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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몽상의 殿堂</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link>
<description>everyone who is here is from here - A. Badiou</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1 Jun 2009 11:27:1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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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살아라, 웃어라, 부디 승리하라</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83</link>
<description><![CDATA[ <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www.homopop.org/log/attach/0518/090518145743516199/649643.jpg width="500" height="400"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www.homopop.org/log/image_pop.php?imagefile=attach/0518/090518145743516199/649643.jpg&width=591&height=473','','width=591,height=473,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조현택, 아지트, 디지털프린트, 2008, "Boys Be Ambitious" 전시 중에서</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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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right"><font color="#003366"><b>살아라, 웃어라, 부디 승리하라: 치유하는 문학의 자장(磁場)</b></font></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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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문학-풍경’</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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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문학을 둘러싼 이런저런 담론들, 이를테면 문학의 위기, 문학의 진부화 같은 것을 듣고 있노라면 무언가 맥 빠진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것은 문학적 저작 혹은 텍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문학적인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한정하고 보존하려는 몸짓처럼 보인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그것은 마치 문학 수비대를 자처하는 이들이 온전히 문학에 속한 것을 선별하고 그를 통해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문학의 처지를 은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런 주장들이 강박처럼 거부하는 것은 문학의 죽음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 덕택에 문학의 죽음을 통지하는 부고장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강박적인 집착이 실상 문학의 죽음이 아니라 문학의 또 다른 형태로의 번성을 부인하는 딴 짓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제품사용설명서와 시를 문학 텍스트로 함께 놓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한 일이다. 광고전단지와 소설책을 문학 텍스트로 읽는 것 역시 아무래도 낯선 일이다. 그렇지만 근대에서 자율화된 문학이 했던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다는 점을 자각한다면 이는 전연 어색하고 낯선 일이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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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자크 랑시에르가 현대의 예술적 현상을 서술하기 위해 ‘미학적 체제’란 개념을 제안할 때, 그는 그것의 특성을 바로 감성적인 것의 세계가 보편화되었다는 것, 노래하고 읊어지고 그릴 수 있는 것의 세계를 거의 모든 것에 확대함으로써 등가화 했다는 것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일상생활의 사물은 이제 미적인 대상으로 보일 수 있게 되었고, 그리하여 러시아 아방가르드나 바우하우스 같은 것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를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말라르메의 시에서, 혹은 현대 발레 같은 모든 곳에서 발견한다. 랑시에르는 마치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처럼 미적인 것의 혹은 감성적인 것의 체제의 고고학을 시도하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작업에서 감성적인 것의 분배를 조직하는 권력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목도하는 문학의 빈사는 다른 시좌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문학적인 것이 위기에 직면하기는커녕 외려 문학이 다른 방식으로 전유되며 생산되는 의외의 풍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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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학 평론이나 이론은 좋게 말해 너무나 고전적이고 나쁘게 말해 너무나 복고반동적이다. 플롯이든 서사이든 문학에 관한 이론은 언제나 고전적인 문학의 장르와 구획 속에 머문다. 그래서 우리는 근대 문학이 만들어 놓은 문학에 관한 어떤 이상적인 텍스트를 마주하고 있고 그를 위해 맞춤된 비평적 지식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문학 평론이나 이론은 너무나 철학화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의 비교문학이란 이름 아래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문학 이론은 최신의 철학적 담론을 소개하고 병합하는데 분주하다. 문학이 철학화 된다는 것을 굳이 좋거나 나쁜 일로 따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학의 철학화는 이를테면 ‘지식인으로서의 문학가’같은 근대 문학의 현상으로부터의 퇴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인으로서의 문학가’는 문학이 어떻게 지성적인 역량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을 통한 지식인으로서의 행위 혹은 감성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을 동시에 매개할 수 있는 문학의 능력에 관한 물음은 다시 문학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는 글로 쓰인 것과 감성적인 것 그리고 지성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다시금 묻게 한다. 문학의 철학화는 이런 물음에 직면하려는 노력을 회피하려는 것 아닐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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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83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3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3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83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3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31b'));return false;"> less.. </a> 이야기를 바꿔 서점에서 흔히 보는 ‘비소설’이란 분류에 관해 생각해 보자. 사실 ‘비소설’이란 소설 아닌 것은 사실 소설의 장르에서 제외된 것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인증을 받지 못한 잉여적인 텍스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물론 거기에는 온갖 잡다한 텍스트들이 망라될 것이다. 다시 소설과 비소설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자기계발”이란 텍스트를 고려해 보자. 실은 이 텍스트들의 위치는 지극히 애매하다. 그것은 심리학적 지식을 응용하는 텍스트처럼 보이기도 하고(󰡔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따위)  때로는 경영학적인 지식을 일상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 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시크릿󰡕 따위), 또 어떤 경우에는 마치 유사(類似) 문학작품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따위). 그것은 사실 문학의 자리에 속하지 않은 채 맴도는 정체불명의 유사 문학적 현상이 아닐까. 그러나 시선을 바꿔 그것을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문학적 현상으로 본다면 어떨까. 그러나 “문학과 비문학 사이의 경계를 지우자”는 식의 문학적 권위에의 조롱을 선동하는 생각으로부터가 아니라 양자를 잇는 혹은 내통(內通)하게 하는 자장을 발견함으로써 말이다. 그것은 랑시에르 같은 이가 일갈했던 모든 문자들의 등가화로서의 근대 문학이란 발상을 취한다면 사실 이는 문학적인 것이란 것에 속하는 것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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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생각을 모두 털어 보기엔 우리는 아직 여간한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 같은 문학적 현상을 충분히 섭렵한다는 것도 엄청난 일이려니와 그것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위한 변변한 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아파두라이가 지구화의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불균등한 논리와 궤적을 통해 신축하는 다양한 풍경(scape)을 제시했던 것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문학-풍경’이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이다. 내가 여기에서 염두에 두는 문학-풍경이란 본격 문학적 텍스트에서부터 비문학적 텍스트로 간주된 다양한 글쓰기들이 어떻게 문화적 등가를 만들어내면서 펼쳐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문학적 텍스트가 문학적 텍스트를 모방하거나 응용한다거나 아니면 문학적 텍스트가 비문학적 텍스트에서 나오는 담론적 양태를 전유하거나 차용한다는 식의 생각을 피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외려 우리는 다양한 글쓰기들을 등가화시킴으로써 그것을 끊임없는 연속적인 문학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논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우리가 잠정적으로 ‘문학-풍경’이라고 칭하는 그런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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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나는 ‘문학-풍경’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극히 어설픈 예비적인 가설을 생각해보고 그로부터 근년의 문학적 현상을 조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나는 먼저 문학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는 문학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라는 두 개의 자율적 실체 사이의 관계를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나는 문학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개별적 실체의 정체성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심성, 혹은 자본주의적 삶의 주체성이라 할 만한 것을 통해 양자가 어떻게 서로 넘나들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에서의 글쓰기를 지배하는 규칙을 변용하거나 전환시킬 것이다. 또한 경제적인 삶 안팎에서 그를 표상하는 담론 역시 변화시킬 것이다. 이 안에서 글쓰기 혹은 텍스트를 조직하는 방식은 물론 문학을 전유하는 매개적인 담론과 실천-예를 들어 책읽기의 방식과 문학적 텍스트를 소비하는 일상적 관행 등 - 역시 변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이 글에서 단지 “치유로서의 문학”이라는 담론을 다루는 데 머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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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새로운 자본주의 정신?</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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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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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치유하는 글쓰기, 치유하는 주체</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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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로서의 글쓰기 혹은 치료로서의 문학이란 담론은 앞에서 살펴본 새로운 자본주의정신 혹은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체화의 윤리라고 할 만한 것과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있다. 조금 장황하지만 다음의 어느 신문 기사를 인용해보자. 이 기사는 󰡔치유하는 글쓰기󰡕란 책을 낸 어느 여성 필자의 글에 관한 서평 기사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치유로서의 글쓰기라는 문학적 현상을 이루는 주된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식별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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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사랑한 것은 떠나갑니다. 모질게 쳐내고 잘라낼 필요는 없어요.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면, 그것들은 어느 순간 길 떠날 채비를 합니다.’ 상실의 시대이고, 더불어 치유의 시대다. 가슴 한편이 소금밭인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의 편집장 출신인 박미라(44)씨는 치유의 수단으로 글쓰기를 제안한다. 글쓰기를 통한 소통과 자기구원의 이야기가 에세이집 <치유하는 글쓰기>(한겨레출판 발행)로 묶여 나왔다. <br />
‘잠 자다가 무서운 소리를 들으면, 뭘까 궁금해 미치면서도 막상 가서 확인할 용기가 안 나잖아요.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상처, 혹은 내면의 공포도 마찬가지예요. 직면할 마음을 먹기 쉽지 않지만, 꺼내 놓고 보면 늘 별 게 아니죠.’<br />
박씨는 치유로서의 글쓰기가 ‘덜어내기’와 ‘거리 두기’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상담자를 찾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 말로는 미처 하지 못할 상처를 간직한 사람에게도 효과 있는 자기 치유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참으로 탁월한 도구예요. 복잡한 심정을 종이 위에 적는 것만으로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일단 덜어내고 나면 자연스레 거리가 생기죠. 그렇게 ‘내면의 아이’를 바라보고 얘기를 나누고 나면, 행복하게 떠나보낼 수 있어요’<br />
‘밖으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거두고, 내 속에서 웅숭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커버렸기 때문에 누군가의 돌봄을 기대할 수 없는지도 몰라요. 자신만이 자신을 돌볼 수 있어요. 다들 그럴 나이가 된 거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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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내안의 어두운 부분, 용기, 상처, 내면의 공포, 직면할 마음, 내 안의 아이, 자신 만이 자신을 돌봄”같은 일련의 어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라는 행위를 제시하기 위해 등장하는 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넓은 배경, 앞에서 보았던 새로운 자본주의정신 혹은 새로운 자기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재현하는 담론적 세계로부터 출현하는 말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조금 비약을 하여 이를 우리 시대의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로 건너가면 어떨까. 예컨대 이런 정신적 부조와 그를 극복하는 노력을 묘사하는 언어들을 신경증의 시대로부터 우울증의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현상으로부터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알랭 에렌베르가 말하듯이 신경증이 기율과 죄책감이 신경증에 대응하고 그것이 주되게 개인의 무의식적인 갈등(conflict)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면 우울증은 이른바 자율적인 자아, 자기주도적이고 자신을 돌보는 책임을 짊어진 자기(自己)를 조준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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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듯이 19세기 후반을 전후하여 이른바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던 신경증은 1960년대 이후에 우울증에 그 자리를 양보하였다.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것은 자기주도성 혹은 자기책임성같은 것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지배하지 못하는 개인들을 병리화하는 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것은 광범위한 정신적인 현상을 우울증이라는 질병 속에 모아내고 이를 치료제의 투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약품을 소개하는 다국적 제약자본의 전략과 활동 역시 중요하다. 어떤 이가 역설하듯이 실제로 제약자본은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최초의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서적과 보고서, 학술대회, 언론 보도, 티비 프로그램을 조직하거나 후원하면서 우울증을 질병으로 구성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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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무엇보다 경악스러운 점은 불과 수십 건에 불과한 지극히 주변적이고 희소한 정신질환이었던 우울증이 수백만 명이 넘는 사례로 그것도 해를 거듭할수록 폭증하게 된 것이라거나 세계보건기구가 인류가 직면한 공중보건 상의 두 번째로 심각한 문제로 진단하는 문제가 되었다는 점(첫 번째는 심장 질환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이 바로 항우울제인 ‘프로작(Prozac)’이라는 사실(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은 위궤양 치료제인 “잔탁”이다)은 의학 담론 안에서의 변화를 통해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겪는 정신적 과정을 가시화하는 방식 자체의 변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거칠게 말해 우울증은 심리적 현실 안에서 새롭게 발견된 증상이라거나 제약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전략에서 극대화된 심리적 이상(異常)이 아니라, 심리적 현실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방식에서의 변화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울증은 그것과 인접한 혹은 연속적으로 매개되어 있는 다양한 유사 담론들과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등장하고 또 변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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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병렬적인 혹은 선택적인 친화성을 맺는 담론들을 매개하는 것은 앞서 보았던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 예상하는 주체성 혹은 자아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행위의 장 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기든스같은 이들이 요란하게 분석한 바 있는 친밀성의 영역 안에서라면 그가 순수한 관계라고 불렀던 더 이상 전통이나 책임에 따르지 않은 채 연루된 개인들의 감성적인 만족과 확신을 추구하는 것, 혹은 여행을 둘러싼 담론의 변화에서 식별할 수 있는 것처럼 더 이상 일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나 피로로부터 원기를 회복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시험하는 일종의 모험이나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 일상적인 소비 같은 것에서는 ‘필수 아이템’같은 유행어에서 보이듯이 마치 심미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조형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것 등, 거의 모든 삶의 차원에서 이런 새로운 자아의 윤리를 식별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다니엘 벨같은 사회학자가 수십 년 전에 말했던 저 유명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 이상 아니다. 경제적 삶의 세계 안에서의 금욕주의적 자아의 윤리와 전위적인 모더니즘 문학예술이 내세우는 쾌락주의적인 자아 사이의 모순은 이제 완벽하게 지양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은 외려 경제적 삶 속에 놓인 주체의 자기실현의 윤리와 문화적 삶의 세계에 놓인 주체의 자기발견과 실험의 윤리가 전연 어긋나지 않은 채 화해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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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치유로서의 글쓰기라는 앞에서 인용했던 것을 설명하게 하여 준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마음으로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는 윤리는 글쓰기 혹은 문학을 재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알다시피 글을 읽고 쓰는 주체는 “내면의 풍경”을 읽는 주체이고, 또한 그런 내관(內觀)을 통해 자신을 에워싸고 세계를 바로 그런 내면의 전개로서 재현하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이를테면 외적 강제를 내적으로 승화한다는 발상 없이 낭만주의 문학의 등장을 분석하기 어렵듯이 우리는 어떤 자아의 윤리적 변형과 문학의 정체성의 변화를 떼어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치유로서의 글쓰기 혹은 문학 치료같은 담론이라 할 것이다. 최근의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담론 같은 것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문학치료같은 담론이 어떻게 거기에서 비롯된 지식과 테크닉을 사용하는지 손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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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런 변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마 오프라 윈프리 쇼가 아닐까. 알다시피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베스트셀러 제조기이다. 그녀는 미국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책 읽어주는 여자’로 군림한다. 우리는 심심찮게 오프라 윈프리가 추천한 책이란 광고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글 읽기 혹은 문학의 소비를 매개하는 오프라 윈프리 쇼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리얼리티 쇼나 유사한 도전 운운의 싸구려 티비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겨냥하는 것은 쇼의 호스트인 그녀 자신의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 그대로 흑인 미혼모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끌고 돌보았느냐는 것처럼 모든 문학적 텍스트를 저자와 독자 사이의 자기의 관리와 배려라는 윤리적 지향 안에서 반향하는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아마 우리 시대의 독서의 풍경일 것이다. 물론 그 풍경을 일컫는 이름은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로서의 글 읽기일 것이다.&nbsp;&nbs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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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어느 소설가의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관한 책의 제목은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이다. 아마 이는 자기 실현하는 자아를 제조하는 공작소로서의 문학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관한 책소개 글은 이렇게 전한다. “단순히 등단이나 책으로 출간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내 삶을 돌이켜보고, 현재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한 글쓰기. 그런 글쓰기는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며, 삶이 바뀌는 만큼 우리의 글도 좋아질 것임을 저자는 확신한다.” 짜증이 나거나 우울하고 화가 치밀 때 필요한 것은 술이나 수다, 노래방이 아니라 바로 글쓰기라고 역설하며 그 책의 저자는 “나를 바꾸고 삶을 바꾸는 진짜 글쓰기”에 도전하라고 고무한다. 이는 앞서 인용하였던 치유로서의 글쓰기의 저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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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도성과 자기책임이란 새로운 자아의 윤리, 혹은 내가 어느 글에서 자기계발(self-empowering)의 윤리라고 불렀던 주체성의 규범은 여러 종류의 글쓰기를 등가화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다시피 자기계발 텍스트들이 가장 중요하게 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글쓰기이다. 그것은 스티븐 코비같은 세계적인 자기계발 분야의 구루(guru)가 전파시킨 “다이어리” 쓰기 같은 조잡한 방식에서부터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여정 혹은 익숙한 자아와의 결별이라는 것으로 서사화하면서 “사명문 쓰기”나 “묘비명 쓰기”같은 것을 제안하는 구본형 식의 글쓰기 처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자기계발 텍스트는 글쓰기의 효험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는 문학치료 담론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그것이 전문적인 치료 담론의 형태를 취하든 아니면 알기 쉽게 일반 독자들에게 자신의 사소한 체험과 감정적 반응을 서사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형태를 취하든 그것은 동일한 주체화의 테크놀로지로 묶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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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로서의 글쓰기를 서술하는 제법 모양을 갖춘 본격 문학이론서이든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나 카프카를 자기 단련과 강화를 읽는 지침서로 읽는 치유하는 책읽기 서적이든, 아니면 문학 텍스트의 감상이든 아니면 ‘독서 컨설팅’이든 ‘문학 치료’이든,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모자이크처럼 만들어내는 문학-풍경을 앞두고 어색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조형하는 윤리적 규범과 테크닉을 통해 매개되고 또한 복제된 현상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외려 정작 우리가 난감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런 문학-풍경 속에서 문학 자체에게 떠넘겨졌던 오랜 역할이 소실점 속에서 사리지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신경증의 시대를 살았던 문학가의 모습은 전형적인 신경증 환자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우울증의 시대를 살아가는 문학가들은 과연 우울증 환자의 모습일까. 우리가 보든 문학가의 모습은 오히려 거꾸로 선 자들의 모습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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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자신의 고통과 불안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욕망과 능력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배려하는, 즉 자본주의가 서로 다른 삶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주체성의 형태를 매개하는 그 윤리를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신경증을 앓는 환자로서의 문학가는 또한 앞에서 말한 지식인으로서의 문학가라 모습을 낳았다. 그것은 신경증을 병리적인 체험이 아니라 글쓰기를 구성하는 원리로 채택하고 이를 통해 그것이 내면이든 아니면 외적 삶의 세계이든 그를 재현하는 언어를 했던 문학가의 초상을 빚어낸다. <br />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광기와 고통 속에서 발광하는 문학가를 예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이라는 현상이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하는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공간으로 기능했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문학이 계속 그런 공간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강변할 생각 역시 추호도 없다. 그러나 문학적 텍스트를 생산하는 공간이 반자본주의적 근대적 텍스트를 생산하는 공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전환은 우리에게 글쓰기와 읽기의 정체성에 관하여, 더 이상 미학적인 이념 속에서 문학을 생각하지 않는 문학적 현상에 관한 새로운 분석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어쨌거나 글을 쓰일 것이고 읽혀질 것이며, 그리고 이것은 주체성을 형성하는 무대로서 언제나 분쟁 속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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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666699"><b>- 계간 <자음과 모음> 2009년 여름호에 기고한 글</b></font></div>]]></description>
<category>articles</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Mon, 18 May 2009 14:57:43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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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다문화주의라는 사유의 궁핍</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82</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T8aPnm6lIWY&hl=ko&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T8aPnm6lIWY&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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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Cohen, The Partisan</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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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름다운 노래에 등장하는 빨치산이 불현듯 탈레반이라면, 알카에다의 전사라면 어떨까? 이것이 참기 어려운 불쾌감을 준다면, 다문화주의란 얼마나 허위일까. 하물며 불어가 아닌 아랍어로 이 노래의 후렴구를 부른다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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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41A01"><b>다문화주의라는 사유의 궁핍<br />
- 다양한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의 조우를 위하여</b></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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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차이라는 것, 다양하다는 것 그리고 적대적이라는 것</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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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한 어느 유명한 대학교에는 사회학과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그냥 사회학과이고 다른 하나는 발전사회학과이다. 그런데 어쩌다 두 개의 사회학과 있게 된 것일까. 사회학과는 그냥 사회학 일반을 가르치고 발전사회학과는 사회학의 특별한 분야인 발전사회학을 가르치는 학과라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사회학과 발전사회학은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우파 사회학과 좌파 사회학의 차이를 미국의 대학 제도 안에 기워 넣는 도착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방식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런 식의 시차(視差)는 다른 것에서도 숱하게 등장한다. 이를테면 자유민주주의는 따로 표시해야 필요가 있는 특수한 신념이 아니라 그냥 인간 본연의 지향이라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언제나 특수한 종류의 사람들이 갖는 예외적이고 선병질적인 태도인 것처럼 생각되곤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이에는 자연적인 태도와 주입된 이념이라는 시차가 항상 따라다니는 셈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를 어떤 특수한 태도로 고정시키고 그것을 구성하거나 이끄는 원리나 신념을 제시하려 할 때마다 우리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흔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의 멍에를 씌우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야말로 가장 탁월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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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82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2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2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82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2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21b'));return false;"> less.. </a> 물론 이런 예는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성차(性差)에 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인가 이른바 남성의 권익을 옹호한다고 쓸데없이 나선 어떤 단체가 여성부의 신설을 반대하는 헌법 소원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이유인 즉은 남성부는 없는 데 왜 여성부 만 있냐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남녀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에는 한 치도 형식적인 오류가 없다. 곧이곧대로 보자면 이 주장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는 더 깊은 시차적 착각이 숨어있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이 각기 인간의 종을 분류하면서 나온 두 개의 묶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성별에 따라 인간을 분류한 결과 나온 개별적인 종(種)이 아니다. 두 개의 종처럼 보이는 것에서 하나는 실은 전체이자 보편적인 것의 역할을 떠맡고 즉 그 자체 류(類)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머지 하나는 영원히 특수한 종의 세계에 고정된다. 따라서 여성부는 따로 만들어져야지만 남성부는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 정부의 모든 부처가 실은 남성부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신을 남성이란 특수한 종으로 표식하면서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 남성은 실은 인류 자체인 것처럼 행세하기 때문이다. <br />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끝없이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차이난다는 것’과 ‘다양하다는 것’ 사이에 놓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때 생겨나는 시차에 관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마치 동등한 두 개의 항들 사이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은 알고 보면 남성이라는 인류와 여성이라는 특수한 종 사이의 관계에 다름 아니라는 것(적대적인 차이가 동등한 항 사이의 관계로 보이는 시차), 혹은 거꾸로 미국 어느 대학의 사회학과와 발전사회학과는 일반 사회학을 가르치는 사회학과와 발전사회학을 가르치는 특수한 분야의 사회학과이기는커녕 두 개의 대립적인 관점에 따른 사회학을 가리킨다는 것(대립적인 쌍이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의 관계로 보이는 시차)은 모두 차이란 문제에 관한 시차를 보여준다. <br />
여기에서 우리는 차이와 다양성의 관계에 관해 사유한다는 것이 왜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되었는지 생각해 볼 핑계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야 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프로그램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주의라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현상을 다루려 할 때 차이와 다양성에 관한 숱한 시차를 다루지 않은 채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마디로 줄여 말하자면 다문화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일 것이다. 다문화주의가 우리 시대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라는 영예를 누리려면 (그것은 과연 그만한 자격이 있을까) 혹은 혐의를 뒤집어쓰려면 (다문화주의는 애초에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좀 더 면밀한 생각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다문화주의란 그것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건네는 이야기를 넘어 현실에 관한 사유를 할 때마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곤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말로 다문화주의 자체보다 더 중요한 쟁점일지 모른다. 다시 말해 다문화주의는 현실을 사유한다는 것에 연루된 근본적인 곤란의 징후라고 말이다. 다문화주의란 사유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태이자 어쩌면 사유 그 자체의 협착을 보여주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다문화주의는 결국 ‘차이’라는, 그간 그토록 구구하게 이야기해 온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정치적 질문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형세 속에 통합시킴으로써 만들어진 그렇기에 그 나름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는 헤게모니적인 이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 주목하여 이데올로기로서의 다문화주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쟁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다문화주의를 이데올로기라고 할 때,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온전한 정의에 따르는 것이다. 즉 적대적 현실을 허구적으로 상징화하는 것이면서 또한 동시에 그것을 대등한 항들 사이의 차이 혹은 다양한 것들 사이의 조화로운 소통과 협상으로 치환하는 것으로서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러하듯이 바로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의 세계로부터 공제(控除)한다. 다문화주의가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의 공존과 차이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지만 바로 차이의 차이화를 다루지 못한다는 궁극적인 한계 역시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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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보편적인 것이 없는 차이, 다문화주의의 차이</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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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이주결혼여성들이 이룬 가족을 ‘다문화가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다문화주의가 더 외설스럽게 들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당장 우리는 이렇게 퉁명스럽게 대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문화가정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자계급 가족 형태 가운데 하나라고 말이다.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이주한 여성들이 농촌 총각들과 만나 이룬 가족을 왜 ‘다문화가정’이라 불러야하는가.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나름의 빈곤의 사회적 분배 체계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가족 형태를 생산해 냈다. 다문화가정이란 것은 바로 그런 자본주의적 현실을 분절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허울 아닐까.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빈곤의 사슬은 여성에게 가장 강하게 전가되는 것이야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일 아닌가. 즉 ‘군입’인 미혼 여성이야말로 가족의 경제적 재생산을 위해 먼저 떨어 내야할 그리고 이를 부양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임금소득자로 전환되어야 할 인구가 되지 않던가. 그리고 이런 여성 빈곤의 지구적 사슬 속에 한국 농촌 마을의 필리핀 새댁과 베트남 며느리가 편입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만남으로 그려내는 것일까. <br />
알다시피 자본주의는 상품적인 교환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모든 세계, 모든 사물과 삶의 형태를 등가화한다. 이런 자본주의적 보편성은 그러나 상당 기간 동안 민족국가라는 헤게모니적인 허구를 통해 혹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을 빌자면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굴절된 모습으로 자신을 사회적으로 실현하였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혹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건네는 이들에게 당신은 무엇보다 민족의 성원이며, 민족국가의 국민임을 일깨우고 또 그를 통해 자신을 에워싼 삶의 현실을 체험하고 공감하며 또한 반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요하게는 국민과 계급 사이의 긴장이 놓여있다. 자본주의적 적대가 계급투쟁이란 형태로 전환하지 못하도록 했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국민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존을 국가 경제의 생존을 통해 규정하도록 했던 ‘근대화’나 ‘발전’의 기획 안에서이든 아니면 계급적대를 상기시키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활동을 국가라는 사회적 신체에 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탄압, 추방했던 것에서이든 모두 동일하게 관철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국민국가가 모든 자연적인 배경이나 영속적인 전통으로부터 혹은 일차적인 소속집단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내면서 국민 혹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는 독특한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보편주의적 충동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보는 것 역시 옳다. 이를테면 우리가 여전히 듣는 ‘좋은’ 민족주의 혹은 ‘진보적’ 민주주의란 주장을 경청하여야 한다면 어떤 판본의 민족주의라도 특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재도입하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자유주의적 비판을 물리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어떤 민족주의도 선험적으로 유죄라는 주장은 민족주의에 유령처럼 달라붙어있는 보편주의적 충동을 헤아릴 때 지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차라리 민족주의는 언제나 정치적, 윤리적으로 애매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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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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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지나치게 많으면서 또한 지나치게 적은: 다문화주의의 반정치적 정치</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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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문화주의가 우리에게 가장 문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바로 민족/국가라는 보편적 매개가 취약해지거나 혹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보편적 다양성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특정한 상위의 공동체로 묶어낼 수 있는 매개항으로 작용하였던 것이 바로 민족/국가라고 한다면, 그 민족/국가의 위기는 바로 무엇보다 상식과는 반대로 다양하다는 것, 차이난다는 것 자체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다문화주의가 가진 치명적인 해악은 민족국가의 국민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새로운 지구적 자본주의의 주체가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동일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저지한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나와 우리를 사고하는 방식에 있어 혼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나이거나 우리는 우리라는 동어반복에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물론 나(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 나(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를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나와 우리를 무엇으로 정체화하여야 한다. 그런데 다문화주의는 우리가 누구인가란 물음을 간단히 그리고 재빨리 다양한 생활습속 혹은 이제는 변화된 자본주의에서 삶을 표상할 때 거의 으뜸가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란 것들이 끝없이 펼쳐진 세계로 재현한다. 그것은 민족적인 전통이나 국가적인 역사, 혹은 국민문화적인 정체성이었던 것을 독특한 생활방식의 세계로 재구성하며, 나아가 역으로 민족과 국가라는 것 자체를 그런 생활방식에 관한 담론으로 재구성하기까지 한다. <br />
그렇지만 이런 무한한 라이프스타일의 세계, 문화적 습속과 전통의 다양성의 세계는 그것을 가능케 했던 공동체적 차원이 잘려나간 세계이다. 그것은 발리바르가 국가를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허구적 보편성이자 헤겔적인 의미에서의 총체적 보편성의 심급이라고 말하면서 얘기했던 이성의 간지를 허물어뜨린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성의 간지(奸智)란 물론 다양한 차이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국민적 정체성이란 것으로 전체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개인화하면 할수록 또한 그것이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이 되는 교활하다고 할 만한 모순적인 경향을 가리킨다. 이는 원자적인 개인들의 삶으로서 현실을 표상하는 개인주의도 아니면서 또한 동시에 전체의 표현이자 연장으로서만 개인이나 집단을 다루는 유기체론도 아닌 새로운 세계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그것이 무엇보다 ‘이성’의 간지란 점에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성이란 개인들의 자율성과 양심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성은 개인으로서 사고하고 의식하여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 자연적인 권위나 관습에 따른 의무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함축한다. 그리고 이런 이성은 다시 헤겔적인 의미에서 국가이성이다. 이것은 국가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라는 뜻에서, 국가라는 허구적인 실체가 부과한 이념만이 이성적이란 뜻에서가 아니다. 외려 국가라는 허구적인 보편적 공동체가 개인성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숱한 직업적, 종교적, 인종적, 성적 소속들을 횡단하면서 자신들의 인격을 대표할 수 있는 권리의 공동체를 창출할 수 있게 한다는 뜻에서 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성에는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규탄받고 심문받는다 하더라도 보편성이 기약되어 있다. 그리고 그 보편성에는 이성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개인성을 발현하는 주체가, 즉 개인성이 각인되어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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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민족 자체가 유일한 정치 단위이기를 멈추고 따라서 상대화되어온 세계, 그러나 또한 착취와 부와 빈곤이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갈라놓고 있는 이 세계 속에서 인종주의는 보편화되었다. 그것은 실제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결국 처음부터 이것을 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실상 인종주의는 오늘날 ‘보편적’이다. 그러나 만일 인종주의가 또한 (이론적으로) 보편적이지 않다면, 역설적으로 그것이 자신 속에 보편성의 측면을 갖지 않는다면, 인종주의가 어떻게 (경험적으로) 보편적일 수 있는가 묻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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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인용한 발리바르의 말을 듣자면 우리는 적잖이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 스스로 말하듯이 마침내 제국주의적 식민화의 체험으로부터 벗어나고 또한 무엇보다 나치즘이란 것을 최고의 악으로 규탄하고 제거한 이후에도 왜 우리에게 인종주의적 청소란 것이 부활하고 있냐는 물음에 적용되기 때문만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인종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마침내 도래한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분인 다문화주의에 깊이 스며있다. 인종주의를 에워싸고 있는 음침하고 불길한 인상에 갇히지 않고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인종주의를 보편주의라고 사고하자는 발리바르의 제안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말했듯이 인종주의같은 극단적인 특수주의적 사고방식이 성행할 수 있는 조건은 바로 민족과 국가라는 보편주의의 내적 모순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의 계급적대라는 조건을 사회적 평등이란 이상과 조정하고자 할 때 민족/국가라는 보편주의적인 허구는 자신의 근본적인 모순을 폭로하였다. 개인들이 권리를 지닌 주체로서 무한히 다양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민족/국가라는 허구적인 공동체의 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은 민족/국가의 보편주의적 허구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여성, 소수자들은 과연 그것은 누구의 민족/국가를 물으며 나는 왜 권리를 지닌 삶으로부터 배제되는가를 추궁할 때, 그런 항의와 요구는 이미 민족/국가 안에 잠재하여 있는 것이다. <br />
그렇다면 다문화주의가 너무나 많은 차이를 고려하면서 또한 동시에 너무나 적은 차이를 생각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연 옳다. 그것은 무한히 다양한 개인들의 세계, 스스로의 의식적인 반성과 결정을 통해 자신을 권리의 주체로서 조직할 수 있는, 그런 개인적인 인격들의 무제한적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차이를 생각하는 데 거의 빈혈에 가까운 무능력을 보인다. 반면 그것이 너무나 많은 차이를 고려한다는 것 역시 같은 원리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 다문화주의는 바로 그런 것의 순수한 예일 것이다. 다문화주의란 무한한 차이를 상위의 심급으로 매개할 수 있는 보편적 매개자가 존립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문화적 차이나 생활 관습의 공통성에 기반을 둔 다양한 차이들을 매개하지 못할 때, 출현한다 말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는 그런 차이를 계속 생산해내는 원인을 사고할 수 없다. 차이를 중단하고 나/우리는 왜 보편적인 권리를 지닌 주체가 못되는가를 묻도록 하는 심급 혹은 계기를 가질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문화주의에 투항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차이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차이 속에서 차이를 낳았던 조건을 생각하는 일을 떠넘긴다. <br />
차이란 이미 자본주의적 보편성 속에서 이미 개시된 것이었다. 그리고 근대 국가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정치적 형식으로서 국가를 대응시킴으써 자본주의적 적대를 개인이라는 무한한 차이를 국가라는 보편적 매개의 변증법 속에 효과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가 가지는 것은 매개되지 못하는 차이의 세계이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더 이상 ‘평등 속에서의 차이’가 아닌 백치와도 같은 동어반복적인 차이의 세계이다. 그것은 다시 특수한 생활양식이나 삶의 관습 혹은 일차적인 공동체 속에서 비롯되는 차이로 사람들을 되돌려 보내면서 무한한 차이가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을 박탈한다. 또한 동시에 무한한 차이가 자신을 다양하게 조직화된 혹은 사회화된 차이로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 역시 상실한다. 이 때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평등 속에서의 차이가 아닌 또 다른 종류의 차이이다. 이 차이를 일컫는 다른 이름이 다문화주의라는 점은 두 말할 나위없다. 결국 문제는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차이를 평등이라는 것과 떼어놓음으로서 그리고 평등 속에서의 차이를 생각하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너무나 적으면서 또한 너무나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두는 결국 자본주의적 적대를 차이의 세계로 효과적으로 정렬할 수 있는 정치적 형식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문화주의란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가 사라진, 무한한 다양한 삶을 효과적으로 정치적으로 주체화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진 세계에서의 반정치적 정치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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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사회 2009년 여름호에 기고한 글</div>]]></description>
<category>articles</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ue, 05 May 2009 01:06:1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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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신세계의 어린이 문학, 자기계발 문학</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81</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560" height="340"><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IWrfLhX964I&hl=ko&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IWrfLhX964I&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560" height="340"></embed></object><br />
<b><font color="#009966">PJ Harvey & John Parish - Black Hearted Love</font></b></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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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이 누가 뭐래도 지금 가장 잘 나가는 한국 최고의 팝스타이다. 그들이 일종의 자기계발서라 할 󰡔세상에 너를 소리쳐!󰡕(쌤앤파커스, 2009)를 내놓았다. 책이 나오기도 전에 예약이 폭주하고 급기야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진입했다. 수십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소식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던 일이니 놀랍지 않다. 빅뱅에 열광하는 팬들이 아니라 그 아이돌 밴드가 누군지 눈, 귀가 어두운 어른들마저 다투어 권하는 책이 되었다는 소식 역시 그리 정색할 일은 아니다. 그 책에서 그들이 읽고 들으려는 것은 딱히 빅뱅의 이야기가 아니라 빅뱅을 통해 울려 퍼지는 우리 시대의 세속적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도 선뜻 그 책을 택했을 것이다. 어떤 책을 읽힐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저자의 목소리와 독자의 귀 사이에서 이뤄지는 고독한 대화가 아니다. 책을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되게끔 해주는 독서의 공간 안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읽을 수 있는 책, 나아가 잘 읽히는 책은 저자와 독자라는 인물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책과 독자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공간에 놓여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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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81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1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1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81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1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11b'));return false;"> less.. </a> 그에 비추어 󰡔세상에 너를 소리쳐󰡕란 책의 명성과 그 문화적 효력을 가늠하는 방식 역시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금이라도 눈여겨 본 이들이 있다면 수월성을 위한 교육이든, 몰입교육이든, 그간 교육 정책과 제도를 둘러싸고 회자되었던 신조어들이 모두 자기계발 문학이 걸쳐있는 문화적 형세와 떼어놓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월성은 물론 개성, 자기주도성, 창의성같은 말로 얼마든지 풀이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그것이 거리를 두고 거부하려는 것들도 줄줄이 말해볼 수 있다. 주입, 획일성, 암기식,  선택의 부재 등등. 몰입 역시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수월성이든 몰입이든 이 모든 말 속에서 들어있는 사람은 당연 두 말할 것 없이 “자기”이다. 그것은 일터에서 자신의 인적 자본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직장인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스펙”을 관리한다는 것이나 이직이나 승진을 위하여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직장인들도 모두 알고 보면 ‘자기’와 관련을 맺고 있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더 많이 웃으라는 기업 광고의 윽박질이나 ‘대학민국’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긍정의 힘’을 역설하는 따위의 광고 속에 나오는 웃기지 않는 협박 역시 모두 ‘자기’를 상대하는 개인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자리라면 어김없이 출현한다. 그것이 초등학교 어린이이든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이든 그 상대가 누구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누구의 이야기든 모두 “자기를 대하는 나”의 이야기로 바꾸어낸다. 이런 이야기하기를 일컫는 말은 ‘윤리’이다. 따라서 ‘자기의 윤리’란 것이 현 시대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의 꼴이자 이야기하기의 으뜸가는 방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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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에서 초점은 ‘계발’이 아니라 ‘자기’란 말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아래와 같은 어느 신문 기사는 조금 고쳐 읽어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 처세술’이 성행하고 있다. 서점에는 어른들의 처세술을 동화로 꾸민 ‘어린이 자기계발서’가 넘치고, 어린이 캠프에서는 ‘재테크’를 가르친다. 사회가 처세와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나라의 미래인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난 기사이다. (󰡔경향신문󰡕, 2009년 3월 24일 치)  그 기사는 어느 출판평론가의 쓴 잔소리도 덧붙였다.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에 조급함을 느끼는 부모들과 이에 편승한 출판업계가 아이들을 자기관리와 처세에 나서도록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들에게는 단편적인 지식과 이해타산적인 자기계발서보다 다양한 인문서를 통해 인간과 세상을 통합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두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해타산적인 자기계발서가 아닌 다양한 인문서가 사실 더 지독한 자기계발서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언젠가 세월이 흘러 폴 오스터와 무라카미 하루키같은 지금의 명망 높은 소설가들이 죄다 은밀한 자기계발 문학의 저자들이었음으로 판명된다면 어떨까. 그렇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자기를 실현하고자 방황하는 개인들의 자아를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작가들이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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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명사 문학이 위인전을 대체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명사 문학이란 말 그대로 대중문화의 스타나 유명 스포츠 선수, 혹은 기업가들이 쓴 전기문학을 가리킨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갑자기 본받아야 할 인물로 꼽히고 그들이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쓴 자서전 혹은 대담집, 전기같은 것이 어른들은 물론 어린이를 위한 읽을거리로 등장하고 득세하여 왔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위대한 사람에 관한 글이니 위인전이지 않은가. 누군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위인전 속의 인물과 명사 문학 속의 인물들이 전연 다른 사람인데다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 역시 두드러지게 다르기 때문이다. 위인전 속의 인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덕목이나 가치에 비추어 조율된 삶 속에 놓여있다. 그래서 그가 들여다 본 그 자신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삶은 우리가 위대하고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등장할 뿐이다. 그렇지만 명사 문학 속에 나오는 인물은 전연 다르다. 그는 오직 자신을 대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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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시대의 정신 혹은 가치를 연기하는 위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앞길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실현하기 위하여 분투하는 영웅적인 개인이 명사 문학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가진 개성이나 독특한 기질이라 해봤자 그저 시대의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로서만 취급될 뿐이기에 위인전 속의 인물은 그저 당대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한 꼭두각시에 불과한 칙칙한 개성 없는 인물인 것일까. 반면 명사 문학 속의 인물은 끊임없는 도전과 선택, 변신의 과정으로 가득 찬 화려하고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일까. 역설적이지만 결론은 정반대이다. 위인전은 같은 가치와 덕목이라도 얼마나 끊임없이 다양한 변주 속에서, 즉 얼마나 변화무쌍한 인생 속에서 펼쳐지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명사문학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더 없이 지루한 동어반복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나는 나다”는 자폐적이고 질식할 듯한 세계 속에 갇혀있는 인물들의 판박이 같은 삶을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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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세상에 너를 소리쳐!󰡕에서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이라기보다는, 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자가발전형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다”(41면)라거나 “남들이 ‘스탠더드(Standard)’라고 부르는 노-bf란색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나는 수풀이 우거지고 어디로 뻗어 있을지 모를 ‘와일드 로드(Wild Road)’를 선택했다”(73-4면), “‘나 자신’이란 건 없다. 나는 오로지 내가 만들어가는 대로 만들어진다. 인간이 가지는 욕심 중에 선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진정한 욕심은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대로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196면) 운운. 이런 이야기는 어째 많이 듣던 이야기지 않던가. 이는 거의 모든 명사들이 끊임없이 반복재생되는 어떤 기계 속의 녹음된 목소리처럼 들린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웃음 10계명”, “긍정적 사고방식”, “칭찬하기”같은 자기계발과 관련한 경영학 혹은 심리학적인 지식들이 쏟아내는 테크닉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획된 아이돌 밴드가 기획된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참담한 것은 태양이 공병호가 되고, 승리가 구본형이 되며, 탑이 스티븐 코비가 되고, 대성이 황수관이 되며, 지 드래곤이 탐 피터스가 되어 변신한다는 일이다. 자기계발서가 위험한 것은 바로 새로운 경제체제가 자신에게 걸맞은 사람의 꼴을 빚어내고자 만들어낸 대표적인 글쓰기의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 글쓰기에 우리 시대의 대중음악의 스타까지 저자로 참여하는 일을 보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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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3366">- 창비어린이에 기고한 글</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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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column</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hu, 16 Apr 2009 23:41: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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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촛불, 그리고 “운동”의 정치를 생각한다</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80</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Brsw4znRq34&hl=en&fs=1&color1=0x3a3a3a&color2=0x999999"></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Brsw4znRq34&hl=en&fs=1&color1=0x3a3a3a&color2=0x999999"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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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M. Ward, Hold Tim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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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패악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를 낱낱이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가 할 말은 “더 말 해 무엇해” 정도일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는 현 정권의 무능에 마치 숨이 멎을 것같은 기분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폭발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위기가 세계를 뒤덮은 연후 한국 사회는 거의 비명을 지를 지경에 이르러있다. 당연 경제 살리기를 제 소명으로 내세웠던 현 정권이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기대할 만도 하다. 그러나 현 정권이 내놓는 정책과 대안은 무엇 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수습할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과연 이 정권이 한국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지조차 불투명하다. 분배보다는 일단 성장이 우선이라는 애용하던 한국 보수 세력의 논리가 이번엔 통할 처지도 아니다. 이미 마이너스 성장이란 예측이 분분하고 함께 견뎌보자고, 긍정의 사고를 하자고 아무리 독려하고 설레발을 쳐도 불안과 낙담을 이길 재간이 없어 보인다. 그에 한 술 더 떠 이 저열한 정권은 제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했단 이유로 과격한 운동가도 아닌 인터넷의 경제평론가를 찾아내 구속하는 짓까지 저질렀다. 그가 내놓은 경제적 예보가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매체를 통해 발언한 시민을 구속했다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것을 현 정권은 내내 모르쇠 한다. 따라서 용산 참사를 전후하여 청와대에서 흘러나왔다는 신종 보도지침은 놀랄 일도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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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80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0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0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80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0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801b'));return false;"> less.. </a>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좋은 일이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했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퇴행이겠지만 그 퇴행이란 것도 역시 한국 사회의 민주화의 효과겠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적 절차를 마련했고 이명박 정권은 바로 그 투표를 통해 집권하였다. 그와 그를 후보로 내세운 한나라당의 정치적 반동 혹은 역주행은 반민주적인 쿠데타도 정변도 아닌 어떤 정치권력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권적 행위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 때문에 더 수치스럽고 굴욕스럽다 개탄한다 해도 그것이 엄연히 1980년대 민주주의적 투쟁과 그것의 성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까지는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우리는 더욱 과감한 주장을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권은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한다는 터무니없는 데마고그를 통해 집권하였다. 그것은 어쨌거나 선거가 ‘정치적’인 행위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좌이다. 그렇기에 외려 역설적으로 그것은 아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일지 모른다. 그것은 선거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즉 어떤 정치적 선택도 운반하지 못한 채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훌륭한 ‘국가적’인 통치 행위 가운데 일부로 전락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br />
나는 여기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바디우가 사르코지 정권의 등장을 두고 내놓았던 짧은 분석을 떠올린다. 그는 사르코지 정권의 등장을 프랑스의 정치적 역정 속에서 하나의 이변에 해당한다고 아니 과감하게 말하자면 어쩌면 프랑스에서 정치의 종말에 가까운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자면 이럴 것이다. 종래엔 어떤 선거였다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제 아무리 희박하게 투영되는 것이었다 해도, 선거는 ‘정치적’ 절차, 즉 좌인가 우인가를 선택하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세계에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바로 그런 정치적 절차로서의 선거가 이제는 순전히 ‘국가적’ 절차로 환원되는 것, 바디우 스스로의 말을 빌자면 “국가적 형식, 자본주의적 의회주의의 형식에 편입”을 알리는 사태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사르코지 정권은 그가 신패탱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것의 특징은, 거칠게 옮기자면, 불안과 공포를 정치적 경험의 감각 속으로 대량 투여하면서, 정치를 제거한 정치, 다시 말해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하는 일로서의 정치가 바로 정치라는 반정치적인 정치의 세계를 열어놓았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사르코지를 선출한 선거는 더 이상 정치적 선택이 아닌 것이 되었다. <br />
그렇다면 그가 묻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합법적인 정치적 절차가 선거뿐이라면 그리고 그 선거가 더 이상 정치가 아닌 국가의 품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정치적 행위의 길은 무엇일까. 과연 ‘해방적 정치’를 위한 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 점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에서 앞서 말한 것과는 전연 양립하기 어려운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은 어쨌든 민주화의 효과라는 것 속에서, 여전히 선거가 정치적인 선택과 결정의 절차로 작용한다는 조건 속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조금 시선을 비틀면 그것이 또한 반대의 모습 속에서 포착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명박 정권은 그간의 선거에서 비록 실패와 좌절을 거듭했다하더라도 언제나 관류하던 특성, 즉 정치적 절차로서의 특성을 완전히 제거한 선거를 통해 등장했다.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하는 보수 정치세력임을 자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경제 살리기”라는 신화적인 주문(呪文)이었다. 그것은 사회적 삶의 세계를 조절하고 규정하는 원리라고 해야 할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 만약 그래도 정치란 것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회를 온갖 불안과 공포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되어버린, 그런 정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민주화 이후에 우리가 확보한 민주주의적 행위,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일, 정치적 절차로서의 선거가 마감되는 하나의 역사적 계기일지도 모른다.<br />
사회의 효율적인 경영이란 이름으로 둔갑해 버린 정치,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 경영의 CEO를 뽑는 일로 전락해 버린 선거가 우리 손에 쥐어진 전부라면 결국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참으로 유례없는 정치의 황혼기에 놓인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망할 일 만은 아닐 것이다. 헌법을 통해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법률적인 합의와 보장을 통해 마련된 절차, 즉 선거를 경유하여 온전히 정치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외려 우리가 더 익숙해 있고 심지어 더 능통한 것은 바로 ‘운동’, 즉 정치 없는 정치를 정치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정치가 정치로서 구실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운동을 통해 해방적 정치를 지속하였고 정치가 사회의 경영과 관리란 역할 속으로 봉쇄되지 않도록 투쟁하였고 그 결과 운동권이란 영예로운 이름을 만들어 냈다. 운동권 혹은 민중운동은 국가가 국민 혹은 시민을 호명할 때 민중이란 이름을 내세우며 어떤 체제 속에서 살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로서의 자리를 점유하고자 분투하여 왔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탈국가화시키면서 동시에 선거를 비롯한 일련의 민주적 절차들이 온전히 정치적 행위의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위력을 발휘하여 왔다. 그리고 아마 이는 1987년의 ‘민주화’를 되새기는 방식 가운데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는 바로 정치가 국가 경영이란 이름으로 정치를 추방할 때 국가가 집행해야 하는 결정적인 일이 바로 자신을 영원한 선택의 대상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와 정치 사이에 어떤 일치도 있을 수 없음을 규정하는 일이 아니었을까.<br />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민주화의 효과가 중단되는 역사적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이 ‘운동’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운동은 민주주의와 국가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국가의 행위로 민주주의가 유괴되지 않도록 하는 결정적인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치(권)과 운동(권) 사이에 놓인 긴장과 거리는 선거를 비롯한 사법적인 민주주의적 절차가 겪는 운명보다 더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몫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차가 구성하는 정치적 활동의 형식인 대표의 정치, 정당 정치 같은 것보다 우리가 응당 정치적 사유라고 할 만한 것을 경주해야할 영역도 바로 운동의 정치이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촛불 시위’가 문제적이다.<br />
또 다시 촛불이냐고 푸념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1987년 이후 가장 강렬하고 심지어 화려했다 할 정치적 동원인 ‘촛불 시위’가 정작 아무런 정치적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한 데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우리라고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짜증과 혐오를 견뎌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특히 정치적 사유를 지속시키고자 한다면, 더욱이 더 이상 정치엔 희망이 없다는 체념적인 반동적인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고통스럽지만 ‘촛불 시위’에 대하여 사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비의 생각󰡕 두 번째 권이 마련되면서 견뎌야 했던 심리적 긴장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다른 주제를 놓고 고심했지만 우리는 ‘촛불’에 대한 면밀한 반성 없이 우리의 정치적 사유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촛불 시위를 ‘운동의 정치’의 위기 속에서 사유할 필요를 절감했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관계를 사유하기 위한 필수적인 질문을 구성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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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우리는 촛불을 ‘운동의 정치’로서 분석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촛불을 민주주의적 사태로 무조건적으로 단언하려는 암묵적인 주장에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촛불을 민주주의적 사태로 확정하려면 그것이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을 따져보아야 한다. 물론 이는 가장 크게 촛불의 주체를 정치적 주체로서 반성하는 일이다. 그들은 과연 민주주의의 정치적 주체인가. 먼저 우리는 ‘촛불 좀비’의 일원이자 촛불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발언자였던 한윤형의 글을 볼 수 있다. 그는 금기의 선, 폭력과 비폭력이란 망상이 어떻게 민주주의적 투쟁으로 촛불시위가 진화하는 것을 제약했는지 분석한다. 그리고 촛불이 어떤 세계에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정치적 결정의 행위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촛불 시위가, 이데올로기적인 코미디 속으로 즉 뜻밖에도 지배 질서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인 플롯(폭력인가 평화인가)에 통합되어갔음을 고발한다. 한편 백승욱은 운동의 정치로서 촛불 시위에 관하여 준열한 반성을 시도한다. 축제적인 열정 속에 사로잡혔으면서도 해방적인 정치의 주체로 스스로로 전화할 문턱을 넘지 못하는 주체, 더 없이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문법을 쫓는 소비적 개인이었으면서 수평적인 연대를 가능케 하는 자기전화 앞에서는 가로막힌 주체, 바로 그것이 촛불에 참여한 주체의 초상이었을 해부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모순적인 주체를 변형하고 전화시키는 운동의 정치가 없다면 촛불은 해방의 정치를 만들어가는 계기로 구실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택광은 촛불을 욕망의 정치란 점에서 분절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욕망의 기제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부르주아적 욕망의 구조와 동일시한 시민 주체가 자아낸 욕망의 환등상이란 것이다. ‘쾌락의 평등주의’라는 욕망에 에워싸인 주체가 촛불의 스펙터클에 유혹당하며 만들어낸 그림자 극장이 촛불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불쑥 묻는다. 마지막으로 유영주는 촛불이 ‘거리의 정치’에 머물 뿐 ‘운동권 정치’로 전환하지 않은 이유를 따진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것이 제 아무리 운동권이 만들어낸 ‘정치문화’를 뛰어넘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운동권 ‘이상(以上)’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권력을 향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런 자신의 주장을 다듬기 위해 우리 모두 익숙했던 촛불을 둘러싼 네 가지의 장면을 파헤치며 그것이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낼 선택, 그리고 그것을 부를 또 다른 이름인 ‘대안’을 제출하지 못한 채 ‘현존하는 질서’를 옹호하는 사태로 전락해 갔음을 토로한다.<br />
2부는 촛불의 ‘문화 정치학’을 짚는다. 촛불은 다양한 문화적 감성과 의례, 상징과 지식들이 동원된 실천이었다. 통속적이거나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정보들이 투입되고 괴담과 학술적 논쟁이 공존하며 직접적인 욕구가 분출하면서도 공동체적인 열광을 조직하는 도덕적인 열기가 뒤덮기도 하는 복잡한 문화적 역학이 촛불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상길은 촛불의 ‘모랄’을 읽으면서 촛불이 어떻게 자신의 정치적 효력을 제한했는지 분석한다. 그는 촛불의 모랄이 순수성에의 집착이라는 모랄을 내세우며 ‘불결한 것으로서의 정치’, ‘오염된 것으로서의 현실정치’라는 부정적 상상 속에서 정치의 현실적 세계와의 만남을 회피하고 거부하였음을 꼬집는다. 한편 앞서의 이상길과 궤를 달리하는 탈근대적 종교 현상으로서 촛불의 성스러움을 읽는다. 그는 사회적 요구를 제기하는 시민이길 멈추고 정치적 주체로 도약하기 위한 계기를 촛불의 시민종교적 특성에서 찾아보고자 입론을 제시한다. 한편 김정한은 촛불 직후 이뤄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결과를 짚어보면서 이를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전개된 사회운동과 정치의 관계 속에서 반성한다. 그리고 폭발적인 사회적 저항이 ‘선거’를 제외하면 효과적인 정치적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아나키즘적인 유혹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운동의 모델이 도래해야 함을 역설한다. 과학은 현대의 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과 공포를 촉발하는 원천으로서 또는 그것을 길들이고 내면화하는 처방으로서 도처에서 소비된다. 오철우는 촛불에도 예외 없이 등장한 과학적 지식의 대량 소비를 분석하면서 이것이 괴담과 진실의 프레임 아래 어떻게 사회적 쟁점을 탈색하고 제거하였는지 비판한다. 이재현의 글은 최근 우리를 경악케 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사건을 통해 촛불이 만들어낸 대항적 헤게모니 혹은 그것을 구성하는 주체의 문제를 짚는다. 애매하고 막연한 불만과 공감을 통해 형성된 촛불이 효과적인 정치적 행위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론 거기에 참여하는 주체가 자신을 지배받는 주체로 스스로를 의식화하는 것이다. 이재현은 미네르바를 의식화의 모범적 선생 혹은 유기적 지식인으로 꼽으며 촛불 이후의 정치적 주체화에 관한 토론에 흥미로운 논점을 마련한다. <br />
마지막으로 3부는 촛불에 참여한 주체들의 정체성을 보다 섬세하게 짚어보고자 시도한다. 김영옥은 촛불의 70퍼센트를 차지했다는 여성 주체에 관하여 은수미는 ‘내 새끼 이기주의’라는 욕망 속에서 촛불을 달군 중산층에 관하여 그리고 김보경은 배제된 사회적 주체들 속에서 구성된 촛불 주체의 보수적인 정체성에 관하여 각기 날카로운 분석과 성찰을 던진다. 김영옥은 생명권력(biopower)을 동원함으로써 움직이는 신자유주의적 국가 형태와 삶권력적인 역량을 배가하게 된 여성 주체가 대립하는 역사적 국면을 짚어내며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서 국가와 어떻게 상대하여야 할지 질문한다. 은수미는 촛불집회가 비정규직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 채 이뤄진 중산층적인 욕망의 무대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따지며 연대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촛불 이후의 운동을 탐색한다. 김보경은 촛불 이후 우리가 마주친 가장 경악스런 사건일 ‘용산 참사’를 떠올리며 선량한 시민이자 안정된 사회성원으로서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촛불을 관통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것이 연대의 정치로서 촛불이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지 않았는지 짚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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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의 생각󰡕이 두 번째로 마련한 이 책이, 앞서 앞에서 던졌던 물음에 온전히 그리고 확정적인 해답을 제시한다고 너스레를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시도하려 했던 것은 무엇보다 어떻게든 지금 우리는 어떤 식으로 정치를 사유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더 화급하게 물어야 할 일은 정치적 정세보다 우리가 그것을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고의 정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사유하고 반성하고 있는가를 묻는 일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일은 없다고 믿는다. 우리가 이 때늦은 책에서 시도하려 했던 것도 사유의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해 마땅할 필연적인 뒤늦음, 시쳇말로 사유한다는 것의 ‘뒷북치기’를 기꺼이 떠맡으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반성하고 판단하고 있는지 윤곽을 그려보려는 작업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불가결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유의 책임을 함께 나누어 가질 필자들을 초대하였고 그들에게 우리가 던질 질문을 함께 다듬어갈 것을 부탁하였다. 󰡔당비의 생각󰡕의 뒤늦은 그리고 적잖이 삐딱한 뒷북과 공명하며 날카로운 비판과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하여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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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41A01"><b>- 당비의 생각 2번째 권의 서문으로 쓴 글</b></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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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column</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Mon, 23 Feb 2009 02:27: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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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75</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0jNN-NSHZ6w&hl=ko&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0jNN-NSHZ6w&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Neil Young - Don't let It Bring you Down</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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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41A01"><b>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br />
 미셀 푸코의 통치성과 반정치적 정치의 회로</b></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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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권력의 시인이라는 푸코의 초상</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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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눈에 부쩍 자주 띄는 푸코의 초상이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 나아가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미셀 푸코이다. 그런데 어딘지 낯설게 들리고 또 얼마간 느닷없기까지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푸코는 실존의 미학자로서의 서정적인 어느 철학자의 모습에 가깝다. 혹은 훈육사회와 미시권력의 세계를 고발한 그 어느 자유주의자보다 더 극한적인 자유주의자의 모습을 한 푸코야 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푸코의 형상에 훨씬 근접해 보인다. 그런 우리에게 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나아가 그것의 현재 형태인 신자유주의를 면밀하게 탐색하고 그것을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곤구하는 푸코는, 낯설고 또 어쩐지 어색하여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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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75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5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5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75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5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51b'));return false;"> less.. </a> 그렇지만 푸코가 1970년대 후반에 진행했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세미나들이 거의 공개되고 또 출판이 이뤄지면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또 집요하게 자유주의를 분석했던 이론가로서의 푸코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상대하고 비판할 것인가가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급한 주제로 부상한 때이기도 하다. 푸코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내가 푸코의 자유주의 세미나 3부작이라고 부를 세미나를 연속적으로 진행하였고, 이 세미나에서 이뤄진 강의와 대화가 묶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영토, 안전, 인구󰡕, 그리고 󰡔생정치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공간되었다. 이는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1976)을 출판하고 난 이후 오랜 침묵 끝에 그의 때 이른 죽음을 전후하여 나온 󰡔성의 역사󰡕 2, 3권(1984) 사이에, 과연 푸코의 관심과 작업은 무엇이었는지 헤아리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지배(domination)의 분석’으로부터 갑자기 윤리의 문제, 그 스스로 즐겨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자기의 돌봄”이란 “주체성의 계보학”에 대한 분석으로 이론적 관심을 전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답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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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푸코를 둘러싸고 흔히 퍼져있는 미신적인 혐의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혐의란 푸코가 모든 곳에 권력이 있다는 현혹적인 자신의 주장으로부터 반드시 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수행적인(performative) 효과라고 할 그 것, 즉 ‘권력의 바깥’은 없다, 누구도 그 곳에 있을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인 결론으로 인해 그 스스로 궁지에 다다르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극히 퇴행적이고 심지어 유치해보이기까지 하는 ‘실존의 미학’이란 주장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소개된 세미나 일부 자료와 인터뷰, 강의를 제외하면 오디오 테이프 형태로만 존재하던 푸코의 세미나가 마침내 출판되면서 이런 혐의는 거의 푸코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 푸코가 진행했던 세미나의 내용 가운데 일부와 그의 강연, 인터뷰 등과 그의 세미나에 참여했던 제자들의 연구 프로젝트가 영어권 독자들에 소개되기도 하고 또 책으로 묶이기도 하였다. 특히 푸코의 강의 요약 가운데 일부인 “통치성”을 비롯한 몇 편의 논문과 제자들의 글 가운데 일부가 영국의 포스트 알튀세르주의자들의 저널이었던 <이데올로기와 의식 Ideology and Consciousness> 그리고 <경제와 사회 Economy and Society>를 통해 영어권에 잇달아 소개되고 그것이 다시 묶여 책으로 출간되었다. 또 이를 주도했던 영국의 몇몇 이론가들은 “통치성 governmentality”이란 개념에서 비롯된 새로운 분석적 접근을 하나의 이론적 학파로까지 조직하게 되면서, 훗날 다수 경멸적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통치성 학파’로 불리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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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통치, 통치성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정치적 이성</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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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성이란 개념이 푸코가 진행했던 자유주의의 형성과 변모를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개념적 탐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완결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으로 규정하기엔 억지스러운 점이 있다 할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통치성은 외려 푸코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 분석을 위해 도입한 잠정적인 방법 혹은 그의 접근 방식을 요약하는 이론적인 도구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물론 푸코 스스로 언급하듯이 그가 착수했던 이론적인 기획은 통치, 통치성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현저한 변화를 겪는다. 그것은 󰡔감시와 처벌󰡕을 출간하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란 이름으로 묶인 세미나가 진행될 때까지 푸코가 지속했던 권력 분석에 일종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br />
이즈음까지 푸코의 권력에 대한 접근은 권력에 관한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권력에 관한 주권적 모델로부터 벗어나려는 끈질긴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감시와 처벌󰡕을 전후하여 푸코가 전개한 권력에 대한 ‘바깥으로부터의 사고’라는 접근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세미나를 전후하여 이른바 “니체의 가설(Nietzsche's hypothesis)” 혹은 정복과 전쟁의 모델이란 관점으로 모아진다. 푸코가 “역사-정치적 담론”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런 관점은, 주권(혹은 권리)과 법이란 관점에서 권력을 인식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리바이어던의 모델”)과도 거리를 두는 한편 권력의 기원적인 중심으로서 경제를 가정하고 계급지배란 관점에서 사고하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푸코는 “왕의 목을 자르기”라는 유명한 경구로 푸코가 표현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의 왕이란 봉건적 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군주이든 아니면 사법적으로 권리의 평등을 보장받은 근대적 시민이든 법률을 통해 코드화되고 또한 그를 통해 보장되거나 제재받는 권리의 주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왕이란 사법-정치적 담론을 압축하는, 다시 말해 권력을 사고하기 위해 언제나 선험적으로 가정되는 권력의 모델이자 정치적 주체의 이상(理想)이라 할 수 있다. <br />
그리고 푸코는 기울 권력(disciplinary power)과 “정상화(규격화) 사회(society of normalization)”란 모델에 따라 사법-정치적 담론이 가정하는 주권적인 권력/주체의 모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였다. 그는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사회는 시민의 권리를 성문화, 조직화하는 법률적인 코드와 사회적 신체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훈육 메커니즘을 결합사킨, “주권적 권력”과 “훈육적 권력의 복합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즈음 푸코의 입장은 렘케같은 이가 지적하듯이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그에 바탕한 권력 모델을 단순히 뒤집은 것, 혹은 그것의 반사적인 역상 속에서 권력을 사고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통치(성)이란 관점에 서면서 푸코는 이런 모델과도 결별할 수 있는 이론적 전환을 이룰 수 있게 된다. <br />
통치(government)란 개념은 자유주의의 등장을 이해하는 데 관건적일 뿐 아니라 푸코의 권력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통치는 앞서 간단히 말하였듯이 사법-정치적 담론에 속박된 권력론으로부터 거리를 둘 뿐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였던 훈육 권력이란 담론으로부터도 역시 벗어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통치란 개념은 자유주의의 역사적 변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 통치란 권력의 전략적 게임과 지배(domincation)이란 권력의 작용을 둘러싼 성층적인 형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아울러 사법적-주권적 권력과 훈육 권력과 경합하거나 혹은 그것을 흡수하고 변형시키면서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자유주의적 지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차지한다. 푸코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을 세 가지의 성층적인 형태의 도식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 때 기존에 미시권력이라고 불렸던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권력의 작용을 전략적 게임이라고 풀이한다. 개인이 관계 맺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들)이든, 아니면 기관, 제도, 기업같은 것이든 그 무엇이든 인간관계 안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힘의 관계를 푸코는 전략적 게임이라고 부른다. 반면 그것이 상대적으로 경직되고 또 고정되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 항들 사이에 비가역적인 관계가 수립될 때 푸코는 이를 ‘지배’라고 부르고 이것이 우리가 흔히 권력이라 일컫는 그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푸코는 ‘통치’(혹은 통치 테크놀로지)를 이 사이에 놓는다. <br />
그렇다면 통치란 무엇일까. 여기에서 통치성이란 개념은 통치가 차지하는 푸코의 권력 분석 안에서의 위치를 가늠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의 역사적 특성을 분별하는 데 결적인 역할을 한다. 통치성(governmentality)이란 개념은 푸코 스스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그것은 그 용어 자체가 보여주듯이 통치(govern/gourvener)와 사고양식(mentality/mentalite)란 두 가지 낱말을 결합한 것이다. 굳이 요약하자면 특정한 사고양식을 통한 통치를 가리킬 것이고 푸코 자신의 간결한 정의를 쫓자면 행동방식 혹은 행실에 대한 통솔(conduct of conduct)을 통한 권력의 작용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는 정치 이성(political reason),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 혹은 통치 합리성(governmental rationality)같은 개념들과 맞바꿔 쓸 수 있고 푸코는 자신의 강의와 글에서 이러한 개념들을 혼용하여 쓰고 있기도 하다. <br />
통치성이란 개념을 통해 푸코는 크게 두 가지의 차원을 겹쳐놓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주체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지식과 권력은 권력이 행사되고 작용하는 표면, 즉 그 대상을 구성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장치, 절차, 계산의 형식 등을 두루 망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매우 특정하면서도 복합적인 형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 과정, 분석과 반성, 계산과 전술들로 구성되는 전체(ensemble). 이러한 권력의 표적은 인구이며, 그 중요한 지식의 형태는 정치경제학이고 또한 그 본질적인 기술적인 수단은 안전기구들이다.”라고 푸코가 말할 때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푸코는 근대 사회의 통치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테크놀로지로서 안전기구(apparus of security), 그것이 작용하는 대상으로서 생물학적인 종으로서 다시 말해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욕망(desire)을 실현하고 보장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human species) 즉 인구, 그리고 이를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지식의 형태로서 정치경제학을 꼽는다.<br />
다음으로 우리는 통치성을 주체화의 원리, 혹은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윤리, 개인이 자신을 권력에 예속된 주체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변형하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살아가도록 이끄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을 푸코는 통치하다는 것(governing)이 엄밀하게 가리키는 바로 정의하면서 상당히 꼼꼼하게 분석을 시도한다. 이것은 바로 히브리적인 전통에서 비롯되어 중세의 기독교적 서구를 경유하고 다시 근대 국가에서 통치란 형태로 변용된, 사목권력(pastoral power)이다. 이는 군주와 신민이란 관계를 목자-양떼란 관계와 결합시키면서 개인, 가족, 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삶의 현실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특히 푸코는 사목권력이 훗날 국가에 의한 통치, 그가 경제적 통치, 정치적 통치, 혹은 줄여 그냥 통치라고 부를, 국가를 통한 권력의 작용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도시, 영토, 주권’같은 지고한 대상이 아니라 다수적 삶, 그가 ‘전부이면서 각자(all and each/omnes et singulatim)’라고 부르는 대상을 상정하고 또 그에 적합한 지식과 기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br />
한편 이런 점에서 푸코가 통치성을 통치 합리성 혹은 정치 이성으로서 분절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것이 거칠게 말해 근대 국가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16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에서 형성된 절대주의 국가에서의 “국가이성(raison d'Etat/ratio status/the reason of state)”과 그것을 실현하는 장치로서 “행정관리(police)”에 대한 분석이다. 국가이성이란 기존에 국가가 권력을 행사할 때 의존하던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원리나 이상(이를테면 천국의 지복, 내세에서의 구원 등)과 단절하여 국가가 자기의식적으로 자신의 힘이 작용하는 대상을 분별, 조사, 관찰, 반성하면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정의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권력 행사 방식 혹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학, 지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마침내 국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추론(reasoning)을 통해 혹은 합리성(rationality)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br />
한편 이는 중세의 봉건적 군주나 초기 절대주의 국가가 상정했던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려는 기술, 이를테면 영토와 부(wealth)의 관리를 위해 행사하던 테크놀로지와는 전연 다른 새로운 것을 고안한다. 이것이 행정, 관리, 국책(國策) 등으로 부를 수 있을 폴리스(police)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이면서 동시에 인구인 대상을 지배하기 위해 발달한 폴리스에 관한 과학(Polizeiwissenshaft)은 푸코가 꾸준히 강조하듯이 전체화하면서(totalizing)하면서 동시에 개인화하는(individualizing) 권력으로서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건강, 장수, 안전, 행복 등을 비롯한 다양한 목표를 위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 즉 인구를 돌보는 국가는 바로 행정관리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br />
그런데 푸코는 국가이성이 한계에 부딪치며 18세기를 전후하여 새로운 통치성이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훗날 자유주의라고 부르게 될 정치적 합리성으로의 전환이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이성이 가진 목표, 즉 국가와 그것의 부의 증대를 “사회”와 그것의 경제적 진보라는 목표로 대체하는 새로운 통치성이라 할 수 있다. 푸코는 이런 통치성의 등장을 선도하고 조직한 것이 중농주의자로 대표되는 정치경제학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푸코는 “국가이성은 새롭게 부상하던 영역인 경제에 의해 개조되었으며, 경제 이성(economic reason)은 국가이성을 대체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합리성에 새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태를 제공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경제학을 통해 마련된 통치성의 핵심적인 특성을 푸코는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br />
하나는 “자연스러움(naturalness)”의 대상으로서 “사회”가 고안되고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가정인 사회, 시민사회 대 국가란 이분법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국가는 시민사회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며 국가는 또한 그 시민사회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중상주의가 상정하는 교환(exchange)이란 관점에서 파악된 부가 아니라 생산하고 소비하며 그를 통해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이루는 인구들의 삶, 즉 사회를 상대하게 된다. 두 번째로 이러한 자연스러움으로서의 사회라는 가정으로부터 통치성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지식과 권력의 관계 역시 변용되지 않을 수 없음을 푸코는 지적한다. 이제 좋은 통치를 위해 국가는 국가이성에서와 같이 외교적인 계산이나 역학관계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자연적 대상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으로부터 과학적 지식을 뽑아내게 된다. 그리하여 통치 기예와 지식은 세부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세 번째의 것, 인구란 관점에서의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지게 된다. 국가이성이 인구란 관념을 끌어들이고 이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양적 다수, 머리 숫자로만 고려된 것이었다. 국가이성에 이끌렸던 중상주의적 국가에서 관심은 군주의 부를 좌우하는 것이 인구의 숫자, 그리고 그것의 일과 순종성(docility)이었기 때문에  절대적 가치를 지닌 상품과 수량화할 수 있는 부였다면 새로운 통치성 즉 자유주의는 최대의 가치가 아니라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은 최적의 가치, 균형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br />
네 번째는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이 변화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새로운 통치성이 가진 전제는 국가이성에서처럼 군주 혹은 국가의 의지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대상으로서의 사회의 운동을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단순히 규칙이나 규제를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국가의 개입 방식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하여 푸코는 다섯 번째로 자유주의가 문자 그대로 자유(liberty)에 기반을 둔 통치라고 할 수 있게 하는 그것, 즉 좋은 통치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란 점을 꼽는다. 이는 중농주의자들이 인구란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의 전체처럼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모두가 하나의 행위의 동인(mainspring), 즉 “욕망(desire)”을 통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구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규제나 명령이 아닌 바로 이런 욕망의 법칙, 즉 정치경제학이 상대하는 경제적 인간 혹은 욕망을 쫓으며 살아가는 개별적이면서도 또한 전체인 인구=시민이 가진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지 않을 수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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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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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인가 사회주의적 통치성인가 혹은 그것이 아니라면 </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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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유주의적 통치성이 등장한 이후 그것은 어떤 변천을 겪어왔을까. 푸코가 󰡔영토, 안전, 인구󰡕 이후에 진행한 󰡔생정치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둔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특히 푸코는 제3공화국, 나치즘의 등장을 전후하여 독일에서 등장한 프라이부르크 학파, 혹은 그들이 발간했던 저널의 이름을 따서 질서자유주의자(the Ordo-liberals)라고 불리는 초기의 신자유주의와 우리가 흔히 시카고 학파라고 부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분절을 시도한다. 여기에서 이를 상세하게 소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서는 푸코의 분석을 참조하면서 극히 간략하게 신자유주의가 기존의 자유주의의 ‘실패’를 어떻게 표상하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새로운 통치성을 고안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br />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설명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 가운데 하나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사회적 신체의 지형학(topography of social body)을 생각해 보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앞에서 간단히 지적했듯이 자유주의의 정치적 합리성의 핵심적인 특징은 경제적 삶의 세계와 거의 동일한 것이라고 할 ‘사회(the social)’를 고안하고 이를 국가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와 국가의 관계, 나아가 경제 혹은 시장과 사회, 국가의 관계는 근대적 통치성, 자유주의가 변용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 있어 관건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푸코가 신자유주의로 꼽는 질서자유주의와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변형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과 국가, 나아가 경제, 사회, 국가라는 항들을 어떻게 설정하고 또 각각을 어떻게 분절하고 연관시키는가를 보면서 푸코가 시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분석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br />
질서자유주의는 독일적 문제인 나치즘이라는 국가사회주의에서 출발하여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정초한다. 푸코가 흥미롭게 설명하듯이 “자본주의의 비합리적 합리성”이란 베버주의적 질문에서 출발한 두 가지의 베버주의적 경향 혹은 학파가 있다. 그것은 먼저 질서자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양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비합리성을 폐절할 수 있는(nullifying) ‘사회적 합리성’을 모색하려 했던 반면,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사회적 비합리성을 폐절할 수 있는 경제적 합리성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동일한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였지만 정반대의 해결책을 찾아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전개하면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국가를 조망하고 분석하는 매우 독특한 관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질서자유주의가 제시했던 자유주의를 재구성하는 틀 혹은 정식은 지금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들이 정식화한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질문, 즉 국가의 지나친 성장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br />
나치즘 그리고 그것에 조응하는 현상이라고 할 케인즈주의, 소비에트사회주의, 심지어 자유주의의 원산지인 영국에서의 베버리지 계획(Beveridge plan)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자본주의적 체제의 시도를 대조하고 이를 독일적 문제인 나치즘에 대응시키면서 질서자유주의는 기왕의 자유주의가 지닌 “소박한 자연주의(naive naturalism)”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았다. 푸코는 이를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자유질서주의자들의 비판을 통해 압축적으로 설명하는데 자유방임주의의 핵심적인 주장은 시장 경제에 내재한 자연적 법칙이 있고 국가는 그것에 가능한 간섭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실패하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을 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질서자유주의자는 그런 자연적 대상으로서의 시장 혹은 경제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정치적 조절을 통해 창출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질서자유주의자들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요체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와 사회 혹은 국가가 대립적인 항으로서 상정하고 전자를 자연화시키면서 어떤 내재적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길 거부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적 선택과 행위, 특히 제도나 정책과 같은 것을 통해 다양한 자본주의적 ‘질서’가 역사적, 우연적으로 존재할 따름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을 질서자유주의자로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자본주의 법칙 혹은 논리란 인식을 대신하여 정치적 선택의 소산으로서의 질서란 관점을 택하기 때문이다. <br />
그렇다면 미국발 신자유주의는 질서자유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이는 역시 사회와 국가 혹은 (시장)경제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표상하고 둘 사이를 관계지우는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질서자유주의자들 가운데 대표적 이론가 가운데 한 명인 뤼스토우(Alexander Rüstow)가 제안한 “생명정책(정치)(Vitalpolitik)”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사회의 모든 단위, 그것이 개인, 가족이든 아니면 이웃공동체같은 지역사회이든 모두를 기업체(enterprise)로 가정하고 사회가 경제의 이름 안에서 통치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을 일컫는다. 여기에서 상기되듯이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영역과 경제를 구분하고 전자를 후자의 원리(경쟁)에 관점에 따라 구성하고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한다. 이를 질서자유주의들은 사회정책(social policy)라고 부른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듣는 경구, 이를테면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을 짜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접근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경쟁’이란 경제적 원리에 따라 ‘사회’를 관리하고 그를 위해 사회적 삶의 세계를 모두 기업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대상처럼 다루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 평등한 불평등(inequality equal for all)이란 질서자유주의자의 핵심적인 명제가 압축적으로 반향 하는 것이기도 하다. <br />
그러나 질서자유주의자들의 문하생이었던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흡족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방금 말했던 사회와 경제 사이의 구분을 거부한다. 그들은 사회적 삶의 세계가 곧 경제적인 삶의 세계이며 사회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활동을 경제적 행위로서 받아들여야 함을 역설한다. 푸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게리 백커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범죄에 관한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다룬다. 그러나 푸코의 미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굳이 상세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것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제개발계획이라는 개발독재 기간 동안 한국 경제를 주도했던 국가의 경제적 개입 방식이 종결되고 국가인적자원개발계획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경제기획원같은 부처를 대신하여 지식경제부같은 부처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을 때, 학교사회에 속박된 획일적인 학생이 아니라 자기 학습권을 행사하며 자기주도적인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육정책이 들어설 때, 실업(자) 대신에 고용가능성(employability)란 담론이 대신할 때, 근로자나 종업원이란 말 대신에 역량을 갖춘 인재란 용어가 그 자리를 메울 때, 소득의 분배를 통해 자기의 경제적 생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재태크’를 통해 자신의 경제적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할 때, 이력서가 아니라 스펙을 완비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 이 모두는 미국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어떻게 구체적인 지식, 제도, 정책, 법률, 행위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직접적인 경제적 삶의 세계는 물론 교육, 보건, 복지와 같은 종래 사회적 삶의 세계로 생각되었던 영역을 모두 기업화(enterprising)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활동하고 살아가는 주체를 기업가적 주체(entrepreneur) 혹은 기업가적 정신(entrepreneurial spirit)에 따라 살아가는 개인, 집단, 조직, 사회체로 주체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와 사회 사이에 놓인 거리는 사라진다. <br />
우리는 지금까지 푸코가 자신의 오랜 권력 분석의 기획을 통치성에 관한 분석, 그 가운데서도 자유주의에 관한 분석으로 전환하며 권력의 테크놀로지와 주체화의 윤리, 그리고 이를 구성하고 중재하는 지식의 관계를 탐색한 푸코의 이론적 궤적을 극히 간략하게 짚어보았다. 이러한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으로부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난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얻을 수 있는 이론적 정치적 교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를 특정한 이념이나 좁은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로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고전파경제학이나 합리적 선택론이나 게임이론, 위험관리론 같은 다양한 ‘학술적’ 담론을 망라하고 심지어는 일상생활에서의 자기계발 담론과 그에 연관된 구체적인 언어적 생태계를 포괄한다. 그러나 이렇게 신자유주의를 단정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신자유주의가 제출하는 편향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염된 현실에 대한 표상을 넘어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제출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br />
한편 두 번째의 함정 역시 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를 언제부턴가의 역사적 시점부터 조성된 객관적이고 불가역적인 현실로서 사고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화이든 아니면 자본의 고삐풀린 움직임이든 혹은 20 대 80의 세계이든, 신자유주의를 이러한 맹목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으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이런 잘못을 바로잡는 즉 더 많은 사회적 연대의 가치, 더 많은 공공성, 더 많은 국가의 개입 같은 것에 머물고 말 것이다. 물론 이는 희극적인 결과를 낳기 일쑤이다. 이를테면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악몽을 물리칠 수 있는 유력한 진보적 대안으로 널리 선전되었고 급기야 그를 주도했던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까지 만들었던 ‘4조2교대 일자리 나누기’라는 캠페인을 생각해보자. 이는 마치 신자유주의적 폐단을 극복할 대안처럼 여겨졌지만 그것은 노동자의 자기책임부여와 권한강화를 통해 생산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실천의 한 갈래 일 뿐이다. 이는 이른바 사회운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90년대 이후 활약했던 한국의 소문난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공공성의 기치 아래 벌여온 일들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협치(governance)’, 국가가 시민사회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이를 자율화시킴으로써 시민사회가 자기 스스로 책임을 부여받고 자신의 문제를 관리하게 하는 새로운 통치 전략과 기술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아름다운재단’같은 시민사회운동단체야말로 가장 탁월한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구성하는 직물의 한 씨줄인 셈이다. <br />
이런 점에서 푸코의 자유주의 분석, 정치적 합리성의 계보적 분석은 신자유주의의 정치학을 비판적으로 분절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준다. 그것은 관념이나 지식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경험적이고 실정적인 현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라 통치가능한(governable) 혹은 지배할 있는 현실을 구성하고 그와 관계 맺는 주체의 행위의 조건 혹은 행위 방식을 유도하고 평가하며 보상하는 지식과 테크놀로지, 윤리의 복합적인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를 가리키는 이름은 통치성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란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혹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통치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미테랑 정권의 등장을 전후하여 푸코가 개탄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라 할 만한 것을 고안하고 구상하는 데 착수해야 할까. 그러나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그러나 거의 믿기 어려우리만치 실종하여 버린 희귀한 정치적 사태를 생각해 보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br />
미국산 수입쇠고기를 둘러싼 검역 문제에서 출발한 이른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는 어쩌면 푸코의 통치성의 정치를 둘러싼 의구를 풀어볼 수 있는 제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법-정치적 문제설정 혹은 주권 담론의 주술적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생정치적 주체를 통한 변혁의 전망을 내세우는 푸코의 끈질긴 주장을 되짚어 보는 데 아주 의미심장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우리는 촛불 시위에서 두 개의 대립적인 혹은 그것이 지나친 것이라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하나의 정치적 주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며 “헌법1조가”를 부른 사법적-주권적 주체이자 동시에 시민의 생명과 안녕을 보호하고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인구-주민으로서의 주체이다. 물론 이 두 주체는 동일한 공간에서 출현하였고 어쩌면 둘은 다르지 않은 인격체 속에 깃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전연 다른 주체의 모습이다. 이는 사회적 삶의 운명 속에 살아가는 계급 혹은 주민과 어떤 사회적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 문자 그대로의 엄밀한 의미에서 무조건적으로 평등을 주장하는 인민 혹은 민중이라는 두 가지의 이질적인 정치적 주체이다. 그렇기에 푸코보다 더 푸코적인 자크 동즐로로의 표현, “주권을 가지고서 혁명을 할 수 있지만 하나의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는 유려하고 충격적인 단언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회를 끝낼 수 있는 혁명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실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끈 그 결렬의 순간, 그 심연을 알 수 없는 공백이 더 결정적인 것 아닐까. 이를테면 동즐로 스스로 서술하듯이 프랑스 민주주의 혁명이 만들어낸 견딜 수 없는 민주주의적 평등을 자본주의 ‘사회’의 체계 속으로 길들이기 위하여 사회의 형성과 관리로 정치를 환원하는 것, 정의와 행복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정치를 안녕과 진보란 목표 속에 유폐시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일 아닐까. <br />
그렇다면 푸코가 말한 사회주의적 통치성이란 것도 혹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이후의 통치성이란 것도 결국은 푸코의 통치성이란 기획 속에서는 결국 발원할 수 없는 무엇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가 근대 국가의 계보학이란 이름으로 진행한 장기적인 이론적인 기획은 놀랍게도 권력의 분석이란 이름 아래에서 권력의 영도(零度)를 끊임없이 회피하려는 몸짓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 권력의 영도는 인민과 인구 사이에 구분이 사라지는, 푸코의 표현을 다시 빌자면 생정치적 주체와 주권적 주체가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희귀한 정치적 계기를 가리킨다. 물론 이를 우리는 투박하게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혹은 바디우같은 철학자의 시정적인 표현을 빌어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빵과 토지를 달라는 사회적 요구는 평등한 세계를 달라는 정치적 주장과 떼어놓을 수 없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 없이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푸코는 이 둘 사이의 거리를 가능한 멀리 벌여 놓는다. 그것은 혁명이라는 광란적 사태, 민주주의라는 미증유의 계기가 삭제된 즉 ‘본연의 정치’가 없는 정치의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푸코를 기꺼이 반정치적 정치의 이론가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br />
그렇지만 그것을 푸코의 이론적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푸코로 인하여 우리는 거꾸로 다시금 민주주의적 정치의 근본적인 아포리아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에 관한 급진적 사유를 이끄는 주요한 사상가들이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푸코와의 거리 속에서 사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랑시에르의 불화의 정치학은 푸코의 ‘행정관리(police)’란 개념을 정치의 존재론으로 사고함으로써 출발하지 않던가. 발리바르의 자유-평등의 정치학은 정치의 타율성을 사고한 마르크스-푸코의 짝으로부터 정치의 자율성과 정치의 타율성의 타율성을 준별하는 작업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하물며 바디우는 어떠한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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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문화과학 2009년 봄 호에 기고한 글의 초안. </b></div>]]></description>
<category>articles</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Sat, 14 Feb 2009 10:03: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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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自祝</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73</link>
<description><![CDATA[ <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www.homopop.org/log/attach/0204/090204010442661798/547197.jpg width="450" height="599"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www.homopop.org/log/image_pop.php?imagefile=attach/0204/090204010442661798/547197.jpg&width=700&height=932','','width=716,height=600,scrollbars=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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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여기에 들른 이들은 다들 알 일일 것이다. 이럴 때 쓰라고 따로 떼어 만들어 놓은 말, 외람이란 말이 딱 맞아떨어질, 책 한 권을 외람되게 세상에 내놓았다. 다시 세상에 내놓을 책을 위해 나는 바깥에 있었고, 임자가 없는 동안에 책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을 찾았던 모양이다. 오늘 마침내 나는 책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십년이 넘게 책을 내지 않던 게으른 저자로서의 책임을 면하게 된,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어떤 면피가 될 수 있는 책이 손 안에 쥐어졌다. 디자인 문화를 다룬 이 책 서문에서 고백하듯이 그 분야에 있는 분들에게 더없이 까칠하고 또 어떤 독자가 전해 준 말처럼 불온하겠지만, 또한 그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충정이라고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는 디자이너란 일을 하는 이와 각별한 인연에 있었고(그는 최근에 어떤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의 특별판 디자인에 참여했다. 나는 아직도 그 책을 보지 못했다. 그가 이만큼 세상으로 부터 대접받으며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은 대견한 일이다), 또 어쩌면 그런 일에 얽힌 이들과 계속 아주 사적으로 대면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나의 속절없는 혐오와 환멸, 그리고 그들이 해낸 일에 대한 감탄과 애정은 여전할 것이다.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문화에 대한 내 기분은 책 제목처럼 항시 우울할 것이다. 이런 멜랑콜리아로부터 벗어나는 디자인과 조우할 일은 새로운 정치적 세계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디자인보다는 그를 조율하는 정치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흔히 말하는 현실정치와 관련 없다는 일은 다들 알 것이다.]]></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Wed, 04 Feb 2009 01:04:42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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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訃告</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72</link>
<description><![CDATA[ <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www.homopop.org/log/attach/1225/081225073022900508/895410.jpg width="500" height="334"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www.homopop.org/log/image_pop.php?imagefile=attach/1225/081225073022900508/895410.jpg&width=655&height=437','','width=655,height=437,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믹스라이스, 접시모양의 도시 내에 있는 접시안테나. 경기도 마석. 2008</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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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또 뜻하지 않은 부고를 받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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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건설자본 배불리고 서민들의 주거 짓밟는 살인정권 규탄한다!<br />
- 살인진압 책임지고 경찰청장과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라!<br />
- 도시서민 다 죽이는 도시개발정책 중단하라!</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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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곳을 지나쳤을 텐데, 나는 한 번도 그것에 주의한 적도 상상한 적이 없다. 한 없이 부끄럽다. 그렇지만,  이 죽음에 결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br />
<br />
가자에서의 집단살육을 뻔히 접하면서도, 시시콜콜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도착한 죽음과 폭력의 공포를 눈과 귀로 집어넣으면서도, 내내 무력하게 마치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지사인 것처럼, 부동자세인 채 세계는 멎어있는 기분이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투쟁하는 세계의 冬眠을 더 견뎌야 한다면, 과연 어떤 인내와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과연 내가, 혹은 지금 누구를 그 자리에 세워야할지 막연하기만 한 그 누구로 세워진 "우리"가 지금을 견뎌내고, 그 자리에 마침내 이를 수 있을까. "역사"가 있었던 벨 에포크를 통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그 시대에게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러나 나는 그 시대가 빚어낸 이 요령부득의 후과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지척에, 우리가 손을 대면 곧 만져질 것처럼, 실감나던 "세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그런 세계에의 감각을 주조하는데 오직 기여할 뿐인,  이 형편없는 우리의 언어는, 사고의 능력은 또 무엇인가. <br />
<br />
미네르바에게 현실을 내다볼 현인의 자리를 양보한 모든 말께나 한다는 자들은 언젠가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hu, 25 Dec 2008 07:30: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祝 聖誕</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71</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yfPsW66wA9s&hl=ko&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yfPsW66wA9s&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My Morning Jacket - X Mas Curtain</center><br />
<br />
<b><font color="#008000">여기에 기숙했던, 혹은, 경유했던 모든 이들에게</font><br />
<font color="#D41A01">祝 聖誕~~</font><br />
<font color="#008000">자축하자며, 한 곡 띄웁니다. 즐겨주시압~</font></b><br />
<br />
hey! The Christmas curtain falls on lawbreakers <br />
that pave the way for thoughtless folks like me and j who'd pay, <br />
but cant afford the finer things in life so we heist them all.. <br />
we're criminals that never break the law! <br />
So, to all you frowns go down to town square and <br />
get some action, from the xmas girl that lives inside your womb. <br />
She's always there I think that im certain, <br />
you pay to get behind her Christmas curtain.<br />
you're the criminal that never breaks the law!]]></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ue, 23 Dec 2008 14:09:5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신자유주의와 미술의 검은 무도회에서 퇴장하기 위한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70</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TS9_ipu9GKw&hl=en&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TS9_ipu9GKw&hl=en&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Creedence Clearwater Revival, Have you ever seen the rain?</b></center><br />
<br />
일전 어느 미술 관련한 토론회에서 들은 말이다. 꽤나 유명한 대안미술관을 운영하던 그 사람은 단호하게 현대미술의 트렌드를 열거하면서 지난 10년간 현대미술의 핵심적 변화 가운데 하나로 미술의 금융화를 단호하게 꼽았다. 그가 말한 미술의 금융화란 미술이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방식과 경로가 더 이상 미술관을 비롯한 공공기관 혹은 개인 수집가들이 소장하거나 전시하기를 위한 것에 머물지 않고 효과적인 금융상품으로서 즉 투자 대상으로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런 움직임이 1980년대 이후 서구 미술에서 아방가르드적인 혹은 유사 아방가르드적인 미술운동이 소멸하면서 등장한 이런저런 움직임과 깊이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 young British artist)’나 ‘중국 현대미술’ 열풍은 물론 금융세계화라는 경제체제의 논리가 맹위를 떨치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어쨌거나 ‘아트펀드’와 같은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지고 단기적인 투자이익을 기대하며 미술작품을 대하는 것이 21세기 초반의 미술제도를 정의하는 중요한 징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요즈막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의 파산이나 그를 뒤이어 주요 거대 은행의 파산 위기를 대하다 보면 또한 금융화된 미술-상품의 처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물론 나는 금융화한 미술시장의 붕괴라는 시나리오를 예상하려는 것은 아니다. 외려 우리가 생각해야 볼 것은 미술시장의 미래가 아니라 금융화한 미술이 연루된 미술체제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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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70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0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0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70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0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701b'));return false;"> less.. </a> 신자유주의는 산만하고 애매한 용어이다. 신자유주의란 신장개업한 자유주의적 이념 혹은 지적인 이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고 또 197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난 정치적 관리 모델의 변화를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공적인 부조를 삭감하며 시장을 통한 조정으로 경제 질서를 관리하는 등의 경험적 현실을 서술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 나아가 미적 현실(aesthetic reality)과 신자예유주의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정치적 현실이나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신자유주의란 개념은 어떤 변경을 가하지 않으면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런 연유로,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일러 사용했던 표현을 빌려 써, 신자유주의를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혹은 미적 논리”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자유주의를 생각하려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 취급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를 변화된 자본주의가 현실을 표상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식과 체험의 원리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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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나아가 그것의 미적인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무엇보다 그것은 아서 단토같은 사이비 헤겔주의적 미술이론가가 떠들어대는 “미술의 종말”이란 단언으로부터 미술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사유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미술의 종말이란 거칠게 말해 아방가르드적인 미술 다른 말로 하자면 지성적인 행위로서의 미술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음을 떠들썩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미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을 말할 때, 그것은 미술이라는 감성적인 실천이 미술 안팎의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통해 변혁이나 해방같은 이상을 꿈꿀 필요가 없는 미술, 즉 이제 지성적인 규범(전위, 새로움, 삶과 예술의 일치 등)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은 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혹은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는 미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따를 때 놀라운 점은 더 이상 그것이 미술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외려 그것은 미술의 종말을 외칠 필요조차 없는 미술의 소멸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근대 사회에서 예술 나아가 미술이 제의적이고 장식적인 기능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를 미술로 명명할 수 있는 자율적인 행위가 될 때, 그것은 무엇보다 감성적인 것을 통해 지성적인 행위를 한다는 조건을 따를 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근대 미술의 지나간 유행이 아니라, 실은 근대 사회에서 미술이 존립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방가르드란 유령으로부터 해방되어 미술이 미술다워질 때 잃는 것은 미술 자체일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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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종말’ 버전 따위가 이야기하는 그 것, 즉 미술이 그간 짊어졌던 지성적인 짐으로부터 벗어남이 후쿠야마 식의 역사의 종말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미술을 혹은 미술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전유하는지 이해하는데 관건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다른 세계가 없다는 폐소공포증적인 협박이라면 그것은 또한 전지구적인 미술체제를 통해 다양한 미술적인 실천을 규제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다. 가장 구체적인 예로 우리는 미술가의 사회적 정체성 혹은 작가의 페르소나를 규정하는 새로운 언어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20년간 미술 교육에서 거의 관례처럼 강조된 것은 바로 ‘포트폴리오’의 제작과 작가로서 자기 서사를 구성하라는 끈덕진 압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돌보고 책임지며 나아가 홍보하고 광고하는 예술가, 즉 기업가(entrepreneur)화된 예술가의 형상은 매우 독특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유파, 스타일, 정치적 그룹 등에 속해 있는가 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브랜드화된 페르소나”가 출현하고 그것이 기존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대체하는 것은 분명 현대 미술 제도에서의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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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 자체를 상품으로서 판매하는, 신자유주의를 경제적 행위의 논리로 번역하는 자동언어기계라고 할 신경영담론의 표현을 빌자면, 비가시성의 경제 혹은 기호와 상징의 경제는, 미술과 상품 사이의 경계를 한층 좁혀놓거나 아니면 숫제 그 거리를 삭제한다. 미술작품이 별개의 대상으로 취급된다고 해도 미술과 다른 비예술적 상품 사이의 거리는 디자이너의 미적인 아이디어와 감성이 투여된 브랜드 상품과 보통의 상품들 사이에 놓인 거리와 일치한다. 즉 미술작품과 디자이너 브랜드의 상품(물론 그렇지 않은 상품을 찾기란 이젠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 되었다)은 논리적으로 일치하고, 이는 신자유주의적인 전시의 현상학이라 할 만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적인 미술 이벤트가 글로벌한 브랜드의 광고와 과연 무엇이 다르겠는가. 설령 그것이 지역성과 정체성, 차이의 정치를 내세운다 해도 이를 규제하는 자본의 보편성 앞에서 농담에 그치고 말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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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술 안에서 신자유주의를 돌파할 길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물론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인 미학’이라는 유령과 씨름한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미적인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깨우침을 얻을 때 그 ‘미적 충격’은 언제나 ‘지성적 반성’을 대신하는 것이거나 혹은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지성적인 반성은 미술의 예..편에서 나오기는커녕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삶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극히 슬픈 일이지만 그 정치적 삶은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미술의 편 안에서 스스로에게 신자유주의적인 타락을 추궁하는 것은 그저 자학에 불과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적인 미술체제로부터 미술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미술 내부가 아니라 모든 사회적 삶의 연관을 찢고 나오는 사건에서 비롯될 뿐이다. 그 사건의 이름이 무엇일지 우리는 모를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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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F의 전시도록을 위해 기고한 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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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escription>
<category>column</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hu, 11 Dec 2008 12:41: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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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스몰타운 보이</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69</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U7-q1WRaKNg&hl=en&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U7-q1WRaKNg&hl=en&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The Bronski Beat, Smalltown Boy</b></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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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소년이 살았는데, 그 아이의 사랑을 아이들은 조롱하였으며, 부모님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미워하였습니다. 지금 역전에서 소년은 뺨을 후려치는 비바람을 맞으며 가방을 들고 서있습니다. 소년이여, 울어라, 그리고 떠나라, 돌아오지 마라, 뭐 이런 사연의 노래일 터인데, 지금은 명예의 전당에나 어울리는 늙은 가수가 되어버린 지미 솜머빌의 노래에, 시쳇말로, 다 늦게 꽂혔다. 아침저녁으로 몇번씩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Outrage란 게이운동조직에서 나름 전투적으로 활동했던 이 투사 겸 뮤지션에게, 복 있을진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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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엔 장갑을 잃어버렸고, 지난주엔 아이팟을 잃어버렸으며, 그 지난주엔 목도리를 잃었다. 그 언젠가 전엔 마음을 잃어버렸으니, 그것을 모두 더하면, 실은, 잃은 게 없는 셈이다. 잃은 것을 애석해할 서글프고 찝찝한 기분을 집어넣을 마음이 바닥났으니, 잃어도 잃을 것이 없다. 그리고 더 잃더라도, 더 자주, 더 많이 잃더라도, 나는 병신처럼 웃고 말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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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69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9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9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69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9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91b'));return false;"> less.. </a> 러시 앤 캐시인지 푸시 앤 매시인지 하는 고리대금업자(어디 한 둘이랴, 둘러보라, 그들의 검붉은 촉수가 지천에서 펄럭인다)의 침도 안 바른 꾀임 아래로, 뉘도 대출해 주지 않을, 빚진 적 없을, 눈 먼 사내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도시락같이 생긴 뮤직박스를 부여잡고 걸어온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징글징글한 어메이징 그레이스, 그 자비와 긍휼의 멜로디가 지하철을 울려 퍼지고, 다들 눈 감고, 귀 막은 밀랍인형처럼, 미동도 않는다. 그저 오이도행 4호선 열차를 타고 어느 공장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 분명한, 싸구려 트렁크를 단호하게 거머쥔 이주노동자 한 명 만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볼 뿐이다. 이 전철을 타고 다닌 지 벌써 1년 반, 총신대입구역에서 인덕원까지 향하는 길은, 가끔 지옥으로 가는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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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절대적으로 고독하지 않으므로, 실은 그건 고독도 아니야, 어쨌든 절대적이어야 해, 그래야 내가 중한지, 얼마나 귀중했는지 알지, 너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그치? 고독을 지켜보는 컴컴한 어둠이 내게 건네는 말. 하긴 맞는 말이지, 라고 수긍한다. 저 사람들 틈 속에서, 저 춤추는 이들 속에서, 저 술마시고 떠드는 자들 사이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주리를 트는 저 가라오케 속의 낯들 가운데서, 언제나 두둥실 고독이 떠다닌다. 고독한 냄새가 자욱해 코 막고 자리를 뜬다. 어쩌면 그 나마 평등하게 나눠 갖는 것이 한 가지 있어, 그게 고독이라니, 참으로 개좆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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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신춘문예로 가슴 뛰던 소년은 어디 가서 뒈졌는지 흔적도 없고, 난 코를 박고 올 해의 베스트 앨범을 꼽는 웹사이트들을 뒤지며 내가 빠트린 앨범을 발견하고 분개하며 자기가 으스대며 비호했던 뮤지션이 선정된 것을 자축하며 밤 새 솔식을 돌리느라 바쁘다. 이렇게 날밤을 까며, 모은 음악들을 들어서 어쩌자는 건지, 이 파라노이드의 12월의 밤은 뜨겁고 분주하다. 산타보다 바쁘다.</div>]]></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hu, 11 Dec 2008 01:06:4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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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민중미술 이후: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와 미술의 정치</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68</link>
<description><![CDATA[ <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www.homopop.org/log/attach/1024/081024023556048747/056878.jpg width="500" height="329"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www.homopop.org/log/image_pop.php?imagefile=attach/1024/081024023556048747/056878.jpg&width=667&height=439','','width=667,height=439,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최진욱, 미래가 없는 자에게 과거란 무슨 의미인가? <br />
130x194  Oil on Canvas  2008</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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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민중미술 이후> 살롱을 닫으며</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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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이후>란 제목의 살롱을 열며, 나는 몇 가지 질문들을 캐묻고자 마음먹었다. 그것은 살롱을 진행하는 동안 모든 대담자에게 던져진 질문이자 내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고자 했던 답변들의 출처였다. 그러므로 대담에서 함께 토론을 한 이들이 어떤 이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요약하는 것은 어쩌면 그 질문을 다시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맞이한 가장 큰 위기는 미술에 대해서, 나아가 예술에 대해서, 아니 같은 말이기도 할 세계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든 물음을 던지는 어떤 질문은 무력하게 사라지거나 무시되었을 것이고 또 어떤 질문은 예상치 않은 변형을 거치며 답하기 알맞은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살롱에서 오간 모든 대화를 요약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머뭇거림, 말의 휴지, 그리고 더듬거림과 얼버무림 속에서 우리는 대화를 하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중미술 이후, 미술의 정치를 생각하기 위해 우리가 감당하고 또한 경유해야 하는 담론적 징후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민중미술 이후 미술의 정치를 사고할 개념적 도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그것을 가능케 할 성찰의 대화를 요청한다. 우리는 모두 그만큼의 대화에 이르고자 하였다. 이를테면 개념이 탄생하는 전야의 대화. 나는 그 대화가 다시 이어지고 날이 밝기를 기대한다. 미술이 정치적 사건으로서 출현하거나 혹은 정치적 사건의 충격으로서 미술이 변모하거나 그 무엇이든, 미술과 정치가 해후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예상할 수 있는 언어를 확보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과 정치에 앞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둘을 이을 수 있는 언어의 조각을 찾아내는 일이다. “민중미술 이후” 살롱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마감되었을 것이다.<br />
<div id="div268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8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8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68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8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81b'));return false;"> less.. </a> <br />
1980년대의 민중미술은 미술과 급진적 정치의 조우를 보여주는, 한국 현대미술에서의 희귀하고 또한 강렬한 역사적 계기였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탓에 그즈음 민중미술은 한국 미술의 ‘새로운 단계’로 회자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과연 한국 근대 미술의 새로운 단계를 열었는지에 대해,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민중미술이 아카데미즘과 식민적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근대미술 담론을 돌파하도록 이끈 결정적인 충격이었다는 주장에 제법 익숙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1908년대 이후의 시각문화의 변용이라는 측면과 대조할 때, 미술이라는 구획된 공간 안에서의 효과로 환원할 수 없는 민중미술의 성취 혹은 공과에 대하여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이미지의 경제학 혹은 시각문화적 현실과 민중미술의 관계를 생각할 때 민중미술이 내건 정치적 프로그램은 다른 시좌를 통해 읽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민중미술이 출현할 즈음부터 내부로터 시작된 물음이었다.<br />
그러나 이런 물음에 답할 책임을 민중미술의 편에서 굳이 찾아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민중미술이 무고하기 때문이 아니라 민중미술이 떠맡아야 했던 물음은 비단 민중미술에 한정되지 않은 많은 영역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각적 삶의 현실을 생산하고 순환하는 과정에 연루된 이들이라면 모두 이러한 물음에 답할 책이 있다. 광고기획자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에서부터 미술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장르에 따라 분화되지 않은 공통의 시각적 현실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들이었다. 요컨대 민중미술이 상대하여야 했던 ‘시각적 삶’의 현실은 모두가 연루되고 반성해야하는 대상으로 급변하였다.<br />
그러므로 민중미술이 한국 현대미술의 자장을 뒤흔든 정치적 기획이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중미술이 긴 동면 속에 있던 한국의 현대미술로 하여금 자기 시대의 시각적 삶의 현실과 대면하도록 촉구했다는 점에 있었을 것이다. 민중미술은 무엇보다 이미지 현실과 자본의 지배 사이에 놓은 관계를 반성하도록 하는 가능성을 던져놓았고, 돌이켜 볼 때, 그런 이유로 민중미술운동은 온전히 ‘아방가르드’로서의 정체성을 지닐 수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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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의 죽음, 그 의문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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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그런 민중미술의 효과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아니 더욱 절박하다. 그러므로 민중미술이 던진 물음들을 더욱 다듬을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물음을 더욱 분화시키고 또 발전시키면서 계속하여 그런 물음들에 답하려 했던 ‘민중미술 이후’의 시도들을 점검할 필요 역시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민중미술에 대한 회상 혹은 민중미술의 살아있는 죽음을 해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민중미술이 아직 답파하지 못한 아니면 어쩌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질문을 다시 만들어내고 한국 현대미술의 정치적 반성의 힘을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br />
<민중미술 이후> 살롱은 그런 작업에 기여하고자 하고, 그를 위한 목소리들을 들으려 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시대에 뒤져 보이기조차 하는 큰 물음들을 던지고자 하였다. 그러나 메타담론의 횡포를 회피하겠다는 핑계로 모든 급진적인 정치적 행위에 깃들어있기 마련인 보편성에의 추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다. 무엇보다 세계화가 증언하는 자본의 보편성 앞에서 삶의 구체적인 다양성에 호소하고 정체성의 차이들을 증대시키는 데 골몰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 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이 다른 알리바이를 마련할 필요 없이 한국 현대미술을 향해 미술과 정치의 관계를 묻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br />
<민중미술 이후> 살롱은 크게 다섯 가지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었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nbsp;&nbsp;1) 민중미술 이후 한국현대미술이 대면하게 된 ‘현실’이란 무엇이었는지, 2) 민중미술 이후 미술이 미학적 정치로서 자신의 활동을 정치적 행위로서 어떻게 정의하고 변용시켜 왔는지, 3)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압축하는 ‘민주화’와 민중미술 이후 현대미술의 변모 사이에는 어떤 매개관계가 있는지, 4) 민중미술 이후 가장 중요한 비판적인 미술운동으로 간주되는 공공미술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가 그 물음들이다.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나는 미술이라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가능한 초대하고자 했다. 그들을 굳이 미술의 바깥에 속한 이들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각문화를 연구하는 문화연구 학자로서, 공공미술에 기반한 사회적 실천에 종사하는 전문가로서, 그리고 시각문화로서의 디자인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온 디자인 연구자로서, 각각의 대담자들은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시각적 삶의 세계 혹은 시각적 삶의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런 분들을 대담에 초대한 이유는 앞에 던진 물음들이 굳이 미술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를 의식하고 그것에 대응하려 했던 이라면 누구나 직면했던 질문들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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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중미술 이후 한국 미술에서 ‘현실’이란 무엇인가<br />
민중미술의 정치란 비판적 사실주의 혹은 민중적 리얼리즘과 같은 미적 정치적 이념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미술이 현실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될 수 있다면 민중미술이 무엇을 재현하려 했느냐를 넘어 그것이 현실을 어떻게 정체화하려 했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민중미술은 나아가 그 이후의 한국 현대미술은 미술과 현실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였을까. 민중미술이 대두하는 시점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들이닥친 소비자본주의의 징후들과 그것의 범람, 디자인과 광고, 홍보 등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 컴퓨터정보통신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복제기술의 일상화, 세계화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보편성과 시각적 기호들의 과부하 등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민중미술은 그리고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려 했을까. 그리고 이는 미술과 정치의 관계를 사고하는데 어떤 효과를 발휘하였을까. 요약하여 말하자면 미술의 편에서 과연 현실은 무엇이었을까. <br />
이런 물음을 두고 대담자들은 다양한 답변을 제출하였다. 김수기는 민중미술진영에 속한 비평가로부터 문화연구로 전환하면서 주목했던 “압구정문화”에서 주은우는 “컬러풀한 티비”의 출현에 뒤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뒤편에서 형성된 카페에서, 각기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가 형성되고 시각적 쾌락의 주체가 등장했음을 강조한다. 둘은 1990년대 글로벌 자본주의 속으로 휩쓸려들어가면서 유학생들이 몰고온 “압구정문화”는 여전히 “문자 세대”의 그늘 속에서 뒷골목을 통해 새로운 시각문화를 창출했던 카페의 시각적 풍경과 대응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한편 박해천은 “아스팔트 키즈, 아파트 키즈”에 주목한다. 1970년대에 태어난 도시화의 1세대가 사실 1980년대에 성장하고 있었고, 그들은 민중미술이 가진 공동체주의적이고 목가적인 낭만적 민중주의와는 전연 다른 시각적 패러다임에 있었을 것이라 분석한다. 새로운 시각적 생산양식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그들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1980년대 후반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아파트가 한국사회의 시각문화의 결정적인 중재자였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향상에 대한 욕구”가 실내 디자인은 물론 그와 연결된 다양한 시각적 풍경의 소비를 조직하고 추동하였다고 분석한다. 어찌 되었든 세 사람은 바로 그것을 통해 미술이 제공한 미학적 담론을 넘어 시각문화의 정치학이란 맥락 안에서 한국 사회의 시각적 삶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서로의 의견의 차이가 무엇이든 그들은 민중미술을 표류하게 하였던 것이 바로 우리의 시각적 삶의 현실을 재구성하는 권력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는 장치, 테크놀로지들이었음을 역설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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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중미술 이후 미술과 정치는 어떻게 관계했을까<br />
민중미술이 한국 근대미술에 던진 ‘미적’ 충격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민중미술이 미술이라는 미적 제도와 담론 내부를 향해 던진 질문과 충격도 중요하겠지만 예술을 정치화한다고 할 때 예술에 내재적인 정치의 차원만큼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젊은 평론가가 민중미술의 ‘갑갑함’을 향해 던진 물음처럼 정치적 표현만큼이나 중요했던 ‘표현의 정치학’이란 것이 민중미술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거의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시각적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시각적 삶의 현실 안에서 한국 현대미술은 어떻게 행위하였을까.<br />
 주은우는 들뢰즈를 인용하며 “민중”은 행방불명된 존재이며 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민중미술이 민중을 실체화된 주체이자 대상으로 정의하면서 변화된 시각문화 현실에 걸맞는 민중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안타깝게도 민중미술이 놓친 민중은 새롭게 등장한 소비자본주의 속의 소비자-대중으로 휩쓸려 들어가 버린다. 이원재는 민중미술의 실패 혹은 몰락의 원인을 민중미술이 미학적인 자기증명에서의 실패에서 찾는다. 그는 민중미술이 지신의 유효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심미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함으로써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때 그가 말하는 자기증명에의 실패는 자기를 재생산하는 “현장”을 갖지 못하게 된 점, 자신이 “관계”를 맺어야 하는 대상들을 찾지 못하게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점에서 민중미술이 자신의 미학적 자기증명에 실패한 이상 그를 계승하거나 혹은 그것의 연장이라 알려진 공공미술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공미술은 외려 국가를 통해 부양을 받으며 미술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미술가들의 직업인화된 모습을 생산하는 공간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편 전용석은 공공미술을 한훅 현대미술에서 주요한 정치적 실천의 전환이라고 본다. 그가 생각하는 공공미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공공성(the public)이다. 그는 “민주화”와 더불어 우리가 공공성을 재발견하기에 이른 이유를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공성이란 것이 가짜였음을 고발한다. 그는 식민적 근대화의 경험에서 공공성이란 것이 공중으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닌 가국(家國)체제 즉 가장적인 국가 체계가 위로부터 이식한 공공성일 뿐이며 시민적 주체들이 만들어낸 공공성이 아님을 주목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는 바로 민주주의가 형성될 수 있는 시민적 의사소통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은 바로 그런 요구에 화답하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김상규는 시각문화를 조직하고 규제하는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디자인 문화란 편에서 설명을 시도한다. 그는 19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등장했던 문화축제가 처음에는 영화제를 그 다음에는 미술 비엔날레를 그리고 마지막에는 디자인 관련 페스티벌을 소비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또한 국가적 규모의 문화적 이벤트가 조직되면서 만들어지는 스펙터클, 예컨대 올림픽을 전후한 이벤트와 그것이 만들어낸 시각적 세계에서 디자이너의 정체성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주목한다. 국가와 자본은 언제나 우리의 시각적 삶의 세계를 장악하고 통제하여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화라는 한국 사회가 겪은 정치, 사회적 변동의 경험과 민중미술이 겪은 위기 사이에서 어떤 연관이 있는지 헤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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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중민술과 민주화의 관계는 무엇인가 <br />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압축하는 어휘는 단연 ‘민주화’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의 민주화를 결여한 형식적인 민주화였다는 어느 정치학자의 고언을 쫓든 자유화를 통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기획이 민주화란 이름으로 행세했을 뿐이라는 급진적 사회운동의 비판이든, 민주화는 많은 이들에게 심문과 회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술의 편에서 무엇보다 미술의 편에서도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민주화는 예술에 대한 특히 미술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어떤 배경을 만들어냈을까. 민주화는 예술 혹은 미술에서의 정치를 사고하는 데 어떤 상상력을 생산했을까. <br />
주은우는 민주화가 한국 사회에서 시각적 삶의 세계에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을 “훨씬 밝고 경쾌한 것”이었다는 인상으로 요약한다. 당시 군대에 있었던 티비를 볼 때 광고에 열광적으로 심취하는 동료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설명도 없고 심지어 도도하기까지 한 광고”에 열광한 사람들은 놀랍게도 서구의 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 칭한 시각문화가 알려준 새로운 관람자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민주화는 사람들을 소비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신기루 속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갔다. 그것이 제 아무리 검열되었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모든 시각적 대상 속에서는 정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면 민주화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망상과 함께 재밌는 볼거리를 쏟아냈다. 그리고 김수기가 말하듯이 재현적 관점에 갇혀있던 민중미술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다. 민중적 도상은 낡고 진부한 것이 되었고, 자본이 전달하는 시각적 만화경 속에서 그것은 곧 추억의 키치가 되고 말았다. 민중미술은 달력과 엽서 속에서 “민중미술”스러운 아이콘으로 유폐되었을 것이다. 이광준은 민주화가 민중미술이 다루었던 영역과 형식을 넘어 미술을 확장시킨 효과를 강조한다. 그는 독재와 억압의 문제와 근대화의 경험을 통해 파괴된 민중적 삶의 세계 사이에서 전자의 문제에만 전력했음을 강조한다. 민주화 이후 그는 미술이 상대하여야 할 현실에 대한 자각이 확대되었다는데 주목한다. 지구화를 비롯하여 일상적 삶의 문제같은 것, 그의 표현을 빌자면 ‘공공의 문제’를 다루는 미술이 등장하게 되었고, 민주화 이후의 미술은 바로 공공미술이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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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공미술을 통한 미술의 현실 개입을 어떻게 볼 것인가<br />
민중미술 이후 한국사회의 시각적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려한 대표적인 기획은 공공미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관리 모델에 종속된 예술정책의 총아라는 과격한 비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버넌스니 협치니 하는 기치를 통해 시민사회니 제3섹터라는 이름의 이해집단을 동원하고 이를 자율이란 이데올로기로 선전하면서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소멸시키고 진정한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공적인 영역을 소멸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정치적 프로그램이라 한다면 공공미술 역시 그로부터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미술이 고식적인 미술제도의 한계를 넘어 미술적 실천의 현실을 생산하고 자본의 외부에 놓인 미적 세계를 적극적으로 점유하려는 행위라는 주장 역시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민중미술 이후 우리는 미적 현실에 대한 개입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는 단연 공공미술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미술이 미적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은 무엇이며 그것은 미술의 정치를 사고하는데 어떤 효과를 생산했을까.<br />
이에 대하여 이광준은 민중미술로부터 벗어나는 관심의 확장을 공공미술의 배경으로 꼽는다. 그는 단일 이슈 중심의 정치학, 차이와 정체성의 정치학과도 같은 새로운 정치적 관심이 대두하고 이것이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나아가 기존의 미술적 실천이 제한하고 있던 장르와 형식을 넘어서고 싶은 관심이 또한 공공미술이란 흐름 속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말한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연원이 무엇이든 그는 현재 공공미술은 미술시장, 문화예술경영, 문화기반시설의 확충이란 흐름 속에서 용역 사업화되는 경향에 흡수되거나 아니면 엄격한 의미에서 퍼블릭 아트이거나 커뮤니티 아트에 가까운 작업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한다. 전용석 역시 이와 유사한 한국형 공공미술의 기원을 말한다. 그는 “미술장식품 개정 논의”로부터 촉발된 환경미술품을 공공미술로 끌고가는 흐름이라던가, 1990년대에 접어들며 새로운 장르로서 공공미술을 받아들이려 한 흐름 그리고 1980년대의 현장미술 혹은 민중미술의 유산을 간직하면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흐름으로서 공공미술을 전유하려는 경향 같은 것이 공공미술 속에 혼융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 연원이 어떻고 그것이 계승하려고 한 유산이 무엇이든 공공미술은 변화된 사회체제가 요구하는 미술적 실천의 논리에 부응하는 보수적인 경향에 불과하다는 주장 또한 확인된다. 김장언은 공공미술이 과연 공공성의 정치학에 참여하였는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올해 최고 공공미술 작품”같은 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형태주의적 관심이 얼마나 기괴한 주장인지 비판한다. 어떻게 공공성이란 개념을 재발명하고 기존의 공적인 것 대 사적인 것의 구분을 재구성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과연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는지 그는 묻는다. 그는 공공미술이 새로운 장소마케팅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도시개발을 위한 예쁜 공공디자인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한편 이원재는 “공공미술은 상품미학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그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공공성이란 의제 자체는 무의미한 자본가적 정치적 기만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것은 착취와 차별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관계란 논의로 윤색하면서 현실에 관한 새로운 기만적 표상을 생산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더 좋은 공공성이 아니라 바로 공공성이란 환상을 넘어서는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일 것이다. ❒</div>]]></description>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Fri, 24 Oct 2008 02:35: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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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존 버거의 길, 둘</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66</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v3_YrOULNY0&hl=en&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v3_YrOULNY0&hl=en&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The National, Daughters of the SoHo Riots</b></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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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째 같은 꿈을 꾼다. 검고 탁한 물속으로 줄곧 자맥질을 한다. 바닥에 닿지 않는다. 어느날 꿈 속에 나는 닿을 것이다. 닿았으면 싶다. 그럼 다시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울도 끝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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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 책을 받았다는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자마자, 전화가 왔다. 태평양을 건너는 소리는 가끔 뚝뚝 끊겼지만, 낙심한 그녀의 목소리와 가까스로 위안을 하려는 내 목소리는 어떻게든 그 거리를 건넜을 것이다. 그녀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 관하여 이야기하였고, 나도 내가 잃은 것에 관하여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에 토론토에 와서 쉬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다 추운 곳을 싫어하는 내 버릇을 아니 다른 곳에서 부디 쉬라며, 그녀는 전하고 한 시간에 가까운 통화를 끝냈다. 마침 집으로 들어올 때 사들고 온 맥주를 뜯어서 후루룩 마셨다. 움푹 패인 볼을 두고 하루 종일 걱정과 핀잔을 들었던 터라 무언가를 자주 먹어야겠다고 동네 수퍼에 들렀던 참이었다. 야채며 몇 가지를 주섬 담았다가 모두 쏟고 맥주를 담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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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66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6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6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66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6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61b'));return false;"> less.. </a>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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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 대학 시절 이후 거의 연락이 두절된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18개월이라고 그랬던가, 둘째 아이가 생겼다고 했고, 나는 이제 먹고 살 일만 걱정하며 사는 처지가 되었다, 거들지 않아도 되는 딱한 걱정을 해주었다. 유달리 까만 눈을 빛내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투사가 될 것이라고, 신입생 환영회에서 씩씩하게 이야기하던 녀석이었다. 그 때 나는 너스레를 떠는, 비위 좋은 그 친구가 생소하고 거북했었다. 아마 그 녀석이 같은 과에 입학한, 내가 기억한 마지막 고향 후배일 것이다. 학생회장을 하고, 열심히 시위에 나섰던 그 친구는, 내가 “리베르탕”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철부지같은 맑스레닌주의자로부터 벗어날 때,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나를 지지해주었다. 그리곤 가끔 독문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우리 둘 사이를 교감토록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허름하고 누추한 삶의 배경은 어떤 이들에게 놀랄만한 자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맞을 것이다. 우리는 지긋지긋했던 가족사와 화해하기 위해 운동권이 되었을 것이고, 증오하였으면서 또한 동시에 숭배하였던 아버지의 노동, 어머니의 가난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둘이 꿀 수 있었던 꿈은 너무나 꾀죄죄한 것이어서, 고작 넘볼 수 있던 자신에 관한, 가족에 대한 반항은 글을 쓰는 일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독문학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괴테나 하이네, 토마스 만 혹은 횔덜린을 읽기 위하여 그 아이는 독문학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풍기는 제 가족을 향한 불온한 선택으로서의 냄새, 제가 살아온 세계와 놓인 절대적인 거리 때문에 아마 우연히 독문학을 택했을지 모른다. 서울 강남의 중산층 출신으로 여유 있게 자라고, 제 기분과 판단으로 간단히 운동권에서 벗어나, 영화에 뛰어들기로 손쉽게 결단할 수 있었던 동기(그 녀석은 내로라하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었다)와 그 녀석 사이에는 지울 수 없는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가뿐하게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신문사에 들어간 내 운동권 동기들과 어떻게든 운동권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이 나이까지 서성거리는 나 사이에 놓인 아득한 거리만큼 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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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거리를 짚는 쓸쓸한 마음을 우리는 본능처럼 헤아렸지 않을까, 나는 짐작한다.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이 늘 안쓰러웠고, 그는 또 내가 안쓰럽고 측은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비루했던 가족을 배반하지 못하듯이 운동도 배반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배반하지 못하면서 제 욕망은 항상 배반하였을 것이다. 가장 버리기 쉽고 가장 단념하기 쉬운 것은 제 욕망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짐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에게 겹쳐져 있는 무언의 콤플렉스로 인해 나는 그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고, 심지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도록 돕고 싶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마침내 이르렀던 사랑도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것을 배반당하며 끝이 났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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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길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는 서글픈 눈으로 날 응시하며 서툰 한국말로 “형은 언제나 자신을 망가뜨려요”라고 얘기해주었다. 잘 먹고 잘 쉬라는 말이었겠지만, 더 친밀해질 수 없는 어떤 장벽을 감지했던 그 아이의 눈치가 아마 또 그 말을 뱉도록 했을 것이다. 염치없게도 나는 그 말을, 서툰 그 아이의 한국말로 여러 번 더 들었던 전력이 있다. 아무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 제 혼자 제 삶을 조금씩 부숴가고 있다는 핀잔과 원망을 들었다면, 그는 마땅히 심리치료를 받거나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 고요한 삶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무뢰한이다. 그리고 그 난장이같은 소인배가 나임에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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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배달된 존 버거의 시집 속에서 이런 시를 발견했다.<br />
<br />
우리는 기념일들을<br />
손톱의 모양을<br />
잠든 아이의 고요함을<br />
당신이 키운 샐러리의 맛을<br />
우유를 가리키는 표현을 지니고 떠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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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둘>이란 제목의 시였다. <br />
<br />
그는 어디에 있는 누구를 찾았고 그들의 곁을 떠난 것처럼 보인다. 찾았던 이는 농부였던 듯 하고 그는 아름다운 가족과 함께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넉넉한 심성의 그는 아마 그를 찾은 손님들을 융숭하게 대접했을 것이다. 사실 무엇을 기억하고 추념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리라.</div>]]></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ue, 21 Oct 2008 17:49: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대안공간의 문화정치학</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65</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62i9Sodwp5o&hl=en&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62i9Sodwp5o&hl=en&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center><br />
<font color="#009966"><center><b>Bon Iver , Flume</b></center></font><br />
<b>대안공간, 그 “포쓰”</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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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 무성하다. 이름난 대안공간들이 하나 둘 씩 문을 닫고 있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대안공간들도 이렇다 할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할 처지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어디서나 들려오는 위기의 괴담 속에서 대안공간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째 엄살처럼 들린다. 왜냐면 대안공간은 현기증나리 만치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성공은 몇몇 대안공간이 자취를 감춘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시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성공은, 뒤에서 다시 말하려니와, 이데올로기적 성공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인 담론이자 실천으로서, 대안공간은 그 자체의 성쇠와 무관하게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1세대 대안공간의 포부와 열정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류, 유사, 짝퉁 대안공간이 난립한다고 투덜댈 때, 그 찝찔한 기분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는 온당치 못한 일처럼 보인다. 대안공간이 한국에 상륙한 일 자체가 ‘모방’이란 점을 상기한다면, ‘대안공간 이후의 대안공간’이 대안공간을 흉내낸다고 해서 불순(不純)하다 여길 이유가 전연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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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65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5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5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65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5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51b'));return false;"> less.. </a> 대안공간이 흔히 말하듯 서구 모더니즘적인 미술제도의 총아였던 미술관이란 미적-정치적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했다면 그것을 온전히 한국의 근대 미술 제도의 맥락 안으로 자리매김/바꿈 한다는 것 자체가 비판적 반성을 요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나는 최근 성행하는 지역성(locality)의 담론에 호소하면서 대안공간을 지역적으로 특수화해야 한다고 강변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모두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에 알맞은 대안공간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 손쉬운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뒤에서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전지구적 미술 체제(global art system)’의 일부로서 전시를 비롯한 비평, 제작, 시장 등의 미술 담론이 순환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물론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도 그것의 일부이다), 이는 너무나 소박한 생각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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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 특수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담론 자체가 지구적 자본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촉발된 담론이자 그것의 구성적인 성분이란 점은 누차 강조되어왔다. 예컨대, 광주비엔날레나 부산비엔날레같은 초국가적인 미술 이벤트의 출현은 전지구적 미술 체제의 일부이자 동시에 새로운 지구적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문화적 변형과 분리시킬 수 없다. 또한 미술 옥션이나 아트 펀드같은 금융상품의 출현을 이와 분리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유목민적인 글로벌 큐레이터(nomadic global curators)” 혹은 가장 쿨한 제트족(the jets)의 일원으로서 국제적인 미술이벤트와 비엔날레 따위를 분주히 오가는 스타 큐레이터의 전무후무한 파워 역시 이와 떼어놓을 수 없다. <아트포럼(Artforum)>같은 미술 잡지에 서울, 상해, 북경, 동경같은 아시아 글로벌 도시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에 대한 광고가 분주하게 출현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이 모두는 전지구적 미술 체제의 현상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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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전지구적 미술체제의 궤도와 대안공간</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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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상기할 때 대안공간을 빼놓은 채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작품의 제작과 전시이든, 아니면 작가-제작자와 큐레이터, 전시기획자, 비평가를 매개하는 담론적 실천에서이든 아니면 작가 자체의 정체성과 관련한 담론이든(이를테면, ‘신진작가’라는 새로운 대안공간형 미술가의 형상?), 그리고 무엇보다 대안공간의 재정과 운용을 둘러싼 방식에 있어서든, 대안공간은 나름 현대미술의 현실을 규정하고 재현하는 다양한 어휘와 개념을 생산하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안공간은 단순히 1990년대에 등장하여 활약한 전시의 “장소”이기에 앞서 한국 현대미술을 규제했던 미적이고 정치적인 규제적 이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대안공간을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규정한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실천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여기에서 각각의 개별적 대안공간이 수행한 특정한 구체적인 활동은 무시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한국 현대미술이 상상하고 전유한 특정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대안공간에 주목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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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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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상품의 현상학과 전시의 문화정치학<br />
 - 이데올로기적 미적 장치로서의 대안공간</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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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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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은 어쩌면 관습의 결여라는 것이 관습이 되어버린 미술적 실천에 호응하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상품의 물리적 현존이 점차 사라지는 현상에 조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우리는 같은 브랜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는 상품의 계열들을 바라본다. 포르쉐라는 기업은 이제 포르쉐라는 자동차를 제조하는 회사가 아니라 자신의 기업 정체성으로 삼는 쿨한 디자인을 내세워 휴대폰을 제조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물건들을 판매한다. 그러므로 장차 포르쉐 생수와 섹스토이가 나온다고 해서 놀랄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런 일은 다반사이고 상품이 현상하는 주된 방식이 되어있다. 특정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만드는 기업이라고 자처하는 한국의 “씨제이(CJ)” 같은 기업이, 그런 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기업이 아닐까. 그 기업은 영화관 경영에서부터 탈모치료제, 햇반, 다이어트보조식품에 이르는 숱한 상품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 기업이 말하기에 그것이 판매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생활문화”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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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는 대안공간이 수행하는 활동과 상당히 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대안공간이 “대안적이고 실험적이고 비주류적이며 소수적인” 미술적 실천을 전시하는 공간이라 강변할 때, 그것은 사실 현대 미술에서 무엇이 미술적 실천인지를 규정하는 정체성이 없다는 점을 가리는 구실을 하는 것이지 않을까. 나아가 “거리낌 없이 널 표현하라, 창조적으로 되어라, 개성적으로 되어라, 규칙을 깨부수라, 반란과 혼돈을 사랑하라” 운운은 더 이상 현대 예술에서 내세우던 선동적인 신조들이 아니다. 20세기 최고의 “약쟁이”이자 반문화의 성상이었던 윌리엄 버로우즈가 나이키 광고에 출현하고, 헤밍웨이나 잭 캐루악같은 문학가가 갭(GAP)같은 의류 브랜드의 바지광고에 등장할 때, 그것은 미적이고 윤리적인 이념과 상품의 정체성이 어떻게 연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대안공간이 독립, 비주류, 실험, 소수성 같은 미적 이상을 실천의 프로그램으로 선택할 때, 우리는 외려 그것을 미술이라는 장으로부터 출현한 것이 기는커녕, 외려 새로운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상품의 현상학을 대안공간이 전시의 이데올로기로서 전유하고 혹은 반복하고 있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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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향은 대안공간이 미술가의 공적인 페르소나(public personae)를 표상하는 방식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젊은 영국 미술가(young British artists; yBa)’라 불리는작가들의 명성 혹은 명사화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199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 나타난 주된 변화 현상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이는 단연 미술가의 명사화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런 경향이 가장 도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단연 중국의 현대미술가들이라 할 것이다. 그들은 숫제 그들 스스로나 중국 대중매체 스스로도 그렇게 부르듯이 백만장자들이며 명사와 거의 유사한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한다. 그렇지만 다미엔 허스트(Damien Hirst)나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같은 영국 작가가 팝스타에 비견될 만한 명사로서 군림하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고 말하기엔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이에 근접한 인물을 찾는다면 낸시랭같은 작가를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대안공간이 ‘젊은’ 미술가들을 재현하는 방식을 돌이켜보면, 이런 명사화의 경향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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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대안공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꼽고 있는 ‘신진작가의 발굴’은 바로 명사화의 경향에 대응하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미술가의 공적인 페르소나를 “신진” 혹은 “젊은” 작가로서 정체화하는 것은 매우 특수한 역사적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미술가로서의 자격으로 인정하고, 미술가의 작업을 작품으로 구성하여 전시하고 이를 미술가의 정체성과 연결시키는 방식은 무엇인가는 미술적 실천의 제도 내부에서 언제나 논쟁적인 주제였다. 그리고 아방가르드나 기타 비판적인 미술적 실천을 수행하는 작가들을 “젊은” 이라고 재현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미술적 실천 내부 혹은 미술이라는 장(場) 안에서 문화나 상징 자본을 분배하기 위한 은유로서의 “젊음”이 아니라 “젊음” 자체가 더 이상 무엇을 대리하지 않은 채 그 자체 물신적인 가치로 작동하는 것은 전연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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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미술이 처한 상황을 두고 볼 때 이런 추세가 본격화되고 정착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대안공간은 기존의 미술 전시제도나 관행을 비판할 때, 그것을 젊은 작가들의 배제와 소외라는 식의 몸짓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기성제도”와 새로운 위반과 실험이란 방식으로 도식화되는 것이 흔한 일이라 할지라도 미술가 자신의 젊음과 새로움을 강조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라 할 수 있다. <br />
이런 현상은 따져보면 무엇보다 미술시장 안에서 예술적 실천의 주체 즉 작가나 미술가의 정체성을 하나의 브랜드로 혹은 상품 자체로 편성하게 하는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영국에서 yBa를 형성한 미술 교육의 효과를 말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지난 20년간 미술 교육에서 거의 관례처럼 강조된 것은 바로 ‘포트폴리오’의 제작과 끊임없는 작가로서의 자기 서사의 구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돌보고 책임지며 나아가 홍보하고 광고하는 예술가, 즉 기업가(entrepreneur)화된 예술가의 형상은 매우 독특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유파, 스타일, 정치적 그룹 등에 속해 있는가 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브랜드화된 페르소나”가 출현하고 그것이 기존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대체하는 것은 분명 현대 미술 제도에서의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대중매체의 미술비평이나 미술 관련 매체들 역시 이런 경향을 정착시키는데 기여한 다양한 비평적 글쓰기를 고무하였다. 그리고 이는 집합적인 경제적 생존을 규정하는 제도로부터 벗어난 채 자기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하여야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경제적 주체의 모습과 닮아 있다. 예컨대 그것은 자신의 경제적 생존을 사회적 협약을 통해 보장하거나 재생산하는 임금소득자의 모습을 대신하여 등장한 새로운 경제적 주체의 모습, 즉 “재태크하는 주체”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물론 “포트폴리오” 투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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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신진 혹은 젊은 작가란 작가의 나이를 지시하는 말이 아니라 외려 끊임없이 새로운 작가들을 배출하고 그를 통해 미술시장에서 “신상”을 공급하려는 새로운 미술제도의 관행을 가리킨다. 그리고 대안공간은 바로 그런 미술시장의 논리를 전시의 논리로서 반복한다. 우리는 거의 매일 신진작가 혹은 젊은 작가가 등장하고 참여했음을 고지하는 전시 소식과 마주한다. 이 때 이들 작가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그것이 기존의 미술적 실천의 미학적-정치적 원리에 대한 부정이나 거부도 아니고, 아서 단토의 비아냥거리는 투의 표현을 빌자면 “선언문 시대”에 볼 수 있던 몸짓도 아닌, 공허하기 짝이 없고 차라리 비규정적인 새로움 혹은 신생(新生)을 예찬하는 언표를 볼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을 비규정적인 것이라고 간단히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과도하리만치 규정적이기 때문이다.<br />
미술가의 인격적 정체성을 규정하고 또 이를 생산하는 것은 미술을 둘러싼 제도적 실천 내부에서의 자족적인 효과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방금 살펴보았듯이 새로운 경제적 실천의 논리와 미적 실천의 논리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가 사라지면서 예술가의 공적 페르소나와 기업가적 주체성(entrepreneurial subjectivity)이 다르지 않게 되는 추세와 관련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970년대까지 작용하고 있던, 고전적인 표현을 빌자면, 경제적 관심(economic interest)과 미적 무관심(aesthetic disinterest) 사이에 놓인 거리가 마침내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부르디외의 고전적인 연구가 역설하는 것처럼 근대 미학이 집요하게 옹호하였던 미학적 요구, 즉 미적인 것의 무관심성이란 칸트적인 주장은 처음부터 허구였다고 말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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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가 말하듯이 그런 주장을 통해 미술을 비롯한 다른 예술은 시장 속에서 가치화되고 교환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미적 무관심성은 경제적 관심에 대립하거나 적대적이었기는커녕 경제적 관심에 의해 보이지 않게 매개되었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본에 대하여 독립적이라는 대안공간을 둘러싼 통상적인 재현 방식과 달리 오히려 그것은 다양한 담론적 활동을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가 미술적 실천의 장을 포섭하는 계기가 대안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보는 현상의 역사적 특수성을 굳이 식별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미적 무관심/경제적 관심의 차이 혹은 대립이 마침내 지양되고 둘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저 악명높은 데이브 힉키(Dave Hickey)의 표현처럼 “거대하고 아름다운 미술 시장의 탄생”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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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부터 민주주의가 탄생한다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서사로부터 미술의 민주화를 이야기할 때, 그리하여 ‘거대하고 아름다운 미술시장’이 마침내 예술의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할 때, 우리는 문제는 미술의 시장화가 아니라(여기에서 새로운 점은 한 가지도 없다) 미술을 가치화하는 논리, 즉 미술을 가치화할 때 그것을 규제하는 원리가 어떻게 변형되는가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여야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상품의 가치가 점차 실제적 사용가치에서 멀어져 기호적 가치, 미적 가치로 변화되었다고 말할 때, 이를 강조하는 이들이 무시하는 점이기도 하다. 상품에서 보다 중요한 점은 물리적 효용이나 만족보다 기호적, 심미적 가치의 충족에 있다는 주장이 백번 옳다 해도 그것에서 변함없는 것은 그것이 오직 하나의 보편적이면서 또한 예외적인 상품, 즉 화폐와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가치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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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들먹이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란 것이 “명사-미술시장”과 어떻게 정확하게 대응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주자본주의의 특징은 주된 이해관계자인 투자자를 위해 기업의 활동이 가능한 투명하고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책무성, 투명성, 반부패성 등이라는 도덕-경제적인 외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만, 정작 여기에서의 핵심은 국경을 가로 넘어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투기적 금융자본을 위해 모든 자본은 스스로 벌거벗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가치화될 수 있는지를 규정하기 위해 기업은 자신의 사명(mission)을 선언하고, 핵심역량을 제시하며, 자신의 브랜드와 로고를 끊임없이 홍보하고 선전한다. 그리고 이는 거의 광란적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경제적 지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의 절반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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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주주자본주의는 어떤 대상(그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심지어 국가이든 막론하고)을 경제적으로 가치화하기 위해 상당한 문화적 표상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삼성의 주식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시장에서의 안정적인 활동과 예측할 수 있는 이윤의 양이나 규모를 통해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때 그것을 경제적으로 가치화하는 것은 상당부분 문화적 표상에 의존한다. 이를테면 브랜드가치니 국제경쟁력이니 하는 수많은 문화적 표상들을 고안하고 이는 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규정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발휘한다. 안정적인 시장에서의 활동을 통해 경제적 대상의 가치를 규정하기가 불가능할 때, 이를 가격이라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표상 속에 닻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이런 문화적 표상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전지구적 미술체제가 만들어낸 미술시장에서도 예외 없이 해당된다. 중국 현대미술이 왜 미술시장에서 그토록 성황을 이뤄야 하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혹은 한국에서 이런저런 작가가 왜 그렇게 갑자기 미술시장에서 호평을 받는지 명확히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직 찾을 수 있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면 그가 유명하다는 것, 그가 구매, 수집, 투자, 전시할 가치가 있는 명사란 점에 있을 것이다. 이런 자기재귀적인 즉 명사이고 비싼 작가이므로 계속 그렇게 되어가는 현상은 국제적인 미술이벤트나 비엔날레를 통해서이든 아니면 수집가, 딜러들이 몰려드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소문 따위를 통해서 이든, 끊임없이 증폭되고, 맹렬한 속도로 순환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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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특성은 대안공간이 주된 활동 영역으로 내세우는 “국제교류”에 대해서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강조했듯 국제교류는 더 이상 서구중심주의적인 미술제도에 대한 비판적 행위로서도 혹은 특정한 미술적 실천의 경향에의 참여로서도 정의하기 어렵다. 알다시피 그것은 전지구적 미술체제에 접속하는 것과 전연 다르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비엔날레의 성황이나 그와 유사한 국제적인 미술이벤트가 범람하는 현상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른바 기업가적 도시 혹은 글로벌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새로운 도시 형성의 전략과 더불어 새로 문을 열거나 신장개업한 미술관, 갤러리들의 활동 전략의 변화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공공미술관이나 갤러리가 기업의 경제활동을 모방하는 것은 물론 기업 자체와 보다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나아가 후원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고급문화적 외양 속에서 기업문화적 복합체 속으로 통합되는 것은 물론 이런 전지구적 미술체제가 생산해내는 유행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대안공간의 운영, 재정 역시 이런 현상으로부터 전연 자유롭지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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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국제적 미술 체제가 만들어 낸 미술시장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의식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는 미술가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yBa이든 아니면 중국 현대미술가이든 그들은 전지구적 미술체제를 통해 등장하였고 또한 그것에 의해 규제된다. 물론 한국의 대안공간을 경유하여 활동하는 작가 역시 전지구적 미술체제가 만들어낸 미술적 실천의 궤도를 통해 활동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국제미술시장의 ‘블루칩’에 관한 기준이 만들어지고, 미술시장에서 가치를 부여받는 주제와 제작 경향, 전시 관행, 비평 담론 역시 동시에 형성되고 강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1990년대를 전후하여 국제 비엔날레나 국제 미술 이벤트가 만들어낸 ‘국제교류’는 전례 없는 현상이었을 뿐더러, 정체성의 정치학이나 다문화주의를 위시한 다양한 담론을 성행시켰다. 따라서 주변부나 제3세계 미술의 과소표상이라는 과거의 비평적인 고발은 거의 농담과 같은 말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비평가들이 우려하듯이 외려 문제는 이런 과대표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역문화 혹은 특수한 문화적 정체성의 표상으로 둔갑한 미술가들이 끝없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것은 글로벌한 메뉴를 가진 푸드코트의 모습과 거의 다를 바 없다.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비평적 제국주의를 고발하며 서구중심적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미술 실천을 지역화하자며 쏟아져 나왔던 ‘지역성(locality)’의 담론은, 그런 점에서 국제교류란 담론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함축을 잘 드러낸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역성이란 역설적으로 국민국가이든 아니면 계급적 구분이든 미술가가 속한 ‘지역’의 맥락을 탈맥락화하면서 지역을 특정한 문화적 코드로 환원한다. 따라서 그것이 강조하는 맥락화하라는 요구는 서구 미술 제도가 만들어낸 전지구적 미술체제 내부에서 교환될 수 있는 대상으로 (탈)맥락화하는 희비극적인 요구로 전환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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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대안공간이라는 헤게모니적 장소</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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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윤리의 객관적(또는 역사적) 기초는 문화주의이다. 즉 풍속과 습관‧신앙의 다양성에 대한 구명할만한 진정한 매혹이다. 그리고 특히 상상적인 구성물들(종교들, 성적 표상들, 권위의 구현형태들)의 불가피한 잡다성에 대한 매혹이다. 그렇다. 윤리적 ‘객관성’의 핵심은 야만인들에 대한 식민주의자적 경악을 물려받은 속류적 사회학에 준거하고 있다. 그 야만인들은 우리 사이에도 있으며(교외의 마약중독자들, 신앙공동체들, 사이비교파들 등은 위협적인 내부적 타자성을 표상하기위한 저널리스틱한 부품들이다.), 윤리학은 탐구의 장치들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로 자신의 ‘인정’과 사회 노동자들을 이 야만인들에게 부과한다는 의미에서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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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디우의 어느 글에서 따온 구절은, 어쩌면 어느 국제 비엔날레나 미술 이벤트를 향해 쓰인 글처럼 보인다. 그러니 프랑스의 급진적인 좌파 철학자인 그의 주장은 타자성, 지역성, 다문화주의 혹은 정체성의 문화정치학을 비롯한 윤리적 담론의 범람이 어떻게 ‘본연의 정치(proper politics)’를 점진적으로 소멸시켜가고 있는가를 고발하는 글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하위문화이든 아니면 지역성이든 혹은 배제된 타자들의 목소리이든 지금 우리가 현재의 미술적 실천 안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담론들은 전지구적 미술체제가 생산한 담론이면서 또한 동시에 대안공간을 통해 증폭되고 재생산되어온 담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안공간에서 ‘대안적’이란 기표가 지시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대안적인 현실’이라기보다는 전지구적 미술체제가 순환시키는 담론적 현실 안에서 교환가치를 보장받는 특정한 미술적 실천의 논리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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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이 글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형성된 대안공간의 문화적 실천을 전지구적 미술체제의 등장과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의 효과란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신진작가의 발굴이나 국제교류 같은 대안공간의 활동을 재현하는 담론이 어떻게 연루되어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는 앞서 밝힌 것처럼 특정한 구체적 대안공간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며 또한 그 안에서 행해지는 경험적인 활동이나 사례를 참고한 것도 아닌, 매우 거칠고 추상적인 분석일 뿐이다. 이 글에서 내가 강조하려 한 것은 현실의 대안공간이라기 보다는 문화적 상상(imaginary) 안에서 존재하는 대안공간, 즉 이데올로기적 담론이자 장치로서 작용하는 대안공간이라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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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대안공간이 일률적이고 동질적인 담론이자 장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안공간은 한국 현대 미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다양한 미술적 실천이 벌어지는 헤게모니적 장소이다. 대안공간이 만들어내는 암묵적인 이데올로기적 의무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스스로 대안적이라 자처하는 다양한 행위가 침범하고 교란할 수 있는 곳이 또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실천이 자생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며 대안공간의 문화정치를 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대안공간이 그 장소에 연루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효능을 심문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현대미술의 반지성주의적인 특성을 더욱 굳힐 뿐 아니라 미술에서의 정치적 실천이란 문제를 망각하도록 할 뿐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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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6699"><b>- 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 관련 학술심포지엄의 발제문</b></font></div>]]></description>
<category>articles</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Wed, 01 Oct 2008 04:36: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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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창의성, 뭥미?;;</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64</link>
<description><![CDATA[ <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www.homopop.org/log/attach/0920/080920043048294212/467868.jpg width="400" height="224"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www.homopop.org/log/image_pop.php?imagefile=attach/0920/080920043048294212/467868.jpg&width=600&height=336','','width=600,height=336,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Edward Ruscha. (American, born 1937). Standard Station. 1966. Screenprint</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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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한 때” 기분 좋고 짜릿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 말에 이제는 기분 나쁜 분위기가 감돈다. 흔히 창의성이란 낡은 것, 진부한 것, 획일적인 것 등을 넘어서고 싶어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있던 것과 다른 것,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사람들의 활동에 깃들어있는 감수성, 그리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킬 때, 우리는 창의적이란 말을 가져다 썼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성이란 말에는 무언가 반항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이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제 창의성이란 말을 사람들은 성가시고 귀찮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말이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창의성은 더 많은 부,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다투어 권장하고 찬양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창의성을 가지라고 들볶이고 있다. 창의성이 없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한 사람이란 취급을 받을 것처럼 은근한 협박을 듣기도 한다. 어쩌다 창의성이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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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64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4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4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64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4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41b'));return false;"> less.. </a>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이미 창의영국(1998), 창의미국(2000)이란 목표를 발표하면서, 국가가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질 새라 한국도 “창의한국”을 선언하며 이 대열에 뛰어들었다. “창의한국”을 알리는 글은 “예술의 고유한 속성이라 여겨왔던 창의성이 국가정책의 키워드가 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들은 미래에 살아남고 또 계속 발전하기 위해 창의성을 북돋고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는 창의성이야말로 경제, 나아가서는 “사회의 총체적 생산능력의 필수적인 요건”이며 “경제와 사회발전의 엔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경제체제가 창의성을 요구하고 있고, 경제적인 부와 가치가 모두 창의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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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은 변화된 경제체제를 설명하고 분석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쳐온 또 한 가지의 주장과 잇닿아있다. 그것은 모두들 한번쯤 들어보았을 “지식기반사회”라는 것이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관리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치는 국제기구나 단체들(예를 들어 IMF, WTO, World Bank 등)을 통해 많은 나라에 퍼져나갔고 곧이어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모든 나라의 경제가 따라야 할 목표처럼 받아들여졌다. 지식기반사회란 말 그대로 이제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만들어서 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부터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든 지역사회든 아니면 보다 나아가 국가이든 사람들은 지식, 특히 창의적인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먹고 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며 지역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영국의 어떤 명성 높은 경제 분석가가 한 말은 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들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엔 기계를 가진 사람들보다 훨씬 더 힘 있는 사람들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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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어쩌면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툭하면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밀가루와 우유를 팔았지만, 얼마 후 대량생산시대가 들어서면 사람들은 생일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가루를 사서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나서 소비자본주의시대가 오고 사람들은 수퍼마켓이나 근처 상점에서 값싸고 똑같은 모양으로 생긴 생일케이크를 사서 먹게 되었다. 그렇지만 창의성이 중요한 지금 우리는 누가 생일케이크를 가장 비싼 값에 팔고 돈을 버는가. 그것은 생일파티의 체험을 파는 사람이다. 그들은 재밌는 놀이와 게임, 장식물과 함께 생일케이크를 판다. 사람들은 재미와 흥분을 가지고 싶어 하고 바로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운동화를 많이 팔고 있는 “나이키”같은 기업은 운동화를 파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 정신” 그 자체를 판다고 주장한다. 세계 사람들이 먹는 커피맛을 천하통일한 “스타벅스”같은 회사는 자신들이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아늑하고 우아한 유럽식 카페의 분위기를 판다고 주장한다. 결국 누가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파는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십만 원이 넘는 비싼 브랜드 운동화와 싸구려 운동화 사이에는 아무런 쓸모의 차이도 없고 품질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얼마나 창의적인 무언가를 덧붙여 놓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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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심지어 창의산업(creative industries)란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창의성으로부터 돈을 버는 일들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음악, 연극, 애니메이션, 녹음, 라디오, 텔레비전, 건축, 소프트웨어설계, 유산산업, 패션, 공예, 영화, 사진, 출판, 광고, 홍보 등. 이런 분야에서 쏟아지는 부가 선진국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필요한 사람들을 키우고 또 그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고 다투어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니라 배우고 관찰하고 체험하는 것과 관련된 일들은 모두 창의산업에 속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는 일도 창의산업에 속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창의산업이 될 수 있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이들이 많이 걸리는 전염병을 치유할 수 있는 값싼 약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특정한 계층의 탈모 성향을 이해하고 발모제를 개발하여 큰 돈을 벌 때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쓸모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기발한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일이 창의적인 일이라면 이는 슬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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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젊은이들은 창의적인 것이 중요하고 창의적인 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술이나 디자인같은 분야에 진학하고 싶어 한다. 영국같은 나라만 하더라도 이 분야에 지원한 학생들의 비율이 1999년에는 61명 가운데 1명이던 것이 5년 뒤에는 19명 가운데 1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위대한 대영제국, 쿨한 영국(Cool Britain)을 만들자면서 창의산업과 창의성에 기반을 둔 경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이는 영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창의성을 기르고 발휘할 수 있는 미래의 일꾼을 길러내고자 하고 그를 위해 수많은 정책과 제도, 기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마법의 주문처럼 창의성을 들먹이는 현상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태도이자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창의성이라고 말하고 나선 순식간에 우리는 전연 창의적이지 못한 창의성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이 진짜 창의적이려면 아마 창의성이란 말 자체를 계속 창의적으로 사용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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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란 말이 이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을 위한 시녀로 전락해 버렸다면, 그럼 창의성이란 말과 빨리 작별을 고해야할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창의성이란 너무나 요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 먹고 잘사는 나라의 특정한 사람들이 자신의 상표나 브랜드, 판권을 비롯한 지적재산이나 문화적 자산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챙기기 위해, 창의성이란 말을 빼앗아갔다면 그 말을 되찾아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창의성이란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비판적으로 따져보면서 창의성이란 말이 제대로 쓰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창의성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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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창의성에서 개인주의적인 허울을 벗겨내야 한다. 지금 창의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특출한 개인을 생각한다. 새로운 경제체제는 인재, 천재, 스타, 영웅, 명사를 좋아한다. 한국의 어떤 기업가는 한 명의 인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인재가 창의적이기 때문이란 것이 이유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서 만들어낸 결실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적 일꾼(artistic worker)”이 되겠느냐 아니면 “허드렛일 일꾼(humdrum workers)”이 되겠냐고 물으면 누구나 재밌고 신나면서 돈도 많이 버는 예술가적 일꾼이 되겠다고 할 일이다. 그건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너무나 뻔한 아니 뻔뻔한 질문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먼저 그런 물음 자체를 되물어보아야 할 거이다. 왜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그런 식으로 나누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의 일을 낮게 평가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제대로 쳐주지 않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경제체제를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 경제체제는 불평등만 깊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더욱 힘들고 피곤하고 지루하게 할 뿐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무인도의 로빈스 크로우소가 아니다. 그도 역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많은 일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들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이 개인적으로 가진 능력이나 태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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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창의성은 오직 특정한 사람들의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의성에서 가장 큰 경제적 가치가 나온다는 말은 물론 부자나라의 부자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창의성은 바로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렇지만 창의성이 지금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이나 인도, 러시아에서, 그리고 영원한 가난의 굴레에 묶인 것처럼 보이는 사하라사막 남쪽에 사는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한결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라디오, 텔레비전은 물론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같은 수많은 정보통신수단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소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창의성이란 말도 이렇게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말 가운데 하나가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회에서 창의성이란 말이 어떻게 이해되고 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가로막아서는 안될 것이다. 창의성이란 말이 자기가 살아가는 세상의 경험과 필요를 헤아리지 못하는 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창의성이란 말을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 애써야한다. 굳이 말해, 어떤 태도와 능력이 창의적인지 우리는 창의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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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우리는 창의성에서 소비주의라는 유령을 쫓아내야 한다. 새로운 경제체제는 새롭고 신나고 멋진 것들은 바로 그런 것을 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기분전환을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쇼핑이 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는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창의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바로 언제나 그런 능력과 태도가 스며든 물건이나 상품을 먼저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결국 창의성을 소비의 측면에서만 생각할 때 그것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즉 생산의 측면에는 무관심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람들은 생산은 요술처럼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사는 듯한 착각을 하기 쉽다. 적어도 부유한 국가들에서 공장은 보이지 않고 노동자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이는 생산이라는 것이 이젠 값싼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있고, 환경과 관련한 여러 가지 규제를 쉽게 피할 수 있으며, 노동자들을 고분고분하게 다룰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있는 나라들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쇼핑몰과 백화점에 놓인 물건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디자인과 광고같은 것일 뿐 그것이 어떻게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는 까맣게 잊히고 또 알래야 알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창의성이 수많은 활동들에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생산을 둘러싼 일만 창의성의 영역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약한 사람을 돌보는 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 같은 것에도 우리는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에도 어느 것 못지않게 깊은 창의성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소비주의의 굴레에 갇혀있는 한 창의성은 넉넉해지기는커녕 보다 빈약해지고 초라해질 따름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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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이 우리가 창의성을 창의적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들을 모두 망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말이 그런 것처럼 창의성이란 말에도 힘의 관계가 있다.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지하고 만들려는 세계를 위해 그 말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또 다른 쪽에서는 그 말의 다른 쓰임새를 찾아내고 보다 넓고 풍부한 의미를 불어넣으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성이란 말이 풍기는 불편한 느낌을 이유로 그 말이 오염되었다고 비난하고 멀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창의성이란 것이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태도와 능력이라면 지금과 다른 보다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 역시 창의성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더 창의적인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므로 창의성이란 말이 정작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창의성의 적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지혜로운 창의성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창의성 없는 창의성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버릴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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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하자센터의 청소년 창의성서밋에 기고한 글<br />
(완곡어법으로 재주를 넘은 떳떳하지 않은 글..이런 글을 쓸 기회가 더 없기를 바랄 뿐이다.)</b></div>]]></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Sat, 20 Sep 2008 04:30:4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민중미술 이후_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와 미술의 정치</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63</link>
<description><![CDATA[ <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www.homopop.org/log/attach/0918/080918223701166151/386438.jpg width="400" height="333"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www.homopop.org/log/image_pop.php?imagefile=attach/0918/080918223701166151/386438.jpg&width=525&height=437','','width=525,height=437,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Edward Ruscha, Public Market, 2006</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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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민중미술 이후> 살롱을 열며</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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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민중미술은 미술과 급진적 정치의 조우를 보여주는, 한국 현대미술에서의 희귀하고 또한 강렬한 역사적 계기였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탓에 그즈음 민중미술은 한국 미술의 ‘새로운 단계’로 회자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과연 한국 근대 미술의 새로운 단계를 열었는지에 대해,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민중미술이 아카데미즘과 식민적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근대미술 담론을 극복하게끔 하였던 결정적인 전환이었다는 주장에 제법 익숙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1908년대 이후의 시각문화의 변용이라는 측면과 대조할 때, 미술이라는 구획된 공간 안에서의 효과로 환원할 수 없는 민중미술의 성취 혹은 공과에 대하여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이미지의 경제학 혹은 시각문화적 현실과 민중미술의 관계를 생각할 때 민중미술이 내건 정치적 프로그램은 다른 시좌를 통해 읽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민중미술이 출현할 즈음부터 내부로터 시작된 물음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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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63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3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3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63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3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31b'));return false;"> less.. </a> 그러나 이런 물음에 답할 책임을 민중미술 쪽에 전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민중미술이 무고하기 때문이 아니라 민중미술이 떠맡아야 했던 물음은 비단 민중미술에 한정되지 않은 많은 영역에 속한 이들이라면 모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물음이었기 때문이다. 광고기획자와 제품디자이너, 영화제작자에서부터 미술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장르에 따라 분화되지 않은 공통의 시각적 현실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민중미술이 상대하여야 했던 ‘시각적 삶’의 현실은 모두가 연루되고 반성해야하는 대상으로 급변하였다. 민중미술이 한국 근대미술의 자장을 뒤흔든 정치적 기획이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중미술이 시각적 삶의 세계를 미술이 상대하여야 함을 자각하도록 촉구했다는 점에 있었을 것이다. 민중미술은 무엇보다 이미지 현실과 자본의 지배 사이에 놓은 관계를 반성하도록 하는 가능성을 던져놓았고, 돌이켜 볼 때, 그런 이유로 민중미술운동은 온전히 ‘아방가르드’로서의 정체성을 지닐 수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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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그런 민중미술의 효과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아니 더욱 절박하다. 그러므로 민중미술이 던진 물음들을 더욱 다듬을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물음을 더욱 분화시키고 또 발전시키면서 그런 물음들에 답하려 했던 민중미술 이후의 시도들을 점검할 필요 역시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민중미술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혹은 민중미술의 살아있는 죽음을 해부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민중미술이 아직 답파하지 못한 아니면 어쩌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질문을 다시 정식화하고 한국 현대미술의 정치적 반성의 힘을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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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이후> 살롱은 그런 작업에 기여하고자 하고, 그를 위한 목소리들을 들으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시대에 뒤져 보이기조차 하는 큰 물음들을 던지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메타담론의 횡포를 회피하겠다는 핑계로 모든 급진적인 정치적 행위에 깃들어있기 마련인 보편성에의 추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다. 무엇보다 세계화가 증언하는 자본의 보편성 앞에서 삶의 구체적인 다양성에 호소하고 정체성의 차이들을 증대시키는 데 골몰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부재를 확인하는 일이 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이 다른 알리바이를 마련할 필요 없이 큰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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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이후> 살롱은 크게 다섯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아래에서 조금 더 부연하겠지만 우리는 1) 민중미술 이후 한국현대미술이 대면하게 된 ‘현실’이란 무엇이었는지, 2) 민중미술 이후 미술이 미학적 정치로서 자신의 활동을 정치적 행위로서 어떻게 정의하고 변용시켜 왔는지, 3)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압축하는 ‘민주화’와 민중미술 이후 현대미술의 변모 사이에는 어떤 매개관계가 있는지, 4) 민중미술 이후 가장 중요한 비판적인 미술운동으로 간주되는 공공미술은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물어보고자 한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가 초대하고 대화를 나눌 이들은 굳이 ‘미술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니 더욱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물음은 미술뿐 아니라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를 의식하고 그것에 대응하려 했던 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을 물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이들을 초대할 것이고 그로부터 미술이 자신의 편에서 소홀히 하거나 간과했던 질문들을 추가하고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어휘와 개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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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질문<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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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민중미술 이후 한국 미술에서 ‘현실’이란 무엇인가<br />
민중미술의 정치란 비판적 사실주의 혹은 민중적 리얼리즘과 같은 미적 정치적 이념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미술이 현실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될 수 있다면 민중미술이 무엇을 재현하려 했느냐를 넘어 그것이 현실을 어떻게 정체화하려 했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민중미술은 나아가 그 이후의 한국 현대미술은 미술과 현실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였을까. 민중미술이 대두하는 시점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들이닥친 소비자본주의의 징후들과 그것의 범람, 디자인과 광고, 홍보 등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 컴퓨터정보통신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복제기술의 일상화, 세계화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보편성과 시각적 기호들의 과부하 등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민중미술은 그리고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려 했을까. 그리고 이는 미술과 정치의 관계를 사고하는데 어떤 효과를 발휘하였을까. 요약하여 말하자면 미술의 편에서 과연 현실은 무엇이었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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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민중미술 이후 미술과 정치는 어떻게 관계했을까<br />
민중미술이 한국 근대미술에 던진 ‘미적’ 충격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민중미술이 미술이라는 미적 제도와 담론 내부를 향해 던진 질문과 충격도 중요하겠지만 예술을 정치화한다고 할 때 예술에 내재적인 정치의 차원만큼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젊은 평론가가 민중미술의 ‘갑갑함’을 향해 던진 물음처럼 정치적 표현만큼이나 중요했던 ‘표현의 정치학’이란 것이 민중미술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거의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시각적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시각적 삶의 현실 안에서 한국 현대미술은 어떻게 행위하였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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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민중민술과 민주화의 관계는 무엇인가<br />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압축하는 어휘는 단연 ‘민주화’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의 민주화를 결여한 형식적인 민주화였다는 소극적 비판이든 자유화를 통한 새로운 자본주의 형성의 기획을 가리키는 또다른 수사에 불과했다는 급진적 비판이든, 민주화는 많은 이들에게 심문과 회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술의 편에서 무엇보다 미술의 편에서도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민주화는 예술에 대한 특히 미술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어떤 배경을 만들어냈을까. 민주화는 예술 혹은 미술에서의 정치를 사고하는 데 어떤 상상력을 생산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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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공공미술을 통한 미술의 현실 개입을 어떻게 볼 것인가<br />
민중미술 이후 한국사회의 시각적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려한 대표적인 기획은 공공미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신자유주의적인 사회관리 모델에 종속된 예술정책의 총아라는 과격한 비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버넌스니 협치니 하는 기치를 통해 시민사회니 제3섹터라는 이름의 이해집단을 동원하고 이를 자율이란 이데올로기로 선전하면서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소멸시키고 진정한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공적인 영역을 소멸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정치적 프로그램이라 한다면 공공미술 역시 그로부터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미술이 고식적인 미술제도의 한계를 넘어 미술적 실천의 현실을 생산하고 자본의 외부에 놓인 미적 세계를 적극적으로 점유하려는 행위라는 주장 역시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민중미술 이후 우리는 미적 현실에 대한 개입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는 단연 공공미술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미술이 미적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은 무엇이며 그것은 미술의 정치를 사고하는데 어떤 효과를 생산했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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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자<br />
1) 주은우(중앙대 사회학과교수), 김수기(미술평론가/현실문화연구 대표)<br />
2) 이원재(문화연대 활동가), 이광준(도시갤러리 큐레이터)<br />
3) 전용석 (플라잉시티 멤버), 김장언(미술평론가))<br />
4) 김상규(한국디자인문화재단), 박해천(디자인평론가, 디플 저널 편집장)<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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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____________________</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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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b>2008광주비엔날레 국제학술행사-서울<br />
8008 한국현대미술의 ‘현실과 발언’, 그 비평적 가능성의 모색</b></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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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살롱<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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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비판성’과 작가의 ‘관심’ /호스트 박찬경<br />
8월 29일(금) 이영욱, 조선령, 조주현 / 19:00, 테이크아웃드로잉<br />
9월 9일(화) 김성원, 김장언, 노재운 / 19:00, 박찬경 작업실<br />
9월 10일(수) 고승욱, 사사, 이정우 / 19:00, 박찬경 작업실<br />
9월 18일(목) 김범, 배영환, 정서영 / 19:00, 박찬경 작업실<br />
9월 26일(금) 김주현, 임민욱 / 19:00, 박찬경 작업실<br />
10월 15일(수) 김정락, 반이정, 심상용 / 19:00, 박찬경 작업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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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지형학: 모더니즘, 민중미술, 포스트모더니즘 비평 재문맥화하기 / 호스트 이영욱<br />
(비공개 살롱) 조정환, 이정우, 서동진, 윤난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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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전’, 해외관객을 향한 한국현대미술 기획 / 호스트 문영민<br />
(이메일 인터뷰/대담) 해외에 소개된 한국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한 국내/국외 거주 한국인 및 외국인 큐레이터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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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41A01">●<b>민중미술 이후: 새로운 시각적 삶의 세계와 미술의 정치 / 호스트 서동진</b></font><br />
9월 19일(금) 김수기, 주은우 / 15:00, 인사미술공간 아카이브<br />
10월 2일(목) 이광준, 이원재 / 17:00, 인사미술공간 아카이브<br />
10월 9일(목) 김장언, 전용석 / 17:00, 인사미술공간 아카이브<br />
10월 16일(목) 김상규, 박해천 / 17:00, 인사미술공간 아카이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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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미술의 빛과 그늘 / 호스트 심상용<br />
9월 26일(금) 김정희, 박소현, 이대형, 조광석 / 18:00,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br />
10월 17일(금) 강수미, 김성희, 반이정, 서진석, 장동광 / 18:00,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세미나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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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저널 <볼><br />
주최: (재)광주비엔날레, 광주광역시<br />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90번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110-280<br />
Tel. 02-760-4721~3  Fax. 02-760-4725  www.insaartspace.or.k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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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광고네요. ㅠ 많이들 관심 주시길. ^^</div>]]></description>
<category>articles</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hu, 18 Sep 2008 22:37: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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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好色漢</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60</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1ofiyOmXQQw&hl=ko&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1ofiyOmXQQw&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Wilco, How to fight loneliness</center></b><font color="#D41A01"></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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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읽었더라, 롤랑 바르트는 모든 새로운 것에 관심을 잃었다고 했다 한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것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 그리고 대관절 과연 누가 지금 세상에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모든 새로운 것에서 악취를 맡는다. 그리고 그 악취는 해가 거듭할수록 지독해진다. 아마 모두 그 냄새에 질식하여 죽을 것이다. 모든 악취 나는 사물들의 냄새, 이미지의 냄새, 혹은 말들의 냄새. 그에 취해 다들 숨 막힐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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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먼이 파산하고 메릴린치가 위독하고 AIG가 비틀거린다는 뉴스가 떠들썩하다. 미국 경제가 벼랑 끝에 있다는 소식은, 파국 혹은 종말론적인 소식들 속에서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다시 찾아온 대공황이라는 뉴스만으로도 지난 몇 년간 수 십 번 째였을 것이다. 다들 지겨울 것이다. 그리고 다들 언제나 임박했지만 그러나 결코 도래하지 않는 파멸을 그리워하거나 어쩌면 조급하게 기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실 공황보다 이토록 실감나지 않는 세계에서 찐득한 현실이 어디 있겠는가. 몇몇 지식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현실이 외양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부적절함,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위기가 그것의 본래적인 방식으로 현상하지 못할 때, 그것의 위기를 감지하는 이들이 그 위기의 징후를 찾기 위해 호소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외려 현실로부터 더욱 우리를 멀어지게 하지 않았나. 이를테면 모두 녹아버린 북극점(이젠 알래스카로부터 북극까지 배를 타고 갈수 있다는 섬뜩한 뉴스), 꿀벌의 대량 죽음, 또는 임박한 식물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놓은 북극 근처의 종자창고, 남미에서 창궐하는 숱한 기이한 사이비종교, 그리고... 아마 사람들은 다투어 고장이 난 세계를 고발할 숱한 징후를 찾을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과학을 열망하던 이들을 대신하여 우리는 자본주의의 점성술사들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해서 놀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혹은 진지한 저널리스트의 고견과 오늘의 운세를 함께 믿는 것 사이에서 아연해 할 이유도 전연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본질을 거머쥘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현상하도록 할 것인가야 말로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어떻게 주관화할 것인가를 묻는 것보다 어떻게 객관화하도록 할 것인가, 어떻게 현상계 속에서 잘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 정말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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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60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0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0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60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0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601b'));return false;"> less.. </a> - 써야할 글 탓에 책들을 뒤적이다 1960년대 미국의 현대 미술에 관한 부분을 보았고, 거기에서 엘에이에 열광한북부 영국 출신의 데이빗 호크니라는 구절을 보았다. 아마 조롱조의 말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곡해하거나 오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호크니의 그림들 속에서 그림자 없는 눈부신 태양과 티끌 없는 선명한 윤곽과 볼륨, 그리고 명쾌한 경계가 있는 원색의 세계들을 보고, 거기에서 엘에이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나른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한 하얗고 튼튼한 그러나 무언가 대단한 지식과 교양을 향한 선망에 굶주린 게이 풋볼 선수나 잘 생긴 미대생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호크니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그의 그림의 표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그와 함께 잤던 그의 애인들 이름이란 걸 고통스럽게 통고받는다. 그것은 아마 푸코에 관한 모든 열광적인 전기나 소문들에서도 역시 듣는 이야기이다. 물론 나는 유럽의 고답적인 빅토리아적 도덕을 캘리포니아의 방만한 성적 쾌락주의와 대조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우습게도 엘에이의 고급 주택가의 저택 풀장에서 헝크 청년과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원색의 수트를 입은 호크니보다는 방콕의 실롬 소이2에서 볼 수 있는 주름이 가득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독일 늙은 노동자 게이에게서 훨씬 호감을 느낀다. 호크니와 푸코는 선택하고 열광했지만 그들은 버림받았고 그래서 비록 선택했을지라도 (그들은 “텔레폰”이니 하는 이름의 후줄근한 이름의 유머없는 싸구려 선술집에서 시골에서 온 깡마른 태국 아이들을 고른다) 그들은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쩌면 옛 애인이 늘 저주하듯 퍼부어댔던 농담처럼 나도 그 비슷한 어딘가에서 내 가슴에 손을 올려 심장소리를 헤아려 줄, 내 머리맡을 쓰다듬어줄 손길을 살지도 모를 일이다. 한가위 대목을 노리고 떼다놓은 사과며 배 더미 속에서 배 두 알을 사서 까먹으며, 이런 쓸모없는 침울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무런 상관없는 샤트아지트 레이의 영화에 나오는 어린 “아푸”의 모습이 내 어릴 적 모습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아마 그의 영화를 보면서 그 아이에게 품은 내 연민과 애정 탓일지 모른다. 그 아이는 브라만 계급의 가난한 아들이었지만, 나는 진짜 룸펜의 가난한 아들이었다는 점이 전연 다르지만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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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은사의 회갑연을 일전 치렀고, 나는 그 자리에서 강은교의 시 한편을 축시로 읽었으며, 그를 위해 뻣뻣한 양복을 차려입었다. 한 번도 걸친 적 없는 분홍색 넥타이와 회색빛의 잘록한 양복 웃옷을 걸쳤다. 그녀는 내게 서랍 속의 시를 읽어주어 고맙고, 예쁘게 입고 와주어 고맙다고 답례를 보내왔다. 그게 바로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점이다. 그녀는 세부적인 것에 대한 칭찬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알고 있다. 나는 그것에 익숙지 못하고 심지어 지독하게 인색했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콧노래 부르게 하는 것인지 알았다면, 나는 천 가지도 넘었을 그 아이의 귀엽고 눈부시고 선량하고 좋은 점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에게 오직 정의롭게 살자고 만 다짐을 받는데 열성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가 부정의하다고 스스로 생각해서 나 역시 부정한 인물이 되었다는 분노 때문에 헤어졌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게 왜 잘못된 일인가? 왜 그것을 이유로 이를 악 물고 헤어져선 안 되는가? 진정 사랑했다면 부정한 욕망을 발각했을 때, 헤어져주는 것이 진정한 선의 아닐까? 그를 貞婦로 대하지 않는, 진짜 사랑을 지키기 위한, 결정 아닐까? 그래서 쓸쓸하다면, 그래서 분노로 호색한이 되었다면 그것도 용서받을 일 아닐까? </div>]]></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Wed, 17 Sep 2008 04:02:31 +0900</pubDate>
</item>
<item>
<title>푸익에게</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59</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uHdNCHomHlU&hl=ko&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uHdNCHomHlU&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b>Nick Cave and P. J. Harvey, Henry Lee</center></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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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사이의 사이가 이제 거의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징후는 무엇일까. 그것을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속 시원히 답해줄 수 있을까. 하물며 그 답을 얻는다한들 그렇다고 헤어질 수 있는 것일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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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누엘 푸익의 소설을 읽었다. 미친 풍차처럼 돌아가는 일들 사이로 달아나고 싶어, 수정할 원고를 들고 찾은 어느 찻집에서, 나는 책을 한 권 써보자고 독촉하는 출판사 편집자와 이야기를 하고 얻은 몇 권의 책 중에서, 그의 소설을 꺼냈다. 내가 스페인어를 배웠다면, 아르헨티나에서 몇 달을 살았다면, 멜로드라마를 자주 보았다면, 사랑에 출렁이는 여자들을 뻔질나게 훔쳐보았다면, 나는 그의 소설을 백배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의 소설은 능히 재미있다. 푸익은 자신의 짐작대로 타인을 떠올리고 자신의 욕심대로 타인을 사랑하며 자신의 기대대로 타인을 대하는 사랑의 악랄한 환상에, 완전히 도통한 사람일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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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체질적으로 멀티태스킹에 약한다. 문어발이 없다는 것은 多幸症 없이는 살 수 없는 이 요망한 시절에는 커다란 장애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장애를 극복할 길이 없다. 손바닥에 놓일 만한 수첩을 장만하고 해야할 일들을 빼곡이 메모하지만 나는 언제나 한가지만 생각하고 한가지도 끝내지 못한 채 새벽녘에 안절부절한다. 지금이 딱 그런 때이다. 그런데도 내일, 해야 할 일들이 자꾸 떠오르지 않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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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정주의라 해야 할지, 룸펜적 인민주의라 해야 할지 모를 투쟁이 태국에서 한참이다. 그곳을 자신의 두 번째 나라라고 생각할 만큼 애착이 강한 나로서는 끄라비와 푸껫의 공항을 점거한 시위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방콕포스트와 네이션같은 태국의 영자신문 웹사이트의 기사를 읽고 그에 달리 분명히 벽안의 중년들이 썼을 것이 분명한 댓글들을 읽으면서, 내내 “빌어먹을”이라고 되뇌였다. 방콕의 타마삿 대학 근처에 있는 민주주의 기념탑을 지날 때면 늘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그것이 분명히 발생했던 역사적인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전연 상관없이 표류하는 사건으로 떠돈다는 나의 빙충맞은 억측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콕의 벗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런던으로 맛사지사가 되어 떠난 라삐똥은 가끔 내 생각을 할까. 유니코 그랑데 실롬 호텔의 접수계에서 일하는, 늘 나를 보면 낯을 붉히던 그 아가씨는, 언제나 제 시간에 출근을 할까. 언제나 불만스런 얼굴로 커피를 나르던 커피쏘사이어티 카페의 여장남자 웨이터는 아직도 3층 테라스에서 몰래 담배를 피고 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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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나 설은 왜 내겐 시한폭탄 같을까. 고아 같은 기분으로 살았던 이들은 다들 그런 기분일까.]]></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Wed, 03 Sep 2008 03:03:5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58</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x2I5UYkcPAY&hl=ko&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x2I5UYkcPAY&hl=ko&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center><br />
<center><b>Leonard Cohen-The Partisan</b></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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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3366"><b>촛불집회와 세 개의 정치</b></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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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촛불평론을 위하여</b><br />
촛불집회가 흔들리고 있다.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는 참가자들의 서글픈 다짐과 달리 촛불은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불씨를 되살리고 이를 유효한 혹은 결정적인 정치적 행위로 반전시킨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촛불이 꺼지더라도 계속 살아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나는 그것을 정치적 삶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촛불집회를 둘러싼 이야기가 넘쳐났고 기실 멀미를 일으킬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덧붙일 이야기들이 더 있다면 정치적 삶의 형식에 관한 것 역시 그 가운데 하나에 깔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식자가 경멸조로 말했듯이 이 또한 또 하나의 ‘촛불평론’일지도 모른다. 그는 촛불집회에 대해서가 아니라 촛불집회의 바깥에 있는 이들을 향해 말을 건네는 일이 더 긴요하다고 역설하며 촛불집회가 무엇이었나를 둘러싼 토론을 간단히 논공행상으로 치부한다. 촛불집회를 살리고 끌어가는데 필요한 실제적 지식을 생산하는 일은 않고 촛불집회가 뭐냐고 묻는 것은, 그의 비유처럼 촛불집회가 열리자 몰려든 ‘오뎅장사’보다 못한 일일까. 그러나 ‘촛불평론’이 뜬금없다는 주장이야말로 위험한 발상 아닐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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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58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8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8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58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8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81b'));return false;"> less.. </a> 지식인들이 “수많은 쟁점들을 각자의 전공과 공부를 살려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고 논리를 개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조언할 때 그의 고민은 십분 이해할 일이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짓누르는 가장 큰 고민이 광우병 협상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든든한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윤리-정치적 진실이라면 어떨까. 촛불집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이 물음이야말로 관건적이지 않을까.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아고라 폐인들이 필요로 한 것이 전문적 지식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외려 ‘무엇을 할 것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할 수 있다. 사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듣거나 곁눈질할 때 그것은 근본적인 요구를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더하려는, 즉 수행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일 뿐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정의를 요구할 때 과학적 진실의 권위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에 힘을 보탠다. 내가 맞게 알고 있으므로 옳다고 하는 언어적 행위 속에는 언제나 어떤 틈새가 끼어있다. 그것은 앎과 믿음 사이의 거리이다. 이 둘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겉보기와 달리 그리 간단하지 않다. 믿음과 지식을 매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또한 정치적 삶의 형식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과 같다. 나는 그 물음을 떠올리면서 촛불집회에 대한 또 하나의 평론을 추가하고 싶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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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정치적 삶의 형식 </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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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정치적 삶의 형식이란 국민, 시민, 민중 등의 개념을 가리킨다. 촛불집회는 그런 개념들을 골고루 불러내면서 혹은 그 가운데 어떤 한 개념에 매달리거나 아니면 다른 개념들과 짝을 이루면서 정치에 관한 우리의 반성을 모두 흔들어놓았다. 먼저 미국산 수입쇠고기를 개방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위협받았다고 느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주민으로서의 국민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 무대에는 푸코 식으로 말하자면 생명을 가진 구체적 신체들의 결집체로서의 사회가 있다. 그리고 국가 혹은 복잡한 통치 기구들은 그 사회의 성원인 국민, 다시 푸코 식으로 말하자면 건강과 안전, 삶의 안녕을 보장하고 향상시킬 책임이 있다. 이런 가정에 설 때 국민이란 달리 말하자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사회적 생명으로서의 삶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집회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정치적 삶은 집합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생명체로서의 주민-개인이다. <br />
다음으로 우리는 “헌법1조가”를 부르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마주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노래는 촛불집회의 송가(頌歌)였다. 촛불집회가 무언지 묻는 숱한 이야기들 가운데 크게 성공을 거둔 것은 직접민주주의로서의 촛불집회란 것이었다. 그리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주권자로 호명하는 것이었다. 촛불집회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등장하여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냐 직접민주주의냐는 조금은 엉뚱한 논쟁이 뒤를 이었다. ‘아래로부터, 자발적인, 직접적인, 지도받지 않은, 조직화되지 않은’ 등의 수많은 규정들이 촛불집회가 보여주는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나타났다. 이런 말들은 촛불집회의 숨겨진 에토스를 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보는 정치적 삶은 시민으로서의 삶이다. 그것은 정당정치에 매개되지 않은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적 행위로 예찬 받든 아니면 더욱 나아간 일부의 주장처럼 그것이 ‘인민주권’을 행사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발현되는 것이었든, 그런 주장들 사이에 놓인 ‘양적인’ 차이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려 문제는 주권적인 삶으로서의 정치적 삶이 우리에게 다시금 제기되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br />
마지막으로 우리는 춧불집회에서 기이하게도 혹은 요술처럼 사라져버린 민중이란 주체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사회정치운동의 역사를 서술할 때, 6-70년대의 시민민주주의 운동이 80년대의 민중민주주의 운동으로 변화했다고 말하곤 한다.  한국 사회정치 운동이 변모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적 서술이라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를 뒤잇는 것은 이른바 90년대 후반부터 약진한 시민사회운동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회정치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민사회운동 안에서 말하는 시민적 주체와 촛불집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민적 주체 사이에는 분명 어떤 분명한 간극이 있다. 이를 식별해내기 위해 ‘새로운 대중’이나 ‘제4의 결사체’, ‘다중’같은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은 시사적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평범한 사회학적 서술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것이 정치와 어떻게 만나는지 밝혀져야 할 것이다. 뒤에서 좀 더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정치란 무엇인가 묻는 것은 곧 정치는 어떻게 주체화되는 가란 물음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주체가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정치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생산하는 행위이지 않을 수 없다.. <br />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시민이란 정치적 주체는 시민사회운동에서 말하는 시민과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쟁점, 사안, 정책과 목표에 따라 즐비하게 도열한 시민사회운동에서 시민이란 사실 탈정치화된 주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운동에서 말하는 시민이란 국가와 시민사회란 이분법을 배경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말하는 시민이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시민이다. 다양한 사회적 이해를 어떤 목표로 총체화하거나 다원적인 정체성의 세계를 부인하고 보편적인 역사의 주체, 예컨대 노동자계급을 특권화하는 것에 맞서 많은 이들은 시민사회를 내세웠다. 따라서 시민사회라는 담론 속에 등록된 시민이란 근대 민주주의 혁명이 만들어낸 시민, 즉 인권과 시민권의 주체로서의 시민, 시민사회 담론에서 배격하는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과 다른 시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촛불집회를 통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세력이 시민사회운동일지도 모른다. 촛불집회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민은 다양한 사회적 이해와 욕구로 짜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그 시민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요즘 유행하고 있는 표현을 빌자면 촛불집회를 주동하는 ‘주권자’로서의 시민은 시민사회운동이 재현하는 시민과는 다른 자리에 있다. 그래서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시민, 국민 주권을 요구하는 시민이,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려는 시민사회의 시민의 겉모습일 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촛불집회가 벌어지는 기간 동안 무려 1천여 개가 넘는 시민사회운동단체를 망라한 광우병대책회의가 ‘마이클럽’, ‘소울드레서’, ‘빨리쿡닷컴’, ‘아고라’ 같은 인터넷 카페 혹은 모임과 경합을 벌여야 했던 현상 역시 이와 상관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사실 인터넷 카페나 모임을 통해 참여한 시민들은 시민사회운동이 말하는 시민과는 다른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민사회라기보다는 한국이라는 추상적인 정치적 공동체에 속한 시민으로서 자신을 내세운다. 그 때의 시민을 시민사회가 내건 시민의 모습으로 자리바꿈하려는 것은 1700여개의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모인 대책회의와 인터넷 모임들 사이에 놓인 불편하고 어색한 거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br />
어찌 보면 시민에서 민중으로 그리고 다시 거꾸로 시민으로 돌아가는 이 돌연한 움직임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볼 때엔 퇴행처럼 보인다. 시민 그리고 민중 그 다음에는? 거기에 우리는 극복하여야 할 것으로 여겼던 시민이란 개념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의 시민과 나중에 다시 출현하는 시민이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시민은 냉전적인 반공 시대의 산물 아닌가. 그 시대에 허용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치적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었던 정치적 삶의 모습은 시민뿐이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때 사람들은 인권, 시민권이니 하는 개념에 의탁하여 유신독재와 맞서 싸워야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그리고 무엇보다 80년대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있었다. 그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란 정치적 목표가, 그것이 관련을 맺는 사회적 세계이자 삶의 구체적인 실질, 다시 말해 착취와 지배로 구성된 현실을 비판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실제적인 사회적 삶의 주체를 찾아냈다. 그들이 민중이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등장하는 시민은 이를테면 변증법적인 부정의 부정이 아닐까.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주의적 주체였던 시민은 이제 특수한 자본주의적인 사회체제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삶의 주체로서의 민중을 통해 부정되었다. 그리고 다시 부정의 부정을 거쳐 도착한 시민이 있다. 형식적인 법적, 주권적인 주체로서의 정체성에 갇혀있던 시민이란 정치적 주체는 생산과 분배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삶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민중이란 주체를 통해 부정된다. 그리고 다시 그 민중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시민이 나온다. 그것은 의고적인 표현을 빌자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적인 권리와 추상적인 법적 주체로부터 벗어난 그렇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삶의 세계로부터 요구를 던지는 욕구의 주체로서의 민중에서도 동시에 벗어난 성숙한 모습으로서의 시민이라는 것.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매끈한 변증법적인 전개로 시민의 정체성을 규정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것이 어딘지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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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시민에서 민중으로 다시 시민으로 </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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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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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 더 쾌적하고 안전한 근로환경을 요구할 때, 이때의 노동자들은 사회적 주체이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가 현존하는 사회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구로 전환될 때, 이들은 일약 정치적 주체가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조국근대화의 역군이자 번영과 성장의 견인차였음을 부정하고 노예와도 같은 착취에 시달리는 자로서 자신을 내세울 때, 그것은 단순히 자신의 현실을 오해하도록 했던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지금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 주장은 노동자라는 특수한 사회집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따라서 그러한 각성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동일시로부터 벗어나는 일에 머물지 않고 누구나 떠맡을 수 있고 떠맡아야하는 몸짓으로 나아가게 한다. 물론 여기에서 노동자는 특정한 사회경제적 계층으로서의 노동자로부터 보편적 몸짓을 던지는 노동자로 분열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노동자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자는 객관적이고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의 일부 집단을 가리키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될 수 있는 논리적 지위이다. 그리고 앞의 노동자가 (사회적) 주체라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에 속하면서도 또한 속하지 않은, 국민 주체의 이름으로 사회에 소속되지만 평등한 시민의 이름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주체이다. <br />
따라서 앞의 이론가들의 말을 빌어, 사회 질서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행위로서의 통치나 행정 혹은 폴리스를 정치와 분별할 수 있다면, 정치의 핵심적인 특성은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체험하고 인식하는 사회가 유일하고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임을 판단하고 선언하는 행위라는 데 있다. 결국 이들의 주장에 따를 때, 정치란 사회의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의 조건을 규정하는 행위이고, 정치적 주체화란 바로 사회를 존재의 질서로서 수용하고 인정하길 거부하고 그것의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보편성을 폭로하고 중지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것이 주체가 아니라 주체화라고 굳이 불려야하는 이유는 사회적 주체란 특정한 집단의 속성이나 자질, 성향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인 반면 정치적 주체란 그런 경험적 사실들로부터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디우같은 이가 즐겨 쓰는 랭보의 표현처럼 “논리적 반란(logical revolt)”이다. 그것이 논리적인 이유는 목적론적인 주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떤 숨겨진 역사적 논리의 필연적인 자기전개로서 정치적 변화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실체화될 수 없고, 어떤 특정한 주체의 자리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형식적인 지위를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br />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친 전태일의 목소리는 정치적 주체의 목소리이다. 노동자로서, 한없는 착취와 지옥 같은 공장에 얽매여있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에 호소하며 그것을 실행하도록 외치는 목소리는 사회적 주체의 목소리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또한 자신을 정치적으로 주체화하는 행위 그 자체를 반향한다. 어느 대학생 출신의 지식인으로 하여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책을 쓰도록 이끌고, 이후 수많은 이들의 귓전에 영원히 메아리치게 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 우리가 그의 영웅적 행위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특징을 영원한 목소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는 정치적 주체의 목소리/음성이다. 여기에서 음성과 말을 다른 것으로 이야기하는 정신분석학의 이야기를 끌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의미를 전달하는 말을 항상 초과하는 것으로서의 목소리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것은 언어라는 상징적 질서 안에서 중립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는 말로 모두 환원할 수 없는 차원을 식별하고 이를 음성이라 부른다. 따라서 어떤 목소리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은 항상 반론과 이견의 형태를 취한다. 그렇지만 그 목소리에 음성의 차원이 담기게 될 때, 그 목소리는 대화나 토론에 연루된 당사자들에 머물지 않고 그를 에워싼 모든 이들의 귓전으로 울려 퍼진다. <br />
그런데 전태일의 목소리는 사회적 요구를 던지는 말이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의 귓전을 맴돈 음성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는 목마름으로”란 시에서 김지하가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민주주의여”라고 했을 때, 그 민주주의란 말/음성이 가진 차원과 같다. 그것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박정희 정권의 궁정철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 흔하디흔한 정치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규칙과 제도, 절차들의 체계로서의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술어가 아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을 가리키는 시늉을 하면서 말로서 어떤 의미를 가리키는데 머물지만, 김지하의 시에 등장하는 민주주의란 낱말은 우리를 소름 돋게 하였다. 그 소름 돋는 체험 속에서 듣는 것은 음성이다. 그것은 어쩌면 정치적 주체가 발언할 때 그것을 규정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적절한 개념일 것이다. 이런 것에 대응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랑시에르는 ‘불화(mésentente)를, 바디우는 진리사건을, 라클라우와 무페는 헤게모니적 접합이란 개념 같은 것을 내놓는다. 물론 이런 개념들은 음성이란 말에서 강조되는 주체의 정서적인 충격을 가리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br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얼마간 일맥상통한다. 말과 음성이 객관적으로 동일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전연 다른 차원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어떤 말이 음성의 차원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 그것이 기존의 언어적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서 체험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외침은 근로조건에 관한 규정을 담은 법령에 속한 말들을 지켜라 요구하는 또 다른 말이 아니라 기실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에 대한 앎과 믿음을 일순간에 정지시키는 음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은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듣기 싫어도 귓전을 맴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거북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끈질긴 관성을 만들어내면서 모두의 귓전을 파고든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딱히 어떤 의도했던 수신인을 가지지 않은 채 모두에게 반향 된다. 그것은 처참한 삶을 살고 있던 한 노동자의 목소리였지만 불평등이라는 근본적으로 부정의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 전체의 목소리, 즉 지금의 사회가 유일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목소리이며 모두에게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는 목소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은 우리를 정치적으로 주체화하도록 강요한다. 특수한 사회집단의 말이 이렇게 그 사회의 일부를 대표하는 말로서가 아니라 전체를 부정하는 목소리로 전환하는 것을 가리켜 우리는 정치적 주체화라고 부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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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세 가지의 정치</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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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이야기가 촛불집회를 반성하는 데 어떤 쓸모가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자면 촛불집회를 둘러싼 토론 안에 교차하는 정치적 입장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각각의 입장들은 촛불집회 자체에 대한 생각을 넘어, 엄격한 뜻에서 정치에 관한 우리의 반성을 지배하는 관점들을 전제하거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이 바라보는 촛불집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의 입장은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광우병 수입 쇠고기 문제? 그래 그것은 좋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용적인 조건 하에서 우리는 노력할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이라는 큰 목표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한미 통상에 관련된 규정과 조건이란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하여 재협상에 준하는 새로운 결과를 얻어낼 것이다. 그러나 단 이것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좌익세력이 이를 빌미로 정권퇴진투쟁을 일으키는 것을 용납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재협상에 준하는 검역 조건이라고 자처하는 새로운 검역 조건을 만들어냈고 복잡한 여러 단서들 속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의 입장 속에서 정치의 자리는 당연히 지금 존재하는 질서 그 자체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행위이다. 그들에게 있어 모든 쟁점은 오직 ‘사회문제’로 그쳐야 한다. 그것은 의회에서 협상되고, 정부기관을 통해 관리되어야 할 사안들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행위들을 일러 정치라 할 수 없다. 그것은 현존하는 사회적 질서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로 승인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정치의 영역은 그 사회질서를 승인하는 한에서 그것이 전제하는 합리성에 따라 사회를 관리하는 일일 뿐이다. 만약 그 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반사회적인 행위로 규탄받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를 굳이 정치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가리키는 행정이나 관리여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이 전제하는 정치란 것 안에서 사실 정치는 부재한다. <br />
다음으로 우리는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이 바라보는 촛불집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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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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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우리는 곧 이런 생각과 어울리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주장을 상대하게 된다. 그것은 ‘이명박은 물러나라’, ‘이명박 Out’이라는 슬로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이 수수께끼 같은 이유는 그것이 일종의 비약을 상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촛불집회를 둘러싼 세 번째의 정치를 찾아보게 된다. 우리는 이를 잠정적으로 급진적 민주주의자의 주장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 주장은 사회적 삶의 세계에 속한 구체적인 주체, 객관적인 경제적 사회적 삶의 세계에 속한 주체를 그것으로 절대 환원시킬 수 없는 또 다른 주체를 내세운다. 여기에서 우리는 촛불집회를 통해 유명해진 표현을 빌자면 ‘주권자’로서의 시민의 모습을 보게 된다. 촛불집회를 ‘시민혁명’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새로운 주권자가 광장에서 탄생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결론으로부터 시민인권선언에 육박하는 촛불선언을 제정하고 선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권에게 물러나라는 시민의 요구는 이명박 정권의 구체적인 잘못, 즉 정책의 실패와 지배집단의 부패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생각을 좀 더 밀고 나가자면 그런 주장엔 기실 어떤 대상에 대한 참조도 없다. 그것은 나쁜 질서를 좋은 질서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쁘고 좋은 질서 따위란 존재하지 않으며 무조건적인 당위로서 제시된 정의(正義)를 선언하는 것이다. 곧 그것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객관적 질서 속에서의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사회적 행위자들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전연 다른 모습으로 출현하는 주체를 그려낸다. 그것은 주권자의 모습이고 무조건적인 정의를 체현하는 모두로서의 나, 보편적인 주체로서의 인민이다. 그리고 그 주권자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주장은 모든 사회적 잘못, 정치의 과오를 심판하고 반성하는 이상(理想)이 되어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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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아무 것도 하여선 안 된다 혹은 무엇을 할 것인가</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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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를 격발하고 또 그에 참여한 이들이 토로하는 수많은 ‘사회문제’들로부터 어떻게 우리는 무조건적인 정의로 비약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해 어떻게 하여 우리는 세계의 질서에 사로잡힌 구조적 행위자로부터 주권자로서 자신을 정치적으로 주체화할 수 있을까. 이는 아마 촛불집회를 둘러싼 정세를 섬세하게 분석하는 어느 진보적 학자의 고민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백승욱은 촛불집회를 두 가지의 위기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촛불집회가 두 가지의 위기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촛불집회는 지금 민중 생활을 둘러싼 “안전의 총체적 붕괴”라는 위기와 대중들이 현실 정치에서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정치세력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중들이 스스로 인민주권을 외치는 “헌정적 위기”가 겹쳐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두 가지 위기로부터 파생된 두 가지의 투쟁, 즉 사회체계를 변화시키려는 변혁(transformation)의 운동과 대중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해방(emancipation)의 운동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구조에 얽매인 사회적 행위자로서 비롯된 운동과 정치적 주체화를 위한 운동을 결합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br />
그가 내놓는 답변은 이런 것이다. 조금 길지만 인용하자. “촛불집회는 아직 넘어서야할 수많은 경계들이 있고, 이 경계들을 넘어설 때 비로소 연대의 조건을, 그리고 해방적 주체의 탄생이 가능한 조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대중들이 느끼는 분할선이 ‘안전’ 대 ‘불안전’이라면, 거기에 연대하기 시작하는 고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안전한’ 지위에 놓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비정규직, 그리고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한 정도로 이주노동자이다. 그럼 촛불집회의 목표는 그 참석자들이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라고 선언할 때, 그리고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는 ‘노동자-시민이다’라고 선언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br />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특수한 요구를 던지는 (사회적) 주체가 자유평등이라는 보편성을 쟁취하고자 하는 (정치적) 주체로 전환하는 논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는 노동자-시민이다”와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이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조금 지나친 비약을 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먼저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 혹은 이주노동자이라는 선언과 비정규직-이주노동자는 노동자-시민이라는 선언이 비대칭적인 것임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넘어가도록 하자. 보다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이주노동자가 과연 특수한 요구를 던지는 사회적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주장을 응축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백승욱은 서둘러 비정규직-이주노동자를 가장 불안전한 지위에 놓인, 즉 고통 가운데서도 가장 극심한 고통을 누리는 주체로 정의해버린다. 그러나 비정규직-이주노동자가 다른 모든 이들이 보편적인 주체, 정의의 주체로 행위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겪는 고통의 참담함, 그 양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주노동자가 보편적인 인간성을 대표하는 인간으로 승격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살아있는 모순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수적인 면에서 많고 적음을 떠나 그리고 그들이 겪는 고통이 크고 작음을 떠나, 그들이 어떤 논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수긍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전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존엄하다, 평등하다는 규정을 통해 모든 이들을 묶어낼 수 있는 전체란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자백하도록 하는 계기가 아닐까. <br />
앞서 예를 들었던 학자들이 ‘주체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이미 주어진 앎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자신의 지식을 축적하는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주체는 기원이 없는 주체이며 즉 주체화라는 어떤 몸짓을 영원히 망각한 주체이다. 정신분석학적인 표현에서 빌자면 이미 주체의 자리는 객관적인 상징적 지식의 네트워크 안에 마련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이제는 거의 의고적인 표현처럼 들리기까지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주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체화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실은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일 뿐이라는 악무한적인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단언하는 결정으로부터 ‘객관적 지식’과 ‘주관적 진실’ 사이에 단절을 도입한다. 객관과 주관은 대칭적이지 않다. 외려 둘은 절대적으로 비대칭적이다. 객관적 세계에 얽매인 주체는 주체가 아니라 객관적 세계와의 동일시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그 세계 자체의 일부이다. 그것은 역설적인 표현이겠지만 객관적 주체이다. <br />
흥미로운 점은 바로 지금 좌파적인 정치적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앞의 이론가들이 모두 알튀세르의 제자들이었으며 또한 전력을 다하여 알튀세르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알튀세르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이들이 모두 정치적 주체화의 이론가들이란 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알튀세르로부터 자신들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낼 때 그것은 다름 아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대 과학이라는 대당(對當)을 거부하고 이를 이데올로기 대 정치적 주체화란 대당으로 대신하려 하는 것이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반대하여 과학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당을 도입할 때, 그들은 과학과 전위당을 대신하는 무엇을 공들여 발굴하고 제시하려 한다. 그것은 바디우가 말하는 것처럼 진리사건일 수도 있고 랑시에르가 말하는 것처럼 불화일 수도 있으며 발리바르가 말하는 것처럼 자유평등의 요구일 수도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축조된 세계가 자신이 불가능한 것임을 폭로하며 주저앉는 어떤 순간을 가리키려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공통적으로 정치적 주체화라 불릴 수 있다.<br />
그렇다면 이런 정치적 주체화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재화의 공급으로 이뤄지고 각 부분들을 배치하는 이미 주어진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 즉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적 삶의 세계에 얽매인 주체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일까.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얽매인 주체로서의 사회적 주체와 완벽한 분리를 도모함으로써만, ‘기적’이나 ‘은총’ 혹은 ‘현현’처럼 계획될 수도 조직될 수도 없는 사건으로서만 출현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저 발발한 사건들 속에서 그것이 과연 정치적 주체화인지를 식별하고 그것을 혁명이나 혹은 새로운 세계를 생산하는 결정이라고 선언하는 범위 안에서의 행위가 있을 뿐일까. 전위당은 물론이려니와 어떤 형태의 조직적 주체가 설 자리는 없는 것일까. 따라서 정치적 주체화란 앞서 백승욱이 말한 것처럼 ‘가장 아픈’ 주체로서의 비정규직-이주노동자가 보편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선언하는 행위를 기대하는 일에 그쳐야 할까. <br />
그렇지만 주권적 주체로서 즉 무조건적인 자유평등의 주체로서 자신을 선언하는 주체로서 자신을 내세우는 일은 사회적 행위자로서의 주체를 찾아낸 것 아닐까.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를 ‘발견’하면서 자본의 논리 안에서 근본적으로 탈구된 주체로서 노동자를 발견하였듯이 그리고 그로부터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주체화하였듯이, 우리는 사회적 주체로부터 정치적 주체화로 나아갈 수 있는 행위의 논리를 찾아내면 안 될까.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적 행위자와 정치적 주체화가 만나는 길은 없다는, 그리고 둘 사이를 이으려는 어떤 시도도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위협적인 주장들과 마주칠 뿐이다. 그것은 사회의 (불)가능성을 규정하는 행위는 ‘절대적 부정성’, 즉 사회라는 충만한 세계에 깃들어있는 틈새이자 그것의 ‘결여’를 실정화(positivization)하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으로 죄악시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도 없지만 또한 있어야 하는 그 주체를 상상하면서, 변혁은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위안하려는, 그렇지만 그 치욕적인 결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 만들어낸 오직 윤리적인 다짐만이 남은, 서글픈 히스테리적 몸짓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촛불집회에서 묻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무엇을 하고 있는 주체를 식별하겠다는, 뒷걸음질 치는 몸짓 앞에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 주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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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41A01"><b>_계간 <자음과모음>에 기고한 글</b></font></div>]]></description>
<category>articles</category>
<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ue, 22 Jul 2008 18:31: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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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直觀-친구에게</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57</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lB5vnpzm86g&hl=en&fs=1"></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lB5vnpzm86g&hl=en&fs=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center><br />
<center><font color="#D41A01">Phil Ochs - The Highwayman</font></center><br />
가느다란 가느다란 목숨 끝에 매달려 밥 잘 먹었어? 바짝 마른 우기가 일기예보를 빗나간 채 계속 되었는데 말이야. 사실 요즘 세상은 지나치게 잘 먹어. 初伏!!! 이국에서 온 친구와 소름이 돋는 휘센 에어컨 북극 바람과 대결하며 뜨겁게 부글거리는 삼계탕을 후루룩 마셨어. 또 한 번 잘 먹었어. 잘 먹자고 사는 버러지같은 인생을 오늘 하루 더 추가했다네. 1인분 밥을 추가할 때마다 1센티 인간 이하의 삶을 향해 강등되는 것 같은 기분. 모든 존재에게서 생명의 위엄을 읽는 승려들을 내가 얼마니 싫어하는지 넌 알거야. 그건 내가 가진 최대의 형이상학이야. 사실 존재가 생명이 되기에는 생명 위로 떠도는 여분의 鬼氣에 붙잡혀 본 적이 있어서 그런 걸까. 그런데 말야,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 그런 게 사실 어쩌면 형이상학적인 것 아니겠니. 언젠가 곯아 본 적 없는 자들의 세치 혀, 개나발이라고 쾅쾅거렸을 때, 마침 그 때 우리는 사랑에 빠져있었고, 그 때 얼마나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니. 그 때의 헛것에 들린 것 같은 배부름. 10년전 투쟁을 속삭이다 가끔 생각난 듯이 서둘러 식당으로 달려가 밥을 먹던 우리는 이젠 맛집을 찾다 별 볼일 없는 영화에 관한 농담을 몇 마디 주고받곤 미국대통령선거나 북경 올림픽 이야기를 주고받지. 그런데 150달러를 넘니 마니 하는 국제유가 소식은 지겹다 못해 증오스러워. 모 사이비교단의 총재가 성전을 찾다 허리가 삐끗했다데, 대서특필되었으니 알지. 그리고 인도의 어느 광산지대에선 수천 명이 폭동을 일으켰다더군. 그건 기적처럼 전해진 소식일 뿐이야. 어디 거기뿐이겠어, 귓전에 닿지 못한 채 소멸한 불타오르는 소식들이. 경제가 타전하는 소식은 언제나 가격이고 묻힌 소식은 목숨, 한숨, 그을음, 피울음, 뭐 이런 것이라는 것 수세기 동안 우리의 직관 아냐? 물대포를 쏘겠다고 계속 야료를 부리는 선무방송을 들으며 어젯밤 종로2가 심야 맥도날드 앞, 홑겹 우비를 입고 서있는데, 와우, 기분 야하더라. 비는 억척스러웠고, 살아야겠다는 몸부림과 사라지는 세계가 짬뽕이 되어 질척이는 우주가 약 먹은 것처럼 두둥실 떠오르더라.]]></description>
<category>Text of Now</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Sun, 20 Jul 2008 22:44:29 +0900</pubDate>
</item>
<item>
<title>&lt;당비의 생각&gt;을 시작하며</title>
<link>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55</link>
<description><![CDATA[ <center><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h89AKTkGyeM&hl=ko"></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h89AKTkGyeM&hl=ko"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25" height="344"></embed></objec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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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im Buckley, Song to the siren</i></b></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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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형이상학적인 정치철학자들의 고담준론에 내맡겨 두지 않으려면, 또 민주주의가 더 이상 현실정치를 꾸미는 덧없는 수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계속 생각할 책임이 있다. 그 사유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가 겪는 기이한 운명을 망연자실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마침 우리는 그런 처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겠다며 등장했던 이명박 정권은 집권 직후 미국산 수입쇠고기 사태로 인하여 정권퇴진까지 요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일 계속된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온 주장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권이 개시한 “우파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문제 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요 언론매체들과 지식인들이 다투어 쏟아낸 주장을 들어보면 촛불집회는 그저 잘못된 정책에 대한 저항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전환시키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유명한 정치학자는 이것이 6월항쟁에 비견될만한 사건이라고 추켜올리기까지 하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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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div2551a" style="display:block"><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5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51b')); return false; "> more.. </a></div><div id="div2551b" style="display:none"><a href="#" onclick="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51a')); layer_toggle(document.getElementById('div2551b'));return false;"> less.. </a> 그것이 국민주권을 확약하는 미증유의 정치적 사건이라는 주장이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직접민주주가 분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든 아니면 근대정치가 갇혀있던 정치의 범위를 뛰어넘어 생활정치가 발현하는 전환이라는 주장이든, 그 모든 의견은 민주주의에 관한 새로운 사고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만약 그런 주장들이 옳다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에 관한 새로운 실험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아니라 외려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뒷걸음질 치게 하는 지점을 표시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면 그 물음에 우리는 어떤 제한을 두어서도 안되며 또 그런 물음을 던지는 목소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촛불집회가 당장 어떤 현실 정치적 효과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를 떠나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을 변용하는 사태라고 한다면, 그럴 수록에 이런 목소리에 열려있어야 함은 물론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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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문제이다. 좀 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근대 정치가 생겨나고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 조건이다. 현실정치의 객관적인 사태 내부로부터 찾아볼 수 없지만 그것을 인식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것을 정치로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주의가 독재와 반대되는 어떤 특수한 정치 제도 가운데 하나인 것이 아니다. 외려 민주주의는 어떤 사회적 사태를 정치화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동의어일 뿐 아니라 나아가 정치 그 자체를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정확히 외연을 같이 한다. 정치가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 현실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정치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실정치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현실정치를 단순하게 이미 주어진 사회적 이해를 조정하는 일로 환원한다면 정치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란 사회를 관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에 불과하고, 이 때 정치란 마감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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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정치는 언제나 자신을 이중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이해와 의견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행위로서의 정치와 이를 아렌트 식으로 표현하여 “좋은 정치”로 판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동시에 발생하고 분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중화된 정치를 함께 묶을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한 가지 종류인 것이 아니라 정치와 동시발생적이다. 따라서 정치를 민주화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정치적 제도나 절차를 도입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정치를 다시금 문제 삼는, 즉 문제화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정치의 이상적 규범이 아니라 엄밀한 뜻에서 정치를 급진화하는 몸짓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본연의 정치, 혹은 정치의 정치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정치가 자신을 이중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두 개의 분리된 실체로 사유한다는 점에서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런 생각에 기댈 경우 근대 정치의 출현 조건이었던 민주주의를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민주주의를 떠나 정치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를 형이상학화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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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민주주의는 어떤 사회적 사태를 정치적 행위로 해석하고자 할 때 언제나 보이지 않는 배경처럼 작용하면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것은 말뜻 그대로 문제를 던진다. 이를테면 촛불집회는 무엇인가. 그것에 답변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그것을 거의 강제적이라 할 정도로 민주주의와 관련시키지 않을 수 없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정립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그것을 현실정치와의 관련 속에서 인식하려는 경우에서이든 어쨌든 민주주의는 물음으로써 다시금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에 답하려는 몸짓은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마련된 어떤 정의를 참조하거나 전용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외려 그것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유하고 조정하기 위해 우리가 벌이는 행위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회적 행위를 정치적인 것으로서 생각하려 할 때, 민주주의란 그런 사유 행위를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그러므로 촛불집회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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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화”라는 역사적 시기를 경유하였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특정한 상상력을 만들어냈고 또 처분하였다. 그것의 결과는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 혹은 염증이라 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대립 속에서 전개되었던 현실정치는 갑자기 민생정치란 공통의 정치적 이상으로 흡수되었고 정치적 선택은 더 많은 민생정치 혹은 더 적은 민생정치 사이의 차이를 통해 가까스로 이뤄지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현실정치를 반성하기 위한 조건으로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제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상상하여왔던 정치를 다시금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촛불집회가 갖는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또다시 민주주의란 정치에 관한 사고가 짊어져야 하는 의무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셈인지도 모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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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의 생각󰡕이 첫 번째 권으로 내놓은 이 책에서 크게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생각에 기대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겨냥하는 물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그것은 이른바 민주화체제가 마감되고 난 지금 그 민주화체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민주화란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정치적 변형의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특정한 정치적 상상력에 바탕하고 있었고 또 이를 강요하였다. 그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이자 정치적 근대성의 완성이라 부르는 것이었든 아니면 급진적 사회운동세력이 말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위한 정치적 기획을 은폐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한 것이었든 그것은 정치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에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리고 이를 묻지 않은 채 민주화 이후의 정치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 부분에서 우리가 다루려 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이 책의 후반부를 구성하는 글들이 다루려는 바를 굳이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사고하기 위하여 우리가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쟁점들을 검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쟁점들을 다룸으로써 여기에 실린 글들은 민주주의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변형하고자 한다. 이젠 시쳇말이 되다시피 한 그러나 여전히 귀담아 들어야 할 “민주주의의 재민주화”란 말처럼 민주주의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하여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라는 순수하게 증류된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적 행위와 함께 존재하고 기존의 정치적 제도를 통해 현상하며 또한 사회적 삶의 세계를 상상하는 공간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비의 생각󰡕이 내놓는 첫 번째 기획의 결실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조형하는 노력에 작게나마 이바지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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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사회비평 계간지로 그간 자그마한 몫을 해왔던 󰡔당대비평󰡕이 출간을 멈춘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진지한 잡지를 만드는 일에 따르는 어려움을 굳이 토로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이를 쉬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대비평󰡕이 잠시 자취를 감추었던 연유에 대하여 따로 구구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간 󰡔당대비평󰡕에 몸담고 있던 이들은 󰡔당대비평󰡕을 어떻게든 되살리고자 고심하여왔다. 그런 와중에 기존의 계간지란 형태를 고집하기 어려운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면서도 󰡔당대비평󰡕이 했던 역할을 계속할 수 있는 출판형태를 생각했고, 󰡔당비의 생각󰡕이란 이름의 연속적인 단행본 기획을 생각해내게 되었다. 이를 전작 단행본의 형태로 이뤄진 무크지로 받아들여도 좋고 보다 일관된 색깔을 가지고 기획된 연속적인 편집서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당비의 생각󰡕은 기존의 󰡔당대비평󰡕을 이으면서도 보다 집중되고 날 선 자세로 한국 사회의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의 매체가 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이 관심과 비판을 기대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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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FF0000"><b>- 저널 당대비평을 뒤잇는 연속단행본 기획 [당비의 생각] 첫번째 권을 위한 편자서문으로 쓴 글</b></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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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Dcouments</category>
<author>homopop</author>
<pubDate>Tue, 24 Jun 2008 22:33: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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