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의 신작 소설을 위한 초라한 추천사


Spector - Grey Shirt & Tie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린 김사과가 신작 소설 <테러의 시>(민음사)를 출간한다. 그리고 내게 추천사를 부탁했다. 이 짧은 소설을 읽고 그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모두 들어있음을 알았다. 그녀의 소설이 대박나길 바란다. 조만간 그가 자주 간다는 고로케 집엘 가야할 터이니.

김사과의 그로테스크는, 시쳇말로, 쩐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이 슬프고 아슬아슬하다. 쩐 그로테스크는 “상상력의 병”에 감염된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상상력의 병이란 물론 상상력에 혐의를 품고 추궁할 때 쓰곤 하는 말이다. 소설은 세계를 허구적으로 상상한다. 그렇지만 그 상상이란 것이 병적이리만치 심해질 때, 세계는 상상의 힘을 빌려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숨는다. 세계를 숨기는 소설은 나쁠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소설이 세계를 은폐하고 말았다는 것과 세계를 숨기는 몸짓을 통해 외려 그 세계를 드러내고 마는 것은, 윤리적으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가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는 불투명한 세계 앞에서 주저앉는 것이라면, 뒤엣것은 세계를 상상하는 몸짓 자체에 주력한다. 김사과의 소설이 낯설다면 이는 현실보다는 언어에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소설을 읽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은 솔직히 거의 시시해졌다. 그렇지만 세계가 숨어있다고 말하면서 말의 능력과 무능력을 시험하는 소설은 흥미롭다. <테러의 시>와 함께 세계의 병든 언어를 견디자.

미국 좌파로부터의 통신


_한국 번역 제목, <자본주의와 그 적들>

<자본주의와 그 적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이야기


알립니다, 자본주의가 오늘 새벽 마침내 자살을 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뒤숭숭하다. 그리스와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둘러싼 혼란이 그렇고 뒤이어 터져나온 유로존 붕괴를 둘러싼 흉흉한 예언이 그렇다. 이제 자본주의의 위기는 유럽으로 불통이 튀었고, 사람들은 짐짓 “너마저” 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를 듯할 태세이다. 그 덕에 이제 자본주의의 위기는 거의 막바지에 이른 듯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마치 자본주의의 부고장이 조만간 도착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 되었다. 거의 날마다 자본주의의 위급을 알리는 소식이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불쑥 나타나 결국 자본주의의 숨이 끊어졌다고 말하면 곧이 믿기라도 할 태세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은밀하게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라는 외설스러운 냉소가 숨어 있음을 부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거의 없다. 이 부조리한 모순적인 확신보다 더 우리가 처한 세계가 무엇인지 잘 말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괴한 처지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를 넘어설 좌파의 갈 길을 찾자는 것이, 지금 소개할 책의 목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