이 모두는 퀴어 공동체의 물질적 현존이며 그것의 영화 속 장소이다.
그러나 한가지 추가할 점, 그것은 암호와 은밀한 언어이다.
그 장소에서 우리는 공통의 언어로는 들을 수 없는 세계의 목소리를 포착해야 한다.
<희년>에서 엘리자베스가 토로하듯 “아름다운 꽃들의 은밀한 언어 “가 바로 그 언어이다.
*한편 연금술은 “기억의 기예(art)”이다. 퀴어 시대극은 결국 그런 연금술적 기억의 기예로부터 출발한다.
그 스스로 연금술과 르네상스기의 마법에 몰두하였던 저먼은 자신의 영화들이 곧 기억의 기예가 되기를 희구하였다.
<대영제국의 몰락>와 <천사의 대화>혹은 <여왕은 죽었다>같은 뮤직비디오를 참작하며
그를 장 뤽 – 고다르를 사사한 모더니즘으로 간주하고
나아가 영국의 “뉴 웨이브”(콜린 맥카베나 피터 울른 등)의 전통 속에 묶어버리는 비평적인 입장은 그런 점에서 빗나간 것이다.
영화적 재현의 환영성을 비판하기 위한 모더니즘적인 책략이라기보다는 저먼의 영화는 정서적 힘 자체를 겨냥하며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레오 버사니가 말하듯이 저먼은 파졸리니와 같이 영화로부터 힘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영화적 텍스트의 물질적 조성에 대한 꼼꼼한 반응을 시도하는 관객이 아니라
영화로부터 정동(affect)을 취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감각과 의식을 변형시키는 것이 영화여야한다
(알다시피 물직과 의식의 변형이야말로 연금술의 텔로스 아닌가)
그런 점에서 파졸리니의 시학의 영화는 곧 저먼의 연금술적 영화와 상통하는 것 아닐까하는 과감한 상상까지 한다.
*<천사의 대화>의 프리즈된 화면의 연속체
( 8mm 카메라로 빠른 속도로 촬영한 후 이를 다시 정상 속도로 영사하고
다시 이를 필터 촬영한 후 다시 35 mm로 블로우업하면서 생겨난 사진적인 혹은 수정공적인 이미지),
<대영제국의 몰락>의 홈 무비와 빈번한 이중인화 그리고 대조적인 몽타주,
<여왕은 죽었다>에서의 피카디리 광장의 에로스 상, 헤엄치는 금붕어, 우울한 소년 등의 이중인화 등은 모두 저먼에게 있어 “기억의 체계”이다.
저먼은 푸코의 말을 빌자면 “반기억(counter-memory)”를 실천하는 기억의 연금술을 발휘한다. 그것은 역사적 세부에 대한 고증과 발견,
그리고 그를 통한 역사 자체를 장악할수 있고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나아가 그로부터 역사와 현재의 거리를 확보할 수있는 이데올로기적 공간의 보장, 이 모두가 저먼이 위반해야 하는 것들이다.
“신은 과연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물음을 거절하고,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착수하고 과거를 현재의 맥락과 해체시키고, 과거의 물질을 현재의 시간적대상 속에 합성하는 연금술. 그것은 저먼의 반기억의 실천을 위한 영화적 전망을 구성한다. 물론 연금술사들, 소도미(sodomy)와 마녀 라는 이름으로 박해를 받은 주변적인 주체들은 곧 르네상스 시대의 소수자들이었고, 또한 그것은 대처주의의 암운과 애국주의적 광기로 충만한 동시대의 소수자들인 퀴어의 환유이기도 하다.
*저먼은 <에드워드 II세>에서 추방지에서 돌아오는 가베스턴은 가면극의 휘황한 매력과 즐거움을 상기한다.
단 한번도 야외 장면을 포함하지 않은 <에드워드 II세>의 밀실공포적인 세트는 곧 가면극 자체를 상영한다.
물론 이 때의 가면극은 곧 근대적인 연극과 다르다.
그것은 재현과 청중사이의 관계가 전연 다르기 때문이다.
“아웃레이지”의 액티비스트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오고 그들은 저먼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정치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상징화 한다.
르네상스의 화려한 가면극은 관객이 극 속으로 끼어듦으로써 극 안에서 전개되던 갈등을 해소하는 카니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가면극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행(performance) 자체로부터 신화적인 진실을 현재의 진실과 포개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가면극은 저먼의 퀴어 시대극과 공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먼의 영화들은 에이즈 시대의 퀴어 영화이다.
저먼은 커밍아웃한 퀴어 감독이다 또한 HIV감염자 였다.
그의 <가든>, <블루>와 같은 후기작들은 에이즈 위기 시대의 맥락과 분리시킬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에이즈 위기는 그를 동시대의 뉴 퀴어시네마와의 관계를 설명하도록 해준다.
그의 퀴어 시대극은 에이젠슈타인과 장 콕토 그리고 퀴어 하위문화를 연결하는 존 그레이슨의 <소변기>와 대응하고,
장 주네와 B급 호러영화, 그리고 타블로이드 신문 속의 퀴어를 연결하는 토드 헤인즈의 <포이즌>과 대응한다. 또한 랭스턴 휴즈와 할렘 르네상스를 소환하는 아이작 줄리언의 <랭스턴을 찾아서>역시 그에 추가되어야 한다.
이 모두는 뉴 퀴어 시네마의 퀴어 시대극들이며 또한 가장 탁월한 작품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이성애자와 다르지 않은 정상적인 존재로 등록함으로써
자신을 표상하려던 게이 영화의 “정체성의 정치학”과 모두 단절하고자 하엿다.
그리고 저먼은 그러한 뉴 퀴어 시네마의 척후병이었다.
참고한 글들
Leo Bersani & Ulysse Dutoit, Caravaggio, London, BFI, 1999
Jim Ellis, “Queer Period – Derek Jarman’s Renaissance”, Outtakes -Essays on Queer Theory and Film, Ellis Hanson ed., Duhram and London , Duke Univ Press, 1999
Derek Jarman, At Your Own Risk -A Saint’s Testament, New York , The Overlook Press, 1993
Derek Jarman, Kicking the Pricks, London, Vintage, 1996
Derek Jarman, Queer Edward II, London, BFI, 1999
Tony Peake, Derek Jarman: a Biography, New York, Overlook Press, 2000
Justin Wyatt,” Autobiography, Home Movies, and Derek Jarman’s History Lesson”, Between the Sheets, in the Streets: Queer,
Lesbian, Gay Documentary, Chris Holmlund and Cynthia Fuchs, ed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오한을 훑어낸 후

– 만취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술을 잔뜩 마셨더니 오한이 으스스 온 몸을 훑는다. 잠깐 눈붙인다. 무슨 꿈이었을까. 두 개의 노래가 같았고 똑같은 진실을 발설하는 것이었다는…이상한 꿈이었다. 도대체 무엇의 비밀을 알려고 그런 꿈을 꾸었을까. 어제 오늘 내 머릿 속 도랑에서 흘러 다니던 어떤 생각의 건지가 그런 불쾌한 꿈을 조장했을 것이다. 고얀 것.
– 저널의 새 物主를 찾아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그 일에 총대를 매고 나설 만큼 그것에 깊이 관여한 일도 적도 없는데, 그 일을 상의하잔다. 물론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입공양만 하는 편집위원들-나보다 훨씬 소속감도 강했으리라고 믿는 이들-에게 불만이 없지 않다. 이미 출판계는 초토화되었고, 언론 쪽으로 가자니 덥석 급소를 물고 놓아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갈 길이 분명치 않다. 내일쯤 아는 출판사 몇 곳에 전화라도 넣어봐야겠다. 자유주의적인 쿼터로 내게 할당된 편집위원의 몫을 누리며 그간 제가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겠다던 나의 의지와 달리, 저널에서 가장 상스러운 좌익이 되어버렸다. 지혜롭고 또한 선량한 이들 곁에서 성난 낯으로 투덜내는 악역이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홧병에 가깝도록 절망했고 분노했던 좌파 지식인 집단의 기류에 개입하고 싶었다. 몇 꼭지의 글을 썼?별반 호응도 없었으며 논쟁의 가능성은 쥐꼬리만큼도 없었지만 스스로를 몰아부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 이번 주는 최악의 스케줄이다. 주말에 몰린 심포지엄, 강의 때문에 머릿 속이 노랗다. 블로그 관련 심포지엄에서 사회를 맡았는데, 딱히 임자가 없어 어찌어찌 역을 맡았는데, 따로 그 문제에 관해 자료들을 읽어두기가 귀찮다. 일견 뻔한 인터넷을 둘러싼 말장난과 허황된 언어의 향연에 동승하기도 싫다. 그래도 어쩌랴.
– 결국 친구를 위해 씨네21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더럭 걱정이 된다. 조금 억지를 쓰고 강변을 해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잇단 시사회가 끝난 후 평자들로부터의 악담과 핀잔에 주눅들고 질겁한 친구는 내게 자신을 옹호할 책임을 떠넘겼다. 친구와의 우정을 생각해서 선선히 수락한 일인데, 쏜살같이 연락이 왔다. 씨네21의 기자가 오후에 전화를 걸어 지면을 만들자고 한다. 짐작보다 넓은 지면을 주겠다는데 그게 더 걱정이다. 수십 매를 쓸만큼 아직 그 영화를 내가 진득하게 즐겼던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향후로는 영화에 관한 리뷰나 기고는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던 터에 우정의 責任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꾀바르고 스마트해진 관객들을 무시하고 무대뽀로 현실을 정면으로 재현하려는 친구의 시대착오적인 결심과 의지를 칭찬하기로 결정했다. 스타일이라곤 없는 이 범박하고 무딘 영화로부터 미덕으로 가득한 정치학을 찾아내는 것이 내 요점이 될 터인데..
– 밀린 일들이 뒤통수에서 계속 꼼지락댄다. 면회를 다녀와야 하고, 새로 제 둥지를 찾은 후배의 집들이를 마련해주고 싶고, 미처 꼼꼼히 챙기지 못한 학생들의 프로포절에 조언을 덧붙여주어야 한다. 주말의 민노당 강의에서 털어놓을 이야기의 얼개라도 마련해두어야 하는데 아직 감감하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성 소수자 운동이란 거창한 이름을 제안했는데, 딱히 어떤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지금의 문제들을 적절히 요약하고 개입할 구멍을 찾을지 모르겠다.

盛夏의 어느 週末


– 세네프 심사위원 회의를 마치고 Y씨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차이밍 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다시 보았다(나는 부산에서 지난 해 이 작품을 보았다). 설친 잠 때문에 필시 졸거라는 짐작대로 초반 나는 잠시 고개를 주억대며 졸았던 듯 하다. 그렇지만 역시 <안녕, 용문객잔>은 대단하다. 구스 반 산트의 기이한 변화처럼 그의 변화도 이미 <하류>에서 예고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착된 듯 보인다. 더 변화하기보다 그는 지금의 발견에서 잠시 더 머물 듯 하다. 그가 발견한 것은 아마 이미지의 정동(情動)을 생산해내는 영화의 능력일 것이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혹은 여기 한 컷의 이미지가 있다. 아니 여기에 지리한 하나의 씬이 있다. 물론 그 안에는 약간의 정보가 있다. 불이 환이 켜진 마지막 날의 극장의 객석, 장마비가 자욱히 쏟아지는 극장 어귀의 스산한 모습, 침침한 불빛이 켜진 긴 낭하와 화장실의 문 등등. 그리고 그 이미지 안으로 가끔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이 過少한 정보 탓에 관객은 처음엔 지루해하고 조금은 불편하며 어색한 감정에 빠져들 것이다. 그렇지만 곧 우리는 그가 이야기를 할 의중이 없음을 깨닫는다.((너무 많은 지나침과 너무 적은 지나침 가운데서 후자에 대한 이야기는 드문 듯 하다.로트코나 말레비치의 그림에 대한 추상성 운운의 분석은 그런 점에서 잘못일 것이다. 그 그림은 적음이 너무 많거나 지나치게 적음으로 인해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왜 나는 이런 적은 것들에 이토록 많은 관심이 가는 걸까? 지나치게 화려하고 많은 캠프적인 아름다움에도 유혹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사실 그리 깊은 감동을 얻지는 못한다….언젠가 곱씹어볼 문제이다).
– 사실 그의 영화에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기억 속의 장면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처럼 회상될 때마다 장면은 다른 모습과 다른 정서적인 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사실 그 탓에 나는 그날 바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의 기억의 회상에 관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거의 기억의 절차를 기만한다. 기억은 노동에 가깝고 그 노동은 그 사건들의 뭉치를 기억하게 하는 서로 다른 강세를 가진 이미지들과 소리의 파편들과 함께 내 의식 속에서 조립된다. 따라서 기억은 애시당초 이야기를 모른다. 기억은 이야기가 되는데 실패한 것들을 계속 남겨두었다가 내 의식 속으로 자꾸 떠민다. 기억은 이미 완결되어 저장되어 있던 이야기를 다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지 못한 채 떠도는 장면들(어쩌면 그 말 뜻 그대로 기표(signifiant))을 내게 들이민다.
– 이를테면 내가 어제 술을 먹다 Y씨와의 대화에서 다시 떠올린 대여섯살 남짓의 기억의 한 장면, 하얀 법랑을 씌운 대야에 고여있던 핏물이 그렇지 않을까. 나는 누이의 실수로 어느 겨울날 시멘트로 쌓은 수돗가에 내동댕이쳐졌고, 오른쪽 이마가 으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내 오른쪽 눈썹은 비뚤어져있다. 여튼 스냅 숏처럼 엮인 내 기억 안에서 그 사고의 이전 장면은 굴다리가 있는 시장 통의 어느 가게 앞에 아버지가 펴놓은 난전이다. 아버지는 그 때 색색의 나일론사가 섞인 싸구려 겨울 양말을 팔고 있었고, 누이는 날 업고 그리로 갔던 듯 하다. 나는 비닐 위에 놓여있던 연두색과 감귤색의 나일론 양말들이 아직도 뚜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점프컷되어 횟가루가 쌓여있던 장의사 앞의 수돗가 근처가 생각나고 그 뒤로 난 저장된 장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까무러쳤던 나는 아마 외과에서 치료를 받다 잠시 의식이 깼던 모양이다. 그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눈부시게 흰 하얀 법랑을 씌운 병원의 대야였고 그 안에 고인 내 핏물이었다. 그런데 이따금 떠오르는 그 장면은 애초부터 다른 장면으로부터 떼어내진 것이다. 다른 장면이 붙여졌다면 나는 그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다른 이야기와 감정에 사로잡히는 혼란을 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외톨이같은 장면은 기억의 순간에 내가 사로잡혀있던 느낌과 이야기 속으로 삽입되어 다른 정동의 장면으로 생산된다. 곰곰이 생각하면 그 장면은 매번 조금씩 다른 이야기와 함께 불려나온다. (6. 27.)
– <안녕, 용문객잔>은 구스 반 산트의 <제리(Gerry)>나 <엘리펀트(Elephant)>로의 이행과 흡사하다. 비트 세대의 적자인 구스 반 산트가 왜 <아이다호>의 음울하고 멜랑콜리한 고급 드라마에서 벗어나 <제리>로 갔을까. 광주의 어느 대학교에서 불과 몇 사람과 뒤섞여 본 <제리>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이 아연할만한 금욕적인 영화는 시종일관 길을 걷는 두 사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보여준다기보다는 들려주고 보여주며 종내엔 화면 안에 존재하는 인물과 동화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는 동일시가 아니다. 내가 화면 속의 인물과 같은 위치에서 세계를 지각하고 있고 그것을 매개하는 일차적인 통로가 카메라였다면 그것은 동일시겠지만, 사실 화면 안의 인물은 거의 아무 것도 보지않는다. 아니 볼 필요가 없다. 사건이 없기에 그는 말을 건넬 사람도 없고,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참조할 어떤 사물도 없다. 그저 그는 걷고 있을 뿐이다. 아니 걷는 사람이 보여지지만 그것은 걸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걸음에 깃들어있는 감각을 보여준다. 걷는다는 사실 혹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화면을 지켜보는 한 화면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그것은 언제나 걷는다는 동일한 사실을 끊임없이 전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지루함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문득 놀라게 된다. 나는 이제 걷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걸음에 깃들어 있는 감각의 세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현실적으로 크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 모래를 밟고 수풀을 헤칠 때의 미묘한 소리, 그리고 걸음의 강약 심지어 걸음 사이로 비쳐드는 빛의 강도까지 나는 어느새 감각한다. 그런 점에서 <제리>는 봄/보임의 영화가 아니라 감응 혹은 정동(affection)의 영화였다. 어떻게 달리 보도록 할 것인가, 봄(seening)이라는 행위 안에 작동하는 시각적인 법칙을 어떻게 철폐할 것인가. 이것이 지난 수십년간 (비판적) 영화 이론의 모토였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전연 다른 영화들이 들어서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적어도 <와화장룡>과 <매트릭스> 이후 대중영화의 변화가 영화의 정체성을 위협에 빠트렸듯다면, <제리>는 그것을 아예 자신의 문제로 제시하는 듯 하다. 영화는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고 환영적인 사실을 인지하도록 하는가. 이런 반복된 물음에서 빠져나와 몇몇 감독들은 다른 물음을 던진다. 나는 그런 물음의 노선에 구스 반 산트 역시 서있다는 생각이다. (6.29.)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有感

일상의 탈출을 맛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평범한 관객에게 불쾌감만 주는 나쁜 영화라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본 어느 학생의 글이 게시판에 올랐다. 그가 나는 그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물어와서 이렇게 몇자 적었다.
-소시민 혹은 프티부르주아지의 위선적인 삶에 대한 조롱 혹은 야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읽는게 거의 관행인듯 합니다. 물론 그런 지적은 틀린 것도 아니지요. 특히 영화가 스펙터클을 즐기는 오락, 뻔한 서사적인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면서 느끼는 강박증적인 퇴행의 쾌감(똑같은 것은 언제나 즐겁지요^^)이 되어버린 이후에, “내면”이라는 자아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 특히 그냥 무심하고 평면적인 사물의 풍경인데도 그 내면의 표현으로서 제시하는 것은 분명 모더니즘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선적인 그의 속내(혹은 멋진 모더니즘적인 문화비평의 용어를 빌려쓰자면 “내면”)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은 뒤늦게 부활한 모더니스트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의 뒤틀리고 야비한 심지어 비열하고 아주 사악하기까지한 관찰과 폭로의 과정이 매우 즐겁고 짜릿하지만(거의 자학적인 것이겠지만..^^), 그에게서 어떤 대단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면의 관찰은 상투적으로 재현되는 그의 예측할 수 있는 정체성-그는 남자이니,노동자이니, 서울사람이니, 한국인이니 아마 이러저러할꺼야와 같은 미리 상상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 – 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개별성을 삭제하고 지워버리는 것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 바로 내면이라는 개념이 갖는 미덕이겠지요. 그래서 내면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와 그와 어긋나는 내가 상상하는 나 사이의 고통스러운 차이, 불일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바로 그 고통스러운 발견의 대상인 내면과 외부 세계의 긴장이 사라진채 거의 물신화된 내면만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정교하고 또한 가장 흥미로운 <생활의 발견>이 가장 지리멸렬한 이유도 그런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영화에서 그는 <오! 수정>같은 곳에서 끈덕지게 유지했던 그런 내면과 그 위부 사이의 긴장을 잃은 채 내면이라는 것을 저 혼자 키득키득 웃으며 상상하는 싸구려 심리학자의 모습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런 것이 이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도 역시 반복되었던 것 같아요.
(객설이지만 그런 점에서 왕가위는 아주 별난 감독이겠지요? 그의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 춘광사설 심지어 그 모든 것의 극치인 화양연화같은 작품에서 그는 내면이라고 상상하는 풍경을 아름답게 정말 유혹적으로 보여주지요. 그러나 외부의 세계가 자신에게 부여한 모든 정체성의 덧없음, 허위성, 피상성에 반해 은폐되어 있는 자신의 진정성이 보증받는 그 곳은 이제 전혀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거꾸로 내면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안과 밖이 뒤집혀진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지요. 그의 영화가 견딜 수 없도록 멜랑콜리한 점도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리고 적고 싶은 몇가지가 더 있었다. 나는 이번의 홍상수의 작업이 갖는 어떤 회화적인 금욕주의(?)라고 할만한 것에 의문이 들었다. 그는 설정 숏에서부터 마지막 엔딩 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돌리 숏을 가능한 억제하면서 카메라 만을 움직인다. 그것이 물론 인물의 시점과의 몰입을 억제하도록 하고 언제나 관찰하는 듯한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점화를 억제함으로써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동일시하는 것을 차단하거나 억지하는 상투적인 작위라면 모를까 그것이 다른 기능을 하는 듯 하였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영화를 못찍는 어떤 견습생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또한 적잖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미니멀한 것이라기보다는 관조에 가까운 눈길이다. 다시 그의 영화를 본다면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다.
– 마지막 씬에서의 그를 유혹한(그가 그녀를 유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유혹한) 여학생과 앞길이 막막한 시간강사인 유지태와의 섹스 후의 대화는 나를 졸게 만들었다. 그런 기회가 한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 내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그런 위험한 일탈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하기도 하는 눈치이다 – 학생과 불륜에 빠지면 어쩌나 하는 기우 말이다. 학생과 사랑을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섹스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리고 난 후의 아주 불쾌하고 유치한 기분을 생각하면 모험을 걸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내 사랑 커트

살아 있다면 미국 나이로 서른 일곱, 한국 나이로 서른 여덟,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동갑내기의 스타이다. 존 레넌의 부고를 들었더라도 그랬을까, 나는 그의 때 이른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망연자실했다. 그 때 나는 많은 부음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불과 한 주 전에 어느 미국 주간지에서 오려내어 액자에 끼워 두었던 그의 近影을, 영정으로 삼고, 참으로 섧게 목놓아 울었다. 그는 90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보수적 규범에 이를 물고 대들기로 했던 내게 있어 일종의 정령이었고 또한 더없이 따뜻한 수호천사였다.

신장개업한 신촌의 록카페에서 <너바나>의 노래를 최고의 볼륨으로 틀어놓고, 만취한 채 광란하는 일은, 나의 90년대의 일과였다. 그것은 나의 80년대, 사회주의적 운동권을 통해 훈육된 몸을 벗는 탈피의 노동이었고 또한 새롭게 각성한 나의 기이한 성벽을 향한 화해와 찬송이기도 했다. 란제리와 가발과 화장을 향한 그의 기이한 선호는 내게 있어 더없이 분명했다. 그의 도착은 나의 도착이었다.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착란적인 것있는지 모르겠지만, 곧 도착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신은 게이다”는 그의 노랫말을 복창하며 나는 제 자신의 90년대적인 자유주의적 일탈을 만끽했다. 그러나 너바나의 열혈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슬픈 일이었으며 또한 너바나의 음악은 결국 고독한 리스너들을 위한 음악인지를.

역사의 디즈니랜드화, TV 생활사 박물관 [다모]

어디서 보았는지 가물거리지만 곱씹을수록 섬뜩한 이야기가 있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도무지 영문을 알길 없는 괴이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단다. 그 사건을 취재하러 온 방송국 기자가 한 동네 사는 마을 주민에게 물었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겠냐고. 그랬더니 주민 왈, “글쎄요. 몇 년 안에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하지 않겠어요. 그럼 우리도 뭔 일이 났는지 알겠지요.” 그 주민은 아주 영특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우리 시대에 역사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쓰여지는지 정곡을 짚고 있다. 지금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무슨 뜻인지 우리는 굳이 애써 물을 필요가 없다. 하물며 내가 살기도 전에 벌어진 일들이 무슨 진실을 갖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조만간 대중문화가 먹기 좋고 보기 좋은 형태로 가공하여 방부처리된 패스트푸드처럼 내게 배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대중문화는 역사가 어떤 이미지로 규정되고 소비되어야 할지 결정해주고 있다.

대박까지는 아니겠지만, [옥탑방 고양이]를 대신해 등장한 새 티비 드라마 [다모]가 뜰 기세이다. “퓨전 무협 사극”이라는 아리송한 간판을 달고 나온 이 드라마는 [와호장룡]의 유려한 와이어 액션을 본뜬 데다 유치찬란한 멜로적 요소와 수사극이라는 연속극의 얼개를 뒤죽박죽 뒤섞어 놓은 짬뽕 드라마이다. [다모]란 드라마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역사를 소비하는 포스트모던한 방식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엄혹한 신분차별의 사회에서 서얼 출신의 포청 관리와 역적을 꾀한 양반 가문 출신의 노비인 여주인공과 대동 세상을 꿈꾸는 어느 혁명아의 진부한 삼각관계가 이 드라마를 엮는 얼개이다. 조선시대 후기란 배경은 물론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이 드라마를 즐겁게 소비하기 위해 시청자들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그저 분위기를 잡아주는 배경일 뿐이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독특한 이야기의 장르가 언제나 현재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쓰여진 과거일 뿐이라지만 그 과거는 더 이상 무슨 의미심장한 역사의 법칙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현재가 무엇인지 재현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역사는 이미 그 역사를 전유할 이데올로기적 주체를 잃은 지 오래이다. 국민적 정체성 아래 우리를 묶어주던 공통의 과거로서의 역사는 고작 공무원 시험에나 등장하는 국사일 뿐이다. 피억압 계급으로서의 민중의 역사는 탈근대의 낭만적 신화가 되어 대하무협지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에서의 18일]을 읽으며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에 대해 머리를 싸매는 것은 바보짓이다. [나폴레옹과 조세핀 문화미술대전] 박람회에 가면 우리는 프랑스의 역사를 전감각적으로 생생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모]는 지금 우리가 역사와 맺고 있는 관계를 가장 잘 압축하고 있는 예일 것이다. 이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보며 역사라는 문자에 전율했던 386세대, 식민지반봉건이냐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냐를 놓고 단내를 뿜으며 논쟁했던 6월항쟁 세대의 역사와 매우 다른 것이다. 역사란 사회적으로 소비하는 이야기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생각해 보자면 둘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반공자유민주주의의 주술로부터 해방되는데 우리는 한 점의 사소한 역사적 지식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때의 역사 역시 물론 이야기인 것이다. 국가안전기획부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온건한 역사책을 빨갱이 책의 대표 선수로 낙인찍고 그토록 집요하게 금지한 것은 그 책의 이야기로서의 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역사학자들이 이야기로서의 역사란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탈근대 자본주의는 벌써 훨씬 앞서나가 있다.
탈근대 자본주의가 역사를 가리키기 위해 쓰는 가장 흔한 용어는 “문화콘텐츠”일 것이다. 역사는 자연사박물관과 문화축제, 테마 파크, 시뮬레이션 게임, 패키지 여행을 만들어내는 우리 시대의 훌륭한 문화상품이다. 우리는 허준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허준 의료박물관을 건립하여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릴 수도 있고, 허준의 간난에 찬 삶을 추념하며 그의 이름을 딴 약초 박람회를 열 수도 있을 것이며, 허준의 이름을 딴 브랜드 마케팅을 특허로 등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던 지식 경제에서 역사도 역시 문화상품이며 콘텐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의 디즈니랜드화로부터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역사의 이야기가 폭증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역사의 이야기로서의 빈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역사가 이야기란 것은 굳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앞에서 우리와 다른 라이프스타일의 한 종류로 상연되는 역사를 관전할 때, 그 역사는 알다시피 이야기가 아니라 침묵이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이야기 안에서 소비되는 역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역사란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하지 않은 채 영원한 동일성의 순환이라는 질식할 듯한 침묵에 빠져든 역사이다. 역사가 이야기일 때 그것은 현재의 삶을 말하는 방식을 차별화한다는 뜻이다. 역사가 삶의 서사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서사란 것은 그것이 끊임없이 이야기된다는 점에 있다. 이야기가 끊기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세헤라자데처럼 우리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포스트모던한 역사의 소비로부터 우리가 구제해야할 것이야말로 이야기로서의 역사이다.

매그놀리아, 신바람, 성공하는 사람을 위한 7가지 습관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노동과 문화

더 이상 기업가는 제조품을 만들어내는 업자가 아니라 연출가이며, 이야기꾼이고, 행위예술의 감독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 상식을 비웃기도 어려운 것이 이미 일의 강박관념에 휩싸인 채, “라꾸라꾸” 간이침대를 제 사무실에 들여놓고, 오피스텔 지하층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씹으며, 아직도 대박과 히트의 꿈을 꾸는 미래의 CEO들이 주변엔 즐비하다. 그들은 일에 환장해 있고, 일이 즐거우며, 무엇보다 일과 결혼하거나 연애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에의 몰입을 병리적 현상으로 쉽게 진단하며, 이를 그저 “노동중독”이라고 안이하게 부를 수만도 없다. 노동을 향한 강박관념, 그 열렬한 편집증적인 상태를 탓하기에는 그것을 심리적 병리 이상으로 분석하려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매그놀리아]는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음란한 메시지를 훌륭하게 상연한다. 알다시피 영화 [매그놀리아]의 주인공은 포스트모던 자본주의를 위한 리더십의 부흥사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창의성과 개성, 능력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목자이다. 그는 근면과 자조, 저축과 절제를 설교하던 근대 초기의 칼빈주의적 목사의 목소리를 21세기에 새로운 판본으로 재연하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소소한 가족적 가치의 파수꾼으로 전락한 교회에 비해, 위성 중계되는 경영 세미나와 부흥회야말로 우리 시대의 교회라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정도이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탐 크루즈는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낙오자들을 향해 선동한다. 그는 마음껏 자신들이 기죽어 지내며 외치지 못한 자신의 욕망의 목소리를 내뱉으라고 부추기고, 싸구려 히피주의와 동양철학 그리고 영성주의가 뒤범벅된 뉴에이지적 리더십 세미나를 주재한다.
영화 [매그놀리아]가 음울하게 재현하는 포스트모던 노동 주체의 모습은 이미 남한 자본주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저 유명한 “신바람 건강법”이 히트를 쳤던 때가 IMF 위기를 전후한 시절이었던가. 그가 제시한 신바람 건강법은 언제 어느 때나 바보같은 자동인형의 모습으로 언제나 조증상태에 빠진 채 자신의 일과 행위를 쾌락으로 즐기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부터 우리의 독서 시장을 평정한 책들 역시 “즐거운 일”, 어느 경영학자의 말대로라면 “힘든 재미”로서의 일을 위한 복음서들이었다.
놀랍게도 한국과 대만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갔다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을 위한 7가지 습관]을 생각해보자. 포스트모던 경영학의 구루(guru)인 스티브 코비는 일을 명료하게 정의되고 완수되어야할 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습관을 잘 조직하는 사람이라고 역설한다. 탈근대 자본주의의 영웅은 관료화된 노동조직에서 불굴의 에너지를 발휘한 소비에트적인 노동 영웅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노동 영웅은 바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이를테면 경영학 서적들의 클리세를 빌리자면, 놀이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들처럼, 자신의 일을 놀이의 즐거움 속에 심취한 노동자이다. 그것은 습관이며 기질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평소의 반복된 주장을 빌려쓰자면, 왕년의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심적 경제는 신경증이고,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심적 경제는 도착이다. 이를 풀이하자면 이럴 것이다. 산업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징화하려 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과업, 한정된 조직과 활동 따위로 직조된 포드주의적 공장에서의 노동자의 특성은 히스테리에 휩싸인 사람이다. 그 노동자는 자신을 규정하는 상징적 명령, 즉 자본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에서 그러한 명령의 주체 – 즉 사장, 선생님, 아버지 등 -는 없다. 따라서 질서와 규율, 명령 따위로 직조된 상징적 질서를 대신하는 것은 나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욕망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주체가 아닌 한 높은 가치의 활동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은 포스트모던 경영학, 교육학 등의 핵심적인 슬로건이다.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를 실현하고, 나의 개성을 발휘하며, 나의 잠재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경증적인 자본주의가 아니라 도착적인 자본주의이다. 도착의 결정적인 특성이 바로 자신을 상징적 명령의 자리에 내세우는 것이라면, 그것의 세속적인 표현은 포스트모던 경영의 담론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 시대의 비판적 문화 담론의 어떤 부분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하나의 팁. 일급 문화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톰 피터스와 피터 드러커 그리고 스티브 코비를 읽어라. 그리고 도착적인 자본주의와 죽도록 즐겁게 춤을 추어라. 탈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희한한 무도병의 희생자고 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